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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살고 있다. 또한 20세기 후반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의 몰락으로 자본주의가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체제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언제부터인가 신자유주의라는 말들을 쓰고 있고,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 신자유주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란 무엇일까? 또 신자유주의는 무엇일까? 늘상 말하고, 머릿속에서는 정리가 된 것 같기도 하지만 막상 대답을 하려면 한마디로 정의 하기가 어렵다.
작금의 우리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척도는 간단하다. 한미 FTA에 대해서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혹은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성향이 결정 된다. 한미 FTA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럼 신자유주의는 무엇이길래 진보와 보수라는 개인의 이념까지 좌우하는 걸까? 저자는 누구나 입으로 말하지만 사실은 자본주의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가 비판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하고,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구성하는 세가지 힘, 즉 자본과 노동과 국가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되어 왔는가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처음 탄생하고서, 그 후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자본주의(capitalism)라는 말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프랑스 초기사회주의자였던 루이 블랑이 소수자가 배타적으로 자본을 독점하는 상태를 가리켜 자본주의라고 부르기 시작 한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근대를 만든 두 가지 혁명은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다. 그러나 이들 두 가지 혁명은 지배계급의 위치로 도약하던 자본가계급의 요구를 담고 있었다고 한다. 산업혁명은 생산력의 일대 도약으로 자본가계급의 부를 늘리기 위한 수단이었고, 이들은 더 많은 생산과 축적을 위하여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이들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만큼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정치적, 신분적 변혁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래서 일어난 것이 시민혁명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자본주의는 노동력이 상품화된 사회이고, 그것은 자본의 축적과정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본원적 축적이라 불리는 자본의 최초의 축적은 엔클로저 운동으로 농민들이 토지로부터 분리되면서 시작되었다. 즉, 생산자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자본의 축적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자본주의의 기점은 산업혁명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혁명으로 공장이 생기고, 또 공장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자본과 노동이 분리된 것이다. 그러면 국가는 어디에 있었을까? 국가는 그전에도, 그리고 그 당시에도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국가의 첫 번째 목적은 자신을 유지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국가와 자본은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 국가와 자본 사이의 긴장이 느슨할 경우 국가는 노골적으로 자본의 도구가 되고, 지나치게 팽창할 경우 시민혁명과 같은 폭발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근대국가는 자본가들의 국가이다. 그렇기에 국가는 지배계급의 도구로써의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근대 이후 국가와 자본의 타협이 자유주의 형태로써 나타났다고 한다.
초기 자본주의는 조화로울 수가 있었다고 한다. 부르주아지의 이익이 사회 전체의 이익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믿음과, 또 노동자들과 부르주아지들이 서로 협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공황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결코 자본주의가 조화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자본주의적 공황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반복된다. 왜냐하면 공황의 원인이 자본주의 경제의 고유한 내적 동인, 즉 화폐가 되었든, 실물이 되었든 과잉생산 혹은 과소소비가 그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공황이 일어나자 그것을 타개하기 위하여 생산량을 축소해야 했을 때, 자본가들 사이에는 경쟁이 일어난다. 그러나 공황은 자본가들의 경쟁이기에 앞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가들의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인 무기가 되었다. 어떠한 규제나 제재 없이 직장이 폐쇄되고 대규모의 해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공항은 자본가에게도 피해가 가지만 그것은 일부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회복기에 들어서면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손실은 복구되지 않았고, 설사 복구된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기 일쑤였다. 일부 노동자의 손실이 다른 노동자 혹은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이 되지 못하지만, 자본가의 경우 경쟁에 따른 개별자본가들의 손실이 전체 자본가계급의 이익이 되었다.
공황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산과 소비가 불균형을 이루면서 나타나는 위기이자 동시에 그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불황의 귀결은 독점 자본주의의 출현이었다. 형식적으로 독점과 경쟁은 대립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독점은 경쟁의 결과이었고 또한 새로운 경쟁의 원인 이었다. 독점이 출현하기 전에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은 대립하면서도 제한적인 협력을 함으로써 평화를 유지 하였다. 그러나 독점은 시장에서 작동하던 기존의 균형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였고, 시장을 통제하고 지배하기 시작 하였다.
시장은 다양한 경제 주체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서로를 견제하고, 그것을 통해 또 서로 균형을 유지해 갈 때만 시장 본연의 조절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이 균형이 파괴되면 더 이상 자기조절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고, 그것이 시장 밖의 요인이라면 시간이 흐르면서 회복되지만, 시장내의 상황이라면 조절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원인은 독점이었다. 독점은 경쟁의 결과로 만들어 졌지만 더 이상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나타난다. 상품의 가격이 시장의 균형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이윤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렇기에 1929년의 대공황은 시장의 조절능력에 의해 극복되어지지 못하고 정부의 개입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자본주의가 출현 했을때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것은 ‘경쟁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아니라 통제라는 전통적 특징’이었다고 한다. 이에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통제들을 철폐시키고자 투쟁했다. 그러나 그들은 통제가 사회와 대부분의 구성원을 억압하던 시대에 봉건적, 중상주의적 통제를 철폐시키기 위하여 투쟁했고, 그것은 당시에 진보적인 가치 이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들이 스스로 통제자가 되면서 자유주의는 그 진보적 의의를 잃어 버렸다. 이제는 통제자들을 통제해야 할 필요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통제자들을 통제하는 것을 반대한다. 미국을 공황과 실업으로부터 구원한 것은 뉴딜정책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었다. 전쟁 중에는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여 자원을 동원하고 배분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에도 국가 개입이 축소되거나 폐지되기는커녕 일상화 되었다.
한편 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실시되었던 뉴딜정책은 일시적인 것이었다. 대규모 지출을 통해 고용을 확대하고 시장의 기능을 회복시켜 독점을 견제하고 시장의 균형을 회복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항구적으로 실시할 수 없었기에 계급간의 균형을 고정화하고 항구화할수 있는 방안으로 나온것이 복지국가이다. 노동자들은 어느 정도나마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충성하기 시작했고, 자본가들은 그 비용을 대지만 뉴딜정책보다는 싸게 먹히고 생산성의 향상으로 손해볼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래서 노동가와 자본가의 대 타협이 이루어지고 이것은 국가의 개입이 필수가 되게끔 만들었다.
1974년 공황의 원인은 석유파동 이었다. 그러나 이미 자본가들의 이윤율은 하락하기 시작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전의 위기들이 수요충격이었던 것과는 달리, 석유가 상승으로 비용이 상승하면서 공급충격으로 나타났다. 처음 나타나는 현상에 해결방법을 찾지 못했고, 자본가들은 복지국가에 필요한 비용지불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국가는 자본이냐, 노동이냐는 선택의 기로에 몰렸다. 이때 등장한 정부가 대처와 레이건 이었으며, 이들은 타협에 따르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겠다면서 자본가의 편을 들었다. 당시 세계 경제를 지배하던 케인즈주의에 대한 대안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만이 그것도 학교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채택한 신자유주의는 그렇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가 성공한 것 한가지는 특정한 계급의 이익에 따라 위기를 관리하려는 시도라고 한다. 위기관리 비용은 타협에 따른 비용보다 많이 들지만, 자본가들은 그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는 방법을 깨우쳤다고 한다. 지금도 위기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는 이미 실패했다는 것, 그 위기수습 속에서 그들도 정부개입을 요청하는 것은 스스로 잘못된 이론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자본주의 역사 및 자본주의의 성립과정, 그리고 당시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했던 내용까지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한가지 운영방식 이라는, 이제는 실패로 끝난 쓸모 없는 것 이라는 것도 알려준다. 막상 말로 하려면 입가에서 맴도는 것들을 쉽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한 입문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마지막 장에서 장하준교수나 신장섭교수에 대한 비판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들이 자본주의를 부정하든, 국가주의를 주장하든 그것에 대한 판단은 그들의 책을 읽고서 독자들이 내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과 주장이 다르다고 해서, 자신이 보기에 그들의 생각이 틀린다고 해서 자신이 쓴 책 속에서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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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이 단어, 그 답을 말할 사람은 있을까 이전 같으면 대립적 개념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아니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하는 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본주의 밖에는 없다. 마르크스 ‘변화의 동인이나 방향은 내부에 있지 외부에 있지 않다.’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자체적인 모순으로 붕괴하면, 또 다른 제도나 대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소수자가 배타적으로 자본을 독점하는 상태’, 노동력이 상품화된 사회이고 자본가는 축적하는 자이며, 재축적의 무한한 순환이 계속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돈 많은 사람이 돈을 버는 구조이다. 엔클로저운동은 농민과 토지를 분리하여 빈민을 양산하여 방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의회는 지주와 상인이 지배하였기에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의회는 적극 지지하였다. 산업혁명은 공장에 기계가 도입된 사건, 인간의 삶에서 기계의 도입은 풍요의 미래를 실현시켜줄 꿈의 도구인줄 알았지만, 기계에 의한 기계의 제작은 자본주의적 대공업의 기술적 기초, 기계의 도입으로 기계의 운전에 인간이 보조를 맞추고 일해야 하기에 노동규율을 강요했고, 노동시간을 증가했다. 그러나, 공장은 노동자계급의 연대의식 확인, 자본가에 대한 계급투쟁을 조직한 곳이다. 기계에 반하는 러다이트운동(기계파괴운동), 진짜 문제는 기계를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다. 맬서스와 리카도, 케인스학파와 신고전학파, 세의 법칙, 애덤 스미스의 생산의 경제학과 리카도의 분배의 경제학, 우리가 얼핏 들어본 경제학 관련 인물과 **설 등이 대부분 등장한다. 저축과 투자의 불균형은 경기변동을 만들고, 축적하지도 생산하지도 않으면서 소비하는 계급은 경제가 균형 속에서 발전하게 한다. 공황의 원인은 자본주의 경제에 고유한 내적 동인으로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산과 소비가 불균형을 이루면서 나타나는 위기이자 동시에 그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실물공급의 문제인가? 화폐공급의 문제인가? 공황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가들의 계급투쟁에서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인 수단이다. 파업과 직장폐쇄 누가 더 막강한가! 쉬운 문제이다. 자본이 적은 노동자들의 필패이다. 산업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로, 자본가들간의 경쟁 제한하고, 자본과 노동과 국가간의 균형을 위협할 것이다. 국가의 위에 있는 거대자본기업이 세계를 좌우할 것이다. 대공황의 원인은 통화량을 줄인 것이나 국제 금본위제의 제약인가? 대공황 이전 시장이 자기 조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기업집중과 독점화는 독점적 지배력 강화로 임금상승 둔화되고 소득분배의 불평등 심화되어 수요확대억제(장기적)된다. 74년 공황에서는 석유파동으로 인한 기업비용 상승으로 공급이 축소되고 가격이 인상되어 수요가 감소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뉴딜은 2 R(구호와 회복), 2 C(신념과 용기)로 대규모 지출로 고용을 확대시켜 시장기능을 회복하고 독점을 견제하여 시장에서 붕괴된 힘들의 균형을 회복시킨 것이다. 진정한 위기는 아무도 그것이 위기인줄 모르기 때문에 위기이다. 노동자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안정된 고용과 소득을 누릴 때 만 가능하다. 인간이 자유롭지 못한데 무엇이 어떻게 자유주의라고 불릴 수 있는가? 신자유주의 출현, 신자유주의자들은 통제자들을 통제해야 할 필요에 반대한다. 또 타협에 따르는 비용을 더 이상 지불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하지만, 어떤 새로운 이론이 나올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은? 자본이 독점적으로 장악한 경제적 권력을 국가와 노동에 분산시킴으로써 서로를 견제하고 시장에서 힘의 균형을 회복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다. 자본과 국가의 대립은 파생적인 것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들은 항상 어떤 제도하에서 고민을 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소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것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인지도. 자본과 노동의 대립은 사라진다. 소비하지 못하는 노동은 필요치 않다. 저자는 계급투쟁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이런 것도 기계가 기계를 생산하는데 체계로 돌입하면서, 노동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고, 결국은 사라질 것이다. 세계화는 자본의 필요, 가동성의 증대, 노동자의 이동을 증가시킨다. 세계화는 어느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가? 분파적 이해에서 보아야 한다. 세계화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은 인종적, 국가적 편견과 분리를 넘어 단결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물질적 기초를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세계화는 자본의 길이다. 자본의 우위에서 있는 집단과 그러지 못하는 집단으로 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은 소모적 노동에 내 몰린다. 제 3세계의 노동자들, 또한 우리는 단결이 부족해서 못살고 있는가? 노동의 가치가 떨어진 것 아닌지. 번영은 높은 생산성에 의한 높은 이윤율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비용을 전가시킨다. 또 금융 부문의 투기적 고수익은 다른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저자의 생각대로라면, 세계화는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냥 지구라는 하나의 단위이니, 단일시장에 단일경제일 것이다. 그 속에서 자본가들의 게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장하준 비판, 보호무역(무역정책에서의 국가 개입), 국가의 역할(국가의 이익은 무조건 정당), 국가 개입이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는 계급간의 균형이 없다. 시민사회의 미성숙과 자본의 미성숙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경제가 불황인 것은 신자유주의적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이 저성장인 것은 금융자본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근원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일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 한계 내에서 가능한 개혁을 모두 거부해야 옳은가? 자본주의에서 국가는 근본적으로 자본가계급의 도구일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과정을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다. 비교적 량이 적은(약 240페이지)에 많은 것들을 설명한다. 하지만, 잘 가다가 마지막에 장하준, 강수돌, 천규석 등에 대한 비판으로 샌다. 물론 사람마다, 특히 유명인들은 그 생각들이 공개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니, 그들의 주장에 반하는 주장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 역시 비판만이 있다. 그럼 그 대안은? 없다. 제도는 만들어진다. 산업혁명(증기기관)이 변혁을 이루었듯이, 새로운 에너지원이나, 생각을 전환시키는 발견 등이 있으면, 변한다. 우리는 미래를 모른다. 하지만, 미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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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아무도 모른다니 무슨 말인가. 우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고 난 후 먹고 숨쉬고 옷입고 차타는 그 모든 것들이 자본주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신자유주의를 네가 아느냐" 라고 묻다는 그건 또 무슨 헤괘망측한 질문인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그 자체가 신자유주의로 골격이 잡아진 세상이고, 늘 신문에 나는 그 모든 경제문제들이 모두 신자유주의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문이 일어나는 것이 이 책의 제목과 서문을 읽으면서 생겨나는 당연한 귀결인 것 같다. 그러나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면 어떨까. 내가 정말 자본주의라는 것에 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것인가. 도대체 그렇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본주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또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로 내가 그런 단어들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 의심이 생겨나는 것을 느낄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너무 자주 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단어 또한 마찬가지이다. 너무 흔히 사용되는 단어들이기에 우리는 그 단어가 사용되는 문맥의 맥락에 따라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라고 하면 말하기 힘든 것. 그것이 우리사회에서 이들 단어가 소비되고 있는 맥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전개하고 있는 철저한 논리를 읽으면서 아하 자본주의는 이런 역사를 톻해서 진전해 온 역사적인 실체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면서 부터 이 책의 저자가 제기한 질문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이 설명하는 방식이야 말로 자본주의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가장 잘 맞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그렇게 누구나 다 아는 것 같은 문제에 대해서 소크라테스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자, 동시에 그 질문에 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책이기도 한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며, 자본가라는 집단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국민이라는 개념은 또 어떤 것일까. 국가는 자본가와 어떤 관련이 있고, 국민이라는 존재는 노동자 혹은 자본가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비슷한 개념인 것일까. 왜 국가는 다른 국가와 싸우고, 왜 자본가는 같은 자본가들끼리 싸움을 벌이는 것일까. 국민의 한사람으로 국가적인 일에 참여하는 것과 한사람의 노동자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동일하고 얼마나 서로 다른 일인 것일까.
그런 질문들.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들이지만 여태껏 살아오면서 그런 질문을 진지하게 제기하는 책을 만나본 경험이 거의 없는 것 같은 주제를 다루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가장 중요한 개념들이지만 좀처럼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고 사용되고 있는 개념들. 그런 무정형의 개념들에 날카로운 예각을 세우도록 두리뭉실하게 사용되는 상태를 벗어나게 만들어 주는 책. 졸리운 얼굴에 차가운 공기를 닿게 하는 것처럼 날카로운 깨닳음을 안겨주는 책. 그런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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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보수”, “진보” 와 같은 말을 쓴다. 하지만 그 단어에 대해 제대로 그 의미를 생각하고 쓰는 것일까? 한 번 예를 들어보자. “자유민주주의”와 동의어로 “자본주의”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자유주의” 혹은 “민주주의”는 정체체제와 관련되었고, “자본주의”는 경제체제와 관련이 있으니까 동의어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보다 광범위하게 인용되는 “자본주의” 개념은 뭐라 말해야 할 지 난감하다. “자본주의”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던 프랑스의 초기 사회주의자였던 루이 블랑(Louis Blanc, 1844~1890)(은) 소수자가 배타적으로 자본을 독점하는 상태1)를 자본주의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 1863~1941)와 같은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역사적으로 특수한 어느 사회경제 시스템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상업활동 등과 동일시2) 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영속적인 체제라고 인식하고 주장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논의의 방향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자본주의”에 대해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일단 이 책은 마르크스 경제학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1장 자본주의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정의 및 기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3장 자본과 국가는 언제부터 결탁하였는가’에서는 거주 이전의 자유는 장원과 영지를 떠나 공장에 있는 도시로 이전할 자유를, 직업선택의 자유란 봉건영주들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본가들에게 고용될 자유를 의미3)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아는 상식(?)과 달리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승리로부터 자유주의, 아니 자유주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어 5장~7장을 통해 일반적으로 고전적 자본주의의 위기로 알려져 있는 1929년 경제대공황이 초래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인간이 시장의 맹목에 자신의 운명을 내맡길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시장을 목적의식적으로 이용할 수 없을까를 고민4)하면서 진정한 자유주의의 회복을 꾀했던 케인지언(Keynesian)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그리고 8장~9장을 통해 “74년 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거의 동시에 나타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죄는 미워해도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과거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운동)이 기계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었는가가 문제였는데, 기계 자체가 문제인 것으로 착각하여 기계를 파괴하는 전략적 오류를 범함으로써 실패로 돌아간 것을 상기시키면서 “세계화”의 경우에도 무조건 “세계화”가 나쁘다는 선입견에 빠져, 세계화의 혜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反세계화=진보=좋은 것”이라는 망상의 바다를 헤매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즉, 세계화는 인도의 빈민들을 더 빈곤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빈곤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이다. 인도뿐 아니라 대부분 개발도상국에서 빈민들은 최소한의 생존수준 이하의 삶을 살면서도 자신들이 빈곤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세계화는 그들에게 자신들이 빈곤함을, 그것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결코 지킬 수 없는 수준으로 빈곤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것이다.5)라고 하면서 “세계화는 어느 나라의 이익을 옹호하는가”하는 질문은 잘못되었다. 당연히 우리는 “세계화는 어떤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가?”하고 물어야 한다.6) 라고 하여 세계화가 누구를 위하냐에 따라, 진보 세력이 긍정하는 ‘좋은 세계화’가 될 수도 있고, 부정하는 ‘나쁜 세계화’가 될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그 역사적 전개과정에 대해서는 잘 정리되어 있지만, 개발독재의 복구를 요구하는 국가주의자 장하준과 신장섭, 공동체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강수동과 천규석에 대한 비판 부분은 글 흐름상 꼭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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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생산하는 요소는 노동자, 자본/자본가, 국가라고 한다. 저자는 경제주체 정의를 마르크스 '자본'에서 차용하였으며, 경제구조를 바라보는 시각도 '자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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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모르는....요즘 이런 말이 유행인 것 같다. 하긴 낚시성 문구로는 아주 적절하니 말이다. 경제학의 역사를 보면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경제의 역사는 수십혹은 수백만년 전 일수도 있겠다. 인류가 정착을 시작하면서 자급자족에서 벗어나 물물교환을 하면서 부터 경제활동은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필자는 300년전이라고 하는데 아마 자본주의라는 말이 나온 것이 그렇고 지주들은 토지를 소요하고 소작농들도 자신이 농사를 지은 댓가로 받은 곡식은 소유할 수 있었으니 훨씬 오래되었을 것이다. 고대에서 중세를 거치면서 많은 학문들이 발전하였고 소위말하는 빈부의 격차도 발생하였는데 영주들이 기사계급을 지배하며 소작농으로 부터 지대를 받았던 것이 자본주의의 시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사들이 영주의 자산을 보호해주는 댓가로 봉급을 받고 외적의 침입으로 부터 보호해주었던 것이다. 소작농들 역시 보호를 받으며 그에 대한 댓가로 땅에 대한 농사를 지으며 저렴한 소작료를 받으며 근근히 살아갔던 것이다. 지금은 그 역할이 그대로 유지되지만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요즘은 토지대신에 부동산이라 말을 하며 영주의 역할을 정부가 대신하는 것이다. 국가는 기사들 대신 군인과 경찰의 힘을 빌려 국가와 국민의 재산을 지킨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들이 과거 중세 시대의 소작농들인 것이다.
그 당시의 소작농들보다 지금의 국민들이 잘 사는 것은 당연하다. 왜나면 과거에는 생산력이 낮아서 절대적인 빈곤의 시대였지만 지금음 곡물의 생산량과 노동 생산력이 향상되어 상대적 빈곤 내지만 잉여의 생산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적부터 미국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이며 사회주의 보다 무조건 우월하다고 들었다. 그러면서 경제학에 있어 뉴튼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 과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마르크스를 사회주의라는 이상한 사상을 주장한 나쁜 사람으로 취부했다. 그러나, 실제로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는 지금의 공산주의+사회주의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은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부를 가진자들의 자기변명을 위해 경제학의 천재를 나쁘게 몰아가버린 것이다. 자본주의의 반대가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노동자들은 왜 자본주의를 찬성하였을까? 아마 무지해서 였을 것이다. 봉건 영주의 지배를 받는 것보다 자본가의 지배를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책 이야기를 하자면 자본주의의 탄생의 배경과 경제학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나로서는 이해하기에 상당히 어려웠다. 오히려 케인즈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다시 공부하라는 어려운 숙제만 받았다. Chapter를 시작하기전에 한줄짜리 질문을 던지는데 본문을 읽다보면 명쾌한 해답이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나의 무지함 탓인지 저자의 표현력 탓인지 답을 찾이 못하고 다음 Chapter로 넘어가기 일 수 였다. 수많은 문헌과 책을 참조하였는데 정작 핵심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OOO책을 직접 읽어보라는 무책임한 말로 일관해버려 조금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히려 어줍잖게 인용하다가 더 혼란만 가중될 것 같아 독자들에게 숙제로 남긴 저자의 배려일 수도 있겠다. 마지막에 장하준 교수와 천규석 선생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는데 내가 그 분들의 사상을 아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비판이 우리의 수준을 한층 더 높여줄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신문과 같은 언론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국민의 의식을 좌우하였은데 이제는 트위터와 같은 온라인 매체나 아니면 책을 통해 많이 표현되는 것 같다. 논란의 소지가 많은 신자유주의니 좌파니 하는 사상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라도 우리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는지는 상식수준에서라도 알아야 하기에 이책을 통해 그런 지식을 습득한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만족한다. 저자의 다소 좌편향적인 주장을 무시하고 읽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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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라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 살아오지만 정작 자본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명확하지 못하다. 내가 그 속에 살고 있음에도 그 본질과 기원에 대한 생각을 한 적도 없고 심각하게 그 기원에 대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낸 기억도 없는 듯하다. 제목이 던져 주는 묘한 끌림은 ‘너 이거 알고 있어?’ ‘정의를 내려 봐.’ 하는듯한 느낌에 조금 당황스럽게 책을 집어 들게 만들었다. 그래 자본주의라는 것이 어떻게 나의 생활에 접근을 하였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좀 고민을 해 보자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자본주의의 기원부터 자본주의의 발달 그리고 자본주의의 향후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의 이야기와 시대적 배경을 중심으로 그 들의 말의 진실성과 논리에 대한 검증 등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자본이 가져온 사회구조를 중심으로 이야기 하는듯하다. 책을 읽는 방법이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그 받아들이는 문장의 강약이 조절 되듯이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중립성을 잊어 가면서 나는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부분에 집중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국가가 자본가의 손을 들어 주게 되는 구조와 국가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았고, 위기와 공황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자본의 속성에 대하여 고민을 해 보았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 아니 나에게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책장의 한 문장 한 문장에 줄을 그어 가며 읽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던지는 저자의 질문과 답은 조금 충격적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나뉘게 되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수긍이 가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도덕적인 관점 그리고 모범생적인 사고의 관념에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그런 결론이 힘들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똑같이 토지로부터 출현했다면 어째서 누구는 자본가가 되고 누구는 노동자가 되는가? 같은 조건에서 자본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근면, 성실, 근검 등과 같은 그가 가진 미덕 때문인가?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그러한 미덕을 가지지 못한데다가 나태와 방탕, 낭비 등과 같은 악덕을 갖추었기 때문인가? (29쪽)
국가와 자본과의 관계는 또 어떠한가? 국가가 정말 국민을 위한 일을 하기 위해 존속하는 집단인가? 하는 그런 문제에 대한 고민과 국가의 속성 그리고 자본의 속성을 고민하게 만들어 준다.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국가의 의미가 내가 알고 있었던 국가의 의미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조금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 대외적인 신자유주의 무역은 어떤 구조적 태생을 가지고 발전을 하였을까? 저자가 언급한 부분과 질문은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조금 알고 있었던 부분과 저자의 생각이 어우러져 조금 충격이 덜 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결국 자본의 집중을 만들기 위한 전략 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우월권에 대한 정당화라고 하여야 할 것 같다.
공황이나 위기를 넘기면서 사람들의 삶은 더 힘들어진다. 노동의 시간과 강도가 달라지고 임금과 물가가 달라지고 삶의 수준이 달라진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말하는 것은 나르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즉 자본과 관련된 부분에서 말이다. 조금 다른 세상의 이상적인 부분을 꿈꾸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결국 자본주의라는 것이 그렇게 진화하고 발전할 수밖에 없다면 그 자본을 가진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과의 갈등은 존재할 것 같고 그 사이에 일반 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작은 범위의 선택은 아마도 각자의 몫이 아닐까 한다. 국가가 존속하기 위한 선택을 한다고 한다면 우리가 선택해야 할 국가의 모습도(국가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고 국가의 정책을 선택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겠지만) 자신의 의지의 반영일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가져가야 할 선택은 여러 가지 대안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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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제목이 참 잘 다가오는것 같습니다. 이 말은 과연 자본주의를 설명하기 적합할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름 자본주의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보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가벼우면서도 할말을 다 하고 있는 책은 드물지 않았었나 합니다.
처음에 받았을때 다소 딱딱한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가볍고 얇아서 과연 이 책이 자본주의에 관해서 많은 정보를 줄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책장을 펴고 나서는 의외로 너무 흥미로운 내용이 계속되어 경제에 관련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좋아하는 사회적 문화적 요소들이 중간중간 섞여있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몰두할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이 책의 지은이는 조준현님. 부산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시고 같은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셨다고 합니다. 이 분의 저서를 보니 주로 경제학에 관련해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여러가지 제목들이 돋보이는것 같습니다.
이 책은 첫 장에서 자본주의의 탄생에 관해서 설명한 뒤 과거에 자본주의가 밟아온 과정을 흥미있는 이야기거리와 함께 친근하게 설명해 줍니다. 가벼운것 같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경제 에 관련된 이야기를 알기쉽게 펼쳐 놓은 백과사전같은 느낌입니다. 자본주의의 어두운면도 많지만, 저는 좋은면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작가님의 입장이 저와 같아서 참 읽기가 편했던 책이었습니다. 제가 이 책에게 점수를 주고 싶은 점이 있다면 바로 구성에 관해서 입니다. 이 책은 다른 책과 다르게 자본주의가 무엇이며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이다 라는 종전의 설명문 방식에 그치던 다소 진부했던 구성이 전부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발전과정,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을 아우르는 자본주의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짜임새있게 구성되어있습니다.
쉽고도 어려운 경제를 쉽게 이해할수 있는 책의 조건은 바로 사람들에게 얼마나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며 설명하는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굉장히 재미있고 또 주제가 확실한 책입니다. 경제라는 굳이 딱딱한 제목 을 붙이지 않아도 마치 소설 한 편을 읽는것처럼 인류가 어떻게 자본주의를 태어나게 했고, 키워내고 있고, 어떻게 키워 갈 건지를 한눈에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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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우리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 정작 자본주의가 뭐냐는 질문에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확하게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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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노동력이 상품화 되어있고.. 근대이전의 사회에선 인신과 인격이 상품이 된 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두가지 의미에서 자유롭다. 자본가는 축적에 의미를 둠으로서 지주 자본가 노동자 계급이 성립된다. 허나 한 사람의 자본가 가 성공하기위해선 그 사람이 잘나서가 아니라 99명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상인의 지배로부터 독립경영을 추구한 생산자들은 이윤을 축적하여 생산규모를 확대하고 생산자들은 한자리에 모아서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메뉴팩처의 출현의 계기다. 자본과 국가는 처음부터 같이 있었으며 국가가 누구의 이익을 옹호하고 누구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개입하느냐에 따라 어떤 국가는 자본주이 어떤국가에는 절대주의라고 불리워진다. 지주의 지배보다는 자본가의 지배가 노동자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었기 깨문에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과잉 이 아니라 자본주의 결핍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회 에서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에게 진보적이다.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공황을 겪는다. 왜냐하면 화페 공급의 문제와 공급의 문제를 혹자는 주장한다. 자본가는 가치를 생산하고 가치를 실현하기위해서 소비자들이 그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이뤄진다. 자본주의에선 욕구가 판매를 결정하는데 규모가 생산과 일치하지않기 때문에 공황이 일어난다. 계획경제에선 생산된 가치를 실현하긴했지만 주민들의 욕구와 일치하지않았다. 자본과 노동과 국가 라는 세구성 부분들 사이에서 위태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모순이 있어도 스스로를 유지할수있는것은 이런 균형 때문이다. 독점은 시장안에서 출현한 힘으로서 일단 형성되면 기존에 가지던 균형에 위협이된다. 신자유주의는 타협에 따른 비용을 더이상 지불하지 않겠다고 주된 업적은 부와 소득의 창출이 아니라 재분배에 있다. 즉, 자본주의 모든시대, 인류의 모든 시대에 나타나는 공간을 넘어선 모든종류의 교류, 가동성의 증대는 자본의 이윤창출에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