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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 앞에 만인은 평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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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일 오전 9시 국제도시 뉴욕에서는 엄청난 비극이 시작되었다. 자유경제주의 시스템의 심장부인 미국 그리고 그 중심중에 중심인 뉴욕 세계무역센타빌딩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비행기 테러를 당하면서 세계는 충격에 휩쌓이고 만다. 이후 진행되었던 일은 주지하다시피 이성의 판단이 아닌 감정의 판단(종교적 판단)이 앞서가면서 세계는 근본주의자들에게 더할나위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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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일 오전 9시 국제도시 뉴욕에서는 엄청난 비극이 시작되었다. 자유경제주의 시스템의 심장부인 미국 그리고 그 중심중에 중심인 뉴욕 세계무역센타빌딩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비행기 테러를 당하면서 세계는 충격에 휩쌓이고 만다. 이후 진행되었던 일은 주지하다시피 이성의 판단이 아닌 감정의 판단(종교적 판단)이 앞서가면서 세계는 근본주의자들에게 더할나위없는 천국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기독교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확보하고 있는 이슬람교는 9.11사태가 발발하기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엔 그다지 알려지지 않는 종교였다. 물론 우리 선조들의 고전을 들여다 보면 회회인, 대식국이라는 표현으로 가끔씩 등장하고는 있지만 우리와는 사뭇 다른 세상의 종교정도 인식되어 왔고 그렇기 때문에 관심에서 한발 비켜나 있는 상태였다. 지금도 이슬람에 대해선 기독교를 비롯한 외래종교보다 실상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동안 이슬람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었으나 아직까지도 미지의 세계임은 틀림없다.

 

코란과 히잡으로 대표되는 이슬람에 대해 일반인들은 일부다처제, 라마단, 시아파, 수니파, 팔레스타인자치구등의 단편적인 지식외에 좀더 깊은 지식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러다보니 이슬람교와 이를 믿는 무슬림에 대한 곡해와 왜곡된 시각이 여전하고 제대로된 이들의 종교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일정거리의 선을 긋어버리는 오류를 낳게 되었다.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은 이런 환경에서 이슬람교의 전반적인 이해와 역사적 기원 그리고 양대 종파(시아파,수니파)의 다른 견해 그리고 현재 이슬람국가들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다가온다. 특히 이슬람교라는 믿음의 틈바구니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슬람 여성들의 믿음과 삶을 통해서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들의 위치와 그녀들의 종교적 믿음을 재조명하고 있는 보기 드문 저작이다. 특이한점은 저자가 유대교인이라는 점과 과연 배타적인(우리가 인식하는 선에선 가장 극적인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두 집단이라는 특수성) 이방인의 눈에 비친 상대진영의 종교와 사회를 바라보는 견해와 판단이 과연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들지만 같은 여성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에 공정성을 훼손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는 점이 돋보인다.

 

인류가 구성하고 있는 그 어떠한 조직체 그리고 신의 구원을 믿음으로 형성되어 있는 종교등 그 어떠한 곳에서도 여성이 진정한 인격체로서의 합당한 대우를 받은 적은 없었다. 굳이 현대에 들어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지금도 곳곳에 설치된 생물학적, 사회적 다양한 이유와 편견으로 여성은 남성과 동동한 지위를 누리고 있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비단 이 책은 이슬람 사회의 여성들의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대우를 고발하는 의도가 짙지만 사실 이들을 대놓고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는 남성 개인이나 조직 나아가 국가단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나마 기존 코란을 인식하는 잘못된 관행에서 진일보하여 에스마(아크드에 결혼계약조건으로 여성에게 유리한 조항을 넣는 양식)등이 자리 잡으면서 그동안 혼전이나 혼외정사로 명예살인이나 성기절제등의 반인간적인 대우에서 조금씩 여성에 유리하도록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어쩌면 남성위주의 시각이 될 우려가 있다. 원래 누려야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억압하고 이제와서 조금씩 풀어주는 행위로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한다면 이 또한 다른 폭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리에 대한 설명서나 그 기원서 내지는 다소 무거운 학문적인 접근이 아니라 저자가 오랜세월동안 이슬람국가들을 활보하면서 손수 경험했던 사안들과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일종의 르포르타주방식의 서술로 현실감과 생동감 주고 있는 점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이슬람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한다. 특히 여성들의 삶을 바탕으로 억압된 종교사회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애잔하게 느껴지도 하지만 저자가 인터뷰한 여성들은 현재의 이슬람이 강요한 일방적인 희생양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 사회 역시 그 속도는 느리지만 분명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되는 독자들은 새롭고 충격적인 모습들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충격은 문화종교적 차이에서 오는 전제가 되겠지만 왠지 씁슬한 감정을 억누르기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무함마드가 창조하고 그의 어록이 수록된 코란과 샤리아를 삶의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이들을 보는 시각은 그래서 가슴이 짠하게 다가온다. 후대의 해석에 따라 인격체로서의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이슬람에 조금더 다가갈 수 있고 그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위안을 찾게 한다.

l******e 2011.04.29. 신고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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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여성성과 욕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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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현·김영은|마음풍경 예술철학 연구       이슬람의 여성,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라는 질문은 의문과 호기심의 영역에 아직 안전하게 있다. 정체성이 없지 않으나 어디로 가야할지 정해두지 않은 이유는 이슬람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라는 자극을 찾지 못해서라고 둘러대고 싶다. 비판적 책읽기가 시작된 이래로 쉽게 어떤 이야기에 동요되지 않는다. 감정이 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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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현·김영은|마음풍경 예술철학 연구 

 

  

이슬람의 여성,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라는 질문은 의문과 호기심의 영역에 아직 안전하게 있다. 정체성이 없지 않으나 어디로 가야할지 정해두지 않은 이유는 이슬람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라는 자극을 찾지 못해서라고 둘러대고 싶다. 비판적 책읽기가 시작된 이래로 쉽게 어떤 이야기에 동요되지 않는다. 감정이 메마른 것일지도 모른지만, 감정을 쉽게 요동치게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서다. 우리에게 있는 유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데, 이슬람 여성의 이해는 사실 물 건너의 불구경과 다르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문학은 인류의 공통 관심사인 본질과 현상, 그리고 방편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이슬람의 문화에서 성이 차지하는 부분, 그리고 여성에 대한 논의는 이슬람에서만 국한된 부분이 아니다. 타종교는 물론 여러 문화권에서 여성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아왔다. 기록은 구석기도 있으나 신석기 이후부터 활성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시기는 모계母係에서 부계夫係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는데, 이슬람의 문화를 겪은 이야기는 그 세계가 아직 신석기에 머무른다는 시각이 강했다. 신석기에서 철기로 오면서 유목이 농경으로 바뀌기 시작했는데, 이슬람은 사막이라는 척박한 땅에서 생존해야 하기에 독특한 문화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와 로마가 멸망한 원인이 산림의 훼손이었듯, 나무와 풀에 대한 이해가 없이 전개하는 문화에 대한 접근은 이슬람이 구식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들 종교관을 두고 발전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 하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책은 그 정황으로 여러 사건을 취재하거나 취재하지 않더라도 듣고 경험한 내용을 서술한 팩션이라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에 나타난 이슬람의 종교는 제사장의 역할을 극대화했다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여러 여자를 아내로 두고, 다시 아내를 두게 되는 이유는 초기 국가에서 나타난 행태이지 종교라 보기는 어려웠다. 제정일치도 아닌 까닭에, 사회의 기대치를 배신하면 사는데 귀찮은 일들이 생길 수 있는 일을 종교의 한 폭압으로 풀어내려 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이슬람은 결코 종교가 아니었다. 제멋대로 선택과 취사를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 어찌 종교일 수 있는가? 필자는 신神도 오브제로 본다. 그렇다고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완전히 동률은 아니다. 그러나 그 범주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유는, 신이란 묘용妙用이며 기氣이며 도道이며 법法이라 불리울 수 있어서다. 그들이 말하는 신의 개념은 일자一者에서 출발한 터라,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를 책을 읽으며서 느끼곤 했다. 


山中問答 / 李白

問余何事棲壁山 笑而不答心自聞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청산에 사는 이유를 사람들이 물으면, 말 없이 웃기만 해도 한가롭네.
물 위에 진 복사꽃 아득히 흘러가니, 이런 곳 어디에 있나 인간세상 아니로다.

   먼저 이백의 시를 빌려와서, 인간세계가 아닌 천상을 어찌 보았는지를 보아야 한다. 물론 이것이 그들의 경제사회적인 현실과는 거리가 있으나, 그들의 세계관에서 드러난 어두움이 번뇌가 곧 지혜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되었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비판적 책 읽기에 대한 습관이 생긴 것은 꽤 오래 전 일이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터라 이 책에서 감동을 받지 못했다. 욕망에 대한 그들의 자세에 대한 여러 역사와 현재의 잡음을 서술하는 방식, 즉 감동보다는 생각의 알러지 반응을 살피는 일에 가까웠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보다도 깊이가 떨어졌다. 책에서 묘사된 종교 지도자는 혼자 하는 여행이 심심해서인지, 일부일처제가 아닌 일부다처제를 당연시 한다. 길을 잃은 여성을 그렇다고 도반道班으로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동서양이 발전이 다른 것이라지만, 그 궤적은 거의 비슷하다. 책에서는 여성의 자유를 논하지만, 한편으로는 구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이들도 상당수 발견된다. 편견을 편견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라 해둔다. 뉴욕 타임즈같은 매체들이 한 줄 평을 책 표지에 남겼으나, 그 말은 현혹에 가깝다. 대안이 빠져서인가, 불평의 강도를 낮추려는 데 문장 기술력이 동원된 듯 싶었다. 이는 오역이라 생각한다. 이슬람에 대한 자본의 오역이며, 그들 문화를 미국식에 맞추려는 프로크루테스Προκρούστης으로 보였다. 기자는 테세우스Θησεύς의 행동반경에서 가장 안전한 범위에서 관찰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무엇을 말하려 했던가?

책은 여성의 욕망을 성적 문제에만 가두었다고 보고있다. 성의 해방이 과연 행복인가? 서구의 가치관은 성을 해방시키는 것에 가장 큰 트라우마가 있는 듯 하다. 욕망과 성을 일치시키려는 일은 프로이트에서 더 확대된 기제라고 보는데, 책의 가치관은 이슬람에서 성의 억압이 종교에서 뿌리를 두고 있다는 암시는 억지춘향이라 생각한다.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1. 성스러운 베일
2. 그 어떤 남자도 꺽지 못할
3. 저기 신부가 온다
4. 예언자의 여자들
5. 이교도에서 개종자로
6. 여자의 지하드
7. 어떤 왕비
8. 지혜를 얻는다는 것
9. 위험한 사업
10. 정치, 투표하거나 말거나
11. 무슬림 여성의 게임
12. 색다른 벨리댄서

 

   여성으로 본 이슬람, 이런 시각이 집중인지 협소한지는 개인차가 나타난다. 필자의 경우는 집중력보다는 협소함으로 이해를 했다. 큼지막한 칼보다는 메스같은 날카로움으로 베어내는 듯, 책 읽기는 때로 거부감이 있다. 특히 여성의 생리를 질병으로 인식하고, 할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십자군 전쟁에서 드러난 정조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한 그러한 일을 어렸을 때 겪고 난 이들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출산을 하게 되면서 겪는 기쁨보다는 엄청난 통증에 대한 소개는, 인간이 인간을 낳는 행위보다는 생명이 생명을 낳는 것으로 이해를 했다. 우리의 역사에서 이슬람은 종종 그림에 드러나지만, 서구에서 본 이슬람은 대립과 정복의 대상으로 비추어지곤 했다.


   세계관과 세계화는 다른 시각인데, 이 두 개의 개념을 버무린 듯 읽혀졌다. 인문이란 비교와 검토가 기본일 터인데, 실사구시와는 사뭇 다른 노선을 보여주고 있다.


아, 나는 여명의 주님께 가는 피난처를 구한다. 주께서는 자신의 피조물 때문에 발생하는 혼란에서 나를 구해주실지도 모른다.

코란|여명의 장

신앙을 가진 여성에게 말하라. 시선을 낮추고 몸가짐을 정숙하게 가지라고. 아름다운 신체기관 중에서 분명하게 눈에 띄는 곳만 드러내고 가슴을 베일로 가리라고.

코란|빛의 장

매춘부여, 호색한이여, 그대들은 100대의 채찍질을 당하리라. 이들을 향한 동정심 때문에 신의 심판을 행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할지니라.

코란|빛의 장


책 속에 코란의 몇 구절이 인용되었는데, 독특한 그들의 문화는 당장 우리 문화에 들여와서 써도 좋을 듯한 것이 있다. 의외로 성에 대한 관대한 부분은 동양적인 전통에 가까운 듯 하다. 메소포타미아의 전설이 유지되는 그 땅에서, 돌팔매로 부정을 저지른 이들을 죽이는 일은 함무라비 법전의 전통을 이어가는 듯 보여졌다. 


   우리 역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살지 강요하지 못하게 하는 투쟁에 함께 해야 할까? 서구인들은 인권이란 문화적 관습과 정치적 환경과 관계없이, 변치 않고 통용되는 국제적 가치라고 주장한다. 1993년 제노바에서 열린 국제인권선언회의에서 이란은 소수의 다른 나라들과 함께 이와 다른 주장을 펼쳤다. 이란과 쿠바,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온 사절단들은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유행어로 자신들의 주장을 포장하면서 서구국가들이 아주 상이한 종교적, 정치적 역사를 통해 고유의 길을 택할 권리를 가진 국가에 자신들의 인권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보기에 이들의 주장은 용납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권은 지역의 폭군이 규정하는 것이라는 전제다. 그 회의에서는 인권의 보편성이라는 개념이 널리 인정되었고, 그래서 인권헌장도 수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인권헌장은 아직도 성기를 절단당하고 어쩔 수 없이 고립된 생활을 하며 선거권을 박탈당한 여성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싸움이기는 한 걸까?

p391

이 문제는 이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다. 여성과 남성의 구별법은 성기의 유무만으로는 설정할 수 없지 않을까. 종교가 사회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여성이 그 종교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지내는 게 좋은지 살펴보는 게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일이라고 작가는 책의 말미에 뜻을 넣었다. 이 뜻은 책의 서두에 넣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의 해결책을 위한 문제제기는 오래되었고, 앞으로도 풀리지 않을 숙제다. 답안지가 없는 수학문제를 풀기에 답이 무엇인지 몰라 검증을 할 수 없는 경우와는 미묘한 부분이 다르다. 종교와 성의 역할, 그리고 사회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미묘한 것에 대한 접근이 비교 우위를 숨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된 책이었다.





m*******e 2011.04.06.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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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인 것 이전에 단 하나 절대적인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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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타인벡의 통조림 공장 골목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통조림 공장에 대해 내가 내린 한줄 평은 대략 이러했다. 표지만 빼놓고는 모든 것이 완벽한 책. 그리고 이 책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표지와 제목을 빼놓고는 모든 것이 완벽한 책.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이다.수백년간의 극단적인 문화 우월주의, 인종우월주의의 세상에서 살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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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타인벡의 통조림 공장 골목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통조림 공장에 대해 내가 내린 한줄 평은 대략 이러했다. 표지만 빼놓고는 모든 것이 완벽한 책. 그리고 이 책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표지와 제목을 빼놓고는 모든 것이 완벽한 책.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이다.


수백년간의 극단적인 문화 우월주의, 인종우월주의의 세상에서 살아온 우리는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상대성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지금 이 시간에도 차별로 고통받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일단 인간의 이성이 지배한 이래 가장 많은 '상대'적인 이해속에서 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상대', '상호인정' 이라는 단어 속에서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당연한 것들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그 지역만의 역사,지리,문화적인 특수성을 내세운 상대주의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것인가. 우리는 과연 그 지역에서 수 천년 간 내려온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우리가 배운) 상식 이하의 행동들을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 것인가?
 
가장 최근에 이 주제와 더불어 가장 고민되는 현안은 바로 이슬람 문명의 여성차별이다. 최근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과 더불어서 인류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본적 인권이라는, 인류 기본의 진보가 무너지고 있음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반인권적인 행태를 보면서도, 기독교문명에 의해 자행되었던 이슬람 문명의 공격을 떠올리며 이것이 기독교 문명의 우월함에서 비롯된 비난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부시정권의 이라크 침공을 보면서 많은 국가들은 기독교 문명의 이슬람 침략을 비판했다. 또한 그러한 와중에 두 문명은 서로 우와 열을 가릴 수 없는 것, 서로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큰 힘을 얻으면서 이슬람 문명은 도리어 비판받을 것조차 이해받아 마땅한 것, 비판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온 경향 역시 존재하였다.

이슬람을 이해함과 동시에 비판받아 마땅한 것은 비판해야 하는 것.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보다 앞선 것.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 같은 인간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이슬람에 대한 비판은 자칫 문화상대주의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기독교문명의 이슬람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오는 행동은 아닌지 조심, 또 조심하는 와중에 정작 비판해야 마땅한 인간에 대한 것조차 놓치고 있었다. 바로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 이슬람의 여성차별, 차별을 넘어선 학대에 대한 당연하고 마땅한 비판을 담아내고 있는 책이 바로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이다.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은 퓰리쳐상 수상 작가인 제럴딘 브룩스가 중동지방과 아프리카를 취재하며 다니면서 보고 느낀 이슬람 여성들의 삶을 가감없이 전하고 있다. 이름 높은 기자답게 그녀는 왕비부터 이슬람 소시민 가정의 부인들과 딸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며 일관적으로 그들이 당해오고 있는 부당한 학대에 대해 담백하게 그려낸다. 그녀는 뛰어난 글솜씨로 에필로그부터 독자를 사로잡으며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포함 총 15장의 챕터를 통해서 그녀는 이슬람 여성이 속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삶의 이야기들과, 이슬람 여성들의 삶의 원형이 되었던 무함마드의 부인들의 이야기까지, 우리가 알고 싶어도 선뜻 접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얼핏 그녀의 이야기의 프롤로그와 1,2장을 읽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수 없게 만든다. 그녀는 상당히 균형잡힌 시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매우 뛰어나다. 사실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대충 전할 것이라는 것은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이라는 책의 제목(제목만으로는 정확히 알수는 없다)과 책의 두께, 책의 가격등을 통해서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이슬람 여성들의 억압받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는 것. 그러나 책은 단순히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슬람 여성들이 왜 억압을 받고 있는지, 그것들이 어디에서부터 기원하고 그 영향력이 실로 얼마나 방대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그러한 동시에 현재 이슬람 여성의 차별로 인한 코란과 이슬람교에 대해 생길수 있는 오해를 없애주기 위해서 실상 그 내용을 담고 있는 코란과 진짜 이슬람 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항상 은연중에 주지시켜준다. 저자는 책을 통해서 위에 말한대로 상당히 균형잡힌 시각을 선보인다. 그녀는 이슬람 여성의 현 차별은 이슬람교와 코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못 해석하고, 해석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현체제에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임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강조한다.

결국 어디서든, 어떤 문제든 문제의 핵심은 사람임을 저자 역시 주장한다. 그 옛날 무함마드가 자신들의 아내에게 차도르를 입힌 것은 그녀들을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무함마드와 코란은 여성들을 차별하지 말고 그녀들을 욕되게 하기 위해서는 네명의 증인을 꼭 대동해야 할 정도로 여성을 같은 시각에서 대하였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 보면 성차별적인 요소도 있겠지만 그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시각이었으며 방법론에 대한 문제는 있을지 몰라도 코란이 담고 있는 기본적인 사상은 남여차별이 아닌 남여평등, 인간평등이었음은 경전 문구 하나하나의 해석에 모든 것을 매단 사람들이 아니라면 누구든지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2011년이다. 이슬람 문명은 어떤 달력체계를 사용하는지 몰라도 어찌되었든 그들의 세계도 코란과 이슬람의 탄생 이후 천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그 천년 이상의 세월을 불과 수십년만에 제자리로 돌려놓고 있다. 천년 이상의 유구한 세월동안 인간들이 쌓아올린 가치들. 코란이 지어질때의 가치가 아닌, 천년 이상의 시간이 집적해놓은 인류의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가치들을 모두 한번에 뒤집어 놓으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상대주의의 시선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다. 이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절대적인 세계로 만들어놓고 있으며 계속 그 절대적인 세계에서 시간과 가치의 흐름을 자신들의 시간에 속박하고 있다.

상대(相對). 상대라는 말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라는 말에는 꼭 둘이 필요하다. 우리가 아무리 상대적인 시선, 우와 열보다는 다름의 시선으로 보고 이해하려해도 그들이 이미 절대의 시선으로 자신들의 세계안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상대적인 시선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슬람 문명 자체를 깎아내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것은 책의 저자 역시 분명히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우리가 비판해야 할 것은 수천년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해온 인류의 가치로 부분지어져야 한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이슬람 사회가 여성을 학대한다는 부분만으로 한정지어질 것도 아니다.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절대의 세상에 대해 비판해야 한다. 이슬람은 여성들을 학대하기 위해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며 코란에 써있는 문자하나하나를 그대로, 해석의 여지 없이 따라하다보니 여성학대가 자연스레 불거져나왔을 뿐이다. 우리는 이 자체를 비판해야 한다. 상대의 여지가 없는 절대.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하고 싶은대로, 이슬람 문명이 하고 싶은 대로, 코란에 써있는 그대로 하겠다는 그 절대의 자세를 비판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상대적인 것 앞에서 절대적인 인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j*******s 2011.04.27. 신고 공감 3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 내용보기
저자는 6년간을 중동에 나가 있으면서 그간 자신이 직접 겪었고 가까운 이슬람 여성들을 통해서 , 또는 그 사회에 들어가서 경험했던 일을 엮은 책이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거부당하는 저자-  이유인 즉슨 남자와 같이 동행을 하지 않았단 점으로 인해서 거부를 당한 것이다.   언뜻 보면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 같기도 하는 이 어이없는 상황은 실제이고 현재 이슬람 나라에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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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6년간을 중동에 나가 있으면서 그간 자신이 직접 겪었고 가까운 이슬람 여성들을 통해서 , 또는 그 사회에 들어가서 경험했던 일을 엮은 책이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거부당하는 저자- 

이유인 즉슨 남자와 같이 동행을 하지 않았단 점으로 인해서 거부를 당한 것이다.  

언뜻 보면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 같기도 하는 이 어이없는 상황은 실제이고 현재 이슬람 나라에서 여성들의 지위에  대해서 생각케하는 제도의 한 일부분이다.  

이란은 호메이니의 혁명 후 기존의 샤에 의해서 행해졌던 여러가지 시행된 일들이 일부 후퇴를 당하고 전통의상을 입으면서 생활하는 보수적인 사회로 돌아갔다.  

호메이니의 결정이 그런 것이라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그런 것이었고, 여성들이 남자들의 축구경기는 비록 아들과 같이 대동한다치더라도 관람 자체가 안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일부다처제의  관습도 실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규정짓지는 않았다는 점, 즉 모든 부인들에게 공평하게 대할 수 있는 자라면 허용이 됬단 점, 간통에 의한 돌팔매질도 코란에는 그런 행위가 없다는점, 2대 칼리프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 오늘 날까지 행하여졌단 점에서 그간 우리가 알고 있었던 작은 부분을 수정해 준다.  

이슬람 특유의 조혼제도로 인한 여성들의 피해현실, 할례에 의해서 출산 때마다 무수한 고통을 겪는 여성들의 현 실태를 꼬집는 현장의 묘사는 이 모든 행위가 이슬람에서 권장한 사항이 아닌 오랜 전통적인 아프리카의 관습이 이슬람이란 종교가 혼합이 되면서 굳어졌단 점에서도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중동에 위치한 이집트는 비교적 자유로운 여성의 활동이 있는 나라라고 하지만 작가의 비서였던 여성의 말과 행동에서조차도 이슬람의 법도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부국인 사우디에선 아예 여성의 존재 자체는 집 안에서만 있어야하는 존재로 외출시 아들이나 남편, 집안의 남자들과 동행시에만 가능하며 이마저도 얼굴과 손만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가린 천을 덮고서야 가능하다. 

운전 자체가 용납이 안되면서도 대학의 학문과정중엔 운전학과가 있단 사실, 왜냐하면 운전자가 차가 고장났을 경우 이를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확인차 필요함이란 말엔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단 생각이 든다. 

세계의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밸리댄서들의 보존방식은 제쳐두고서라도 그들이 돌연 활동을 중지하고 베일로 돌아간다는 발표는 이 이슬람이란 종교가 어떻게 한 여성이기 전에 사회적으로 한 인간을 구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례를 보여준다.  

팔레스타인의 한 아이의 입을 통해서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을 낳은 엄마, 그리고 사랑에 빠져서 두 번째 부인을 들인 아버지로 부터 이혼의 권유를 받던 엄마가 끝내 친정으로의 복귀를 포기하고 자신의 양육을 빼앗길 위험에 돌부처처럼 평생 남편의 사랑을 포기하고 두 번째 부인과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을 씁씁히 내뱉는 과정은 종교의 힘을 떠나서 인간이 인간이 정한  제도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누굴 위한  정책인가 하는  일부분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함을 준다.  

여성의 선거 자체란 있을 수 없으며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한 터키에서 마저도 여성이 정계에 진출하려하자 비판의 소리를 높인점, 다른 나라에선 아예 여성은 대통령 선거에 나올 자격조차 주지않는다는 점, 돌팔매시에 금방 죽이지 않되 서서히 고통을 줘 가면서 죽이는 방법으로서 신체의 한 부분을 공략한다는 점에선 간혹 신문에서 조차도 나오는 기사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지금도 행해지고 있단 점에서 종교의 무시한 권력을 새삼 느끼게된다.  

하지만 비단 이런 비관적인 것만은 아닌 것이 이란의 라프산자니의 딸이 이슬람 여성들만 출전해서 경기를 이룰 수 있게 도전해 본 이슬람여성 운동경기대회, 전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의 부인인 미국인 출신 누르왕비의 정계활동에 맞춘 여성에대한 정책, 미국에서 공부 하다가 만난 이슬람 남편을 둔 미국여성이 어떻게 자신이 이슬람으로 개종해서 시엄마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친정인 미국을 오가면서 절충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일부 불편한 진실을 다소나마 안정을 유지시켜준다.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일부 진보적인 이슬람 학자들이 주장하는 돌팔매라든가 할례의 관습은 이슬람에서 행하라고 한 적이 없는 일라고 하면서 정작 그들은 그것이 사실은 이슬람 태동 전부터 아프리카에서 행해왔던 관습이었음을 왜 주장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자신이 영국에 있을 때 남편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여성의 재판을 보면서 같은 영국인이라도 자신이 겪어 본 중동의 실정을 알지 못하는 한 재판의 결정 상황은 180도 다른 방향으로 진행 될 수 있단 점에는 문화의 이해와 종교가 세속에 얼만큼의 관여를 했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한 작가는 성기절제, 은둔생활, 베일 사용만이 여성을 위한 일이 아닌 이것을 행함으로써 여성의 욕망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숨어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이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극히 제한적인 경우를 두고서도 불평등하며 남편으로 부터 이혼하겠단 말을 세 번 들으면 이혼 성립이 된다는 것 자체가 남녀 불평등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한다.  

신문을 보니 중동에 이어서 중아아시아 이슬람권에서도 민주화의 바람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정작 서방세계들과 러시아는 전전긍긍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데, 천연가스를 둘러싼 자원의 이해 분배에 있어서 자칫 자국의 해가 되지 않을까 한다는 점에서란다.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이슬람의 정작 고유한 좋은 교리와 그것에 맞춰서 살아간다면 이처럼 여성이 고통받는 상황이 오지 않을 수도 있었을 이 시대의 참 설명만으론 좀체 쉽게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단 생각이 들게한다.  

내부의 비판없이는 잘못된 관행자체를 고칠 수 없는 폐쇄된 이슬람이란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삶은 행복해 질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투쟁의 무기는 결국 폭탄, 총, 대규모의 검거가 아닌 대화란 말이 입가에 맴도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조상들이 살아왔던 조선시대의 가풍에 젖어서 열녀문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슬람에 있어서 명예살인이 용납되는 한 여성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남성의 지도하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한계에 도달할 것이고 이런 고리가 근절되지 않는 한 오늘도 여전히 이슬람의 여성들은 자신의 딸에게까지, 아니 그 이후의 세대까지 결코 자유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생각의차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슬람의경전인 꾸란- 

이 꾸란의 내용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여성과 남성의 공존시대가 존재 할 수 있을 터인 지금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비록 조그만 시도라 할 지라도 안해본 것과는 또 다른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집힌 여성들만을 위한 제도가 확층되었음 하는 바램을 갖게 한다.

이달의 사락 m*******n 2011.04.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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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세계, 어느 문화권이나 다면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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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보면 흠짓하게 되는 표지의 이 책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10년 이상 기자 생활을 한 이의 책이다. 역사, 정치, 문화 등을 아우르면서 '여성주의적'인 관점으로 접근을 하는데, 역시 읽다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왜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그토록 무지한 걸까? 왜 종교는 사람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만드는 걸까?     나는 하미데에게 호메이니가 잘못된 종교적 결정을 할 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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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보면 흠짓하게 되는 표지의 이 책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10년 이상 기자 생활을 한 이의 책이다.

역사, 정치, 문화 등을 아우르면서 '여성주의적'인 관점으로 접근을 하는데, 역시 읽다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왜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그토록 무지한 걸까? 왜 종교는 사람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만드는 걸까?

 

  나는 하미데에게 호메이니가 잘못된 종교적 결정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물론 오점 없는 인간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내가 그분의 파트와를 따랐는데 그게 잘못된 거라면, 그러니까 그 분이 죄 없는 어떤 사람을 죽이라고 하셔서 내가 죽였다면, 죽은 그 사람은 천국에 갈 거예요. 살인죄는 살인을 저지른 내가 아니라 그 파트와를 내려보낸 사람의 몫인 거고요."

 

이슬람을 다룬 서구 쪽의 책이 그러하지만, 이 책은 르포답게 더 생생하고 잔인한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10년을 넘게 '생활'했던 사람답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안 쪽으로 들어가고 있다.

'기자'라는 신분을 망각하지 않는 '냉정함' 또한 그 '생활'에서 생기는 것이리라.

 

식사 중의 대화는 기자에게 꿈같은 일이면서도 동시에 최악의 악몽이기도 했다. 거기엔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제대로 알고 있고 이야기할 준비도 되어 있는 정보원이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비공개를 전제로 한다.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사람들만 만나다가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뭔가 진실에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이런 자리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 책이 인상 깊은 것은 베일을 벗고 서구로 넘어와 목소리를 높이는 쪽보다는, 베일 안의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미시적 관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매우 중요하다. '페르세폴리스'에서 볼 수 있듯이, 차도르를 쓰는 방식 하나에서도 저항과 순응이 갈린다.

 

  모로코에서 파티마 메르시가 보여준 코란에 대한 해석은 이슬람이 평등과 인간존엄의 종교임을 일깨우는 어마어마한 사례였다. 다만 그동안 이슬람의 메시지는 권력자들의 주관적인 여성혐오 때문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저작들은 모로코의 사원에서보다는 서양의 대학에서 훨씬 더 많이 읽힌다. 하디스에 대한 그녀의 연구가 얼마나 정확하든지 간에 남성 중심의 이슬람 사회는 베일을 쓰지 않는, 쓰더라도 자신의 경건함을 과시하려고만 하는 무슬림 여성의 학식에 귀 기울일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아마 이런 이유로 나는 독실한 이슬람 여성들이 검은 차도르 속에 숨기고 있는 긍정적인 변화에 가장 큰 희망을 품게 된 것 같다. 아무리 편협한 근본주의자라 하더라도 호메이니의 딸 자라 모스타파비나 라프산자니의 딸 파에제 하셰미 같은, 이슬람의 신용장이나 마찬가지인 여성들을 비난하지는 못한다. 이들은 명백히 종교적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의 권리에 대한 주장도 펼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들은 여성이 더 큰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직업을 가질 기회를 평등하게 얻을 수 있도록 하며 스포츠에 참여할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한된 경우에만 자신의 지위를 이용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절대 전통의 담을 허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슬람의 논리 안에서 베일이나 일부다처제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더라도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통의 벽 안에서 이슬람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모욕과 착취를 감수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을 위해 훨씬 더 안전한 피난처를 만들 수 있다.

 

이 부분을 놓고 논란의 여지는 굉장히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논란'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우리'라는 말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그 회의(1993년 제노바 국제인권선언회의)에서는 인권의 보편성이라는 개념이 널리 인정되었고, 그래서 인권헌장도 수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인권헌장은 아직도 성기를 절제당하고 어쩔 수 없이 고립된 생활을 하며 선거권을 박탈당한 여성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싸움이기는 한 걸까? 나는 정신을 시험해보는 의미에서 항상 젠더를 바꿔놓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만일 9,000만 명쯤 되는 어린 남자아이들이 페니스를 절단당할 상황에 놓여 있다면 사람들을 그걸 막기 위한 행동을 했을까?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이 문제는 이슬람 문화권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디에서나 그렇다.

잊을만하면 터지고 터지는 **녀 사건들을 보라. 과연 이것이 젠더의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미국에는 600만 명의 무슬림 여성들이 있고 이들 중 절반은 미국에서 태어났다. 이슬람은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다. 미국의 무슬림 중에는 아랍인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두 배 정도 많다. 하지만 9.11 이후 몇 주 동안 무슬림 여성들은 눈에 띄는 것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스카프를 벗고 다니거나 집 안에 숨어 지냈다. 한 사회의 트라우마로 인한 공격을 받는 것은 이번에도 여성들이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자행되는 각종 인권유린에 분노하면서도, 차도르 속 여성들과 소통하고 동지애를 느끼는 이 책은 특별하다.

저자가 스스로 인정하듯이 처음 이 문화권을 접할 때 저자도 분노가 끓어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이젠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폭로보다는 소통에 지향을 두기 때문인걸까.

 

물론 되려 자문화(서구문화)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부족한 부분도 보이고,

다수의 이슬람 국가가 폐쇄적으로 돌아서게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미국 등의 서구 제국주의 때문임을 간과하는 부분도 있다.

(에필로그에 나오듯, 저자도 그것을 충분히 인정하지만 책의 본문에 그런 시각이 반영된 부분은 찾기 힘들다.)

게다가 이 책(영문판)이 처음 나온 것이 1995년인데, 현재의 이슬람도 이러할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또 다시, 이슬람 사회에는 '역사'가 없다는 착각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역자의 말'이 없다는 건, 정말 큰 아쉬움이다.

그리고 '믿음에 갇힌 여자들'이라는 부제도 저자의 기본적인 태도와 약간 핀트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의 원제는 'Nine parts of desire - The hidden world of Islamic women'이다.)

 

이런 아쉬움들이 있지만, 이 아쉬움들이 하나의 논쟁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교재로서도 탁월한 책이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것보다도, 오히려 '여성주의'에 대한 논쟁이 필요할 때 이 책은 최고의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화권에 대한 나의 이해도가 현저히 낮아 책을 읽는 속도가 더디긴 했지만, 굉장히 좋은 책이었다.

이슬람 여성들의 생생한 모습을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또, 근본과 원칙에 집착할 수록 수많은 편법을 만들어낼 뿐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

1******n 2011.04.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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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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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보는 프로그램 <이웃집 찰스>에는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무슬림 출연자들이 나와서 무슬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할랄, 여성할례,히잡,차도르, 라마단 등 무슬림을 상징하는 용어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했으며, <이웃집 칠스> 출연자중 마흐무드와 13살 소녀 나히드 가족이 생각났다.이슬람 율법에 따라 살아가는 그들은 매일 정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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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보는 프로그램 <이웃집 찰스>에는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무슬림 출연자들이 나와서 무슬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할랄, 여성할례,히잡,차도르, 라마단 등 무슬림을 상징하는 용어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했으며, <이웃집 칠스> 출연자중 마흐무드와 13살 소녀 나히드 가족이 생각났다.이슬람 율법에 따라 살아가는 그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올리며, 라마단을 꼭키ㅁ키면서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간다.


무슬림은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한다. 7세기 무함마드가 완성한 이슬람교는 익히 알고 있듯이 무함마드를 추종하는 수니파와 무함마드의 사위이자 조카인 알리를 지지하는 수니파로 나뉘며, 전체 무슬림 중에서 시아파가 10퍼센트를 차지 하고 있다. 그들간의 종교적 갈등은 걸프전을 낳았으며, 아랍 사회의 무슬림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살인적인 더위에도 그들은 왜 히잡과 차도르를 쓰면서 살아가는지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여기서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게 된 그 근본은 무함마드 마지막 아내 아이샤 빈트 아부 바크르와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 사이에서 후계자 문제로 인해 빗어졌다.


히잡과 차도르는 무슬림 여성이 꼭 착용해야 하는 옷이다. 얼굴과 몸을 가리는 옷은 무슬림 여성을 보호하고, 무슬림 남성에게 순종하도록 길들여지게 된다.저자는 차도르는 무슬림 여성의 후천적 피부이며, 무슬림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방편이라 부른다. 또한 남성과 여성을 분리 지으며, 일부 다처제의 무슬림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여성의 불평등과 인권이 실종된 그 모습을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세상이 변화고 있음에도 변하지 않는 곳이 바로 무슬림 세계이며, 무슬림 남성이 여성에게 보이는 태도와 관습이다.


제럴딘 브룩스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살아가면서, 그녀 또한 무슬림 여성과 동일한 삶을 강요당한다. 남성을 만날 때 히잡을 써야 하며, 그것을 어길 시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길에서 외국인 여성을 파묻고, 돌팔매질 당할 수 있는 상황이 무슬림에는 통용이 되며, 이슬람 율법을 어기고 간통을 저지를 시 태형이나 명예살인이 허용된다. 여기서 대다수 무슬림 여성에게는 피선거권과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재산권과 상속권 또한 남성이 가지는 구조, 무슬림 여성에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무슬림에는 지하드가 있다.성전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이슬람을 위해 투쟁을 벌이는 행위를 지하드라 부르며, 1988년 살만 루슈디가 쓴 소설 '악마의 시' 로 인해 무슬린 자히드의 포적이 되어 살해 위협을 받게 된다. 그렇게 영국의 보호 속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잇는 살만 루슈디는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으며, 그의 책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슬람에 수치스런 행위를 할 경우 무슬림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슬림 여성에게는 남녀 분리가 원칙이다. 속옷을 구매하는 것 또한 자신이 구매할 수 없으며 남성을 통해 구매해야만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남녀 혼성이 연습하는 것 또한 허용되지 않는다. 히잡을 벗거나 차드르를 쓰지 않는 것 또한 허용되지 않는 무슬림 세계, 무슬림 여성에게 수영이란 남의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책에는 한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다. 아시아 축구 강국 , 이란,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 축구는 무슬림 남성 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인기 있는 종목이다. 무슬림 남성은 월드컵 경기를 보는데 있어서 자유롭지만 무슬림 여성은 월드컵 경기를 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히잡을 쓰고 차도르를 입지만, 남성들이 이슬람 복장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스포츠 경기를 볼 권리조차 차단된다.아시아 경기에 출전하는 무슬림 여성은 육상 경기에 나올 때도 차도르를 입어야 하며, 사격이나 승마 등 무슬림이 허용하는 일부분의 종목에서만 출전이 가능하다.


이슬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며, 피선거권과 투표권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반면 이슬람 율법을 지키려는 이슬람 원리주의(Islamic Fundamentalism) 로 인해 걸프전 이후 테러가 자행되고 있으며, 서방세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의 투쟁은 서방 세력에 대한 배척이며, 그들이 수천년동안 지켜온 이슬람을 지키기 위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걸프전 이후 확산되고 있다.

이달의 사락 k*******2 2017.06.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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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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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맞아 직장에서 일하면서 연일 야근에 출장으로 이어져 그래도 그냥 잠들기 아쉬워 읽은 책을 미처 독후감도 남기지 못한 채 1달여가 지나갔다. 이제야 당직하면서 잠깐 짬을 내 이 책에 대한 느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남기고자 글을 쓴다.   신문에서 이 책 소개를 보는 순간, 솔직히 책 제목이 끌렸다. 다른 어떤 문화보다 꽁꽁 싸맨 여성들에게 욕망이 있다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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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맞아 직장에서 일하면서 연일 야근에 출장으로 이어져 그래도 그냥 잠들기 아쉬워 읽은 책을 미처 독후감도 남기지 못한 채 1달여가 지나갔다. 이제야 당직하면서 잠깐 짬을 내 이 책에 대한 느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남기고자 글을 쓴다.

 

신문에서 이 책 소개를 보는 순간, 솔직히 책 제목이 끌렸다. 다른 어떤 문화보다 꽁꽁 싸맨 여성들에게 욕망이 있다니, 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잠깐 맛보기로 읽은 앞부분도 이슬람 문화권에서 혼자 호텔에 투숙할 수 없어 곤란을 겪는 장면을 보니 이슬람을 직접 겪은 사람이 쓴 믿음이 갔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이슬람의 이미지는 과격 아니면 신비일 것이다. 최근의 IS(이슬람국가)가 하는 짓을 보면 이슬람이 이름으로 사람을 예사로 죽이고-그것도 목을 쳐서- “알라후 이크바르”를 외치거나 9/11처럼 탈레반이 이끄는 테러리스트이거나 차도르로 가린 매력적인 눈동자 같은 이미지의 파편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사실 대부분은 관심도 지식도 없다. 올해 상반기에 향교에서 문화강좌를 진행하던 교수-가톨릭신자였다-가 이슬람을 가리켜 ‘이상한 걸 믿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수업 후에 조용히 ‘이슬람에 대해 좀 더 공부를 하셔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나도 사실은 종교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에 세계종교사와 쿠란, 김태권의 십자군전쟁 등을 통한 자질구레한 지식 밖에 없었다. 그건 실제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실생활을 알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버스타고 여행하다 버스가 잠시 서는 동안에 버스에서 내려 길바닥에서 절을 하는 이슬람교도들을 몇 번 보았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기도하는 게 내게는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고유의 복장을 하고 있는 아미시들처럼 신념을 지키는 사람으로 보여 대단해 보였다.

 

제럴린 브룩스라는 호주 출신으로 미국에 사는 유대인여성이 이슬람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들여다보고 경험하면서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이슬람이 무엇인가에 대해 쓴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실제 라마단 기간 동안 사람들이 무얼 먹으며 어떤 생활을 하는지,

 

이슬람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것들이 여러 가지다. 아랍어는 여러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는 것. “표현은 분명해도 메시지가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샤리아는 글자 그대로 풀면 ‘샘으로 가는 길’”이어서 “이슬람 법을 향한 바른 길을 의미한다”는 것. 그 무시무시한 호메이니가 집에서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좋은 남편이었다는 것. 호메이니의 부인은 머리를 오렌지색으로 염색하고 있었다는 것. 이슬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수니파는 “‘전통’에 해당하는 아랍어가 순나이기 때문”에 시작되었고 시아파는 “쉬아트 알리, 즉 ‘알리의 신봉자’”로 시작하여 “처음부터 주류에 대항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권력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필요한 경우 대항하여 반란을 도모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다”는 것. 무함마드가 며느리와 결혼했는데-양아들의 부인이긴 하지만- 무함마드가 자기 부인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아들이 짐짓 이혼을 해서 결혼하도록 배려했다니! 헤즈볼라가 정작 여성들에게 이슬람식 복장을 입도록 권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히잡 수요를 이용해 돈을 벌었다”는 것. 등등. 여성들의 경제생활, 아니 일체의 집밖생활을 막는 이슬람이 무함마드의 첫 번째 아내는 무역을 했고, 두 번째 아내는 가죽제품을 만들어 팔았고, 딸인 파티마는 일과 공부를 번갈아 했다.-여기서 “파티마는 자신이 일할 때 노예소녀에게는 공부할 시간을 주었다.”는 감동적인 문구를 발견했다.- 이슬람의 좋은 점들도 눈여겨 보려한 저자의 노력이 보인다.

 

새로운 것을 알게되면서 정작 이슬람의 이름으로 여성들을 억압하는 장치들이 도처에 남아있고, 또 이슬람이 정권을 잡은 지역에선 구습이 발흥하는 것들을 프리랜서 기자로서 목격하고 느낀 저자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비이슬람권의 시선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저자의 결론 “두 문화권 모두 여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에선 여성의 성욕에 대해 인정하면서 그것 때문에 여성을 더 가리려 하고, “가톨릭에서 사회적 무질서를 막아낼 책임을 여성에게 지우는 것은 여성이 성적으로 적극적이지 않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라면서 결국 “중동에서는 어떤 문제가 악화될 조짐을 보일 때마다 여성들이 고통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간파한다. 그렇다면 결국 각각 다른 종교, 다른 조건들을 내세웠을 뿐 각종 제약을 가하고 책임을 덮어씌우면서 여성들을 남성보다 힘든 상황에 놓이게 만들면서 남성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건네는 게 종교의 역할이다.

여성들을 위하기 때문에 집안에 있도록 한다는 이슬람의 기치를 내건 보코하람이 공부하는 여학생들을 끌어다가 노예시장에 팔아먹고, 쿠르드 지역에선 강간담당자를 고용해서까지 여성들을 강간하며 그 기름 많이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정작 여성들은 차를 운전하지 못한다니 도대체 대의명분과 실제는 항상 일치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런데, 대체로 정말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려 한 저자의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행간에서 읽히는 약간의 유대인으로서의 상대적 우월감은 내가 아마 동양인으로서 또 또다른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이라 느낄 수 있다. 완전한 객관은 사실 존재할 수 없으니까.

 

한창 바쁜 때라 직장생활이 힘겨워질 무렵 이 책 속에 밖에 나가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차를 두고도 운전하지 못하며 한숨 짓는 이슬람 여성들이 그만 투덜거리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라고 말하는 것 같아 조금 힘이 났다.

 

오자는 한 군데. 284쪽.

j***1 2014.12.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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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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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의문을 품게 하는책...     종교란게 불확실한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위안받고자 해서 만들어진 것일텐데 거꾸로 그 믿음에 갇혀 학대받고 희생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슬람권에서의 여성학대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영화 도가니에서 범인인 교장 행정실장 교회 사람들이 법원앞에서 그들을 지지하며 피해자들한테 어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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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의문을 품게 하는책...

 

 

종교란게 불확실한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위안받고자 해서 만들어진 것일텐데

거꾸로 그 믿음에 갇혀 학대받고 희생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슬람권에서의 여성학대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영화 도가니에서 범인인 교장 행정실장 교회 사람들이

법원앞에서 그들을 지지하며 피해자들한테 어린악마라고 소리치던 장면이 생각났다

 

이슬람교 뿐만 아니라 어떤 종교든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성찰 없는 폐쇄적이고 무조건적인 믿음은 안타깝고 또 위험한 일인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a********9 2012.03.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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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성평등까지 앞으로 1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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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디선가 (UN 산하기구였던가?) 지구상에 남녀평등이 이루어지기까지 약 1000년 정도 걸릴 것으로 추산한다는 것을 보고, 에이, 설마 그렇게 오래 걸리려고? 하는 생각을 언뜻 했었다.내 외할머니는 국민학교 중퇴했고, 책을 어깨너머로 보다가 남자 형제들에게 두들겨 맞았으며, 17세에 집안에서 시키는 결혼 하고서 아이를 주룩주룩 낳았다.내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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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디선가 (UN 산하기구였던가?) 지구상에 남녀평등이 이루어지기까지 약 1000년 정도 걸릴 것으로 추산한다는 것을 보고, 에이, 설마 그렇게 오래 걸리려고? 하는 생각을 언뜻 했었다.
내 외할머니는 국민학교 중퇴했고, 책을 어깨너머로 보다가 남자 형제들에게 두들겨 맞았으며, 17세에 집안에서 시키는 결혼 하고서 아이를 주룩주룩 낳았다.
내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연애 꽤 많이 하다가 중매로 결혼했고, 결혼 후 직장은 그만두었고, 출산은 두 번 했다.
나는 대학교들을 졸업했고 대학원에 다니고 있고, 연애 몇 번 했고 결혼은 가부장제에 투항하는 것이라며 결혼을 안 하겠다고 버티다가 결국 연애하던 사람과 결혼했고, 출산은 아직, 일과 공부는 계속할 거다. 내가 열의만 있다면 정치적인 활동을 할 자유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게이나 레즈비언이라면 또 그 삶을 응원해줄 생각이다.
100년도 안 되어 이렇게 급격한 변화가 있었는데, 1000년이나 걸린단 말이야? 그랬었다.
그러다 이슬람 사회의 자매들을 떠올리고는 음... 그렇겠구나...

아직도 평생 집 밖으로 못 나오는 여성들이 있다.
합법적으로 결혼으로 내몰리는 9세 소녀들이 있다. (무함마드 본인이 그랬으니 뭐.) 
여성의 운전이 금지된 국가가 있다.
이혼을 일방적으로 당하는 여성들이 있다.
남편 아닌 사람과 사랑을 나누면 아버지나 오빠나 남동생에게 살해당하는 여성들이 있다.
음핵, 소음순, 대음순을 녹슨 칼로 베어내고 그대로 봉합되는 시술이 아직도 성행한다.
그렇게 상처투성이의 성기를 칼로 뜯어내고 남편이 음경을 쑤셔넣는다.
극도로 좁아진 산도를 통해서 출산할 때 극도의 고통과 극도의 위험이 따른다.
출산 후에는 외성기를 다시 봉합한다..

이 책의 저자인 제럴딘 브룩스는 이런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보기엔 여성의 적이고 미친 눔일 뿐인 호메이니를 왜 많은 이슬람 여성들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미국에서 태어나서 이란 남자와 결혼해서 이란 사회에서 살기로 결심한 여성들은 무슨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슬람운동을 하는 당찬 여성들이 '여성은 남성의 지배 하에 살아야 한다'같은 말을 당차게 하는 모순적인 상황은 뭔지. 등등.

그리고 무함마드는 나름 인간적인 남자였으면서 한편 찌질남이었다는 결론이...
일부다처제는, 그래, 당시에는 아내를 무한정 둘 수 있었는데, 그나마 4명으로 제한했던 진보적인 조치였다. 또 '네가 공정하게 못 할 것 같으면 1명하고만 결혼해라. 그런데 절대로 공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했으므로 그 취지는 일부일처제 쪽으로 기운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여아살해 풍습에 대해서도 분명히 반대했다.
하지만, 사업가이자 가장이었던 아내에게 부양당하면서 살았던 주제에, 아내가 죽고 나자 '아내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라는 계시를 받았다든지, 아내들끼리 투닥거리자 곧바로 '질투하지 말 것이며 자기 방에서 나오지 말 것이며...'하는 계시를 받았다든지, 손님들이 엉덩이가 무거워서 늦게까지 안 가고 있자 짜증난 나머지 '손님들은 예언자 집에 와서는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얼른 떠나야 한다'하는 계시(알라가 참 구체적인 계시를 내려주는군요...)를 받았다든지 해서, 뭐, 원조 찌질남 인증.

무함마드를 본받아 이슬람 남자들도 일제히 찌질남 대열에 동참한 듯 하다.
내가 살고 있는 남한 사회에서는 적어도 연애과 결혼에서 상대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니까 어떤 남자가 몰래 결혼을 두 번 해서 두집살림을 하고 나중에 배다른 자식들이 나타나고 하면, 그 남자는 나쁜 넘이다. 그 남자는 최소한 눈치라도 봐야 한다. 뻔뻔하게 나 두 집 살림 한다-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이슬람 사회에서는 그래도 된다. --;; 법적으로 보장이 되어 있다. 남자는 여러 번 결혼해도 되고 심지어 그 사실을 각 아내에게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
여자들이 질투하는 것이 귀찮다- 그래서 이것도 법적으로 금지시켜 놓았다.
남자대학생들이 모여서 데모를 하는데, 그 주제가 '하나 둘 셋 넷! 우리는 아내들을 원한다! 하나 둘 셋 넷!'라니, 이런 ㅆㅂㅅ들.

설마 이렇게까지 뻔뻔할까 싶은 것까지 뻔뻔하게 법률로 박아 놓았다..
여기까지 쓰고 좀 무서워진다. 살만 루시디는 악마의 시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았는데, 브룩스는 꽤나 적나라하게 이슬람과 무함마드 비판을 하고 목숨이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았을런지. (설마 이런 외진 블로그에 클릭수 낮은 서평에서 무함마드 욕을 했다고, 누가 내 목에 현상금을 걸진 않겠지...)

(이건 딴 얘기. 내가 접하게 되는 외서의 90%는 유대인이 쓴 것 같다. (나만 그런가?) 이 책은 아닌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자는 남편 따라 유대교로 개종해서 결국 유대인이 되었다. 오 마이 갓...   
유대인이라서 그런지 미국인이라서 그런지 9.11에 대한 생각은 나랑 좀 다르다. 난 9.11이 이슬람과는 거의 관계가 없고 미국의 자작극이라고 봄.. 그리고 이스라엘은 해체하고 유대인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살던 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나도 종종 한다. 흥..)

이란을 포함한 이슬람 사회의 여성 현실이 어찌나 갑갑했던지,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를 다시 꺼내보았다. 사트라피가 겪은 리버럴하고 문화적으로 풍성한 이란과 같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마르잔의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는 마르잔이 피폐한 현실에서 만들어낸 환상 또는 다중인격의 여러 인격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하지만 동시대, 같은 국가 안에서도 정말 이질적인 비동시성이 있다는 것은, 그냥 저냥 가정주부의 삶을 살아온 우리 엄마랑 동갑으로 이 땅에서 머무르는데 가족간첩단 조작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19년간 한 김태룡님을 보면서 느낀 바.)
 
정수일의 이슬람론에서는 이슬람과 여성억압을 분리시켜서 본다. 이슬람의 본뜻은 여성 존중이라는 것. 브룩스는 이런 생각을 반박하며 이슬람에 그 원죄를 일정 정도 돌린다.

자. 여기서 우리 사회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교에서도 생명존중사상이 기본으로 깔려 있었으며 유교 때문에 여성들이 억압을 받은 것은 유교를 오해했기 때문이며 기타 등등 하는 비슷한 논의가 있다.

하지만 시동생이 물에 빠진 형수를 구하기 위해 손을 잡아도 되는가 하는 논쟁(-.-)이 있어왔듯, 유교가 여성들을 감금하고 억누르고 '정조'를 잃었을 때 자살로 몰아가고 과부에게 자살을 권장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슬람 꼰대들은 명예살해를 저지르는 반면, 우리의 유림 할부지들은 동성동본 결혼 허용이나 호주제 폐지가 이루어지면 단체로 자살하겠다고 위협한다는 점에서 유림 할부지들이 약간이라도 낫다고나 할까.
터키, 이집트, 팔레스타인 등에서 자생적인 여성주의를 억누르고 사우디의 이슬람근본주의를 수입한다는 건 일제시대에 도입된 호주제가 전통의 이름으로 왜곡된 것과 겹쳐진다.
  

여성할례에 소름끼친다면, 문득 돌이켜보는 것이 좋겠다.

수백만의 여성들이 자신의 얼굴과 팔다리에 자발적으로 칼을 대는 남한 사회는 어떤가? 그 중 일부는 건강에 극히 해로우며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는 성형수술이다. 미국에는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킬힐을 신기 위해 발뼈를 잘라내는 성형수술도 성행하고 있다. 이것은 야만적이지 않은가?

평생 여성들을 집 안에 가둬두고 어떠한 사회적 활동도 제한하는 제도가 끔찍하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미취학 시절부터 입시지옥에 몰아 넣는 교육제도는 또 어떤가. 하루에 16시간씩 책상 앞에 수감되어 있는 십대들이 있다는 사실을 다른 나라에서는 도저히 믿지 못한다고 한다.

교훈.
앞으로 혹시나 한국으로 망명하려는 이슬람 여성이 있으면 당장 받아주라고 한국 정부를 압박해야겠다.

p.s
번역이 깔끔하다. 번역 때문에 글 읽기가 삐그덕거리지 않고 술술 읽힌 것이 꽤 오랫만인듯.

YES마니아 : 로얄 r****t 2011.04.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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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은 호주계 미국인이자 유대교도이기도 한 언론인 제럴딘 브룩스가 1990년대에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에서 만난 이슬람 여성들을 통해 본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다. 이슬람권 국가, 문화는 우리나라에는 생소하고 별 관심도 못 받고 있는데,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언론에 비춰진 무슬림의 모습은 극단적이거나 지나치게 종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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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은 호주계 미국인이자 유대교도이기도 한 언론인 제럴딘 브룩스가 1990년대에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에서 만난 이슬람 여성들을 통해 본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다. 이슬람권 국가, 문화는 우리나라에는 생소하고 별 관심도 못 받고 있는데,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언론에 비춰진 무슬림의 모습은 극단적이거나 지나치게 종교적이라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무슬림은 선량하고 극단주의자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는 정도밖에 알지 못하였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이 발간된 걸 알게 되었고, 억압받고 베일에 가려져 있는 여성들의 삶과 그들의 생각에 대해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직접 그들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면서 느낀 생각을 정리한 것이니, 필연적으로 저자 자신의 견해가 녹아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몇 년간 왕비부터 지식인, 체육인, 평범한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위치, 상황에 처했던 이슬람 여성들과의 만남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어 그들의 삶을 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는 내내 여성의 입장에선 이슬람 문화의 긍정적인 부분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도 가부장적인 성리학적 지배질서로 인해 남녀간 불평등이 심하였고 아직까지 잔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슬람 문화에는 남녀 차별적인, 어이없는 규율이 너무 많아서 나열하기도 벅찰 정도이다. 종교가 생활의 중심이며 전부인데, 왜 여자아이는 9살부터 히잡을 쓰고 새벽기도를 하고 라마단 낮 시간에 단식을 해야 되는데, 남자아이는 성숙이 더디다는 이유로 15살까지 종교적 책임이 유예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남녀간의 심각한 불평등한 관계는 둘째치고 생존이 위협받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진보적 무슬림들이 이러한 여성 폭력이나 루슈디 파트와에 대한 광기는 이슬람의 잡음으로 보고 이슬람 신앙과 별개로 봐야한다고 주장하는데, 설득력이 떨어진다.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는다고 공공연하게 살해 위협을 하고 실제로 살해하는 일이 자행되고 있는데, 일부 근본주의자들의 소행일 뿐이라고 외면해 버리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암묵적 동조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 보기엔 시도 때도 없이 내려왔던, 신의 메세지라고 하는 코란도 인간이 기록한 것에 불과한데, 그토록 그것에 모든 행동과 생각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반여성적인 풍습은 무엇이든 맹렬하게 받아 들였고, 무함마드의 아내들에게만 적용되던 것을 전체 여성으로 확장해 집 안에 유폐시켜 버렸다. 남성들의 성욕 억제를 위해서 히잡이니 차도르니 하는 것들을 뒤집어 써야 했고, 그토록 중시하는 기도 시간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남성을 유혹할 수 있으므로 -_-)운전도 하지 못하고, 남편 또는 아들의 허락없이는 여행을 할 수도 없고 남성 보호자 없이는 외출도 하지 못한다. 그러한 것들이 여성을 보호하고(대체 무엇으로부터?) 이슬람 공동체를 유지 시켜준다고 믿는다. 일부다처제와 같은 것은 절대 포기하지 못하면서 보호랍시고 모든 자유를 빼앗는다. 그게 안전한 거라고. 해외에서 오랫동안 유학하면서 생활하여 사고가 깨어 있을 것으로 기대한 지식인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결국 남자니깐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포기하지 않고 코란이나 하디스(예언자 무함마드의 말씀)에서 근거를 찾고 온건한 방식으로(그럼에도 불구하고 살해 위협을 받기도 하지만) 여성의 권리를 확장 시키기 위해 노력한 많은 여성들이 있었기에 조금씩 개선되어 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저자의 가정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매년 9천만명에 이르는 어린 소년들의 성기가 절단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오래 전에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들은 여성의 성기 절제의 악습이 이슬람의 유산이 아니라고 항변할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의 적극적인 반대의 움직임으로 인하여 악습이 폐지되고,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절대적으로 억압되고 복종되어 있는 상황이 흑인과 백인으로 바뀌었다면 미국에서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이슬람 근본주의가 뿌리 깊은 곳에 대한 무역 제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근본주의자뿐 아니라 진보적인 무슬림들이 보여주는 행태도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명예살인이나 성기 절제와 같은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말하는, 공동체의 부활과 이슬람 혁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최우선적으로 그것부터 바로 잡아야 되는 것 아닌가.

 

종교는 믿음의 영역이라서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따라서 다소 불합리해 보이더라도 이해해 줘야 할 부분이 있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마저 무시하고 타종교에 대해 지나치게 독선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결코 공감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또한 밸리댄스를 금하는 등의 시시콜콜한 금기사항을 늘려간다고 해서 그 사회가 안전하고 살기 좋아진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도덕적 경찰국가는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의 자유로운 발현을 억제하고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녀들이 히잡을 쓰는 것도, 쓰지 않는 것도 자유롭게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j*****9 2011.04.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