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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오를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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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문제로 요새 전세계를 들었다놨다 하는 그리스인들을 두고, 빼어난 외모를 지녔다고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내가 본 바로는 아드리아 해 건너 이탈리아인들보다 나을 바 없었고, 그 이탈리아인들이라 한들 뭐 길거리 거지도 연예인이더라는 말이 무색하게, 날라리티가 많이 날 뿐 딱히 이목구비가 청수하거나 비율이 환상이라거나 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대부1'에서는 이런 대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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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문제로 요새 전세계를 들었다놨다 하는 그리스인들을 두고, 빼어난 외모를 지녔다고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내가 본 바로는 아드리아 해 건너 이탈리아인들보다 나을 바 없었고, 그 이탈리아인들이라 한들 뭐 길거리 거지도 연예인이더라는 말이 무색하게, 날라리티가 많이 날 뿐 딱히 이목구비가 청수하거나 비율이 환상이라거나 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대부1'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폴로니아를 두고) 아, 누가 그녀를 시칠리아인으로 보겠어? 분명 먼 조상이 그리스인이겠지." 거 저 사람들 역시 자기 고향에 대한 자부심 장난 아닌 거로 아는데 굳이 좋은 인물의 크레딧을 딴 지방으로 돌려야 할 정도인가? 술탄 메메드 2세는 아테네의 공자를 두고 그 뿜어내는 젊음의 아름다움에 탄복한 바 있다 했고(스티븐 런치먼의 책 '1453 콘스...'. 페이지수 미상), 한국의 모 대학 법대 H 교수님(현재 민사소송법학의 최고 마스터)은, "(소송물론의 대가 게오르기아데스 박사를 두고) 나는 이 양반이 그리스 태생이라고 해서 조각 같은 외모를 상상했더니, 이건 어디서 무슨...(더 이상은 생략ㅋ)"이라고 긴 여정 중에 한마디 하시기도 했고, 또.. 송재익 캐스터는 2004년 그리스 올림픽 개회식을 중계(SBS TV)하면서 "네... 순백의 소년입니다...네"를 한 2분 간 반복하기도 했지만 말이다(내 보긴 그냥 동네 꼬마더만 무슨).

그리스의 미녀가 정말로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려면 이 타이틀을 고르면 된다. 그리스의 연예인이라면 디바 나나 무스쿠리, 작곡가 반젤리스 정도를 떠올리겠지만, 이 영화의 주연배우 알리키 부기우클라키1)는 생전 그리스의 국민연예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한 재능과 미모에 빛나는 전설적인 존재였다.

그리스도 영화를 만들긴 하나?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이 영화는 1970년대에 우리 극장가에 개봉되었다고 하며, 흥행 수입도 대단했다는 게 여러 기록에 나와 있다. 당장 나만 해도, 1980년대 지상파 방송에서 KBS에서 틀어주는 특집 영화 코너(주로 현충일 단골)에서 이 영화를 두세 번은 봤던 기억이다. 그때 보고 지금 다시 보니 세월의 무상함을 절로 느끼는데, 당시에는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드라마가 다 있다니!" 하며 무척 몰입해서 봤건만, 지금 눈으로는 그저 '한국영화같군'하는 느낌을 채 벗어나지 못하니 하는 소리다.

줄거리는 익히 알려져 있으므로 잠시만 말하자면, 독일인 막스가 있고 아리따운 처녀(그냥 처녀일뿐이다) 나타사(그리스 발음으로 Νατάσσα에서 '싸'에 가깝지만, 이의 영어 대칭형인 Natasha가 우리에게 더 익고, 따라서 한국에서도 보통 '나타샤'라고 많이들 불렸다)가 있으며, 몸과 마음과 국적과 피가 공히 바람직한(나타샤도 마찬가지지만) 오레스티가 또 있다. 셋의 삼각관계는 국제 정세의 긴박한 변화에 의해 점점 순혈 그리스 청춘 남녀만의 관계로 압축되고, 마침내 둘은 결혼식을 올리지만 하필 당일날 그리스 레지스탕스의 소탕에 나선 독일군놈들의 진입으로 성스러운 예식은 엉망이 되고, 신혼여행은 도피행각으로 바뀐다. 나타샤가 어릴 적 한 점술가 노파가 "아름다운 소녀여, 너는 원하는 너의 왕자와 결혼하겠지만 너의 웨딩드레스는 순백이 아닌 스칼렛이 되리라"고 한 예언이 그대로 실현된 셈이었는데(나타샤가 총에 맞아 피가 옷에 번짐)..

이 영화의 지독한 상투성은 그에 그치지 않는다. 지하에서 저항을 계속하던 오레스티는 불운하게도 처를 남겨두고 혼자만 피신하게 되는데, 독일 당국에 체포된 나타사는 젊은 여성의 몸으로 말할 수 없이 모진 고문을 받지만(뭐 독일놈은 인간이 아닌데 당연하지 않겠는가?), 까무라치길 몇 번을 거듭하면서도 끝내 저항군의 소재지에 대해 입을 다문다. 독일 군복을 입고 잠입한 오레스티(과연 왕자님이시라서 못하는게 없다)는 개만도 못한 놈들을 모조리 처단하고 아내를 구하는데, 더 충격적인 건 "왜 그들에게 토설하지 않았느냐?"며 눈물을 짓는 것. 이유인즉슨 이런 상황을 다 예상하고 일부러 거짓 정보를 알려줘서 독일군을 혼란에 빠뜨릴 작정이었다는 건데, 고작 한다는 말이 "당신처럼 연약한 여성이 그토록 오래 버틸 줄 누가 알았겠냐?"는 것. 에라이 이 천하에 썩을 놈아, 니가 그러고도 남자냐!!

아니 근데 그에서 그치면 또 괜찮을 텐데, 이 오레스티가 또 벌(?)을 받더라구. 하여튼 조국은 해방 직전이고 사랑하는 아내를 구해내고 자신은 영웅이 되었으니. 이제 방해 안 받는 너른 야외의 공간에서 둘만의 키스 포옹 나잡아봐라 등등의 쑈를 좀 해 줘야 하지 않겠음? 그런데.... 마치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고 아테네의 동남동녀를 크레타의 마수에서 구해오는 통에 깃발을 바꿔 달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로, 승자의 오만이란 때때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곤 하는데, 이 작자가 아직 독일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 그러니 본래 다혈질인 현지인들이 웬 '독일놈'의 쌩쇼를 그냥 두고 봤겠는가? 한 무장 청년의 모자란 총질로 오레스티는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한순간에 쌩과부가 된 여전사는 이제 삶의 지향을 상실하는데...

제품 소개란에도 적혀 있듯 막스는 본래 자신의 혈통이 그리스인임을 알고 절망 끝에 자살한다는 설정까지 나온다. 그리스인들도 그렇고 이탈리아인들도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현재의 자기 위상은 생각하지 않은 채, 전 유럽이여 백인종이여, 너희들이 우리 조상들의 찬란한 문명에 덕을 입은 바 얼마나 큰가? 그러니 걍 배째라로... 의 허황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이런 장치도, 무슨 독일 측의 패배가 배은망덕의 사필귀정이라도 되는 양 은근 상징화를 시도하는 셈 아닌가? 연합국의 승리에 지네가 기여한 바 뭐가 있다고 말이다. 여튼 참 유치한 자기 중심적 신파극으로도 볼 수 있지만, 색다른 분위기와 옛 추억에 젖고 싶은 이라면 수입사 '무비스톤'에 감사하고 냉큼 이 타이틀을 구입하는 것도 참 좋지 싶네요, 그쵸?


1) 나는 예스가 또 잘못 적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이건 용케 맞다. ou는 그냥 '우'발음이니까. 그리스글자로는 Αλίκη Βουγιουκλάκη라고 쓰는데, 여기서 에타 η는 고전어에서처럼 장음의 '에' 발음이 아니다. 현대 그리스어는 이 철자를 '이'발음을 표기하는 데에 사용한다. 우리로치면 김지미나 정윤희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다만 이 배우는 노래 실력도 빼어나서 1980년대 초반에 무려 '에비타' 같은 쎈 아이템을 골라 세계 문화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기량을 맘껏 뽐냈다고 한다.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로렌스 올리비에 경도 그녀를 두고 "내가 본 중 최고의 에비타"란 평가를 했다고 할 정도였으니.


s****o 2012.06.19.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