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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 모음집은 한국 단편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아홉 개의 단편을 각각 다르게 이야기해 독자에게 한 권을 통해 아홉 가지 맛을 경험하게 하고 있다. 단편들은 작품마다 매우 특색이 달라서 마치 9명의 작가가 한편씩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떻게 이렇게 매력적인 이야기를 각각 다르게 쓸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아홉 편의 단편은 내용이 모두 신선하고 특이하다. 비유도 독특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읽는 즐거움까지 선사하고 있다. 다소 무거운 소재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도 저자의 역량이 커서 그런지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다 재미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용은 흥미롭게 재미있는데 비해 끝이 부실하다는 점이다. 허무한 결말이 저자의 의도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허무하게 끝나는 결말은 이 책의 옥에 티라 하겠다. 이 책은 총 9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9편의 단편 모두가 현저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이 책에 담긴 단편은 모두 한명의 작가가 쓴 작품이다. 그런데 묶어놓지 않고 따로 떼어놓고 봤다면 난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단편들의 분위기나 말투가 다 다르다.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면 이는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고 말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인격으로 빙의해 작품을 각각 다르게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명 작가의 단편들을 많이 봐왔지만 저자처럼 아홉 가지나 되는 단편을 이렇게 다른 분위기를 내면서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전개하고 이야기한 작품은 별로 본 적이 없다. 대개 작가들은 단편을 쓰게 되면 비슷한 패턴과 유형을 사용하기 마련인데 이 책의 저자는 실험정신을 발휘해서 그런지 몰라도 9인9색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작품을 탄생시켜서 독자에게 9가지의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아홉 가지 단편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9편의 단편을 모두 다르게 전개하고 표현한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지만 아직 자신의 특색을 찾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에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즉 저자는 아직 자신만의 뚜렷한 특색이 없다는 점이 이 책을 통해 드러났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직 자신만의 특색을 찾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여러 가지를 자신의 특색으로 내세우려고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작가의 작품을 섭렵한 내가 보기엔 저자는 아직 자신이 어떤 글을 잘 쓰고 어떤 표현을 잘하는지 확실히 찾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편소설만 쓸 것이 아니라면 다양한 인격으로 작품을 만들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과 저자 특유의 패턴을 이용해서 의미 있고 재미있는 작품을 쓰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점은 이번 단편들을 통해서 충분히 인식했으니까 앞으론 어떤 글쓰기 혹은 어떤 분위기 하면 떠오르는 그런 작가로 성장해 우리들의 머릿속에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사회문제를 소설에 녹였다는 점’이다. 단편은 말 그대로 짧은 이야기다. 그래서 깊은 사상이나 사회문제를 담기가 어렵다. 사실 사상과 사회문제는 장편소설에서 쉽게 다룰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그런데 저자는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옥살이 문제, 아동 성폭력 문제, 근친 사랑 문제 등 장편에서도 꺼리는 사회문제를 어렵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다. 소재의 특성상 짧은 단편에선 좀처럼 다루기 힘든 것들을 저자는 거리낌 없이 쓴 것이다. 그것도 한 가지 패턴이 아닌 여러 가지 이야기방식으로 말이다. 이는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부분이다. 위 소재 중에서 하나만 다루어도 독자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해결책은 나와 있지 않지만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사회문제를 인식시키려 했다는 점만으로 저자는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재는 의미는 있을지언정 재미는 없을 수밖에 없는데 저자는 짧은 이야기에서 의미는 물론이고 재미까지 전해주고 있어서 작가적 역량이 대단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결론이다. 단편에서 좀처럼 정답을 찾기 힘든 심각한 사회문제를 다루다 보니 결론을 제대로 맺을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저자는 주로 허무함을 느끼게 하는 결론을 맺었는데 그게 저자의 의도인지 아니면 단편의 한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일부러 끝을 허무하게 맺었다고 해도 문제고 단편의 한계로 인해 그랬다고 해도 문제다. 워낙 어려운 문제들을 소재로 삼아서 그런 것이라고 짐작되는데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풀어나갔어도 끝이 허무하면 독자가 얼마나 허탈해지는지를 저자는 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론 깔끔하고 의미 있는 결말로 독자를 만족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어린 주인공이 지나치게 성숙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단편집에서 상당히 빈번하게 소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제일 눈에 띈 소녀는 ‘화투 치는 고양이’의 초등학교 5학년 소녀와 ‘무리수’의 초등학교 6학년 소녀다. 두 주인공은 나이에 비해 몹시 성숙하다. 두 주인공 모두 각각 이유가 있어서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것인데 저자는 그 정도를 잘못 측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둘의 성숙도는 지나치다. ‘화투 치는 고양이’의 주인공 소녀는 초등학교 5학년 즉 12살이다. 88살의 할아버지와 화투를 치면서 삶의 이치도 깨닫고 지식과 지혜를 배우긴 했지만 그래도 주인공은 초등학생이다. 초등학생은 초등학생 수준이라는 게 있다. 괜히 나이에 맞춰 교육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아이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수준 높은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단계를 나누는 초중고 제도를 계속해서 할 필요가 이유가 없어진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왜 초중고 제도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천재가 아닌 이상 대개의 아이들은 또래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를 무시한 채 초등학생을 어른 수준으로 레벨을 올려놔버렸다. 이는 캐릭터를 잘못 설명한 실수가 아닐 수 없다. 나도 주인공처럼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화투도 배우고 수도 없이 화투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난 이 책의 주인공과 달리 어린애 수준을 넘어서 사고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책을 많이 읽어서 혹은 머리가 특출하게 좋아서 어른 수준의 사고를 하게 되었다고 해도 어린애는 어린애다. 어른이 된 저자가 어린이 입장이 되어 소녀의 사고를 설명하려다보니 이와 같은 실수를 한 것 같은데 이런 점은 저자가 더욱 연구해 세심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본다. ‘무리수’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6학년 즉 13살 소녀다. 또래에 비해 성숙하고 생각이 깊은 이유는 친구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그 충격으로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있어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많이 아팠던 아이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많이 넘어서 또래보다 수준이 높은데 주인공이 딱 그 케이스다. 이런 점들은 자주 목격하기도 했고 내가 직접 겪어보기도 했기 때문에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의 주인공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또래보다 성숙하다. 이 또한 저자의 실수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리 생사의 경계를 많이 넘나들었고 남들보다 이른 시기에 가까운 사람의 죽음 목격했다 하더라도 아이는 아이다. 아이가 또래 수준을 지나치게 뛰어넘으면 그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이 단편에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을 정도의 주인공이 성숙해졌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저자는 그 이상으로 주인공을 만들어버려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없는 저자의 문제점을 다시 드러내고 말았다. 나이의 경계를 넘나들어 주인공들을 등장시키고 다양한 나이대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 같은데 앞으론 이런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인식한 후 나이에 걸맞게 표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난 이 단편집을 통해서 한국 단편 문학의 미래를 봤다. 한국 단편 문학이 일본 단편 문학에 비해 수준도 떨어지고 소재도 빈약해서 늘 마음이 아팠는데 이 책은 이런 나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비록 내용에 비해 결말이 다소 흐지부지해서 허무함을 안겨주긴 했지만 내용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대체로 만족한다. 저자가 끝맺음만 잘 보완한다면 한국을 넘어서 전 세계에 통하는 소설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자의 다음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 단편 문학의 밝은 미래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인상적인 글귀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법.’ “과한 것이 부족한 것보다 못한 것이오.” “늙는다는 것은 자신의 한 부분이 소멸되는 것을 용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소.” “욕망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핵심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운명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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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 제목을 보고...그림을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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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는 고양이가 화투를 치는 판타지물인줄 착각했다. 가끔은 고민하지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에 강하게 끌려가기도 하니까, 86살 할아버지가 12살 어린 손녀와 화투를 친다? 그것도 손녀가 학교를 가는지 않가는지 신경쓰지도 않고? 단편이라 좋을때도 있었네. 화투 치는 고양이를 보며 어릴때 추운 겨울 방학이면 동생들과 민화투를 치고 놀던 생각이 났다. 밖이 춥다보니 서로 밖에 나가기는 싫고 그래서 화투에서 진 사람이 나가 필요한 것을 챙겨오기로 했던 것, 지금은 계산하는 방법이나 치는 방법도 다 잊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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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쓴맛 단맛을 어린나이에 배워버린 아이의 토해내는 ... 눈물 속에서도 잃지 않은 당당함에 울컥해지고 나도 그러했기에 또한번 울컥해지는 책 추위가 파고드는 이 세상에 눈물 어린 따뜻함을 주는 책이다 그녀의 사랑까지도 사랑하고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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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소설책 한 권을 냉큼 집어들고 말았다. 표지며 제목이 시선을 확 끌었기 때문. <화투 치는 고양이>
고양이는 어떻게 화투를 치는지. 좀 부끄럽긴 하지만, 그게 궁금했다. 속도감 있는 문장과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장면들 덕에 단숨에 표제작을 읽고 말았다. 읽고 난 뒤에 남는 묵지근한 감정을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지만, 하여튼, 뭔가 남았다.
단편 한 편을 후딱 읽고 난 뒤, 다음 작품인 <지구에 오신 걸 환영해요>를 읽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사랑에 대한 매혹과 기대로 가득찬 사춘기 소녀의 시선으로 사랑의 잔혹함을 비정하게 그린 단편이었다. 사랑이 변하면, 사랑이 떠나면, 한 인간이 상처로 어떻게 괴물이 될 수 있는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살해할 수 있는지... 생은 죽음과 어떻게 등을 꼭 맞대고 있는지....사랑은 배신과 어떻게 동행할 수 있는지....
<초식>은 도축장에서 근무하는 도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도살장의 세밀한 묘사와 피붙이의 피 튀기는 갈등이 교차하는 이 단편은 읽는 내내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주었다. 마트 진열대에 진열된 삼겹살과 소고기의 안심과 등심이 어떻게 살처분 되어서 식탁에 오르는지를 추적하는 묘한 불편함까지 느끼게 해준다고나 할까...
<예사로운, 예사로운 사랑>은 비전향 장기수의 연서를 기록한 단편. 감옥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출감후 감옥밖 세상에서 만난 한 여인에 대한 다가갈 길 없는 애틋하고도 쓸쓸한 연정이 과장되지 않게 그려진 작품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사랑을 굳이 예사롭다, 예사롭다고 한 이유....사랑은 모두가 하기에 예사롭다는 뜻이겠지...아마도...
<불청 경욕지 수태일백이거>라는 단편은 제목의 뜻을 알고 싶어서 주루룩 읽었다. '듣지 아니하고 끝내 욕망을 이루려 하다가 백 대의 매질을 당한 연후에야 떠났다'라는 뜻이라는 걸 알았다. 늙은 여자를 사랑하다가 백 대의 매질을 당한 청년의 사랑 이야기였다. 청년은 왜 늙은 여자를 사랑했을까? 연상연하 커플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곱절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늙은 여자를 사랑하는 청년의 고난에 찬 사랑 투쟁은 고어체 문체와 어울어져 묘한 재미를 주었다.
<로맨스 소설>, <에어 베드>, <무리수>, <산딸기며 오디며 개암 열매며> 등등 아홉 편의 작품을 일관되게 꿰뜷고 있는 것은 '사랑'이었던 것 같다. 우리 모두가 하는 사랑이 다 그러하듯이, 조금은 아프고,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안타깝고,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무섭고,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짜릿하고, 조금은 애틋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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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의 작가 이화경의 단편 9편은 골라 읽는 재미를 톡톡히 느끼게 해 주는 맛으로 읽게 만든다. 제목부터가 도입부에 등장하는 첫 작품인 [화투치는 고양이]에게서 따와 신선한 느낌을 전해준다. 학교에 가질 않은 열두 살 소녀와 여든 여섯의 할아버지가 화투를 앞에 두고 가르치고 배우는 삶의 진실들은 아슬아슬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옳거니!"싶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쏘옥 들어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