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서부터 엄마보다 아빠를 유난히 더 따랐고 지금도 아빠의 그 목소리, 온화한 표정, 따뜻한 품이 많이 그립다. 언제부터인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늘 아빠를 떠올리며 왜그렇게 일찍 우리 곁을 떠나셔서 그립게만 하시느냐고 원망도 해보고 사무치게 그리워도 해본다. 지금도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금 내 옆에 계시다면 이까짓 것! 괜찮아! 하며 툭툭 털어버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
|
어린시절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해보지않은 나에게는 현수가 느끼는 감정들이 생소할수 밖에 없었다. 어린시절 내눈에 비친 우리 아버지는 완벽 그자체였으니까.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에게도 결점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형제들에게 아버지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좋은 아버지였다. 만약에 그 시간들을 돌려 아버지의 존재가 없다고 생각하면 참 쓸쓸하고 아플것 같다.
위탁가정에 맡겨져있는 연수는 학기가 시작되는게 참 싫다. 구구절절 가정사를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고생스러워했던 기억만 잠깐씩날뿐 연수에게 아버지는 현수를 내다버린 기억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존재이다. 지금 위탁가정이 주는 편안함속에서 한가족으로 어울리고 싶은데 아직은 연수는 겉돌뿐 완전한 가족의 일원이 되지는 못한것 같다. 이번에도 연수때문에 해외여행이 불발될위기에 처하자 수아는 아버지에게 자꾸 신경질을 내고 그 신경질이 연수에게로 향하는것같아 연수는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연수는 아버지를 찾기로 했다. 어떻게든 끝을 내야 가족이되던지 떠나던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릴수있을것 같아서다. 한아주머니가 아이를 달래가며 버스에 오른다. 그래 아버지와 연수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었다. 아이가 울수록 아주머니는 아이에게 쩔쩔매고 그현장을 연수를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간신히 고향마을에 도착해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던 아저씨를 만나고 아버지가 있다는 주소를 받아들게 되지만 뜻하지않은 패싸움에 휘말려 파출소로 가게된다.
언제나처럼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말에 연수는 낯선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아버지를 찾는다. 처음에는 장난인줄 알던 전화기속 여자는 금방 파출소로 달려오고 그여자에게서 아버지의 사정을 듣게된다. 아, 아버지, 어느새 왜소한 노인이 되어버려 연수도 알아보지못하는 아버지. 예전에 연수에게 만들어준 나무새를 연수인냥 품고 지내는 가여운 아버지. 그런 연수에게 도착한 문자메시지. "널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아버지를 찾아나선 소년의 걸음이 불안하다. 가는 곳곳마다 몇안되는 아버지와의 기억이 떠오르고 찾았다싶으면 어느새 아버지는 더 먼곳으로 사라져있다. 간신히 도착한곳에서 만난 아버지는 소년의 이름만 부를뿐 소년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그래도 그런 소년이 돌아갈곳이 있다는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그동안은 아버지때문에 안으로 움츠려 날개 한번 펼수없었던 소년은 이제는 아버지의 기억을 말함으로 움츠린 날개를 펴고 비상할 것이다 |
|
며칠 전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자가 가장 길고 무한한 시간의 단위인 '겁(劫)'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알려주고 있었다.
|
|
처음부터 내내 긴장을 하면서 읽다가는 결국 왈칵 눈물을 한번 쏟았고 마지막에선 마음이 편안해졌다. |
|
'아버지'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같이 TV를 보고, 같이 야식을 먹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일상적인 모습뿐 아니라 잘 어울리는 양복을 입고 나보다 훨씬 유창하게 영어를 사용하는 멋진 모습도 같이 떠오른다. 여느 집 자식들, 아니 그 이상으로 속을 썩여 대긴 했지만 그래도 아빠와 나는 나름 친한 사이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부녀 간의 끈끈한 인연이 있으니까.
어머니나 아버지. 부모님과 자식은 말 그대로 피로 맺어진 인연이라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부모님의 이혼 때문에 떨어져 살게 된다거나, 혹여 돌어가셨다 하더라도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나를 낳아 주고 길러 주고 언제나 변함 없이 사랑해 주는 분들이 부모님이다. 그런데, 부모님이 엄마 아빠 두 명이 아닐 수도 있다?
연수의 어머니는 연수가 어릴 때 돌아가시고, 돈 벌러 집을 나간 아빠도 행방이 묘연했다. 고아원에 들어간 연수에게는 후원자 엄마 아빠가 생긴다. 처음엔 단순히 고아원에 있던 연수에게 물질적인 지원을 해 주는 정도였으나 이내 그들은 연수를 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호적상으로 연수는 여전히 고아다. 연수를 낳아 준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는 행방불명 상태일 뿐 생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새 부모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서류만이 아니다. 연수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분명히 자리잡고 있다. 아버지가 무능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내가 고아가 되어 버린 거라고 아버지를 미워하는 연수지만 단순히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미움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만은 없다. 밉다 밉다 해도 결국은 자기가 자라난 고아원으로 돌아가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에 대한 것들을 묻고 아버지를 찾아 길을 떠나게 되니 말이다.
남들은 한 명씩밖에 없는 아버지가 연수에게는 두 명이다. 좋은 게 두 개나 있으면 남들보다 더 좋을 것 같지만 매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새아빠의 큰 사랑을 잘 알고 있는 연수지만 낳은 아빠를 저버릴 수는 없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연수가 (두 명의)아버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흥미 있고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잘 만들어 놓았다. 마음 한 구석에 묵직하게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
|
가슴 뭉클하게 하는 진한 감동이 책을 읽은 후에도 짙게 남아있다. 어머니라는 이름과 달리, 아버지는 항상 무뚝뚝하고 자식에 대한 사랑을 내색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끔찍한지 우리는 알고 있다. 커가는 과정에서 아버지와의 크고 작은 마칠로 인해 그 사랑을 미처 느끼지 못하지만, 철이 든 후에 자식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비로소 깨닫는다. 책을 읽는동안 친정 아버지를 떠올렸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제대로 건네주지 않으셨던 아버지였지만, 나이가 든 후에야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그 진한 사랑을 연수가 깨달아가는 과정이 공감을 일으키면서 내게 벅찬 감동으로 전해졌다. |
|
<아버지, 나의 아버지(푸른도서관 43)>는 옛날 옛적 신화시대부터 현재의 디지털시대까지 영원한 주제라 할 수 있는 ‘아버지 찾기’ 모티프를 다루고 있는 성장소설이다. 아버지 찾기란 무엇인가? 그들이 찾는 아버지는 자신의 뿌리이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규정짓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란, 기실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모험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고구려의 유리왕이나 그리스의 테세우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 곧 자신을 찾아 머나먼 여행길을 떠나는 것이고, 그들뿐 아니라 그 이전과 그 이후 수많은 이들이 이야기 속에서 그리고 소설과 영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길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평범한 아이들이 갖고 있는 평범한 울타리를 나도 갖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내겐 이 모든 것이 욕심이고 허영이어야 하는 것인지. 왜 아버지에게 친권포기각서를 받아내야 하고, 입양 동의서를 받아내야 하는, 평범한 아이들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그런 절차가 내겐 왜 필요한 것인지. 분노가 폭발할 것처럼 달아올랐고 아버지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졌다. 연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가 죽고 무능력한 아버지가 떠나 버린 뒤 고아원에 맡겨진다. 6학년 때 현재의 아빠, 엄마 그리고 한 살 어린 수아로 이루어진 가족에 위탁되어 4년째 살고 있다. 어느 날 연수는 자신 때문에 해외여행을 갈 수 없어 엄마를 조르는 수아의 모습을 보며 집을 뛰쳐나간다. 아버지에 의해 버려졌고, 현재의 아빠를 만나 가족이 되었던 고아원에서 아버지의 행방을 찾기로 결심한 것이다. 자신을 찾지도 않는 아버지에게 친권을 포기해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고아원에서 복지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찾아간 곳은 연수가 아버지와 살던 곳이었고, 그곳에서 아버지와 가까이 지내던 김씨 아저씨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곳의 주소를 알아낸다. 작품 속에서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장난감 새이다. 고속버스에서 한 아이가 갖고 있다가 버린 장난감 새를 단단히 그러쥐고 고아원을 찾은 연수는, 옛날에 살던 마을의 빈 집에서 하루를 보낸 뒤에 장난감 새를 벽에 던져버린다. 이후 연수는 김씨 아저씨에게 아버지가 자신을 보낸 뒤에 만들었다는 나무 새장을 받아들고는, 어릴 적 유일한 장난감이었던 나무 새를 떠올린다. 다른 아이가 놀이터에 놓아두고 간 새 장난감을 병에 걸려 누워 있던 엄마를 보여주려고 갖고 갔다가 도둑놈으로 몰리자 아버지가 연수에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 바로 나무 새였던 것이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만난 아버지는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연수에게 주었던 나무 새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인다. 장난감 새의 연결고리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고,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버지가 갖고 있던 미안함과 사랑을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연수는 4년 전에 아빠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을 뒷바라지했지만 구질구질한 형의 모습이 싫어 찾지 않았던 지난날의 잘못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듣는다. 그리고 연수를 데리고 와서 함께 사는 것이 아버지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자신을 입양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것도 들려준다. 그리고 연수는 친구 명후를 만나자, 창피해서 지금껏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마음먹는다. 문득, 녀석이 그날 나를 데리고 왔던 건 나를 위로하거나 동정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어떡해서든 제 안의 분노를, 제 안의 부끄러움을 드러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야 마음도 털어 낼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가벼워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버지를 찾아, 아니 자신이 누구인가를 찾아 떠났던 연수는, 이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기로 한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서야 결코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며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청소년기, 그 중에서도 연수는 완전한 입양이 아닌 위탁아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누구보다도 치열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먼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연수가 과연 어떻게 성장해 갈지 앞으로 펼쳐갈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
|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말에 계속 공감을 했다. 청소년들을 향해 '불편한 진실과 만나기를 두려워 말기'를 당부하고 자신의 삶의 주체로 서기를 바라는 마음에 공감했다. 평소에 작품을 읽으면서 간혹 이런 생각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청소년과 아동의 모호한 경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청소년이 된 아이들에게 갑자기 감수성과 이성이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간혹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작품을 보면서 아이들에 대한 배려라기 보다는 오히려 생각의 폭을 한정짓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미화되지 않은 현실이 충격을 주더라도 실존하는 또 다른 삶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폭은 분명 넓어질 테니 말이다. |
|
아버지란 제목이 들어간 책들은 이상하게 제목부터 벌써 가슴 한구석을 뭉클하게 한다. |
|
맨 처음에는 입양된 곳에서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인가 했다. 여동생이라는 수아는 연수 때문에 해외여행을 못 가게 돼서 화를 내기도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으면서 연수에 대해 ‘동거인’이라는 말을 했다. 처음 분위기는 그랬는데 뒤에서는 또 달라졌다. 아빠는 꼭 연수를 입양하겠다고 말했다. 서류상으로는 연수가 입양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입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그저 종이일 뿐인데 우리나라 사람은 그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연수가 나이를 먹으면 지금 한 고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연수는 지금 열여섯 살이다. 한창 예민한 때이니 겉으로 드러난 것이 중요하다고 여길 것이다. 새 담임 선생님은 연수를 불러서는 연수에 대한 것을 물어봤다. 그때 연수는 자신은 고아나 다름 없다고 했다. 선생님은 괜히 물어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좀더 생각이 깊은 선생님이어서 집에 전화해서 엄마나 아빠한테 물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