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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게 지내는 사람 중에 레이몬드 카버 소설에 열성적인 친구가 있다. 대학 시절, 수업 중에 카버의 단편(대성당) 하나를 읽기는 했으나 내가 보기에는 순식간에 사람을 사로잡는 강한 흡입력도, 별다른 재미도 없는 밋밋한 작품이었다. 그 기억으로 인해 나는 카버에 대한 그 친구의 열광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재미없는 작품을 다른 사람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카버 같은 작가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그 친구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가 결국엔 카버 자체에 대한 흥미가 압도하였다. 그래서 구입한 책이 바로 '숏컷'이었다. 사실 대학 때 읽은 카버의 작품이 나에게 어떠한 충격도 주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밋밋한 글의 구성이나 극적인 요소가 배제된 그의 에피소드가 충격이라는 격렬한 어감의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성당'이 나에게 준 이미지는 꽤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아내가 데려온 맹인친구와 그를 질투하는 화자인 남편이 경험하는 심리적 분위기는 나를 사로잡아왔다. 그 분위기는 나에게 '이완된' 충격을 남겼다고 말할 수 있다.
'숏컷'에 실린 한 단편인 「수집가」는 실업과 동시에 아내에게 버림받은 남편이 화자이다. 그는 '북쪽에서 좋은 소식이 올 거라고 기대하며' 소파에 누워 우체부를 기다린다. 그러나 우체부는 오지 않고, 이혼한 부인이 행사에 당첨되었다며 진공청소기 외판원이 방문한다. 화자의 '무기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공청소기로 이곳저곳을 청소하는 시범을 보인다. 기이하게도 이 에피소드는 아내의 부재를 더욱 강력히 암시한다. 화자가 외판원이 빨리 떠나주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이 편지는 도착한다. 화자는 편지를 향해 다가가다가 외판원이 빨리 떠나주기를 재촉한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으로 카펫에 재떨이를 쏟아 붓고는 청소시범을 보인다. 그 동안 화자는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외판원은 편지를 그가 보는 앞에서 가지고 떠나버린다. 이 단편에서도 역시 극적인 구성이라고는 없다. 다만 기묘한 분위기가 있을 뿐이며, 그 분위기는 대단히 심리적이다. 그렇지만 카버의 단편소설들은 심리소설이 아니다. 미니멀리즘의 대표적 작가인 카버의 문장은 등장인물의 심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또한 작가의 자의식 과잉으로 인해 독자의 쓸데없는 연민이나 동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는 「수집가」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편지'를 통해 인생을 변화시키기 기에는 너무 무기력해지고 지쳐버린 한 인간의 아픔을 '이완된' 충격으로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충격들은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뚱뚱보」라는 단편의 화자는 영세한 레스토랑의 종업원인데, 그녀는 어느 날 뚱뚱한 사내의 테이블을 맡게된다. 주위의 시선은 그 사내에 대해 곱지 않고, 다른 종업원들은 뒤에서 그녀와 뚱보사내를 조롱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비대한 사내를 접대하면서 기묘한 감동에 휩싸인다. "고맙습니다. 그가 말하더군. 천만에요. 그렇게 대답하는데 또 한 번 이상한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거야. 물론 믿지 않겠지만, 언제나 이렇게 음식을 많이 먹지는 않는답니다. 그가 말했어. 난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요. 좀 쪘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나는 그렇게 말해주었지. 아닙니다. 그가 정색을 하고 말하더군. 만약 우리가 선택을 할 수만 있다면 마른 쪽을 택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136쪽, 11줄
'숏컷'을 읽으면서 나는 이전에 '대성당'에서 느꼈던 '이완된' 충격을 거듭 경험할 수 있었다. 일상적 인간들의 속물성과 무기력한 진실 사이에서 길항하는 인물을 서술하면서 카버는 우리에게 조그만 깨달음을 준다. 그러나 그는 속물화된 현실이 그런 깨달음으로 인해 변할 것이라는 기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듯하다. 일반적으로 독자의 흥미를 끄는 소설들은 극적이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다. 그러나 '숏컷'을 비롯한 카버의 단편들은 전혀 그러한 요소들이 없다. 그의 단편들의 많은 수가 별거와 불화, 파산 심지어 살인사건 마저도 소재로 삼고 있지만 전혀 극적이지도 선정적이지도 자극적이지도 못하다. 그러나 카버의 단편들이 갖는 미덕과 매력은 바로 그러한 점에 있다. 바로 우리들의 일상은 하나도 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파산을 한다면 다만 파산을 할뿐이고 이혼을 한다면 다만 이혼할 뿐이고 누군가 죽는다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다. 만일 일상에 극적인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다만 인간의 내면에 갇혀있는 미묘하게 떨리는 부호들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숏컷'은 카버의 인간과 일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단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상깊은구절] "고맙습니다. 그가 말하더군. 천만에요. 그렇게 대답하는데 또 한 번 이상한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거야. 물론 믿지 않겠지만, 언제나 이렇게 음식을 많이 먹지는 않는답니다. 그가 말했어. 난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요. 좀 쪘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나는 그렇게 말해주었지. 아닙니다. 그가 정색을 하고 말하더군. 만약 우리가 선택을 할 수만 있다면 마른 쪽을 택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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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기 보다는 그가 좋아하던 작가였고 덕분에 나도 읽어본 작품이다. 그의 성숙한 인격에 조금 감동이랄까...본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런 그가 좋아하던 작가는 어떤 작품을 썼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무라카미하루키..상실의 시대...라고 지금은 시판하고 있는 (구) 노르웨이의 숲 작가.. 가 이 책을 소개할때
[발밑에 흐르는 깊은 강]을 읽고 나는 완전히 카버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에 동감.
솔직히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책이었다. 내용도 평이하다고 생각했고 그냥 그런 사람이 사는 얘기들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생활하며 일어나는 아주 평범한 생활과 그 하루하루의 event정도? 그도 그러할 것이 '내가 미국생활을 한다면' 이라는 전제가 붙어야 하긴 하지만 자주 일어날 일일것 같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견 차이라던가 사고방식의 차이로 어긋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22살에는.
하지만 지금 28이 된 상태에서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니 정말 가슴이 싸늘할 정도로 공감이 가는 얘기들이다. 이래서 책은 두고두고 다시 읽어봐야 한다고 하는 가 보다. 그리고 가슴서늘할 만큼 놀라운 일들도 많이 있다. 행여나 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거나 혹은 이 책을 읽어볼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레이먼드카버. 그 사람이 미국에서 단편 작가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의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영화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잔잔함 속에 감춰진 잔인함이나 따스함. 그리고 인간의 자만심과 오만함을 비판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6년 전이었을 때 보다 사회에서 '한 사람의 오해 만큼 것 잡을 수 없는 것은 없다' (in 위대한 개츠비) 라는 것을 깊이 공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에 공감한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만큼이나 사람들을 이해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한다. 우리는 이해못하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자신이 우선 결론을 내고 상대의 얘기를 들어버리기 때문에 말하고 싶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이 아닐까..
하늘 아래 사람이 없다.
나는..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왔는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버려 무언가를 잃어가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다시 되새겨 봐야겠다.
will you please be queit, please? 라는 그의 또 다른 작품을 읽고 있지만 과연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ㅋ |
| 생소하지만 익숙하기도 하다.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들을 읽으며 떠올린 느낌이었다. 그는 에둘러 말하길 즐기지 않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 자리에서 즉시, 내뱉음으로써 미처 준비가 안된 독자들을 강한 흡인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마치 그것은 따라올테면 따라와 봐, 라는 광고 문안으로 시대를 달구었던 초고속 인터넷의 속도와도 같다. 레이몬드 카버는 현실적인 문체와 즉흥적인 장면으로 쏠쏠한 이야기들을 가득 담아두었다. 옛날 옛날에, 식으로 찬찬히 진행되는 이야기가 아닌, 상황이 벌어짐과 동시에 쏟아지는 그의 문체는 조금 생소하기도 했지만 매력있었다. 과연 단편의 묘미는, 이런 것이다. |
| 어떤 책을 읽고 충격에 빠져본 기억은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이후 두번째다. 나는 사람으로 가득찬 지하철에서 더블인을 읽으며 머리카락이 쭈볏 서는 경험을 했다. 그것도 요약본으로 된 영문책이었는데도. <숏 컷="">도 그랬다. 책을 읽는 내내 섬찟했다. 마치 내 마음을 들킨 것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저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 느낌은 더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는 듯한 글. 한편 부럽기도 했다. 단편문학시장이 잘 발달된 미국을 보면서 말이다. 그에 비해 우리의 단편은 시장도 작을 뿐 아니라 글의 수준또한 솔직히 말하며 그다지 높지 않다. 어서 빨리 단편을 전문으로 싣는 잡지가 창간되어 많은 사람들이 단편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숏>더블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