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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연인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입맞춤하는 새벽 ; 『그대라는 문장』
신경숙 소설가는 표4의 추천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이 귀한 글들을 한마디로 말하라, 한다면 ‘풀꽃 한 송이도 거저 피는 법이 없다’예요, 라고 대답하겠다. 그녀의 글은 따뜻한 체온을 지닌 손바닥처럼 소외된 사람의 이마를 가만히 쓸어준다.” 신경숙 소설가처럼 시인의 면면을 속속들이 다 꿰지 못해 그녀의 글들을 한마디로 말하진 못하겠다. 다만 마지막 장을 넘기고 책장을 덮었을 때 모종의 자력磁力을 느끼긴 했다. 돌과 흙과 모래와 사금파리와 여타의 불순물이 섞여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어린 날 조막만한 손으로 막대자석을 갖다대면 모래가 들썩이며 쇳가루가 달라붙었던 경험, 누구나 하나쯤 있겠지. 그녀의 문장이 두터운 내 마음을 들썩이며 나도 몰랐던 나의 가장 심약한 부분들을 길어 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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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나는 사람이 곧 나다. 내가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내가 달라진다. 가장 가깝게 붙어 지내며 많은 것을 공유하는 식구, 동무, 동료,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구성한다. 비중은 저마다 다르다. 식구가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겠지만 식구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식구가 나를 좋은 길로 가게 하는 사람이고 따라서 평소에도 깊이 생각한다면 당연히 식구가 가장 크게 나를 이룬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식구라고 하더라도 적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를 구성하고, 내가 얼마나 크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달라진다.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관계하며, 누구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게 너무 중요한 까닭이다.
손세실리아 시인의 글을 읽으며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일뿐더러, 내가 만나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말하는 것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시인의 “그대라는 문장”은 사람에게 진실하고 시를 품고 있다. 사람과 맺는 관계를 “사람 올레”라 칭하고, 그 많은 올레에서 자신과 깊게 관계 맺은 사람 올레를 마음 담아 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여, 산문집이 아니라 산문시를 읽는 기분이 든다. “식당에서 일을 하다 잠시 쉬고 있다”는 글쟁이 강산숙 올레가 그렇고, 제자들 끼니를 챙겨주던 조태일 시인 올레가 그렇다. 전통 휠체어에 앉아 철야 근무를 하고 있을 교환원 아가씨에게 김밥을 사 들고 음주운전을 하며 날아간 이환갑 올레가 그렇고, 놀라워라, 수능을 막 끝낸 시인의 아들도 그렇다.
서행하다가 제자가 눈에 띄면 차를 멈추게 한 다음 반드시 식사 여부를 물어보곤 하셨는데, 그렇게 학교 정문을 통과할 즈음이면 끼니를 놓친 제자 두엇이 동승했던 것이고, 그런 날 선생의 허리춤에 매달린 국방색 낡은 전대는 분주하게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소머리국밥과 생맥주와 담배 몇 갑이 마술처럼 줄줄이 나오던 낡은 전대를 지켜보며 어린 제자를 향한 스승의 사랑에서 아비가 어린 자녀의 끼니를 챙기는 모습을 읽었던 것이다. (27 ? 28쪽)
연행하려 드는 경찰관에게 갖은 행패를 부리다 못해 소지하고 다니던 사냥용 엽총을 꺼내 죽어버리겠노라 자해 난동까지 부린 것이다. 결국 승복한 경찰관이 회사까지 동행했다. 난데없이 들이닥치더니 다짜고짜 품에서 김밥을 꺼내 책상에 펼쳐놓고 “식기 전에 어서 먹”으라는 남자와 그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경찰관, 그리고 남자의 속마음을 헤아린 여자의 울먹임으로 사무실은 돌연 숙연해지고…… 구속될 위기에서 300여만 원의 벌금을 대신 내준 여자와 남자는 며칠 후, 자연스레 살림을 합쳤다. (83쪽)
사흘째 되던 날, 시골에 홀로 계신 양가 부모님께서 전화를 걸어와 “승욱이는 잘 도착했냐” 하신다. 예고 없이 친가와 외가를 방문해 용돈도 드리고, 집안 곳곳 걸레질부터 이부자리 일광욕은 물론이거니와 밥도 짓고 쇠고기국도 끓여주더란다. 공부하느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고, 졸업해서 돈 벌 때까지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고……. 다짐받고 또 다짐을 받더란다. (294 ? 29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