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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언저리를 맴돌며 부유하는 인간 관계 《잔해》
"세상의 언저리를 맴돌며 부유하는 인간 관계 《잔해》" 내용보기
밀란 쿤데라는 현대인의 불안과 혼란의 원인을 ‘권태’로 보았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존재인 권태는 음울한 현재 연속의 다른 이름이다. 이 책 《잔해-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0》은 삶에서 작은 균열이 전체의 生(생)에 미치는 순간을 포착한다. 누구에게든 삶에 작은 균열이 찾아온다. 잔해의 주인공 필리프가 센 강을 산책하면서 마주친 한 장면, 한쌍의 남녀가 다투는 하며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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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는 현대인의 불안과 혼란의 원인을 권태로 보았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존재인 권태는 음울한 현재 연속의 다른 이름이다이 책 잔해-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0은 삶에서 작은 균열이 전체의 ()에 미치는 순간을 포착한다. 누구에게든 삶에 작은 균열이 찾아온다. 잔해의 주인공 필리프가 센 강을 산책하면서 마주친 한 장면, 한쌍의 남녀가 다투는 하며 여자의 다급한 요청을 뒤로 한 후, 필리프가 겪게 되는 삶의 민낯을 향한 실존의 의미를 성찰할 수 있도록 한다.

 

용기가 없다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획득한 모든 기술과 육체적, 정신적 아름다움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아무리 세심하게 그 힘을 측정한다고 한들, 손을 들어 자신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매달 팔둘레와 가슴둘레를 잰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한들 굳센 정신을 키우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영원히 확고하게 정립되었다고 믿어왔던 균형이 강가에서 도둑놈과 몇마디 말을 나누었다는 정말 하잘 것 없는 이유로 갑자기 깨져버렸다.

 

부유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온 필리프는 스스로를 항상 남보다 나은 사람이라 생각해왔다.  그러나, 어느 날 찾아 온 삶의 균열은 끊임없이 내 삶은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이제까지 삶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목적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던 필리프에게 자꾸만 떠올려지는 물음은 인간실존의 궁극의 물음과도 같다. 계속되는 현실의 권태는 자기를 흠모하는 처형과 애인과의 편지를 아무렇지 않게 공개하는 아내사이에서 갈등하며 '존재'에 대한,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지는 자신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껍데기가 되어주었던 부와 위신, 건강, 외모와 같은 것들이 산산히 부서지게 되자, 결국 잔해가 되어 있는 '자아'를 알아차린 것이다. 

 

그의 껍데기를 벗겨버린 부랑자가 그보다 더 가치있는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주인공이 연상되어 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자이 오사무의 주인공은 세상 자체를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끊임없이 현실도피를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필리프는 도피와는 다르게 본질을 꿰뚫어보려는 철학적 사색을 한다. 필리프는 사회에서 성공한, 남부럽지 않은 엘리트 계열의 인물로서 사회적 지위가 만들어준 자아가 아닌, 뒤늦게야 실존'이라는 자각을 하며 진정한 내면의 나를 향한 여정을 그린다. 내면안의 고독을 향한 회귀를 통해 이루어지는 필리프의 '삶'을 향한 서사는 어쩌면 필리프 혼자만의 고민이 아닌 우리 모두가 떠안고 있는 각자의 짐이 아닐런지......  

다소 지루하게

다소 공감하며

다소 음울하게, 읽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세상은 다른 질서에 따라 다시 구성되었다. 모든 요소들이 우연과 뒤섞인 거대하고 혼란스러운 군중대신, 그는 자신의 주변이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있는것을 보았다. 한쪽은 공포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축이었고, 다른 쪽은 동일한 감정을 나누어 가진 수많은 미지의 사람들, 그의 형제들이었다. 하지만 인류를 둘로 가르는 이런 간략한 방법이 항상 정당한 것은 아니다. 평화와 마찬가지로 용기는 현대인의 삶에서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매우 존경할 만한 인물 중에서도 용감한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며 결코 그런 질문을 받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안개의 한가운데서, 필리프는 물질이 그림자가 떠돌아다니는 영적인 세계만이 살아가도록 내버려둔 채 자취를 감추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그림자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과연 무엇을 찾고 있는가? 아무것도 찾고 있지 않다. 그가 그곳에 있는 것은 물가에 있을 때면 거리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그에게 자신이 과거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끊임없이 말해주었다. 그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삶에는 자기가 될 수 있었을 사람이 날마다 자신과 동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필리프는 이 경이로운 존재를 짐작해보았다. 그는 이 경이로운 존재를 자신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마침내 그러한 대체가 완성되었다고 믿을 정도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커다란 내적 만족감을 느끼면서 지내왔다. 그러고 나서 세월이 흘러 진실을 깨닫게 된 시간이 왔다. 그 진실이란 바로 멀리서 들려오는 죽음의 최초의 부름이었다. 그가 되어야 할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필리프 자신의 기억만이 그 유령 같은 존재에 대해 말해줄 뿐,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믿었다는 사실에 혼자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것은 여명이 밝아오면 현재의 밤을 넘어서 빛을 발하기는 하지만 결코 실제로 떠오르지 않는 그런 미래였던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4.05.24.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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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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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백 번씩 짜증스러운 신비로 가득 찬 여러가지 삶이 우리의 인생과 나란히 나아간다. 그러면서도 삶은 우리에게 그 신비 중에서 어떤 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니 수수께끼와 비밀이 가득한 자기 자신의 운명에 집착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불안감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14)저자 쥘리앵 그린은 `잔해`에 대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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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백 번씩 짜증스러운 신비로 가득 찬 여러가지 삶이 우리의 인생과 나란히 나아간다. 그러면서도 삶은 우리에게 그 신비 중에서 어떤 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니 수수께끼와 비밀이 가득한 자기 자신의 운명에 집착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불안감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14)

저자 쥘리앵 그린은 `잔해`에 대해 `우리 시대의 파리에서 밤의 모험을 찾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필리프라는 소심하지만 평범한 한 남자가 어느 날 밤 파리의 센 강변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의 모습에서 시작하여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필리프가 우연히 마주친 두 남녀의 심상찮은 분위기로 인해 왠지 끌려가는 듯한 여자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여자의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듣고도 결국 소심하고 비겁한 필리프는 그녀를 외면하고 그냥 지나쳐가버린다.
그 사건을 내내 마음에 담아두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무기력하고 권태로운 삶을 이어나갈 뿐이다. 한순간 매력을 느껴 결혼까지 하게 된 앙리에트와는 한 집안에 사는 남처럼 지내고 있다. 더구나 앙리에트는 남편이 아닌 가난한 애인 티스랑에게 더 끌리고 있다. 어쩌면 애인을 사랑한다기보다 익숙해져버린 그에게 더 동화되어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필리프와 앙리에트의 집에는 또 한 사람, 앙리에트의 언니 엘리안이 함께 살고 있다. 앙리에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리프와 보내고 있는 엘리안은 필리프를 짝사랑하고 있다.
이런 뒤틀린 인간관계 속에서 그들은 각자 현재의 시간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센 강변에서 들려온 한 여인의 도움을 뿌리치고 외면한 필리프는 비로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해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안개의 한가운데서, 필리프는 물질이 그림자가 떠돌아다니는 영적인 세계마이 살아가도록 내버려둔 채 자취를 감추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그림자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과연 무엇을 찾고 있는가? 아무것도 찾고 있지 않다. 그가 그곳에 있는 것은 물가에 있을 때면 거리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그에게 자신이 과거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끊임없이 말했었다. 그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삶에는 `자기가 될 수 있었을 사람`이 날마다 자신과 동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필리프는 이 경이로운 존재를 짐작해보았다. 그는 이 경이로운 존재를 자신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마침내 그러한 대체가 완성되었다고 믿을 정도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커다란 내적 만족감을 느끼면서 지내왔다. 그러고 나서 세월이 흘러 진실을 깨닫게 된 시간이 왔다. 그 진실이란 바로 멀리서 들려오는 죽음의 최초의 부름이었다. 그가 `되어야 할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필리프 자신의 기억만이 그 유령 같은 존재에 대해 말해줄 뿐,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믿었다는 사실에 혼자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것은 여명이 밝아오면 현재의 밤을 넘어서 빛을 발하기는 하지만 결코 실제로 떠오르지 않는 그런 미래였던 것이다. (357)

솔직히 이 소설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를 갖고 있다. 묘한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이어가고 있는 이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되기로 예정되었던 운명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것의 균형이 깨어져버리는 것도 한순간이며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잔해`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근원의 물음과 사색들은 계속 곱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한다.




r***2 2012.10.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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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르주아의 자아 찾기
"한 부르주아의 자아 찾기" 내용보기
흔히 한 집단 내에 필요없이 존재하는 사람을 보고 '잉여'라 부른다.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말하다 보니 당연한 표현처럼 여겨진다. 잉여라 불리는 사람의 심정은 생각지도 않은 채 말이다. 참으로 잔인한 발상이다. 여기 스스로를 잉여라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필리프.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광산회사 대표로 있는 그에게 '부족함'이라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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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 집단 내에 필요없이 존재하는 사람을 보고 '잉여'라 부른다.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말하다 보니 당연한 표현처럼 여겨진다. 잉여라 불리는 사람의 심정은 생각지도 않은 채 말이다. 참으로 잔인한 발상이다.

여기 스스로를 잉여라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필리프.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광산회사 대표로 있는 그에게 '부족함'이라는 단어는 있을 수 없다. 누구나 바라는 파리에서의 화려한 삶을 온몸으로 향유하는 자이니까 말이다. 그래서일까.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지만 필리프는 자신의 삶에서 어떠한 행복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이 그가 가진 불행이라면 불행일까.

어느 날 한 여인의 다급한 외침을 외면한 후로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때문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 남자가 자신의 자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는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만약 필리프라면 이런 시시껄렁한 고민 따위는 하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리프의 고민에 동참하면서 나도 나 자신에 대해 조금씩 생각해보게 되었다.

많이 가졌든 가진 것이 없든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있다. 바로 자기 앞에 주어진 생의 시간이다.

인간 잔해가 될 것인지, 인생의 본질이 될 것인지는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것이 아닐까.

k******o 2012.03.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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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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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회색빛 도시를 떠도는 기분. 그 도시의 잔여물처럼 느껴지던 시기. 내게도 분명 그런 때가 있었다. 아무리 찬란한 햇살이 비추어도 도시는 늘 우울하고 그늘진 장소로 여겨졌었다. 바삐 돌아가는 도시 속의 부적응 자. 그런 모습이 나라고 해도 도시와 나는 맞지 않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도시가 주는 삭막함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한 탓도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기." 내용보기

쉼 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회색빛 도시를 떠도는 기분. 그 도시의 잔여물처럼 느껴지던 시기. 내게도 분명 그런 때가 있었다. 아무리 찬란한 햇살이 비추어도 도시는 늘 우울하고 그늘진 장소로 여겨졌었다. 바삐 돌아가는 도시 속의 부적응 자. 그런 모습이 나라고 해도 도시와 나는 맞지 않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도시가 주는 삭막함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모든 것이 불안정했기에 도시의 느낌을 그렇게 갖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 도시 속에서 비겁한 자신과 조우하게 된다면 어땠을까? 아마 도시도, 자신도 못 견디게 무기력해져서 스스로 존재의 위협을 받았을 것 같다.

 

『잔해』의 필리프가 그랬다. 날씨 좋은 10월의 저녁,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던 센 강변에서 한 쌍의 커플을 보게 된다. 남자의 위협적인 태도와 겁먹은 여자의 모습에 끌려 뒤를 쫓지만 "저기요"라고 말하는 여자를 외면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 사건은 오래도록 필리프를 괴롭힌다. 아내보다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처형한테도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사건은 필리프를 무상하게 만든다. 그 장소에 다시 가보기도 하고, 그 여자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괴로움은 풀리지 않는다. ‘부끄러운 것은, 진짜 부끄러운 것은 비겁한 것이 아니라 비겁하다고 알려지는 것이다.’라며 전전긍긍하다 고뇌하며, 의욕 없는 날들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는 이 사건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얘기를 시시콜콜 들어주는 처형에게도, 한 집에 살지만 전혀 다른 생활을 영위해 가는 아내에게는 말할 것도 없었다. 겉으로 봤을 때 필리프는 남부러울 것 없었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산과 사업으로 부유했고, 잘생긴 외모와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업에 의욕적인 것도 아니었고, 아내는 자신들이 결혼이 한 사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 또한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있었음에도 다른 도시의 기숙학교에서 지내게 했다. 그가 사랑받고 있는 대상은 처형 엘리안이었다. 집을 돌보지 않는 아내 앙리에트를 대신해 거의 안주인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엘리안은 그가 결혼한 순간부터 11년 동안 같은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런 필리프에게 센 강의 한 쌍의 커플의 사건이 오히려 큰 사건으로 다가왔다. 그로인해 실존에 대한 문제가 그의 내면에서 쉼 없이 들끓었다. 무기력함이 그를 지배했고, 허무함이 그의 삶을 바꿔버릴 듯 했다. 엘리안은 그런 사실은 모른 채 필리프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고, 앙리에트는 가난한 애인을 두고 있었다. 앙리에트와 엘리안이 필리프가 사는 아파트로 오기 전까지 그들은 가난했다. 지금은 모든 것을 풍족하게 누리는 상황에서 사랑 없는 결혼을 영위해 나가다보니 앙리에트는 가난한 남자에게 끌렸다. 그 남자에게 ‘자신이 그를 만나는 것이 그의 가난 때문이라고 설명할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를 위해 언니를 설득해 필리프에게 돈을 빌리기도 한다. 필리프와는 거의 대화가 없어 돈을 요구할 수 없었고, 오히려 언니의 부탁을 더 잘 들어주기 때문이었다. 앙리에트는 ‘인간 존재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서 본 삶에 대한 격렬한 애정을 내부에서 키워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도 필리프가 격렬한 애정의 대상이 아님을 인정하며 살고 있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필리프, 엘리안, 앙리에트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격렬한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 평범함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필리프와 앙리에트가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유지해가고, 엘리안이 앙리에트의 자리를 메우듯 필리프를 사랑하는 것, 그 사실을 앙리에에게 말하고, 앙리에트는 외도를 하면서 그 사람을 위해 언니를 통해 남편의 돈을 빌리는 것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러나 소설의 시작에서 “저기요”라고 말하는 여인을 도와주지 못한 자책감이 필리프를 괴롭혔듯이 이 작품에서는 사건의 흐름보다는 그들의 존재위치, 끊임없이 변해가는 내면의 깊숙한 부분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도 무심해 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건의 결과가 드러나기보다 과정이 담긴 소설임을 깨달았기에 그들이 도시에 떠도는 ‘잔해’같은 존재임을 인식하며 만나는 것이 더 편했다.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각자의 영역을 살아가는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면 깊숙이 잠재해있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절대 꺼내지 않았을 욕망들을 드러낸 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려 엘리안은 잠시 집을 나가기도 하고, 그런 엘리안을 필리프가 찾아가기도 하며, 앙리에트는 정부의 부탁을 거절하려고도 한다. 하지만 필리프가 그렇듯 이들 모두 무기력한 존재의 상징을 드러내듯 그들이 하고자 하는 행동들은 어떠한 변화도 꿰어내지 못한다. 심지어 필리프와 앙리에트의 아들이 방학을 맞아 집에 왔음에도 전혀 그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 것 하며, 질투 아닌 질투 때문에 조카를 좋아하지 않는 엘리안 등 많지도 않는 가족이 왜 이렇게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나 싶었다.

 

그러나 큰 변화는 아니더라도 필리프가 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 ‘멋있기는 하지만 무리결한 존재야.’라며 필리프를 바라보는 엘리안, 정부에게 돈을 주고 돌아오던 길에 위험한 일을 당할 뻔 했던 앙리에트, 드디어 센 강에서의 자신의 비겁함을 엘리안에게 말하는 필리프. 이런 것들이 큰 흐름을 바꿔놓지는 않았을지라도 도시를 떠도는 잔여물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에 반가웠다. 자신의 내면속으로만 파고들지 않고, 가족이라는 타인에게 조금씩 다가가려 하는 시도가 소설의 중심 화두였던 실존에 대해 조금은 긍정적인 시선을 주지 않았나 싶다. 그것이 미미할지라도 시간이 흐르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그들이 존재 의식을 더 키워나가길 바랐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저자의『잔해』는 녹록치 않은 소설이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내면의 격정을 만나게 되는 작품이었다. 존재 여부가 불투명할 때,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쓸쓸하고 고통스러울 때 이 작품을 만난다면 더 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오히려 고통의 근원으로 더 다다갈 수 있는 법. 타인이 나를 위로하려 한다는 생각이 아닌, 스스로 만나는 내면이라 생각하고 이 소설을 대한다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과 함께 더불어 소설의 본질에 더 다다갈 수 있을 것이다.

s****m 2011.03.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