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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교보문고를 돌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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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님이란 분은 사실 잘 모릅니다. 울지마 톤즈가 하도 유명하기에 TV에서 본 것뿐입니다. 대단하신 분이더군요. 저는 종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교인 것이 아니라 종교를 싫어하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죠. 니체가 말했나요? 기독교는 노예를 만드는 종교라고. 그런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태석 신부 이야기를 보니 종교를 갖고 생활하는 것도 좋은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9살이라 이 이야기를 이해할지는 모르지만 다큐멘터리를 보고 책을 사주었습니다. 아이에게 다큐멘터리를 보게 하는 것은 조금 힘들었으니까요. 책은 다큐멘터리처럼 무겁지 않고, 가벼운 문체와 예쁜 그림들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보기에 적당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조금 더 있어서, 어른이 봐도 좋은 부분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종교인과 그들의 거룩한 임무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아이도 이런 부분을 느꼈으면 좋겠지만, 아이의 마음은 제가 알 수 없죠. 그저 바람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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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 수단의 자랑인 톤즈 브라스 밴드가 마을을 행진했다. 선두에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한 남자… 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딩카족이다.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의 오랜 내전 속에서 그들의 삶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졌다. 목숨을 걸고 가족과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딩카족.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종족 딩카족에게 눈물은 가장 큰 수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울고 말았다. 모든 것이 메마른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故 이태석 신부다.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던 쫄리 신부님, 이태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온몸 다해 그들을 사랑했던 헌신적인 그의 삶이 스크린에서 펼쳐졌다.
이태석 신부님이 어떤 분이신지 몰랐다. TV로도 반영이 되었다고 하는데, TV가 없는 관계로 드라마나, 영화를 즐기지 않는 이유도 있었지만, 책을 읽고 있으니, <울지마 톤즈>를 본 사람들이 꽤나 되는지, 한마디씩 던진다. 이런 분이 돌아가셔서 가슴 아프다고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난후에, 쫄리 신부님. 이요셉 신부님이 궁금했다. 그래서 찾아서 보고는 아이들과 함께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눈물 바람을 일으켰다. 영화도 영화이지만, 신부님이 쓰신 책<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도 궁금하다. 내게는 말이다. 하지만, 우선은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혀봐야겠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쉽게 이태석 신부님을 알수 있게 해준다.
(사진 출처 - 영화, 울지마 톤즈 홈피)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부산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의 형제는 10남매다. 홀어머니가 아이들을 삯바느질로 키우셨음에도 아이들은 싸움한번 하지않고 씩씩하게 자랐다. 그리고 공부도 잘했다. 학교에서 주는 상은 거의 다 받아왔으니 말이다. 작은 부산아이가 커서 의대를 들어갔다. 군의관으로 제대하고 아이는 신부가 되기로 작정했다. 형과, 누나과 벌써 신부님과 수녀님이 되셔서, 어머니의 반대가 있으셨지만, 주님이 주신 소명을 버릴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신부가 되어 남수단, 톤즈로 향했다. 수단은 한낮의 기온이 50도나 되는 곳이다. 거기에 소말리아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가자 가난한 나라이다. 그중 남수단은 북수단과 달리 더욱 열악하다. 내전으로 고통받고, 지하자원때문에 북수단의 억압으로 어깨한번 펼 수 없는 그런곳이 남수단이고, 남수단의 오지가 톤즈다. 그곳에 그가갔다.
수단의 슈바이처. 톤즈의 유일한 의사가 그였다. 이요셉신부님을 만나면 산다는 소문이 퍼졌고, 2-3일을 걸어서 신부님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하루 200~300명이 넘었다. 그는 그들을 버릴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병원을 짓기 시작했다. 남수단에는 병원을 지을 어떤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시멘트로 벽돌을 만들어, 병원을 지웠다. 그들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딩카어를 배웠다. 밤에 오는 환자들도 그냥두지 않았다. 그는 진심을 다했다. 그들의 병들고 가난한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그런 사람이 이요셉 신부, JOHNLEE 신부님. 쫄리 신부님이었다.
브라스밴드의 단장. 그에겐 재능이 있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독학으로 풍금을 배웠다. 풍금을 배우고 나니, 다른 악기들을 다룰 수 있었다. 기타를 연주하고 다른 악기들을 수월하게 연주했다. 중학교때 <묵상>이라는 곡을 만들었으니 그의 재능이 뛰어나다. 그는 음악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이 평안을 찾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오랜 전쟁으로 폭력적인 아이들에게 말이다. 톤즈의 아이들에겐 음악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리.기타, 오르간으로 시작한 음악반은 4년 뒤 10개의 악기로 구성된 35명 규머의 브라스 밴드로 성장했다. 음악은 총과 칼을 녹일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잘 웃는 수학 선생님. 병원을 짓기 시작하면서 쫄리신부님은 헤메고 다니는 아이들로 가슴이 아팠다. 아무것도 없는곳. 그곳에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평균 나이 열여덟. 그들의 눈은 반짝였다. 성당앞 망고 나무 그늘아래서 시작된'돈 보스코 초등학교'는 8년만에 중. 고등학교까지 갖춘 1천 5백여명을 가르치는 정규 학교가 되었다. 달빛으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전기가 들지 않는 톤즈에 태양열 자가 발전기의 용량을 키웠다. 30분만. 30분만 더를 외치는 아이들. 공부를 너무나 하고 싶어 하는 그 아이들을 위해서 발전기를 가동하고 교사를 구하기 힘들어서 신부님은 자신이 좋아했던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다. 이렇게 톤즈의 아이들은 상처가 아물고 자신들의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수크란바바(고맙습니다, 아버지)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한센병 환자를 돌보고, 그들의 뭉그러지고 아픈 발이 가슴아파 한사람 한사람의 발을 그려 샌들을 만들어 주는 사람. 백신을 보관하기 위해 손수 태양열 자가 발전기를 설치하고, 아이들 을 위해 용량을 늘리는 사람. 전쟁터로 나가는 아이들을 위해 밤새워 기도하는 사람. 말기 암으로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는 순간에도 톤즈 마을 사람들에게 더 해줄 것이 없는지를 살펴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톤즈사람들은 울었다. 떠나버린 아버지가 그리워 울었다.
이태석 신부. 톤즈 사람들이 쫄리 신부라 불리던 사람. 그가 떠난 톤즈의 병원은 오후 1시간 되면 문이 닫힌단다. 소명없이 어느 의사가 그 오지로 찾아 들겠는가. 그가 머물었던 그곳엔 아직도 그를 그리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2미터가 넘는 장신의 사람들이 그의 사진에 입을 맞추고 그를 그리워 한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그를 아버지라 칭한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았다고 말이다. 어떤이는 이야기한다. 그가 아닌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가야만 했다고. 그는 할일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자식과 하나님을 이기지 못해 신부 서품을 받고, 아프리카로 가겠다는 아들을 떠나 보내 버린 여든이 넘은 노모는 여전히 그를 가슴에도 뭍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를 지금에야 알아버린 나는, 나와 내 자식만을 바라보고 살아옴을 너무나 주님일에 안일했음을 회개한다. 베품과 나눔의 향기를 전한 톤즈의 천사, 이태석 신부, 쫄리 신부님을 보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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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은 미소가 아름다우신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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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개국으로 나뉘어 있는 아프리카 대륙은 내전과 가난, 질병과 굶주림으로 지쳐 있다. 그중에서도 수단은 남수단과 북수단으로 나뉘어 오랜 시간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이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입을 것도 없고 학교도, 병원도 없는 수단의 한 마을 톤즈는 아물지 않는 전쟁의 상흔과 질병, 굶주림으로 가득하다. 그러한 톤즈 마을에 그들과 피부색이 다른 한 동양인이 찾아오면서부터 그들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이태석 신부. 그는 다치고 병든 톤즈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우기 시작한다. 총을 든 아이들에게 총 대신 책을 쥐어주고 악기를 들려주었다. 철저히 소외된 한센병 환자들을 보살피고 망가진 그들의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손수 지었다. 그는 톤즈 사람들에게 선생님이었고 의사였고 지휘자였고 사제였고 친구였으며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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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톤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이태석 신부님을 알게됐었다. 아~ 저분 정말 훌륭한 분이다. 저 분처럼 살고싶다.
어떻게 하면 저런 삶을 살수 있지?
우리 어른들이야 다큐와 영화로 충분히 감명을 받았지만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기 는 사실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이런 책을 통해 자연스레 이해하며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 왜 책 제목이 '우리 신부님, 쫄리 신부님' 일까? 바로 이태석 신부님의 세례명이 요한이라는데서 유래됐다. 요한의 영어식 표기가 John, 죤이고 신부님의 성이 이씨라서 죤 리 인 셈. 죤 리가 죤리, 쫀리, 쫄리로 바껴버렸다~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마을의 어린이들이 그렇게 친근하게 부르는 이름이 쫄리신부님 인거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게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느님을 믿건, 안믿건, 종교가 있든, 없든, 있다면 무슨 종교를 가지고 있건간에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려는 측은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게 바로 예수님의 삶이고, 부처의 삶이고, 알라의 삶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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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로 인해서 이태석 신부님을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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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부님, 쫄리 신부님』을 읽고 내가 지도하고 있는 중학교에서 여러 학생들과 필담 대화노트를 작성하여 교환하고 있다. 매일 내 자신이 요구하는 내용을 학생이 마련한 ‘약속노트’에 적어오면 내 자신이 그에 대한 소감이나 격려 내용을 적어주는 것으로 행해오고 있는 하루 중의 일과이다. 평소에 자주 만나지 못하는 단점을 보완하고자 오래 전부터 행해오고 있다. 그 중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름대로 적어보라.’는 주제에 대해서 다음은 한 2학년 학생이 필담 노트에 적어온 내용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세상에는 내 나이가 돼도 못 배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오래 걸리더라도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싶다. 사랑과 돈을 나누고 싶다. 세상에는 못 먹어서 굶어죽는 사람들도 많아서 나중에 커서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그 돈을 사회에 기부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못 먹어서 굶어죽는 사람들도 적어도 1끼 정도는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못 먹더라도 나 하나 대신 여러 생명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죽기 전에 내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할 것이다.’ 정말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었다. 책의 주인공인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그려낸 이야기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너무 감동적인 삶이었다. 특히 어려운 수단의 톤즈의 주민들은 물론이고 ‘이태석 브라스밴드’를 결성하여 청소년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모습은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였다.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신부님이나 안락한 의사의 길이 보장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힘든 아프리카의 오지였고, 분쟁으로 얼룩진 수단의 톤즈를 선택하여 의료 봉사를 떠나게 된다. 신부님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친구, 의사, 지휘자, 아버지로 통하였고, 의료시설을 갖춘 병원을 지어 주었고, 공부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학교를 지어주었으며, 내전에 참가했던 아이들의 손에 들려 있던 총이 아닌, 아이들의 손에 악기를 들려주어 함께 하는 삶을 만들었던 것이다. 세례명과 성을 합해서 빨리 발음하여 ‘쫄리’라고 하여 ‘쫄리신부님’으로 친근감있게 불리면서 아름다운 심성과 음악을 통한 희망을 행동으로 전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마음으로 진한 감동의 물결이 몰려오는 실화인 이야기가 방송을 탄 이후 전 국민의 최고의 관심사였던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가 아동들을 위한 도서로 나온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듣고, 보고,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우리 사람들이 진실한 마음에 다가오는 느낌들은 신부님에 대한 존경스러움과 아름다움이 함께 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끝내 암으로 일생을 마쳐서 더 이상의 멋진 일을 할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의 생만으로도 최고의 인생이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삶이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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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 포기하면서까지 남에게 희생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게 자신을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짧지만 48세의 생을 사랑을 모르던 버려진, 아니 저주받을 뻔 했던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라는 작은 마을에 사랑을 심고 간 이태석 신부를 돌아보게 한다. 이태석신부의 삶을 실화로 바탕으로 한 다큐형태로 나왔던 영화 '울지마,톤즈' 가 이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미있고 교훈적으로 책으로 나왔다. 김수환추기경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겼던 말... 사랑하고 또 사랑하세요.. 처럼 이태석신부도 행함으로 그 사랑을 보여주신 분임에 틀림없다.,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재주가 많았던 이태석은 공부며,음악이며, 무엇이든 잘하는 학생으로 자라, 누구나 부러워하는 의사의 자리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부의 길을 가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평범한 사람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중학교때 한센병을 치료하면서 자신도 한센병이 걸려 그 사랑을 몸으로 보여준 다미안신부의 희생적인 사랑을 잊지 못해서일까~~ 편안하고 쉬운 길이 아닌, 자원해서 가장 가난하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수단의 오지마을 톤즈의 미개척지역에 발을 내딪으면서 그의 가슴으로만 품었던 진정한 사랑을 행함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단지 동정이 아닌, 그들 한사람 한사람들에게 미소를 잃지 않고 정성껏 보여준 그의 진정한 사랑을 통해 웃음이 없었던 아닌, 죽음의 마을이 다시 생기가 도는 기쁨의 마을이 되어가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존(요한)세례명에 성이 이씨에서 딴 존리가 변하여 쫄리라는 재미난 별명이 생긴 정도로 쫄리신부님은 이제 톤즈의 없어서는 안 될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임에 틀림없었다.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병원을 세워 진료를 해주고, 공부에 목말라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주고자 학교를 지어 공부를 가르쳐 주고,미소를 잃고 상처뿐인 사람들에게 35명의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음악으로 기쁨을 주면서 톤즈의 마을사람에 행복의 천사가 내려와 있었다. 이태석신부는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사랑을 배웠고, 사랑을 그들에게 다시 되돌려 받았다고 한다.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댓가를 받지 않고, 시간과 땀을 들여 봉사하는 것에 다시 되돌려 받는 기쁨을 알 듯이 매일매일 자신의 누적되는 피곤조차도 잊은채 그들의 사랑을 먹으면서 다시 힘을 얻고 톤즈의 원주민이 되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피로가 누적된 그의 몸은 결국 말기 대장암으로 도저히 건강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 한국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그의 마음의 톤즈에 가 있었다. 더 자신의 남은 사랑을 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면서.... 결국 그의 선종은 톤즈의 메마랐던 이들의 마음에 뜨거운 사랑을 알게 한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속에는 이태석신부님이 가르쳐준 진정한 사랑을 담았을 것이다. 가팍하고 이기적인 세상에 진정한 사랑을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보여준 이태석신부를 통해 자라나는 아이들이 사랑이 무엇이며, 그 사랑을 어떻게 보여주고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이 분을 통해 진정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성장하여, 이 시대를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세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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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울지마 톤즈" 다큐를 보게 되었는데 정말 감동적이고 저절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