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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깊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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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깊은 곳고은, 김형수아시아/2017.9.28.sanbaram   해마다 가을이 되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 될 때쯤이면 혹시 이번에는 ‘노벨문학상에 고은 시인 이름이 오를까?’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번번이 실망할 때 마다 원인을 하나씩 짚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고은 시인은 우리나라 문학인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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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깊은 곳

고은, 김형수

아시아/2017.9.28.

sanbaram

 

해마다 가을이 되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 될 때쯤이면 혹시 이번에는 노벨문학상에 고은 시인 이름이 오를까?’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번번이 실망할 때 마다 원인을 하나씩 짚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고은 시인은 우리나라 문학인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의 한 면만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그런데 대담집 고은 깊은 곳을 낸 김형수는 되도록 이 한 권으로 고은 생애의 조감도를 얻을 수 있도록 인생사 전반을 묻고 들으려 했다.’ 말한다. 그러면서 미지의 어둠을 향한 직관과 예감이 쉴 새 없이 작렬하는 이 대담집이 아무쪼록 고은 시인의 깊은 곳에 닿는 길 안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p.7)”고 강조한다.

 

대담집 고은 깊은 곳의 내용은 고은 깊은 곳 1. 2016년 봄, 2. 2016년 가을, 3. 2016년 겨울, 4. 2017년 봄. 4번의 대담과 한국작가회의 40주년 회고담으로 이루어 졌다. 그리고 그의 시 세계를 책머리 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미지의 장소에의 본능적 모험이 고은 의식의 본질인즉 이는 특정 국경이나 대륙 같은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먼 옛날과 먼 훗날을 포괄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거기에 오늘의 세계와 대결하는 바가 무엇인지, 당대 문명과 어떻게 길항하는지가 아로새겨진다는 데 고은 언어의 묘미가 있는 게 아닌가 한다.(p.6)”

 

“1938년부터 1년간 독일 철학자 에두아르트 슈프랑거가 동경제대 초청으로 일본에 왔어. 이 사람은 생의 철학자 딜타이의 수제자였는데 그가 일본열도의 각 제국대학 순회강연 뒤 조선의 경성제대(지금의 서울대)에서도 강연을 했네, 그런데 식민지 현지에 와서 조선어 수업도 하고 조선어를 구애받지 않고 사용하는 조선인 사회를 목격한 뒤 그는 총독부 간부에게 충고했네. 신민지 언어를 그대로 허용하고 무슨 식민지 정책이냐, 이것은 식민지 정책의 실패다 라고 지적했지. 그는 일본에서 정부 문부성 총서 시리즈 문화철학의 문제라는 저술도 이와나미 쇼텐(岩波書店)에서 출간한 사람이네. 이 충고 뒤 조선총독부는 친일귀족 현영섭 부자를 시켜 탄원서를 내게 했지. 조선어는 낡은 시대의 언어이고 일본어는 새 문명의 언어이니 낡은 언어문자를 없애달라는 요지였어. 물론 이에 앞서 일본도 이런 사실을 깨닫고 있었네. 그래서 1936년 미나미라는 총독이 선임되자마자 창씨개명과 일본어 사용을 획책하기 시작했네.(p.19)”

이와 같이 고은은 우리나라에서 창씨개명과 한국어가 일제 때 학교교육과정에서 사라지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말을 통해 일제가 내선일체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말을 없애고 이름을 바꾸면서 우리의 얼을 완전히 말살하려 획책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외래어와 무분별한 신조어가 우리말을 망치고 있다. 깊이 반성해볼 일이다.

 

나에게 시를 빼앗으면 나는 뱀 허물이고 거미줄에 걸린 죽은 풍뎅이 껍질이지. 내 묘비에는 내 이름 대신 라는 한 자만 새겨질 것이네. 그리고 그 아래에 (1933)이 작은 글씨로 새겨질 것이네.”

“‘은 있는데 은 없는 겁니까?”

시는 사망연도가 없기 때문이지. 시는 먼저 내 신체이네. 그 다음이 가엾은 혼인지 뭔지 일 것이네.”(p.22)

고은은 이처럼 자기의 이름까지도 라고 남기고 싶어 할 만큼 시와 일체의식을 가지고 있다. 육체가 죽어도 남는 시로 인해 완전히 죽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만큼 시를 사랑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이 작업을 25년이나 걸려서 했는데 이 작업에만 매달렸다면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네. <만인보30, 이것은 내가 이룬 인간 벽화일 것이네. 세계 어느 나라(스웨덴)에서는 일부가 번역되어 현대의 고전시리즈로 뽑혔다는데 한두 작품이 아니라 시집 한 권이 그렇게 뽑힌 것은 독일의 토마스 만 장편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후 60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네. 그 나라의 중고등학교 외국문학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는데, 한두 편은 국내 교과서에도 수록 되어 있지.(p.105)”

이와 같이 말하면서 만인보는 한 격동의 시기에 죽음을 앞두고, 그 죽음을 벗어난 삶으로 썼던 민족의 서사라 한다. 이것을 누군가가 민족의 호적부라고 말했다. 그것은 발자크의 인간희극파리의호적부라고 말한 것에 상응할 만한 것이었다고 한다.

 

한국어는 기적이지. 동북아시아를 오래 군림한 한자문화권에서 한자를 체화하면서 조상 대대로 일구어온 모국어를 지속적으로 보강해온 것이나, 대륙의 여러 종족들의 언어인 만주어 등 몇 개의 언어들이 사어(死語)로 된 뒤에도 살아남아서 오늘에 이른 것은 세계 언어사 에서도 드문 사례일 것이네. 더구나 고대 이래 한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두라던가 여러 편법을 고안해서 문자언어의 대안을 시도한 것도 지혜롭거니와, 한자의 원음을 토착화해서 한반도 발음으로 사용한 것도 그렇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임기응변의 변방에서 문자언어의 독립을 연 15세기 세종어제의 한글이야말로 영광이 아닐 수 없어. 그런 일은 거의 종주국 행세를 하던 중국의 천하체제를 거역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지.(p.147)”

그렇기 때문에 고은은 세종대왕이 자신의 신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말을 우리가 지켜야 되기에 남북한이 공동집필하는 겨레말 큰사전편찬사업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그리고 오늘의 한국작가회의는 그 특수성을 통한 보편성 획득의 긍지가 뜨겁게 살아 있다고 믿고 있네. 문학이란 해답에 들어 있지 않고 문제로 달려오는 가치의 실현이라고 한다면, 이 문학운동의 공동체는 이후의 40년을 더해야 하겠네. 왜냐하면 우리 문학과 실천의 자취가 아무리 찬란하다 하더라도 그것의 미래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하나의 추모 사사가 되고 말겠지. 그래서 이제까지의 진실조차도 한낱 가설이라는 영점에 서서 우리의 나아갈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겠네.(p.218)”

6.25전쟁으로 동네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일이 벌어지며, 주검을 묻는 일에 참여 했던 그가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여러 번의 자살 시도까지 했었다. 그리고 출가를 해서 한 때는 불교계를 위해 신문도 만들고 활동하다가 퇴출당하여 환속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겨울 날 늦게까지 마시던 술집에서 쓰러져 자다 깨어 전태일 열사의 사건 보도신문을 보고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 뒤로 민주화에 앞장서기 시작했으며 자유문인협의회대표를 맡게 되면서 현실참여를 하게 되고, 10여 년 동안 지독한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것에서 깨끗이 벗어났다고 한다. 반체제 운동으로 고문을 받던 중에 고막이 나가 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왼쪽 귀가 안 들리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나는 내 저서가 몇 권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150160권이 된다고 들었네. 2000년판 고은선집은 38권인데 그 뒤의 몇십 권의 저작들이 이어져 45권쯤인가 될 거야.(p.154)”

1933년생인 고은은 시인이란 꿈의 적자이고 현실의 사생아라고 말하면서 시와 산문, 소설과 평론 등 실로 많은 작품을 남겨 우리에게 자신의 세계를 내보이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문인들과 교류하며 30여 나라에서 시집이 번역되어 읽히고 있는 그는 분명 한국 문인의 큰 별임에 틀림없다.

 

지금은 21세기라는 것, 이전보다 훨씬 복잡사회라는 것들을 깨달을수록 이 시대의 아이는 이 시대의 울음을 울어야 한다고 생각해. 단 하나를 지적하고 싶네. 언어에의 책임 말이네. 이게 무척 어렵다네. 언어는 늘 위험다다네.(p.222)”

이처럼 우리말 지키기에 앞장서는 고은 선생의 정신이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미래의 조국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고은은 1958년 시인생활 시작 이래 시집, 소설 평론 등 저서 150여 권 간행. 서사시 백두산>7, <만인보>30, <고은전집>38권 등, 세계 30여개 국어로 번역 출판됨.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한국민중예술인총연합 초대회장, 경기대 대학원 초빙교수, 국내외 문학상 및 서훈 30여 개 등을 받은 현존 한국문인의 대표적 시인이다.

대담자 김형수는 1985민중시 2>에 시로, 1996문학동네에 소설로 등단했으며, 1988녹두꽃을 창간하면서 비평 활동 시작. 작가수업 시리즈, 시집 빗방울에 대한 추억장편소설 나의 트로트 시대>, 소설집 이발소에 두고 온 시>, 평론집 다수와 문익환 평전>, <소태산 평전등 다수의 책이 있음.

 

(이 리뷰는 예스24를 통해 아시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달의 사락 k******4 2017.10.04. 신고 공감 9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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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깊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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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하면 먼저 노벨문학상이 떠오른다. 후보에 거론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15년째 수상 실패는 역시 아쉽기만 하다. 그 아쉬움을 고은 시인의 시로 달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더 나아가 그의 깊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도 드물다. 물론 책 한 권으로 고은 시인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김형수 시인은 자신의 바람을 담아『고은 깊은 곳』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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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하면 먼저 노벨문학상이 떠오른다. 후보에 거론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15년째 수상 실패는 역시 아쉽기만 하다. 그 아쉬움을 고은 시인의 시로 달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더 나아가 그의 깊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도 드물다. 물론 책 한 권으로 고은 시인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김형수 시인은 자신의 바람을 담아『고은 깊은 곳』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냈다.

 

아스라이 먼 길을 따라 걷는 입장에서 선생님의 자취를 여쭙는 내내 그 파동이 울려나오는 곳에 얼마나 닿고 싶었는지 모른다. 제목을『고은 깊은 곳』으로 붙이게 된 이유이다.     (p. 4)

 

고은 시인은 이러한 후배 시인의 마음을 알았는지 자신의 깊은 곳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덕분에 독자들은 인간 고은과 시인 고은의 자취를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인간 고은과 시인 고은을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에게 시를 빼앗으면 나는 뱀 허물이고 거미줄에 걸린 죽은 풍뎅이 껍질이지. 내 묘비에는 내 이름 대신 ‘시’라는 한 자만 새겨질 것이네. 그리고 그 아래 (1933~ )이 작은 글씨로 새겨질 것이네.     (p. 22)

 

고은 시인의 시는 궁극적으로 모국에서 나오는 것 같다. 식민지 경영의 극대화 속에서 자란 특수한 경험은 모국과 모국어에 대한 순정, 그리고 불의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모국어는 궁극적으로는 모국이네. 일제 후기가 그 전기에 허둥대던 조선어를 폐지한 것은 조선의 주체를 완벽하게 없애는 식민지 경영의 극대화라네. 이런 사실로 보아 ‘조선어학회’의 한글 수호는 국외 독립운동의 국내적 증거이겠네. 그래서 1945년 8월 15일은 나에게 어떤 해방보다 ‘모국어의 해방’이었네. 나는 이 해방된 모국어로 내 운명으로서의 시인 생활을 하고 싶네. 내 모국어와 한글이 내 종교이네. 세종대왕이 나의 신이네. 나의 신은 창세와 조물주로서의 커다란 신이 아니라 내 언어문자의 절체인 것이네.     (p. 41~ 42)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체험은 고은 시인을 허무주의로 이끈다. 그는 “살아남은 자로서 허무가 나의 허무였음을 나는 뒤에 깨달았네.”, 라고 말한다.(p. 60) 그의 허무는 네 번의 자살 시도로 이어진다. 다행히 미수에 그치고, 세월이 흐른 지금 고은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나는 도리어 세상의 죽음을 방어하는 쪽이라네. 특히 OECD 자살률 제1위의 이 불명예 사회에서 ‘죽음의 꽃’으로서의 자살을 말하는 일을 크게 경계하고 있네. 죽음은 나에게는 역사와 문학 속의 것이었는데 이제는 사회의 것이네. 세월호의 죽음은 무엇인가. 그래서 누가 죽음을 물어도 고개 돌려 대답하지 않게 되었다네.     (p. 72)

 

남들이 다 잠들었을 때 세상의 불침번 같은 느낌으로 쓴다는 고은 시인은 여든이 넘은 지금도 성실하기만 하다.

 

내 일과는 아침 10시부터 1시 그리고 아내와의 점심 그리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서재에 있네. 집에 있을 때는 낮의 반주 한 잔 이외에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네. 내 술은 철저하게 술집에 있다네. 그리고 나 혼자가 아니라 누구와의 만남이 술이네. 밤에는 맨숭맨숭 신간 열독이네. 내 눈은 자주 책읽기를 갈망하고 있다네. 지금도 증정 받은 신간과 구매로 읽어야 할 책이 나를 위협한다네. 그러나 또한 써야 할 것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네.     (p. 113)

 

이러한 결과가 지금의 고은 시인을 만든 건 아닐까. 그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자신의 저서가 150~ 160권이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더러 다작이라 하지. 이 말은 참으로 낮은 수준의 지적이네. 괴테와 위고의 저작들 규모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지. 톨스톨이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네. 그들은 서간 전집만 따로 정리해도 어마어마한 규모라네.”(p. 154)  고은의 깊은 곳에 다다르니 다작이라 할 수 없는 그의 저서가 위협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 위협은 무섭기보다 마냥 기쁘기만 하다. 이제라도 위협해 줘서 고맙다고 할까. 어쩌면 고은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바라는 일보다 그의 저서를 읽는 게 시급한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수록 울림은 커질 테니까 말이다.

e******i 2017.10.09. 신고 공감 9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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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깊은 곳 - 고은, 김형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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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즈음에 자주 언급되는 우리나라의 작가는 고은 시인이다. 아직까지 한국 문학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적이 없으니 수상 가능성이 높은 고은 시인이 언급되는 것은 어쩌면 국민 모두의 염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러한 고은 시인이 해마다 왜 이 시기에 언론에 오르내리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것이고, 언론 역시 이 시기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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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즈음에 자주 언급되는 우리나라의 작가는 고은 시인이다. 아직까지 한국 문학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적이 없으니 수상 가능성이 높은 고은 시인이 언급되는 것은 어쩌면 국민 모두의 염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러한 고은 시인이 해마다 왜 이 시기에 언론에 오르내리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것이고, 언론 역시 이 시기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고은 시인에 대한 망각의 길에 동참하게 된다. 사실 나 또한 고은 시인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 못하기에 이러한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작품을 통하여 작가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나로서는 고은 시인의 글을 접해본 적이 없기에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출판사 아시아에서는 이 시기에 고은 시인과의 대담을 통하여 그의 걸어온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고은 깊은 곳>을 출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2016년과 2017년에 이루어진 고은 시인과 그를 존경해마지 않는 김형수 시인의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둘의 깊이 있는 대화는 노벨문학상 후보자라는 꼬리표로만 알고 있던 고은 시인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기에는 충분하리라 보여진다. 또한 시와 같은 그의 글이 수록된 것이 아니지만, 이 책에 기록된 고은 시인의 대화 내용은 그의 시에 대한 간접적인 경험을 하기에 충분하므로 문학적인 접근 역시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략) 1990년대 이래의 시에서 내 시적 전환의 동기는 시대와 나 사이의 불화나 조화의  합성이기도 하지. 다시 말하면 시대나 세상이 나에게 파동을 보내고 내 영혼의 해안에 그 파동이나 진동이 닿아서 나를 움직인 것이라는 거네.

 - p. 129 -

 김형수 시인 말대로 시대 상황 속의 불확실성에 대한 표현을 위와 같은 파동과 영혼의 해안으로 말하는 고은 시인의 모습은 당장 그의 시를 읽어보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무지와 갈등을 상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은 시인에 대한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바로 소설과 같은 그가 걸어온 삶의 여정이다. 어렸을 때 경험한 일제강점기의 시간, 민족 분단의 비극인 6.25, 군부 독재 및 민주화 과정의 길은 그가 태어난 시기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은 공통적인 시간의 흐름이지만, 이로 인하여 영향을 받은 고은 시인의 삶은 예사롭지 않음을 이내 눈치채게 된다. 거대한 사회적 현상이 개인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글을 그의 삶 자체라고 생각하는 고은 시인에게 끼친 그 영향은 단순한 개인의 삶의 격변만으로 보기에는 다른 모습이 느껴진다.

 전통사회에서 내려온 관습이나 농경사회의 미덕들이 그 가치를 상실해버렸네. 한국어의 느린 어조도 그 전쟁을 겪으면서 급해졌어. 그리고 표현도 간접적이기 보다 직접적인 것이 되고 매우 거칠어진 경음이 압도하게 되었지. 나누기보다 곱하기에 여념 없었지. 빼기보다 더하기에 미쳐버렸어.

 - p. 54 -


 그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시대적인 변화를 글과 말로 대변하여 표현하는 그의 모습은 그의 삶에 있어서 글이 어떠한 의미인지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6.25 전쟁으로 인하여 그가 죽음을 통한 허무주의에 깊이 빠져 그 역시 죽음에 이르려는 시도를 여러번 하였다는 사실 역시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 죽음과 그 주검의 악취는 차츰 멀어진 것이 아니라 내 심신 속에 깊이 감염되어 버렸어. 그 래서 나는 죽음의 추상론, 죽음의 미학이나 죽음의 야만 따위에 사로잡혔다네. 삶이 내 원칙이 아니라 죽음이 내 척도였네. (중략) 끝내 이런 죽음은 나의 죽음으로 자기화되었네.

 - p. 56 -

 죽음을 목도하고, 그 죽음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이 부분에서 그가 겪은 질곡의 시간에 대하여 공감하게 된다.


 실제 몇 번의 자살 시도를 한 그의 삶이 아이러니하게 자신만의 문학적인 세계를 만들어가면서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자살 시도가 그러한 반전을 이끌어냈음을 역시 새롭게 알게 된다. 

 죽음을 놔두게. 그것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게. 사는 일의 허망을 죽음으로 메우지 말게. 죽음을 신성한 삶의 결론으로 삼게.

 - p. 72 -

 죽음을 통하여 허무함이라는 부담감에 항상 시달렸던 그가 죽음을 신성한 삶의 결론으로 충고하는 부분이야말로 그의 드라마틱한 삶의 과정 중에서 큰 인생의 전환점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스님에서 다시 시인으로, 순수 문학에서 참여 문학으로의 변화는 고은 시인의 자유로운 사유에서 비롯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이육사의 <광야>를 읽고, 시에 대하여 압도되어 역으로 시를 뒤로 하였지만, 우연히 읽게 된 한하운 시인의 시집을 통하여 다시금 시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순간이라든지 전태일의 죽음을 통하여 순수 문학에서 참여 문학에 심취하는 그의 모습은 타인의 삶이 고은 시인의 삶의 전환점이 된 동시에 자신의 길에 대한 겸손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그의 현실에 대한 열정적인 참여 역시 이 책을 통하여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그로 인하여 그가 군부 독재 정권으로부터 엄청난 고문과 박해를 받은 사실은 현실 인식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가 그의 문학이 밀실의 독백성으로부터 광자의 대화성으로 옮겨지는 체험으로 연결되어 초반에 그가 추구하던 심미주의에 절실한 정서와 의식의 결합이라는 지향점으로 변모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생각들이 이 책의 대담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이유는 이 책의 제목처럼 그의 삶에 대한 깊이있는 대화에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이슈로의 고은이 아니라 그의 깊이 있는 삶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자 한다면 <고은 깊은 곳>을 열어봐야 하지 않을까?


( 이 리뷰는 출판사 아시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

g*******7 2017.10.09. 신고 공감 7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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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알게 된 시인 고은의 깊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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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은 우리들 모두가 알고있는 시인이다. 나 역시 그의 이름을 들어본 지 오래고 그래서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시인에 대해 생각해보니 아는게 없다. 하다못해 그의 시집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아무리 시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다 해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맞다. 그저 남들이 아는 만큼만 들어서 알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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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 시인은 우리들 모두가 알고있는 시인이다. 나 역시 그의 이름을 들어본 지 오래고 그래서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시인에 대해 생각해보니 아는게 없다. 하다못해 그의 시집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아무리 시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다 해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맞다. 그저 남들이 아는 만큼만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린다는 것, 군부독재시절 참여시인으로 활동하며 모진 핍박을 받았다는 것, 한때 출가한 승려였다는 것, [만인보]라는 시를 썼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광교산 자락에서 살고 있다는 것.. 그것도 세세하게 알지는 못하고 그저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이 내가 시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던 것 같다.

 

   한 사람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한 대담집을 읽는다는 것은 항상 조심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칫 인터뷰어의 의도를 알지 못하면 곡해가 생길 수도 있고, 또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경우에는 의도치 않게 그들의 프레임에 갇혀 일면만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 [고은 깊은 곳]은 제목 그대로 시인의 삶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다만 나는 이 책을 평전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고은 시인에 대해 세세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책을 읽기 전 내가 의례 그러려니 하는 지레짐작으로 생긴 일이었다.

 

   대담집을 읽으면서 특히 인상에 남았던 몇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시인의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었다. 해방은 곧 모국어에 대한 해방이었다는 그는, 언어는 생물종의 멸종과 정비례하는 멸종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고대국가의 언어들, 수많은 민족의 언어들이 사라져가는 가운데 아직까지도 건재한 우리 한글에 대한 사랑은 집착이라 할 만큼 애틋하다. 그래서 모국어는 궁극적으로 모국,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아직도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시인의 삶에 일상적으로 자리잡은 죽음이 왜 그러했는지를 알게 된 것도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단초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중 학살과 보복학살로 피아의 의미가 사라진 죽음의 광란 속에서 시인은 죽음과 주검의 악취에 감염되었다고 한다. 몇번의 가출과 자살시도는 출가로 이어져 승려가 되었지만 이러저러한 일로 환속한 후 10여년간을 불면증으로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노동자의 분신기사를 신문에서 보게 되었다. 전태일의 죽음은 사회문제에 관심 없었던 시인에게 현실에 대한 시야를 제공했고, 오랫동안 시인이 가지고 있었던 죽음의 유혹을 걷어냈다고 한다. 스님은 개헌강행에 반대하는 작가선언에 뛰어들었고,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조직하여 사회적모순과 분단 그리고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신문당하고 고문당하는 날들의 시작이었다.

 

   시력 60년을 앞두고 있는 고은 시인. 그의 작품은 자신도 정확히 모르지만 대략 150-160권은 된다고 한다. 그 많은 작품들 중 막상 나는 읽어본 책이 한 권도 없다. 수많은 시들이 27개국어로 번역되어 이국 땅 많은 사람들의 애송시가 되고 있다고 한다. 국내보다도 해외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는 시인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나는 시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대담집 한 권을 읽고서 시인에 대해 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동안 내가 피상적으로 알아왔던 시인의 깊은 곳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다면 그러한 느낌은 아마 확신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격동의 시기, 죽음을 앞두고 그리고 그 죽음을 벗어난 삶으로 쓴 민족의 서사라고 하는 [만인보]에 관심이 간다. 선악을 표준으로 삼지 않고 2차원의 평면에 인간과 시대를 내려다 펼쳐 놓았다는 그 시집을 읽어보고 싶다. 25년에 걸쳐 전30권으로 완간 했다는 대작이지만 한권, 한권 읽다 보면, 그리고 다시금 이 책을 읽는다면 보다 고은 시인의 깊은 곳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k*****1 2017.10.01. 신고 공감 7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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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을 잇는 샤먼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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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을 잇는 샤먼의 언어- 고은·김형수 『고은 깊은 곳』       고은 시인과 김형수 시인이 대담한 기록을 담은 『고은 깊은 곳』(아시아, 2017)은 제목 그대로 고은 시의 깊은 곳을 시인의 육성으로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이 대담에서 고은은 ‘나’를 이야기하면서 ‘나’ 밖에 있는 세계로 나아간다. 그가 이야기하는 ‘나’는 우리 시대 전체를 대변하는 ‘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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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을 잇는 샤먼의 언어

- 고은·김형수 『고은 깊은 곳』

 

 

 

고은 시인과 김형수 시인이 대담한 기록을 담은 『고은 깊은 곳』(아시아, 2017)은 제목 그대로 고은 시의 깊은 곳을 시인의 육성으로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이 대담에서 고은은 를 이야기하면서 밖에 있는 세계로 나아간다. 그가 이야기하는 는 우리 시대 전체를 대변하는 라는 점에서 한 개인의 로 한정될 수 없다. 개인의 이야기가 사회 전체의 이야기가 되는 세계는 유()의 무(), 실재의 부재를 탐구하는 고은의 시 세계와 잘 어울린다. 그는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6.25 전쟁의 비극을 겪었고, 박정희 유신체제의 핍박 속에서 자유를 염원하는 시를 썼다. 그가 겪은 시대의 비극은 고스란히 한국역사의 중심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존재의 허무와 역사적 실천 사이에서, 혹은 문학적 허구와 사회적 현실 사이에서 고은은 60년에 가까운 시력(詩歷)을 쌓아온 셈이다.

 

 

아침 조회 시간 벽두에 동쪽의 일본 천황 궁성 방향으로 배례를 했네. 낮에는 묵념을 바쳤네. 그리고 일본 이름으로 일본어를 국어로 배웠어. 1945년 여름 이후 내가 만난 모국어와 세종의 문자가 내 운명의 복권(復權)이었지. 나는 내 모국어이기도 하다네. 5백 년 뒤 사어(死語)가 될지도 모를 언어의 멸종 시기를 앞둔 나에게 내 모국어에의 헌신은 곧 나의 삶이라네. (20)

 

 

고은은 1945년의 해방을 내 운명의 복권(復權)”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모국어를 쓸 수 없는 시대를 벗어나 모국어로 말글을 쓰는 시대로 시인에게 다가왔다. 세종대왕은 나의 신”(41)이라고 할 정도로 고은은 모국어를 강조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로 시를 쓰면서 그는 존재와 언어의 통일”(20)을 경험한다. 일본어로 시를 쓰는 사람과 한글로 시를 쓰는 사람은 언어의 차이만큼이나 존재=생각에도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언어는 그 말을 쓰는 사람의 사상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일본어를 쓰는 사람은 일본어의 사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시인은 언어를 혼의 기호”(40)로 명명한다. 자아가 타자로부터 모든 주권을 박탈당했을 때 그 자아는 자신의 언어만이 남겨진 사실을 깨닫는다”(40)는 것이다. 8.15 해방은 시인에게 이런 언어의 해방, 곧 혼=정신의 해방으로 펼쳐진 셈이다.

 

하지만 해방은 또 다른 비극을 낳는 역사적 사건의 단초이기도 했다. 좌우익 이념 논쟁의 결과로 1948년 한반도는 완전 분단되었고, 2년 후 6.25 전쟁이 일어났다. 고은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전통사회에서 내려온 관습이나 농경 사회의 미덕들이 그 가치를 상실해 버렸”(54)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어의 느린 어조도 그 전쟁을 겪으면서 급해졌어.”라는 의미 있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6.25 전쟁은 한국인의 정서 자체를 뒤바꿔버렸다. 좌익과 우익이 번갈아가며 저지른 살육의 현장에서 시인은 “2주일 이상 세숫비누로 내 몸을 아무리 닦고 닦아도벗겨지지 않는 악취 중의 악취”(55)를 느낀다. 시체의 악취는 시인의 정신도 망가뜨린다. 고은의 초기시가 시대에 대한 환멸이나 집 잃은 정신을 두드러지게 드러낸 까닭은 이러한 역사적 체험과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이란 어느 특정한 시대에만 커다란 사건이거나 심각한 것은 아닐 것이네. 본디 옛사람은, 가령 불교 같은 데서는 생과 사를 대사(大事)라 했네. 유가에서도 출생이나 사망 그리고 그 안의 혼인 따위 관혼상제를 삶의 큰 사건으로 여겼네. 한 인간의 생애를 한두 마디로 요약한다면 태어나고, 만나고, 죽는 것이네. 다만 어린 나에게는 할머니의 죽음, 그 뒤에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자연적인 죽음 사이에 역사로서의 죽음인 전쟁 시기 학살과 전사라는 인위적인 죽음들의 비극이 엄청났던 것이네. 거기서 죽음이 얼마나 삶을 모독하는가를 죽음이 얼마나 삶 따위를 가소롭게 하는가를 소년인 나는 아무런 정신이나 의식의 단련 없이 체험한 것이었네. 어쩌면 내 근원의 허무주의야말로 이런 죽음의 극한 상태에서 발생했는지 모른다네. 이런 1953년 가을 이후 살아남은 자로서 허무가 나의 허무였음을 나는 뒤에 깨달았네. (59~60)

 

 

시인은 전쟁을 통해 죽음이 얼마나 삶을 모독하고 있는지 체험한다. 죽음 앞에서 삶은 아주 가소로운 일이다. 그 일을 시인은 아무런 정신이나 의식의 단련 없이겪었다. 고은의 자생적인 허무주의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4번에 걸친 자살 시도와 출가 경험은 고은이 이 허무주의와 어떻게 맞섰는지 에둘러 보여준다. 그는 내 허무주의는 동양의 노자 무위나 저 불교의 무 아니면 세기말 서구 니힐리즘이 아니었네.”(65)라고 분명히 말한다. 생의 무의미에 대한 죽음의 의미론”(65)이라는 구절에 표현되는 대로, 그는 전쟁 속에서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생의 무의미에 주목한다. 생의 무의미를 그는 죽음에서 발견한다. 죽음은 생의 무의미에 의미를 불어넣는 역설로 전쟁의 비극 앞에 선 그의 정신을 수놓은 셈이다.

 

죽음의 의미에 집착하던 시인은 전태일이라는 또 다른 죽음(방식)과 마주하면서 현실 속으로들어선다.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그는 노동현실의 열악한 그 비인간적인 상태 그리고 분단현실과 군사정권의 모순 등을 의식하기 시작”(82)한다. 전태일의 죽음은 수많은 사람들을 노동운동의 현장으로 이끌었다. ‘죽음에도 대승(大乘)이 있다는 시인의 생각은 무엇보다 전태일이 실천한 사회적 죽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한 개인의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한 죽음이 아니라, 한 사회의 혁명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죽음을 시인은 전태일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1974자유실천문인협의회라는 문단 조직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더불어 타락한 권력에 맞서는 사회적 삶을 실천하는 도정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래서 허구와 현실의 종합이거나 허구야말로 그 궁극에서는 현실이고 현실이야말로 끝내 허구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어. 이것은 네루다가 리얼리즘을 모르는 시인은 시인이 아니고 리얼리즘밖에 모르는 시인은 시인일 수 없다고 말한 것과도 한통속인지 모르겠네. 나의 리얼리즘은 필연적으로 리얼리즘의 초월과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네. 이런 일들이 내 1970년대, 1980년대의 운동과정에서 내면화되는데 그 내면화가 반드시 현실에의 방향성을 낳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네. 운동은 사회나 세상에 적용하면 할수록 운동의 장본인인 나 자신의 세계에도 기여한다네. 그 규모가 막강하든 그렇지 않든. (94~95)

 

 

고은에게 허구는 곧 현실이다. 폐결핵 환자를 꿈꾸던 시인이 실제로 폐결핵을 앓은 것처럼, 허구는 어느 순간 현실이 되어 시인 앞에 나타난다. 시인은 허구와 현실의 종합으로 이런 상황을 정리한다. 시인은 네루다의 말을 빌려 리얼리즘을 모르는 시인은 시인이 아니고 리얼리즘밖에 모르는 시인은 시인일 수 없다고 말한다. 리얼리즘에 근거하되 그것을 초월하는 문학을 그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역작인 󰡔만인보󰡕를 설명하며 시인은 󰡔만인보󰡕라는 시 이야기를 통해 어린 시절 고향 사람들의 피붙이와 이웃들의, 그 후 내가 머물렀던 지역과 그렇지 않았던 지역의, 내가 머물렀던 역사와 그렇지 않은 시간 속의 초상들을 그래냈어.”(95)라고 이야기한다. 리얼리즘(경험)과 초월(경험 너머)을 동시에 진행하는 고은 시의 면모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작품이 󰡔만인보󰡕라고 봐도 좋겠다.

 

시인은 끝나지 않는 것이 진리이고 변하는 것만이 진리”(107)라고 주장한다. 그가 모든 품사는 동사”(108)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 찰나도 멈추지 않는 세계를 시인은 동사라는 품사로 표현한다. 그에 의하면 정신이나 영혼도 하나의 동사(動詞)”이다. 정신이나 영혼도 변한다는 말이다. 시인은 그 찰나의 변화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사람이다. 하늘과 땅을 잇는 샤먼처럼 시인은 주술적 언어로 삶의 오지(奧地)를 파고들어간다. 인간의 내면은 우주의 내면과 깊이 합치되어 있다. 현대사회의 풍요로움에 익숙한 우리들은 다만 그것을 모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은 언어를 통해 우주의 내면으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고은이 말하는 샤먼으로서 시인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933년생인 고은은 여전히 나는 변성기의 소년”(157)라고 거침없이 외치고 있다. 사물 앞에서 지금도 옛날처럼 부들부들 떨리네.”라는 시인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고은이 천생 시인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냈다. 사물 앞에서 몸을 떠는 사람은 사물과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고은은 사물과 공감하는 그 마음을 신명”(155)이라는 말로 풀이한다. 모국의 경계를 넘어 다른 나라의 언어로 뻗어 나가는 고은 시의 여정에는 무엇보다 이러한 신명의 미학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신명나는 마음으로 그는 시 쓰기라는 순례의 운명”(190)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순례는 끊임없이 이동하는 상황을 표시하는 말이다. 시 쓰기로 순례를 시작한 고은은 지금도 시 쓰기로 순례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시를 쓰는 틈틈이 남과 북의 언어를 아우르는 『겨레말 큰 사전』 편찬에 매달리고 있다. 모국어를 향한 사랑에서 시작한 그의 시 쓰기가 분단된 모국어를 모으는 또 다른 사랑으로 끝나가고 있는 셈이다. 하긴 그는 이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전생연보를 작성할 만큼 그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의 한 과정으로 현재를 생각할 뿐이다. 그는 지금 한국어로 시를 쓰지만 다음 생에서는 또 다른 언어로 시를 쓸지 모른다. 시는 그렇게 언어에서 또 다른 언어로 이어진다. 시에 대한 신명이 남아 있는 한 그가 쓴() 시 또한 남아 있으리라는 걸 고은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o*****s 2017.10.03.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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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깊은 곳/ 고은, 김형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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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뒤 포탈사이트검색란에 '고은'이란 이름을 넣어본다. 어, 고은 시구? 동명이인인가 싶었더니 정말 며칠전에 노시인이 야구장에서 시구하는 기사가 맨 위에 있다. 사진을 보니 시구 참 멋지게도 하신다. 시구에 앞서 시인은 " 허공이 소리친다. 온몸으로 가자"라는 짧은 시를 kt에 헌정했다고 하는데 좀더 읽으니 kt가 수원에 고은 문학관 건립을 축하하는 의미로 기획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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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뒤 포탈사이트검색란에 '고은'이란 이름을 넣어본다. 어, 고은 시구? 동명이인인가 싶었더니 정말 며칠전에 노시인이 야구장에서 시구하는 기사가 맨 위에 있다. 사진을 보니 시구 참 멋지게도 하신다. 시구에 앞서 시인은 " 허공이 소리친다. 온몸으로 가자"라는 짧은 시를 kt에 헌정했다고 하는데 좀더 읽으니 kt가 수원에 고은 문학관 건립을 축하하는 의미로 기획한 시구라고 한다.

 

 

 

고은 시인하면 거듭되는 노벨문학상 후보와 '사치'라는 시가 떠오른다. 해마다 회자되는 노벨문학상후보는 노시인을 힘들게 할 게 뻔하다. 시 '사치'에는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누님에 대한 절절한 사연이 나오는데, 세상 사람들이 시인의 상황이라고 짐작할 게 뻔한 그 내용이 실은 모두 지어낸 거라고 해서 인상깊게 기억에  남아있다.

 

 

 

 대표시도 찾아보았더니 '사치' 뿐만이 아니라 '문의 마을에 가서', '그 꽃' 등 많은 시들이 눈에 익었다. 그 중에 또 궁금한 것이 생각나서 찾아본 연작시집 '만인보'. 25년에 걸쳐 4,001편의 시를 서른 권의 시집으로 출간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알만한 사람들의 이름은 다 있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 고은 시인이라면 이렇게 대략적인 것만 알고 있지 않을까? 그걸 몹시 아쉬워한 김형수 시인이 고은 시인과 대담한 내용을 계간지에 싣고, 그것을 모아서 이렇게 책으로 펴냈다. 2016년 봄, 가을, 겨울, 2017년 봄, 그리고 2014년 7월 한국작가회의 40주년 회고담까지가 이 책의 내용이다.

 

 

 

김형수 시인은 이 한 권의 책으로 고은 시인의 일생을 짐작해볼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김형수 시인이 묻고, 고은 시인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미리 말을 하자면 김형수 시인은 고은 시인을 몹시도 경외하고 있었다.

 

 

 

고은 시인은 자신의 유골마저도 시를 쓸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시력 60년을 바라보는 노시인이다. 누군가에게 시를 배우지도 않았는데 서정주, 김수영처럼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두 시인에게 모두 인정 받았고,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도 인정하는 시인이라고 한다. 잠시 승려가 되기도 했지만 곧 환속했고 수 년동안의 감옥생활 후 풀려난 뒤 지금까지 한눈팔지 않고 시에만 몰두한 삶이라고 소개한다. 노시인은 자신에게서 '시를 빼앗으면 나는 뱀 허물이고 거미줄에 걸린 죽은 풍뎅이 껍질'에 불과할 것이라 하고, 중국의 이태백을 '나의 형'이라고 표현할 만큼 시가 전부인 사람이었다.

 

 

 

읽다가 안타까운 점은 군부독재시절 겪은 감옥생활이었다. 세상을 사유하며 시를 쓰는 일에 골몰한 시인에게 국가전복이라는 옷을 입혀 무지막지한 고문과 감옥행이 이어지던 시절의 어둠이 불과 얼마 전의 우리나라 모습이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언짢았다. 과거와는 달리 현재 어떤 정치적 몸짓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그 후유증이 아닌가 생각하니 동시대인으로 부끄러움 마저 들었다.

 

워낙 노시인을 존경하는 후배 시인과의 대화여서 그런지 읽기에 낯뜨거운 문장도 여럿 있었지만 몰랐던 노시인의 삶과 육성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에서 읽은 내용으로는 고은 시인의 높은 위상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외국에서 더 인정받고있다고 한다. 동아시아 대표시인으로 세계 곳곳으로 초청받아 세계의 시인들과 시를 이야기하는 시인의 모습을 우리만 홀대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통해 고은 시인의 삶을 조금은 엿봤으니 이제는 노시인의 시를 찾아읽어야겠다. 특히 만인보 30권에 흥미가 간다. 자기 중심주의로 흘러가는 요즘,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사천 편의 시를 썼다고 하니 '만인보'를 통해 고은 시인을 더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t******e 2017.09.30.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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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연못에 비친 달 같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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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생각하면 먼저 나라의 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마 그가 다른 곳에서 태어나서 문학 활동을 했다면, 그의 업적과 글을 통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많은 투쟁이 있었고, 깊은 사고가 있었고, 다양한 활동이 있었다. 문학인으로 인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영역은 두루 갖췄다고 해도 될 듯하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해 보는가 모두 쉽게 짐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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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생각하면 먼저 나라의 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마 그가 다른 곳에서 태어나서 문학 활동을 했다면, 그의 업적과 글을 통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많은 투쟁이 있었고, 깊은 사고가 있었고, 다양한 활동이 있었다. 문학인으로 인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영역은 두루 갖췄다고 해도 될 듯하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해 보는가 모두 쉽게 짐작을 할 수가 있으리라. 바로 노벨문학상 때문이다. 노벨상이 발표될 때만 되면 늘 그의 이름이 거론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한 번도 노벨문학상을 가져온 적이 없다. 그것은 국력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때를 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능력이 없어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그가 이미 이룩한 결과는 충분히 세계적이라고 해도 된다. 작년 그 무엇이라든가? 가수가 문학상을 가져가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의 필력은 세계에서도 인정을 한다.

 

고은의 생각을 담은 책을 한 권 만났다. ‘깊은 곳이란 제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깊이 있는 생각을 담았다는 뜻이리라. 김형수님이 만나 이끌어낸 고은의 세계, 그것이 이 책이라고 하면 되리라. 두 분 다 깊은 통찰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다. 사색을 통해 그들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분들이다. 그들의 생각의 만남, 그것은 충분히 분의 세계를 우리가 접해 갈 수 있게 하리라 여긴다. 그런 각도에서 책을 읽었다.

 

책은 대담집이다.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루어졌다. 흔히 기자가 기사를 쓸 때, 어떤 인물을 기사로 담을 때 하는 질의와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일대 일의 면담을 통해 대상자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첨가하면서 이야기를 완성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저자도 워낙 달관의 시대를 살아온 분이기에 거침이 없는 언어를 보여준다. 생각의 자리를 보여준다.

 

먼저 성장하면서 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질문자의 천 개의 강에 비친 달이란 표현이 고은 시인을 잘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그만큼 다양한 삶을 살아왔다는 뜻이리라. 집을 잃은 정신의 탄생부터 이념적 우상의 시대를 벗어날 때까지 그의 미지학은 정체성을 향해 혼란스러운 길을 걸었다. 그러다 모국어를 만나고 그의 정신은 날개를 달게 되었다. 그 정신은 열정으로 실존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6.25를 거치면서 저자는 실어의 시간을 가진다. 그것은 죽음과 닿아 있다. 죽음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는 허무주의적인 길을 걸어 무인도에 닺을 내리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다 미적으로 훈련된 맑은 영혼들에 의해 구조되기도 하면서 제주도에 이르기도 하고, 그것으로도 되지 않아 출가의 길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길은 없었고 결국 인간의 세계로 돌아와 전태일을 만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를 통해 노동현실의 열악함과 비인간적인 상태, 분단현실과 군사정권의 모순 등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를 참여문학 쪽으로 가는데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전태일의 죽음은 죽음으로 보이지 않았고 많은 자들을 살림의 현상으로 보였다. 그 속에서 바람의 사상이 나왔고, 그것은 자유와 선을 향한 투쟁의 길이었다. 군사정권은 그의 투쟁에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만인보는 그를 세계 속에 우뚝 솟은 시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감옥에서 익힌 어휘들로 25년이나 걸려 이룩한 세상의 재구성은 인간 벽화라 칭할 만하다. <만인보가 만들어낸 세계는 시대 속에서 보편을 획득해 인구에 회자 되었다. 가장 오래된 것을 가장 새롭게 만들어 가는 힘으로 정신이나 영혼을 만나고 있는 그는 아직도 그 작업에 대해 손을 놓지 않고 있다.

 

그의 이 즈음에서 세계가 존재에서 관계의 시대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삶이 이루어지고 그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리라. 즉 자유라는 것이 따질수록 모호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그가 서 있는 곳이 세상이고, 그곳을 벗어나서 그의 어떤 문학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하면서 그는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직관의 경이로움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시를 예술의 다른 분야에서 절대원소로 보고 있다. 그만큼 예술의 감초 역할을 하는 것이 시라는 뜻이다. 그는 시를 쓰는 막간에는 딸의 화실에 가서 그림도 그리고 붓글씨도 쓴다고 한다. 그것은 시의 길에 대해 잘 말해주는 무언이다. 그는 아직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아직도 예술에 있어서는 철없는 소년과 같다고 한다. 그것은 무한의 집념이 만들어낸 화두이리라.

 

사적으로는 나는 내가 사는 동시대의 한 낱알에 불과하다는 이 무한한 익명성의 축복을 실컷 누리고 싶네. 여름날 베짱이가 자지러지게 읊어대며 살다 가는 흔적이 이 세상의 어디에서 의미로 고착되겠는가? 하지만 내 운명에는 동시대 전후에 걸쳐 뭔가를 역류하는 행위도 들어있는지 몰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세상에 왔다가 이름을 남기면 또 무슨 일인가? 저자의 언어에 담긴 통찰의 지혜가 새롭게 다가드는 시간, 그의 삶에, 각성에 대한 진한 향기를 느껴본다.

j****3 2017.10.11.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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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깊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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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집 <고은 깊은 곳>의 내용은 ‘고은 깊은 곳 1. 2016년 봄, 2. 2016년 가을, 3. 2016년 겨울, 4. 2017년 봄. 등 4번의 대담과 한국작가회의 40주년 회고담’으로 이루어 졌다. 그리고 그의 시 세계를 책머리 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미지의 장소에의 본능적 모험’이 고은 의식의 본질인즉 이는 특정 국경이나 대륙 같은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먼 옛날과 먼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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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집 고은 깊은 곳의 내용은 고은 깊은 곳 1. 2016년 봄, 2. 2016년 가을, 3. 2016년 겨울, 4. 2017년 봄. 4번의 대담과 한국작가회의 40주년 회고담으로 이루어 졌다. 그리고 그의 시 세계를 책머리 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미지의 장소에의 본능적 모험이 고은 의식의 본질인즉 이는 특정 국경이나 대륙 같은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먼 옛날과 먼 훗날을 포괄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거기에 오늘의 세계와 대결하는 바가 무엇인지, 당대 문명과 어떻게 길항하는지가 아로새겨진다는 데 고은 언어의 묘미가 있는 게 아닌가 한다.(p.6)”

 

“1938년부터 1년간 독일 철학자 에두아르트 슈프랑거가 동경제대 초청으로 일본에 왔어. 이 사람은 생의 철학자 딜타이의 수제자였는데 그가 일본열도의 각 제국대학 순회강연 뒤 조선의 경성제대(지금의 서울대)에서도 강연을 했네, 그런데 식민지 현지에 와서 조선어 수업도 하고 조선어를 구애받지 않고 사용하는 조선인 사회를 목격한 뒤 그는 총독부 간부에게 충고했네. 신민지 언어를 그대로 허용하고 무슨 식민지 정책이냐, 이것은 식민지 정책의 실패다 라고 지적했지. 그는 일본에서 정부 문부성 총서 시리즈 문화철학의 문제라는 저술도 이와나미 쇼텐(岩波書店)에서 출간한 사람이네. 이 충고 뒤 조선총독부는 친일귀족 현영섭 부자를 시켜 탄원서를 내게 했지. 조선어는 낡은 시대의 언어이고 일본어는 새 문명의 언어이니 낡은 언어문자를 없애달라는 요지였어. 물론 이에 앞서 일본도 이런 사실을 깨닫고 있었네. 그래서 1936년 미나미라는 총독이 선임되자마자 창씨개명과 일본어 사용을 획책하기 시작했네.(p.19)”

이와 같이 고은은 우리나라에서 창씨개명과 한국어가 일제 때 학교교육과정에서 사라지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말을 통해 일제가 내선일체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말을 없애고 이름을 바꾸면서 우리의 얼을 완전히 말살하려 획책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외래어와 무분별한 신조어가 우리말을 망치고 있다. 깊이 반성해볼 일이다.

 

이달의 사락 k******4 2018.05.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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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대담집-고은 깊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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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대담집-고은 깊은 곳>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을 인물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사람은 고은 시인이었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노벨상과의 인연은 깊지 않은 듯하다. 어제 2017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가 선정되었고 고은과 김형수의 대담집인 <고은 깊은 곳>을 읽으면서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고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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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대담집-고은 깊은 곳>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을 인물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사람은 고은 시인이었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노벨상과의 인연은 깊지 않은 듯하다. 어제 2017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가 선정되었고 고은과 김형수의 대담집인 <고은 깊은 곳>을 읽으면서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고은이라고 하지만 정작 고은의 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 역시 고은시인의 이름은 알지만 그의 시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몇 해 전에 군산에 가서 여러 유적지를 보면서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이라고 하는 동국사를 가면서 길에 걸려있는 고은 시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군산태생의 고은  시인, 그리고 불가에 귀의하기도 했던 시인이 바로 고은이다. 고은 시인의 시가 아닌 그이 대담집을 읽는다는 건 내게는 다소 낯선 일이었다.

 

소설과 김형수와 시인 고은의 대담집인 <고은 깊은 곳>은 계간 <아시아>의 요청으로 진행되었는데 목차를 살피니 한 번의 대담이 아닌 한 해를 거쳐 나눈 대담집이었다. 2016년 봄을 시작으로 가을과 겨울그리고 다시 2017년 봄까지 총 4번의 대담이 실려있고 한구작가회의 40주년 회고담으로 2014년 7월의 대담도 마지막에 실려있다.

 

고은이라는 시인의 사적인 역사를 통해서 현대사를 간접경험하는 느낌이었다. 1933년 군산에서 태어난 고은은 10대의 청소년기를 억압된 환경에서 보내야했다. 보통사람은 나라를 빼앗긴에 방점을 찍겠지만 고은에게는 시어를 빼앗긴이라는데 방점이 찍힌다는 것이 특이했다. 그에게 1945년 광복은 정치적 해방이날 민족의 해방이라기 보다는 모국어 해방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시어는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자 무기이다. 모국어를 사용할 수 없었던 그 때는 그에게 시를 표현할 수 없는 암울한 청소년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에게 시는 삶이자 인생이며 모든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80 넘은 노시인에게는 듣는 말은 비수처럼 가슴에 콕콕 와서 박히는 살아있는 그것이었다.

 

....나에게 시를 빼앗으면 나는 뱀 허물이고, 거미줄에 걸린 죽은 풍뎅이 껍질이지.....본문 중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기억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놓는데 모든 것은 시와 연결되어 있는 그의 삶이었다. 5살 집을 삼키던 불에 대한 생생한 기억은 마치 거짓말처럼 생생하게 표현되는데 그만큼 그에게 각인된 영상화의 한 장면이고 표현이었다. 이상하게도 불과 그의 시는 얽혀있는 지점들이 있다. 고은 시인의 최초 시집이랄 수 있는 <불나비>가 불에 소실되고 다음 해에 출간된 <피안감성>이 사실은 두번째 소설집이라는 말도 그러하다.

 

시인이 전 생을 통해서 시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의 사적인 인생을 통해서 공적인 역사의 맥을 집어가는 느낌이 드는 대담이었다. 김형수 소설가의 말처럼 고은 시인의 사적인 기록이 집단의 역사가 되는 마법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고은 시인의 시선을 제대로 읽어본 적인 없는 나로써는 대담집을 읽으면서 참 부끄럽고 껄끄러웠다. 그의 이야기를 먼저 들은 다음에 시를 읽고 끼워맞추면서 아는 척 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노벨 문학상 그게 뭐 그리 중요한다. 세계인의 인정을 받기 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의 시와 그의 인생이 좀더 가깝게 전해지는게 먼저였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c******u 2017.10.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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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깊은 곳 -고은, 김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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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깊은 곳 –고은, 김형수-참여시인 고은의 일대기고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아마도 노벨문학상일것이다매년 반복되는 노벨 문학상에 10년 동안 줄곧 한국의 첫번째 유력한 노벨 문학상 0순위로 거론되기에 고은이라는 이름은 그의 작품을 한번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친숙 할 것이다하지만 시를 좋아하거나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을 제외한 일반 대중은 교과서에 실린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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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깊은 곳 –고은, 김형수-


참여시인 고은의 일대기


고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아마도 노벨문학상일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노벨 문학상에 10년 동안 줄곧 한국의 첫번째 유력한 노벨 문학상 0순위로 거론되기에 고은이라는 이름은 그의 작품을 한번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친숙 할 것이다

하지만 시를 좋아하거나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을 제외한 일반 대중은 교과서에 실린 고은의 대표작 몇 개를 제외하곤 고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못한 것 또한 현실이다

김형수 시인과 고은 시인의 1년에 걸친 대담을 잘 정리하여서 책으로 묶으면서

고은의 일생에 대하여 세밀히 알 수 있고 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며 현재 청년들에 대한 생각도 들을 수 있는 좋은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책의 시작부터 고은은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 이들에게 그러한 질무은 터무니 없고 폭력의 질문이라고 답을 하면서 입을 연다 

1933년 8월 1일에 태어난 고은은 일제 강점기 시절이었기에 창씨개명된 이름을 쓸 수 밖에 없었고 그 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설명한다 그는 1945년 8월 15일은 정치로서의 해방, 조국 광복이나 민족해방이기보다 모국어해방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훗날 자신의 묘비에는 ‘고은’ 이라는 이름 대신 ‘시’라는 한 글자만 새겨 달라고 하면서 1933~ 이라고 표현해 달라고 한다

왜냐하면 시는 죽지않기 때문이라고 답을 한다

1947년 한국어로된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서 처음으로 시를 접한다 그 시는 바로 이육사의 『광야』이다 고은의 어릴 때 별명은 암사내였고 어린 시절의 고향 마을은 조선왕조 시기 그대로 청소년들이 긴 머리를 땋아서 등 아래로 늘어뜨리고 다닐 정도로 조선과 일제를 두루 경험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그는 1943년 국민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조선어 수업이 없어지고 일본어 수업 일색으로 변하는 과정 속에서 3년뒤 해방이 되었을 때 조선어(한국어)를 아는 유일한 아이가 된다

유년시절 에피소드 중에서 1944년 교장은 반 아이들에게 한명씩 장차 무엇이 되겠냐고 물어보고 마지막으로 고은에게도 장차 무엇이 될래? 라고 물었고 당시 야마모토 원수의 죽음으로 대다수 친구들은 야마모토 장수가 되겠다고 대답했기에 야마모토 보다 높은 것은 천황이라고 생각이 되었기에 고은은 천황이 되겠다고 말을 해서 격노한 교장으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지만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정학을 받는다

이러한 사연으로 고은의 어린 시절을 유추해볼 수 있기도 하다

고은은 개인적으로 한국어의 느린 어조가 6.25전쟁을 겪으면서 급해지고 표현도 간접적이기 보다 직접적인 것이 되고 매우 거칠어진 경음이 압도하게 되었다고 생각을 한다

그는 총 4번의 자살을 시도 하는데 인생의 허무를 심하게 겪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책에는 3번의 자살 시도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다

17살 때 바다에 뛰어 들어 첫 번째 자살을 시도

1963년 제주도행의 바다 에서 세 번째 자살 시도

1969년 산 속에서 소주 한 병과 수면제 200알과 함께 네 번째 자살 시도

1952년 20세의 나이로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고 1960년대에 종단을 새롭게 정화하려는 개혁을 시도 하려다가 징계를 받고 환속을 한다


민주 투사 시인 고은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다가 1970년대 우연한 기회에 신문을 통하여 전태일의 분신 사건을 접하게 되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그로 인해 박정희의 개헌 강행에 저항하는 반대 운동의 작가 선언에 동참하고 1974년 문단 최초의 현실 참여 문학 진영의 조직운동을 시작하였다

1979년 박정희 유신정권을 담보하는 카터 방한 반대 시위를 앞장 서서 체포된 뒤에 구타로 고막이 파열이 당하기도 한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로죄, 계엄법 위반, 계엄교사라는 죄목으로 수감 생활하였다가 국내와 해외의 구명운동 덕으로 2년쯤 뒤에 석방이 되고 수술을 통해서 고막도 고치게 된다 고은의 일생의 대표작인 『만인보』는 1985년부터 쓰기 시작해서 25년에 걸쳐서 30권을 출판하였다

고은은 대담을 통해서 법정과 관련된 일화를 알려주었다 목포의 포교 강연장에서 법정을 입산시키고 법정은 고은의 스승인 효봉의 제자가 되었고 시를 추천했으나 잘 되지 않은 나머지 수필을 권유하여서 법정의 수필을 <현대문학>에 실리게 해줌으로써 법정의 산문 쓰기가 시작되었다

또한 고은은 본인이 시인이 된 계기가 우연한 계기 였음을 설명하였다 승려가 되어있던 1957년 추상화가 나병재에게 주었던 시 한편이 1958년 <현대>에 신인작품으로 실리게 되면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등단이 되었고 조계사로 시인 구상이 찾아와서 친해지고 한용운이 간행하다 폐간된 <불교>를 복간하려고 추진하던 중 남는 지면에 본인이 슨 것을 넣었는데 그것을 본 남자 신도가 서정주의 자택으로 끌고 가서 5편쯤을 보여주었고 그 해 3편이 발표되면서 의지와 상관없이 시인 생활을 시작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은은 자신의 일생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듯이 자신의 60년 시(詩)력을 한마디로 표현하는건 힘들다고 하면서 책을 마무리 한다




인상 깊은 구절들


『시는 사망연도가 없기 때문이지』(22p) 

『모국어는 궁극적으로 모국이네』(41p) 

『죽음이 삶보다 훨씬 더 숭고한 것이었네』(65p) 

『서사의 힘은 가장 오래된 것을 가장 새롭게 하는 힘이라네』(109p) 

『나는 선생이나 교사라는 칭호가 가장 혐오스럽고, 나는 늘 나 자신과 세계로부터 배우는 자이네』(134p) 


c*********g 2017.10.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