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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의 가치관과 공공선을 생각하며 결정을 하고 선택을 하지만 때론 후회를 하게되는 것도 사실이다. 경험과 지식으로 쌓아온 가치관들이 선택의 기준을 갖게 하지만 상황에 따라 흔들리게 되고 선택의 어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 킹 박사는 착한 선택이라는 제호를 사용하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풀어간다.
어릴적부터 윤리적 선택에 대해 중요한 기준을 학습하게 되었지만 현실에서 적용하기에는 쉽지않다. 그것은 윤리적 기준이 이상적으로 존재할 뿐 행동실천의 기준으로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이책에서 이언 킹 박사의 선택 기준은 행동 실천에 대한 새로운 학습을 시작하게 한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고 더불어 아름다워지는 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사회속에서 착한 선택이 어떤 영향과 관계를 세워가는지 깨닫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었던 윤리적 가치가 도덕규칙으로 재정리되면서 행동의 기준이 되게 한다. 그것이 착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자신을 위한 행동기준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착한 선택이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고 착한 선택을 통해 아름다워진 사회는 결국 소속된 구성원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착한 선택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최선의 결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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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면 특히 성인이라면 매 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가령 몸이 안 좋은데 더 누워있다가 아이를 유치원에 제때 못 데려다 준다든지 오늘 먹을 반찬은 뭘로 할까 라든지 같은 소소한 선택에서부터 직장인이라면 승진에서 그것도 여러번 누락되었을때 이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는지 눈치를 보면서 가족을 위하여 그냥 버텨야 하는지 그런 인생의 큰 선택들을 늘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선택을 어짜피 해야하는 인간이라면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옳고 그른 선택인지를 알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인간으로서 항상 선택을 해야하는 인간의 인문학적이면서 과학적인 모습을 꽤 많이 다루어주고 있다. 특히 과거에도 옳고 그름을 과학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을 탐구하였던 기록글이 수백년에 걸쳐 수많은 책으로 옷을 입고 나왔었다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옳고 그름의 판단에 뉴턴식 혁명이 필요하다고. 그런 과학적인 이유외에도 실용적인 조언들 그러니까 좀 더 토크쇼의 상담이나 토론같은 분위기의 사람들의 어드바이스같은 부분도 중요하다고 다룬다. 이 책은 옳고 그름에 관한 주도적인 이론들을 면밀히 검토해서 각 이론의 장단점을 확인하여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살리는 새로운 이론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책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단순한 에세이식이나 자기계발서같은 책의 느낌은 거의 없다. 인문학 도서의 느낌이 더 많이 든다.
이 책은 인간이 더 나은 선택을 그러니까 착한 선택을 하지 못할 때 학대나 학살같은 무지막지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1부에서는 항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 2부에서는 옳고그름의 역사들 혹은 철학적 심리학적 뿌리들을 찾아보고 있다. 3부에서는 옳고 그름을 마침내 결정하는 아홉가지 원리에 대해서, 4부에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옳은 결정을 내리자는 가장 대중적이며 재미있게 읽히는 부분이 5부 갈림길에 선 이들을 위한 선택의 윤리학이라는 부분까지 이어져서 이 책은 오히려 뒤로 읽어나갈수록 흥미진진해지는 내용이 가득하다. 6부에서는 지금까지의 옳고그른 선택에 대한 여러가지 고찰들 중에서 결론에 도달하는 내용들을 끄집어 낸다. 언제나 그것도 탁월한 결정과 옳은 선택을 하는 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이 인문학 도서같은 책을 다 읽어나가다 보면 어떤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보다 더욱 옳은 선택을 하며 잘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들게 해준다. 그렇다. 우리는 항상 착한 선택을 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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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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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에도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물론 여전히 도덕과학, 윤리학이라는 명칭이 통용되고 있지만 도덕, 선, 미덕, 윤리 등의 영역을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식의 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미확인비행물체(UFO)가 더 이상 미확인이 아닌 21세기가 되었건만 시비와 선악을 가리는 도덕과 윤리의 문제는 여전히 예술과 직관 또는 종교와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용감하게도 엄밀한 도덕과학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도덕과 윤리에도 뒤늦은 실증주의의 물결이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옳고 그름의 문제는 더 이상 신이나 신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인간의 지성과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논리를 주장한다. 이언 킹은 [우리는 왜 착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21세기북스, 2011)에서 야심만만하게 옮고 그름의 유전적 청사진을 제시하고자 한다. 옳고 그름을 명확히 구분하려면 독립된 규칙이 필요하다. 저자가 ‘옭고 그름의 DNA’라고 부르는 그런 원리가 필요하다. ‘주사위 던지기’식의 무작위적 선택이 아니라 후회 없는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의사 결정 체계가 필요하다. 저자가 과연 도덕과학에서 패러다임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저자는 옳고 그름에 관한 관점을 성품, 행동, 결과 이 세가지로 구분한다. 이는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미덕, 자유, 행복의 관점과 동일한 구분이다. 두 사람의 윤리학적 출발점은 차이가 있다. 샌델이 성품과 미덕을 강조한다면, 이언 킹은 행동과 규칙에 보다 더 중점을 둔다. 그런데 저자는 옳고 그름의 기준은 성품, 행동, 결과의 범주를 초월한다고 강조하고 이 세 윤리가 서로 충돌할 이유가 없다고 부연한다.
미덕중심의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으로 옳고 그름을 성품에 관한 문제로 바라본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에 대한 해답에 집중한다. 가령 좋은 사람은 올바른 미덕을 갖춘 사람 또는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런 관점은 공동체주의자의 윤리관으로 활용되곤 하는데 이에 대해서 저자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결과중심의 관점은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 같은 공리주의자들의 윤리학으로 행동의 결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어떤 결과를 선택해야 할까’에 대한 대답이다. 오늘날 윤리학에서 가장 지배적인 관점이 바로 이 결과중심의 윤리관이고 흔히 '최선책'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된다. 가령 우리가 선거에서 투표할 때 사용하는 기준이 바로 최선책 실행이다. 즉 여러 후보자들 가운데 그 중 가장 나은 후보자 일인에게 투표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최선책이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 저자의 답은 ‘아니오’다. 나에게 최선인 것이 모두에게 있어서도 최선책인 법은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벤담과 밀이 제기한 최선책 실행이 다음 일곱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자멸을 초래할 수 있다. 과거의 사건은 무시하고 미래의 결과만 고려한다. 결정권을 의심스러운 손에 넘긴다. 사람들을 공정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시킨다. 약속,공정성, 진실규명의 중요성이 낮아진다. 어떤 명확한 규칙도 제공하지 않는다.
규칙중심의 관점은 칸트의 윤리학으로 규칙과 규범에 따라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가름한다. 이는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대답이다. 저자의 기본 입장이 바로 규칙 중심, 행동 중심의 윤리관이다. 저자에 따르면옳고 그름은 성품에 관한 문제도 아니고, 신의 뜻에 관한 문제도 아니고, 행동의 결과에 관한 문제도 아니다. 규칙과 최선책 사이에 약간의 편차가 있을 때는 규칙을 따르는 것이 편리하다. 규칙과 최선책이 충돌하는 경우 이마누엘 칸트가 제기한 ‘규칙의 규칙’을 응용할 수 있다. 규칙의 규칙이란 모든 사람들이 특정 규칙을 따랐을 때 어떤 세상이 될지 상상해보고, 그 규칙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지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규칙중심의 관점은 두 사람 사이의 윤리, 즉 일대일의 개인주의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도덕률의 기본적인 근거로 이른바 ‘도움원리’를 제시한다. 도움원리란 “당신이 도움을 주는 데 드는 수고보다 도움 받는 사람이 얻게 되는 것의 가치가 더 크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내용으로 오늘날 지배적인 윤리 이론인 ‘최선책 실행’의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을 취한 새로운 의사결정체계이다. 저자가 정의한 좋은 사람 혹은 선한 사람이란 타인에게 공감하고 의무에 충실하며, 도움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다. 물론 도움 원리 외에도 저자는 자율성 원리, 상호주의 규칙, 개입의 의무, 보너스 이익의 원리, 겸손함의 규칙 등을 자신의 도덕 패러다임에 포함시킨다. 저자가 말한 도움 원리는 법, 정치, 사랑, 경제 등 수많은 분야에 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데, 문제는 도움 원리가 두 사람의 일대일 관계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때에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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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착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이언킹)
저는 여러사람들에게 "아프리카에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대부분 이런 대답을 하죠. "한국에도 힘들게 사는 사람이 많은데 왜? 굳이 아프리카야?" 이때 저는 선순환적인 역활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과거 한국의 경우 교육을 통해 많은 이들이 경제 부흥을 이끌고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극빈층을 벗어날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런 시스템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끔 기부를 하지만 그럴대마다 더많은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더라구요.. 그래서 남들에게 저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이런 생각을 남에게 이야기 할때 가끔은 과시용으로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나는 이렇게 착한 사람이야'라는 생각도 하기도 하죠.. 개인적인 이윤을 위해 하는 것처럼 보이는게 정말 싫지만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려 합니다. 저의 이야기에 제 이야기를 듣는 청취자의 생각도 조금이라도 바꿀수 있을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죠. 책 '우리는 왜 착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서 "우리 주위에는 명성이나 사회적 지위 등 순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목적으로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과시용 자선은 도움원리를 적용하는 것은 약간 지나치게 즐긴 결과인 듯 보인다." 라는 말을 합니다. 저는 남에게 과시하기위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선행을 하는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해봅니다. 남을 도운건 사실이고 이를 통해 좀더 나은 사회를 만들수 있으니깐요.. 그래서 과시용 자선은 절대로 하면 안된다는 거야?? 헌데 작가 이언킹도 마찮가지로 과시용 자선도 도움원리를 적용받아야 한다고 하네요 이책에 딴지 걸고 싶었는데 급 동지애를 느꼈습니다. 어느날 TV에서 가난으로 굶어 죽고 앙상한 팔과 다리에 비해 남산만한 배를 보면서 불쌍하고 미안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도 진심으로 그 아이들을 걱정하죠.. 그러나 이렇게 착한 사람이 많이 있음에도 끝없이 이어지는 아이들의 죽음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까요? 이들은 생각만 착한 사람 인가요? 그렇치 않습니다. 단지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자신의 생각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혼란스럽고 걱정과 고민들이 이내 그 죽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밀쳐 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사람이 정말 많군요.. 육체적으로 괴롭고 힘들고 죽는 것처럼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죽고 싶고 자살하는 상황도 나타납니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어떤 마음을 가지면 좋을까? 생각에 접어 들었습니다. 무엇이 좋을까? 개개인마다 자신의 가치 추구를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즉, 우리가 태어난 목적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단지 태어나서 설렁 설렁 살다가 삶을 마무리 한다면 자신이 죽기전에 어떤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할지 고민도 해보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우린 무언가를 하기위해 존재하는게 아닐까요? 저의 경우 조금이라도 세상을 밝게 만들고 싶은게 바로 저의 가치 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누군가는 도움을 주어야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것이죠.. 당신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없다면 지금이라도 무엇을 하든 가치를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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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는 '기회비용'이라는 용어가 있다. 어느 하나를 선택함으로서 가지는 가치는 그 선택에 수반되는 다른 선택을 포기함으로서 발생하는 가치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 책의 표지는 구름아래 널려 있는 봉우리를 바라보는 한 사람의 뒷모습을 그려낸다. '선택'의 중요성과 선택에 따른 책임에 대한 이 표지 그림만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더 있을까? 선택은 그만큼 자신의 가치관과 세상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요구하지만 인간은 한계가 있기에 그 선택에 있어 고독하고 또 두려움이 깃들수도 있을 것이리라. <우리는 왜 착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는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옳고 그름에 대한 선택의 문제... 옳다고 선택하고 그르다고 선택한 부분들이 진정 우리의 삶과 공생에 있어서 적정한 것인지 늘 의심하고 때론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했기에 느끼는 고민에 대한 답을 주려고 노력하는 책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출판계를 강타한 것은 두 개의 책이다. 하나는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와 또하나는 하버드대 교수인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특히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치철학 측면에서 우리가 가져야하고 지켜야할 정의란 어떤 것인지 설명했다면 그와 일맥상통하는 면에서 이 책의 가치 또한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선택이 늘 옳은 것이고 정의라고 생각하는 오류는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혼돈속에 빠뜨리는 주범이다. 그러기에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언급하였고 이 책에서도 논의에 출발선상에 하나의 동기가 된 것이 바로 제레미 벤덤의 공리주의이다. 제레미 벤덤의 공리주의는 '최선책 실행'으로 대변되는 집단의 이익에 치우친다. 언뜻 보면 다수의 이익이 결국 최대의 행복을 누릴 것으로 보이지만 개개의 인격체인 인간에게 그 다수의 행복이 다수일 뿐이지 개인에게까지 적용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최선책 실행'의 일곱가지 오류에서 출발한다. 벤덤과 서구의 많은 사상가들이 고민했던 문제.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옳은 선택은 무엇일까? 그 방향에 대해 저자는 '최선책 실행'을 보완하는 원칙과 기준, 그래서 의사결정의 토대를 새롭게 닦기 위해 진정한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하기에 이 책에서 그 옳고 그름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옳고 그름에 대한 20가지 원칙은 우리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수없이 많은 나쁜일들을 근절시키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한결 살아갈만한 곳으로 만드는데 당위성이 된다. 샌델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지금 우리 시대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통속소설도 아닌 정치철학에 대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점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그만큼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게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정의가 아니다'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그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이고 지금의 사회정의와 정치는 그런 목소리를 달래줄 원칙을 세워주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는 왜 착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는 이런 면에서 좀더 개인에게 그 원칙을 부각시키고 각성시켜주는 책이다. 정의는 구호가 아니다. 정의는 개개인이 옳다는 것을 세상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통해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가치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옳다는 것...그 정의를 선택하는 데 있어 개개인의 뚜렷하고 올바른 가치관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일상에서 직면하는 고민...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자 가치관을 제시해 주었다. 이제 그 가치관을 통해 우리가 선택하는 옳은 것에 대해 끝까지 지켜나가는 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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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난 지금도 책이 인상깊다라는 생각보다는
지금까지 학교에서 교육받아온 내용들은 매우 윤리적이어서
그래서 글쓴이는 이 책을 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착한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는
모든 최선의 선택에는 선한 윤리를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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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은 바로 학습의 효과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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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하는것에 착한과 나쁨이 따른다는걸 잠시 잊고 있었다. 우리는 선택을 하는순간 책임이 따른다는건 알고 있다. 그래서 선택의 기로에서 많이들 망설이다. 기회를 놓치기도한다. 그런 의미에서만 생각을 했지 그 선택이 착한 선택이고 나쁜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왜 착한 선택을 해야하는가란 책을 접하고 선택에대한 많은 생각과 각성을 하게되었다. 책의 내용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첫장을 넘기는순간 이런 어렵겠다란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의외로 내용은 사례들 위주로 되어있어 흥미롭다 . 신은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쳐주는가?에서는 주사위인간에대한 사례를 들고 다음 종교에서 답을 구할수 있느냐에대한 질문을 던진다. 많은 종교단체에서 자신의 교리에 맞는 조언을하게된다. 일례로 정략결혼을 들고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정략결혼을 옹호하지만 기독교에서는 반대한다. 유대교는 조개를 먹는게 죄가되고 힌두교에서는 소를 먹으면 안된다. 불료에서는 살생을 반대해서 살아있는 동물을 금한다. 이렇게 종교에따라 참과 그름이 모순됨으로 올고 그름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옳은 행위에 대한 우리의 생각중 가장 대표적인 제품이 커피다 공정무역 커피를 사는 사람에게 제품뿐만 아니라 옳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궐리까지 판다는 것이다 이때 제품 구매자는 자신의 행위가 옳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악행도 선행이 될 수있다. 그럼으로 개인의 진실은 잊어라 따라서 우리는 평소에 공정무역 커피를 구매해야하고 비열한 정권을 위해 일하는걸 거부해야 한다. 다만 대안이 없고 타인의 행동이 더 나쁜 영향을 미치는걸 막고자 할때만 악행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대를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와 비슷하게 들린다. 그럼 그 소수의 진실은 어떻게 될까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결국 선택은 각자의 목으로 남는게 아닐까 그럼왜 이렇게 선택에대한 고민을 해야하느냐를 묻는다면 올은 세상을 만들기위해 착한선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게 착한 선택이냐고 질문한다면 이또한 선택이 따른다 책을 읽을수록 선택에대한 개념이 너무 어렵다. 저자는 말한다. 변명의 여지 없이 옳은 일을 해야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하고 나쁜일은 근절해야 하며 세상을 훨씬 더 살시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것이 옳고 그름에 관한 설명이라고 선택은 우리 인간의 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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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영국의 도덕철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책 소개에는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 등지에서 극히 까다로운 결정을 내려야 했던 자신의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정작 책 내용에는 이러한 결정 경험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없고, 비유적인 언급들만이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이 책 서문의 제목이 "옳고 그름의 공식을 세우다"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도덕률이 무엇인지에 대해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런 공식을 세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옳고 그름에 관한 주도적인 이론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각 이론의 장단점을 확인한 뒤,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살리는 새로운 이론을 모색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 책은 첫 장부터 사람들의 행동 방식에 대한 문제 유형들을 제시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거의 비슷한 형식으로 책 내용이 흘러간다. 벤담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부터 시작해서 존 스튜어트 밀의 최선책 실행 원리, 그리고 이어 칸트 철학, 존 롤스의 차등의 원리, 즉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도우라는 주장 등이 전개된다. 또한 종교와 관련하여 신이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모든 종교가 스스로를 참된 종교이자 신적 기원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이 책의 핵심원리인 도움 원리를 소개하고 있다. 당신이 도움을 주는데 드는 수고보다 도움 받는 사람이 얻게 되는 것의 가치가 더 크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바로 옳고 그름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 전개가 논리적이며 체계적이다. 이를 따라가다 보면 결론적으로 이 책 맨 끝장에 제시되는 공식이 나온다. 이를테면 가치를 추구하라,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라, 그리고 의무에 충실하라, 당신이 누군가를 도우려 할 때, 그 사람이 무엇을 가장 필요로 하는지는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기에 도움의 유형은 도움 받을 사람 스스로가 선택하게 하라, 다른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막아야 할 경우에만 허용된다 까지 총 20개의 도덕률이 제시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이 책에 실린 이야기를 잘 따라가다 보면 고개를 끄덕일 옳고 그름의 원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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