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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국가의 관계-기독교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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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정치학 이명박 대통령은 2011. 3. 3.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하여 무릎을 굻고 기도하였다. 이에 대하여 정교분리원칙위배, 기독교 편향 등 사회적 논란이 있었다. 정부가 2011년 2월 임시국회에서 오일머니의 투자유치를 위해서 이슬람채권법을 제정하려고 했으나 기독교계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였다. 2011년 예산 중 템플스테이 예산이 반영되지 못하였고 이로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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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정치학

이명박 대통령은 2011. 3. 3.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하여 무릎을 굻고 기도하였다. 이에 대하여 정교분리원칙위배, 기독교 편향 등 사회적 논란이 있었다. 정부가 2011년 2월 임시국회에서 오일머니의 투자유치를 위해서 이슬람채권법을 제정하려고 했으나 기독교계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였다. 2011년 예산 중 템플스테이 예산이 반영되지 못하였고 이로 인하여 불교와 정부가 대립하였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모든 갈등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을 방지할 수 있는 올바른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무엇인가?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교회는 정치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가? 『기독교 정치학』은 이에 대한 길잡이가 되는 책이다.

『기독교 정치학』의 저자는 존 레데콥이다. 존 레데콥은 재세례파(anabaptists)의 메노나이트 학자이다. 전통적인 메노나이트는 평화주의를 지향하고 교회와 세상의 구별, 정교분리, 세상정부 참여를 반대한다. 그러나 존 레데콥은 전통적인 메노나이트가 아닌 개혁적인 메노나이트 입장에서 교회와 정치의 관계에 대하여 주장하고 있다. 존 레데콥은 교회와 기독시민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정치 참여를 긍정하고 있다.

먼저,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성서적 지침으로 기독교인은 정치를 진지하게 취급해야 하고 교회와 정치 사이에 긴장은 존재하므로 기독교적 제자도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활동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정치 질서를 창조하지 않았으나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로 정치를 발전시킨 것이며 세속정부도 하나님 사랑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물음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다양한 신학적 견해가 존재한다. 가톨릭 교회(전통적인 로마 가톨릭의 견해는 교권이 정치제도에 대해 도덕적 권위를 지니며 교회가 국가 위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루터교(교회와 국가 모두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며 기독교인은 교회와 국가 모두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받았고 두 종류의 섬김이 기독교적 소명을 구성한다고 한다), 캘빈주의(교회와 국가의 기능을 구분하지만 신정주의 입장에서 국가에 구원의 목적을 부여했다), 분리주의(교회와 국가의 완전한 기능적 분리), 퀘이커적 이해가 존재한다. 반면,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아나벱티스트, 메노나이트의 이해는 교회는 기능적으로, 윤리적으로 세상의 왕국과 구별되고, 국가도 하나님이 설립하였지만 교회보다 덜 중요하며, 기독교인은 정치적 직무를 맡아서는 안된다고 한다. 또한 기독시민은 더 악한 정부에 대하여 좀 더 계몽되고 정의롭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도록 요구해야 하며 평화에 대한 신약성서의 강조에 근거하여 군 복무를 거부한다. 그들은 타협없는 기독교적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했다.

성서에 근거한 하나님의 정부에 대한 핵심적인 요구사항은 20가지이다. ‘정부는 하나님께서 주신 통치의 책임을 져야 한다. 일반 선을 추구해야 한다.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인간존엄성을 존중하고 증진하며 육성해야 한다. 착취되고 소외된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의를 추구한다. 재정적 투명성을 실천해야 한다.’ 등이다. 따라서 정부도 하나님께 책임져야 하며 자신의 직무, 역할을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에 주목할 때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다.

시민정부가 기독교윤리에 따라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기독교 시민은 교회와 목표가 다르며 때로는 상충된 가치를 추구하는 정부에 대하여 기독교윤리를 수용하도록 촉구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마틴루터, 존 캘빈, 메노 시몬스 등 여러 가지 견해가 존재하지만 개혁적 아나뱁티즘은 기독교인은 기독교 윤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정치참여는 적절히 용납될 수 있고 기독교 윤리는 정부가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관용적으로 변화되는데 유용하므로 기독교 윤리를 증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저자 역시 개혁적 아나뱁티즘 입장에서 정부가 기독교 윤리를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질서도 하나님의 또 다른 질서이다. 하나님은 정치질서의 작동을 통해 상당한 선을 성취할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정치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기독 시민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에 대하여 10가지 항목이 있다. ‘국가와 정부의 합법성을 긍정하고 그것에 복종해야 한다.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정치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한다. 정부의 유용한 비평가가 되어야 한다. 충실히 세금을 내야 한다. 좋은 정책을 지지해야 한다.’ 등 이다.

기독교인은 왜, 어떻게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가? 기독교인은 제자도의 삶을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주권이 모든 백성과 인간 조직에 미친다고 선포해야 한다. 따라서 두 왕국의 하나인 정치영역을 기독교 사역의 대상이자 기독교적 섬김의 도구로 간주해야 한다. 특히, 현대 정부는 기독교인이 행하던 건강, 복지, 긴급구호, 위생 등 일들을 하고 있다. 기독교인의 일과 중첩되는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정부에 관여하여 선을 행할 수 있다. 무관심은 파괴적인 도덕적인 결과를 가져오므로 기독교인은 태만의 죄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기독교인은 기초적으로 정치적인 일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하고 기독교인의 견해를 공직자에게 전달해야 하며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기독교인은 정당이 자유를 제한하는 비도덕저, 반기독교적 원리나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정당에 참여할 수 있다. 기독교인의 제자도, 도덕성을 타협하지 않는다면 공직에 취임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기독교 도덕을 공공정책으로 전환하고자 정부의 강제력을 이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비기독교적이다.

교회와 교회기구들이 정부와 협력하는 문제에 대해 찬반 양측의 주장이 있다. 찬성하는 견해는 정부도 하나님이 설립한 기관이므로 정부가 하나님의 소명을 수행하고 좋은 정부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한다. 반면 반대하는 견해는 교회는 더 귀한 사명이 있고 정부 자체는 기독교 윤리에 따라 살아가는 기관이 아니므로 협력에 반대한다. 그러나 찬반 견해의 균형이 필요하다.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과 정부의 사명을 혼동하거나 정부와의 관계 단절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기독교인은 정부가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하는가? 정부는 여론을 바꾸고 인간행동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 기독교인은 사람들의 육체적 행복과 영적 행복 모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인, 교회는 사회적 양심으로서 일정한 지침, 상황을 선택하여 정부에 충고해야 한다. 정당과 교회는 각각 다른 사명, 목적, 범위, 방법, 윤리적 규범의 지니므로 정당을 통해서 교회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에 근거한 정당의 가정과 가치를 분별하여 정치적 선택에 직면했을 때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정부가 양심에 반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지 않고는 복종할 수 없는 법을 도입한다면 다른 평화적 선택이 실패한 경우 시민불복종을 선택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불복종은 언제나 국가에 대한 불복종보다 심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인 정치가와 정부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특히, 정치가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악한 통치자들에게도 확장되어야 한다. 정치가를 위한 기도는 통치자들이 선하지도 경건하지도 않을 때 더 많은 적합성을 지닌다.

올바른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논의, 고민이 있었다면 현재 우리 사회의 종교적 갈등은 없었을 것이며 교회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은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 정치학』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견해를 소개하고 개혁적 메노나이트 입장에서 정부의 역할, 기독교 정치윤리, 기독 시민의 정치 참여, 정치적 압력 행사, 시민불복종 등 다양한 정치적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이론과 행동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향후 『기독교 정치학』을 통해서 정치 영역에서 교회 및 기독시민의 역할, 태도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w*********n 2011.05.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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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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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국가는 기독교가 생긴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묘한 관계들을 이어왔다.정경분립처럼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의견과 교회와 국가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나아가야함을 역설하는 이들도 있다. 오늘의 우리사회는 교회와 국가간의 문제들을 하나로 보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을 통해 교회와 국가간의 사이를 조율하는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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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국가는 기독교가 생긴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묘한 관계들을 이어왔다.
정경분립처럼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의견과 교회와 국가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나아가야함을 역설하는 이들도 있다. 
오늘의 우리사회는 교회와 국가간의 문제들을 하나로 보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을 통해 교회와 국가간의 사이를 조율하는 경향들이 있었다. 
조율이라는 것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교회에 대한 세대별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 견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오늘의 기독교인들 또한 많은 혼란을 가지고 있다.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서 어떤 입장으로
살아가야만 하나님의 나라와 말씀앞에서 옳은 일인가라는 고민들을 하게끔 한다. 
이러할 때 레더콥의 기독교 정치학은 많은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메노니아트 학자이다. 메노나이트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치문제를 외면하고 개인적인
관심사나 교회의 중요한 사역에 초점을 맞춰가는 관점을 가진다. 그러나 레더콥은 진보적인
메노나이트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역사와 국가앞에 기독교인들이 어떤 입장을 표방해야
함을 성서적인 관점에서 한발짝 앞섰다. 왜 기독교인이 정치 영역에 관여해야 함을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도록 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러 다양한 방면에서
역량을 발휘함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봉사의 의미임을 말하는 바 있다. 
정치적 활동에 침묵하는 것이 기독교인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
들이 공감하고 있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망설임은 
현실이다. 이러할 때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방법들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제시해 주고 있다.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강조는 그리스도인들의 침묵을 깨고자 한다.
공정하고 인도주의적인 문명화속에서 성서적 지침을 명백하게 제시함으로 저자의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성서적 근거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행동에 나서도 된다는 분명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음을 이 책에서 우리는 보게 된다. 교회와 국가와의 협력관계 또한 말하고 있다.
어디까지 교회의 역량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를 애매하게 정리하는 부분
들이 있지만 진정한 책임에 대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사회에서 기대하는 교회
역할은 많은 백성들이 원치 않음은 오늘날의 아픔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대처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이 어디갔는지. 우리들은 찾고 있다. 교회의 책임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들을 해결할 수 있는 교회역활을 이 책에서 보게 되었다.

p***1 2011.05.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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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적 아나뱁티스트의 입장에서 본 교회와 국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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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개혁적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를 대변하는 존 레데콥이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성경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기독교인들의 정치참여에 대해 구체적인 원리와 지침을 알려주는 책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보수적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교회에서 정치나 국가에 대해 성경적 가르침을 거의 받지 못했다. 단편적으로 교회와 성도는 정부와 정치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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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개혁적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를 대변하는 존 레데콥이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성경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기독교인들의 정치참여에 대해 구체적인 원리와 지침을 알려주는 책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보수적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교회에서 정치나 국가에 대해 성경적 가르침을 거의 받지 못했다. 단편적으로 교회와 성도는 정부와 정치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만 배웠다. 그리고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만 배웠다. 한국의 유명한 목사들이 유신을 반대하고, 정치적 이유로 감옥에 갔어도, 그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성경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주장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그 근거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마22:21, 막12:17, 눅20:25)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제시되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의미는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라는 것인지, 바치지 말라는 것인지, 혹은 인간 왕과 하나님께 동시에 바치라는 것인지 알송달송하다. 분명한 것은, 문맥(context)을 따라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과연 성경은 종교와 정치에 대해, 혹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지 항상 궁금했다. 레데콥의 <기독교 정치학>은 이런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신선한 통찰력을 주었다.

저자가 밝혔듯, 초기 아나뱁티스트들은 교회가 일종의 대안사회로 기능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국가는 비록 하나님의 의해 설립되었어도, 비기독교인들 내에서 법과 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존재한다. 기독교인들은 정치적 직무를 맡아서는 안 되며, 평화에 대한 강한 강조 때문에 군 복무까지 거부했다. 그들은 교회와 국가의 철저한 분리를 원칙으로 스스로 “땅에서 조용한 자들”이 되고, “타협없는 기독교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존 레데콥은 아나뱁티스트에 속해 있지만, 개혁적 아나뱁티스트로서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를 주장한다. 그는 자기 책의 입장은 “아나뱁티스트적 현실주의”(Anabaptist realism)라고 이름 붙였다. 이런 입장은 이 책의 영문판 제목이 잘 보여준다. <Politics Under God>, 즉 세상 정치도 하나님의 권위 아래,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 저자가 성경에서 교회와 국가가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지 연구하여 정리한 것들은 매우 인상적이다. 교회와 국가는 모두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고,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표현이다. 비록 타락으로 수많은 사람들은 반항의 길을 갔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정치구조를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확대하셨다는 것이다.

한편 기독교인들은 두 영역에서 살고 있다. 정치 영역에서는 시민으로, 교회 영역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산다. 아나뱁티스트의 기본입장은 루터나 캘빈처럼 두 개의 윤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궁극적으로 오직 한 가지 윤리만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순종적인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주권이 모든 백성과 인간 조직에 미친다고 선포해야 한다. 이는 기독교인은 정치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에서 기독교적 관심을 표명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신중하게 정치에 참여할 것인지 논하고 있다. 4장에서는 하나님이 정부에 요구하는 핵심사항들을 20가지로 정리한다. 그리고 6장에서는 하나님이 기독시민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10가지로 제시한다. 그리고 10장에서는 기독교 정당의 존재에 대해, 11장에서는 시민불복종의 성서적 토대에 대해, 12장에서는 정치가와 정부를 위한 기독교인의 기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레더콥의 논지는 명쾌하다. 기독교인들은 무조건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지 말고, 정치와 정부에 대해 균형잡힌 견해를 가지고, 개인적으로 신중히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세금을 내든 내지 않든지, 투표를 하든 투표를 하지 않든지, 현정부에 찬성하든 찬성하지 않든지, 다 정치적인 행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호와 증인들이 ‘병역 거부’를 한 것에 대해 무조건 맹신적인 이단의 모습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비록 이단이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절대적 평화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신앙의 양심으로 병역을 거부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레데콥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은 그리스의 제자이며 동시에 한 나라의 시민이다. 병역거부는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거부했기에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교회와 국가, 혹은 종교와 정치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있다면 편협되게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시장일 때 기독교 모임에서 서울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던 사건이 생각났다. 얼마 전에는 기독교 조찬기도회에서 무릎을 꿇어 구설수에 올랐다. 그가 고백한 것과 보여준 모습은 기독교인으로서는 그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부의 수장이다. 그렇다면, 정부를 통해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해야지, 교회를 통해 그 일을 이루거나 반대로 정권으로 교회를 옹호하거나 복음을 전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레더콥의 입장임이 분명하다.

저자는 책 마지막에 정부와 정치에 대한 160개의 성서 말씀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한 명의 기독교인으로 좀 더 진지하게 성경말씀에 근거해 국가와 교회에 대해 연구하고 성찰해야 할 책임을 느낀다.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동시에 한 나라의 시민으로, 교회와 국가에 대해 올바로 생각하고 그 의무와 권리를 다해야 한다.

l******y 2011.05.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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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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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하고 정치하고 무슨 상관일까? 하는 호기심에 책을 들게 되었다. 우선 눈에 띄는 구절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이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p231) 라는 성경구절이다. 우선 사회와 연관 지었을 때 세금과 연관 지어서 생각하게 되고, 나도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을 때 이 말씀을 통해 결론을 지었던 적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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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하고 정치하고 무슨 상관일까? 하는 호기심에 책을 들게 되었다. 우선 눈에 띄는 구절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이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p231) 라는 성경구절이다. 우선 사회와 연관 지었을 때 세금과 연관 지어서 생각하게 되고, 나도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을 때 이 말씀을 통해 결론을 지었던 적이 있었다.

우선 저자는 개혁적인 메노나이트의 입장에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왔고, 그 결실로 이 책을 내 놓았다고 한다. 16세기 종교개혁기에 등장한 개신교의 종교 종파로서의 메노나이트 중에서도 개혁적인 부분을 주장하는 입장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기독교와 정치에 대한 연관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기독교 인들이 정치에 관여하고 있고, 저마다 자신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을 통해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인가? 무엇이 그른 것인가? 에 대해서 과연 기독교인들은 어떤 입장에 서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 보게 된다. 그런 고민을 가진 이들에게 함께 공감도 하고 토론도 하게 되는 책이 이 책인 것 같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 속에서 가지게 되는 신학적 관점이라 든지 성경이 말하는 지침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나에게도 생소하였던 메노나이트,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부는 무엇이며, 우리들이 어떠한 입장에서 나아가야 할 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어쩌면 많이 생소하고 낯설지만 한번쯤은 꼭 고민해 보고 짚고 나아가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그는 두 가지를 강조하였다. 토머스 무어가 말했던 “당신이 선한 일이 발생하도록 할 수 없다면, 최악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라”(p232) 내가 선 곳에서 내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고 좌절하거나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최악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고, 또 막아야 함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저마다의 사명을 주셨다. 저마다가 해야할 일을 맡겨 주셨다.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 자신이 무언가를 노력하고 하지 못하는 것을 해 내려고 하지 말자. 내가 선 그곳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가 점점 나빠지고, 어떤 해결점을 찾아가야 할 지 갈등구조 속에 있지만, 분명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중요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중요점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면 지키기 위해서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많은 숙제를 받은 기분이 든다.

s****8 2011.05.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