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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쓸개 김숨 문학과지성사/2017.11.23. sanbaram
간과 쓸개 간암 치료를 받고 있는 나는 예순 일곱 살의 홀아비다. 얼마 전 30년 동안 갖고 있던 땅을 팔아 큰아들의 칼국수집 가게를 차려 주었다. 아흔 두 살 먹은 광주에 사는 큰 누나가 담도를 막고 있는 담석 때문에 쓸개즙이 다른 장기로 새서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누나를 만나기 전에 정기 검진을 통해 간에서 암 덩어리가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래서 누나의 방문은 수술 뒤로 미루어 졌고, 그 사이 누나는 퇴원하여 셋째 아들네에서 둘째로, 또 딸네로 전전하다가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결국 간암 수술을 받고 체중이 빠져 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늦게 서야 누나가 입원한 병원을 찾게 된 나는 잠든 누나 옆에서 잠깐 잠에 빠져서 꿈을 꾸다가 옛날 누나와 함께 갔던 저수지 물을 떠올리게 되는데, 큰누나는 그것이 자기가 아니라 마흔 두 살에 죽은 작은 누나 였다고 말한다. 추억을 나누던 두 남매는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모일, 저녁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나는 신탄진 빌라에 살고 있는 부모 집을 찾았다. 빌라는 신탄진 버스 차고지 옆에 있었다. 빌라를 사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돈을 8년 전에야 다 갚았다. 그리고 엄마의 관절 수술, 복학한 동생 학비 때문에 다시 대출을 받았다가 이제 겨우 빚을 다 갚았다. 아버지는 요즘 장어 식당에서 장어를 잡고 손질하는 일을 한다. 한 마리 잡는데 400원이란다. 상우 삼촌은 7년 전에 막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동안 고시원을 전전하며 공부만 하다가 내려와서는 식구들과 마주치지 않게 밤에만 잠깐씩 나와 밥을 먹고 볼일을 본다.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음식을 장만했다. 아버지는 좁은 베란다에서 연탄불에 전어를 굽고 있다. 아버지가 술과 담배를 사러 간 사이에 101호집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울고 있었다. 101호 할머니는 내 밥상머리에서 전어 대가리를 집어서 씹고 있었고, 밖에 나간 아버지는 30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 35년간 버스 정류장 간이 매표소에서 일한 엄마의 두 다리가 홍학의 모가지만큼 가늘어졌다. 엄마에게 껌 한 통을 사던 날 엄마는 죽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자 동생들은 반 강제로 나를 매표소에 집어넣었다. 어느 날 동생들과 동물원에 가자고 연락을 했다. 동생들은 사막여우 우리 앞에서 기다린다고 했는데 없었다. 폐장 시간이 될 때까지 이곳저곳을 다녔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 꼬박 하루 만에 매표소로 돌아왔다. 날이 밝으면 버스는 매표소를 떠나 멀리 가버릴 것이고. 나는 손 하나 겨우 드나들 만한 구멍으로 껌과 우유와 담배와 김밥을 팔 것이다.
북쪽 방 32년간 중학교 과학 선생이었던 곽노는 다세대주택 골목집의 북쪽방에 기거한다. 폐가 나빠져 가래가 끓어 많은 약을 먹어야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천주교 신자인 아내는 곽노의 지구와 우주에 대한 이야길 싫어한다. 정년퇴직 후 폐병으로 숨쉬기가 곤란해지자 늙은이 취급을 하더니 급기야 북쪽 방으로 내몰았다. 주택의 지하에서는 가발공장의 미싱 소리가 들리고 골목에서는 아이가 쇠공을 벽에 던지는 소리가 난다. 간신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쇠공을 던지지 말라고 소리를 치니 잠잠 해졌다가는 다시 들린다. 아내는 우족을 사러 시장에 간다고 나가고 돌아오지 않았는데 조카가 다녀갔다. 결혼 10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는 조카가 3개월된 아이를 심장이 뛰지 않아 잃었다는 말을 하고는 북쪽 방에서 나갔다. 밖에서는 쇠공에 머리가 부서졌다는 비명이 들렸고 아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곽노가 북쪽 방에 들어앉게 되자 아내는 좋은 구경거리라도 났다는 듯이 처형들을 불렀다. 복인 중의 복인인 옥계동 처형도 그녀들 속에 있었다. 처형들은 폐의 회복에 눈곱만치의 도움도 안 되는 일제 약 세 통과 위로의 말을 몇 마디 건넨 뒤 서둘러 북쪽 방을 나갔다. 그녀들은 혹시라도 곽노가 그림자처럼 들러붙어 따라 나오기라도 할까 봐 문지방을 넘어서자마자 서둘러 방문을 닫았다. 방문을 지나치게 꼭 닫음으로써 단절을 알려왔다. 그러나 소리마저 단절할 수 없었고, 아내와 처형들이 한 땀 한 땀 수놓듯 나누는 이야기는 고스란히 곽노에게 들려왔다. “얘, 아직 죽을 때가 된 것 같지는 않다.” “그러게 얘, 하느님이 사람을 죽이실 때는 피와 살을 말려서 죽인다는 것을 네 형부 때도 보지 않았니.” “매제도 고생이지만 누구보다 네가 고생이구나.” “저 꼴로 천년만년 살면 어쩌우,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저이보다 내가 더 불쌍하우. 말년에 병들어 누워 있는 남편 수발이나 들면서 살게 되었으니 말이우.” p.137
작가 김숨은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으로 <투견>, <침대>, <국수>, <당신의 신> 등과 장편소걸 <백치들>, <철>, <바느질하는 여자>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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