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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웃기고, 씁쓸하고.. 그래서 슬픈 이야기
"유쾌하고, 웃기고, 씁쓸하고.. 그래서 슬픈 이야기" 내용보기
예전에 읽은 어떤 책에서 위트(Wit)와 유머(Humour)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하늘을 쳐다보며 걷고 있다. 그가 진행하는 방향의 바로 앞에는 바나나 껍질이 놓여져 있다. 카메라는 하늘을 쳐다보며 걷는 사람과 바나나를 교대로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만일 나중에 이 사람이 바나나 껍질에 미끌어져 꽈당- 하고 넘어지는 이는 '유머'인데, 저러다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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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은 어떤 책에서 위트(Wit)와 유머(Humour)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하늘을 쳐다보며 걷고 있다. 그가 진행하는 방향의 바로 앞에는 바나나 껍질이 놓여져 있다. 카메라는 하늘을 쳐다보며 걷는 사람과 바나나를 교대로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만일 나중에 이 사람이 바나나 껍질에 미끌어져 꽈당- 하고 넘어지는 이는 '유머'인데, 저러다 미끄러질지도 모른다고 마음을 졸이고 그를 관찰하는도중 돌연 그가 그 앞에 놓인 맨홀에 쏙- 빠져버린다면 이는 '위트'라는 것이다. 적절한 예라고 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느낌만은 제대로 전달한 것 같아 꽤 인상깊게 읽었었나보다.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는걸 보면..


사전적으로 유머와 위트를 찾아보면, 대개는 이렇게 구분한다. 위트는 순수하게 지적(知的) 능력이다. 따라서 위트를 구사하려면 일정정도의 기지(機智)가 필요하며, 위트를 접하고 웃는 이들은 그 위트를 구사한 이에 대하여 '재치가 넘치는 인간이구만..' 이라는 생각을 갖게된다. 반면 유머는 상대적으로 정적(情的)인 영역이다.  웃음의 대상도 좀 다르다. 위트는 말은 한 화자가 웃음의 대상이 되지만, 유머는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웃음의 대상이 된다. 그 웃음은 위트와는 달리 동정(同情)이 수반된다. 때론 보편적 인간이 가진 생래적 한계나 운명적 슬픔 등이 유머에 묻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유머 쪽이 위트보다 대개는 긴 여운을 갖는다.

비록 한자어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말에도 이와 비슷하게 두가지 종류의 웃음을 구분했다. 풍자(諷刺)와 해학(諧謔)이 그것이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로 보면 위트와 유머, 풍자와 해학은 서로 일대일 상응이 아니다. 풍자는 웃음 중 '뼈'가 들어있는 웃음을 의미한다. 비합리적인 사회상이나 어리석은 인물됨을 빗대어 희화적으로 표현해 통쾌한 웃음 속에서도 비판의식을 유발해내는 것이 풍자라면, 해학은 대상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하는 다소 관조적인 웃음이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에서 말뚝이가 양반에게 뼈대있는 비판들을 쏟아내며, 웃음을 자아내게하는게 풍자라면, 형수한테 한쪽 뺨을 맞고, 달라붙은 밥풀에 집착해 다른 뺨을 내미는 것이 해학이다. 

아지즈 네신(본명 메흐멧 누스렛)의 작품을 읽다보면,  위트와 유머, 풍자와 해학이라는 네가지 요소가 고루 버무러져 맛있게 무쳐진 느낌을 글맛을 맛볼 수 있다. 지구본 경도(經度)상으로 정 반대편에 위치한 형제의 나라, 터키 출신의 작가인 그는 부패 정권 하 인권탄압이 한참이던 시기, 신문기자 및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한 다수의 작품들을 발표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그의 인권운동은 당시 부패정권의 미움을 사고 그는 내란선동 및 좌익활동이란 죄목 하에 250여회의 재판을 받고 5년 6개월의 옥중 생활도 하게 된다. 그러나 네신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인권운동과 작품황동을 병행하여 계속해나간다.

터키의 문학을 논할 때, 아지즈 네신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실제로 터키의 풍자문학은 네신을 하나의 전환점으로 보고 전기와 후기를 나누어 분류할 정도니. 그의 위상에 대해 일일히 그의 작품이 몇개국어로 번역되 몇몇 나라에 출판되었으며, 국제적인 문학상을 한다발 수상했다는 이야기를 추가할 필요가 없겠다. 그는 1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 소설집 「일단, 웃고나서 혁명」 은 그중 아주 짧아, 단편이라기보다는 꽁트에 가까운 작품 13편을 담고 있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읽고 있노라면, 지리상으로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했음에도 우리가 그들을 '형제의 나라'라 부를 만한 이유가 하나 더 있음을 알게된다. 당시의 사회상을 과감하게 꼬집고(=풍자), 당시 서민들의 삶을 희화적으로 그려낸(=해학) 재치있는 문장(=위트)을 통해 안쓰러운 웃음(=유머)을 짓고 있노라면, 어딘지 꼭 '남의 일' 같지 않은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이 사이에 낀 고추가루를 보며, 자신이 한 과거의 무안한 실수를 은근히 떠올리곤, 남몰래 거울에 자신의 이를 비춰보는 듯한 은근한 불편함이랄까..

이 작품은 무척 재미있다. 뭐라 딱 꼬집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가 선사하는 웃음엔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남다른 매력이 있다. 그 매력은 그저 웃음을 자아내는 그의 기발한 재치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매력의 이유는 그의 작품 속 세상이 가진 우스꽝스러움이 현실의 나, 그리고 내가 지금 살고있는 세상을 다시금 돌아보게하는 재귀함수(再歸函數, Recursive Function)의 역할을 하는데 있다. 그의 작품 속에 그려진 어처구니없는 사회상에 대해 우리는 아직 자유롭지 않은가보다. 앞으로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 당시의 젊은이들이 이 작품을 접했을 때는 '이게 말이 돼..?' 라는 반문과 함께 그의 작품이 말도 안돼는 세상의 그저 엉뚱한 이야기만으로 읽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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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웃고 나서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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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제게 왜 풍자작가가 되었느냐고 항상 묻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절 풍자작가로 만든 것은 저의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눈물 속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지즈 네신은 작가 이전에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 보호에 앞장서온 인권운동가였다. 작품들이 출간되자마자 내란 선동이나 좌익 활동이란 죄목으로 수갑을 찬 그는 대략 250번의 재판을 받았으며, 유배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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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제게 왜 풍자작가가 되었느냐고 항상 묻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절 풍자작가로 만든 것은 저의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눈물 속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지즈 네신은 작가 이전에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 보호에 앞장서온 인권운동가였다. 작품들이 출간되자마자 내란 선동이나 좌익 활동이란 죄목으로 수갑을 찬 그는 대략 250번의 재판을 받았으며, 유배 생활을 제외하고 5년 6개월 간 수감 생활을 했다고 한다.  터키 풍자 문학의 거장인 그의 작품이 익살스럽고 다채로우면서도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힘과 무게를 가지는 것은 아마 그러한 그의 삶에 기인할 것이다. 익살과 웃음 뒤에 숨어 있는 눈물 말이다.

사실 나는 오르한 파묵을 좋아해서 터키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케이스인데, 오르한 파묵 역시 아지즈 네신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아지즈 네신은 터키 문학에 유례없이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작가이다. 포복절도할 웃음과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로 성대한 만찬을 연상케 하는 그의 작품들은 항상 분노하는 동시에 미소를 짓는다.


이 작품은 1965년에 출판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수록된 여러 단편들에서 보여지는 아지즈 네신의 비판과 풍자가 지역과 시대를 넘어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터키의 정치 상황이나 사회 구조가 한국과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광범위하게 보자면 인간 사회라면 있게 마련인 것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정치와 언론, 혁명 등을 통해 인간의 이면을 예리하고 통쾌하게 꼬집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각 작품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나 저마다의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결국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어리석고 우둔한 인간들을 '풍자'라는 도구를 통해 익살스럽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웃음은 통쾌하면서도 스산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자 바로 '나'(혹은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을 바라보게 하는 것, 그래서 스스로에 대해 사회에 대해 분노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는 것, 그것이 아지즈 네신의 풍자가 가지고 있는 힘인 것 같다.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는 점에서는 여느 풍자나 해학과 동일하지만, 그 대상에 '나'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 책에 수록된 '황소가 승자다'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동물들의 역사를 기록하던 코뿔소는 이 사건을 이렇게 기술했다.
"말과 노새가 서로에게 발길질을 했는데, 애꿎은 당나귀가 피해를 봤다. 강한 자들이 서로를 헐뜯자, 그 사이 황소가 왕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꼴이 꼭 이렇다는 거다.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거다. 그래서 웃음의 끝이 씁쓸하고 쓸쓸할 수밖에 없다. 배를 잡고 웃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누워서 침뱉은 꼴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렇게 각성한 자는 과거와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종국엔 희망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것이 아지즈 네신의 풍자가 가진 진짜 힘일 수도 있겠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하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바로 보고 반성할 수 있게 한다는 점, 그것이 아지즈 네신과 그의 작품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읽히고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11.05.06.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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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웃고 나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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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의 겉면이 남미의 체 게바라의 얼굴이 실려 있어서 사회 부조리를 타파하고 작가의 신념이나 의지를 빗대어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 내려 갔다.작가 아지즈 네신은 살아 생전 터키의 권력의 압제에 굴하지 않고 소신을 관철하려 했던 터키의 지성인으로 알려져 있고 이 소설의 이야기들 13편은 말 그대로 힘없는 자들이 부패한 정권에 소리없는 저항을 통하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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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의 겉면이 남미의 체 게바라의 얼굴이 실려 있어서 사회 부조리를 타파하고 작가의 신념이나 의지를 빗대어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 내려 갔다.작가 아지즈 네신은 살아 생전 터키의 권력의 압제에 굴하지 않고 소신을 관철하려 했던 터키의 지성인으로 알려져 있고 이 소설의 이야기들 13편은 말 그대로 힘없는 자들이 부패한 정권에 소리없는 저항을 통하여 작가의 뜻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으며 반향 또한 크리라 생각한다.

외메르 영감을 마을의 이장으로 선출하지 않겠다는 마을 사람들이 결국엔 외메르 영감의 신의를 높이 사 그를 이장으로 선출한다는 얘기,혁명을 일으켜 사회 혁신의 길로 가려면 민초들이 똘똘 뭉쳐야 한다는 얘기,아무리 발버둥쳐도 되지 않을 사람은 안될터인데 미친 놈의 권력욕이 수포로 돌아가는 얘기,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려 터키의 대표로 백악관에 가서 실정을 호소하는 애끓는 꿈 얘기등 현대 터키 정치사에 포악한 권력과 부패한 정권을 풍자와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그리 어렵지 않은 문장들이지만 곱씹어 볼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한국 현대사도 어쩌면 이승만 정권부터 독재와 장기 권력욕에 의해 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갖은 고문과 회유,압박으로 스러져 갔고 그들의 참된 사회 만들기로 인하여 한국 정치는 어느 정도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사회의 부정부패,편 가르기,갖은 자의 횡포,빈익빈 부익부등의 난맥상이 언제 해결될지 모를 상황이다.문명과 사회는 늘 용기와 신념으로 가득찬 사람들에 의해 변모하고 발전되어 감을 인지할 때 아지즈 네신과 같은 용기있는 지성인이 한국에도 많았으면 한다.그럼으로써 독재와 불의를 넘어 참다운 사회 건설이 이루어지고 보다 나은 삶을 구가하지 않을까 한다.





j******6 2011.04.1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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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웃고나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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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메흐멧 누스렛(Mehmet Nusret)으로, 1915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예술 아카데미에서 문학 공부를 하였다. 졸업 후에는 직업 군인으로 근무했는데, 이때부터 '베디아 네신'이란 필명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4년 육군 중위로 퇴역한 뒤, 신문 기자를 거쳐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신문 기자 시절, 〈카라괴즈〉 등의 신문에 발표한 풍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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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메흐멧 누스렛(Mehmet Nusret)으로, 1915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예술 아카데미에서 문학 공부를 하였다. 졸업 후에는 직업 군인으로 근무했는데, 이때부터 '베디아 네신'이란 필명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4년 육군 중위로 퇴역한 뒤, 신문 기자를 거쳐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신문 기자 시절, 〈카라괴즈〉 등의 신문에 발표한 풍자 소설과 콩트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 희곡, 평론 등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백여 권이 넘는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비롯해서 34개국어로 번역되었고, 이탈리아,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풍자 문학상을 휩쓸기도 하였다. 1972년에는 고아들에게 교육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네신 재단'을 설립했으며, 1995년 사망 후 유언에 따라 그의 작품에서 발생되는 모든 인세가 이 재단에 기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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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를 만나게 된 것은, 그의 우화집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를 보고서부터였다. 우화 속에 등장한 수많은 동물들은 어리석인 인간을 대표하는지라 내용은 참혹할지라도 읽고 있노라면 싱긋이 미소를 지어지게 하는 그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수록단편 중 대표작인 「위대한 똥파리」가 제일 마음에 와닿았는데 한 우물을 우직하게 파는 인간은 어쩌면 실현가능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무식하게 달려드는 똥파리와 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당나귀 표지가 귀여워서 보게 된 책이었는데, 그렇게 아지즈 네신과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읽고 나서 마음에 와닿는 반향이 커서 작가가 누구인지 머릿속에 기억해두려고 펼쳐들었던 그는, 내가 처음 생각했던 일본인이 아니였다. 일본소설이 우리나라 소설보다는 유쾌하게 울림을 줘서, 혹은 이름이 일본 이름 같아서 그렇게 추측했는데, 실은 터키 작가였던 것이다. 여러 모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적 환경에서 살아온 나라이다 보니까 기본적인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소 비슷한 경향을 띠는구나 생각했었는데,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가 한창 미디어 매체에서 터키는 우리와 형제 나라 어쩌구 했던 때라 상당히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서 봤던 책이 회고록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가 없다』였고, 그 책은 그가 썼던 작품 때문에 유배당했던 경험을 정리해놓은 것으로 인간의 약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강인한 정신을 볼 수 있었다. 그와 비슷한 작품이 이 단편집에 하나 수록되어 있는데, 다 읽고 나면 허탈한 웃음이나 어이없음만 나올 만큼 인간의 본성은 나약하고 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 내가 그를 알게 된 책처럼 말랑말랑한 우화나 소설류가 아니였기에 그에게서 내가 기대했던 바는 충족시켜주지 못했었다. 냉철하고도 매력적이면서도 절대 방향성을 잃지 않는 그의 풍자를 마음껏 보고 싶었는데 그의 회고록에는 그런 부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쉬웠던 것!! 그래서 그의 진정한 소설적 묘미를 보고 싶다면 역시 소설이 제일이다.

 

 

 

그래서 보게 된 소설이 바로 이 책, 『일단, 웃고나서 혁명』 이다. 이 책은 짤막한 단편집으로 총 열세 편의 단편이 모여 있다. 책 제목처럼 분명 혁명적인 내용은 있지만 그 수준이 미미하거나 조잡하여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 속에는 터키의 독재정치나 가난한 생활을 그대로 드러나기도 해서 안타까운 면도 분명 느낄 수 있지만, 그런 모습에서 우리 과거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 한편으로는 애틋하기도 했다. 언젠가 신문인지 뉴스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값 없이 얻어진 것이 아니라 피 값을 내고 쟁취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 민주주의가 훨씬 잘 지켜지고 소중하게 여긴다는 내용을 들었거나 읽은 적이 있다. 한 번도 내 나라에 대해서 그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던 평가였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선조들은 민주화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후손들이 그 민주주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을 뿐 그들은 충분히 제 할 일을 다 하셨다. 그래서 다른 독재 정권 아래에서 놓인 국민들은 우리나라를 롤모델로 제시하며 혁명을 준비한다고도 하셨다. 원래 가까이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은 잘 느끼지 못한다고들 하던가. 이렇게 소중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일 좋았던 것은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다」 라는 단편인데, 독재 정권 아래에서 투쟁하며 민주주의를 일구려고 했던 한 재야 정치인이 감옥에서 출소한 후에 돈이 없어 시내 중심가에서 방을 얻지 못하고 아주 구석진 시골로 이주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변두리 초라한 집에 방을 얻고 돈을 벌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결국 일자리를 못 얻어서 방세라도 아끼기 위해 친구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 같이 살아가려고 마음먹지만, 주변에 있는 찻집 주인, 청과물 주인, 구멍가게 주인이 가지 말라고 만류해 그 자리에서 정착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그 때 이 정치인은 시민들이 자신이 이제껏 싸워온 자유에 대해서 인정해준다는 생각했다는 것이 가장 슬펐다. 어쩜, 그렇게 순진할 수가 있을까. 결단코 그런 일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재야 정치인이 나중에 그 내막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속내는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도 안 간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풍자를 사용해 가장 아프고 가장 은밀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는 아지즈 네신의 소설은 말해서는 안될 것이 많은 요즘 시대에 더욱 각광을 받을 것이다.

 

 

j*****3 2011.04.2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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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하고 엉뚱하면서도 한번쯤은 곱씹어 보게 만드는 풍자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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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6공이 들어섰을 때 <대통령 아저씨 그게 아니에요>, <영부인 마나님 해도 너무해요> 등의 “정치 풍자 소설”이 유행했었다. 그중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한 콩트를 소개하자면 성(姓)인 “盧”보다 “물”로 더 유명했던 대통령이 군사정권의 유산인 “각하(各下)” 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고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이 어느 시골 마을을 방문했을 때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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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6공이 들어섰을 때 <대통령 아저씨 그게 아니에요>, <영부인 마나님 해도 너무해요> 등의 “정치 풍자 소설”이 유행했었다. 그중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한 콩트를 소개하자면 성(姓)인 “盧”보다 “물”로 더 유명했던 대통령이 군사정권의 유산인 “각하(各下)” 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고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이 어느 시골 마을을 방문했을 때 시골 촌부(村夫)가 대통령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각하”, “각하” 호칭을 하자 손사래를 치면서 하지 말라고 말렸다. 딱히 뭐라 부르기 난감한 촌부, 대통령이 마을을 떠나자 “노씨, 잘 가요!” 라고 외쳤고 그날 이후 촌부를 봤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아마도 비판의 목소리를 낼라치면 저 콩트에서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던 그런 서슬 퍼런 군사 정권 시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대나무 숲에서 소리조차 칠 수 없었던 힘없는 국민들이 그저 풍자 소설 형태로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은밀히 주고 받던 이야기들이 대통령 직선제로 숨통이 터지면서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와 인기를 끌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이후로 근 20년 - 그동안 풍자소설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 관심 밖이었다는 것이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 이 넘도록 딱히 정치 풍자 소설이라 부를 만한 책들을 접해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재미있는 정치 풍자 소설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터키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풍자 문학의 거장이라는 아지즈 네신(Aziz Nesin)의 <일단, 웃고 나서 혁명(원제 Ihtilali Nasil Yaptik / 푸른숲 / 2011년 3월)>이 바로 그 책이다.

 

터키 작가라고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르한 파묵” 정도만 알고 있는데 아지즈 네신은 생소한 이름인지라 작가 이력부터 살펴보았다. 출판사 작가 소개글에 따르면 아지즈 네신(1915-1995)은 터키의 대표 지성知性이자, 터키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로 터키인 중에서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고, “완전히 아지즈 네신의 소설이군”이라는 관용어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작품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지식인으로서도 명성이 높다고 하는데, 터키의 폭력적인 정권, 특히 언론인에 대한 정부의 검열과 탄압을 정면으로 비판한 작품들로 내란 선동이나 좌익 활동 죄목으로 250번 이상 재판을 받았으며 유배와 수감생활을 반복하였다고 하니 지난 2010년 12월에 작고하신 ‘실천하는 지식인의 표상’이자 ‘사상의 은사’로 불리셨던 고(故) 리영희 선생님이 연상되었다. 혁명투사로 이름 높은 “체게바라”가 웃고 있는 익살스러운 표지 그림만으로도 책이 어떤 성격인지 잘 알려줄 것 같은 표지를 펼쳐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15~20 페이지 분량의 짤막짤막한 13편의 콩트가 실려 있다. 첫 번째 편인 <우리는 외메르 영감을 뽑지 않겠다>에서는 예전부터 마을 이장 자리를 도맡아 해온,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고민을 안기기 일쑤인, 아주 구제불능의 인간인 외메르 영감을 마을 주민들은 이번에야말로 뽑지 말자고 이구동성으로 약속하지만 선거일에 이르러 그에게서 소송이며 병원 치료 등의 도움을 받게 되자 결국 그를 다시 뽑는데 오히려 외메르 영감만이 마을 주민과의 약속을 지켜 자신의 경쟁자에게 투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엉뚱하고 기가 막힌 이야기인 <혁명이, 아무도 모르게> 편에서는 일단의 세력이 혁명을 일으켜 정부를 완전히 손에 넣었지만 하필이면 비가 오는 바람에 라디오 방송국은 방송을 못하고, 전화는 불통되고, 도시가스는 끊기고 자동차를 포함한 모든 교통수단이 마비되어 혁명을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게 되는데 현 집권 세력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쫓겨나지 못한 상황에 아쉬워한다. 그래서 작가는 다음 혁명을 일으킬 세력은 혁명 전에 꼭 현 정권에 알리고 나서 혁명을 일으키기를 충고한다. <민주주의 영웅되기, 참 쉽죠?> 편에서는 지방 신문사 기자인 나는 당나귀가 양을 낳았다, 하늘에서 생선이 쏟아진다, 여자들이 반은 물소, 반은 낙타를 닮은 괴상한 생명체를 낳았다더라, 하늘에서 비행접시나 날아다는 담배가 관측되었다와 같은 허무맹랑한 기사를 써왔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가 자신의 주를 방문한 고위공무원에 대하여 거짓말 한마디 보태지 않고 그대로 기사를 썼다가 민주주의의 영웅으로 체포되어 교도소로 가게 된다.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다> 편에서는 힘들게 감옥살이를 마치고 도시 변두리 마을마다 더 멀리 떨어진 빈민촌 지하 셋집에 살게 된 혁명가, 그가 오고 나서 얼마 후 무허가촌 앞이 작은 장터로 변하고 행상인들이 모여들면서 활기차고 북적거리게 된다. 월세와 외상값이 밀려 변변치 않지만 가진 물건을 팔아 이사를 할까 고민 중인 그에게 구멍가게 주인, 청과물가게, 찻집 주인이 찾아온다. 그가 이사하는 것을 말리는 그들을 보며 자신이 국민을 위해 어떻게 일했는지 비로소 국민들이 알아주나 보다 하고 감격하지만 사실은 그를 감시하러 온 경찰들이 북적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시장이 활성화된 것. 결국 그는 가난한 그들을 위해 남기로 결정한다. 그 외에도 문명의 상징이 되어 버린 압력솥에 얽힌 이야기인 <문명 만세!>, 터키 외진 시골에 미국인 손님들이 방문하면서 겪게 되는 일대 소동을 그린 <우리 집에 미국인 손님이 온다>, 암구호를 멋대로 바꿔 부르고 - “옷”을 “옷가지”로, “여자”를 “가시나”로 - 자신의 소대장임을 알면서도 암구호를 대지 못한다고 사령관의 호출에도 막무가내로 막아서는 엉뚱한, 이런 병사가 부하라면 당장 총살 시켜버리고 싶었을 그런 병사 때문에 장교 진급에 누락된 군인 이야기 <암호가 뭐기에>, 자신이 우승하지 못할 바에야 경쟁자가 아니면 누구라도 우승해도 괜찮다는 이기심 덕분에 동물의 왕에까지 올라가는 황소 이야기 <황소가 승자다> 등 기발하고 엉뚱하면서도 한번쯤은 곱씹어 보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풍자라는 것이 주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가와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 문학이라고 한다면 이 책 또한 작가의 모국인 터키 정치상황을 꼬집는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터키 현실을 꼬집는 이야기 일 텐데 전혀 낯설지가 않은 것을 보면 정치 사회의 모순이라는 게 터키나 우리나 그다지 다를 것 없는, 시쳇말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은 것인가 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풍자는 문학·회화·영화를 불문하고 퇴폐한 시기나 언론이 억압당하기 쉬운 시기에 걸작이 나오는 경향이 많으며, 이로 인하여 정치나 세상 돌아가는 방향을 불건전에서 건전한 쪽으로 돌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데(네이버 발췌), 그럴싸할 풍자 문학이 나오지 않는 지금은 그만큼 사회가 건전하며 언론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자유로운 민주화(民主化)를 이뤄냈기 때문일까 아니면 민주주의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한탄이 여기저기 나오는 것처럼 어쩌면 가장 고차원의 비난이라 할 수 있는 풍자가 아직도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좀 더 직설적이고 거친 비난이 필요한 그런 시기일까?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현 정치 상황을 소재로 했다고 화제가 되고, 정권과 코드가 다르다고 방송을 그만두게 했다는 논란이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으며, 아직도 촛불 시위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좌파 단체가 사주한 불손한 데모라는 색깔 씌우기를 하는 것을 보면 풍자는 우리에게는 사치인, 좀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외쳐야 하는 그런 사회인 것 같아 괜히 서글픔마저 느껴진다.  언젠가는 우리도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어깨에서 힘을 빼고 핏대가 서있는 목을 좀 쉬게 하여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사회를 꼬집을 수 있는, 아지즈 네신의 이 책 처럼 멋진 풍자와 해학이 담긴 소설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오기를 바래본다.

 



a*****7 2011.04.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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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아지즈 네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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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즈 네신(1915-1995)은 터키의 풍자 문학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작가이다.터키 사람들은 풍자 문학사를 논할 때,아지즈 네신의 문학 작품들을 기준으로 전기,후기를 가른다"역시 아지즈 네신이였다.그의 책을 처음 읽었을때의 충격이란,분명 터키작가라고 알고 있었는데,그가 들려 주고 있는 이야기는 마치 대한민국의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어느 나라든,사람 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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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즈 네신(1915-1995)은 터키의 풍자 문학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작가이다.터키 사람들은 풍자 문학사를 논할 때,아지즈 네신의 문학 작품들을 기준으로 전기,후기를 가른다"

역시 아지즈 네신이였다.
그의 책을 처음 읽었을때의 충격이란,분명 터키작가라고 알고 있었는데,그가 들려 주고 있는 이야기는 마치 대한민국의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나라든,사람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이렇게도 같은 것인가?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한편으로는 작가가 날리는 신랄한 풍자에 살짝 위안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는 총 13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그 중에서 특히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단편을 꼽으라면,역시 <우리는 외메를 영감을 뽑지 않겠다>,<혁명이,아무도 모르게>,<지붕 위에 미친놈이 있다>,<악몽>,<황소가 승자다>등이 아닐까 싶다.
터키의 역사를 아는바가 거의 없지만,소설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정치판이 보였다면,아마 터키란 나라도 우리나라 못지 않게 부정이 판을 치고,입에 담고 싶지 않을 정치의 답답함이 있는 듯 하다.
매번 선거철이 되면 누군가를 뽑기 위해 혹은 낙선시키기 위해 사람들은  애를 쓴다.그런데 가면 생각해 보면 정치인이 지니고 있는 정치인이 지녀야 할 이념 혹은 가치관에 따라 그들을 뽑는 것이 아니라,나에게 돌아올 당장의 이익에 따라 우리는 정치인을 뽑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는 외메를 영감을 뽑지 않았다>는 실상 부정부패한 외메를 영감을 비판하는 것 같지만,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언제든 등을 돌리고 마는 시민(국민)들에 대한 풍자였다.
부정선거로 낙마한 이가 다시 출마하기도 하고,실제 정치인이 되기도 하며,부정선거로 보궐선거를 해도 역시나 같은 당에서 당선되는 정치인들을 숱하게 보아온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그리고 나라고 이런 모습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웃고나서,돌아오는 이 씁씁함이란~

"여보게들,헛수고 말게나.저 사람은 절대 내려오지 않네.난 저런 미친사람들을 아주 잘 알아.당신들도 장관 시켜주면 남의 말 따위 듣고 싶지 않을걸." (지붕 위에 미친 놈이 있다 중에서)

제목이 너무 과격(?)하다고 높은 곳에 계신분들이 좀 언짢아 하실려나..
친구들끼리 모이면 가끔 정치계로 입문하면서 이상해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눌때가 있었다.그리고,환경이 사람을 어쩜 저렇게 만들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작가가 아주 분명하게,답을 내려주었다

여러 작품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너무 매력적인 작가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실,신랄한 풍자를 이야기하려면,굉장히 한쪽으로 치우치는 느낌이 들법도 한데,작가는 문학적인 재미도 늘 함께 준다.복잡하고 외면하고 싶은 부정부패의 모습,혹은 악습등에 대해 일단 웃을수 있게 해 준 뒤 밀려 드는 혁명을 꿈꾸게 하는 힘,그것이 아지즈네신의 힘인 것일까?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도 '빵' 하고 웃음이 터졌지만,웃음이 결코 행복한 웃음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다..)

w*******i 2011.05.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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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읽고나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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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문학사의 거장 아지즈 네신.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그의 글은 정말 술술 읽힌다. 터키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에 무지한 것도 책을 읽어나가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하긴, 그러니까 그의 책이 34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겠지. 항간에 유행하는 일종의 정의코드 인문서적에 버금갈 만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정의를 짧디 짧은 이야기 속에 심어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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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문학사의 거장 아지즈 네신.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그의 글은 정말 술술 읽힌다. 터키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에 무지한 것도 책을 읽어나가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하긴, 그러니까 그의 책이 34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겠지. 항간에 유행하는 일종의 정의코드 인문서적에 버금갈 만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정의를 짧디 짧은 이야기 속에 심어놓으면서도 전혀 무겁지 않게 표현하는 대중적인 필치가 무엇보다 돋보인다. 그래서 그가 살던 시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이 이야기들은 유머스러하면서도 강한 울림이 있다. 

작가 이전에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 보호에 앞장서는 인권운동가였던 아지즈 네신은 선동이나 좌익 활동이라는 죄목으로 수차례 수갑을 차고 유배 생활까지 하면서도 인간의 결점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풍자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상이나 철학, 미래에 대한 비전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가 문장 속에서 번뜩인다. 13개의 단편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의 우스운 헤프닝을 담고 있지만 그것이 개별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은 것은 그가 삶을 꿰뚫어보는 해학이 곳곳에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자꾸 지붕 위에 오르려는 미친놈을 마구 비꼬는 '지붕 위에 미친놈이 있다'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다. 불의에 혁명적 유머를 날려준 저자 덕분에 내가 발딛고 있는 이곳에 대한 묘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오랜만에 피식피식 웃다가 읽기를 반복했다. 그러니 일단 한번 읽어볼 일이다. 웃고나서 혁명을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읽고나서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나도 우선 재밌게 읽었으니까. 책을 읽고 나니 모호하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보다 말 잘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한편쯤 보고 싶은데, 과연 전주에서 이 책의 여운을 이어갈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나.

j*****n 2011.04.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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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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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이고 혁명도 웃고 난 뒤에. 『일단, 웃고 나서 혁명』이 언제 어디서건 유효성을 갖게 된다면 그건 풍자라는 맥락에서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현재 <민상토론>이라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꼭지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 또한 매한가지. 씁쓸함이 배가되는 건 그 꼭지가 '정치판'을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판을 마음껏 풍자할 수 없는 사회'를 풍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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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도 식후경이고 혁명도 웃고 난 뒤에. 『일단, 웃고 나서 혁명』이 언제 어디서건 유효성을 갖게 된다면 그건 풍자라는 맥락에서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현재 <민상토론>이라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꼭지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 또한 매한가지. 씁쓸함이 배가되는 건 그 꼭지가 '정치판'을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판을 마음껏 풍자할 수 없는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까닭에서다. 아지즈 네신 본인이 이러한 글로 수감되기도 한 걸 보면 풍자와 웃음의 자유가 갖는 파급과 이중성이 더더욱 부각된다). 수록된 첫 글 <우리는 외메르 영감을 뽑지 않겠다>는 동네 이장 선거를 다룬다. 오랫동안 이장이었던 외메르를 갈아 치우자는 주민들의 결심이 굳은 가운데, 저마다 각자의 이유로 외메르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모두 소송이다 뭐다 하며 어려움 하나씩을 격고 있고 외메르만이 그 해결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행여 단합이 깨질까 조심조심 외메르와 접선(!)하려는 주민들의 의지와는 달리 결국 그들은 한날한시 외메르 영감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고, 절대 외메르를 뽑지 않겠다는 말은 선거 당일 무색해지고 만다. <혁명이, 아무도 모르게>의 모습은 혁명을 꾀하는 자들이 성공한 후 그 사실을 알릴 길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이야기. 심지어 자신들이 꼭 혁명을 해야 한다는 기치 아래 다른 혁명 단체를 발견한 뒤 그들을 체포하고 나서야 기어이 자신들만의 혁명에 성공한다. 그런가하면 <모든 것은 주지사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는 전화통만 붙잡은 채 서로 일처리를 미루는 공무원들을 꼬집는다. 사실 '웃음의 자유'는 저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도 이야기된다. 거기에서 늙은 수도사 호르헤는 웃음을 싫어한다. 왜? 웃음은 두려움을 없애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없애면 신앙도 없다. 악마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하나님도 필요 없으니까 말이다.(네이버캐스트, 진회숙) 웃음이 끊기고 헤게모니를 쥔 자에 대한 풍자마저 사라진 세계가 어떨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우리 사회가 공포로 가득 차고 황폐해지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외국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런저런 가재도구를 집으로 들이는 이야기 <우리 집에 미국인 손님이 온다>에서처럼 쓸데없는 습성으로 점철된 사람들은 비단 소설 속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며, <지붕 위에 미친놈이 있다>와 같이 끊임없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작자들 또한 텍스트 안에만 갇혀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러한 담론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풍자라는 것이 웃음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풍자는 풍자 그 자체가 주어가 되어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을 공격해야만 한다. 때로는 계몽의 성격을 띠면서, 이를테면 (이런 표현은 쓰고 싶지 않으나) 하부(계층)에서 상부(계층)를 공격하는, 그래서 특히 기득권과 그 언저리에서 어슬렁거리는 대상을 깎아내리고 우습게 만들어 조소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풍자가 만들어내는 웃음은 무언가를 깨부수고 공격함으로써 사회를 밝게 만들기도 한다. A가 B를 공격하고 조롱거리로 만드는데 사회가 밝아진다? 일견 이상하게도 들리지만 적절한 시의성을 지닌 풍자가 잘못된 것(들)을 꼬집는다면 자연스레 수긍이 간다. 왜? 앞에서 언급했듯 웃음은 두려움을 없애기 때문에, 기득권(층)을 조롱해 거기에서 웃음과 해학, 나아가 경종을 울려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깨닫게 한다면 더 이상 사람들은 자신들을 짓누르는 상부의 무게에서 벗어나려고 할 게 빤하기 때문에.

u******o 2015.08.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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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웃고나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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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터키의 정치상황이 몇 년전의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것에 놀랐다. 정치풍자 세테풍자 이야기다. 아지즈 네신은 이스탄불에서 태어났고 터키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터키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란다. 계엄령이 선포된 정치상황에서도 권력의 압제에 굴하지 않고 글로써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고한다. 세계곧곧에서 아직도 독재자들이 존재하는걸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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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터키의 정치상황이 몇 년전의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것에 놀랐다. 정치풍자 세테풍자 이야기다. 아지즈 네신은 이스탄불에서 태어났고 터키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터키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란다. 계엄령이 선포된 정치상황에서도 권력의 압제에 굴하지 않고 글로써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고한다. 세계곧곧에서 아직도 독재자들이 존재하는걸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민주주의가 세상을 지배할것같은데 그렇지 못한 나라가 더 많은건 무슨이유때문일까?


일단, 웃고나서라는 제목자체가 역설적인 것 같다. 웃지 못하는 현실을 잠시 잊고 웃어라는 뜻일까 우리는 외메르 영감을 뽑지 않겠다. 이장선거에서 마을사람들은 다음 선거때 외메르 영감을 뽑지 않겠다고 비밀리에 단합을한다. 선거가 코앞까지 왔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에 자신들의 다짐을 주고받는다. 이렇게가면 드디어 외메르 영감은 이장으로 선출되지 않을 것이다. 마을사람들에게 하나둘씩 소송사건이 벌어지고 착한 얼굴로 외메르 영감은 마을사람들을 도와준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뒤 철썩같이 약속한 마을사람들은 언제 그런 약속을 했냐는 투표결과는 반대로 나온다. 그들이 지지를 약속한 누리씨는 단한표를 받고 사람들은 누리씨가 자신에게 투표를했다고 쑥덕거린다. 이때 누리씨는 자신은 외메르 영감을 찍었노라고 주장한다 그럼 한표는 누구것일까 여러분도 짐작했을 것이다. 사람들을 올아매고 교묘하게 회유한 외메르영감의 술수가 눈에 보이지 않는가 이건 제 삼자의 눈으로 봤을때나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건 당사자가 된다면 현실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바로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선동할 당근과 채찍같이 사용하고 하는 작태이다. 아지즈 네신은 유머러스하게 정치인들의 작태를 꼬집고 있다.


혁명은 아무도 모르게또한 비슷하다 혁명에 성공했지만 아무도 모르고 더구나 장마 때문에 성공한 혁명을 알리지 못하다. 더욱 웃기는건 여러곳에서 같은날 혁명이 일어났고 그들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기관을 접수하는데 중요한곳이 없다고 말한다. 정부기관이 모두 쓸모없는건 맞다 국민을위한 정부가 아니라면 필요없는 존재가 정부가 아닐까.


암울한 현실에서 정치를 풍자함으로 유머를 통해 웃음을 전달하는 아지즈 네신의 글은 터키국민들에게 한줄기 신선한 공기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세계곳곳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없는 그런 세상이 되는날이 언제쯤일까 모두가 행복한 그런세상을 꿈꾸는건 정말 꿈속에서나 가능할까 그리도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꼭 모두가 행복해 질수 있을거라 믿고 싶다.

r*******5 2011.04.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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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읽어보면 자꾸 찾게 되는 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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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대명사, 체 게바라가 표지에 있다.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어떤 혁명에 대한 유머러스한 뒷이야기겠거니 했다. 혁명이랄 것까지는 없더라도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로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소위 말해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지나치게 진지해서 유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책을 보았으니 그들이 갖추어야 할 유머에 대해 들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
"한 번 읽어보면 자꾸 찾게 되는 네신" 내용보기

 혁명의 대명사, 체 게바라가 표지에 있다.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어떤 혁명에 대한 유머러스한 뒷이야기겠거니 했다. 혁명이랄 것까지는 없더라도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로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소위 말해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지나치게 진지해서 유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책을 보았으니 그들이 갖추어야 할 유머에 대해 들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도 유머 감각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기에 항상 내 자신에게 불만을 가져오던 터였다. 이 책을 보면 유머 감각을 조금이라도 키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했던 게 사실이다. 헌데 소설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히 풍자적인 소설.

 흔히 소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은근히 감추고 독자가 그것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지즈 네신은 직설적이다. 너무 강하게 풍자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겠다. 나야 뭐, 문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비평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기 때문에 네신의 이러한 방식이 어떻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많은 사람들이 네신의 작품을 극찬했다고 하니 대단한 것만은 확실한가 보다. 모르긴 해도 네신이 그토록 위대하게 평가받는 이유는 그의 삶과 문학이 일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터키 국민들의 힘든 삶을 외면하지 않고 작품에 녹여냈으며 권력의 힘에 굴복하지 않았다지 않던가.

 터키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모습을 읽다 보면 과연 이게 터키의 이야기인지 지금 우리의 이야기인지 아리송할 정도로 우리에게도 유의미한 메시지였다. 주택난이 심각하고 집주인이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는 세를 주지 않으려 하며, 저소득층은 힘들게 살고 중산층도 갈수록 줄어든다는 이야기(<악몽>)을 읽으며 순간적으로 우리 작가의 작품이라고 착각했다. 터키의 속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어느만큼 날카로운지 모르겠으나 현실을 상당히 비판하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어느 한 사람의 인간성을 뻔히 알면서도 그의 힘과 뇌물에 그만 굴복하고 마는 첫 번째 이야기나 혁명을 했지만 아무도 모르게 했다는, 역설적이면서도 한심한 현실을 풍자한 두 번째 이야기는 바로 이 작가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뒤통수를 맞았던 것은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다>라는 이야기다. 국민을 위해 싸우다 감옥까지 갔다온 주인공이 일자리도 없이 변두리에서 사는데 그곳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이제야 알아주고 떠나지 말라고 간청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이야기는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네신은 이처럼 유머로 웃기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풍자로 사람들의 양심을 건드린다. 그가 하는 이야기가 직설적이든 터무니없든 생각할 게 많은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한 번 휘리릭 읽었을 때보다 다시 한 번 읽으니 훨씬 재미있다. 이래서 그의 작품을 한 번 읽어본 사람은 자꾸 찾는가 보다.



l*****8 2011.04.1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