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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퀘이커 교도인 저자가 퀘이커 교도인 함석헌을 쓴 책이다. 50세연하의 (당시 중3) 여자와 (성폭행이 아니라) 합의 성관계를 했다고 해도 문제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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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선생은 '한국의 간디', '종교적 다원주의의 선구자', '광야에서 외치는 자' 등으로 묘사되곤 한다. 역사학자 김성수의 《함석헌 평전》은 문필가, 종교 시인, 기독교 사상가, 퀘이커 교도, 민권 운동가, 역사철학자로서의 함석헌 선생의 초상을 그려낸다. 저자는 1979년 겨울 김동길 선생을 통해서 함석헌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고 그 다음해 봄 함석헌을 처음 만나게 된다. 저자는 자신에게 미친 함석헌 선생의 영향을 이렇게 정리한다.
"특별히 선생님의 영향으로 나는 철도공무원에서 역사가, 골통 보수 기독교인에서 종교적 관용주의자, 복음주의자에서 인본주의자, 교조주의자에서 낭만주의자가 되었다."
이 책의 초판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의 영국 셰필드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출간한 것인데 10년 뒤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이번 개정판을 펴내면서 저자는 함석헌 저작집 30권을 다시 정독하고 함 선생의 친구인 김교신 전집과 더불어 장기려, 장준하, 안병무, 계훈제 선생에 대한 책들도 참조했고, 아직 생존해 계신 함석헌의 지인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저자 김성수는 함석헌을 이상주의자, 낙관주의자로 평한다.
"현대의 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는 인간 각자는 도덕적인데 이러한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는 부도덕한 사회라고 지적한다. 이런 조건에서 어쩌면 실현 불가능한 도덕적 사회를 꿈꾼 함석헌은 현실주의자라기보다 이상주의자였다. 토머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전쟁(War against All)'을 치르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상과 원칙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며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되어 간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현실 세계의 달콤한 유혹이나 외부의 혹독한 조건에 관계없이 죽는 날까지 자신의 이상과 꿈, 그리고 원칙을 지킨다. 함석헌은 그런 소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상주의자, 그것이 내가 보는 함석헌이다."(427쪽)
이상주의자 함석헌은 개인의 영적 완성의 추구와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을 상호연관된 것으로 보았다. 함석헌 선생은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 사이에서 여든아홉 해를 머물렀다. 그에게 성속은 하나였고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 사이의 구분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종교적 신앙심과 인간애가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를 연결해 주는 통로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함석헌의 어린 시절, 일본 유학 생활, 오산학교 역사 교사 시기, 직필의 언론인 시기(씨알의 소리와 사상계), 민주화투사 시기 등을 순차적으로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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