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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박물관에서 올 겨울부터 시작된 샤갈 전을 “봐야지”라고 마음을 먹고 있다가 결국은 보지 못하고 말았다.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를 읽으며 샤갈전의 가치를 이제야 깨닫는다. ‘색채의 마술사, 화가의 날개를 지닌 시인’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샤갈이 어떻게 성경에서 영감을 얻어 성화를 그렸는지 궁금했다. 더군다나 자신의 믿음을 바탕으로 예수의 탄생과 부활을 사실적으로 그린 고전주의 화가들과 확연히 다른 샤갈이 그것도 창세기를 배경으로 성화를 그렸다는 것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예술서는 항상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표지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의 그림으로 장식이 되었는데 한 눈에 보아도 샤갈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책 표지는 예쁘고 종이 질도 무척이나 좋다. 한 마디로 고급스러움 때문에 기분 좋게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책이다.
몽환적이고 순수한 감성을 그의 화폭에 화려한 원색으로 표현했기에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리는 샤갈은 기독교의 정통교리로 본다면 신앙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 책의 저자 배철현은 “렘브란트, 라파엘, 미켈란젤로, 엘 그레코 등의 성화를 찾아보았지만 감동이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들의 그림이 히브리어 원문을 읽은 것이 아니라 기원전 2세기 그리스어 번역본인 칠십인역이나 기원후 5세기에 기록된 라틴어 번역본 성경을 기초로 그림을 그렸기에 구약성서의 원문과 그 심층적인 의미를 소화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샤갈은 하시디즘(Hasidism- 유대신비주의) 공동체에서 자랐기에 구약성서의 히브리어 본문 내용뿐만 아니라 그 숨겨진 의미까지 완전히 이해하고 그림을 그린 처음이자 마지막 화가라고 극찬을 하고 있다. 아마 저자가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전공했기에 할 수 있는 평가인 것 같다. 원어를 전공한 뒤로 20년 동안 성경을 읽는 것이 자신의 삶의 버팀목 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며 그의 삶에 대한 부러움이 있다. 왜냐하면 성경의 완전영감을 믿지 않으면서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우리 교회의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경을 히브리어로 읽고 행간의 의미까지 알고 성화를 그린 샤갈을 분석해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이해한 저자는 샤갈의 그림을 일곱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다. 마치 일곱 색깔이 모여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드는 것처럼 이 책은 샤갈의 종교관과 그의 예술 세계를 무지개처럼 빛나게 하는 힘이 있다.
‘샤갈은 학문으로서의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다. 모든 종교, 모든 사상, 모든 꿈, 모든 우주존재는 그 안에 신적인 불꽃이 있어서 자유롭게 되어야 하며 이 자유는 근본적으로 ‘완전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샤갈은 뼛속까지 다른 의미에서 ‘종교적인 화가’라고 할 수 있다. 이 표현에서 ‘종교’란 특정종교가 아니라 ‘우주적인 종교’ 혹은 ‘보편적인 종교’를 의미한다.‘(164쪽) 이 부분은 정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일 것 같다. 2. 샤갈은 아가페/헤세드의 사랑을 고통을 통해 완성되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샤갈의 관심은 구원의 십자가도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도 아니고 오직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창세기의 시작인 우주창조를 그리지 않았고 십자가를 인류의 고통이 상징으로 보았지만 철저히 휴머니즘에 근거했기에 구원을 말하지 않는다. 렘브란트, 라파엘, 미켈란젤로, 엘 그레코등이 저자의 지적대로 원어를 읽고 성화를 그린 것은 아닐지 몰라도 저들은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사해주기 위하여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졌다는 기본적인 신앙고백위에서 그려진 그림들이다. “신앙고백과 원어를 바탕으로 그려진 성화 중에서 어떤 것이 더 감동을 주냐?”고 이분법으로 묻는다면 나는 자신의 신앙고백이 들어가 있는 성화를 선택하겠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 고통의 십자가보다 인류를 구원한 십자가를 말하기 때문이다. 비록 샤갈의 그림이 하나님보다 철저히 인간중심이라 할지라도 그의 성화를 통해서 모든 인류에게 최고의 가치로 남아있는 사랑을 볼 수 있다면 샤갈의 그림은 큰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 ![]()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부수적인 즐거움은 샤갈의 성화를 분석하면서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얼마나 성경과 거리가 있는가를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방주사건을 통해서 ‘다시는 물로 인간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무지개를 보여 주시며 이것이 너희와 나의 언약이라고 하신다.(창9:12-13)’ 저자는 언약(to cut a deal)의 뜻을 ‘만일 계약을 파기하면 이 잘린 고깃덩어리처럼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엄숙한 의례행위다.’ 라고 해석한다. 요즘처럼 하나님과의 약속을 물 먹듯이 배반하는 우리들에게 경정을 울려주는 두려운 말씀이다. 창세기 12장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우르(이라크)를 떠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은 우르를 떠나 정착한 하란에서 다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아들인다. 이 명령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영적인 여행을 감행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는 삶, 그 삶은 사실 과거로부터의 단절, 삶의 근본적인 시각의 변화를 통하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다. 아브라함은 과감히 떠났다. 여기서 떠났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할락’이다. 이 단어는 ‘가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매일 매일 그런 삶을 살았다’를 의미한다.(66쪽)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들었지만 이 복이 물질이나 명예등 우리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무릎을 꿇고 깨달아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추구한 복이 얼마나 값싼 것이고 엉터리인지 자각할 수 있다. 또 하나님(야훼)의 해석도 재미있다. ‘누구든지 만나기만 하면 살맛나게 하시는 분’ 하나님은 우리를 살맛나게 하시는 분‘ 하나님이란 단어의 뜻만 제대로 안다 할지라도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이 믿음이란 생각이 든다. 때로 인문학은 이해하기보다 감탄으로 다가올 때가 있는데 지식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아~ 이런 놀라운 세계가 있었구나!” 이런 감탄과 탄식이 있을 때 지식은 탐욕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 탐욕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읽고 난 뒤에 뿌듯함이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적으로 조금 성숙했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술의 본질이 종교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샤갈의 그림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비록 신앙고백을 통해서 만나는 하나님은 아니지만 사랑이야 말로 가장 보편적인 가치이고 그 사랑의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샤갈의 신앙관을 통해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절대적인 가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요즘처럼 교리적으로 하나님을 말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불쾌감이 있지만 예술을 통해 저자의 가치관을 만들어준 성경을 만난다면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샤갈의 성화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그 때문에 샤갈의 성화 앞에 서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이 보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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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그림 화가로서의 샤갈은 남들이 가지지 않은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의 무의식과 그것을 형상화하는 역동적인 상상력이다. - 배철현의《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중에서 - * 깊은 무의식의 세계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샤갈의 상상력, 그 끝없는 상상의 세계가 마치 현실처럼 펼쳐지는 샤갈의 그림을 보며, 우리 또한 끝없는 상상의 세계. 저 멀리 떠나온 유년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상상 속에 새롭게 태어납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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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하는 질문에 "나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나는 행복하다"는 대답은 인생의 질곡이나 어두운 터널을 경험한 후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길 때 가능하다. - 배철현의《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중에서 - * 인생의 질곡, 어두운 터널이 불행만을 안겨주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의 질곡'이 행복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어두운 터널'이 밝은 희망의 빛을 만나게 합니다. 그 질곡과 터널을 경험하고 얻어지는 행복, 그 행복을 맛보면 그 다음에 다시 만나는 인생의 질곡과 어두운 터널도 행복의 징검다리가 됩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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