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로 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그는 결코 언어의 마술사는 아니었다. 언어의 지배자였을뿐. 미국에서 그를 제외하면 내세울 만한 소설가는 한명도 없다. 레이몬드 카버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이렇듯 절대적이다. 무엇이 나를 미치게 하는가. 불안하고 어두운 조명, 카버의 글들은 낡은 의자에 앉는다. 내일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어들은 그저 지나간 날들을 씁쓸히 뒤돌아 볼 뿐. 맥주를 따른다. 마신다. 담배를 피며 시선은 고정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몸을 뉘운다. 내일도 지친 삶은 흘러간다. 그러나 그의 글들은 그러한 일상 작은 것 하나도 놓지 않을 것이다. 자그마히 죽음의 냄새가 베어있기도 하다. 너무나 조용해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의 글 속의 죽음과 절망, 슬픔을 눈치채지 못한다. 숨이 막힐 듯한 '절제'다. 그래서 그 숨어있는 감정들을 만나는 순간의 감동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다. 생각해 보자. 몰아 치는 록음악 보다 조용하게 읖조리는 보사노바가 더 강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전화 거는 곳'에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를 건다. 슬픔은 나직한 대화만큼이나 작았다. 감정은 거짓말처럼 일렁이지만. '비타민'은 제목만큼이나 상큼한(?) 단편이었다. 카버의 소설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예의 그 건조한 부부. 사랑도 현실 앞에 무력해 지는 비극 앞에서 바보처럼 그저 흘려보내는 사람들. '대성당'의 감동은 이 단편집에서 꼭 빼먹지 않고 가져가야할 보물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에게 주인공이 그림을 그려주는 것은 커다란 화해였으며 따뜻한 의사소통이었다. 그러나 이 단편집의 백미는 '사사롭지만 도움되는 일(a small, good thing)'일 것이다. 뜻하지 않는 자식을 잃은 부부는 장난전화라고 여겼던 전화를 건 제과점 주인 찾아간다. 슬픔은 커지고 커져 마지막에 이르러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그러나 카버의 서사는 따뜻한 커피속에 갓 구운 빵을 부셔 넣듯 슬픔을 누그러 뜨려버린다. 밝아오는 아침과 함께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꽃이 된다. 영화 '몬스터 볼'을 보았는가?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들을 교통사고로 죽였었다는 것을 알았을때 소리내어 울다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그렇게 얼마간 별을 바라보다 영화는 끝이난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 만날 것이다. 아픔은 잊고서 삶은 계속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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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을 보다보면 그가 많이 언급하는 작가가 두명이 있는데 피츠제럴드와 이 책의 작가 레이먼드 카버이다.
그래서 스콧 피츠제럴드를 접한것도 그렇지만 레이먼드 카버라는 작가를 알게 된것도 당연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을 통해서이다.
"나는 카버의 소설에서 많은 것, 스타일과 방법 이상의 무언가를 배웠다. 그는 다른 누구와도 다르다. 그가 남긴 그 공백을 대신 메우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불가능하다." -무라키미 하루키
피츠제럴드의 책을 처음 접했을때 그의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에 깊게 빠져 들었다면, 레이먼드 카버의 문장은 매우 간결하고 응축된 언어로 정직한 단어를 사용한다.하지만 그 간결한 묘사이지만 눈앞에 풍경을 그리듯 자연스럽게 이어져 누구라도 싶게 책속에 빠져 드는 매력있다.
"지금 나는 그날 이발사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벌써 다시 자라기 시작한 내머리칼 사이로 움직이던 그 고요한 느낌을 다시금 생각해 보곤한다." p68 고요 中
"방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이제 아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훨씬 더 희미해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창문에 바스락 거리는 이파리는 아직도 그대로였다. 나는 그나무 이파리들이 유리창과 오마이카 카운터에 드리우는 그림자의 형태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물론 그형태도 아까와 똑같지는 않았다." p54 사랑에대해 말할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中
그의 문장은 자연스러운 듯하면서 내가 마치 그속에 있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의 문장을 읽고 있다보면 이사람이 단편이 아닌 장편의 추리소설을 쓴다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이들 정도로..
하지만 그의 단편의 매력은 단편소설에서 나타나는 생략이라던가 마지막 문장에 대해 독자로 하여금 사색이 들게 함은 단연 최고이다.
나에게 단편소설의 매력은 어느때고 부담없이 읽을수 있다는 장점 외에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사색에 빠지고 이해가 되지않을 때는 몇번이고 다시 읽을수 있는 것. 그것이기 때문에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은 곱씹어 읽고 또 읽어도 새롭고 기분좋은 느낌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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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몬드카버의 소설에는 이렇다 할 주제나 중심내용이 없다. 마치 우리의 일상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생동감이 작품 전반에 흐른다. 친구 부부를 초대하고 함게 저녁을 먹고 사랑에 관해서 소소한 잡담을 나누는 이 소설의 표제작 '사랑에 대해서 말할때우리들이 하는 이야기'는 정말로 그러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나누는 일상적 대화들에서 우리는 깊은 사유와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살아, 사랑도 마치 일상처럼 여기는 부부와 이제 막 싹을 뛰운 사랑의 봉오리에 가슴 저려하는 두 부부의 대비는 인간에게 있어 사랑의 감정이 어떤 식으로 시작돼,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를 마치 강물처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가장으로서의 고단한 일상을 다룬 '코끼리' 역시 일상에서 우리가 겪게 되는 고뇌와 발휘할 수밖에 없는 인내가 정점에 달하는 상황을 정밀하게 스케치하여 삶의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 우리의 삶에 있어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 소설을 통해 사랑도 삶의 일종이며 일상이 지나고 나면 꽃봉오리처럼 소중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려준다. 레이몬드카버의 경이로운 단편들에 나는 잠시 동안 숨을 쉴 수 없었다. |
| 내가 단편을 읽기 시작한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보통 소설이라 하면 책 한권의 분량의 이야기가 되야지 소설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단편보다는 예전엔 장편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장편의 방대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단편으로는 그런 매력을 느낄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어느순간부터 나는 장편보다 단편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인물과 사건이 얽히고 섥히는 복잡한 이야기는 없더라도 단편에서는 단백하고 순간, 순간 감동이 그대로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우연히 선택하게 된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집은 그런 단편의 묘미를 100% 느끼게해준다. 일상생활의 평범한 이야기들이 작은 행복을 줄수 있고, 슬픔도 극복할수 있는 따뜻한 용기를 준다. 그래서 나는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한 그의 글이 좋다. |
| 두번째로 만나게된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집이다. 맨 처음엔 숏컷을 택하게 되었는데 사실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뚜렷한 주제나 내용도 없이 그저 밍숭맨숭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들. 뭐 이딴 게 다 있어, 라며 건성건성 읽어내려가고 말았는데.. 이후에도 꾸준히 추천되는 그의 작품에 다시금 호기심을 느껴 이 책을 집어들었다. 결과는, 대단했다! 비로소 그의 매력을, 진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만의 개성과 뚜렷한 플롯이 나를 끌어당겼다. 특히나 재밌게 읽은 작품은 코끼리와 대성당 그리고 사사롭지만 도움되는 일인데 (물론 나머지 단편들도 괜찮았지만) 이 세 작품을 읽으며 나는 레이몬드 카버를 닮고 싶고 그에 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
| 레이몬드 카버의 글은 자연스럽고, 현실적이며, 담담하다. 개인의 인생을 확 뒤흔들만큼 거대한 일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기막힌 우연이나 행운에 의해 삶이 이끌리는 것도 아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삶이 묵묵하게 종이 위를 흘러갈 뿐이다. 때론 평범보다 조금 더 비참한 상황에 놓이는 주인공도 등장한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들은 그 상황에만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더 좋아질 날을 기대하며 한걸음씩 내딛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아마 더 공감하며 읽게 되나 보다.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들. 그건 내 주위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카버의 소설에 열광하진 않더라도, 깊은 생각을 하며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다면 그것은 그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사람냄새 때문일 것이다. 나만큼 평범한 사람들의 가끔 겪게 되는 우연한 일상과 대화를 들으며 남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 소설의 간결하면서 건조한 문체에서 그가 전해주는 일상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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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 그 작가가 어떤 식의 단어를 쓰고, 어떤 식의 문장을 쓰는가는 어떤 주제를 얘기하냐보다 종종 그 얘기에 몰입시키는데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단편집이 주는 매력에 대해 나는 일순간 의심을 품었는데, 이렇게 정직하고 간결한 단어와 문장이 어떻게 이토록 깊숙한 곳을 건드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레이몬드 카버의 문장들은 짧고 다소 건조하게 느껴지는 문체지만 그 내용에는 놀랍게도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일상에 대한 따뜻함이라고 해도 좋고, 삶이 우리에게 주는 여러 가지 것들 - 사랑이나 상실감, 또는 순수한 분노 따위의 - 에 대한 성찰이라고 해도 좋다. 그것은 때로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따분하게 느껴질수도 있는 소재이고, 때로는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러한 주제들이다.
하지만 그 온기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우리의 마음에 녹아들 듯 스며들게 만드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이 완성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온기가 아릿한 아픔과 슬픔이 동반된 온기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갑작스레 잃은 부부가 느끼는 억울함과 상실감, 분노는 기묘한 시간의 어긋남이 주선해준 한 제과쟁이의 따뜻한 빵 한조각의 위로로 잘 넘어가지 않는 알약을 삼키듯 삶의 아픔을 소화시킨다.(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 아내의 친구인 맹인의 방문에 대해 남편은 알수 없는 불안감과 불편함을 느끼지만 대성당을 같이 그려나가면서 맹인이 지닌 결여성에 함께 동참해나간다.(대성당)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들은 어쩐지 슬프지만 결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진실들을 다룬다. 그의 소설이 주는 매력은 우리의 얘기를 외면하지 않는 그런 진실성에 있다. 삶의 상처를 감싸안는 것은 타인에 불과할지라도 서로의 온기 뿐이라는 그런 진실, 우리가 하루하루 삼켜나가는 삶의 모습인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자식없이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어떠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의 인생은 끊임없이 오븐을 채웠다가, 또 비워내는 단조로운 작업으로 점철되었다...그 빵을 삼키는 기분은 마치 현란한 형광등 불빛 속에서 가슴까지 시원한 햇빛 아래로 나온 것 같은 맛이었다. 그들은 신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
| 한때 하루키에 깊이 빠졌던 적이 있다. 그러니까 1994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선전에까지 나오는 그 유명한 소설 <노르웨이 숲="">을 읽고, 난 어린마음?에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았었다. 그리고 난 그 후 몇 년간 하루키의 거의 모든 책을 샅샅이 찾아가며 말 그대로 탐독을 하였다. 그런 하루키의 영향은 내게 실로 막대했다. 심지어 작가가 되어 보겠다고 깝죽대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제대로 걸려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루키에 대한 열정은 <태엽 감는="" 새="">를 끝으로 (96년으로 기억된다.) 완전히 삭으러 들었다. 너무나 사랑스럽던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시큰둥하게 보이는 것처럼, 내게 하루키의 소설도 어느 날부터 그렇고 그런 책이 되어 버렸다. 난 그 후 하루키의 신간이 나왔다고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좀 매정했나...^^; ) 그리고 한동안 새로운 스승을 찾아 이책저책 기웃거리던 중 만난 스승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레이몬드 카버였다. 전 스승의 친절한 해설이 덧붙여져 국내에 소개된 카버의 소설은, 처음 읽는 순간 세속적인 표현으로 날 완전히 '뻑'가게 만들었다. 책표지에 쓰여진 '현대의 진짜 거장 가운데 한 사람.-뉴욕 북 리뷰-' '미국의 안톤 체홉, 단편문학의 거장... -어빙 호위,「뉴욕 타임즈 북 리뷰」-' 이런 표현들이 결코 과장이 아닌, 책 팔아먹기 위한 수작이 아님을 난 한편 한편 읽어가며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때가 98년, 그 후 난 국내에 출판된 그의 모든 책들을 (그래봤자 3권이다.)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카버의 글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이 책은 카버소설 전집 제1권으로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11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견고함과 빛을, 그리고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진 것이라 말하고 싶다. (별 6개라도 주고 싶다.) 여기서 카버의 소설에 대해 이런저런 주제 넘는 평은 하지 않겠다. 대신 그의 에세이 중에서 (전집 3권에 수록) 소설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밝힌 부분을 소개하며 아쉽지만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 "… 나는 소설 창작에 있어 '형식의 혁신'이라는 우울한 논의를 접할 때마다 은근히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글 쓰기에 있어 '실험'이 경박함과 가소로움, 혹은 모방에 대한 면죄부로 기능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더욱 고약한 것은, 실험이란 미명 아래 독자를 잔혹하게 짓밟고 소외시키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 시나 단편 소설에서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여 지극히 상식적인 사물을 글로 표현하는 것, 또한 그러한 사물들에 거대하고 놀라운 힘을 부여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또한 독이 없는 대화를 통해 읽는 이의 등골에 오싹한 한기를 전달하는 글을 쓰는 것도 가능하다." " 나는 단편 소설에 어떤 위협이나 협박 같은 느낌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 긴장 역시 꼭 필요하다. 무언가 절박한 상황, 처절한 행동이 곧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 " 단편 작가의 임무는 자신의 모든 힘을 이 '힐끗 보는' 데 투자하는 것이다. " " 만약 작가가 자신의 모든 힘을 모조리 짜내어, 쓸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을 쓰지 못한다면 도대체 그 사람은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가? " - 글 쓰기에 대하여 -사랑에>태엽>노르웨이> |
| 레이먼드 카버라는 생소한 이름의 미국 단편작가는 순전히 하루키 때문에 접하게 된 작가이다. 현대문학에 비중있는 작가라는 각 언론들의 극찬도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생경하다고 느꼈으나 단편집을 읽으면서 익숙한 작품 몇 편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하루키는 카버의 소설에서 많은것-스타일과 방법 이상의 무언가를 배웠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체홉이나 모옴, 헤밍웨이 등의 작가 계보를 잇는 현대문학의 중요한 위치의 인물이니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내가 뭘 알겠는가.. 라고 자학 조금 하고... 작가의 방법론 같은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그저 남다르게 느껴진 몇가지를 말한다면, 극도의 현실성과 마이너리티를 지향하는 작가의 세계관이 느껴진달까? 누구에게라도 한번쯤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작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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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카버의 총 11편의 단편작품이 실려 있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사실적인 에피소드를 가짐으로써 하나의 주제를 향해 밀도있고 획기적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마치 살아있는 올챙이 한 마리를 바라 보듯이 생기발랄하고 스피디한 문체가 독자로 하여금 즐겁고 유쾌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형식면에 있어서 강한 응집력을 보인다. 형식을 통하여 의미를 끄집어 내고 주제를 형상화 시킨다. 그의 작품들은 절대적으로 주제와 밀접하게 접근해 있다.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들지만 나는 특히 <내가 전화를="" 걸고="" 있는="" 장소="">, <열병>, <깃털>, <대성당>,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 등이 매우 인상깊게 읽었던 것 같다. 그중 <열병>이란 작품속의 노모 웹스터 부인의 따뜻하고 정감어린 시선과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온 몸에 온기를 느끼고 평온함을 전해 받는다.
"당신도, 당신 아내도, 착실한 사람들이예요. 이 일이 일단락되면 두 사람 모두 잘 해 나갈 수 있을 거예요." p.174
또한 <깃털> 속에 등장하는 부부 한쌍의 절묘하고도 유머러스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집 안을 거리낌없이 누비는 화려한 깃털의 공작의 방약무인한 모습과 동료친구의 아내 올라의 컨츄리한 순박함 등이 작품의 유머스러움을 한층 더하여 준다. <대성당>은 무라카미 하루키 또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작품이다. 특히 맹인과 남자가 두 손을 포개어 성당을 그려내는 모습은 가히 감동과 고통에 대해 강인하게 극복하려는 보이지 않는 마력적인 힘을 느끼게 해준다.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은 플롯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난 소설적 장치를 엿보게 해주었다. 아주 잔잔하고도 섬세하며 재치 넘치는 단편 소설들이 가득하다. 또한 이 소설들은 우리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며 사랑스러운 주제를 가슴속에 형상화 시켜 준다. [인상깊은구절] "잘 하셨어요" 웹스터 부인은 카알라일의 얘기가 끝난 것을 알아차리고 그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정말 좋은 사람이예요. 선생님 부인도 마찬가지구요. 그걸 잊어버리면 안 돼요. 두 분 다 이 고비를 넘기면 좋아질 거예요." 웹스터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풀었다. 웹스터 씨도 따라 일어나더니 모자를 썼다. 카알라일은 현관 앞에서 웹스터 부부와 악수를 나누었다. "잘 있어요." 짐 웹스터가 모자 챙을 슬쩍 만지며 인사를 했다. "행운을 빕니다." 카알라일은 웃었다. 웹스터 부인은 여느때와 같이 밝은 목소리로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건넸다. 카알라일은 마치 굉장히 중요한 어떤 문제가 해결되기라도 한듯 기운차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노부부는 조심스럽게 현관 계단을 내려가 자기네 트럭을 향해 다가갔다.사사롭지만>대성당>깃털>열병>사사롭지만>대성당>깃털>열병>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