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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계기는 아마도 대학 입학이었나 보다. 그 전까지는 계층화 현상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서울로 온 뒤 어마무시한 주택 가격에 놀라면서 이쪽 문제에 골몰했다. 대학 때 맑시즘을 비롯하여 사회학 책 이것 저것을 뒤지곤 했다. 사람 취향이 쉽게 바뀌나. 요즘은 거의 안 읽긴 해도, 검색하다가 이쪽 책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사둔다. 브로니슬라프 게레맥의 『빈곤』의 역사는 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단 하며 받은 상품권으로 산 책이었나... 언제 구입한 지 기억은 안 나는데, 여하튼 산 지 좀 오래된 책이다. # 1 빈곤의 역사. 제목이 얼마나 멋진가. 책소개나 목차를 자세히 읽지 않은 채, 제목과 출판사만 보고 덥썩 샀다. 무려 28,000원짜리 책을! '도서출판 길'은 믿을 만한 출판사니까. 그런데 내가 기대한 책은 아니었다. 시간이나 공간적 범위가 좀 넓었으면 했다. 이 책은 유럽의 중세와 근대만 다룬다. 그러니까 좀 더 적확한 제목은 '유럽의 중세에서 근대 초까지의 빈곤의 역사', 정도가 되겠다. 아뿔사, '의'가 세 번이나 들어가네. # 2 저자인 게레맥은 1932년 폴란드 유대인계 가정에서 태어나 1950년 이후에는 주로 프랑스에서 학문 활동을 했다. 생애 말년에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이 책에서 보여주는 대로 평생 빈곤 문제에 골몰한 듯하다. # 3 부제는 '교수대인가 연민인가'이다. 게레맥은 '연민'도 있었지만 유럽이 근대로 전환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빈곤을 '교수대'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을 증명하려 한다. 그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지역의 사례를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시기를. # 4 짧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유럽에서는 중세까지만 해도 빈곤은 독특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다. 특히 그리스도교 성직자들이 선택한 자발적 빈곤을 향해서는 존경 어린 시선이 존재했다. 물질적ㆍ육체적 욕망을 지양하는 건 고전 종교의 특수인 바, 기독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식의 해석이라면 너무 엘리아데식 아니냐, 고 할 수도 있는데 게레멕도 인정한다. 이런 특수한 종교적 의미가 아닌 평민들의 빈곤은 예나 지금이나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성질이었다고. 중세에서 빈곤을 향한 태도가 감정, 사적 차원이었다면 근대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공적, 법적 차원으로 바뀐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는 근면성실한 노동자가 필요한데, 일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빈곤한 사람들의 존재는 사회악이었다. 하여, 근대로 이행하며 유럽 곳곳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구걸을 금지한다. 물론 일방적으로 정부가 폭력만 행사한 건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빈곤과 동의어인 실업자를 구제하려고 백방으로 애를 썼다. 대개는 실패하긴 했어도... 여기에 교황청도 동참한다. 부자가 천국 가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 뚫기보다 빡세다고 했던, 그 종교 단체에서도 빈곤을 적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지금도 이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 5 이 책을 읽으며 놀란 점은, 조선만 가난한 줄 알았건만 유럽 중세도 정말 정말 가난해도 너무나 가난했다는 사실. 조선에서 노비 비율 정도로, 유럽에서는 중세 말, 근대 초에 실업자가 대량으로 존재했다. 특히나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생산 관계의 변화, 전염병 창궐 등으로 유랑민이 대거 생긴다. 즉, 구걸에 의해서만 살아갈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이런 역사를 읽자면, 아무리 헬조선 헬조선 해도 물질적 풍요로 보자면 배고픔을 상당 부분 해결한 건, 자본주의ㆍ산업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덕분인 듯하다. 뭐, 그렇다고 현재의 모든 사회 문제를 물타기 하자는 의미는 아니고. # 5.5 병원이 환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초기에는 빈민을 위해 기능했다는 사실을 이 책으로 알았다. 그러니까 병원은 감옥이었던 셈이다. 병원의 역할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도시로 밀려온 빈민을 감금하고 감시하여 교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초기 병원은 종교 영향 아래 있었으나, 차차 병원만의 독자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 5.7 중세 유럽의 걸인들도 한국의 다리 밑 걸인과 비슷하다. 잔치에 나타나 먹고 재주를 부리는 등 나름의 사회적 역할이 존재했다. # 6 역자의 평대로 이 책은 빈곤을 대하는 태도에서 유럽의 '교수대'를 강조한다. 다른 연구를 보자면, 이 시기 '연민'도 만만치 않게 중요했다고 한다. 이는, 게레멕 본인도 서술하면서 인정한다. 정부에서 공포한 빈곤 법안 상당수가 실효가 없었다고. 구걸하면 사형 땅땅, 했지만 정말로 사형 당한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그래도 구걸했다고 사형이라니, 역시 지금이 낫다. --- 중세의 담론은 기관들과 개인들의 자선을 받을 자격이 있는 빈민들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데 주된 관심이 있었다. 근대적 사고는 빈곤에 대한 부정적 태도의 기원을 빈곤과 일탈 사이의 고나계에 비추어 설명하고자 했다. (15쪽) 빈곤화 과정은 풍요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어떤 하나의 사회체제나 특정한 '생산양식'에서 배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중세 후기와 '근대 초기'의 사회체제를 특정짓는 것은 단순한 빈곤이 아니라 빈곤 증가 추세가 너무 뚜렷했다는 것에 있다. 당시의 빈곤화가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빈민의 수가 많았다거나 빈곤 문제가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체제의 형성에서 빈곤화가 담당했던 중요한 역할 떄문이다. 우리가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중세사회의 시대정신과 이데올로기는 빈곤에 대해 특수한 기능을 부여했다. 그런데 근대의 벽두에 빈곤에 대한 관념은 급진적으로 변했다. 걸인이나 게으른 사람들의 존재는 공공복지에 해로운 것으로 여겨졌고 빈곤이 과거에 담당했던 기능도 사라졌다. 동시에 소규모 생산자의 빈곤화는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조건, 즉 본원적 축적 과정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특히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농업 체계는 더욱 그러했다. 빈곤은 여전히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그 역할의 성격은 변하고 말았다. (132쪽) 농촌은 빈고 발생의 근원지였다. 문서 자료로 추적해보면 도시의 성곽 내에 거주하는 빈민들도 대부분 최근에 농촌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따. 그러나 이와 동시에 도시는 자체의 고유한 발전 방식을 통해 빈곤을 양산했다. 장인들은 점차 자신의 독립성을 상실했다. 그들은 상업 자본이 도시와 농촌에서 생산한 물품과 경쟁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원재료 확보와 상품의 판로 개척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중략) 농촌의 빈곤은 이전의 생산관계가 해체된 결과이다. (중략) 반면 도시의 빈곤은 새로 형성된 사회적 관계의 결과였다. 도시의 빈민은 적어도 조세 대장에 기록된 사람들로서 '노동하는 빈민' 대중이었다. (146쪽) 사람들은 더 이상 자발적 빈곤을 기독교적 완성의 방식으로 고려하지 않았으며, 빈곤이 신이 결정한 삶의 조건이라 할지라도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제 빈민은 노동하기보다는 타인에게 기생하는 오만하고 부정직한 사람이었으며 기독교적인 삶의 규칙들을 끊임없이 위반하는 염치없는 사기꾼이었다. (177쪽) 1586년 6월, 공공 작업장에서 일하던 빈민들이 경찰에게 욕설을 퍼붓고 반항과 폭력을 일삼자 - 예를 들면 배급 도중에 빵을 강탈 - 공공 작업장에는 다시 교수대가 설치되었다. (중략) 즉, 궁핍한 상황, 이를 수습하기 위한 노력, 그리고 위기에 직면한 당국의 무능력을 일관되게 찾아볼 수 있다. 16세기의 처음 20년 동안 개략적으로 나타난 이러한 모든 조치들은 점차 확대되었고 일관된 체제로 정립되었다. 주요한 요소로는 빈민의 인구조사, 유랑민과 외지 빈민의 조속한 추방, 부조받을 권리를 가진 사람의 규정과 선발, 구호 기구의 재정 개혁, 빈민 부조를 위한 예산 확보, 사회부조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시 사무국의 설립을 들 수 있다. 위기에 대한 이러한 대응의 유사성은 도처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는데, 이는 단기간의 사회적 위기와 긴장을 반영하지만 더 나아가 구조적 성격을 띤 장기 지속의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203쪽) 종합병원에서의 감금과 강제 노동은 노동 윤리를 재차 주입하기 위한 방법이었고, 무력, 위협, 공포가 그 수단이 되었다. 근대의 사회부조를 특징짓던 이러한 놀라운 억압 행위는 매우 정교화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따. (27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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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빈곤"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에 따라 대응을 했는지를 고찰한 작품이다. 이런 류의 책을 읽다보면 1. 빈곤 퇴치는 예나 지금이나 고질적인 사회 병폐였다. 2. 극빈자를 포함한 소외계층을 제도권 안으로 흡수한 시대는 그 어느 시대도 없었다. 3.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상가들이나 "노동자"로 대표되는 피착취 계층이 살기는 나아지기는 했어도 아직도 멀었다. 이 세가지를 깨닫게 된다. 빈곤타파, 기득권층에 대한 힘 빼기, 소득의 균등한 분배.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유토피아"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맑스를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주창한 이유를 알만하다. 역사적으로 봐도 아무리 발버둥쳐도 기득권층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혁명으로 엎어버리지 않는 이상은 답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엎어야 한다는 생각에 물을 주는 역할을 하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