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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깨트리자..
"슬픔을 깨트리자.." 내용보기
우린 결국 아픈 만큼 사는 거고... ‘만물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다.’ 신은 그저 보이는 눈만으로는 세상을 다 알 수 없게 그 한 꺼풀을 입혔으니 우리 고통으로 아픔으로  슬픔으로  눈물을 적셔 그 한 꺼풀을 벗겨내야 한다. 그래야 그 가리어진 세상을 다 볼 수가 있다! 그렇게 그의 시는 잠시 우리에게 영혼의 안경을 씌워 신의 뜻이 숨겨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
"슬픔을 깨트리자.." 내용보기

우린 결국 아픈 만큼 사는 거고...

‘만물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다.’

신은 그저 보이는 눈만으로는 세상을 다 알 수 없게

그 한 꺼풀을 입혔으니

우리 고통으로

아픔으로 

슬픔으로 

눈물을 적셔

그 한 꺼풀을 벗겨내야 한다.

그래야 그 가리어진 세상을 다 볼 수가 있다!

그렇게 그의 시는 잠시 우리에게 영혼의 안경을 씌워

신의 뜻이 숨겨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삶의 바닥을 보게 하고

미처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하고

차마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끼게 한다. 

요즘 시가 왜 목마른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지 못하고

배고픈 그들의 영혼을 채워주지 못하는가?

왜 상처받은 그들 가슴과 함께 부딪치며

그들 가슴을 열어 그 가슴과 함께 울며

한 맺힌 그들 영혼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가?

요즘 시가 왜 그들 가슴을 적시며 가슴노래가 되지 못한 채

죽은 막대기처럼 사람들 그늘에 버려져 있는 것일까?

그건 요즘 시인들은 자기만의 갑옷을 입고,

자기만의 창고에 갇힌 언어로 뭇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 요즘 사람들은 시를 봐도 설렐  줄 모르고 떨릴 줄 모르고

신음할 줄 모른다.

 그러나 여기 그의 가슴을 다 열어젖혀 가난한 영혼들에게 슬픔과 눈물을 뿌리며

그들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한바탕 함께 울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그와 함께 실컷 울고 나면

어둡던 가슴은 환해진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치유의 노래

눈물을 닦아주는 치유의 노래인가보다.

 그는 외친다.

 살면서 참 아플 때가 많다!

그야말로 견디기 힘든 아픔이 찾아올 때,

살이 다 끊어져 나가는 것같이, 온 몸이 뒤틀리는

그런 아픔이 찾아올 때는 어찌 해야 할 것인가?

그는 말한다.

아픔을 피해 달아나려 하지마라!

고통아 제발 나에게 다가오지마라! 가 아니다.

아픔은 그냥 아픔이 아니니

아픔은 아픔 없이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깊은 바닥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니,

“아픔은 삶이 졸고 있을 때 깨어있으라 하며 하늘이 찌르는 침!”

아픔은 자신이 병들어 있을 때 스스로 자신이 자신에게 내어주는 쓰디 쓴 약!

그 아픔을 온 몸 온 세포가 들이킬 때까지 들이키는 것이다.

그 아픔을 흠뻑 쪼이는 것이다.

그 다음에 찾아오는 평화, 그야말로 그것은 환상의 엑스터시다

그보다 더 달콤한 평화가 어디 있겠는가!

이 시는 우리의 아픈 가슴에 하늘의 침을 찌르며

그 생명수의 약을 흠뻑 들이마시게 한다. 

아픔의 고통은 나에게 고귀한 영혼을 가르쳐주었으니

내가 헤쳐나간 그 아픔이 그 고통이 나를 구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그 고통이 나를 해하고 죽일 것인즉                

그의 시는

그 생명수의 약을 흠뻑 들이마시게 한다. 

슬플 때도 마찬가지다. 

슬플 땐 그 슬픔의 비를 흠뻑 맞는 것이다

그 슬픔을 피해 그늘로 가는 것이 아니다

슬픔을 피하려고 하면 그 슬픔은 한없이 나를 쫓아온다.

슬픔에 그저 주저앉는 게 아니라

그 슬픔으로 한바탕 목욕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슬픔아 일어서라! 

슬픔아 일어서라!

스스로 슬픔을 추스르고 일으키는 것이다.

슬픔은 그냥 슬픔이 아니다.

슬픔의 주춧돌 없이

고통의 주춧돌 없이 어찌 거기 기쁨의 집이 지어질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슬픔은 우리에게 고귀한 영혼 노래를 가르쳐준다.

외로울 때도 마찬가지

외로움의 그물망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게 아니다.

“외롭다 

외롭다 하여

거기 자꾸 살붙이려 하는 게 아니다.

외롭다는 건 살아있다는 거고

외롭기에 사람인 거다

어차피 세상은 외로움

외로움은 그냥 외로움이 아니다

외로움은 들을 수 있는

귀 하나 더 주고

볼 수 있는 눈 하나 더 준다

차라리 

외로움에 날개를 달아

춤추고 노래하게 하면 어떻겠는가?

그 외로움, 하늘 날며 춤추게 하자!

외로움에 구멍 뚫린 곳은 오직 하늘로뿐“

그러기에 외로움의 날개를 달고

저 너머로 나는 것이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결국 우린

아픈 만큼 사는 거고

슬픈 만큼 사는 거고

외로운 만큼 사는 거다

또한 세상은 아픈 만큼 아름답고

삶은 슬픈 만큼 아름답고

삶은 외로운 만큼 아름다운 거다.

그래서 삶은 모두가 아름다운 거다!

그래 죽음이 아름답기까지

우리의 삶이 아름다워야 한다.

우리가 삶에 허 뚱 거리고 외로움에 비틀거릴 때

그는 노래한다.

아픔이 없는

슬픔이 없는

외로움이 없는

고통이 없는 만족은 바로 죽음이니 

우리의 영혼 가난해야한다!

하늘 가득 채울 수 있을 만큼 가난해야한다.

만족하는 영혼 이미 그것은 죽음인 즉

영혼이 가난하기에 그 가난을 채우는 과정

그것이 결국 삶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겠는가!

그가 가슴에 담고 즐겨 부르는 한 구절을 다시 생각해본다.

‘삶은 그저 잠시 여행일 뿐

여긴 내가 영원히 쉴 곳은 되지 못하니‘

‘왔던 여행마치고 본디 고향에 돌아가면

그땐 하늘이 칭찬할 것입니다

이 땅에선 좀 서러웠고 고통스러웠을지라도

하늘이 그들을 상 줄 것입니다

그들이 참으로 거울을 잘 닦았다고

잘 살았다고‘

 

r******5 2011.04.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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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바닷가 시인의 눈물을 들려주마
"어느 바닷가 시인의 눈물을 들려주마" 내용보기
치유의 노래라 했다. 슬픔을 깨트린 눈물이라 했다. 한동안 유행했던 명상서적인가 해서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진한 봄빛 표지가 눈길을 잡는다. 시인도 전혀 생소해서 책 구석구석을 살폈는데 잘 모르겠다. 불친절하게도 그의 이력은 없었다. 전에 어떤 시를 썼고 어느 문학지를 통해 등단했으며, 지금 뭐 하는 사람인지. 신비주의 마케팅인가? 그렇다고 설명이 전혀 없는
"어느 바닷가 시인의 눈물을 들려주마" 내용보기

치유의 노래라 했다. 슬픔을 깨트린 눈물이라 했다.

한동안 유행했던 명상서적인가 해서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진한 봄빛 표지가 눈길을 잡는다.

시인도 전혀 생소해서 책 구석구석을 살폈는데 잘 모르겠다.

불친절하게도 그의 이력은 없었다.

전에 어떤 시를 썼고 어느 문학지를 통해 등단했으며, 지금 뭐 하는 사람인지.

신비주의 마케팅인가?

그렇다고 설명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그의 삶은 늘 고단하였고

하늘은 커다란 가시로 아픈 곳을 계속 찔러댔고

매일 죽고 싶었고 구원받고 싶었고

해서

‘나는 누구인가?’를 거듭 물었지만

올려다본 하늘에선 비의 울음으로만 대답할 뿐이었단다.

결국 얻은 결론은,

삶은 애시당초 방황이요 단지 지나가는 여행일 뿐이라 여기며

젖에 굶주린 어린아이처럼 하늘 굶주린 영혼으로 글을 쓰지만

여전히 이 땅에서 쉴 집을 찾지는 못한 채

서쪽 바다가 보이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노래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했다.

 

전에 정일근의 <바다가 보이는 교실> 연작을 구절구절 공감하며 읽은 적이 있어서

시에 대한 기대감과 실제 바닷가 학교에 가보고 싶다는 나의 소박한 로망이 이 책을 계속 붙들게 했나 보다.

그리곤 이렇게 서평까지.......

 

시인은 아마도 나이 지긋한 선생님인 듯하다.

그런데 그는 울보시인이다.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책장을 다 넘겼을 때 알았지만

그의 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눈물이었고 첫 시의 제목도 눈물이다.

 

울음,

하늘이 땅에 생명을 내리며

뿜어낸 첫 숨결!

세상과 나눈 첫 인사!

그것은 웃음보다는 울음이었습니다.

<이하 생략>

 

그에게 눈물은 신비의 샘물이다. 증오에 항복하여 용서하게 하는 매듭이요,

쩍쩍 갈라진 마음의 틈을 비로 채우는 사랑이며, 나를 비추고 세상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기도 하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큰 고통과 고독에 있게 했을까? 하고 연민하는 순간 나는 캄캄한 장님이 된다. 눈물을 모르는 눈으로는 세상을 보지 못한다고 그가 말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눈물은 단지 고통의 상징이 아니며 오히려 구원의 도구요 하늘과 나무와 풀벌레와 소통하는 언어이다. 그런 그에게 눈물을 선사한 이는 누구인가?

 

내가 나무를 볼 수 있지만

나무는 나를 볼 수 없고

느낄 수만 있는 것처럼,

당신은 나를 보지만

나는 당신을 볼 수 없고

다만 당신을 느낄 수만 있으니

나는 당신한테 그런 나무 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보고 싶은 당신> 1연

 

하느님이다. 기독교인이라 말한 적 없으나 그의 영혼과 언어 안엔 하느님으로 가득하다. 질투하는 유일신이 아니라 예수와 싯달타를 동시에 품고 그들을 구원하는 하느님이며 작은 씨앗부터 큰 나무의 호흡에 함께 호흡하는 하느님이다.

그의 삶이 고독할 때마다 하늘을 바라고 그 큰 하늘의 품에 자신을 다 맡겨버리고 나면 비로소 작아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더 낮아져 온 우주의 삼라만상과 스스로 하나가 된다. 하느님과 끈으로 연결되는 순간이다.

 

아, 이제 알았습니다.

내가 작아지면

들에 핀 풀잎 그 녹색도 더 짙어지고

내가 낮아지면 꽃들은 높아져

들에 핀 꽃 한 송이

그것도 더 아름다워지고

길거리에 누워 있는 걸인 한 사람

그 사람도 참 귀한 사람 된다는 것을

<나는 작은 사람> 5연

 

그러니 만인이 겪는 외로움에 대해서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차라리 외로움에 날개를 달아

춤추고 노래하게 하면 어떻겠는가?

그 외로움, 하늘 날며 춤추게 하자

외로움에 구멍 뚫린 곳은

오직 하늘로 뿐!

하늘로 밖에 없다.

<그대 외로운가?> 7연

 

아무리 고독과 상처가 심하다 해도 삶은 어떤 성취도 목적지도 아니기 때문에 괜찮단다.

그것은 다만 길일 뿐 그러기에 죽음까지도 성스럽게 바라보고 두려워하거나 발버둥치지 말자고 제안한다.

 

꼭 찾아오는 죽음,

왜 아닌 체, 모른 체 피하려고만 합니까?

반드시 오는 죽음, 두려워 말고

성스러움으로 맞이합시다.

그것이 정말 지혜롭고 옳은 길입니다

 

죽음을 아는 우리

이미 죽어, 아름다운 삶 삽시다.

<삶과 죽음은> 일부

 

이쯤 되면 나는 고개를 젓는다. 시인처럼 도가 높으면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정말 낮아지면 죽음도 저 사라지는 노을처럼, 들꽃들처럼 이름 없는 벌레들처럼 가고 오는 일에 연연하지 않고 삶의 과정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삶이 아름다운 소풍이었으므로 나 이제 하늘로 돌아가겠다고 월급 삼만 원짜리 천상병 시인도 고백했었는데 이 두 시인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책장을 덮었을 때, tv에선 일본 쓰나미 피해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방사능유출 소식이 한창이다. 그 와중에 매주 목요집회를 하던 정신대할머니들이 피해배상요구를 위한 집회를 잠정 중단하고 피해를 당한 일본이웃들과 아픔을 나누는 내용으로 집회를 변경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서관덕 시인이 이 뉴스를 접했다면 또 한 번 뜨거운 눈물을 흘렸으리라. 남들이 보든 말든. 시인이 흘려놓은 눈물의 세상은 참 아름답다.

c*****s 2011.03.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