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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님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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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님은 바쁘다.그래서 신작을 쓸 수 없다.그래서 자꾸 10년도 더 된 소설을 다시 써먹는다.그래도 출판사는 개정판을 내면서 초판 인쇄, 초판 발행은 개정판 기준으로 찍는다.모르는 독자는 딱 당하기 쉽다.즐거운 마음으로 그새 두배는 오른 책값을 부담한다.근데 이상하다.글솜씨가 석연찮다.최근작의 반에도 못미친다.두서도 없고, 시차도 불분명하고, 주제가 자꾸 혼동된다.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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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님은 바쁘다.
그래서 신작을 쓸 수 없다.
그래서 자꾸 10년도 더 된 소설을 다시 써먹는다.
그래도 출판사는 개정판을 내면서 초판 인쇄, 초판 발행은 개정판 기준으로 찍는다.
모르는 독자는 딱 당하기 쉽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새 두배는 오른 책값을 부담한다.
근데 이상하다.
글솜씨가 석연찮다.
최근작의 반에도 못미친다.
두서도 없고, 시차도 불분명하고, 주제가 자꾸 혼동된다.
무엇보다 작가가 쓰고싶은 글을 쓰느라 독자에게 불친절하다.
이쯤되면 독자는 의심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바로 뒤 개정판 작가의 말을 보고 말 그대로 말문이 막힌다.

성석제님은 바쁘다.
세계여행도 하고, 수업도 하고, 문학동네 카페에 음식 관련 글도 쓰신다.
성석제님의 모든 것을 동경하고 좋아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새로운 소설 하나쯤은 써주실 때가 되지 않았나?

 

 

s***u 2011.03.21. 신고 공감 1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半을 넘고서 다시 半을 향하는 뻥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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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초의 반인 2.25초가 흘러야 하고     어떤 인생이든 ‘첫’이란 접두사가 붙는 낱말은 쉽게 잊히지 않는 사건이 된다. 첫 눈이 그렇고, 첫 친구가 그렇고, 첫 사랑이 그렇다. 세상과 처음 마주하고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첫’이란 의미가 변하기 마련인데, 무조건 처음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설렘으로 기억하고픈 것이 처음이 된다. 차갑게 와 닿아 보드랍게 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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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초의 반인 2.25초가 흘러야 하고

 

  어떤 인생이든 ‘첫’이란 접두사가 붙는 낱말은 쉽게 잊히지 않는 사건이 된다. 첫 눈이 그렇고, 첫 친구가 그렇고, 첫 사랑이 그렇다. 세상과 처음 마주하고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첫’이란 의미가 변하기 마련인데, 무조건 처음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설렘으로 기억하고픈 것이 처음이 된다. 차갑게 와 닿아 보드랍게 녹아드는 느낌이 피부에 그대로 전달되던 눈이 첫눈이었고, 경계의 눈빛을 접으며 내 손을 잡아주던 조그만 아이가 첫친구였고, 미처 몰랐던 심장박동수의 진동이 실은 꽤나 요란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던 이가 첫사랑이었다.

 

  첫 영화도 그랬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인 줄 알았던 김청기의 <우뢰매> 1탄을 첫 영화로 여겼으나, 세월은 뒤미처 학교 단체 관람으로 만난 <오싱>을 첫영화로 만들게 했다. 우뢰매 책받침도 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열종대로 짝꿍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서로의 바깥 손을 힘차게 들며 도착한 극장 앞, 입구를 장식하던 원색의 포스터, 아이들로 바글바글한 객석, 텔레비전 100대쯤 붙여놓은 듯 넓은 스크린도 기억난다. 무엇보다 정신없이 울던 내가 기억난다. 고작 쌀 한 가마니에 아기 보는 아이로 팔려간 소녀가 날 울게 했다. 식모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소녀가 돈을 훔친 도둑으로 몰려 발가벗겨지고, 할머니가 눈가를 훔치며 식구들 몰래 넣어준 동전이 또르르 굴러 증거물로 둔갑하는 순간, 그야말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짭짤함이 입술을 적셨다. 모든 아이들이 다 목 놓아 울었다.

 

  허나 기억하고픈 것과 기억은 같지 않다. 아이들은 늘씬하게 얻어터지는 악당이 나오지 않는다고 투덜댔고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 아이들의 수군거림은 수군거림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영상은 깨끗하지 않았고 스크린은 텔레비전 50대 수준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변두리 극장 특유의 냄새가 좌석마다 고르게 퍼져 있어 쾌적하게 관람하기란 굿판 옆에서 책을 펼쳐든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도 한 사람에겐 ‘첫’이 장식되던 날이 되었기에 기억한테 자꾸 뻥을 치게 되는 거다. 물론 성석제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에서의 고난도 뻥 기술은 흉내 낼 수 없지만.

 

 

2.25초의 반인 1.125초가 흘러야 하고

 

  “소설가는 어떤 사람인 줄 아니? 순 거짓말쟁이야. 지독하게 거짓말을 잘해서 사람들을 그대로 믿게 만들지. 그러니까 눈물도 콧물도 빼고 그러는 거야.”

 

  이 얼마나 멋진 직업인가. 거짓말, 즉 뻥을 제대로 쳐야 칭찬받는. 국어 선생님의 말은 뻥을 잘 치는 소설가가 훌륭한 소설가임을 짐작하게 했고, 이를 맹신하게 되었고, 이는 아직도 독자로서 소설의 매력을 결정짓게 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한다.

 

  소설가 성석제는 뻥을 잘 친다. 하마터면 속아 넘어갈 뻔했다. 왕을 찾는 척하며 결국은 화자인 원두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은 생의 첫 왕인 마사오가 죽으면서 시작한다. 왕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고향을 방문하려고 버스에 오르는 원두. 위태하면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마는 고불고불 산길을 졸면서 운전한 버스기사처럼 살아온 원두. 어쨌거나 목적지에 다다른 버스처럼 여하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원두. 그는 한때 자신이 섬겼던 마사오에 대한 기억을 수시로 끄집어내며 과거속의 자신과 마주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영웅을 만들어간다. (P. 31)

 

  여기에서도 ‘첫’은 중요하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흠모할 대상을 찾아야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데, 이왕이면 강한 존재여야 한다. 그래야 모델과 동일시하며 자존감을 드높일 수 있을 터. 뭇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원두 또한 마사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며 왕을 동경했다. 동네 양아치를 위협하면서 힘을 과시할 줄밖에 모르는, 아이들이 잡은 구렁이나 가로채는 건달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눈치 챘으나 나의 첫 왕을 망치게 할 순 없는 노릇. 그저 모르는 체하며 한결같이 동경하는 게 수다. 왕을 잃게 되면 원두의 첫 하나가 상실되는 불상사를 겪어야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 고로 곧 왕이 될 영웅이 앉을 의자를 준비하면 이쯤이야 해결할 수 있다.

 

  근거리에서 왕을 지켜보다 얼떨결에 첫 여자까지 얻는다. 남이 바라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한 이후로 더 이상 추녀가 아닌 광자는 원두로 하여금 성에 눈뜨도록 유도한다. 이 책에선 생략된 부분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새엄마 찬양》의 묘사를 빌려 광자는 마흔의 루크레시아로, 원두는 십대 초반의 알폰소로 변신하여 서로를 탐색하는 장면을 그려보았다. 그러자 에로틱한 명화 한 점이 소년의 첫 여자에 대한 기억과 함께 완성되었다.

 

구슬을 가지고 싶었던 시절에는 구슬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왕이었다. (P. 146)

 

  왕의 누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고 왕에 근접한 것은 아니다. 구슬을 많이 살 돈도, 구슬을 딸 실력도 없었으니까. 참, 구슬은 재천이가 쟁여놓고 있었다. 쟁여놓는 실력뿐만 아니라 조지 오웰 소설 《동물농장》의 스퀼러처럼 소문내기에도 능해 언제든 반역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뛰어난 지략가이기도 해 적기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로 갖췄다. 구슬을 힘이나 기술로 많이 딴 게 아니었다.

 

  여하튼 원두는 마사오의 발인까지 지켜보고서 일상으로 복귀하면 되었다. 누가 왕이 되든, 왕의 할아버지가 되든, 죽은 창용이 부활해서 다시 왕을 해먹든 상관없다. 두 번째 왕은 필요치 않았기 때문. 왕의 죽음으로 온전히 시간을 찾은 과거를 이제는 시시때때로 조형하며 기억하고픈 일로 만들 수 있는데 구태여 현재의 번거로움에 섞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촘촘하면 촘촘할수록 그 이야기의 그물을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을. (P. 237)

 

  세상은 원두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재천이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줄 것을 요구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그물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세희나 재천처럼 원두도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들은 마사오라는 거대한 그물에 갇혀 있었다. 그들이 스스로 그물을 직조했다는 것을 모른 채.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왜 망원경을 전망대 한쪽에만 설치하는지 휴게소 주인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망원경만이라도 밝고 어두운 세상 모두에 공평하게 설치해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P. 386)

 

  허와 실로 뒤엉킨 그물 안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네 삶을 원두의 과거를 통해 보여준다. 왕조실록이라도 쓰려는 듯이 마사오의 활동을 나열하고, 과장도 서슴지 않지만 해학적인 문체는 마사오의 일생을 치켜세우는 게 아니라 그를 추종했던 무리까지 깔아뭉개고 있다. 작가는 거미줄 중앙에서 고독하게 먹이를 기다리다 차지할 수 있는 자리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거미들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며 실상은 주목 받지 못하는 날벌레 삶의 안타까움을 말하고 있다. 이는 소설의 마지막 장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럴싸한 풍경 쪽에만 설치된 망원경은 우리의 눈이었다.

 

  왕을 찾기는커녕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해 투레질하는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뻥으로 무장한 작품이다.

 

 

1.125초의 반인 0.5625초가 흘러야 하고

 

  입대를 앞두고 성석제 소설을 처음 만났다. 그러니까 소설집 《새가 되었네》는 내게 있어 성석제표 소설의 ‘첫’이 되는 셈이다. 맨 처음에 실린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읽으며 위안을 얻은 적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거대한 다리가 세워진 이후의 첫 추락자로 기록될 한 남자의 지나치게 긴 4.5초(다리에서 지면까지의 거리를 낙하속도에 비례해 남은 시간)의 넋두리를 듣는 것도 흥미로웠으나, 그보단 각주로 달린 그리스 철학자 제논의 半 이론이 내 인생의 마지막 30여 일을 남겨둔 양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이 야속했던 나를 위무해주었다.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려면 30일의 반인 15일이 지나야 하고, 15일의 반인 7.5일을 지나야 하고, 7.5일의 반인……. 이렇게 반은 수없이 나눠지고, 수없이 나눠지는 반에 이를 수는 없지 않은가.

 

  제논은 순 뻥쟁이였다. 나는 입소했고 실컷 굴러야 했다. 한편 제논이 뻥쟁이라서 다행이었다. 생각해 보라. 전역일에 이르려면 그 반을 먼저 지나야 하고, 그 반의 반을 지나야 한다면!

 

천길 낭떠러지에 선 소나무 가지에 한 손으로 대롱대롱 매달렸을 때 사내 대장부라면 마땅히 그 손을 놓아야 한다. (《새가 되었네》P. 12)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다시 읽었다. 《왕을 찾아서》의 중심 얼개가 드러나 있는 이 단편에서 묘사된 마사오는 다만 힘 좋은 건달일 뿐이었다. 한 발 내딛기 위해선 겁을 유발하는 힘의 원천을 봉쇄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一念의 끝을 놓지 않고 시간을 쪼개며 추락하는 남자(창용)도 제거되어가고 있다. 동승했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청바지(세희)의 증언은 마지막 그를 한낱 조무래기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의당 사나이라면 천길 낭떠러지에서 붙잡은 소나무도 놓아야 하는 법이라고 누누이 강조하던 남자가 무섭다며 엄마를 찾다니!

 

  허위의식으로 똘똘 뭉친,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현시대의 자화상이 죽기 직전에야 드러난다. 그 짧은 시간에 수많은 ‘첫’을 회상하면서 모든 게 한순간임을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우리네 삶. 죽음 또한 ‘첫’이 될 수 있을까.

 

  청카바(재천)와 청바지는 세트로 입어야 예쁘다는 것을 깨닫게 하며 단편도, 장편도 마지막에 이른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반의 반의 반을 부풀릴 수 있는 베이킹파우더를 가진 작가는 제논 못지않은 뻥쟁이니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a*****4 2011.04.24. 신고 공감 8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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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과 풍자소설을 넘나들며 권력의 허상을 묘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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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하나로 지역을 지배할 수 있는 지방 소도시. 그곳에서 주먹 하나로 왕으로 군림한 마사오라는 인물이 있다. 성이 마씨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다. 본명은 있으나 그는 마사오라는 고유명사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그 지역에서 그와 같이 정치, 외교, 국방, 의료, 사회적으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헌병도 경찰도 때려눕힌 과거의 전력이 있지만 그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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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하나로 지역을 지배할 수 있는 지방 소도시. 그곳에서 주먹 하나로 왕으로 군림한 마사오라는 인물이 있다. 성이 마씨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다. 본명은 있으나 그는 마사오라는 고유명사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그 지역에서 그와 같이 정치, 외교, 국방, 의료, 사회적으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헌병도 경찰도 때려눕힌 과거의 전력이 있지만 그 위에 수많은 소문이 셀 수 없이 덧칠해진 그는 살아있는 신화이자 전설이다. 그의 주변에 몰려있는 박치기왕, 발차기왕, 아동문학가로 위장한 은둔 주먹 등 마치 주몽을 호위하는 오이, 마리 협부 같은 역할을 하니 신화로서의 구색을 제법 갖추었고, 그의 존재 자체가 살아있는 증거이므로 전설이라 불릴 수 있는 조건도 갖추었다. 


그랬던 마사오가 죽었다. 심지어 자살이라는 풍문도 있다. 왕이었던 이의 부음을 듣고 서술자이자 작품 속 인물인 '장원두'가 고향으로 내려가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마사오가 떠난 그 지역은 원두와 한날한시에 태어난 친구 '박재천'이 장악하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타고난 입담으로 주변 분위기를 자기 중심으로 만드는 데 탁월했고, 타고난 덩치까지 갖추었으니 그야말로 건달 맞춤형 인재랄까. 속된 말로 건달세계에서는 '구라'와 '와꾸'를 겸비한 문무겸비의 존재인 셈이다. 사실 싸움 자체는 잘 하지 못하지만 그는 지역사회에서 무엇보다 '소문'이 가지는 힘을 잘 알았기에 그것을 교묘하게 잘 이용했다. 


기존의 왕을 몰아내고 자기가 모든 것을 가지려 했던 조창용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마사오를 함정으로 유인하고 옭아맨 것도 재천이었고, 다시 조창용을 제거하기 위해 수작을 꾸민 것도 재천이다. 그리고 마사오의 위명을 기억하는 이들을, 외부 자본에 맞선 지역 수호라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결집시켜 자신의 지역 내 경쟁상대인 황포를 제거하는 과정까지를 모두 지켜본 원두는 친구의 기만과 거짓, 허위를 보면서 비로소 권력이라고 부르는 것의 허상을 체감하게 된다. 진정한 왕은 없다. 자신이 상상 속에서, 상상이 덧입혀진 과거 속에서나 존재할 뿐, 사람들은 저마다 필요에 의해 왕을 만들고 스스로 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 자신이 평생 사랑해왔지만 재천에게 빼앗겼고, 그에 의해 창용에게 바쳐졌다가, 다시 재천의 차지가 된 세희가 있다. 조폭물에 흔히 등장하는 가녀리고 하얀 비련의 여주인공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결코 아니다. 그녀의 눈부신 외모를 탐하며 달려든 모든 남자들이 자신에게 존경을 표하게끔 하기 위해 그녀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러자면 자신의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그래서 남자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닌 게 아니라 지역 내 최강이 될 만한 남자를 스스로 선택한 셈이 된다. 황포를 제거하고 피묻은 양복을 입은 재천 옆에서 그에게 어울리는 웃음을 짓고 있는 세희를 보며 '그녀에게는 아무리 많은 사내를 겪어도 곧 복원되는 신비한 처녀성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그때까지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유년의 세계에서 분리되어 나온다. 


권력이란 그렇게 위선과 허위로 가득찬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고향을 떠나오는 과정을 통해 이 작품이 한편의 성장 소설의 구조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96년에 초판된 발표 시점과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군부독재의 잔재에 대한 냉소를 통해 당대 권력을 풍자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읽어낼 수 있다. 마사오의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 주변을 둘러싼 이들의 거짓 이름, 재천이 한 단계, 한 단계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등에서 읽히는 권력의 허상을 작가 특유의 풍자와 농담으로 버무려 놓은 성장 소설이자 풍자 소설, <왕을 찾아서>이다. 



s*************k 2020.10.21.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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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理性)이 외면한 정말의 진실들이 소용돌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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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살아가다보면 절로 보이고, 느껴지고, 그래서 깨우쳐지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사회의 속성이란 것이 있다. 때론 그것이 역겹고 부조리해서 독설을 담아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게 어디 보이는 것이 아닌 까닭에 거대한 에피스테메가 된 담론적 질서에 종속된 사람들로부터 동의를 받거나 변화를 기대하기란 역사의 진실을 보더라도 가능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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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살아가다보면 절로 보이고, 느껴지고, 그래서 깨우쳐지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사회의 속성이란 것이 있다. 때론 그것이 역겹고 부조리해서 독설을 담아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게 어디 보이는 것이 아닌 까닭에 거대한 에피스테메가 된 담론적 질서에 종속된 사람들로부터 동의를 받거나 변화를 기대하기란 역사의 진실을 보더라도 가능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아예 단절된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속내를 태우지만 나 같이 이러한 현실에 얽혀 발을 빼내기가 어려운 범인(凡人)들로서는 이도 실행한다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닐뿐더러 아예 겉으로 내색조차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 실상이다.


그래서 삶을 살아가는 내내 타자와 세상에 냉소를 보내고 군중 속에서 홀로 은둔하는 불편함을 인생이려니 하고 감수한다. 내가 바로 타자들의 그것인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러자니 만나는 오래된 벗들이나 동료들을 청중으로 하여, 내 불운한 인생 이야기, “냉소의 부산물인 추억의 납덩어리”를 소설 속 화자인‘장원두’란 인물처럼 풀어 놓곤 하는데, 그러하다 보면 어린 시절인 오래 전의 시대로 훌쩍 넘어가버린다. 그럼 그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나 인생에 첫 대면했던 자극적이고 진기했던 사건들이 줄줄이 잠긴 기억의 사슬을 풀고 쏟아져 나온다. 다만 내겐 이 소설 속 화자처럼 현실의 가까운 거리에‘마사오(正夫)’같은 신화적 인물, 마음의 영웅이 존재하지 않았고, 또한 그 후계자를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기에 어른이 된 어느 시기에 이르러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는 의식(儀式) 같은 거추장스런 부담이나 회한의 시간이 불필요했다. 물론 숭배할만한 지배 권력에 익히 예속되어 그 안에서 평온을 누리던 사람들이 굳게 믿었던 신화가 깨지고 역사의 시대, 새로운 권력의 다른 습관을 인식하게 되면 냉소적이었던 자신조차도 그 물에 놀던 물고기인지라 추억을 되씹는 것은 도리가 없는 일이긴 할 것이겠지만.


화자(話者)는 자신의 성장기 내내 마음 속 왕이었던 고향지역의 거리가 낳은 최초의 건달, 싸움꾼, 깡패이자 “지역의 평온과 질서를 유지하는 경찰, 재판관, 시장, 의원, 언론인, 배우의 기능을 겸한 위대한 인물”이었던 영웅인‘마사오’를 신성한 권력의 한 모습으로 그려낸다. 소설은 이 신화의 스러짐을 기점으로 시간을 과거로 돌리는데, 그래서 그 시간 속에 기록되는 것들은 어차피 이미 진행되어버려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화자의 고향인‘지역’으로 상징되는 공간 역시 회오리바람과 비안개로 뿌옇게 가려져 보이지 않는 곳이어서 현실인 지금과는 다른 시공간처럼 보인다. 추억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이처럼 삶의 경계가 다른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이 경계가 다른 세상이 우리네들의 세상이 아니란 것이 아니라 이제 이러한 세상과는 단절하거나 아니, 안개 낀 흐릿한 어둠에서 밝은 햇살이 빛나는 화창한 세계, 즉 변화된 세계로 연결하려는 의미일 게다.


‘나’, ‘장원두’와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지역의 친구, ‘재천’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뚜렷이 다른 행동양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역의 구성원인 군상들이 맺는 관계와 그 관계의 의미, 지역을 지배하는 권력양태의 변천과 속성을 소위 “중앙이나 제도권 언론에서는 도저히 취재할 수 없는 것, 무시하고 포기하는 진실, 예상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사실인 것, 다룰 수 없는 역사를 폭넓게 다루는”소문이라는 풍부하고 설득력 있는 형식에 담아 그것들의 여과 없는 모습을 그려 낸다. 이것은 다름 아닌 국민적 망각에 숨겨진 것들, 인간의 이성이 무능력을 나타내는 것들을 여지없이,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것 아니겠는가?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를 참지 못하며, 평범한 것에는 만족할 줄 모르는‘재천’이 비범해지기 위해 발달시킨 달변의 혀와 웃는 표정 뒤의 야비함과 폭력성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머뭇거리기만 하는 ‘나’와 대조되어 오늘을 사는 기형화된 우리들을 투사하고 있다. 이처럼 삶을 기술화시킨 사회의 양태는 ‘나’의 짝사랑 연인이었으나 ‘재천’의 처가 된 ‘세희’를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과 매력으로 남성을 정복할 일방적 거리를 아는 여성의 본능적인 남성관, 모였다하면 재야 정치가, 재야 경제인, 재야 지식인, 재야 천재화가, 그리고 지역을 대표하는 민주투사로 변신하는 소시민들의 졸렬함, 권력자 가까이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단련시킨 아첨을 아첨 같지 않게 하는 핵심기술, 그래서 “걸레 사이에 낀 먼지처럼 거짓말이 섞인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인간사회, 바로 소설 속‘지역’은 축소판 한국 사회, 편협하고 패거리를 짜내고, 보잘것없음에도 비범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의 무식한 욕망이 들끓는 곳, 그런 곳이 된다.


이제 경계너머‘지역’의 시간과 공간성은 멸실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자신 이외의 모든 타자는 단지 이용되어야 할 대상이 되고 마는 세상, 그렇게 해서 수중에 넣은 권력에 무슨 행복과 진실이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거침없이 타자를 극복할 대상으로만 가르친다. 그래서 모두 성공, 출세라는 말이 지닌 본성을 이해하려하지 않는다. 야합과 적만이 존재하는 사회를 인식하는 것은 냉소가 아니다. 아니 설혹 “힘없고 가난한 자에게 신이 내려준” 도구가 냉소라고 비하하려 할지언정 우린 ‘장원두’의 ‘지역’같은 사회에는 분명 밝음이 무엇인지, 화창함이 무엇인지, 빛을 느끼게 해주어야만 할게다. 너무 밝아서 모든 것이 드러날 정도로 투명한 세상, 바로 그런 것이 진짜 삶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역사로 말하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들, 우리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지워버릴 수 없는 바로 우리가 무능력을 보이는 내면화된 삶의 어두운 풍속의 속성, 우리사회가 흘러가고 있는 주류적인 그것들, 익숙한 그것들을 전복하거나 변형하는 힘이 소용돌이치게 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마사오’는 ‘나’의 마음속 가장 오래된 영토를 지배하는 영원한 영웅, 왕이 아니었을까?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울분을 이해했던 돌발점에서의 반항이요, 용기요, 자유요, 새로움이 바로 그였기에. 시니컬한 재치로 버무려진 맛깔스런 이야기 속에 부패하고 안일한 우리의 내부를 강하게 두들겨대고 이탈을 촉구하는 의외의 목소리가 담긴 작품이다. 문득 나도 마사오같은 인물, 비감(悲感)하게 생을 마친 바보 대통령, 그가 내 마음에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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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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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이 나왔다는 말에 없던 호기심이 생긴 책이다.  얼마나 재미있길래 개정판이 나왔을까 생각하며 낚이지는 않을것 같은 만족감에 골랐던 책이다.  이 책은 남자아이가 남자로 커가는 과정을 그려낸 성장소설이라고 말해도 무난할 듯 싶다.  위인전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주인공의 어린시절 위인이었던 어느 한 남자의 장례식을 가며 추억에 잠기는 내용이다.  장례식은 길어야 2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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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이 나왔다는 말에 없던 호기심이 생긴 책이다.  얼마나 재미있길래 개정판이 나왔을까 생각하며 낚이지는 않을것 같은 만족감에 골랐던 책이다.  이 책은 남자아이가 남자로 커가는 과정을 그려낸 성장소설이라고 말해도 무난할 듯 싶다.  위인전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주인공의 어린시절 위인이었던 어느 한 남자의 장례식을 가며 추억에 잠기는 내용이다.  장례식은 길어야 2박3일 정도지만 몇십년을 아우르는 시간여행까지 하게되는 재미도 있다.  난 늘 궁금하기도 했다.  언니만 넷을 가졌고, 학교도 여자만 다니는 학교를 다닌터라 늘 남자들의 성장기가 궁금하긴 했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환경속에 성장한 여자들은 그럴것 같기도 할터.  남편도 가끔 추억의 단편을 꺼내주기도 하지만, 내게 들려주는 추억엔 왠지 엄청난 편집이 가해져있는 느낌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적나라한 그들만의 세계인지 난 늘 궁금하고 목말랐다.  아 그렇지.  한때 흥행했었던 <친구>라는 영화도 충격적이기는 했다.  비록 폭력배 이야기라 끔찍한것도 있었지만 어느정도 그들의 내면이 파악되기도 했다.  그런 맥락으로 보자면 이 책 역시 <친구>라는 영화와 거의 흡사하다.

책표지에 가끔 감동하기도 하는 나는 이번 책표지에도 슬픔을 느꼈다.  아무 이유없이 책표지에 아무그림이나 막무가내로 넣지는 않을것 아닌가!  맨발의 남자는 왕을 위하여 술과 안주를 준비했나보다.  비닐봉지에 들은 술과 북어.  비를 맞으며 부재중인 왕의 의자에 우산을 씌어주고 있는 그림은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이 영웅을 잃고 느꼈을 상실감을 느끼게 했다.  빗물은 그의 눈물이리라.

마사오라는 인물은 혼자 떠오르는 태양이었다고 한다.  스스로 떠올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는 그는 모두의 영원한 왕이었다고 한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왕, 그리고 공정한 왕, 작은 도시에 꼭 한명은 있을법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죽자 권력의 빈자리를 향해 제2,제3의 인물들의 난투극이 벌어지는데 그 제 2의인물과 제 3의 인물과 함께하는 추억여행이 그것이다.  책의 말을 인용하자면, 장례식장에 가기전 추억하고, 버스에 타면서 추억하고, 휴게소에서 쉬면서 추억하고, 밥을 먹으면서 추억하고, 친구를 만나면서 추억하고, 장례식장 들어서며 추억하고, 첫사랑을 만나면서 추억하고, 택시를 타면서 추억하고 술을 마시면서 추억하고, 잠자면서 추억하고, 추억하고, 추억하고 또 추억한다. 

쌍둥이도 아니건만 한날 한시에 태어난, 뱀의 혓바닥을 가진 친구에 대해서도, 무식하리만치 생각은 하지않고 팔뚝만 굵고 의리가 있던 친구에 대해서도, 그의 첫사랑에 대해서도, 그의 두번째 사랑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추억은 사실 볼만하다.  남의 인생을 살짝 엿보는 기분이랄까?  나에게도 있는것을 확인시켜준 관음증을 자가진단 할수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작은마을에서 벌어진 권력난투극은 진지하고도 싱겁게 끝났지만, 허탈한 마음을 감출수도 없는게, 주인공은 너무나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인공은 마사오 같은 인물이어야 하지않나, 아직도 나는 마사오와 같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원하고 있는것은 아닌가를 잠시 생각에 빠지게도 만들었다.  주인공이 꼭 영웅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난 언제부턴가 주인공은 그 어느곳에서도 주인공감이 되어야만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허탈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편견을 깨주기도 한 주인공인것 같다. 

추억이란 참 소중하다.  나도 어릴적의 추억이 참 소중하다.  엄마에게 맞은 기억까지 소중하다.  주인공은 내가 겪지 못한 아주 많은 일을 대신 겪고 내게 말해주었다.  수많은 추억들이 주인공과 함께 영원히 푸르렀으면 좋겠다.  그 당시에는 괴롭고 힘들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빛을 발하는것은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인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힘들고 지치고 괴롭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시 떠올릴수 있을 것이다.  난 이책이 추억이 너무 많아 에피소드들은 재미있었지만, 현재진행형인 사건들이 너무 없어 살짝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추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미묘한 힘이 있는 책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띄어지기도 한다. 

작가의 거침없는 표현들이 걸작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나 나올법한 거침없는 육두문자와 거침없는 생 날것의 표현들은 보기 역겹다기 보다 왠지 즐거웠다.  너무나 적나라한 표현에 작가소개에 나온 작가의 얼굴을 몇번씩이나 보게할 정도다.  아주 좋으신 분같기도 ...

l*******1 2011.04.07. 신고 공감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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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가슴 속에 담긴 영원한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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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동시대 같은 공간을 공유한 사람이라서 책을 만나는 시간이 낯설지가 않다. 우리들 성장기에 흔히 있었던 인물을 소재로 했고, 그 배경이 되는 내용들이 쉽게 인지되는 흔적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산간 마을, 그리고 어린 아이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만들던 어른의 이야기는 공유되는 바가 많다. 더러는 호기심에, 더러는 무서움에, 더러는 혐오감에 만나지던 마을의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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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동시대 같은 공간을 공유한 사람이라서 책을 만나는 시간이 낯설지가 않다. 우리들 성장기에 흔히 있었던 인물을 소재로 했고, 그 배경이 되는 내용들이 쉽게 인지되는 흔적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산간 마을, 그리고 어린 아이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만들던 어른의 이야기는 공유되는 바가 많다. 더러는 호기심에, 더러는 무서움에, 더러는 혐오감에 만나지던 마을의 특별한 존재에 관한 이야기는 지난 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난 이 책을 읽어가면서 주인공 마사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그 많았던 나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보았다. 그들을 살아 내 뇌리에 재각인 되고, 기억의 편린들로 머물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나의 이야기들과 함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를 떠올렸다. 이문열은 ‘일그러진’이라고 그 의미를 명쾌하게 제시했으나 성석제는 그러지 않았다. 성석제에게는 그 영웅이 문맥상 일그러질 필요가 없었던 듯하다. 영웅의 삶 그 자체가 그런 면모로 다가오고 있으니까. 작은 시골에서 홀로 거침없는 길을 걸어 나간, 그것도 구시대의 폭력을 보여주는 모습은 어쩌면 동경과 허상이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김두한이 자꾸 떠올랐다. 그의 조직과는 상관없는 개인의 능력으로 무수한 힘에 맞섰던, 그리고 좌절해간 그의 모습은 주인공 마사오와 많이 닮았다. 아무리 자신의 뜻이 옳고, 그 행동이 바르다고 할지라도 폭력과 개인의 힘은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주인공의 낭만적인 주먹을 통해 우리는 체득하게 된다.


이야기는 마사오의 죽음을 전해들은 내가 어릴 적 고향을 찾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곳에는 유년의 많은 나의 이야기가 친구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그 작은 이야기들이 바닥 그림이 되면서 왕의 별칭을 얻은 마사오의 기억을 기록해 나간다. 마을 사람들에게 경계의 대상으로, 아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으로 그의 싸움 기술은 그려져 나온다. 그는 그 마을 주변에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다. 그는 힘이 있었고, 그 힘은 그를 고을의 유지가 되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그 고을에선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최고가 되어 있었다. 또한 법외의 심판관이 되어 있었다. 권력도 그를 어찌할 수 없는 주먹을 가진 존재가 되어, 고을을 좌우해 나가는 모양새를 지녔다.


그런 그를 걸림돌로 인식하는 존재가 고을에 나타난다. 그 지역에서 성장하고, 조직의 힘을 아는 창용이란 자다. 그는 마을의 젊은이들이 한 때 좋아했던 여인인 세희와 눈이 맞아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대처에 나가 주먹 조직에 속하게 되고, 다시 고을로 돌아온다. 또 고을에서 힘깨나 사용하던 재천과 황포라는 자들을 교묘한 방법을 사용해서 휘하로 거느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힘을 빌려 마사오에게 도전한다. 마사오는 이미 늙은 입장에서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들이 조직의 힘을 사용해 마사오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를 무능하게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러한 내용이 나의 마사오 빈소 방문과 옛 기억을 통해서 자세하게 전달된다. 그리고 나의 기억들도 양념처럼 이야기들 속에 섞여 제시된다.


이야기는 낭만적인 주먹이 지니는 한계와 그의 삶이 보여주는 영웅성이다. 그는 신화적인 힘을 이용해 개인적으로 제도권 밖의 재판관 역할을 감당한 권력이다. 그런데 그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개인의 힘은 한계가 있고, 개인으로서는 그의 힘이 출중할 지라도 단체와의 경쟁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를 꺾은 창용도 시간과 힘의 논리에 의해 무너져 가야만 하는 속성을 보여 준다. 이것은 주먹이 가지는 부정성의 인식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이 제도권 밖이라면 그들이 가지는 속성은 싸움과 몰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힘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자들의 긍정적인 인식과 제도권에 소속되는 일이리라 생각된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가 말하기도 했지만 이 이야기는 허구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에 큰 선망이 되고 꿈꾸게 만들었던 기억의 편린이기도 하다. 개연성이 충분히 있는 이야기란 뜻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기억 속에 침잠하는 기회를 가졌다. 마을에서 힘깨나 쓰던 자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내용들이다. 힘이란 그것이 무엇이든지 어린 아이들에겐 소망이 된다. 이 책은 그런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 힘의 속성이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밝혀보고 있는 글이다. 공감하면서 잘 읽었다. 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동시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 작가의 글이라, 부분부분 제시된 내용들이 밀도 있게 다가들었다. 글 속에서 나의 마사오도 함께 활동을 하고 있었다.



<화자의 기억 속 마사오>


내 마음의 가장 오랜 영토를 지배하는 왕, 우리들의 영웅......그는 그렇게 고전적인 싸움꾼이었다. 그는 가난과 불의, 불평등에 시달리던 모든 이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제도권 밖에 머물렀다. 그의 힘은 한계가 있었다. 그는 우리들만의 왕이었다. 아쉽게도 그는 우리들만의 왕이었다. 그는 폭력적인 권력 앞에 조용히 자신을 내려놓은 우리들이었다.  



j****3 2011.03.29. 신고 공감 4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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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려움이 보통 사람을 영웅으로 만든다.-『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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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갓 들어온 신입사원이었던 그는 한 달 반을 견디다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꽤 좋은 학부의 대학원을 졸업한 상태였다. 20대 초반의 그 녀석은 단연 눈에 띄었고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전 직원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는 그 날 낮부터 직원들-정확히 말하자면 간부들-에게 표적이 되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당연한 에티켓을 그는 지키지 않아서라는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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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갓 들어온 신입사원이었던 그는 한 달 반을 견디다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꽤 좋은 학부의 대학원을 졸업한 상태였다.
20대 초반의 그 녀석은 단연 눈에 띄었고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전 직원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는 그 날 낮부터 직원들-정확히 말하자면 간부들-에게 표적이 되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당연한 에티켓을 그는 지키지 않아서라는 참으로 간단명료한 이유였으니 내막을 알고 나면 치사하기 이를 데 없다. 점심시간에 상사가 먼저 숟가락을 들지도 않았는데 혼자 달걀뚝배기에 숟가락을 푹 넣어 먹는가 하면 “점심엔 뭐 먹을까” 하는 말에 한치의 양보나 살피는 기색도 없이 본인이 먹고 싶은 음식을 거침없이 주문했다.
대부분은 부장이나 과장이 선점한 음식을 따라 먹게 되는 풍토가 당시에 지배적이었다.
사실 사소한 결렬들은 아주 작은 틈에서 비롯되지 않은가.
 
마사오의 죽음으로 촉발된 예기치 않은 다양한 인물들의 출현과 새로운 갈등들은 이미 예견되어 있는 수순이다. 작가 성석제 특유의 걸죽한 입담과 맛깔스런 해학으로 버무려진 이번 소설집은 지금 우리 시대가 갖는 희망이라고 할까 탈출구가 과연 있는가 하는 기본적인 물음과 질문에서 시작된다. 한 시대가 고하고 새로운 변혁의 시기가 찾아올 때 우리가 기본적으로 느끼는 것은 아마 불안감과 극도의 시대와의 불화일 것이다.
여기 모인 각양각색의 변두리 인물들은 과연 그 권력과 포악의 시대에 무엇으로 맞섰을까.
 
“희망은 ‘모든 것’이 아니라 드물기 때문에 희망이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에 대한 바람이어서 희망이다. 악과 부덕과 불운이 넘치도록 많은 세상이어서 희망이 귀한 것이다.”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中 문학동네 P.186
 
작가가 많이 들여다 보이는 이 글은 등장인물들의 이름들과 이중으로 상기되는 그 이름에서 비롯될 것이다. 마사오도 그렇고 성문종, 최고리, 박재천이 바로 그러한 인물들이다.
여기에서 전개되는 많은 이야기 구조들은 사실 너무 평범한 작은 일에서 촉발된다.
왕을 찾아서는 권력을 찾아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던가.
수 많은 인물들의 갖가기 기기묘묘한 이야기나 도저히 언어로는 따라잡기 힘들 것 같은 성석제만의 문장은 녹슬지 않아서 책에 속도감이 붙었다. 그리고 쉽고 빠르게 읽혔던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읽고 나니 우울하고 음습한 기운이 드는 건 비단 나뿐일까.
이 시대의 많은 권력자들은 아직도 수 많은 부를 누리며 호사를 누리고 있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살아가는 이에게는 뼈 아픈 아픔만이 남고 마사오는 평민들에게 우상으로 각인된다. 살인도 쉽고 폭력도 정당화된다. 그 사이에 이루어진 수 많은 겹겹의 이야기들은 의도된 결말의 완결을 향해 질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지점이 무척 아쉽다. 실제로 등장하는 인물이라는 설정 하나와 완벽한 허구의 이야기라는 자각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에 책을 읽다가 드문드문 드는 인물들의 연결고리는 빈약해 보이기도 했다.
 
“재천이는 뭘 하지?”
“누구?”
“박재천. 걔가 지금 지역에서는 왕 노릇을 한다면서?”
“왕은 또 뭬이고, 좆도.” P. 145
 
인간은 참으로 이중적인 인격체이고 쓰레기이다. 자본의 시대에 매몰되면서 더욱 더 심화된 이런 소설 속의 캐릭터들에겐 멸시와 비굴만 남아 있는 줄 알았다.
성석제는 뻔한 이야기를 너무 나열하는 식으로 적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의 소설집을 전부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작가의 책들을 모조리 파헤져 읽어 보았다.
문장이 달라졌고 사람이 변한 것 같다.
 
작가도 소설 속 인물들도 조금은 독해진 것 같다.
왕이 사라진 빈 자리에 쓸쓸함이 고인다.
소설은 그 시대를 비추는 칼날이라고 한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인간은 어떠한 경계 안에서 늘 경계 밖을 주시하다가 결국 경계 안으로 편입되어진 채 살아간다는 것을 눈물겹게 말하고 있다.
 
우리를 도울 이(권력)는 멀리 있고 내 눈물(마사오)를 닦아 줄 이는 가까이 있어 늘 우리는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간직한 마사오 같은 영웅을 좇는 것은 아닐까....
늘 사는 게 팍팍하고 힘들어하는 대학 후배에게 이 책을 보내련다.
사는 게 힘들지? 라는 말보다 라이트 훅 한 방이 우리 영혼을 이 책이 깨워 줄 것이다.
 
<환한 대낮인데
어디선가 나도 모르는 곳에서
흐느끼는 내 울음소리를 듣는다
 
칼날 위에서조차
차마 나에게조차 할 수 없었던 말들
 
텅 빈 방 그 낯선 시간들 속에서
소스라쳐 깨어나 홀로 울고 있을
전화벨 소리를 듣는다
 
어떤 바람이 죽음을 감춘 낡은 집을 덮고
새들
북쪽 우러러 일제히 날아간 뒤
그 위로 떠오르리라
나 지쳐 돌아가 누울 곳
일곱별자리 北斗 >


박영근 시인 詩 <北斗> 전문


나를 위로해 준 『왕을 찾아서』는 내 직장 동료들과도 나누고 싶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인생에서 북두의 주변에서 살아간다.
모두가 북두를 꿈꾸지만 언젠가 우리에겐 두려움이 사라졌다.
사는 일에 몰두할 때 우리가 잊고 사는 원형적인 진실을 담백하고 굵게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k******r 2011.06.2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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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왕을 찾아서] - 왕은 사라져도 군림(君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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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칠땐 건달 이야기였고 덮을땐 어쨌든 왕 이야기였다. 30년간 지역의 건달계를 평정했던 마사오가 어떻게 장원두, 조창용, 박재천같은 아이들의 왕으로 군림하게 됐는지, 또 그 아이들은 어떻게 마사오의 왕국에서 성장했는지, 왜 왕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했는지를 그리고 있다. 마사오의 죽음은 장원두를 '왕을 찾는 여정'으로 이끈다. 장원두의 오래된 기억과 출처를 알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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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펼칠땐 건달 이야기였고 덮을땐 어쨌든 왕 이야기였다. 30년간 지역의 건달계를 평정했던 마사오가 어떻게 장원두, 조창용, 박재천같은 아이들의 왕으로 군림하게 됐는지, 또 그 아이들은 어떻게 마사오의 왕국에서 성장했는지, 왜 왕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했는지를 그리고 있다. 마사오의 죽음은 장원두를 '왕을 찾는 여정'으로 이끈다. 장원두의 오래된 기억과 출처를 알 수 없는 부풀려진 소문들을 비집고 다니다 보면 우리 각자의 왕을 만나게 된다. 

 

 <왕을 찾아서>는 나와 당신의 유년에서 가장 빛나는 왕의 유품을 발굴해낼 수 있도록 돕는다. 비록 유년의 유물이 시간의 켜에 묻혀 장년에 이르면 용도가 전혀 다른 유물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그것이 왕권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기만 한다면. 기억과 소문이 사실과 다르다해도.

 

 내가 여섯 살이던 여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선친께서 남겨주신 유일한 유산은 책. 딱따구리 그레이트 북스 100권과 세로쓰기로 된 철학인문서 100권. 아버지의 얼굴도, 웃음소리도, 따뜻한 손길도 너무 아득해서 도무지 기억할 수 없는 나로서는 남겨진 책을 보면서 선친을 그려보곤 했다. 그나마 때때로 어머니, 누나, 형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었다. 어린 자식들에게 자주 하셨던 말씀은 '책을 많이 읽어라, 검소하게 생활하고 꼭 저축하라' 였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를 책과 저축으로 기억한다. 그것은 내 인생 첫번째 왕의 통치지침이며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을 버릴 마음이 없다.

 

 왕의 법령은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내게 여전히 유효하다. 왕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군림(君臨)한다.

 

 지리적으로 화와이는 미국 본토와는 뚝 떨어져 있다. 거리상으로는 캐나다와 멕시코가 미국의 영역에 포함될 가능성이 더 높지만 캐나다는 캐나다, 멕시코는 멕시코일 뿐 미국과는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위치상 바다가 가로막고 있어 본토와는 고립된 섬이지만 화와이 여전히 미국의 영역이다. 

 

 국가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통치권의 도달 여부다. <왕을 찾아서>의 장원두가 지역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해도, 지난 5년 동안 지역에는 발걸음 한 번 하지 않았다 해도 마사오의 통치는 유효하고 장원두는 마사오의 백성이다. 어떤 장소가 되었든 왕의 지배력이 미치는 곳이라면 혹 왕이 부재중-부재의 기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해도-이라 하더라도 왕의 영역이다. 

 

 내가 왕을 부정하고 멀리 떠난다고 왕국의 영역을 벗어날 순 없다. 심지어 왕을 쫓아내고 스스로 새 왕이 된 자 조차도 이전의 왕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창용처럼 마사오를 힘으로 제압했다고 해서, 박재천처럼 마사오를 이용해서 제 욕심을 채운다고 해서 마사오의 백성마저 자신의 백성으로 만들 순 없기 때문이다. 왕을 선택하는 것은 왕에게 있지 않고 백성에게 있다. 그런 백성들에게 새 왕의 통치력이 미칠 리 없다. 백성의 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죽은 마사오가 산 박재천을 능가하는 이유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이니 사람이 없으면 다스릴 백성이 없는 것이고 백성이 없는데 왕은 무슨 왕. <왕을 찾아서> 290p

 

 무엇이 왕을 탄생시키는 것일까? 어쩌면 욕망이 아닐까?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지점에 어장이 형성되는 것처럼 왕이 되고 싶은 욕망과 왕을 모시고 싶은 욕망의 경계에서 수많은 왕의 신화가 산란되고 있지는 않을까? 

 

 먹장구름 빗 속을 뚫고 맨발로 달려가 알현하려 했던 왕은 빈 왕좌만 남겨둔 채 어디로 갔단 말인가? 표지의 텅빈 왕좌처럼 왕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스스로 이미 인생의 주인이며 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왕이 필요하다. 인생의 바다에서 북극성처럼 반짝이며 항로를 이끌어 줄 왕, 사라져도 군림하는 왕을 찾아 나서자. 어디가 되었든 왕이 있는 곳은 눈부시도록 화창할테니까. 

 

고개 정상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지역은 여전히 회오리 바람과 함께 피어오르는 비안개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반대편은 눈부시도록 화창하다. <왕을 찾아서> 386p



k*****i 2011.03.31.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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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세계의 흐름을 유쾌,통쾌,씁쓸,보복,처연,싸늘함등으로 점철된 성석제작가의 끊이지 않은 입담과 다양한 어휘가 총동원되어 그 세계의 내면과 심리 세계를 일괄적으로 알아가는데 더할 나위가 없었다.갱,마피아,야쿠자,조폭등으로 알려진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이면서도 왕성한 번식력과 영역 다툼,이권 개입,밀고 당기는 모습들이 쉼없이 흘러가는 한 폭의 강줄기와 같았다.또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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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세계의 흐름을 유쾌,통쾌,씁쓸,보복,처연,싸늘함등으로 점철된 성석제작가의 끊이지 않은 입담과 다양한 어휘가 총동원되어 그 세계의 내면과 심리 세계를 일괄적으로 알아가는데 더할 나위가 없었다.갱,마피아,야쿠자,조폭등으로 알려진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이면서도 왕성한 번식력과 영역 다툼,이권 개입,밀고 당기는 모습들이 쉼없이 흘러가는 한 폭의 강줄기와 같았다.또한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뚜렷한 개성과 가치관,적자 생존의 법칙까지를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마사오의 장례식에 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유신조,마사오,조창용,박재천으로 권력이 이동하고 중간에 양념으로 나오는 미쓰코,세희라는 여인은 나름대로 글의 건조함을 달래주는 역할도 했는데 세희의 파란 만장한 인생과 그녀 나름대로의 삶의 목표가 있음에 인상적으로 다가왔다.마사오,유신조 두 명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일제 강점기때 일본 세력에 아부하며 살아왔던 마사오의 가정은 해방과 동시에 가정은 몰락해 가고 마사오는 그 나름대로의 삶을 지키고 살아가는 법을 갖추기 위해 주먹과 의리를 통하여 자신의 입지를 굳혀 나가고 유신조 역시 대한민국의 지도 대통령으로 자부하면서 살아가는 특유의 뚝심의 소유자지만 전자는 정적에 의해 죽게 되고 후자는 병사하게 되며 조창용,박재천 역시 호텔업과 관련하여 유흥업소,나이트클럽등 이권에 개입하면서 그들의 영역권 다툼에 치열한 접전을 벌이게 되는데 조창용은 차를 몰다 다리에서 낙상하여 불귀의 몸이 되고 박재천만이 최후의 조폭 세계의 정상을 거뭐쥐게 된다.

 그들은 달리기,담 타넘기,칼,맷집,모내기,삽질등으로 명성을 날리다 기회와 인연을 따라 조폭의 권력의 길에 들어서고 그 권력의 맛이 때론 씁쓸하면서도 때론 달콤하기에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거리의 왕을 자처하게 되며 그 수하에 수족들 또한 나날이 불어가기도 하고 밑빠진 독에 물이 새듯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는 작자들도 있음을 알게 된다.또한 유신조,마사오,조창용이 죽었을땐 장례식장이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남아 있는 자들의 세력 모의 장소이고 전열을 가다듬는 장소이기도 함을 알게 된다.

 태어날 땐 평등이라는 허울 아래에 태어나지만 사회가 받아 주지 않는 세력과 계층은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과 띠를 이루고 무리를 지어 개척해 나가는데 이권과 세력을 확대해 가는 과정에 사회 유명인사들과 유착이 되고 불건전한 사회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것은 아닌지 한국 현대사의 조폭의 형성과 암울했고 암울한 그들의 행각을 통하여 한층 그들을 가깝게 대하고 이해해 보는 시간이 된거 같다.






j******6 2011.03.2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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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찾아서'는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1996년도에 출간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절판되었다 다시 재출간한 작품이라고 한다. 회색빛 하늘과 비오는 허허벌판에 우산까지 받쳐가며 충성스럽게 빈 의자를 지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무척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저 남자는 무슨 이유로 왕이 떠난 빈 의자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까? 저 남자가 그토록 숭배하는 왕은 누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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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찾아서'는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1996년도에 출간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절판되었다 다시 재출간한 작품이라고 한다. 회색빛 하늘과 비오는 허허벌판에 우산까지 받쳐가며 충성스럽게 빈 의자를 지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무척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저 남자는 무슨 이유로 왕이 떠난 빈 의자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까? 저 남자가 그토록 숭배하는 왕은 누구일지 궁금했다.

 

화자인 장원두는 어느날 고향 친구 박재천으로부터 '큰형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 지방 소도시인 고향에서 큰형님으로 불릴 사람은 어린시절 자신의 우상이며 고향 사람들의 영웅이었던 마사오 밖에 없다. 고향을 떠나면서 장원두의 마음속에서 죽은 인물로 생각했던 마사오, 그와 친척도 아니고, 그렇다고 절친한 사이도 아니라면서 장례식에 참석하는 이유는 뭘까?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불패의 신화로 떠받들 정도로 경찰, 폭력배 등등 누구와의 싸움에서도 절대 지지 않았던 싸움꾼 마사오에 대한 추억을 곱씹으며 장례식장에 도착한 장원두는 썰렁한 장례식장의 모습에 허망해 한다. 자신이 그토록 숭배하고 동경해 왔던 왕의 실체가 겨우 이 정도밖에 안되다니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더욱이 마사오의 죽음을 애도하기 보다는 마사오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세력간의 암투가 먹구름처럼 몰려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우연찮게 한날 한시에 태어나 절친이 된 장원두와 박재천에게 마사오는 닮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영웅이었다. 마사오 주변에는 늘 힘으로 그 자리를 탐내며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이 많았지만 함부로 왕의 자리를 자치하지는 못했다. 마사오에게는 싸움꾼의 기질뿐만 아니라 털털한 인간다운 면모도 가지고 있었기때문에 비록 건달이었지만 마을의 수호신처럼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우상같은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마사오 스스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마사오의 누나 광자와 주민들에 의해 영웅이 되었던 것이다. 훗날 마사오가 어려움에 처했을때 마을 주민들이 발벗고 나서서 그를 도우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처럼 힘만으로 권력을 유지하기에는 세상이 변하고 있었다. 마사오를 무너뜨리기 위해 지략이 더 뛰어난 조창용이 서서히 세력을 넓혀갔고, 결국 마사오를 권좌에서 내려오게 만든다. 비열한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작은 도시의 왕위 쟁탈전은 결국 박재천의 차지가 되고 만다. 평범한 삶을 원했던 자신과는 다르게 어린시절부터 마사오처럼 왕이 되고 싶어했던 박재천은 장원두의 첫사랑인 나세희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고향에서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작가의 작품은 처음 만나본다. 처음엔 실존 인물들의 등장으로 이 책이 진짜인지 허구의 이야기인지 가늠하기가 애매했다. 책을 다 읽고 작가의 평을 들어보니 사실과 허구의 세계를 넘나드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란 호평이 넘쳐났다. 역시나 읽는내내 실감나는 묘사에 영화관에 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치열한 자리다툼이 어디 소도시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이 책에서 벌어지는 권력 쟁탈전은 건달들의 세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장원두가 나세희로 인해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마음 속 영웅이었던 왕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왔던 이유도 이권을 목적으로 탐욕을 부리지 않았던 진정한 왕 마사오를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우리 사회에 마사오와 같은 진정한 영웅이 나타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k*****5 2011.03.24.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