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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다른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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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출간 후 1세기가 더 지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는 책 <타임머신>. 28세에 쓴 이 책으로 과학소설의 창시자라는 칭송을 받을 만큼 명성을 얻은 허버트 조지 웰스(H. G. 웰스)는 1880년대 왕립과학대학의 토론 모임과 실험실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도했던 시간 차원 개념을 1988년 단편소설 『시간 탐험가들』로 먼저 소개했습니다. 이후 인류 진화에 대한 철학을 담아 이 시대 SF 고전으로 불릴만한 멋진 소설 <타임머신>으로 탄생시켰습니다.
허버트 조지 웰스는 <타임머신>외에도 <모로 박사의 섬>, <투명인간>, <우주 전쟁> 등 생전 50권 이상의 소설을 발표했는데, 특히 <타임머신>을 두고 어슐러 르 귄이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이 작품을 읽지 않고 SF를 쓰거나 문학으로서의 SF를 논하지 말라고 할 정도입니다.
정신적인 여행이 아닌 현대적 기계 장치를 이용한 시간여행과 타임머신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등장시킨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 발명가의 집으로 초대받은 이성적이고 신뢰감이 가는 화자가 독자를 납득시키는 역할을 맡았고, 그 속에 시간여행자의 미래 이야기를 포함시킨 구성입니다.
만찬 모임에서 자신의 사차원(시간) 이론을 설명하는 시간 여행자. 타임머신을 축소한 모형을 손님들에게 소개합니다. 공간을 여행하듯 시간을 여행하는 기계장치입니다. 손님 중 한 명이 작동시키자 이 모형이 사라지는 걸 모두가 목격합니다.
타임머신 하면 영화 '백 투더 퓨처'의 자동차 드로이언 DMC-12와 영드 '닥터 후'의 타디스가 떠오릅니다. 소설 <타임머신>에서는 안장이 장착된 기계가 등장합니다. 레버를 밀고 당기면 과거와 미래로 향하는 방식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 연도가 표시되어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는, 허술한 듯 보여도 딱 핵심을 담은 기계입니다.
일주일 뒤 시간 여행자의 집에서 다시 모임을 가지게 됩니다. 손님들은 도착했지만, 정작 시간 여행자가 뒤늦게 나타나는데 그의 몰골이 엉망입니다. 허겁지겁 씻고 음식을 먹으며 정신을 좀 차린 후, 시간 여행자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무려 802,701년으로 여행하고 온 겁니다.
기계를 멈춘 직후 든 생각은 두려움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잔인함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면? 사람다움을 잃었다면? 그들에게 자신은 구세계 원시 동물로 보일지도 모를 테니 그제서야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습니다. 게다가 도착한 곳의 환경이 전성기는 사라졌고 쇠퇴기에 접어든 세계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처음으로 마주한 사람들의 인상이 어린아이처럼 온화해 보입니다. 엘로이라 부르는 그들은 120cm의 키를 가진 소인입니다. 왜소한 육체, 지력 부족인 엘로이는 밝은 곳에서는 웃음을 지으며 행복한 듯 지내지만, 어둠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겁니다. 지하에 사는 몰록 족은 육식을 하며 (동물이 대부분 멸종된 시대에서 어떻게 육식을 하는지는 상상에 맡기리) 어둠에 적응한 신체를 가진 작은 괴물과도 같습니다.
엘로이와 몰록 모두 미래 세계의 인류의 후손이라는 게 충격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걸까요. 허버트 조지 웰스는 자본가와 하층민이라는 자본주의로 인한 빈부 격차와 차별에 대한 비판을 엘로이와 몰록에 덧씌웠습니다. 지상에는 '가진 자들'이 살게 되었고, 지하에는 '못 가진 자들'이 기계처럼 부려지며 그 생활에 적응된 둘 모두에게 퇴화가 일어나게 된 겁니다. 지상의 엘로이는 용기와 호전성이 필요 없게 되자 그 부분이 도태되었고 흡족한 권태만 남게 되었습니다. 지하의 몰록은 빛을 싫어하는 야행성으로 변하게 되었고요.
"동종 인간의 노동 위에서 안락과 즐거움을 누리고 살면서 인간은 '불가피성'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핑계 삼았다. 바야흐로 때가 되자 그 '불가피성'은 그들에게로 되돌아왔다." - 책속에서
너무나도 그럴법한 인류의 후손 모습이지 않나요. 하인 계층에서 태어난 그가 평생 개선하고 싶어한 것들의 시작점이 <타임머신>입니다. 엘로이와 몰록 이후의 인류는 어떻게 될까요.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을 경험하고 타임머신에 올라탄 시간 여행자는 더 먼 미래를 확인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경장편 혹은 중편 소설인 <타임머신>은 지금 읽어도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은 SF 소설입니다. 사실 허점을 엄청 발견할 수 있기도 한데 스토리 안에서 셀프 자책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타임머신이 실험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 왜 첫 위치와 달라졌는지 설명하는 문장처럼 세심하게 소소한 설정을 잘 챙긴 소설입니다. SF 장르에 낯선 독자도 꼭 읽어보세요. 그동안 숱하게 불러왔던 타임머신의 시초를 만나는 기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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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조지 웰스 선생'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그대, 나무라지 않는 박식함을 가지고 있다면 머리 위 타원형 풍선이 대칭을 이루며 가만히 부풀어 오르다 섬뜩, 터질듯 말듯 뾰족한 모서리를 내밀고 정수리를 콕! 하고 찍는데에는 시간이 그다지 많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 기대한다.
'타임머신'이라는 개념을 소설 속에서 발현시켜 온 세상을 들썩이게 한 인물이라고 - 어깨를 우선 살짝 들어 올리고 양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가볍게 들어 보이며- 손쉽게 설명할 수 있다면, 그대는 소설 '타임머신'을 저언-혀 접해보지 않았다는 증거다. 읽었다 한들 정독하지 않은 중죄로 국어 선생님께 손바닥 열대 정도는 맞을 각오를 하라. (공중에 떠 있던 손이 양 허리춤으로 곧장 향하는 중이었다면 주머니 속으로 잽싸게 숨겨도 늦지 않다.)
과학 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는 의미 밖에도 허버트 조지 웰스(이하 허비)의 '타임머신'은 사실 그 이름만큼이나 상당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타임머신이 탄생한 지 10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갑甲이라 칭송받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 과학에 담긴 철학의 힘을 뒤집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몰록의 모습을 하고 성난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면 그대는 시대착오적 인물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워워워. 너무 앞서나가지 말길.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시무시하게 효과가 끝내주는 특제 비아그라를 발명, 마구잡이로 생산해 내서 소위 '강자'들을 칠렐레 팔렐레 현혹시킨 다음, 정력이란 정력은 모두 쏟아내게끔 완전히 탈진하게 만들어버리는 거지. 어떠한가?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아랫도리를 놀려댈 때 쯤이면 굳이 힘껏 걷어 차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야. 오오, 허버트 조지 웰스는 정말 굉장한 인물 중의 인물임이 분명하다.
또한 이로써 내 미래의 남편상은 '과학자의 탈을 쓴 채 철학자 행세를 하고 다니는 시간 여행자'로 굳혀졌다. 다소 뜬금 없긴 해도 우리(?) 멋쟁이 허비는 이런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참, 그리고 근래들어 이런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한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낭만이 밥먹여 준다고 착각하는 한 위기의 20대 처자가 고전 소설에서 열심히 이상형을 찾으며 -'만들다'에 가까워보인다- 잉여짓을 하다 우연히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오지 않았다고. (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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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장르는 문학이나 영화나 그다지 선호하질 않아서 지금껏 별로 접해 본 작품이 없지만, 공간을 뛰어넘는 순간 이동과 시간을 뛰어넘는 타임머신 기술만큼은 빨리 개발되길 바라고 있기도 하고 어렸을 적 좋아했던 '빽투더 퓨처'가 연상되기도 하여 펭귄클래식의 100번째 책으로 나온 타임머신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조지 웰스는 제임스와 러브크래트프의 환상 소설에서처럼 초감각 현상으로 독자를 흥분시키는 대신 이성의 힘에 의해 밝혀진 자연과 우주의 신비를 소개하고, 그 새로운 세상(타임머신에서는 미래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이 개인의 환상이 아닌 설명 가능한 과학적 진실임을 설득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건조하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화법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허무맹랑하여 믿기 어려운 것을 허무맹랑하지 않게 보이기 위하여 낯익은 풍경을 사용하였고, 그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 속에서 후손들의 숨겨진 잔혹한 운명을 서서히 드러냄으로써 독자에게 강한 충격을 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타임머신이 보여주는 첫번째 미래의 모습은 처음에는 유토피아처럼 보였다. 거기서 만난 인류의 후손인 엘로이들은 안락한 생활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력과 정력은 왜소해지고 상업적 행동, 예술적 충동도 모두 사라져 발전의 가능성도 없어 보이지만,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는 폭력, 고통, 결핍이 사라진 측면에서 보면 유토피아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발명가의 착각에 불과했다. 자신의 사라진 타임머신 기구를 찾는 과정에서 발명가는 인류의 두번째 종인 몰록(지하인)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 초반에는 가진 자들이 지상을 독차지하면서 지하에는 못 가진 자들이 살게 되고, 그러한 공간의 분리는 계급간의 교류를 막고, 격차를 더 벌어지게 만들었겠지만, 못 가진 자들의 희생 위에서 안락하고 즐거운 삶을 누리던 가진 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락함에 길들여져 체력이 약해지고 지력이 떨어지게 되면서 관계가 역전되기에 이른 것이 802701년의 실상이었다. 인간을 제외한 육류가 없어진 후 록록은 엘로이를 축우로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먹는 사회가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끔찍하였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필사의 노력으로 몰록으로부터 벗어나 가게 된 두번째 미래의 모습이었다. 첫번째 미래보다 훨씬 더 먼 미래에 해당하는 두번째 미래의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 않는, 지구의 종말을 보는 듯 하였다. 인육을 먹는 몰록보다 더 무섭고 소름 끼치는 것은 그러한 몰록마저 존재하지 않는,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정체 불명의 괴기스러운 둥근 생물체만 남아 있는 지구였다. 웰스가 보여준 미래의 모습은 참혹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다른 인간을 밟아 누르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치부하고 말아버리는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임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웰스는 에필로그에서 마지막 희망을 남겨 놓았다. 위나가 발명가에게 준 이상한 흰 꽃 두 송이를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여전히 감사하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살아 있음을 믿는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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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 째깍.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립니다. 째깍. 째깍. 이런저런 소리로 가득 찬 삶이 적막에 빠져 부산 거리기를 멈출 때, 비로소 시계 초침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죠. 요즘은 탁상시계마저도 디지털이고 대부분의 시간을 핸드폰으로 확인하기에 시간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드뭅니다. 하지만 집 벽면 어디엔가 걸려있는 시계, 초침이 돌아가는 손목시계에 귀를 기울여보면 여전히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째깍. 째깍. 때로는 그 소리가 너무 느려서 답답할 때도 있지요.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순간들이요. 쉽게 생각해보면 점심시간을 목전에 둔 수업의 끝자락이라든지, 초조하게 그러나 초조한 티를 내지 않으며 기다리는 퇴근시간 등이요. 1초가 이렇게도 느렸나, 1분이 이렇게도 길었나 생각하며 의심해보는 그런 순간들이 있지요. 물론 반대의 순간들도 있습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만 같을 때. 이제 막 시작한 연인과의 달콤한 시간, 출근을 앞둔 일요일 저녁 혹은 휴가의 마지막 순간. 그런 때에는 시계 초침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신경을 쓰건 말건 시간은 여전히 흐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며 삶을 살아가죠. 그런 생각해본 적 다들 있으시겠죠? ‘아, 시간을 되돌려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혹은 반대로 ‘지금 이 시간을 건너뛰어 미래로 갈 수 있다면’ 이런 생각들이요.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을 때, 시간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죠.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지금의 난처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지루한 순간에는 반대겠죠. 지금 이 순간을 그냥 건너뛰어 주말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혹은 좀 더 거시적인 관점으로 누군가는 과거로 돌아가 역사의 한 장면을 면밀히 살펴보고 싶을 수도 있고, 미래로 나아가 인류 발전의 양상을 목도하고 싶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상상은 사실 특별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일상적인 상상입니다. 시간을 여행하고 싶다는 상상. 인류는 언제나 시간여행을 꿈꿔왔습니다. 그리고 시간여행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마법과도 같은 장치 ‘타임머신(Time Machine)’입니다. 영화나 판타지 소설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타임머신’은 인류의 시간여행에 대한 꿈을 충족시켜주는 장치입니다. 물론 아직 실현된 적은 없지만요. 오늘 이야기할 책은 바로 이 ‘타임머신’이 처음 등장한 소설, 허버트 조지 웰스(H. G. Wells)의 『타임머신(The Time Machine)』입니다. ‘허버트 조지 웰스’는 SF(Science Fiction) 문학 장르의 대부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타임머신』뿐만 아니라 『투명인간』, 그리고 2005년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한 『우주전쟁』의 원작자이기도 하죠.
『타임머신』의 내용 구조는 액자식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시간여행자’(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에게 초대받아 찾아간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나’말고도 심리학자, 의사 등 저명한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 하지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시간여행자는 먼저 시간에 대한 우리의 통념과 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모든 실물은 네 방향으로 뻗어 있네. 가로, 세로, 높이, 그리고 지속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우리는 (곧 설명하겠지만) 어떤 타고난 육체적 결함 탓에 이 점을 간과하기 쉽네. 분명 네 개의 차원이 있어. 세 개 차원은 공간의 세 변을 일컫고, 네 번째 것은 시간이지. 그런데 우리는 전자의 삼차원과 후자 사이의 비현실적인 선을 긋는 경향이 있어. 왜냐하면 우리의 의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연히 시간을 따라 한 방향으로 단속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지.”
그렇죠. 우리는 시간을 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인식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나이 들기만 하지 젊어지지는 않으니까요. 이에 시간여행자는 시간을 중력에 비유합니다. 마치 중력처럼 시간은 올라가기보다는(거스르기보다는) 내려가는 게(앞으로 흐르는 게) 훨씬 쉽죠. 하지만 ‘기구(氣球)’가 있다면 어떨까요? 기구를 통해 우리는 조금이나마 중력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시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시간여행자는 생각합니다. 그에 맞는 기구가 있다면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말이죠.
기구를 타고 중력을 거슬러 오를 수 있고, 궁극적으로 시간 차원을 따라 이동하다가 정지하거나 가속하거나 심지어는 방향을 돌려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는 희망쯤은 품을 수 있으니.”
어떤가요?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리시나요? 아니면 조금 일리 있는 말이라고 들리시나요? 여기서 시간여행자가 말하는 기구는 당연히 ‘타임머신’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빛나는 금속 구조물’을 가져와서 믿지 못하는 이들의 눈앞에서 기계를 작동시키죠.
한 줄기 바람이 불면서 램프 불꽃이 일렁거렸다. 맨틀피스 위 촛불 하나가 꺼지고, 그 작은 기계가 갑자기 회전했다. 흐릿해진 그것은 일순 유령처럼 보였다. 희미하게 반짝이는 놋쇠와 상아의 어떤 소용돌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사라졌다. 없어졌다! 테이블 위에는 램프만 휑뎅그렁했다.
물론 신기하기는 하지만 정말 그 작은 금속물이 ‘타임머신’이라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후 시간여행자가 실물 크기의 타임머신을 만들었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아무리 좋게 생각해준다고 해도 그런 말을 쉬이 믿기는 어렵지요.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은 다음 번 모임에서 시작됩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도 집주인 시간여행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후 7시 반이 넘어서야 시간여행자가 문을 열고 나타납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나지요.
시간 여행자는 굉장히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외투는 먼지투성이에 더러웠고 소맷자락은 녹색으로 더럽혀져있었다. 머리칼은 헝클어지고 허옇게 센 것 같았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탓이거나 실제로 변색됐을 수도 있었다. 얼굴은 유령처럼 허옇고 턱에는 갈색의 벤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얼굴은 무지막지한 고생이라도 한 것처럼 수척하고 찡그린 채였다. 빛이 눈부시기라도 한 듯 그는 문간에서 잠깐 머뭇거렸다. 그러곤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발이 아픈 사람처럼 절뚝절뚝 걸었다.
자, 이쯤 되면 눈치 빠르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요. 시간여행자는 이름에 걸맞게 자신이 만들었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고 온 것이지요. 그리고 ‘나’를 통해 시간여행자의 경험을 듣게 됩니다.
처음에 시간여행자는 미래로 향하는 시간여행에 큰 기대를 갖습니다. 인류 문명의 진보가 계속되는 시기였기에 그 미래가 얼마나 휘황찬란한 결과일지 궁금했던 것이지요. 시간여행자가 도착한 시기는 서기 802,701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발견한 인류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죠.
‘엘로이’라는 이름의 미래인들은 키가 작은 소인들이고, 몸은 전체적으로 매우 연약합니다. 그들의 언어는 매우 단순한 것들을 지칭하는 정도일 뿐이고, 그저 하릴없이 들판을 뛰놀며 과일을 주식으로 살아갑니다. 큰 동물들은 이미 멸종하고, 어떠한 위험도 없어 보이며, 띄엄띄엄 숲 너머에 웅장한 크기의 잔해물들이 존재하죠. 시간여행자가 내린 결론은 조금 충격적입니다.
쇠퇴기에 접어든 인류를 내가 조우한 듯했다. 불그레한 황혼이 인류의 황혼을 생각나게 했다. 우리가 현재 기울이고 있는 사회적 노력의 기이한 결과를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육체의 힘은 필요의 결과이므로, 안전한 상황은 연약함을 낳는다.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일, 생활을 끊임없이 안정화하는 참된 문명화 과정이 꾸준하게 진행되어 그 극점에 다다른 것이다. 인류가 힘을 합쳐 자연을 차례차례 정복하게 되었다. 지금은 꿈에 불과한 것들이 미래에선 계획적으로 착수되고 수행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를 나는 보고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802,701년의 미래에는 모든 문명화 과정이 극에 이르러 생활이 안정되었고, 그로 인해 모든 인류가 더 이상 어떤 고통, 두려움, 투쟁도 필요하지 않게 되어 그에 맞는 진화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시간여행이 단순히 이렇게 끝나지는 않습니다. 타임머신이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하죠. 처음에는 ‘엘로이’를 의심하지만 그들은 그럴 신체적 능력이 없고, 그만한 흥미를 가지지도 않습니다. 후에 시간여행자는 지하에 사는 ‘몰록’이라는 또 다른 인류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 ‘몰록’이 타임머신을 훔쳐 간 것이지요.
‘몰록’은 생김새가 괴기스럽습니다. 부정적 존재에 대한 부정적 묘사는 익숙하지요. 시간여행자는 ‘몰록’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놈들이 얼마나 구역질 나는 마귀같이 생겼는지 여러분은 상상도 못 하리라. 창백하고 턱 없는 얼굴, 눈꺼풀 없고 큼지막하고 불그스름한 회색 눈이란!’
‘몰록’은 ‘엘로이’와는 다르게 재빠르고 공격적입니다. 심지어 ‘몰록’은 육식을 하죠.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라면 이미 큰 동물들은 다 멸종하였는데, 어떻게 육식을 할 수 있을까요? 조금 힌트를 드려보자면, ‘엘로이’들 중에 노쇠한 이들이 없다는 점, 해가 지면 어둠을 틈타 지상으로 올라오는 ‘몰록’, 어둠에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는 ‘엘로이’들을 생각하면 ‘몰록’이 먹는 고기가 어떤 고기인지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여행자가 생각하기에 ‘엘로이’는 과거 자본가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돈의 힘으로 지상을 자연스럽게 차지했고, 하층민들은 지하로 내려가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몰록’이 지하로 내려가게 된 하층민들의 후손들이 되었고요. 처음에는 이러한 수직적인 구조가 잘 운영되었으나, 인류 지성이 자살에 이른 이 시기가 되어서는 힘의 구조가 뒤바뀌게 된 것이라 추측하지요.
시간여행자와 ‘위나’라는 ‘엘로이’의 관계도 묘사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다루진 않으려 합니다. 흡사 애인과도 같은 존재이지요. 물론 마지막 시간여행자의 실수로 ‘위나’를 잃게 되지만요.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시간여행자는 타임머신을 재 탈취하여 시간여행을 떠납니다. 급박한 상황을 벗어나느라 그보다 더욱 미래로 향하게 되지요. 그리고 인류가 모두 사라지고, 대부분의 생명체도 사라진 미래를 보게 됩니다. 시간의, 지구의, 모든 것의 끝을 보게 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시간여행자의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끝이 납니다. 물론 증거는 아주 빈약합니다. 그가 챙겨온 것은 위나가 자신의 호주머니에 꽂아준 흰 꽃 두 송이에 불과하죠. 그 스스로도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자네더러 믿어달라는 게 아니야. 거짓말이나 예언으로 치부하게. 실험실에서 꿈을 꾼 거라고 말하게. 인류의 운명을 사유하다가 지어낸 이야기쯤으로 생각하게. 사실이라는 내 주장을 그저 흥미를 돋우기 위한 얄팍한 기교쯤으로 받아들이게. ‘허구’라고 전제하고서 다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나?” 이후에 그를 찾아간 ‘나’는 다시 시간여행을 떠나려는 시간여행자를 보게 됩니다.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한 시간여행자였죠. 카메라도 챙기고 갖가지 도구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간여행자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나’는 말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사실 웰스의 작품은 과학소설이지만 동시에 비과학적입니다. 『타임머신』을 읽어보아도 과학적 근거는 거의 보이지 않죠. 이런 부분이 웰스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거부감이 들게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 이는 웰스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하면 당연한 것입니다. 웰스는 지금 21세기 사람이 아닌 무려 1866년생으로 19세기 사람이죠. 그가 살았던 시기에는 지금 우리가 아는 많은 과학적 지식들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오히려 그의 뛰어난 상상력에 대해 놀라움을 느끼는 것이 더 맞겠습니다.
웰스의 작품을 감히 평가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문학적 상상력으로 나타낸 과학적 열망’ 기회가 된다면 웰스의 작품 중 읽어 본 다른 작품 『투명인간』도 다뤄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두 작품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내용이 얼마나 과학적인지가 아닌 웰스의 문학적 상상력과 그에 맞는 적절한 서술이 인상적이었죠. 결과적으로 웰스가 후의 과학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짧습니다. 긴 시간 축에서 끽해야 1세기를 사는 인간입니다. 구태여 더 말하지 않아도 쉬이 동의할 부분이지요. 언제까지 인류는 계속될 수 있을까요? 앞으로 100년? 아니면 1000년? 혹은 그 이상 계속할 수 있을까요? 매 시기 인류의 종말은 화두 거리입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그 끝을 보지는 못하였죠. 그렇다고 낙관하기는 어렵습니다. 여전히 인류는 고통받고, 분쟁은 끊이지 않고, 갈등은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웰스의 인류 미래에 대한 절망적 비관은 너무 엇나간 것이라고 폄하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현재를 벗어나고픈 시간여행에 대한 인류의 열망. 여러분이라면 시간여행자가 만든 타임머신에 앉아 어느 방향으로 레버를 당기시겠습니까? 과거? 혹은 미래? 그리고 어느 시점에 이르게 될까요? ‘시간여행자들의 모임’에서 모여 자신이 보고 생각한 것을 말하는 장면도 흥미롭겠군요. 『타임머신』이었습니다.
그는 인류의 진보를 어둡게 보았다. 쌓아 올린 문명이 필연적으로 무너져서 결국에는 그것을 쌓아 올린 자들을 파멸시킬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헛고생이라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듯 살아낼 도리밖에 없다. 하지만 내게 있어 미래는 여전히 암흑이고 공백이다. 기억에 의존한 그의 이야기가 밝힌 몇몇 군데만 빼면 광활한 미지다. 나는 위안 삼아 이상한 흰 꽃 두 송이를 곁에 두고 있다. 이젠 갈색으로 쭈그러들고 납작해지고 버석버석해진 그 꽃은 지력과 체력이 사라진 미래에도 여전히 감사하는 마음과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인간의 가슴속에 살아있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