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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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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학교에 들어간 딸 아이가 있다는 황주환 선생님은 시골교사로 10여 년을 지내오셨습니다. 지나온 10년이란 세월이 무상하게도 그 세월이 지나와야 겨우 무언가를 깨달으셨다고 합니다. 그 깨달은 바를 이렇게 탄탄한 내공이 쌓인 글로 풀어놓으셨는데,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교육정책 입안자들, 대학당국과 대통령과 이 땅의 모든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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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학교에 들어간 딸 아이가 있다는 황주환 선생님은 시골교사로 10여 년을 지내오셨습니다. 지나온 10년이란 세월이 무상하게도 그 세월이 지나와야 겨우 무언가를 깨달으셨다고 합니다. 그 깨달은 바를 이렇게 탄탄한 내공이 쌓인 글로 풀어놓으셨는데,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교육정책 입안자들, 대학당국과 대통령과 이 땅의 모든 학부모들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감히 말합니다. 이 책을 읽고 바로 서평을 쓰는 것이 아니라서 황주환 선생님의 날카롭고 울림이 큰 직언을 대변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제 생각과 제 사상과 제 몸과 제 인생을 맴돌고 맴돌아서 나오는 한 말씀이기에 어쩌면 조용한 듯 하지만 더 큰 소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황 선생님은 감히 말씀하십니다. 우리나라에는 교육 문제는 없다고 말이지요. 우리나라에는 교육이 아니라 입시문제만 항상 불거져 나오고 정책이 바뀌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설왕설래하기도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하고도 불편한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고 말하길 꺼린다고도요. 그리고 감히 말씀하십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결코 교육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요. 우리나라에서의 교육이란 기득권자들의 수하를 만들어내는 공장에 다름이 아니기에 서민 즉, 피지배층의 생각까지 기득권자들의 논리로 무장시켜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언론에서는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교권이 상실되었다는 뉴스를 계속 내보내는데, 실은 그 조례가 있기 전부터 교권은 이미 상실되었고 학부모의 교사 드잡이는 항상 있어왔던 것이랍니다. 이전부터 있어왔던 교권 상실의 문제를 언론이 왜 문제를 삼느냐면 차후에 비정규직의 신분으로 기득권층의 노예가 될 대다수 청소년들의 생각을 짓누르기 위한 통제가 흐트러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랍니다. 두발 통제, 교복 통제, 체벌로 인한 신체의 억압 등을 통해 그 어떤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내면화시키기 위함이지요. 그런데 머리 모양도 자유화되고, 신체에 어떤 것으로도 억압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조금씩 꿈틀거릴 때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학원 강사입니다. 황 선생님만큼은 안 되지만 꽤 오랫동안 해왔지요. 그런 제게 황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 한 구절이 제 가슴에 박혀 버렸습니다. 교실은 굴종과 억압의 장소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비싼 돈을 받고 아이들이 지도해야 하는 사설 교육업체의 일원으로써, 받은 만큼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저로서는 아이들에게 얼마간의 자유를 억압하게 됩니다. 효율과 성과라는 기치 아래 아이들은 학원의 규칙에 따라 조용히 해야 하고, 그날의 성과를 보여줘야 하며, 기준치에 미달일 경우 그에 합당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황 선생님과는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 풍족함을 누리고 있는 아이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물질의 부족함 때문에 방황하는 아이들은 없습니다만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이들은 많습니다. 점심을 못 먹을 정도의 가난은 아니지만 소유의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져서 아이들끼리도 위화감을 많이 느끼기도 합니다. 물론 학원은 공교육이 아니기에 빈곤이나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가정이 깨어진 아이들이 많이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교육 문제의 근간에는 분배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황 선생님의 통찰은 어느 정도 느끼고 있는 바였습니다. 심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학업에 따라오려면 부지런히 노력해야 겨우 따라갈 아이를 보고 있으면 부모의 경제력을 가늠하게 되거든요. 그러니 시골은 얼마나 더 참담하겠습니까.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 논술을 잠깐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숱하게 들었던 말이 현상과 본질이었죠. 모든 현상에는 본질이 따로 숨겨져 있기에 겉에 있는 모습으로만 평가하지 말고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본질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함을 항상 강조하셨던 논술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황 선생님의 책을 보면서 그것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지배계급의 은밀한 의도대로 세상이 - 영화가, 드라마가, 광고가, 문학이, 뉴스가, 신문이, 방송이, 관련 법규가, 지식인들의 언행이 - 움직이고 있는데 그 밑에서 자신에게 치명적인 것을 모른 채로 멍청하게 주입하고만 있는 피지배계급인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선행을 베푸는 소수의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라고 나름 자위하며 결국 좋은 곳으로 변해갈 것이라고 막연히 낙관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아무도 나를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요. 아무도 자기보다 덜 가진 자를 위해 자기 소유를 기꺼이 내주지 않을 것을요. 안 보고 안 듣는다고 해서 그런 보기에 좋지 못한 일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우리의 모든 행위가 - 신문을 보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방송을 보는 모든 것이 - 전부 정치적이라는 것까지도요.

 

요즘 사람들은 노동자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하셨습니다. 계급이라는 말도 불편해한다고도요. 하지만 싫어한다고, 불편하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기득권자들은 가진 것 없는 우리가 그런 말을 안 하길 바랄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테니까요. 독일 군인들이 유대인들을 인종청소할 때 그들은 ‘학살’이니, ‘제거’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대신 ‘경로 이동’, ‘최종결과’라는 일상적인 말을 쓰길 좋아했답니다. 그것은 그들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불편한 양심의 가책을 모른 척 하기에 수월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실을 반영하는 정확한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무한 경쟁’을 강요하지만 실상 ‘완전경쟁’이 가능하지 않는 사회적 모순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병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은 유대인 학살의 전범인 아이히만을 재판하는 모습을 담은 철학 사상책입니다. 거기서 중간관리자였던 아이히만이 하는 말이 참 걸작입니다. 유대인을 학살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상관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주장했거든요. 그의 진술에 대해서 여러 심리학자들이 평가를 해본 결과, 그는 정신적으로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진실로 자신을 무죄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섭지 않습니까? 사람을 대량 학살해놓고서도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요. 한나 아렌트는 말합니다. 진정한 악은 선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생각 없음’이라고 말이지요. 상관의 명령에 대해 스스로 생각을 하지 않아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는 악까지 행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가 가난해서 점심을 거르는 상황에 놓여있지 않다고 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지 않기 때문에 더 생각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이히만처럼 악을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으니까요.

 

서북부 유럽에서는 육체노동자의 임금이 정신노동자의 임금과 같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머리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면 몸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야 먹고 싶을 때 통닭을 배달해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더러운 곳을 청소해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물건을 보내고 싶을 때 운반해주는 기사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임금의 형평성과 모든 교육비의 무료화와 의료비의 무료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서북부 유럽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모든 사람이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들처럼 복지국가가 되기 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군요. 상위 몇 %에 달하는 기득권자들은 복지국가가 어쩌면 공포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이제야 해봅니다. 그러니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 밥그릇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요. 우리 아이들을 현실에 찌들지 않게 할 방법을요. 우리가 우리 소리를 낼 방법을요. 모든 현상은 분명 어떤 본질을 품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거저 주지는 않습니다. 과거 민주화 항쟁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거 전태일이 분신을 하지 않았더라면 노동자들은 여전히 16시간씩 일하고도 풀빵 하나 사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고 거저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치르지 않았다면 다른 누군가는 눈물로, 핏방울로 치렀던 것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용산 대참사에도, 거대한 괴물 삼성에도, 이 땅의 모든 사립학교에도, 비리의 온상인 교장선임제에도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눈을 크게 뜨고 의심하며 봐야 할 것입니다. 황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알지 못했던 교사들의 일상이 보입니다. 교장선생님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비리가 많이 생길 수 있는 것인지, 왜 교육청에서는 교장선생님을 뽑을 때 교사나 학부모가 선출하게 하지 않는 것인지, 사람을 대체 가능한 자원으로만 보는 ‘교육인적자원부’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도 알 수가 있습니다. 더불어 시골 교사로 10년째 살아온 황 선생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세상을 보는 눈이 뜨이게 되셨는지 그에게 영향을 준 여러 권의 책도 알려주십니다. 한 번 뜬 눈은 다시 감을 수가 없습니다. 바보 같이 맹종하며 살았던 과거를 벗어버리고 이제는 평생 세상을 감시하며 이 세상을 조종하는 본질을 꿰뚫어내는 참된 시민으로 거듭나는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다 같이 동참합시다. 이 책은 한국시민이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되겠습니다. 별점은 백만 개를 드리고 싶습니다.

j*****3 2011.05.31.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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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교사의 우리 교육과 사회에 대한 간절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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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절 한 구절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시골 교사의 우리 교육과 사회에 대한 간절한 질문들이 담겨 있다. 특히 '자기 언어'로 질문한다는 것의 의미는 거듭거듭 되새겨진다.   그리고 세상의 변화란 단박에 몸을 뒤집듯 하는 것이 아니라, 사탕 한 알처럼 작은 마음들에서 비롯한다고 믿는 지은이의 말과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는 지은이의 노력들이 곳곳에 보인다.  흔히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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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구절 한 구절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시골 교사의 우리 교육과 사회에 대한 간절한 질문들이 담겨 있다. 특히 '자기 언어'로 질문한다는 것의 의미는 거듭거듭 되새겨진다.
  그리고 세상의 변화란 단박에 몸을 뒤집듯 하는 것이 아니라, 사탕 한 알처럼 작은 마음들에서 비롯한다고 믿는 지은이의 말과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는 지은이의 노력들이 곳곳에 보인다.
  흔히 우리는 '똥이 무서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자기 변명을 한다. 더러우면 치우려 하는 실천이 있어야 '세상은 조금씩 몸을 틀기 시작할 것'인데도 말이다.
  교육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는 질문들을 하고 있는 책이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우리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l*****n 2011.03.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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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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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황주환 선생님이 ‘학교’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도 일상적 이였다. 그런데 그 일상이, 나와 너무도 가까운 그 일상의 본질이, 내가 그동안 사용해온 ‘언어’와는 너무 달라 나를 불편하게 했다. 너무도 당연시 여겨 생각해본 적조차 없는 저자의 언어는 내 앞에서 분명 ‘춤추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언어'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과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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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황주환 선생님이 ‘학교’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도 일상적 이였다.

그런데 그 일상이, 나와 너무도 가까운 그 일상의 본질이, 내가 그동안 사용해온 ‘언어’와는 너무 달라 나를 불편하게 했다.

너무도 당연시 여겨 생각해본 적조차 없는 저자의 언어는 내 앞에서 분명 ‘춤추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언어'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과감하게 질문한다.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해 정치적 자살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조차 정치의 한 순간 이라는 걸, 우리 일상의 매 순간이 정치라는 걸 자각하고는 있는지,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성찰을 부재한 채로 또 한명의 ‘아히히만’이 되어 일상의 죄를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내면의 언어에서 위로를 구하며 또 한명의 ‘아큐'가 되어 가는 건 아닌지,

사회적, 구조적 모순을 외면한 채 개인차원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저자의 불편한 질문들이 다시 나를 향한 질문으로 돌아왔다.

공사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날, 에어컨 바람 가득한 사무실에서 쉬고 있는 직원을 바라보며, 자신이 지금 흘리는 땀방울은 못 배운 자신의 탓이라던 아저씨의 ‘언어’는 정말 옳은 것 이였나.

정치라는 것이 어떻게 되든 회사 봉급쟁이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정치 자체에 냉소를 띄던 직장 상사의 ‘언어’는 정말 옳은 것 이였나.

 

저자의 질문들이 나의 이성을 지나 감성에 다다랐을 때, 이미 나는 ‘변태’하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뱉어댄 정제된 말들은 부조리한 현실을 비껴가기 위한 언어의 위선일 뿐 이였고,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라고 즐겨 말하는 ‘사이비 지식인’과 다를 게 없었다.

 

책에서 인용되는 루쉰의 예언이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질문이 우리의 길을 만들 것이다.

 

저자의 불편한 질문을 받은 나, 당신, 그리고 우리.

이제는 우리가 세상에 질문할 차례다.

우리가 세상에 대한 질문의 끈을 놓지 않을 때,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p******w 2012.03.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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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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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즐겁고 재미있고 유익한것도 많지만 힘들고 슬프고 불편한 것들도 많다. 한 시골교사의 희망을 읽어내는 불편한 진실 이라는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때 학교안의 부조리와 불합리함을 이야기하는 수필집일까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펴고 읽어 가는 순간부터 함께 대화를 나누는듯한 동지애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저자의 직업은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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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즐겁고 재미있고 유익한것도 많지만 힘들고 슬프고 불편한 것들도 많다.

한 시골교사의 희망을 읽어내는 불편한 진실 이라는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때 학교안의 부조리와 불합리함을 이야기하는 수필집일까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펴고 읽어 가는 순간부터 함께 대화를 나누는듯한 동지애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저자의 직업은 교사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지고 싶은 직업군에 속하는 교사,

그는 왜 불편한 시각을 가지고 불편한 생각들과 불편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을까?

학교가 가지고 있는 사회성,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별개의 것이 아닌,

동질의 것임을 그 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이야기 해 나가고 있다.

 

통제하고 박제하듯 아이들을 정형화 시킬려고 하는 우리네 교육문제와 그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나아가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사회를 만드는 과정은 교육의 모순된 인식과 상호협력보다는

개개인의 순서경쟁이 우선이라고 믿는  교육과정의 필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에게 자율은 없고 오직 복종만이 미덕으로 분류되는 교칙,

학생들과 더불어 선생님들도 함께 통제 당하고 복종하기를 바라는 교육 시스템,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민주와 협의와 상생이 무엇인지,

부조리와 불합리한 것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한채,

쉬임없이 옆친구와 순위경쟁을 해야하고, 그래야만 잘했다 칭찬 받을 수 있는

1등만이 최고의 가치로 가르치는 그 교육의 현장은 사회와 다름하지 않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오직 복종에만 길들여지는 교육, 그렇게 배운대로 사회에서 그 행동들을 재생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불행이요 비록 불편하지만 그것이 진실임을 토로한다.

실제 학교를 억제하고 통제하고 그 학교 안에서 교실을 통제하는 실체,

부당함에 침묵하는 선생님, 다시 그렇게 침묵을 강요하는 교육속에서

그것은 곧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그렇게 만드는 사회의 틀을 고민해 볼 수 있는 교육은 요원한 것일까.

진짜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이웃과는 어떻게 지낼것인지 나의 안온함이

이웃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공동체의 책무란 무엇인지 교사들이 먼저 깨닫고

단 한번이라도 아이들에게 이야기할수 있는 교사들이 되기를 저자는 바란다.

그 바람은 곧 나의 바람이요, 많은 이들의 바램이기도 할 것이다.

 

책안에는 책이 있다.

저자를 변화시킨 책들과 세상을 비춰보게 했던 몇권의 책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독서를 통해 주류의식에 지배된 의식을 해방시켜야 함에도

때론 책에 의해 주류의식에 결박된 우리의 의식이 무의식안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 부당함을 알고는 있지만 그걸 말하지 않는것도 나의 자유"라고 말했던 어떤 선생님의 그런 의식은

다시 수 많은 학생들이 그런 의식을 물림받고 있지는 않을까.

한국사회는 많이 배울수록 염치를 모르는 사회가 되었다는 저자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며 행복했다.

펼쳤던 책에서 발견한 타인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써 내려간 아름답고 솔직하고

불편하지만 진실인 글들,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들 

개인의 결의가 사회에 미쳐야 한다는 저자 말에 동의하며..

 

 

v*****0 2011.06.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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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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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유들유들하게 살라는, 세상사는 법을 모른다는 말 참 많이 들을 것 같은 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바른 소리 잘하는 사람들이 흔히 듣는 말이 아니던가!! 책을 쓰는 사람도, 책을 읽는 사람도 누군가 자신의 생각과 함께하는 동지를 만나고 싶은 욕구해결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나의 마음을 제대로 찔러주고, 함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글동지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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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유들유들하게 살라는, 세상사는 법을 모른다는 말 참 많이 들을 것 같은 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바른 소리 잘하는 사람들이 흔히 듣는 말이 아니던가!!

책을 쓰는 사람도, 책을 읽는 사람도 누군가 자신의 생각과 함께하는 동지를 만나고 싶은
욕구해결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나의 마음을 제대로 찔러주고, 함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글동지를 만난 느낌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학교라는 사회집단 속에서 발견되는
우리 사회에 팽배해있는 문제점들을 콕콕 집어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저자가 말하는 학교 안의 불편한 진실들을 통해 우리 사회 전체의 썩어있는 부분들을

여과없이 단도직입적으로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제로섬게임이 이루어 지고 있는 '경쟁'중심의 학교 교육에서
윤리와 도덕 그리고 인성을 찾는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에는 교육이 아닌 오직 입시문제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론에서 오르내리는 고교평준화, 수능변별성과 내신등급의 반영비율 등
모든 문제는 "입시"를 중심으로 이해타산을 따질뿐

어떤 것이 진정 우리 교육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 있는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미친 경쟁중심 교육"에서 우리 아이들은 "함께 협력하고 공존하는 법"보다는

너를 이기고 밟고 올라서야 내가 눌리지 않는자는 "슬픈 생존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자기 뱃속 챙기기에 아무런 거리낌과 부끄러움이 없는 소위 사회 지도층들이

교사들이 말하는 이 경쟁교육에서 칭찬받으며 좋은 성적을 가진 자들이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저자는 권고한다.

 

얼마나 배웠느냐, 어떻게 배웠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배웠느냐"이다.

학벌사회라는 고질적인 병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무엇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성공'인지에 대한 성찰없이

우리는 입시경쟁에서 내가 혹은 우리의 아이가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달음질친다.

이제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은 듣기 어렵다. 있는 집 자식일수록 더 많은 교육혜택을 받고,
학벌사회에서 우위를 점하며 다시 그 모든 것들이 대를 이어 내려간다.  

저자가 말하는 조선시대 몇몇 가문에 의해 벼슬등용으로 치뤄지던 과거제의 현대판이

오늘의 우리교육의 모습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저자가 고발하는 학교의 불편한 진실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거짓공약을 내세우는 학생회장 후보자들과 자신의 투표가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사실에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아이들에게 학생회장선거는 "민주주의의 무력함"을 배우게 한다.

총학생회장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배경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당선이후의
선물공세라는 "묵시적 규정"에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혹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체벌금지를 교권의 상실이라는 측면으로 보도하는 언론플레이 속에서 교사 및 학생이 추구해야하는
진정한 권리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기름을 절약하자'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사들 중에는
학교 난방비로 수천만원의 예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이들은 기름을 절약해야하고 추위를 견뎌야하는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저 학교의 모순을 묵인하며 따르고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야기 속에서 얘기하는

악은 성실한 일상의 모습으로도 행해진다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것에 대해 공감하며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호소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다. 바로 "질문하자!!"라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네오"처럼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빨간약"을 선택하고,

'성실한 근로자'라는 그럴싸한 정치적 프로파간다(propagande)에 현혹되어
내게도 겨우어질 칼끝을 보지 못하고
노동자의 고통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아큐의 모습이 아닌지 반성하고,

조중동 언론플레이에 휘말리지 않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문제의 전체사진을 들여다볼 수 있고,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개인의 배신과 비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회계조작을 조장한 "삼성"에 우리의 분노의 화살을 쏠줄 아는

교사들이 되어야하고 또 그런 아이들을 사회속으로 내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는 가난한 자들은 모두 게으르기 때문이라는 말이 왜 끝없이 유통되는지,

누구나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교사의 가르침이 타당한지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하며,

교사의 언행은 언제나 올바르기만 한 것인지 또 교사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무례하기만 한 것인지

다시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p204)고 "질문하는 사회의 첫걸음"을 함께하자고 설득하고 있다.

그리고  "한때 공부 못한 것이 굴종의 삶을 강요당할 이유가 되지는 않으며, 

한때 공부 잘한 것이 이웃을 함부로 대할 권리는 아니라고,

공부 못하고 반듯하지 못하더라고 '틀린 것'이 아니기에 
결코 자신을 스스로 멸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p258-259)

말해줄 수 있는 교사가 되지고 외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병들어도 굴러갈 수 있는건
이렇게 질문하고 우리를 각성하게 하는 사람들의 외침이 있어서일 것이다.

묵비권을 행사하며 무던하게 세상을 살아하는 지혜로운(?) 사람들도 물론 있다.

그러나 지금껏 역사는 침묵하는 자들에 의해서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 아니라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또 역사는 그들을 기억한다.

책을 덮으며 나는 저자의 이 외침이 잔잔한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그 변화의 한복판에서 질문하기의 작은 실천을 통해 함께 동행할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다음 대선의 주요 이슈는 "교육"이 될 것이라 얘기한다.

멋진 교육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고 또 실천할 수 있는 지도자가 선출되었으면 좋겠고,

또 우리들 역시 이제는 깨어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목소리를 내고 질문하는
진정한 시민정신이 뿌리내려졌으면 한다.

"교육"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우리사회 곳곳에 내재하고 있는 부정부패들을 하나씩 뽑아나갈 수 있는

전반적인 개혁의 바람으로 이어지기를 바래본다.

t******0 2011.06.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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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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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골교사의 희망을 읽어내는 불편한 진실...   그 불편한 진실이 무얼까 궁금해 읽게 된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 왜? 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그 물음에 답 할 수가 없어 때로는 못 들은 척, 때로는 질문을 못하게 유도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왜? 라는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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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골교사의 희망을 읽어내는 불편한 진실...

 

그 불편한 진실이 무얼까 궁금해 읽게 된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 왜? 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그 물음에 답 할 수가 없어 때로는 못 들은 척, 때로는 질문을 못하게 유도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왜? 라는 물음이 잦아 들었을 때 생각해 보니..

아이의 호기심을 내가 꺾어 버린게 아닌가 라는 의문이 생겼다.

 

학교를 다닐 적 기억을 더듬어 가 보니 정말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따랐던 거 같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선생님이라는 권력앞에 아무말도 못했던 것 같다.

나 뿐만이 아니구나...

 

책을 읽는 동안 작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이분 도대체 어떤 분일까?

 

초등학교 시절 젊은 담임선생님은 전교조 가입원이었다는 이유로 상사직급 선생님의 눈 밖에 났단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전교조에 가입을 하고도 애써 안 그런척 하는 분들이 많았다.

 

참된 교육을 실현하고자 했던 그 분들로 기억을 하는데.. .

 

이 분이 쏟아내는 언어들은 정말 솔직했다. 그래서 걱정스러웠다. 주변의 교사들, 교장들, 교육감들...

그 분들의 눈앳가시 정도에서 지금은 한층 더 교사라는 자리에서 버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이 제일 위험한 것이라고 하지만..

여럿이 하는 일에 굳이 모난 필요는 없단 생각으로 둥글게 둥글게 살자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내 아이들이 다닐 학교의 모습이란 생각에 온 몸에 짜릿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정말 이런 학교에 내 아이들을 보내야 하나?

내 아이를 이런 교육을 받게 해야 하나?

온갖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럴바엔 차라리 이민을 가버릴까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아이가 다닐 학교, 내 아이가 받을 교육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학교는 오고 싶은 곳인가?", "내게 학교란 어떤 곳인가?"

 

학창시절 내게 학교는 어떤 곳이었던가 생각을 했다. 유쾌한 기억보단 아픈 기억이 많았다.

존경할 수 없는 선생님들에 대한 실망이 가장 크게 다가와 맘 한 켠이 아리다.

 

학생이란 1년 간 내게 찾아 온 손님이다. 학부모도 당연히 그러하다.

학부모가 손님의 마음으로 학교를 방문하는 것처럼, 교사도 학부모를 손님으로 맞이하면

그것으로 교육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교사도 서비스직이고, 모든 선생님들이 저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정말 학교 폭력은 없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려서 될 아이라면 대화로도 가능한 아이들이었고 또 기다리면 되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대화로 되지 않 아이라면 때려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 문장은 아이를 기르는 입장에서 마음에 새겨야 할 문구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왜 비판하지 않고 맹목적인가?

많이 읽히는 책일수록 비판도 풍성해야 하고, 그 비판도 자기의 양식이 되는 것이다.

많이 읽히는 책이 꼭 좋은 책은 아니지만, 비판 없는 독서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지금껏 내가 해 온 독서는 정말 위험했구나.

내 아이에게만큼은 올바른 독서지도를 해야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독서 지도사 과정을 들었을 때에도 들었던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책에서 보게 되니 내 스스로에게 경각심이 되는 거 같았다.

 

익숙하게 여겼던 것들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다시 의심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오직 지시받고 주입받고 동원된 언어에 충실할수록 '나'는 타인의 언어를 갖게 될 뿐이다.

 

이 분은 김제동씨보다 더 위험하다!!

s*******h 2011.06.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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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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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골교사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희망의 노래 대한민국에서 교육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왔고 지금도 그 괴롭힘은 집단 따돌림을 넘어선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는 학생을 믿지 못하고 학생은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는 불신의 관계로 변질되었고, 공교육은 사교육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었으며, 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하루가 멀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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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골교사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희망의 노래

대한민국에서 교육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왔고 지금도 그 괴롭힘은 집단 따돌림을 넘어선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는 학생을 믿지 못하고 학생은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는 불신의 관계로 변질되었고, 공교육은 사교육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었으며, 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공교육의 부실을 성토하면서 제대로 된 교원 평가제를 확대 실시하라면서 연일 전교조를 압박하고 있다. 거기에 학교에서의 체벌금지로 인한 부작용이 학교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 부작용은 썩을대로 썩은 고름이 되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교육계가 이리 됐는데도 정부의 교육에 대한 눈높이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교육제도에 대해서 누군가가 과감하게 메스로 썩은 부분을 도려내지 않는 한 대한민국에서 참다운 교육을 바란다는 것은 허황된 꿈이 될지도 모르겠다.

 

여기 자신이 지극히 편향적이고 중립을 믿지도 않으며,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불려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 시골의 한 교사가 있다. 열린 공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지만 학교는 굴종과 억압의 공간으로 교사와 학생을 옥죄고 있고, 이런 폐쇄적인 공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권태와 환멸을 느낀 사람, 그렇지만 ‘위기가 곧 기회’인 것처럼 참다운 교육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평범한 시골교사 황주환, 그리고 그가 교사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느꼈던 불편한 진실들을 이 책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에서 외치고 있다.

 

사랑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렇게 자존감을 가진 사람만이 굴종하지 않고 불의에도 저항할 수 있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세상의 변화란 단박에 몸을 뒤집듯 하는 것이 아니라, 사탕 한 알처럼 작은 마음들에서 비롯한다고 믿게 되었다.

아주 작은 것의 시작에서, 세상은 몸을 틀기 시작한다고....(115~116쪽)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존중을 받고 서로를 사랑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든 일이 되어버린 걸까? 아이들이 선생님을 믿고 따르며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면서 열린 공간에서 열린 교육을 한다는 건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공교육이 무너지고 선생님과 학생들의 신뢰와 꿈, 희망이 무너진 학교, 그리고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누구란 말인가?

교육의 본질을 외면한 채 과정보다는 결과에만 연연한 나머지 결과주의와 성과주의에 급급했던 정부도 문제거니와 학생들과 학부모의 고민을 외면하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빴던 교사들도 한몫했을 터이고, 원하는 대학 합격이라는 목표를 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에만 열중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오늘날 무너져내린 교육에 대한 공동정범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골교사의 글이 불신과 갈등, 이기주의로 가득찬 우리 교육계를 얼마나 흔들지는 미지수이지만 대한민국의 교육은 변해야 하고,  변해야만 한다. 그 변화의 중심엔 바로 내가 있어야 하며, 나로 인한 변화가 곧 우리들의 변화로, 그래서 결국엔 대한민국의 변화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며, 행복하고 희망찬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부터의 행복과 희망이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황주환님이 불편한 시선으로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되돌아옴과 동시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음을 일깨우는 새벽 종소리와도 같은 의미가 될 것이며, 그가 우리에게 소개한 책들 속에서 우리의 현 자화상을 다시 한 번 되돌아봄과 동시에 새로운 희망가를 부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n*******o 2011.06.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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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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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어쩔 수 없이 순종해야했던 학창 시절에나만의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면,대학에 가는 것 자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어떤 학문을 계속하고 그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더라면,나의 미래는 조금 더 달라졌을까?그때는 그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으면 훌륭한 사람이 그냥 거저 되는 줄 알았다.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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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이 순종해야했던 학창 시절에
나만의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대학에 가는 것 자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학문을 계속하고 그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더라면,
나의 미래는 조금 더 달라졌을까?

그때는 그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으면 훌륭한 사람이 그냥 거저 되는 줄 알았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그저 열심히만 살면 성공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훌륭한 사람’에 대한 환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생은 어느 목표의 달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을 읽는 내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교차하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학창 시절, 그때의 현실이 그저 못마땅해도 마땅히 저항할 수 없는, 그저 그렇게 커가며 졸업하고 어른이 되었다.
이제야 그때의 불합리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이미 부모가 된 내 또래의 사람들은
그 당시의 기억들을 잊고 
더 심한 경쟁 속으로 아이들을 몰아넣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 다 필요없으니 공부나 하라고 하면서~
나 또한 똑같은 상황에 처하면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도 깨달으면서~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별 다를 것 없는 불합리한 현실에 순응하면서 말이다.

“나를 바꿔준 책들에 대하여”와 “세상을 비춰 보게 했던 책들에 대하여”를 읽으며
독서의 시야를 넓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나는 불편한 진실을 대하는 것이 서툴다.
어쩌면 나를 송두리째 바꿀 지도 모를 진실을 알게 될 독서일지라도
나는 애써 진실을 외면하며 현실과 타협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룰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작은 발걸음을 어쩌면 나는 이 책으로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저자가 인용한 노신의 글귀

 



s*****a 2011.05.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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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그렇기에 꿈틀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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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먹먹한 가슴으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학교와 한국사회를 연결한 이야기가 너무도 불편하기에 더 꿈틀댔다.과연 나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마주쳤을 때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인가, 회피가아닌 성찰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부끄러웠다.존중과 사랑이 다르지않다는,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질문하자는 저자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돈다.이 책은 아주 작은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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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먹먹한 가슴으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학교와 한국사회를 연결한 이야기가 너무도 불편하기에 더 꿈틀댔다.
과연 나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마주쳤을 때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인가, 회피가아닌 성찰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부끄러웠다.
존중과 사랑이 다르지않다는,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질문하자는 저자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돈다.
이 책은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세상이 변화한다는 믿음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앞으로 나 자신이 세상 속에서 처절하게 발버둥 칠 때, 이 책이 내게 큰 용기가 될 것같다.



h*****1 2011.03.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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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불편하고 정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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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육이론가나 학자도 아니고 신실한 교사도 못 된다. 그래서 사회를 분석하고 교육모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내 능력을 벗어난다. 그러나 학교가 얼마나 굴종과 억압의 공간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리고 그 학교가 바로 한국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에 절망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 굴종과 억압을 원한 것은 아니라지만 살펴보면 우리가 초래한 것이듯, 한국사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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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육이론가나 학자도 아니고 신실한 교사도 못 된다. 그래서 사회를 분석하고 교육모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내 능력을 벗어난다. 그러나 학교가 얼마나 굴종과 억압의 공간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리고 그 학교가 바로 한국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에 절망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 굴종과 억압을 원한 것은 아니라지만 살펴보면 우리가 초래한 것이듯, 한국사회의 모순 역시 대중 스스로가 만든 것임을 말하고 싶었다. 그 중심에 교육이 있어왔다. 이 책은 이 사태를 늦게 깨달은 현장교사의 고백이기도 하다."

학교를 통해 세상을, 세상을 통해 학교를 보다

   
한국사회에서 교육문제는 가장 많이 이야기되지만 가장 해결책이 멀다. 그러한 답답함 때문에 외국의 뛰어난 교육사례들을 소개하여 돌파구를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그 답답함을 떨치기 힘들고 첩첩산중 오리무중일 뿐이다. 저자 황주환은 일선 교사로서 이러한 교육현실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온몸으로 느꼈다.

스스로를 ‘신실한 교사’도 못 되고, 교육모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다고 말하지만, 학교가 얼마나 굴종과 억압의 공간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 학교가 바로 한국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에 절망한다. 한국사회의 여러 모순은 대중 스스로가 만든 것임을 말하고 싶었고, 그 중심에 교육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 책은 학교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겪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말하고 있으며, 저자가 교사가 된 후, 한국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이 변하게 되었는가를 말한 현장교사의 고백이다.

저자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점차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하는데, 그의 학생들은 단순한 가르침의 대상에 멈추지 않고 저자를 일깨우는 존재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썽 많고 반항하고 어두운 아이들이지만 결코 따듯한 연민을 놓지 않는 저자의 시선이 엿보인다. 더욱 큰 문제는 학생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제대로 성장시켜주어야 할 학교라는 공간이 너무도 많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가난한 아이들을 향한 배려 없는 시선과 끊임없이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든가 학교는 즐겁고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라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저자는 비록 이처럼 어두운 현실을 이야기하지만 결코 희망의 끈과 따듯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저자가 인용한 노신의 글귀는 인상적이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질문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답을 찾게 한다

저자는 자신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향적이며, 중립을 믿지도 않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불려지는 것도 바라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지배의 논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름답고 말랑말랑한 이야기 속에서 은폐되어버린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불편한 말들로 춤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껄끄러운 독자가 있다면, 자신의 글이 일정 부분 성공한 것으로 여기겠다는 것이다. “불편하지 않은 독서란 무의미하고, 불편한 질문을 시작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수히 많다. 병의 치유는 병의 자각에서 시작되기에.”

따라서 저자는 끊임없이 질문할 것을 요구한다. 제대로 된 질문은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질문이 우리의 길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질문하는 태도와 방법을 잃어버렸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마냥 긍정하거나 뭐 별것 있어 하면서 냉소적 태도로 일관할 때가 많다.

저자는 굳어버린 비판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국 우리 교육이 갖는 최대의 문제점이기도 한데, 많은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기에 급급해 그것을 제대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훈련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두발문제와 관련해 학생들과 토론하는 장면에서 저자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주문한다. 자칫 인정에 묻혀 불편함을 애써 피하기 위해 지나치는 많은 것들이 결국은 이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구축된다는 점을 저자는 내내 강조하는 것이다.

결국 비판의식의 함양은 합리적 소통능력을 지닌 ‘민주시민’의 소양과도 깊은 관련성을 갖게 된다. 저자의 관점에서 교육이란 그런 능력을 지닌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며, 그러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수많은 모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풍성하게 바라보게 하고, 나와 세상을 바꾸는 ‘불온한 독서’

이 책에 수록된 황주환의 독서노트는 우리가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고, 그 책을 통해 어떻게 생각하고 변화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범들이다. “나를 바꿔준 책들에 대하여”에는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세상을 비춰 보게 했던 책들에 대하여”에는 루쉰의 <아큐정전>, 강명관의 <열녀의 탄생>,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한 독서노트가 실려 있다.

이 독서노트들은 하나의 서평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책 자체의 텍스트를 넘어 저자 자신의 삶과 사유라는 컨텍스트로 이어짐으로써, 하나의 책들을 더욱 깊고도 풍성하게 읽어내게 되고, 전태일, 아이히만, 아큐 등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해준다.

저자의 독서노트는 텍스트 자체를 소화함과 동시에 서평을 기반으로 한 하나의 시론으로 발전하는 성격을 갖는데, 그러한 이중적 과정 속에서 인식의 폭과 비판의식을 향상시켜준다. 물론 모든 텍스트는 그것을 읽어내는 독자의 몫이지만, 어떤 공감을 충분히 이끌어냄으써 편향성을 넘어 균형감 있는 시각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저자의 글이 공허하지 않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관념보다는 삶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폭넓은 사유와 삶을 기반으로 한 이러한 독서노트는 저자가 종종 쓰기도 했던 ‘텅 빈 기호’를 충만하게 채우는 일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시골교사 황주환의 글은 세상을 둘러싼 두터운 벽을 흔드는 작은 외침이며,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절망을 넘어 아름다운 삶을 갈망하고 되뇌이게 하는 희망가다. 삶으로 써낸 일선 교사의 자기고백적 글은 모순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많은 것들을 냉철하게 돌아보게 하며, 그 모순을 풀어가기 위해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지를 절실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황주환 씨는 1966년 경북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지만 개인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어수선하게 보냈다. 1994년부터 몇몇 학교를 거쳐 지금은 작은 읍의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가르친다’는 행위를 통해 세상을 응시하다가 딸을 낳고는, 한국사회에 대한 고민이 더해졌다. 이제, 모두 제 몫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지금보다는 더 아름다운 세상을 희망한다. 그래서 이 봄날, 나도 꽃피고 싶어 환장한 남자로 살고 있다.

l********r 2011.03.2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