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선비. 대한민국의 선비. 딱 들으면 참 고루한 느낌이다. 디지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선비, 라는 말을 언제 쓰는가? 모두들 아니라고 할 때 맞다고하는 사람? 아니면 경북 안동 하회마을의 종가집 며느리?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인 이은춘이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그는 조선조를 살았고, 대한민국을 살았다. 정신은 대한민국의 디지털 세대를 살았다 해도 조선에 머물러 있다. 그의 정신을 담은 기행문, 산문, 한시 등 고매한 인격을 엿볼 수 있는 시들을 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다. 이런 시들은 이미 사라져 없어졌다고 생각한 내가 부끄러웠다. 목차는 풍류,우정, 세상살이, 유교행사, 잔치,죽음 , 산문, 만장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의 것들은 선비 이은춘이 세상을 살며 느끼는 바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것들이고 마지막 만장록 부분은 그를 떠나보내면서 친지와 손자들이 그를 향한 애타는 마음을 적은 일종의 추모시이다. 나는 잘 몰랐지만 그는 살아 생전 자신의 파인 전주 이씨의 파보를 정리하고 주변의 유생들을 이끌었던 경남 지역의 대표적인 선비였다고 한다. 그가 전하는 일침들은 따갑다 못해 부꺼러울 정도이다. 핸드폰과 아이패드로 바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주시는 분이었다. 실제로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살아생전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생전보다 죽어서 이렇게 책이 남겨지는 것에 큰 아쉬움이 남았다. 유명한 승려나 유명한 카톨릭 사제처럼 조선의 선비로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말들을 전해 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전주 이씨의 가문에서는 그의 가르침을 많이 받았을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를 통해서 조선의 선비, 선비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뜻깊은 기회를 만들어준 책이었다. 선비로서 살아가는 것이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된다는 이념은 바뀐 것이 없어 보였다. 자발적인 가난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그 말이 윤리적으로 뜻있는 말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소위 못난 사람으로 비춰지게 되는 것 같다. 자발적인 가난이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깊은 뜻이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
|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는 해산 이은춘 공이 초서체로 쓴 풍류와 우정과 세상살이를 비롯하여 유교 행사, 잔치, 죽음등에 관하여 한시로 쓴 글들을 해산 이은춘 공의 증손자 이봉수 작가가 정자체인 해서체로 바꾸고 해석하여 출간한 '해산우고' 유고집이다. 해산 이은춘 공은 구한말에 태어나 1966년에 작고하셨고 경남의 대표적 유생이며 시와 글과 의(醫)등에 능통하셨다.
진정한 풍류를 아는 옛 선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한시 한자락 읊고 한시 한자락에 고요히 깊어지는 마음의 젖줄. 고향을 찾아온 마음처럼 풍요롭고 평화로우며 따스함이 있다. 애절함이 있다. 마음의 감동이 있다.
심금을 울리는 한시. 한자를 풀어보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감성적인 것들에 더 동요가 되고 마음의 움직임이 더 크게 작용되는 힘은 바로 한시에서 오는 것이리라.
곡우는 일년 중 날씨가 가장 변덕스러운 때로 농경이 시작되는 시기를 말하는데 4월 20일이 곡우였다 이 시기에 내리는 봄비에 관한 시를 한번 본문에서 옮겨본다
春雨吟(춘우음)
暮春穀雨下紛紛 모춘곡우하분분 花落千山草滿原 화락천산초만원 夢醒堪聽長流水 몽성감청장류수 一曲淸溪抱一分 일곡청계포일분
봄비
늦은 봄 곡우 비 어지럽게 내리는데 산에는 꽃이 지고 들에는 풀이 무성하구나. 잠 깨어 즐겁게 들으니 물은 길게 흘러가고 한 구비 맑은 시내 한 아름 나우어지도다.
옛 선비가 읊어내린 시가 참으로 맑고 깨끗하다. 자연적 정서가 베어있는 세상살이가 엿보인다. 사뭇 한자의 무지함이 부끄럽고 아쉬움으로 마음이 저리다. 남들은 나이가 한살한살 더 들어가면서 감정적인 기복이 적어진다는데 나는 왜 더 감성적으로 변해가는 것일까? 자연의 이치를 알지는 모르나 대자연의 품에 안겨 봄이면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이나 몽글몽글 피어나는 꽃망울등 작은 것들에 감동이 더 많이 동요 되고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되는 나는 이 유고집을 읽으면서 우정과 세상살이에 대하여 감동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착잡해지고 아려지는 것은 왜 그럴까? 아, 이번 주말에는 '해산우고'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를 손에 들고 동네 야산으로 봄나들이를 떠나서 멋드러지게 한시를 한수 읊어내련다. |
|
아~ 선비는 정말이지 좋아하는데 한자(한문)는 두팔 걷어부치고 도망가듯 치를 떨며 싫어하는 나에게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님이라는 전주이씨 덕천군의 후예이신 해산 이은춘 공님을 만나게 되니 어찌할바를 모르겠다는게 첫 만남의 심정이었다. 한문을 많이 알아서 술술술 읽어 나가고 그뜻을 옳은가고 음미하여 어렵게 한학을 공부하신 분을 통해 해석해 둔 내용들을 읽기 전에 말씀하시고자 한 것들을 가슴에 느낄 수 있었다면 더 깊은 감동이 전해 졌을텐데 아쉽게도 나에겐 너무나 먼 한자(한문)여서 그 뜻을 풀이하면서 읽기 보다는 문중,장손,일가,정자등 요즈음에는 흔히 쓰지 않는 용어들이겠지만 어릴적 많이 듣던 말이라 거기까지 다가갔다고 안도함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갓 쓰시고 곰방대를 들고 앉으신 모습이 전혀 낮설지 않은 모습이라서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 내 아이들에게 비칠 이 모습은 단지 옛날 사람 중 한분 일것이라 생각케되니 너무 죄송스러웠다. 유교집안 씨족마을에서 자란 나에게 일가들은 멀지 않은 친척이고 동네 어르신이었다. 삼년탈상을 하며 조석을 올리던 풍습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서 보고 자란 티가 몸에 베어 있는것도 같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때 문중에서 호(학산이셨다)가 내려오고 5일장 내내 그 깡시골에 도포,갓 봇짐삼아 전국에서 올라오셨던 기억 아직도 생생하다.만장록은 생소하지만 제를 지내는 모습이나 마을 구석구석에 있는 정자들이 더 없이 친근해서인지 어르신께서 읊으신 시들이 낮설진 않았다.한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어쩜이리도 은율에 맞게 잘 지으셨는지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
|
유생으로서 가르침을 게을리 하지 않던 이은춘 공
전주 이씨 덕천군의 후예인 혜산 이은춘 공은 경남 일대의 수많은 재실과 정자, 사당에 상량문이나 현판 또는 기문을 통해 족적을 따라 가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마지막 유생으로 칭송되었던 이은춘 공은 1966년 11월에 생을 마감하였지만 살아 생전 남긴 수많은 글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잊고 지내거나 소홀히 하던 효, 충, 예, 우애나눔과 도리등을 소중히 되새김질하는 시간을 갖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시골선비로 살다간 이 시대 마지막 선비정신을 계승하였던 이은춘 공의 시는 풍류, 우정, 세상살이, 를 알고 유교의 가치와 잔치와 죽음을 통달한 이였음을 드러냅니다. 해산 이은춘 공의 시와 산문과 만장록을 통해 선비의 행적을 되짚어 가며 오늘날 우리의 삶의 그릇된 모습을 고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선비정신이란?
사람의 사상과 그릇을 확인하기를 바란다면 그 사람의 글과 행적을 되 짚어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를 통해 이은춘 공이 살아 생전 남긴 시와 산문 그리고 지인들과 후학들이 남겨둔 만장록을 살펴보아 이은춘 공의 깊은 깨달음의 덕이 어디에 미쳐지는지를 갸늠해볼 수 있습니다. 86년이라는 생을 살면서 얻어진 삶의 경험은 세상의 이치와 유불리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학문을 곁에두고 선비의 덕목을 지켜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드러내서 자신을 높이지 않아도 기풍만으로도 사람의 됨됨이를 알게 하는 바. 이은춘 공의 시가에 담겨진 학문과 깨달음의 어우러짐이 만들어낸 '시'에서 시대에서 드러나지 않은 선비정신이란 어떠한 것인지를 갸늠해봅니다. 자신이 떠나갈때를 알며 한점 흐트러짐 없이 세상을 떠난 이은춘 공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며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며 풍류를 주색으로 바라보고 효와 예가 위아래가 뒤집혀버린 모습들 속에서 선비정신의 가르침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산문과 만장록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는 이은춘 공의 유고집으로 생전의 직접 쓰신 '시'가 전반부에 자리하고 '산문'이 뒤에 실려 있습니다. 또한 상여가 나갈때 오백미터나 늘어섰다고 말하는 만장록을 모아서 후반부에 배치하여 이은춘 공이 어떠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갔는지를 알게 합니다. 만장록은 이은춘 공이 죽기까지 어떤 분이셨는지를 드러내는데 만장록에 있는 글들을 보니 만일 인간의 도리 가운데 삶의 자세를 지켜나가야 한다면 이분처럼 살아보고 싶구나라는 생각을 해보는 바입니다. 선비의 문화가 이제는 옛 문화로 기록되어 사라져가는 상황 가운데 유고집을 통해 오늘날 보존하고 숙고해야할 선비정신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을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우리를 점검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은 어느날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닌 날마다의 삶에서 비춰져야함을 생각해봅니다.
|
|
선비라는 것이 어쩌면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도 모르겠어요. |
|
'만장록'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처음 배웠다. 몇몇 인터넷 검색엔진으로 뜻을 찾아보려 하였으나 검색결과가 없었다. 그리 오래전 풍습도 아닌데 문화와 함께 말까지 사라졌가 보다. 만장은 "고인의 행적을 기리고 슬픔을 나누는 글귀를 써서 상여 뒤에 따라 붙는 깃발"이고, 이런 만장을 작은 글씨로 베껴 써서 책자로 역은 만장록은 "고인의 인생 행적을 제 삼자가 평가하는" 귀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는 퇴계학파인 한강 정구의 후학으로 성리학을 공부한 해산 이은춘 공의 만장록을 공개한 것이다. 1966년 한 시골 선비가 생을 마감했을 때, 주변의 유림들이 몰려 들어 떠나는 자를 위한 만시를 지었고, 그렇게 지어진 이별의 시를 비단이나 종이에 붓글로 써서 만장으로 만들었다. 당시 상여가 나갈 때 뒤에 따라 붙은 만장 행렬만 오백 미터가 넘었다고 한다.
해산 이은춘 공의 만장록을 공개하는 증손 이봉수 님은 이런 말을 남겼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문화를 생각해 봐야 한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죽는 날에도 멀리서 친구가 찾아와 이별의 시 한 수 적어 보내는 여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50년 전 이 땅에는 이런 문화가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선비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기념하는 지인들의 증언이라 할 수 있다. 예전 TV의 한 예능 프로에서 연예인의 '가상 장례식'이라는 컨셉의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나의 친구들은, 나의 지인들은 나의 장례식에서 어떻게 나를 추억할까, 내게 어떤 이별의 말을 건넬까 무척 궁금해지곤 했다.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로 살다가신 해산 이은총 공을 기리며 문하생들과 친지들이 남긴 이별의 시는 '시골 선비'의 소박하고 성실했던 삶을 보여준다.
부모님을 지극히 모시고 농사에도 힘을 쓰며 가는 곳마다 사람 대함에 스스로 겸손하네. 마음은 항상 대쪽 같아 바람과 서리 견뎌내고 두터운 덕은 꽃잎 속 비와 이슬로 무르익었다.
깊은 정 맺은 처세 멀고 가까움 없게 하고 본업을 간직한 채 춘하추동 있게 하네. 일가 모이는 정자 지어 조상도 받들면서 오가가는 손님 친구 매번 만나도 기뻐하도다(62).
한시로 기록되고 그것을 번역한 것이여서 서사를 읽는 것보다 이해가 더디지만, 한시를 읽는 맛과 멋이 있다. 대한민국 마지막 선비의 삶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지만, 이별하는 사람들의 노래는 그것을 숭고하게 기억한다. 성실하게 땀흘리고,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청빈하고 검약한 생활을 추구했던 선비정신과 삶이야말로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벗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경건한 이별의 시로 표현하는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가 참으로 멋스럽고 아름답다. 고인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 숭고하게 보내줄 수 있는 다른 방식이 또 있을까. 사는 일에도, 죽는 일에도, 죽은 이를 보내는 일에도 예를 다하는 진실함이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증조부의 만장록을 공개하는 증손자는 "만장록을 읽어 본 사람은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없다"고 말한다. 평범하고 소박했지만 먼지 하나 끼일 자리 없이 투명했고 한 점 부끄러움 없었던 한 선비의 삶을 돌아보며, 함부로 살지 말자 다짐해본다. |
|
그들의 붓은 솔잎의 싱그러운 향기를 그리고 바다 위에 부서지는 햇살을 그렸다
놀이가 시였고 쉼도 시였고 삶이 시였던 선비들이 가득했던 시대에는 어쩌면 그 문화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그 문화의 향기로움을 그다지 소중하게 느끼지 못했을터다 그러나 쉼에, 놀이에 , 삶에 더 이상 붓이 없고 죽음과 삶에 대한 성찰도 없는 오늘 이 시대에 그 문화가 너무나 희미해서 이런 작은 접촉 하나만으로도 그것이 얼마나 향기로운지를 느끼게 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는 그래서 세상에 나온 책이다. 그저 사라지기엔 너무나 향기로운 그것, 우리 문화의 희미한 자취를 부여잡기 위해서 이 책의 저자인 해산 이은춘 공은 소천하기 전, 당신이 평생에 지었던 시들과 글들을 엮어 전국의 향교와 뜻있는 유림들에게 무료로 한권씩 돌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사랑방에서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성리학을 공부했다는 그는 단순히 상투를 틀고 한복을 입은 옛날사람이 아니라 한학을 공부하고 한시를 짓는 선비였다.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에는 이은춘 공이 지은 한시들과 글이 가득하다. 초서체로 지어진 한시의 초고를 하나하나 다듬어 해서체로 바꾸고 해설을 달아 이 두터운 책을 완성한 이은춘 공의 증손 이봉수 님은 그 길고 어려운 과정을 이러한 신념으로 이겨내지 않았을까. 해산 이은춘 공이 자신의 유고집을 전국의 향교에 무상으로 돌리라는 유언을 남긴 것 역시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만 가는 우리의 정신문화를 다소라도 그의 유고집을 통해 이어가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한시를 잘 알았다면 단지 해설이 아니라 한시 자체를 보고 그 풍류와 멋을 읽을 수 있었다면 이 책의 가치는 아마 더했을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해설 외에는 한시의 멋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은 단지 한시뿐이 아니다. 생소한 유교 행사와 절기들, 잔치와 국가 대소사를 기리는 시문들을 통해 지금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문화의 일부를 만나게 한다.
무심하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옆 어디에선가 그저 사라지기엔 너무나 향기로운 우리의 정신문화를 다음 시대로 물려주기 위해 부던히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음을 묵직한 책의 무게보다 더욱 무겁고 진지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