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프랑스 사람인 자크 타티 감독이 1967년에 만든 <플레이타임 Play Time>은 머리 아프게 이야기를 따라갈 것 없이 그냥 보면서 가끔씩 귀를 열어두기만 하면 되는 영화였다. 프랑스말과 영어가 같이 나오지만 카메라가 보여주는 파리와 사람들의 모습만 구경하면 된다.
시골에 살다가 서울로 구경 나온 것처럼 파리를 휙 둘러보고 지나가는 영화 같았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프랑스 파리의 모습은 아니다. 에펠탑이 나오기는 하지만. 감독이 새롭게 다듬어 만든 파리의 모습이다. 그래서 빛깔이 남달랐다. 감독이 몸소 나와 연기를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영화이기도 하고.
2. 윌로(자크 타티) 씨가 파리에 볼일을 보러 가는 일에서 영화는 비롯된다. 지파르를 만나러 가면서 윌로씨가 겪는 일들과, 미국에서 파리를 구경하러 온 무리에 끼어있는 바바라(바바라 덴넥)가 만나는 일들이 따로 나오다가, 윌로와 바바라가 같이 다니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벌이는 일들을 그린 영화라면, 말이 많이 오갈 듯하지만 그렇진 않다. 누굴 정해놓고 싸우거나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124분을 어떻게 보나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시간은 잘 갔다.
주인공인 윌로와 바바라가 더 많이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곁에 있는 이들이 살아가면서 하는 말들이 더 많다. 그래서 처음부터 보지 않으면 누가 주인공인지도 눈에 안 들어올 수 있다.
3. 줄거리를 따라 가는 영화가 아니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감독이 일부러 새롭게 꾸민 파리의 모습을 구경하면서 보면 더 좋을 영화다.
남다르게 꾸민 파리의 모습은 돈을 많이 들였지만 생각도 많이 해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모습이 이제의 파리와 달리 낯설지만 새롭고 산뜻해서 보기에 좋았다. 반듯하게 높이 세운 직사각형 건물에 유리창을 많이 붙여서(이런 걸 커튼월 방식이라 하는지 모르겠다) 시원하게 보여주었다. 요즈음의 높은 빌딩 같기도 하지만, 앞날을 다룬 영화에서나 나오는 건물과 닮았다.
영화는 벌어지는 시간에 따라서 크게 네 갈래로 나뉜다. (1) 공항을 오가는 이들의 모습 (2) 파리의 박람회장에서 일어나는 일들 (3) 레스토랑에 와서 밥 먹고 춤추는 사람들과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4) 아침을 맞아 가까운 슈퍼에서 커피를 마시고 물건을 사는 모습 그 틈바구니에서 윌로 씨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얽힌 일들이 나오기도 한다.
이 가운데 새로 고친 '로얄 가든'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받는 장면이 길게 이어지는 게 볼만 했다. 이어지는 코미디 몇 편을 보는 듯했다. 곳곳에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윌로 씨와 가까운 이가 부서진 유리 문의 손잡이로 보여주는 우스개나, 같은 먹을거리에 몇 번이나 다시 양념을 뿌려대는 모습도 즐겁다. 손님들이 가운데 나와 춤추는 모습도 좋고, 덜 고친 탓에 직원들이 우스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 영화라는 생각이 안 들고, 나이트 클럽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냥 찍어놓은 듯했다.
여기서 윌로 씨와 바바라가 같이 춤을 추지만, 헐리우드 영화처럼 사랑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게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즐거운 만남으로만 끝나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4. 말 없이 웃기기만 하는 영화로 보일 때가 많아 실실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로, 어찌보면 영화가 아니라 살면서 가깝게 볼 수 있는 자잘한 웃음거리를 찍어 보여주는 듯했다. 윌로 씨가 지파르와 벌이는 술레잡기(?)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고, 박람회장에서 진공청소기나 방음문을 팔려고 애쓸 때나, 마치 미로 같이 만들어진 사무실들이나, 밖에서 훤히 다 들여다 보이는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따위의 풍성한 볼거리를 안겨주었다.
줄거리의 앞뒤가 잘 들어맞고 나오는 사람들의 사이를 훑어가는 영화를 좋아하거나 화끈한 이야기나 장면을 좋아하는 이한테는 이 영화가 졸릴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은근히 웃기고 자잘한 즐거움을 준 영화라 처음 생각한 별 넷에서 다섯으로 올려 매겼다.
이 감독의 영화는 처음 보았는데, 1953년 작품인 <윌로 씨의 휴가 Les vacances de Monsieur Hulot / Mr. Hulot's Holiday>와 1958년 작품인 <나의 아저씨 Mon oncle>가 이름이 났지만, 사놓은 디뷔디를 아직 보지는 못했다.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감독은 윌로 씨로 나와 바바리 코트에다 모자를 쓰고 담뱃대를 물고 나온다고 한다.
돈을 많이 들여서 만든 영화지만, 돈을 벌지는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이 영화 때문에 감독은 빚을 많이 져서 열 해나 힘들게 살았단다.
그냥 눈으로 보고만 있어도 즐거운 영화인데, 왜 많이 보지 않았을까? 화끈하게 보이지 않아서 그랬을까? 잔잔하게 사람들을 웃기려는 감독의 솜씨가 그 시절 사람들의 생각보다 앞서 갔기 때문일까? 시대를 앞서간 예술은 그 때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
5. 만든 지 마흔네 해나 지난 영화지만, 디뷔디는 화면이나 소리가 괜찮다. 우리 눈에 익은 파리와 너무 다른 파리의 모습을 깔끔하게 보여준다. 프랑스 말은 우리말로 옮겨놓았으나, 틈틈이 나오는 영어는 그냥 두기도 해서 알아서(?) 들어야 한다.
그런데 오래된 영화라 그런지 덤은 없다. 예고편조차 없다. 이렇게 남다른 영화를 만들었으면 감독이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듣고 싶은데, 그런 바람은 채울 길이 없다. 많이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