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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서점가를 휘몰아치다시피 한 뱀파이어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사람들이 불멸불사와 영원한 사랑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알 수가 있다. 확실히 유한한 인간의 삶에서 매력 있는 소재이다.「염마 이야기」이 불멸불사와 영원한 사랑, 아니 애절한 사랑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헌데 애절함이 애절절하지 않고 심드렁한 듯 매력적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1800년대 중반, 막부 말기에서 시작해서 다이쇼 시대, 쇼와 시대를 거쳐 전쟁 말기인 1945년까지 일본의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장소도 교토, 에도(도쿄), 요코하마, 나가사키 등 여러 무대를 역동적으로 거친다. 일본 역사에 익숙하지 않아서 각 시대의 풍경을 잘 알고 읽었더라면 더욱 재미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소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이를테면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 그리고 개화기의 우리나라 시대 상황이었다면 염마가 겪는 일련의 일들이 좀 더 알기 쉽게 다가왔을 것이라는 점이다. 문신이라는 매력적이고 기묘한 소재가 참으로 인상 깊은 소설이었다. 주인공인 염마는 처음에는 왕권을 업고 막부를 지지하는 사바쿠파와 막부를 무너뜨리려는 도바쿠파의 정쟁이 극에 달한 시대에 살인을 하는 데 환멸을 느끼던 조슈 출신의 무사였다. 이름은 이치노세 아마네. 그는 신선조에 밀정으로 들어갔다가 발각된 후에 치명상을 입고 문신사 호쇼 바이코 앞에 쓰러진다. 그러면서 ‘살고 싶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를 들은 바이코는 아마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의 손바닥에 절대 새기면 안 되는 불로불사의 염원을 담은 신귀 문신을 새기게 된다. 이로서 아마네는 늙지도 죽지도 않은 불로불사의 인간이 되었고 바이코의 뒤를 이어 문신사 호쇼 염마로 거듭나게 된다. 신귀 새김에는 세 가지 금기가 있는데 첫 번째는 자해, 두 번째는 살해, 그리고 세 번째가 ‘죽지 않고 늙지 않는’ 불로불사의 신귀새김이라고 한다. 사실 아마네는 자신이 불로불사의 인간이 되었다는 것에 심히 불쾌감을 느낀다. 손바닥에 새겨진 범어로 염마천을 나타내는 한 글자는 아마네의 몸으로 신귀를 불러들여 웬만하면 죽지 않게 되었지만 효소 바이코는 그런 아마네(염마)를 두고는 유작인 동시에 희대의 걸작이라느니, 제 손으로 불사의 인간을 만들어냈다는 바이코의 희열이 조금은 광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헌데 그러면 뭘하나. 신귀를 빼내자마자 그 즉시 죽는다는데.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목을 베거나 단숨에 심장을 찔러버리는 경우에는 회복될 시간이 없어 죽을 수도 있기에 아마네는 일단 염마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여기서 또 다른 등장인물이 있는데 스승 바이코에게는 금기시되었던 불로불사의 귀신 문신을 제 몸에 스스로 새긴 또 다른 한 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는 염마처럼 불로불사의 몸이 되었지만 인간의 심장을 먹는 악귀이 되었으며 그를 찾아내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한다. 서양에서 말하는 뱀파이어와 유사한 철학적 고뇌를 가지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헌데 염마와 그와의 악연은 다른 곳에 있었으니, 아마네(염마)의 누이도 심장이 사라진 채 발견되었던 것. 누이의 죽음에 관해 묻고 싶어서라도 아마네(염마)는 오른쪽 손바닥에 초승달 하나, 한자로는 삼일월이라고 새긴 기묘한 사내를 찾기로 한다. 그리고 염마와는 긴 인연의 끈을 가지게 될 오카자키라는 사내가 있다. 아마네(염마)나 염탐을 위해 신분을 속이고 들어갔던 곳에서 만나게 되어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사내이다. 사실 아마네(염마)가 워낙 서투른 사람이라서 아침마다 두드려 깨워야 하고 생선가시를 발라줘야 겨우 밥을 떠 넣었기에 오카자키가 늘 아마네를 돌봐주었던 것. 그렇기에 아마네가 배신자라는 걸 알고는 엄청 분노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아마네(염마)는 오카자키를 구해주게 되고 그에게서 히사카 나쓰라는 오카자키 딸을 보호해달라고 부탁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이 소설의 큰 틀은 불로불사의 몸이 된 문신사 아마네(염마)의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선은 그에게 염마의 신귀새김을 한 문신사 바이코, 그리고 둘도 없는 친구인 오카자키 세이노스케, 평생을 거쳐 염마와 인연을 맺은 오카자키의 딸 나쓰,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의 불로불사인 삼일월이라 새긴 같은 업보를 짊어진 문신 동문 오니즈키 씨, 그리고 염마의 생애동안 친구이자 후원자가 되어 주는 노부마사까지. 깔끔하고 맛깔나게 풀어 놓은 아마네(염마)의 이야기가 정감 있다. 재미있는 표현은 어떻든 시간은 남아돌 만큼 많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불로불사의 여유이다) 오빠라고 부르던 사람의 나이를 한 살 앞질러 가버린 것이다. (오빠를 오빠라 부르지도 못하고) 내가 생김새가 이래도 내년이면 100살이야.(염마를 어리게 보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처음에는 당신의 여동생이었지요. 이어서 누나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마지막에는 할머니라는 이름을 얻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마는 항시 이팔청춘 스무 살로 남아있지요) 나이를 먹으면서 인간도 분명 원숙해지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나이에 걸맞은 외모가 필요하다고 한다. 인간은 결국 제 얼굴에 맞게 살아가는 법이니.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어딘가 이상주의로 내달리고 미련도 많은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있는 염마였기에 나쓰도 쉽게 그를 떠날 수가 없었던 것(염마를 돌봐주던 오카자키의 딸이니 어쩌면 당연한 듯). 훗날 나쓰는 아버지는 염마에게 딸을 맡긴 게 아니라 딸에게 염마를 맡긴 게 아닐까하고 생각한다.(오카자키는 염마의 운명의 고뇌를 미리 알고 걱정했단 말인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실로 아름다운 일임을 불로불사의 인간들 틈에서 멋진 나이 듦을 보여주는 나쓰. 그리고 한없이 외로운 사람인 염마. 히로시마의 폭격 속에서 알게 된 처절한 진실에 대해 염마는 지금 나쓰에게 답변을 건내 주러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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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오랜만에 빠져들듯이 읽었던 책이 아닐까 한다. 깔끔한 표지 속에 이런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니. 한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 한편을 보고 나온 듯도 하고, 책 속의 주인공 염마처럼 나도 신귀에 들린듯 책 속에 빠져들었던 것은 아닐까? 또, 이런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염마가 나의 손바닥에 신귀의 문신을 새겨놓은 것은 아닐까. 라는....
곧 죽음을 앞둔 천하의 호쇼 문신사인 바이코 앞에 어느날 나타난 깊은 상처를 가진 살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정신을 잃은 젊은 청년. 바이코는 문신사로서의 법칙을 어기고 그에게 죽기 전 신귀가 들린, 염마문신을 손바닥에 새긴다. 그리고 불로불사의 몸을 얻고, 바이코가 다시 지어준 염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는 그. 바이코의 제자로 문신수업을 받게 된다. 어떤 상처를 입었든 염마는 살아나게 된다. 불사의 몸. 하지만 염마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죽고 싶지만, 살아가게 되는데... 곧은 마음을 가진 염마. 그런데 바이코에게 염마 외에 단 한명의 제자가 더 있었다. 스스로 신귀의 문신을 자신의 손바닥에 새기고, 바이코에게 추방당한 야차. 그러니까 불사의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염마외에 한 사람이 더 있었던 것이다.
야차는 염마와는 다른 바이코의 제자였다. 스스로 신귀를 새귀고, 그 신귀를 다른 사람의 심장을 얻는 것으로 생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염마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에 문신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중간에 존재하는 나쓰라는 아가씨. 야차는 그녀를 불사의 몸으로 만들어 함께하기를 원했지만, 염마는 그녀를 불사로 만들고 싶지 않은 채 사랑했다. 나쓰는 야차가 아닌 염마를 사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늙지 않는 염마에게 여동생이었다가 누님 이었다가 어머님이었다가 할머니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곁에 끝까지 남았던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준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불사의 몸을 가진 염마와 야차. 이지만 인간의 한정된 삶이 더 아름답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행복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하고, 같은 시간을 늙어가며 사랑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기억하며 그 시간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 책은 단연코 그 어떤 중심적인 이야기보다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아름답고. 차갑고. 행복하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내 한 남자로서 사모했던 것 같다. 그 쓸쓸한 눈동자를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어떻게든 염마의 따스함 밑에 들어서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런 말을 ㄹ입에 담으면 그에게는 큰 부담이 될 터였다. 평생 이런 마음을 꽁꽁 감춰둔 채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한창때의 나쓰에게 상상할 수 없는 시련으로 느껴졌다. 아직 그럴 각오까지는 되어 있지 않았다. (p.218)
몇 년이 지나면 누님에서 어머니가 되겠죠. 그러다 결국 할머니라고 소개해야 할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하면 우울하긴 해요. 하지만 괜찮아요. 내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까지는 오빠 옆에 있고 싶네요.그냥 그것뿐이에요.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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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엄마이야기"로 잘못 읽고는 다시 제대로 된 제목을 읽고나서 피식 웃음을 날렸던 책이다. 자객이였던 아마네는 우연한 기회에 손에 신귀가 담긴 문신을 새기게 되면서 하지만 무한한 삶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였다. 나와 같은 생각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한 소년을 죽지 않게 만들어준 염마는 곧 후회하게 된다. 1859년부터 1945년까지 오랜 시간, 여러가지 사건동안 스무살 초반의 염마를 그리면서 긴장감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평생을 염마곁에 있으면서 마음한번 표현 못하고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속도감과 여러가지 사건이 주는 흥미로움에 지루할 새도 없이 처음엔 불로불사인 염마가 부러웠지만 이제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평범한 아마네로 돌아와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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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불로불사(不老不死)”는 동서양의 수많은 신화와 전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 테마이다. 동양(東洋)에서는 불로초(不老草)로 영원한 권력을 꿈꾸었던 “진시황(秦始皇)”과 중국인들의 영원한 이상향(理想鄕) “무릉도원(武陵桃源),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로 시작하는 코미디 소재로도 잘 알려져 있는 “삼천갑자 동방삭(三千甲子 東方朔) 전설이 우선 떠오르고, 서양(西洋)에서는 예수의 재림(再臨)시까지 죽지도 못하고 온 세상을 떠돈다는 “방랑하는 유대인 아하스 페르츠(Ahas Pertz)” -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이를 소재로 하고 있다 -,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가 앓고 있다고 해서 유명해진 성장이 멈춰 늙지 않는 병인 “하이랜더(Highlander)" 증후군, 그리고 최근 로맨틱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으로 전 세계 여성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흡혈귀(Vampire)" 등이 떠오른다. 이야기의 결말이나 교훈은 다 제각각이어서 불로불사가 행복의 상징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다다를 수 없는 꿈에 대한 부질없는 욕망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하며, 영생의 존재들이 인간의 유한한 삶을 부러워하는, 무한한 삶(永生)이 주는 회한과 번민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번에 읽은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소설 공모전인 “골든 엘리펀트상” 대상 공동 수상작이라는 나카무라 후미의 <염마 이야기(원제 閻魔 / 소담출판사 / 2011년 3월)>는 이처럼 “불로불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어쩌면 식상한 소재인데다가 뻔한 결말이 예측되는 소설인데 읽고 나니 식상함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극적 재미와 잔잔한 감동까지 불러 일으키는 멋진 판타지 소설이었다.
책에서는 불로불사가 되는 방법으로 “문신(文身, Tatto)”으로 설정한다. “신귀 새김”이라고 부르는 이 문신은 손바닥에 귀신(鬼神)의 형상이나 글자를 새기면 귀신이 몸 안으로 깃들어 숙주(宿主)인 사람의 목숨을 보호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문신을 새긴 사람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도 금세 아물며 - 다만 치유되는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 젊음 또한 유지하게 되어 가히 “불사신(不死身)”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그렇다면 문신을 새긴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까? 귀신이 치유하지 못할 정도의 상처, 즉 목이 떨어져 나가거나 심장이 터지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죽게 되며 그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 귀신이 몸에서 떠나는 때에 이르게 되면 죽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문신을 아무나 새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문신사(文身士)로서 최고의 문신 기술을 가진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호칭인 “호쇼(寶生)” 문신사 들 중 극히 일부만 가능한 기술이며, 스스로 신귀 새김을 하면 사람의 심장을 먹어야만 하는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고 한다. 즉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이런 방법은 선한 존재가 아니라 결국 악한 존재에 의지할 수 밖에 없어 몸에 깃든 귀신들은 영생을 제공하는 대신에 숙주인 인간을 조종하여 증오심을 품게 하거나 살인을 저지르게 하여 종국에는 스스로 귀신이 되게 하게 만든다. 간단히 설정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이야기를 소개해보자.
때는 일본 막부시대 말기인 1866년, 조슈 번 출신의 무사인 20세 젊은 청년 이치노세 아마네는 신선조에 밀정(密偵)으로 잡입했다가 발각되어 치명상을 입고 달아나다가 문신사 호쇼 바이코 집 앞에서 “살고 싶다 죽는 것은 싫어”라는 삶에 대한 강한 열망을 유언처럼 남기면서 쓰러진다. 그로부터 이틀 후 잠에서 깨어난 아마네는 치명적인 상처가 어느새 아물어 멀쩡해진 몸과 오른쪽 손바닥에 새겨진 범어(梵語) “염마(閻魔)”라는 글자를 보며 어리둥절해 한다. 그런 그에게 바이코는 불로불사의 신귀 새김을 했다고 일러주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늙지도 죽지도 않게 된 존재가 되어버린 아마네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마네는 바이코에게서 문신 기술을 배워 “호쇼 염마”로 거듭나게 되고, 배신한 자신을 추적해온 신선조 옛 동료에게서 대신 칼을 맞은 바이코에게서 스스로 자신의 몸에 신귀 새김을 하여 그 부작용으로 1년에 한 번씩 사람의 심장을 먹어야 하는 자신의 제자이자 염마의 선배 “호쇼 야차”를 꼭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염마는 자신의 누이인 “시와” 또한 심장이 없어진 채로 시신이 발견된 것을 떠올리고 스승의 유언을 받들고자 마음 먹는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1883년 봄 염마는 바이코를 죽게 만든 동료이자 이제는 가정을 이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다시 만나게 되고, 부랑자로 몰려 경찰에게 모진 고문을 받아 죽음에 이른 그에게서 자신의 딸 “나쓰”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녀를 딸로 거두어 키우게 된다. 시간은 점점 흐르면서 스무 살의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자신과 달리 나이를 점점 먹어가는 나쓰는 딸에서 여동생으로, 누나로 나이가 들어가고, 그런 그녀를 내심 사랑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음을 잘 아는 염마는 그녀에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라고 강권하지만 나쓰 또한 염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못하고 끝내 결혼하지 않고 염마의 곁에 남는다. 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봄, 나쓰는 어느새 일흔을 훌쩍 넘겨 버려 할머니가 되고, 염마는 학도병으로 끌려 나가던 소년에게 불사의 신귀새김을 해줬다가 부상으로 되돌아온 소년이 고향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에 온몸이 찢겼는데도 신귀 문신 때문에 죽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가사키로 찾아가 소년의 손바닥에서 귀신을 빼내 죽음을 맞게 하는데 그곳에서 그동안 몇 번을 만나왔지만 결말을 내지 못한 “호쇼 야차”와 최후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1866년 - 책의 시작은 염마의 누이 “시와”가 호쇼 야차에게 죽임을 당하는 1859년부터 시작된다 - 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근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은 판타지적 요소와 미스터리, 액션이 결합된 장르 소설적 재미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결코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재미와 몰입감이 뛰어난 소설이다. 특히 1800년대 후반 영국의 살인마로 잘 알려진 “잭 더 리퍼”가 일본 요코하마로 건너와 여자들을 연쇄 살인 하는 “3장 요코하마 리퍼 1890년 여름” 편은 사실과 픽션이 절묘히 결합된 팩션(Faction) 소설과 추리 소설적 재미, 두가지 장르적 재미를 한껏 살리고 있어 이 편을 별도로 분리해 내 장편으로 꾸며도 좋을 만큼 박진감 넘치는 스릴과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각 등장인물들의 저마다의 사연이 절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얼떨결에 영생의 삶을 얻게 된 염마는 사랑하는 나쓰를 자신처럼 불사의 존재로 만들어 곁에 둘 법도 하지만 결코 그녀에게 불사의 문신 새김을 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켜주려고 애를 쓰고, 나쓰 또한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딛고 일어나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여의사(女醫士)로서 성공을 거두지만, 사랑하는 염마를 위해 결혼이라는 여자로서의 행복을 포기하고 그의 곁에 남아 평생을 같이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러 염마의 곁을 떠나는 잔잔한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영생이 과연 행복을 줄 수 있을까? 유한한 삶을 동경하는 염마의 번뇌에서도 잘 알 수 있지만 다음 대화에서 결코 행복을 줄 수 없다는,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에 오히려 행복하다는 것을 여실히 들어낸다.
“만일 이 세상에 실제로 그런 게(불로불사의 묘약) 있더라도 드셔서는 안 돼요.” 나쓰가 진지한 얼굴로 응했다. “왜요?”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요.” --- p.208
이 책에서 염마와 대적하는 악인(惡人)이라 할 수 있는 “호쇼 야차”도 자신이 스스로 신귀 새김을 한 부작용으로 인간으로서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지만, 결코 신귀에게 몸을 빼앗기지 않고 끝까지 인간의 모습을 지키려고 애를 쓰며, 나카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참상을 돌아보며 “인간이 신귀보다 더 무섭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염마의 손에 자신의 삶을 끝내주길 바라는 그의 눈물겨운 모습은 결코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이외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하나하나의 사연들이 억지스럽거나 서로 겉돌지 않고 씨줄과 날줄로 절묘하게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으로 끝을 맺는 이 책은 “재미”와 “감동”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멋진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다.
그동안 보아온 불로불사의 존재들 중 가장 인간적-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불사의 존재가 인간성을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일 수 도 있겠지만 - 이고 매력적인 캐릭터인 염마를 이 책 한 권으로 밖에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영 아쉽다. 2011년 어느 도심 한 구석에서 아직도 스무 살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염마가 털어놓는 이 책 이후의 이야기들을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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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모두가 아픔으로 점령된다 정신을 잃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고통에 엎어지고 쓰러지면서 이것이 인간의 길에서 벗어난 자에 대한 벌이라고 절절이 깨닫는 것이다. p.535
나카무라 후미의 「염마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엔터테인먼트 소설 제 1회 대상 수상 작품으로서 불로불사의 문신을 손바닥에 새긴 채 살아가는 한 염마의 이야기다. 이 소설은 무사들이 활발히 활동했던 막부시대부터 일본이 지나 온 역사를 더듬으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일본의 문신 역사를 살펴보면 그 최초기록이 17세기 말에 발행된 한 소설 작품이라고 한다. 주로 하급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적인것으로 되었다는데 가장 인기가 있었던 문신은 연인들의 이름을 일본 발음대로 새기는 문신이나 종교적인 맹세를 새기는 것이였다. 소설 속 염마의 문신은 일종의 주술이 걸린 마물과도 같은 것이다. 손바닥에 자신의 강한 의지와 함께 신귀를 불어넣어 새기는 것으로 염마는 불로불사의 문신을 새기면서 죽을수도 그렇다고 순리에 따라 늙을 수도 없는 생을 살아가게 된다. 칼에 맞아 헐떡거리면서도 살고싶다, 라는 의지 하나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 목이 잘리거나 심장에 강한 타격을 입지 않은 이상 그리고 몸에 든 신귀가 수명을 다하거나 신귀가 숙주의 몸을 싫증내지않는 한, 염마의 목숨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다. 불로불사의 몸으로 타인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 문신으로 인해 치유의 능력이 발휘되지 못 할 만큼의 즉사가 아닌 이상은 멈춰버린 시간속에 외로이 살아야하는 것이다.
소설의 이야기는 사무라이가 활발했던 시절, 그러니까 염마가 아직 신귀 문신을 새기기 전, 적의 부대에 밀정으로 들어갔던 염마의 신분이 노출되면서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적의 부대로 부터 도망을 치면서 시작된다. 손바닥에 신귀의 문신을 새겨준 스승 바이코부터 적의 부대에 밀정으로 있을 때 염마를 챙겨주었던 오카자키 그리고 바이코의 마지막 후계자라 믿었던 불로불사의 살인마 야차. 처음, 사무라이 이야기가 불거져나왔을때는 무협인가, 싶을 정도로 뜨근미지근할 뿐 도통 소설의 장르를 정의 할 수 없었다. 무사를 다룬 무협지나 문신으로 주술을 거는 판타지체계의 소설이라면 오랜만에 접하는 장르라고 반가운 마음으로 즐거이 읽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오카자키의 죽음으로 염마에게 남겨진 나쓰라는 소녀의 출현으로 소설은, 진정한 삶과 죽음을 다룬다. 염마의 멈춰버린 시간으로 딸이자 여동생, 누이,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이 되기도하는 나쓰는 불로불사의 능력을 지녔지만 그것이 얼마나 불행한 행복인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사랑마저도 한량없음을, 주어진 생의 감사함을, 세상에 영원함을 부여할 수 있는것이 있다 해도 그만큼의 고통이 동반함을 이야기한다. 몇 백년을 홀로 살아가야 할 염마의 곁을 함께 지켜 줄 수 있는 건 염마와 같은 능력을 가진 자뿐일지도 모른다. 문신으로 인한 연으로 염마를 비호해주던 무타 노부마사나 자신과 같은 신귀의 능력을 가졌지만 그 수명이 다해 염마를 떠난 고양이가 그러하듯 생명이 다 하는 것에는 각자의 때가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의 손바닥에 불사의 신귀 문신을 새겨 살인을 저지르고 죽은 자의 심장을 태워 먹던 바이코의 후계자 야차, 그와 동행을 해야할지도 모를일이다.
손목에 붕대를 칭칭 감고 다닌적이 있었다. 대일밴드로는 상처가 가려지지않아 어쩔 수 없이 뜨꺼운 물에 손목에 화상을 입었다는 핑계로 둘러댔다. 죽자고 벌인 일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살자고 대충 저지른 일도 아니었다. 그 상태로 욕조에 몸만 담그면 끝나는 일이었다. 마른 수건으로 가까스로 지혈하며 터져나오던 피 보다 더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모르겠다. '살고'싶어서 그런건지, '살아야'해서 그런건지는. 다만, 죽음이라는 문턱이 그리 쉽지만은않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지나 온 시간이 많을수록, 버려야 할 것들이 많을수록 생에 집착은 더욱 더 강해질뿐이다. 누군가 내게 불로불사의 생을 견디겠느냐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 다. 생각컨데, 이 질문의 답은 자신이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두고 보면 분명 대답은 달라질것이다. 아니오, 란 대답이 현재를 부정하는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서른해는 더 어쩌면 당장 내일을 내다볼 수 없다 할지언정 구태여 운명을 거스리고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염마의 마지막 말 처럼, 나 역시 오직 내일만을 바라보며 살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각자의 생이 있고, 각자에게 주어진 길이 있다면 그 생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존재여부를 따질 수 없는 신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얇은 습자지 한 장, 그 차이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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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의 염원인가보다. 사후의 세계를 알 수 없으니 조금 더 이 세상에 남아있고 싶은걸까? 지금의 삶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해도 말이다. 때문인지 동서양을 불문하고 "불로불사"의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염마 이야기>>는 늙지도, 죽지도 못하는 한 문신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바로 호쇼 염마다. 우연한 계기에 거의 죽음이 목전 앞에 이르러 신귀 새김을 할 수 있는 바이코에게 불로불사의 삶을 받게 된 염마. 그렇다고 영원히 죽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염마는 그런 죽음보다는 괴롭더라도 일단은 삶을 살아보기로 한다.
"영원히 살 것인가, 아니면 당장 죽을 것인가."...49p
누구에게나 죽음은 두려운 것이기에 영원한 삶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채 다 자라지도 못한 스무 살의 아마네는 스승 바이코의 삶을 이어받아 신귀 새김이 가능한 문신사로서의 영원한 삶을 시작한다. 내가 알던 사람들의 모습이 변하는데도 나만은 언제나 그대로라면 그 기분이 과연 어떨까!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나이를 지나쳐 조금씩 늙어가고 이제 삶을 넘어 죽음에 이르렀다면... 그 사람 역시 내 옆에 붙잡아두고 싶지는 않을까.
염마는 오랜 세월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비로소 삶과 죽음에 대해 깨닫기 시작한다. 스스로 불로불사의 삶을 선택한 야차와 일평생 염마 옆에서 드러낼 수 없는 사랑을 한 나쓰, 친구처럼 염마를 돌보아 준 노부마사까지.... 다양한 생각을 가진 등장인물들과 세월이 흐름에 따라 벌어지는 사건들로 책은 강한 긴장감을 갖게 한다.
"인간이 신귀보다 더 무서워."...512p
막부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를 거쳐 세계 2차 대전까지 염마는 역사와 함께 했다. 그리고 정작 무서운 건, 사람들의 의지를 따라 귀신처럼 들러붙는 신귀보다 많은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한번에 앗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더 무서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염마 이야기>>가 다른 불로불사 이야기들보다 더 잘 공감되는 이유는, 서양의 이야기들이 어떤 원인도 없이 갑자기 뚝 떨어진 존재들이라면 <<염마 이야기>>는 우리 정서 속에 흐르는 동양적인 미신 같은 것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왠지 그 시절 그 옛날이라면 그런 것들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것. 때문에 염마라는 주인공이 그다지 당당하지 않아도 오히려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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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간 화제가 되고 있는 동안, 장수, 젊은시절 모습을 그대로 조금이라도 더 길게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남녀의 차가 없는 것 같다. 요즘은 남자들도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 화장을 하고 피부관리실을 찾는다. 누구나 아름다움을 지향하게 되는 건 또는,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은 건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그로 인한 염원들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뱀파이어'관련 영화, 소설들이 최근 소설,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한 것 같다. 미남,미녀 이기까지한 그들은 아름다우면서도 불로불사의 생명을 누리며 무한한 능력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러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선 치러야 할 희생도 있지만 그 부분은 작가나 영화제작자에 의해서 의도가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4개국에서 동시 출간! 게다가 불로불사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 판타지 소설이 출간되어 궁금증과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역사속의 불로불사의 생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한동안 멀리 했던 판타지와 일본소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지만 먼저 읽었던 분들의 평이 좋아 기대되기도 했던 책이었다.
누구라도 죽음의 순간에선 '살고싶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 않을까? 생각이전에 몸은 살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의 순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로불사의 생을 부여받게 된 젊은 문신사 염마. 일본의 바꾸후 말기에서 쇼와시대에 걸쳐 살아가게 되는 염마의 이야기를 주로 흘러가고 있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시대의 흐름과 에피소드들이 지루하지 않고 빠르게 진행되고 그에 맞춰 등장하는 주변인물들의 캐릭터 또한 매력적이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운명을 자신에게 부여한 스승을 원망하면서도 끝내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가는 문신사 염마 문신사라는 자신의 숙명을 끝까지 지켜낸 염마의 스승 바이코 유년기의 아픈 상처를 간직한 채 금지된 불로불사의 문신을 스스로 새기고 스승에게 버림받은 기쓰키 사랑하는 남자의 여동생이 되었다가 누나로, 다시 어머니, 할머니가 되어가면서도 가슴속에 간직한 사랑을 지켜낸 나쓰
불로불사의 생을 부여받았지만 결국 자신의 선택으로 그 삶을 살아가는 염마와 스스로 불로불사의 문신을 새기고 살아가게 되는 또 한 명의 인물은 상반되는 악한 이미지로 상상했는데 어느 하나 놓을 수 없는 패...같은 이미지? 그리고 그를 지켜주려는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우정, 사랑 그리고 시대의 이야기는 책을읽는 동안 시선을 끌며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을 살면서 주변의 변화를 또는 사랑하던 사람들이 나이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벌써 이런 비슷한 류의 이야기는 2-3권째 읽고 있지만 매번 읽을때 마다 느낌이 새롭다. 자극적인 재미를 주려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인생의 전반에 걸친 변화를 보여주는 책도 있었지만 역사속의 판타지물은 이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되어서 인지 생을 온전히 순응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즐거움을 우리는 망각하며 다른 것들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죽음을 이긴 것이 아니다. 죽음에게 거부를 당한 것이다.... /p391
몇 년을 살건 몇백 년을 살건 어차피 인간이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거기서 거기다. 그저 눈 앞에 닥친 일을 하나하나 해쳐가다 보면 언젠가는 죽어지리라. /p552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라는 말이 떠오른 건 상반된 그들의 입장에서 아무리 생각해본다 한들 그건 생각에 그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의학이 발달하고 평균수명도 늘어가고 있는 요즘 과연 오래 사는것이 좋은것 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번역자의 역량이 독자들로 하여금 글을 읽는 재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걸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읽으면서 매끄러운 글의 흐름이 글 읽는 재미를 더했던 즐거웠던 책읽기. 책의 마무리 즈음 왠지 속편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하는 듯한 흘림들을 나만 캐치한 건 아닐듯 하다. 염마이야기의 속편을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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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인가요?" "네, 불로불사의 묘약."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하자 나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오니즈키 스스로도 사실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 . . "만일 이 세상에 실제로 그런 게 있더라도 드셔서는 안 돼요." 나쓰가 진지한 얼굴로 응했다. "왜요?"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요." <p.208>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소설 공모전 제1회 골든 엘리펀트 상 대상 수상작 <염마 이야기> 한국, 일본, 미국, 중국에서 동시 출간된 이 책은 우연히 손바닥에 신귀 문신을 새기게 된 후 불로불사의 삶을 살게 된 문신사 '염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신사로서 최고의 문신 기술을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명칭 '호쇼' 그 명예로운 이름을 받은 자답게 호쇼 바이코는 어떤 그림을 새겨도 일류로 통한다. 문신을 원하는 의뢰인의 속마음은 제각각이어도 바이코에게 의뢰가 끊기는 일은 없었는데 올해, 왕권을 업고 막부를 지지하는 사바쿠파와 막부를 무너뜨리려는 도바쿠파의 경쟁이 극에달해 험악한 싸움이 끊이질 않아서 그런지 고작 두명의 손님밖에 못받은 그는 시센구미에 쫓겨 큰 상처를 입고 자신의 집앞에 쓰러진 사내를 도와주게된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아마네'라 불리우는 그는 좀체 구경하기 힘든, 호쇼 바이코가 가장 좋아하는 피부를 갖고 있었고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해져 결국 그는 쓰러진 사내의 손에 문신-그 중에서도 불사의 신귀 새김을 하게 된다. 오로지 살고 싶다고 원했기 때문에 불사를 손에 넣었듯 죽어 나자빠지기를 진심으로 원해야만 신귀를 빼낼 수 있는 현실. 죽음에 대해 털끝만큼도 망설임 없는 인간이 어디 있으랴 ~ 아마네 역시 어찌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면서 호쇼 바이코에게 문신 기술을 배우고, 스승으로부터 파문당한 제자, 허리에 야차를 새기고 제 손으로 제 몸에 삼일월, 불사의 문신을 그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되는데 . . .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 ?
늙지도 죽지도 않으면서 영원히 행복해질 수도 없는 그의 일생을 슬프면서도 따뜻하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려냈는데 문신 속 신귀에게 지배당하지 않으면서 인간답게 살고자한 강직함,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끊임 없이 갈등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인간적이면서도 강하게 그려진 것 같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 같다. 불로불사의 인간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한평생 그의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던 노부마사와 나쓰, 고양이 검둥이가 없었다면 너무나도 쓸쓸하고 덧없는 삶이었을 듯 !!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준 것 같다~ 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했던 그가 나쓰의 존재로 인해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변해가는 것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장면 모두가 '살아있는'사람이기에 가능한 감정이기에 더 안타까웠던 듯 ~ 하지만 그의 인생에 내려진 벌(?)같은 것을 짊어지고서 열심히 노력해 한없이 강해진 남자 '염마'. 그런 그이기에 누이를 죽은 야차와 재회하고서도 죽음으로 복수하지 않을 수 있었겠지.
1800년대 중반, 막부 말기에서 시작해서 다이쇼 시대, 쇼와 시대를 거쳐 전쟁 말기인 1945년까지 일본의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늙지 않는 외모때문에 한곳에 오래머물지 못하고 터전을 옮겨야하는 염마 덕분에 교토, 에도(도쿄), 요코하마, 나가사키 등 여러 무대를 역동적으로 거치는데 시대소설로서의 재미는 물론, 판타지 소설로서의 재미, 로드무비 형식도 갖추고 있어 이야기가 지루할 틈이 없더라.
책을 읽는 내내 요즘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불로불사의 삶을 사는 뱀파이어의 이야기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소설 내용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이 책은 그것들을 훨씬 뛰어넘는 재미를 갖추고 있는 듯. 갠적으로 일본소설을 참 좋아하는데 <염마이야기>는 문신사와 문신과 신귀라는 독특한 소재에 살인사건과 로맨스를 정말 '감칠맛'나게 잘 써내려간 것 같아 만족스럽다.
불로불사의 삶을 살게된 문신사 '염마'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 100여 년에 걸쳐 진실한 사랑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냉큼 읽어보시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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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죽어야한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마도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작가인 나카무라 후미는 두 아들의 어머니이자 평범한 전업주부로 글을 써왔다. 염마이야기는 2009년 제 1회 골든 엘리펀트상을 수상하여 4개의 국가에서 동시에 출간되었다.
문신사 호쇼 바이코, 그에게는 두명의 제자가 있다. 주인공인 아마네는 두 번째 제자로 호쇼 바이코라는 영감을 만나 손에 염마라는 신귀새김 문신을 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바이코는 평생 문신사로 살아갈 것을 서약하고 손에 매화꽃 신귀새김을 하게 된다. 가정도 꾸리지 않고 바이코는 호쇼 문신사로 살아간다. 그러나 죽기 전에 자신의 걸작을 남기고 싶어 염마의 손에 불사의 문신을 새기게 된다.
p42 신귀 새김에는 세가지 금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자해, 두 번째는 살해, 세 번째가 ‘죽지 않고 늙지 않는’ 불로불사의 신귀새김이었다. 제 몸을 해치고 싶다는 강한의지를 표명하거나, 사람을 죽이는 일에 일절 망설임 없는 인간이 되고 싶다거나 하는 문신을 의뢰해 오는 자들이 적지 않았지만, 생명과 관련이 있는 주문은 절대로 새겨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불사의 신귀 새김은 특히 엄격했다. 모든 신귀새김은 의뢰자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지만, 불사는 인간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신물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인 것이다.
사쓰마 죠슈의 밀정이었던 아마네는 신센구미대원 모집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친구 오카자키를 만났으나 밀정이라는 신분이 드러나 증오를 받게 된다. 그 일로 싸우다가 피를 흘리게 되지만 염마의 문신을 새긴 아마네는 다치자 마다 자신의 몸 스스로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바이코 영감의 말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된 아마네는 신귀를 빼달라고 하지만 지우는 즉시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원히 살 것인가 당장 죽을 것인가 막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 것임을 안 바이코 영감은 아마네에게 문신을 가르치게 된다. 그리고 제손으로 신귀를 새겨서 남의 목숨을 파먹는 악귀가 되어버린 첫 번째 제자, 야차를 가능하면 염마가 죽여달라고 유언같은 부탁을 하게 된다. 도쿄의 국수집 맞은편 경찰서 앞에서 어린 소녀 히사카 나쓰를 만나게 된다. 염마, 야차, 나쓰는 앞으로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얽히게 될지 상상도 못한채.
염마이야기를 읽어가면서 ‘운명이란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스스로 불사를 선택한 야차, 스승에 의해 불사가 된 염마, 둘은 같은 운명을 가지게 되었지만 전혀 다르게 인생을 풀어간다. 야차는 문신사 외에도 외국서적서점주인, 통역가, 사업가 등의 직업을 가지면서 자신의 스스로 인생을 고독하게 살아간다. 염마는 문신사로 살아가지만 나쓰와 노부마사의 도움과 관심 속에서 살아간다. 염마가 금주의 문신을 새겨준 노부마사는 사례금 없이 내쫓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염마가 필요할 때 도움을 주게 된다. 살면서 명예와 권력을 가지게 된 노부마사는 염마가 필요할 때 항상 도움을 준다. 친구의 딸 나쓰는 처음에는 아저씨, 오빠, 남동생으로 변해가는 염마를 옆에서 항상 지켜주고 사랑해준다. 염마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차는 일년에 한번 사람을 죽여 심장을 태워서 그 가루를 먹으며 살아간다. 야차는 항상 혼자였다.
‘스스로 선택한 사람과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인 사람의 차이인가?’ 아니면 ‘사람은 사람과 살아야한다.’는 이야기인가. 작가가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중에 작가 본인은 어느 것에 더 무게를 두었을까 생각하면서 읽게 되었다. 휴가 나온 동생이 운전하는 차 뒷자리에서 펼치게 된 염마이야기. 집에 도착하여 칭얼거리를 딸래미의 목소리를 살짝 뒤로하고 저녁 9시에 552쪽을 마지막페이지로 읽었다. 장소를 이동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날 내가 저녁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뒷장을 덮고 다시 책표지로 돌아왔다. 트레싱페이퍼같은 책 커버를 벗겨보니 희미한 프린트의 책 표지가 나왔다. 같은 운명이지만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염마와 야차의 인생과 같은 표지였다. 선명함 뒤의 희미함.
‘불로불사가 어떤 삶일까?’ 한번쯤 생각해보신 분들, 그리고 현실에서 벗어나 하루쯤 책에 푹빠져들고픈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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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불사의 능력을 얻게된 주인공. 그래서 가공할 회복력으로 치유를 해서 치명상을 입어도 끄떡이 없다. 그러나 그는 그런 상황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며 일생을 저주의 짐을 진양 살아간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건 축복이 될수도 있었을것 같다. 주인공과 대척점에 있는 악당은 자신의 능력을 얼마든지 이용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위해 파렴치한 일까지 감행하면서 씩씩하게 사는데, 왜 우리 주인공은 정신적으로 이렇게나 유약하기만 한지 이해 불가. 더군다나 서로 사랑하는 그녀에게 자신과 같은 저주를 내리지 않으려 평생을 자신을 억누르며 산다는 것은 상상할수 없는 희생이자 뼈아픈 슬픔이다. 결국 딸같은 아이에서 동생 그리고 누나 뒤이어 어머니로 호칭이 바뀌는 사이가 되어서까지 서로의 마음을 절제하고, 살아간 것은 그들에겐 안타까운 노릇이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