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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작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친숙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의 작품인 '은비령', '19세', '첫사랑' 등을 읽었으며, 특히 창작 배경이 교과서에 일부 실렸던 '은비령' 은 심취할 정도로 열독을 하기도 했다. 작품의 배경인 은비령(필례령) 주위에서 수년간 교직생활을 하면서 작품 속의 은비8경을 두루 섭렵하였고, 친지들이 올 경우 문학기행 삼아 돌아오곤 했었다.
학년말 방학을 마치면서 가볍게 읽을 책을 찾아 학교 도서관에 갔었다. 그렇게 서가를 살피던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순원 작가의 그런 인연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고, 그러면서도 어떤 큰 울림을 전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작가 자신이 글속에 등장하고 있다. 또한 머리말에서 밝힌 것처럼 자신의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일 때 함께 대관령을 걸으면서 나눈 대화가 이 글의 중심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글이라고 할까?
작중 화자인 '나'는 가정의 아픈 일을 자신의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그것을 읽은 아버지는 가정사를 공개적으로 털어 놓은 아들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느낀다. 그리고 '나'를 고향으로 호출한다. 아버지의 부름을 받은 나는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인 강릉으로 가다가 대관령 정상에서 내린다. 아내는 작은 아들과 함께 차로 내려가고,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인 큰아들과 함께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를 걸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눈다.
이 작품은 그 이야기가 모두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대관령을 걸어가면서 가족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그리고 자연에 대해서 나누는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이야기,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꿈의 이야기, 그 꿈을 찾는 방법 등이 부자간의 대화에 담겨 있다. 그 하나하나가 탈무드의 교훈같이 담담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국어교사로서 특히 가슴을 쳤던 글속의 일화 한 토막만 소개한다.
"아빠는 소설가인데도 왜 내게 글쓰기를 가르쳐주시지 않았어요?"
"네가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네가 1학년 때인가 도와준 적이 있었지. 모래장난을 하며 놀았던 것을 썼는데,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어. '햇빛이 반짝반짝 참 기분이 좋았다.' 아빠는 그 구절만 보고도, 네가 어떻게 재미있게 놀았는지 신나게 보았는지 눈에 보이는 것 같더라. 그래서 칭찬을 해주었지. 그 다음부터는 너는 그런 식으로 글을 쓰더라. 이틀마다 거의 한 번씩…."
"저는 그렇게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때 아빠는 생각했단다. 어린 네 상상력은 하늘만큼 큰데 오히려 아빠가 칭찬을 잘못해서 그 상상력을 한 자리에 매어 붙들어 매고 있구나, 라고…."
나는 그런 적이 없었을까? 어찌 글쓰기뿐이겠는가? 내게 배웠던 학생들이 더 크게 발전할 기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로 인해 어떤 틀에 사로잡히지는 않았을까? 그 가능성을 잃은 채 정체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반성을 했다. 이 책에는 이런 저런 감명을 주면서 무언가 생각을 하게 해 준 구절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나는 반성을 하면서 나를 돌아보고는 했다.
나는 선친과는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걸은 적이 없었다. 아니 긴 대화를 나눈 적도 별로 없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부모님을 어려워하는 시대였고, 부자간에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내 아들에게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내 아내나 며느리나 사위가 될 가족과는 그렇게 걸으면서 자연과 사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내게 배우는 학생들은 물론 이 글을 읽는 손님들께서 그런 기회를 자주 만나게 되기를 빈다.
끝으로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 팁을 선사한다. 이순원 작가의 '첫사랑'에는 그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고, '19세'에는 그의 학창 시절의 생활이 담겨 있다. 이 두 권을 먼저 읽은 뒤에 이 책을 읽는다면 더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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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뒤로는 미운털이 박혔다. 고분고분 말 잘 듣던 아이에서 고집불통으로 바뀐 탓이다.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인데 부모 마음은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다. 아이가 아무리 커도 아기처럼 품 안에 두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인지라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까지 수긍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 문제는 부모 마음은 제자리인데 아이 마음은 커져가니 대화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어떻게 아이와 대화할까?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은 작가인 아빠가 열세 살 아들 상우와 고향인 ‘강원도 바우길’로 불리는 대관령 고갯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다. 작가인 아빠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그려낸 한 편의 책을 출간한다. 그러다보니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가 좋을 수만은 없다. 그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아빠에게 상우 할아버지의 전화가 온다. 고향집에 한 번 다녀가라고. 상우는 아버지와 함께 대관령 꼭대기에서 할아버지 댁까지 걸어가고 동생 상빈이와 엄마는 차로 먼저 가게 된다. 아빠가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실제 걸어가는 이야기인데 읽으면서 아빠의 비유처럼 우리의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걷는 일이 처음에는 쉬워 보이지만 가다가 지칠 때도 있고 급히 서두르다 넘어지기도 한다. 익숙한 집을 떠난다는 것, 그리고 차로만 다니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어린 아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아빠 역시 어릴 적에 많이 걸어 다닌 길이었지만 아들과 함께 걷는 것은 처음이다. 이렇듯 가족 간에도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주변에 아무런 방해 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며 아빠와 아들이 나란히 걷는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마음이 푸근해진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 대화가 부족한 것은 마음의 문제인 듯싶다. 왠지 글을 쓰는 작가 아빠라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고 대화도 자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다는 걸 보면 말이다. 부모의 마음은 늘 아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주고 싶은데 아이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고 정작 아이가 원할 때는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아빠는 책을 출간한 뒤 아버지에 대한 생각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아들과 걷는 일을 계획한 것 같다. 부모가 아이에게 뭔가를 훈계하거나 가르치려고 하면 반항하고 싶은 것이 아이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함께 같은 길을 가면서 들려주는 아빠의 인생수업은 제법 아이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 어리게만 느껴지던 아들이 의젓하게 아빠의 무거운 마음을 이해하고 덜어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기특하다. 그리고 아빠가 걸었던 옛길을 아들이 지금은 아빠와 함께 걷는다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 길은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빠까지 힘들게 땀 흘려가며 만들었다고 한다. 아들에게는 얼마나 멋진 경험인가? 물론 아빠도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했을 것이다. 아빠도 어린 시절에는 할아버지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아들에게는 새삼 아빠와 공감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아빠에게는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천천히 길을 걸어가는 과정이 잔잔하면서도 큰 감동을 준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며 출간된 지 벌써 15년이 되었다고 한다. 이젠 어린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강원도 바우길’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번에 책 출간 기념으로 이순원 작가와 함께 ‘바우길 걷기 여행’ 행사가 있다고 한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어 안타깝다. 당장은 못 가지만 언젠가는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싶다. 그리고 꼭 그 길이 아니어도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부모로서 마음이 든든해지는 좋은 책을 읽게 되어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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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강원도 대관령 고갯길을 걸어 넘으며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거의 대화체로 이루어진 소설입니다. 지은이의 분신인 듯한 주인공은 예전에 자신의 아버지와도 함께 걸었던 유서 깊은 길을 아들과 함께 다시 걸으며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는 동안 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 아이를 키우며 느끼게 되는 여러 가지 마음과 아들에 대한 바람을 털어놓습니다. 아들도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와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 보며 먼 길을 함께 걷습니다.
원래 작가가 1996년 출간했을 당시에는 '아버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만 책 속의 내용 중 '우정을 위하여'라는 부분이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수록된 것을 계기로 '아들'로 무게중심을 옮겨 원작의 다소 무거웠던 배경들을 축소한 개정판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대관령 길을 실제로 걷는 것처럼 총 서른 일곱 굽이로 나누어 담은 부자간의 대화는 마치 우리의 인생을 잔잔하게 펼쳐 놓은 듯합니다. 초반부에는 도시의 아이들에게 부족한 자연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와 자기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집안'의 내력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중후반부에는 이제 어른이 되어 독립해야 할 시기가 되는 자식에게 부모로서 해주고 싶을 이런저런 인생의 조언과 역시 아버지가 될 아이에게 들려주고픈 '좋은 어른의 길'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언젠가 영화에서 병으로 시한부 생을 선고 받은 한 남자가 자신이 죽은 후 태어날 아들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들려주고 가르쳐 주고 싶은 이런 저런 것들을 비디오 카메라로 직접 찍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아버지이기 때문에 가르쳐 줄 수 있는 것들을 담담하게 미래의 아들에게 얘기해 주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소설도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그리고 들려주어야 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아들의 입장에서도 엄마가 아닌 아버지에게 물어 보고 싶었거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 놓습니다.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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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구비구비 대관령 고갯길을 걸으면서 아들에게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자의 대화를 보면서 '어쩜 그렇게 조곤조곤하게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받아줄까...' 내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와 대화가 아닌 지시가 더 많았던 요즘의 내 모습과는 참으로 비교가 되었다. 단지 부모 혹은 어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강요했던 것은 아닌지... 평생을 살면서 아이에게 힘이 되는, 가슴 뛰는 이야기 하나 들려 줄 수 없다면 그것은 치열하고 의미있게 살지 못했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누구든 삶의 보편적인 진리를 이야기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땀이 실려 있지 않다면 깊이가 없다. 말에 내면의 울림이 없다면 듣는 이 또한 가슴으로 받아 들이지 못해 공감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엄마와 함께가 될 것인가?' 큰 숙제가 주어졌다. 느리고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고 더 편한 삶을 위해 애를 쓰면서도 정작 아이에게는 그것을 가르쳐 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많이 고민해봐야겠다. 아이에게 무엇을 들려주고 싶은지에 대해서...
아버지와 아이가 동행하면서 가족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하고, 풀 이름도 대고, 사람과의 관계맺음, 우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코 끝이 찡해졌다.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 생각이 떠올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땐 왜 시간이 많은 줄 알았었는지, 함께 손을 잡고 걸어 본 적이 없었는지 한없이 아쉽기만 하다. 부모 그늘이 세상 전부인줄 알다가 조금 컸다고 독립을 외친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절대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이제는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을 꿈꾼다. 뭔가를 가르치지 않더라도 그저 니 얘기, 내 얘기를 들려 주면서 함께 웃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참으로 가슴 따뜻하고, 잔잔한 감동이 있는 책이었다. '우정에 대하여' 전문은 개정 초등 5학년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고 하니 아이에게도 꼭 읽혀야겠다. 책 속에 나온 '아내 책상', '엄마 책상'이 계속 가슴에 남았는데 조만간 나만의 공간인 책상을 만들어봐야겠다. 그 속에서 좀더 여유와 연륜을 찾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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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면서 아버지의 육아 또는 교육의 참여도가 많아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일이라는 이유로 자녀들의 육아 또는 교육은 엄마의 몫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집 아이 아빠도 새벽 일찍 일어나 아이들이 아직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출근하고 저녁에는 아이들이 잠든 후에 퇴근하고, 주말엔 피곤하다는 이유로 낮잠을 자거나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연휴에 잠시 아이들과 함께 하기는 하나 아버지의 자리를 메우기에는 부족하기만 합니다. 아빠도 아이들과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 직원복지의 현실로는 턱없는 이야기입니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아버지는 참으로 고달픈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아빠는 서로 어긋나기만 하고 특히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더욱 감당하기 힘든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 책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은 저자의 두 아들이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대관령 고갯길을 함께 걸어 넘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작품입니다. 한 편의 영화같은 이 책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고갯길을 넘으며 살아오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이야기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습니다. 많은 대화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아버지는 어린 아이로만 생각했던 아들이 부쩍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이제까지 내가 걸어온 삶의 길 큰 고비마다 아버지는 언제나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손수건을 들고 아들 마중을 나오셨다." 라는 저자의 독백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책<아들과 함께 걷는 길>은 서정적이면서 가슴이 따뜻해져오는 진한 감동으로 긴 여유을 주는 작품입니다.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지고 있는 이 시대의 많은 아버지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내고 싶고 시골에 계신 우리 부모님 생각도 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 아빠에게도 아이와 이런 시간을 가져볼 수 있도록 추천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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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인 이순원이 1995 년에 쓴 작품으로 그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책이다. ![]() 대관령을 흔히 아흔 아홉 굽이라고 일컫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정확하게 그 굽이 굽이를 세어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대관령의 굽이는 크고 작은 굽이의 연속이기에 큰 굽이 속에 작은 굽이가 섞여 있고, 또 그 굽이 안에는 또 다른 굽이가 있기에 대관령 굽이를 셀 수가 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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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사하면 '체 게바라 평전'이나 '여운형 평전'같은 책들이 떠오르는데, 달팽이 문고도 있다는걸 이제야 알았다. 그러고보니 내가 좋아하는 '콩 너는 죽었다'도 실천문학사의 담쟁이 문고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계기로 담쟁이 문고도 관심을 갖고 봐야겠다. 벌써 읽고 싶은 책 몇권을 찜해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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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 이순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이다. 대부분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글로 이뤄져 있고, 일상적인 대화를 그대로 취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편하다. 큰 아들과 대관령 고갯길을 걸으며 평소 하지 못했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꺼내보기도 하고, 맘 속에 묻어 두었던 둘 만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되었던 것 같다. 험준한 대관령 고개를 굽이 굽이 넘으며 할아버지 댁에 도달할 때까지 대화도 나누었다가 침묵 속에 걷기도 하다가 뛰기도 하면서 어리게만 봤던 아들이 훌쩍 자라 아버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속에는 대관령 고갯길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역사 속에서 살아숨쉬는 조상들의 이야기, 글을 쓸 때의 마음과 자신이 쓴 책에 대한 이야기, 할아버지와 아버지와의 관계,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 등이다. 자칫 무게감 있는 이야기로 어린 아들에겐 힘겨울 수 있지만, 나무 이야기, 풀이름 대기, 물푸레 나무 책상과 회초리에 관한 이야기로 흥미를 유발한다. 해가 질 때까지 산길을 걷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텐데 아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는 아들을 의지하며 목적지를 향해 끝까지 힘을 다했을 것이고, 더더욱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돈독해질 것이라 생각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 있어서 한 두번의 실수나 시행착오를 거치게 된다.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갑자기 농사를 짓겠다며 학업을 포기한 채 배추농사에 매달렸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지만 모든 농사꾼이 다함께 맛보는 성공이 아니었기에 회의를 느끼고 다시 학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아들에겐 너무도 완벽해 보이는 아버지지만, 이 기회를 통해 아버지 또한 사춘기를 경험하고 자랐다는 것을 알려주고, 아버지란 존재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인생의 멘토이자 든든한 지원군'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들에게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깨달았던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함으로써 아들에게 많은 조언도 되고,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였지 않나 싶다.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딸은 어머니에게서 삶의 대부분을 본받는다. 겉모습도 닮았지만 말과 행동, 가치관, 습관, 음식솜씨,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닮아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만큼 친밀하고 가까우며 소중한 사이라는 것이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둘 만의 오붓한 시간을 종종 가져보는 것도 몸과 마음을 소통하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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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걷는길
이순원 장편소설 한수임 그림 담쟁이 문고
아들과 함께 걷는길 제목부터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고 표지의 따스한 그림이 옛추억에 빠져들게 하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처음에는 왠지 이순원이란 이름이 낯설지가 않아서 혹시 소나기의 작가인가 했는데 그건 아닌것같다 . 작가의 약력을 보니 주로 따스한 소설을 많이 지으시는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거지만 왠지 표지그림부터 제목부터 또 2011년 개정 초등 5학년 교과서에 수록됐다는 얘기가 왠지 나를 더 책으로 끌어들이고 오랜만에 설레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1996년에 나왔던 책의 개정판이라는데 작품성이 있기때문에 다시 발간된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간략한 줄거리는 아흔 아홉굽이의 대관령길을 아들과 함께 걸으면 하는 대화가 주된 내용이었다 뭔가 책을 읽으면서 이 부자를 몰래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했다. 그들만이 알고있을 대화 그들만의 대화를 옆에서 몰래 훔쳐듣는 기분... 뭐 그런것같다 그러면서 조금은 부러운 기분도 들었다 .. 나도 유년시절을 보내고 했지만 이책의 주인공들처럼 좀더 긴밀하고 서로 추억에 남을 만한 그런 기억이 없다는 것이 조금은 서글퍼지기도했다 아들은 보통 아버지를 어려워한다고 한다 . 나역시도 그랬고 내가커서 아버지가 된다면 주인공들처럼 저런 부자지간으로 지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했다 소설처럼 대관령 길도 그렇고 제주도의 여러 오름들 올레길등을 같이 다닐수있다면 정말 큰추억이 될것같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직장생활 아이들은 방학에도 학원 학교 수업때문에 저런 여행을 같이 다닐려면 정말 큰 결심이 필요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잔잔한류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잔잔한 소설도 그에 못지않게 그상황들을 상상하게 하고 더욱 소설에 몰입할수 있어서 마치 다읽었을때 어느 영화나 연극을 보고 나온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게하였다 특히 기억에 남는 아버지의 말은 인생에 대해 얘기해주며 '그건 네가 피터팬이 아닌이상 아무리 않잃어버리려고 노력해도 저절로 잃어버리게 되는거란다. 그걸 하나씩 잃어버릴때마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감정도 무뎌지고 그러다 70번이나 80번쯤 이고개를 넘 나드는 동안 아이다운 모든것을 다잃어버려 어른이 되었을땐 지금 네눈에 보이는 어른들처럼 너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때로는 냉담해 지기도 할테고 무뚝뚝 해지기도 할거야'라는 말이였다 그래 그렇게 나도 어른이 되어왔고 그렇게 동심을 잃어버린것같다. 나도 어릴적 어른이 얼른 되는게 소원이였지만 어른이 되보니 아이 시절이 그리울때가 많다 . 아들과 함께걷는길을 부자 지간에 따스한 이야기로 추억을 살리게도 해주었지만 어느덧 내가 이렇게나 인생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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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아흔 아홉 굽이 대관령길을 큰아들과 4시간반에 걸쳐 내려오며 부자간의 대화로 엮은 글이다. 바쁜 일상속을 벗어나 한가로운 숲속 길을 풀네음 맡으며 그들의 뒤를 따라 나역시도 그 굽이굽이 대관령을 넘어온 듯 하다. 아버지와 아들이란 어떤 느낌일까?
유년시절 나에게 아버지란 호랑이 그 자체였다. 딸부잣집의 아버지이기에 그랬을까, 아님 아빠의 성격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나에게 아버지란 무섭기만 하고 살갑지 않은 듯하다. 아들이 없는 나에게 아버지와 아들간의 대화가 궁금하고 그들 사이의 공감이 궁금했다.
이글의 두 부자사이의 대화에서 아들은 아비지의 모습을 그대로 배운다는 것을 보게 된다. 초등학생의 아들과 그 긴 시간을 걸으면 하나씩 하나씩 서로의 가슴을 보여준다. 그들의 대화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고,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존경과 사랑을 느낄 수 있고,또 글의 시작이 되는 작가님과 그 분의 아버지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답을 찾는듯 하다. 정말이지 가슴 따스하고 훈훈한 이야기들이다.
나도 한번 아이들의 손을 잡고 대관령 아흔아홉굽이는 아니지만 나즈막한 뒷산이라도 걸어보고 싶다.부자사이의 대화가 아님 모녀사이의 대화를 꿈꾸며, 그리고 부녀사이를 꿈꾸며.. 그동안 내가 너무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았나 싶다. 그리고 많을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듯 하다. 동해의 파란 바다가 보일락 말락 잡힐듯이 펼쳐지는 대관령의 그 아흔아홉굽이를 이제는 내가 내려오고 있다.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