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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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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의외긴 하지만 의외로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이 있다. 바로 '단어의 오염'이라는 조합이다. 설명하자면, 단어가 갖고 있던 뜻이 심하게 왜곡되어 더 이상 단어로서 정상작동하지 않을 때, 그 단어는 오염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민, 노동, 사회주의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요즘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도 '오염'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쪽에선 페미니즘을 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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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의외긴 하지만 의외로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이 있다. 바로 '단어의 오염'이라는 조합이다. 설명하자면, 단어가 갖고 있던 뜻이 심하게 왜곡되어 더 이상 단어로서 정상작동하지 않을 때, 그 단어는 오염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민, 노동, 사회주의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요즘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도 '오염'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쪽에선 페미니즘을 과하게 신봉하고, 한쪽에선 페미니스트를 메갈이니 쿰척이니 욕하기 바쁘다. 개인적으로 이런 현상은 한국전쟁 즈음 어느 시골마을의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본다. 늦은 밤 갑자기 문을 팍 열고 들어와 손전등을 비추며 '너는 공산당이냐, 아니냐?'라고 묻는다. 손전등 빛 때문에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옳은 답은 뭘까. 어느 신념을 말하든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 딱 지금 분위기와 비슷하다. 여성을 입에 오르내리면 '너는 페미니스트냐, 아니냐?'라고 물은 뒤 (어떤 답이 나오든) 물어뜯기 바쁘다. 잘못된 일이다.


그런 가운데 책 <온갖 무례와 오지랖을 뒤로하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가 나왔다. 길고 거창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개론서나 이론서는 아니다. 무겁지 않은 가벼운 에세이집이나, 역설적이게도 페미니즘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무슨 내용이지?' 싶은 것들이 많다. 예컨대 '여장놀이'를 즐기는 사람이라든지, '여성적' 머리카락에 대한 고민이라든지, 여자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라든지. 페미니즘에 대해 한 번이라도 고민하지 않았더라면 조금 낯설게 다가올 만한 주제들이다. 


따라서 페미니즘을 잘 모르거나 적대적인 사람이 작정하고 모든 주제를 이해하겠다고 마음 먹고 읽는다면, 되려 하나도 건질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한다(사실 나도 잘 이해하지 못한 내용들이 많다). 읽는 자세랄까, 이 책을 읽을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하고 읽는 것이 좋겠다. 여성의 불평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페미니스트의 거친 딴지라고 생각하며 읽어도 좋다. 그저 읽으며 '아, 이래서 그들이 그런 주장을 펼치는구나'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면 족하다. 물론 그게 가장 어렵겠지만 말이다. 


반대로 페미니스트라면 적지 않은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가장 비참한 감정은 '나만 이상한 건가?'라는 의구심인데,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목소리는 그런 의구심을 단번에 날려버린다. "당신은 이상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적지 않다." 뮤지션 오지은이 '이 책 속에는 수많은 용감한 자매들이 있다. 혼자는 외롭지만 함께라면 그렇지 않다.'라는 추천사를 단 이유가 거기 있으리라. 


자, 그렇다면 이쯤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의견을 밝힐 때가 되었다. 의외로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의견은 간단하다. '가치 있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나에게 페미니즘이란 맑시즘이나 니힐리즘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교양 삼아 배워둘 필요는 있지만, 거기에 너무 매달리며 신념화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는 분명 여러 사람이 할 말이 많으리라. 많은 사람의 의견을 좀 더 들어보고 싶다. 

s********3 2017.12.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