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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교양과목을 수강하다보면, 가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대신 부과되는 과제 중 레포트 제출이 종종 있었다. 어떤 책이나 강연, 공연 등에 대한 감상문을 제출하라던지,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라던지, 아니면 자기 맘대로 교양과목과 연관이 있는 주제를 정해 자유롭게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을 써오라던지.. 과제의 형식이나 종류는 다양했지만, 늘 비슷하거나 한결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었던 것은 A4지 몇 매 이상.. 이라는 제한이었다. 나중에 졸업에 즈음에 PC용 워드프로세서가 대중화되고 난 다음에야 중간에 수정을 가할 수도, 'Cut & Paste' 기법을 활용하여 타인의 글을 '참조'할 수도 있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손으로 일일이 다 써대는 작업이 장난이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보통 제한이라는게 A4지 10장을 훌쩍 넘기는 경우들이 많아 자칫 잘못해 중간에 비교적 파장이 큰 수정이라도 가할라치면 중간 페이지만 교체하기에 애매한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가치정향은 존재의 물리적 조건을 반영한다. 만일 존재적 조건이 변하면 가치정향은 그에 상응하여 변화한다. 이는 마르크스의 토대와 상부구조 이론과 유사하다. 더 어울리는 가치가 덜 어울리는 가치들보다 선택적 우위를 가짐으로써 다윈의 진화론에서 생명체가 진화해가듯 진화해간다. 사실 두 척도가 비례한다고 해서 어떤 조건이 원인이 되어 다른 부분에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꼭 볼 수는 없다. 둘 사이에 시간차(Time Lag)이 존재한다손 치더라도 선차성을 논하기에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컵에 물이 일단 차야 비로서 넘쳐 그 밑에 깔아놓은 종이가 젖는 것처럼 어떤 수준 이상이 될 경우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이 넘치는 행위와 종이가 젖는 행위 - 여기서 물이 넘친 것이 종이를 적신 이유이지 물이 컵을 점차 채워갔기 때문에 종이가 젖은 것은 아니다. 비록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이 차이는 무엇(물을 따르는 행위 vs 물이 넘친 결과)을 원인으로 보느냐에 따라 크게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비교적 이 문제를 별도로 이슈화해서 다루지 않았다. 따라서 나 역시 별로 관심이 없는 일에 딴지걸기를 계속할 마음도 없다. 저자는 경제발전이 존재적 안전을 담보하면서, 문화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자기표현 가치를 중시하는 성향이 사회적으로 증가했고 이 가치정향이 효율적 민주적 제도의 정착이라는 정치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이를 간략하게 표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2부. 자기표현 가치와 민주적 제도 전반부의 논의가 비교적 결론을 위한 인위적 논리전개 방식, 이를테면 '답을 보고 거슬러 문제를 푸는 방식' 이었다면, 후반부는 상대적으로 정치한 논리전개를 가지고 자기표현가치가 (효율적인) 민주 제도로 반영되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추론한다. 그러나 여전히 동어반복이 지속되면서 다소 흥미로울 수 있는 내용에 지루함이라는 찬물을 끼얹는다. 후반부의 논의의 주제 역시 다음의 하나의 그래프로 압축되어 표현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이런 자기표현 가치를 중시하는 비중과 효과적 민주주의 (제도) 수준과의 높은 정의 상관관계가 아니다. 이런 논리전개 상에서 이전까지는 검증이 된 바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수준과 제도의 민주적 수준 사이의 불일치가 야기하는 민주주의로의 전환과정에 대한 '조응명제(Congruence Thesis)'를 다룬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이 책에서는 어느 사회가 민주주의로 전환되는데 있어 기본적 동인(Trigger)이 되는 부분이 수요과 공급의 불일치에서 온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흔히들 진보적 정치세력의 대두나 엘리트 집단의 혁명적 행위 등이 선행된 대중적 계몽 및 각성에 의해서라든지, 기존의 정치·경제적 기득권 세력의 부패가 극에 달해서라든지 등이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이유일 수는 있어도, 실은 내부적인 수요의 팽창이 기반이 되지 않고서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 효율적인 민주주의는 도래하지 않으며, 이후 안정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후반부에서 흥미로운 이슈 중 또 하나는 사회적 균열을 가져오는 제반 요인, 이를테면 날카로운 계급 분열, 사회적 양극화, 그리고 극도로 불균등한 부의 배분 등은 민주주의의 도래에 적대적인 방해요소라는 점이다. 만일 사회 내부적으로 강력한 권한을 가진 특권층이 존재하며 이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회적 부의 분배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경우, 이들은 일반 하위계급이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자신의 기득권을 박탈하는 재분배조치를 취할 것을 우려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들에게는 효율적 민주주의를 방해할 강력한 인센티브가 존재한다. 반면, 부의 분배가 비교적 공평하게 이루어진다면, 이는 온건한 중산계급의 사회적 우위를 유발하며, 이 중산계급은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로부터 얻을 것이 읽는 것보다 많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유인할 비교적 강한 인센티브를 역시 가지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공평한 부의 분배가 오히려 경제발전의 수준보다 민주주의에 더 직접적인 원인일 수도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두 가지 논의를 논리적으로 연결하면,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고소득 사회일주록 효율적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 수준이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생각보다 정교한 인과관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들면 흡연과 폐암의 연관성과 비슷하다. 우리는 담배를 피우는 경우 비흡연자에 비해 폐암이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담배를 피우는 갯수과 폐암의 발병확률간의 명확환 인과관계는 증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정도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적으로 부실한 폐기능을 가진 이가 건강한 이에 비해 흡연의 정도에 관계없이 폐암 등 폐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 것처럼, 민주주의의 제도정착 역시 경제발전 이외의 다양한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인도와 같이 저개발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자기표현 가치의 중시수준이 높은 국가가 있는 반면, 싱가포르와 같이 경제개발이 고도로 이루어진 고소득 국가의 경우에도 비교적 동 가치의 중시수준이 낮아 결코 효율적 민주주의가 정작되었다고 말하기 힘든 경우들이 존재하는 것이 그 예다. 마지막으로 싫은 소리를 좀 더 하자면, 문맥이 잘 맞지 않는 번역도 편한 읽기의 흐름을 방해했다. 중간에 흐름이 막혀 몇번씩 되새김질을 해야 하는 문장이 종종 눈에 띄었고, 최소한 콤마(,)라도 하나 찍어줬으면 하는 바램이 읽는 도중 종종 들었다. 개인적으로 서문을 먼저 읽지 않지를 권한다. 서문을 읽어나가다 보면 문득 책을 읽기가 싫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논문의 요약(Abstract)이 하고자 하는 많은 말을 단 몇 줄로 요약하려다보니, 도통 쓴 사람 이외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해하기 힘든 것과 같은 느낌을 이 책의 서론에서는 느껴볼 수 있다. 그래도 '민주주의가 어떤 경로를 통해 생겨났을까..?'라는 의문이 든다든지, '서구 선진사회가 잘 사는 것은 민주주의 때문일까, 아니면 잘 살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일까..?' 등의 닭과 달걀의 문제같아보이는 애매한 철학스런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다만, 이 책에서 전개된 일련의 실증적 고찰이 '분배보다는 성장이 먼저'라는 주장으로 변질되어 사회적 부의 재분배 시스템을 더욱 병들게 하는데 오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마지막으로 가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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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대한 최초의 개념 규정은 고대 그리이스에서 `민중의 지배`라는 의미로 시작되었다. 이 개념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이 개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민주주의가 단순한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본질적인 `내용상의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민의 지배란 국가권력을 한 사람이 가지는 군주정치와 소수가 소유하는 귀족정치와 대별되는 정치형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인민이 국가권력을 가지고 스스로 그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형태”를 지칭하는 뜻으로 통한다 하겠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서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에 의하여 지지되고, 일상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진 용어가 되어 그 뜻을 새삼스럽게 알아보지 않으려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고 하겠다. 민주주의는 두차례의 세계대전에 걸쳐 군국주의와 전체주의의 도전을 막았고 1990년대 소련과 동구권을 시작으로 세계적 민주화 물결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오늘에 와서는 포괄적 의미를 지니게 되어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인기 있는 정치·경제·사회지도원리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분과학문인 정치학에 대한 접근에도 문헌적 접근과 현장체험적 접근, 해석학적 접근과 실증적 접근, 구조적 접근과 행위론적 접근, 인간적 접근과 환경적 접근, 국제적 접근과 국내적 접근, 경제적 접근과 비경제적 접근, 개인적 접근과 집단적 접근 등 수많은 접근방식이 존재하며,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연구방법과 연구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고, 이러한 차이는 정치학을 보는 관점의 차이를 낳기도 한다. 이 책 <민주주의는 어떻게 오는가>의 저자는 미시건대 정치학과 '로널드 잉글하트'는 교수와 '크리스찬 웰젤' 독일 브레멘국제대 정치학과 조교수이다. '로널드 잉글하트'는 근대와 문화, 민주주의의 역학관계를 분석하는 등 현대 정치학사에 중요한 틀을 제공한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는 대세로 자리 잡아가는 민주주의가 직면한 새로운 문제들을 정치·문화적 시각에서 접근해 분석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형태를 고찰하고 있다. 인류역사는 폭군의 억압에 대한 인민의 저항과 해방투쟁의 역사였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민주혁명이 불가능하리라고 믿었던 이슬람권 중동에서도 튀니지를 시작으로 이집트로 번진 재스민혁명불길은 장기독재자 무바라크를 단기간에 권좌에서 끌어내린데 이어서 최근에는 42년간 폭군인 리비아 카다피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 철옹성 같아 보이던 중동의 장기 독재 정권들도 최근 민주화 시위에 연이어 붕괴되는 등 지구촌에 '민주주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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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와 경제발전이 민주주의의 초석이다. 배고프고 가난하면 민주화를 이루기가 힘들다. 근대화 이론의 핵심명제 가운데 하나는 사회경제적 발전이 민주주의의 기폭제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민주화는 “인간에게 힘을 부여하는 인간해방의 과정”을 의미한다. 민주화의 핵심은 자유로운 선택의 제도화이고, 인간의 자기표현과 연결된 사회동력에 의해 촉발된다. 경제발전은 자유의지를 함양시킨다. 다시 말해서, 경제발전은 인류의 자기표현의 가치가 추구하는 목표가 된다. 최근의 근대화 이론은 이런 경제우선적 시각을 넘어서 정치문화적 시각도 중요시하고 있다. 문화적 전통이 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형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시건대학 정치학과 로널드 잉글하트 교수와 독일 브레멘국제대학교 정치학과 크리스찬 웰젤 교수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오는가》(원제 Modernization, Cultural Change, and Democracy)에서 인류발전을 경제, 문화, 제도 세가지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조명하는 통합적 이론틀을 제시한다. 우선 사회경제적 발전은 문화와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데 마르크스가 말한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가치와 신념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저자는 사회경제적 발전의 해방적 효과를 존재적 안전감의 증가, 교육수준의 확대, 상호작용의 다양화로 정리한다.
“경제적 불안감의 감소와 인지적인 유동성, 그리고 다양화된 인적 교류로 인해 사회경제적 발전은 인간의 선택에 가해졌던 객관적인 제한들을 감소시킨다.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보다 안전해지고, 지성적으로 더욱 자율적이며, 사회적으로 보다 독립적이다.”(54쪽)
문화 영역에서 저자들은 근대와 탈근대의 가치정향의 변화를 강조한다. 이는 기존의 탈산업사회 이론들의 논의와 대부분 중첩된다. 역자는 ‘후기산업사회’로 번역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탈산업사회’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산업화가 경제적 축적과 경제적 성장과 같은 물질적 가치를 강조한다면, 탈산업사회는 성적 역할, 자기표현, 지식, 삶의 질 등과 같은 탈물질주의에 대한 높은 관심을 표명한다.
“문화적 변화의 과정은 단선적인 것이 아니다. 변화의 방향은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바뀐다. 공업화는 관료화와 세속화를 가져와 문화적 변화라는 중요한 과정을 가져왔다. 그러나 후기산업사회의 등장은 이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또 다른 중요한 문화적 변화의 과정을 이끌고 있다. 합리화, 중앙집중화, 관료화 대신 새로운 경향은 개인적인 자율성과 자기표현 가치를 더욱 강조하는 것으로 움직인다.”(95쪽)
산업화에서 탈산업화로의 문화적 코드의 변화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나라마다 민주주의의 색채가 특이성을 갖는 주된 이유는 무엇보다 자기표현 가치(self-expressive value)의 정도에 달려있다. 여기서 자기표현 가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핵심기제가 된다. 자기표현 가치란 외적인 구속이나 지도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 조건에서 형성된 자신만의 선호를 중시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해방적이고 인민중심적이고 자율적이다. 산업화 단계가 세속적/합리적 가치를 강조했다면, 탈산업화 단계는 자기표현 가치를 강조한다. 참고로 저자들은 43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 ‘가치서베이’ 방법을 통해서 문화적 변화의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가치서베이는 전통적 가치와 세속적/합리적 가치의 구분을 한 축으로, 생존가치와 자기표현 가치의 구분을 다른 한 축으로 삼아 각 국가들의 상대적 위치를 표시한다.
제도 영역에서 저자들은 시민적 정치적 자유를 강조하고 대중들의 권리확장을 논의한다. 가령 탈산업화 시기 대중의 요구는 다양화되면서 환경, 낙태, 여성과 게이의 권리, 엘리트의 부패 등과 같은 특수한 문제에 대해 의사를 표현한다. 대중들의 참여방식도 개인적, 일시적, 간헐적인 것을 특징으로 하고 정당, 노조, 그리고 교회의 가입률 하락이 가시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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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어떻게 오는가>는 로널드 잉글하트 교수의 역작이라고 할 정도로 약 80개국의 민주주의 사회를 보면서 연구한 바를 통째로 부어버린 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민주주의와 연관지을 수 있는 모든 사회,역사,문화적 관습과의 연관관계를 보여주며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양상을 글로, 도표로,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것을 인류발전이라는 개념과 함께 통합하여 민주주의, 인류발전, 자기표현의 가치의 상관관계를 통해 앞으로 민주주의를 통해서 어떻게 자기표현의 가치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인류를 어떻게 '진보'시킬지에 대해서 논의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요하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즉 인류의 발전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어나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이 민주주의는 자기표현의 가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 이 자기표현의 가치 확대를 통해 민주주의가 서로 선순환을 통해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하며 책을 마무리짓는다.
그는 책에서 '자기표현의 가치'라는 단어를 제시하며 이것이 민주주의의 확대와 발전을 가지고 올 것이라고 확언한다. 지금까지 민주화의 정도가 경제적인 발전정도와 큰 영향이 있다는 잘못된 상식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의 발전은 사회,경제적 성장보다 자기표현의 가치 확대가 더욱 밀접한 영향을 준다는 그의 참신한 발상은 응당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며 진정성과 신뢰성을 갖기 충분하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결국 역자후기에 나온대로 인민이 스스로 주인이 되는 정치체계, 즉 어떤 특정 세력에 의한 정치지배가 아닌, 국민들의 1인1표로 사회가 돌아가게 하는 정치체계가 민주주의의 체계, 만인이 평등한 사회형태의 가장 최신식 형태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1인 1표의 원리는 곧 자기가 어떠한 의사를 표현하는 것에 대한 자유를 나타내며 이것이 바로 자기표현 가치의 확대로 연장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결국 앞으로의 민주주의는 이 자기표현 가치의 확대를 통해서 더욱 발전해나갈 것이라는 이야기, 경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보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가가 민주주의의 발전에 영향일 미칠 것이라는 이야기는 참으로 강한 통찰을 가지고 온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자기표현 가치의 확대를 주장할 때 이 표현하려는 내용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민주주의와 자기표현의 '자유'는 필수불가결한 상관관계의 개념이다. 이 둘은 서로 함께 가면서 두개의 바퀴를 단 마차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1930년대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 된 독일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투표를 통해 나치가 99%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독일의 지배세력이 되었음을 생각해보자. 당시 독일 시민들은 분명 자기표현의 자유를 통해서 자신들의 생각으로 투표를 했고 절차상의 민주주의를 진행해나갔다. 어느 누구도 나치를 찍으라고 고무신을 주지도 않았으며 우의마의 선거운동을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냉철한 시민들은 열렬한 광기에 휩싸여 나치 독일을 지지한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고 그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표현하였을까.
민주주의에는 누구나 알다시피 한가지 크나큰 단점이 하나 있다. 시민들의 다수결이 꼭 옳은 것만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사례가 바로 위에서 얘기한 나치독일이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통해 전체주의를 만들어버렸다. 어떻게 이러한 결론이 도출되게 되었을까.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볼 개념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대중의 무사유화이다. 발터 벤야민의 낙관적 전망과는 정반대로 대중은 티비와 라디오와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접하는 단순한 정보들을 통해 점점 고민과 사유를 잊고 지낸다. 이것을 가장 첫번째로 이용한 사람이 나치 독일의 괴벨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너무나도 많은 괴벨스의 후예들이 나타나 점점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기호에만 맞는 것을 퍼먹이고 있다. 그리고 대중들은 이렇게 떠먹여준 기호에 따라 자기표현의 가치를 확대한다. 과연 우리가 내생각이라고 내뱉으며 말하는 것들, 나의 의지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들, 나의 선택이라고 정하는 의사표현과 정치적 선택이 온전한 나의 것, 사유와 고민을 거친 나의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정보를 얻는 모든 것들이 이미 확고한 지배층의 편집을 거치는 세상에서 우리가 표현하는 자기표현이 제대로 된 것일까? 앞으로 이어질 민주주의의 진화, 인류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이 자기표현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 과연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인지에 대한 토론부터가 당장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티비를 보지 말고, 라디오를 듣지 말고 신문을 보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티비를 보고 신문을 읽고 라디오를 듣고 그것들을 즐겨라. 다만 그것들이 전부가 아님을, 이것들은 모두 한번 걸러져서 나에게 온 것임을 우리는 꼭 알고 접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와 함께 꼭 생각해 볼 것, 그러나 이미 훼손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책에서 말하는 자기표현가치가 확대는 커녕 줄어들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에서의 자기표현 문제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위에서 말한 대중매체의 의도된 선별과정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 사실을 인지하고 대중매체를 접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중매체의 입김에 대해 한번 고민해보는 것과 이것이 당연히 의도된 편집을 거치고 나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다. 전자의 경우는 자기표현의 가치가 확대되어가는 와중에 그 표현의 욕구와 산물이 온전히 내것인가를 되묻는 과정이라면 후자의,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자기표현의 가치가 확대는 커녕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의 처절한 상황인식이다. 자기표현의 확대에 대해 고민하고 그 자기표현할 대상이 어떻게 우리의 머리속으로 들어왔는지 고민해볼 시간에 우리는 이것이 당연히 편집과 왜곡을 통해 들어와있다는 것을 당연히 인식하고 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순간 대한민국은 관용과 이해, 상대주의라는 것이 점점 실종되고 희미해지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비단 정권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정권을 만들어낸 건 역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이다. 그리고 이 시민들 자체가 점점 불관용화, 몰이해, 절대주의에 침전되어 가고 있다. 나와 너는 다를진대 우리는 너는 틀리다고 말하는 시대로 역행하고 있다. 자기표현의 가치가 확대되어 가는 세계로 가고 있다는 말만 되내어질뿐 실생활에서는 전혀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어느새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 '우리'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우리' 안에 포함되어 있음에 안도하고 그렇지 못한 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서둘러 나의 '잘못된' 점을 떼어내고 황급히 '우리'안에 편입한다.
로널드 잉글하트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왔고 계속 오고 있다. 그리고 자기표현가치의 확대와 함께 더욱 진보하고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가고 있다. 물론 우리의 '형식적'민주주의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효과적'민주주의는 벌써 저만치 가고 있다. 로널드 잉글하트는 이제 엘리트주의는 더이상 통하지 않으며 개개인의 자기표현이, 즉 개개인의 의사가 중요해질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결코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역시 지금도 소수의 엘리트, 기득권세력이다. 이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아직 우리의 민주주의는 정말로 성큼 다가올 수도, 성큼 물러갈 수도 있다. 이것이 아직 우리의 손으로 제대로 다 지불하지 않은 민주주의의 모습이고 대한민국 시민들의 한계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직 정치엘리트들의 판단과 결정이 중요한 만큼 그들을 뽑는 시민들의 투표와 시민의식이 더욱 중요해진다. 결국 이것은 선순환이 될 수도, 영원히 깨지지 않을 악순환이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세계 여러 시민단체와 매체에서 말하는 것처럼 급격히 후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계속 후퇴하리라는 법은 없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위에서 말한대로 한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도 있을 수도 있지만 어떤 고리의 한 지점에서 깨어져나와 선순환의 굴레 속에서 마음껏 페달을 밟을 수도 있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첨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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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민주주의는 일단 설치하면 저절로 작동하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이는 대중에 의존한다."(12페이지) "시민적 가치에 대한 논의에서 개인주의와 휴머니즘은 종종 충돌하였다.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개인주의가 사회적 이기주의와 동일시된다는 잘못된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중략)그러나 개인주의와 휴머니즘 간의 대조는 잘못된 것이다.사실상 개인주의는 자기중심적 정향이 아니라 인류애적 정향과 함께하는 경향이 있다."(259페이지) sns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기존의 정치권과 언론에서 활동하는 기성 엘리트층에게 기대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견해를 (sns 등장 이전보다) 더 쉽게 그리고 다수에게 자유롭게 밝힐 수 있게 되었다.소통이 쉬워졌다는 측면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 더 쉬워진 환경이기도 하다.이것은 자기표현에 대한 욕구가 분출하는 계기이면서 또한 자기표현을 더 널리 유행하게끔 한다.사람들에게는 다 각자만의 관점과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또 각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는 창구가 만들어지면서 엘리트들에 대한 감시와 요구가 쉬워진 만큼 정부를 시민들에게 더 반응적으로 만들었다.인터넷으로 정부에게 민원을 넣을 수 있는 국민신문고와 대중의 요구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비록 말들이 많지만..) 청와대 국민청원이 그렇다.
전통사회에서는 종교가 그리고 정치적 지배층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강요했다.그러나 르네상스는 신이 아니라 인간을 주인공으로 만들었고, 종교개혁과 상업혁명은 경제활동과 사유재산에 대한 터부를 물리치면서 정치적 의식이 있는 중산층을 탄생시켰다.휴머니즘은 여성과 아동에 대한 권리 보호로 이어졌고 산업혁명과 뒤이은 전쟁에서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양성평등도 강화되었다.개인의 중요성과 권리의식이 커지면서 (자유)민주주의는 그 뒤를 따라온 것이다.개인주의와 자유에 대한 열망이 민주주의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하면 흔히 선거, 의회 등 제도적인 요인들에 집중한다.물론 그것들은 민주주의의 결과물이고 동시에 민주주의를 지탱해주는 것들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가치가 중요할 것이다.이 책은 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한 제도적이고 다소 진부한 서술이 아니라 근대화와 민주화에 대한 문화적인 그리고 가치관에 기반한 검토를 하고 있다.민주주의 제도 밑바탕에 깔려있는 토양에(개인적 자유, 인간적 다양성, 시민사회의 자율성) 대해서도 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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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어떻게 오는가』를 읽기 전에는 정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었다.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등에 대해서 과연 확실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사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민주주의에 대해서 또박또박 말할 자신은 없다. 그래도 이 책을 끼고 있으면 찾아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해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요즘 들어 정치와 관련된 서적을 유독 많이 읽는 것 같다. 『정치가 우선한다』, 『라과디아』그리고 『편집된 과학의 역사』까지. 『편집된 과학의 역사』은 과학의 역사를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에 거론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 소개를 해야겠다. 두 분인데, “로널드 잉글하트” 와 “크리스찬 웰젤” 이다. 로널드 잉글하트는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과 정치이론가들로부터 정치학계의 석학이라고 인정받는 분이다. 그는 미시건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1988년(올림픽이 한국에서 개최하고 있을 때였다)부터 ‘세계가치서베이’를 이끌며 시민들의 가치변화를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현대 정치학사에 중요한 틀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 ‘세계가치서베이’ 또는 ‘가치서베이’ 라는 용어는 ‘자기표현가치’라는 용어와 더불어 이 책에서 자주 거론되는 중요한 용어이므로 익숙해져야 한다. 두 번째 저자인 “크리스찬 웰젤”은 독일 브레멘국제대학교 정치학과 조교수이며 로널드 잉r글하트와 함께 ‘세계가치서베이’에 참여있다고 한다. “크리스찬 웰젤”이 펴낸 저서가 몇 권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고 넘어가야겠다. 이 책을 읽는 데 중요한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이 되기 때문이다. 목차가 보인다. - ① 처음에는 몰랐는데 보인다. 중요한 용어라는 생각이 든다. 읽으면서도 보고 ,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봅니다. 목차를…. 그랬더니 보이네요. 중요했었구나. 중요한 키워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카테고리의 타이틀이 이와 같습니다. “사회경제적 발전과 자기표현가치” 두 번째 카테고리의 타이틀은 “자기표현 가치와 민주적 제도” 구성과 본문 내용이 잘 조화를 이룬 책으로 보인다. - ② 서론, 본론(본문 내용), 그리고 결론으로 이어지는 구성을 보면 잘 구축된 건축물을 보는 것처럼 탄탄해 보인다. 본문의 내용 또한 부실한 면을 볼 수가 없이 방대한 자료(수록된 표와 그래프자료들)와 그에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내 나라 , 내 조국이 어디에 있는지 보인다. - ③ 동아시아의 빠른 발전과 대만과 한국의 발전은 이 기본적인 공식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 2-1은 “문화지도상의 80개 사회의 경제적 수준과 위치”에 대한 그래프 자료입니다. 세로축은 전통적 가치와 세속적․합리적 가치, 가로축은 생존가치와 자기표현가치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자료였습니다. 그 안에 한국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 나라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책을 읽는 내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였습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이런 책과 생각이 났다. - ① “산업화의 단계에서 종교의 역할은 덜 중요해진다. 그리고 후기 산업사회에서 대중을 지도하기 위해 구축되었던 종교적 권위의 능력은 빠르게 감식되고 있다.” - p. 49 참조 - 이 문장을 읽을 때 버트란트 러셀의 『종교와 과학』이라는 책이 생각이 났다. 그 책에서 버트란트 러셀의 글귀들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개그콘서트의 코너 중에 하나가 생각이 났다. - ② “남자가 하늘이다. 남하당 대표 ○○○입니다. 여자가 당당해야 합니다. 여당당의 ○○○대표입니다.” 라는 멘트. 요즘 익숙하게 들리는 멘트이다. - 12. 성적 평등, 해방적 가치, 그리고 민주주의“ 라는 Part의 글을 읽을 때 개그콘서트의 그 코너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코너의 취지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성적평등을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은 똑같은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역자후기를 통해서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본다.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인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 p. 528 참조. - 이 정의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주주의라는 말을 분석해 보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에서 살아가게 만드는 사회의 시스템 (정치-이데올로기)이 과연 민주주의가 맞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겠다. 우선은 그 판단을 하기 전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리라. 그래서 이 책을 접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지금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오는가』에서 언급한 ‘사회경제적발전’ 과 ‘자기표현가치’가 민주주의에 있어서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 이 정도만 해도 제대로 읽은 거라 스스로를 위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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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나온다. 자유민주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그렇게 크게 와닿지도 않는다. 돈만 있으면 하고 싶은데로 살고, 80년대처럼 독재정권에 살고 있지도 않으니 당연하겠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 독재정권에 맞서 국민들이 피를 흘리며 저항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민주정부가 전부였다. 학생 시민 지식인 할 것없이 간절이 원해 거리를 나섰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절이 망각되고 소중히 지켜온 자유와 민주주의도 지켜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