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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은 어떤 책에서 위트(Wit)와 유머(Humour)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하늘을 쳐다보며 걷고 있다. 그가 진행하는 방향의 바로 앞에는 바나나 껍질이 놓여져 있다. 카메라는 하늘을 쳐다보며 걷는 사람과 바나나를 교대로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만일 나중에 이 사람이 바나나 껍질에 미끌어져 꽈당- 하고 넘어지는 이는 '유머'인데, 저러다 미끄러질지도 모른다고 마음을 졸이고 그를 관찰하는도중 돌연 그가 그 앞에 놓인 맨홀에 쏙- 빠져버린다면 이는 '위트'라는 것이다. 적절한 예라고 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느낌만은 제대로 전달한 것 같아 꽤 인상깊게 읽었었나보다.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는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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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제게 왜 풍자작가가 되었느냐고 항상 묻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절 풍자작가로 만든 것은 저의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눈물 속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실 나는 오르한 파묵을 좋아해서 터키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케이스인데, 오르한 파묵 역시 아지즈 네신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이 책에 수록된 '황소가 승자다'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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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메흐멧 누스렛(Mehmet Nusret)으로, 1915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예술 아카데미에서 문학 공부를 하였다. 졸업 후에는 직업 군인으로 근무했는데, 이때부터 '베디아 네신'이란 필명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4년 육군 중위로 퇴역한 뒤, 신문 기자를 거쳐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신문 기자 시절, 〈카라괴즈〉 등의 신문에 발표한 풍자 소설과 콩트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 희곡, 평론 등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백여 권이 넘는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비롯해서 34개국어로 번역되었고, 이탈리아,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풍자 문학상을 휩쓸기도 하였다. 1972년에는 고아들에게 교육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네신 재단'을 설립했으며, 1995년 사망 후 유언에 따라 그의 작품에서 발생되는 모든 인세가 이 재단에 기부되고 있다.
-------------------------------------------------------------------------------------------- 처음 그를 만나게 된 것은, 그의 우화집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를 보고서부터였다. 우화 속에 등장한 수많은 동물들은 어리석인 인간을 대표하는지라 내용은 참혹할지라도 읽고 있노라면 싱긋이 미소를 지어지게 하는 그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수록단편 중 대표작인 「위대한 똥파리」가 제일 마음에 와닿았는데 한 우물을 우직하게 파는 인간은 어쩌면 실현가능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무식하게 달려드는 똥파리와 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당나귀 표지가 귀여워서 보게 된 책이었는데, 그렇게 아지즈 네신과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읽고 나서 마음에 와닿는 반향이 커서 작가가 누구인지 머릿속에 기억해두려고 펼쳐들었던 그는, 내가 처음 생각했던 일본인이 아니였다. 일본소설이 우리나라 소설보다는 유쾌하게 울림을 줘서, 혹은 이름이 일본 이름 같아서 그렇게 추측했는데, 실은 터키 작가였던 것이다. 여러 모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적 환경에서 살아온 나라이다 보니까 기본적인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소 비슷한 경향을 띠는구나 생각했었는데,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가 한창 미디어 매체에서 터키는 우리와 형제 나라 어쩌구 했던 때라 상당히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서 봤던 책이 회고록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가 없다』였고, 그 책은 그가 썼던 작품 때문에 유배당했던 경험을 정리해놓은 것으로 인간의 약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강인한 정신을 볼 수 있었다. 그와 비슷한 작품이 이 단편집에 하나 수록되어 있는데, 다 읽고 나면 허탈한 웃음이나 어이없음만 나올 만큼 인간의 본성은 나약하고 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 내가 그를 알게 된 책처럼 말랑말랑한 우화나 소설류가 아니였기에 그에게서 내가 기대했던 바는 충족시켜주지 못했었다. 냉철하고도 매력적이면서도 절대 방향성을 잃지 않는 그의 풍자를 마음껏 보고 싶었는데 그의 회고록에는 그런 부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쉬웠던 것!! 그래서 그의 진정한 소설적 묘미를 보고 싶다면 역시 소설이 제일이다. 그래서 보게 된 소설이 바로 이 책, 『일단, 웃고나서 혁명』 이다. 이 책은 짤막한 단편집으로 총 열세 편의 단편이 모여 있다. 책 제목처럼 분명 혁명적인 내용은 있지만 그 수준이 미미하거나 조잡하여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 속에는 터키의 독재정치나 가난한 생활을 그대로 드러나기도 해서 안타까운 면도 분명 느낄 수 있지만, 그런 모습에서 우리 과거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 한편으로는 애틋하기도 했다. 언젠가 신문인지 뉴스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값 없이 얻어진 것이 아니라 피 값을 내고 쟁취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 민주주의가 훨씬 잘 지켜지고 소중하게 여긴다는 내용을 들었거나 읽은 적이 있다. 한 번도 내 나라에 대해서 그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던 평가였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선조들은 민주화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후손들이 그 민주주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을 뿐 그들은 충분히 제 할 일을 다 하셨다. 그래서 다른 독재 정권 아래에서 놓인 국민들은 우리나라를 롤모델로 제시하며 혁명을 준비한다고도 하셨다. 원래 가까이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은 잘 느끼지 못한다고들 하던가. 이렇게 소중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일 좋았던 것은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다」 라는 단편인데, 독재 정권 아래에서 투쟁하며 민주주의를 일구려고 했던 한 재야 정치인이 감옥에서 출소한 후에 돈이 없어 시내 중심가에서 방을 얻지 못하고 아주 구석진 시골로 이주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변두리 초라한 집에 방을 얻고 돈을 벌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결국 일자리를 못 얻어서 방세라도 아끼기 위해 친구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 같이 살아가려고 마음먹지만, 주변에 있는 찻집 주인, 청과물 주인, 구멍가게 주인이 가지 말라고 만류해 그 자리에서 정착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그 때 이 정치인은 시민들이 자신이 이제껏 싸워온 자유에 대해서 인정해준다는 생각했다는 것이 가장 슬펐다. 어쩜, 그렇게 순진할 수가 있을까. 결단코 그런 일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재야 정치인이 나중에 그 내막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속내는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도 안 간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풍자를 사용해 가장 아프고 가장 은밀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는 아지즈 네신의 소설은 말해서는 안될 것이 많은 요즘 시대에 더욱 각광을 받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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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6공이 들어섰을 때 <대통령 아저씨 그게 아니에요>, <영부인 마나님 해도 너무해요> 등의 “정치 풍자 소설”이 유행했었다. 그중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한 콩트를 소개하자면 성(姓)인 “盧”보다 “물”로 더 유명했던 대통령이 군사정권의 유산인 “각하(各下)” 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고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이 어느 시골 마을을 방문했을 때 시골 촌부(村夫)가 대통령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각하”, “각하” 호칭을 하자 손사래를 치면서 하지 말라고 말렸다. 딱히 뭐라 부르기 난감한 촌부, 대통령이 마을을 떠나자 “노씨, 잘 가요!” 라고 외쳤고 그날 이후 촌부를 봤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아마도 비판의 목소리를 낼라치면 저 콩트에서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던 그런 서슬 퍼런 군사 정권 시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대나무 숲에서 소리조차 칠 수 없었던 힘없는 국민들이 그저 풍자 소설 형태로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은밀히 주고 받던 이야기들이 대통령 직선제로 숨통이 터지면서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와 인기를 끌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이후로 근 20년 - 그동안 풍자소설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 관심 밖이었다는 것이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 이 넘도록 딱히 정치 풍자 소설이라 부를 만한 책들을 접해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재미있는 정치 풍자 소설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터키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풍자 문학의 거장이라는 아지즈 네신(Aziz Nesin)의 <일단, 웃고 나서 혁명(원제 Ihtilali Nasil Yaptik / 푸른숲 / 2011년 3월)>이 바로 그 책이다. 터키 작가라고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르한 파묵” 정도만 알고 있는데 아지즈 네신은 생소한 이름인지라 작가 이력부터 살펴보았다. 출판사 작가 소개글에 따르면 아지즈 네신(1915-1995)은 터키의 대표 지성知性이자, 터키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로 터키인 중에서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고, “완전히 아지즈 네신의 소설이군”이라는 관용어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작품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지식인으로서도 명성이 높다고 하는데, 터키의 폭력적인 정권, 특히 언론인에 대한 정부의 검열과 탄압을 정면으로 비판한 작품들로 내란 선동이나 좌익 활동 죄목으로 250번 이상 재판을 받았으며 유배와 수감생활을 반복하였다고 하니 지난 2010년 12월에 작고하신 ‘실천하는 지식인의 표상’이자 ‘사상의 은사’로 불리셨던 고(故) 리영희 선생님이 연상되었다. 혁명투사로 이름 높은 “체게바라”가 웃고 있는 익살스러운 표지 그림만으로도 책이 어떤 성격인지 잘 알려줄 것 같은 표지를 펼쳐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15~20 페이지 분량의 짤막짤막한 13편의 콩트가 실려 있다. 첫 번째 편인 <우리는 외메르 영감을 뽑지 않겠다>에서는 예전부터 마을 이장 자리를 도맡아 해온,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고민을 안기기 일쑤인, 아주 구제불능의 인간인 외메르 영감을 마을 주민들은 이번에야말로 뽑지 말자고 이구동성으로 약속하지만 선거일에 이르러 그에게서 소송이며 병원 치료 등의 도움을 받게 되자 결국 그를 다시 뽑는데 오히려 외메르 영감만이 마을 주민과의 약속을 지켜 자신의 경쟁자에게 투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엉뚱하고 기가 막힌 이야기인 <혁명이, 아무도 모르게> 편에서는 일단의 세력이 혁명을 일으켜 정부를 완전히 손에 넣었지만 하필이면 비가 오는 바람에 라디오 방송국은 방송을 못하고, 전화는 불통되고, 도시가스는 끊기고 자동차를 포함한 모든 교통수단이 마비되어 혁명을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게 되는데 현 집권 세력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쫓겨나지 못한 상황에 아쉬워한다. 그래서 작가는 다음 혁명을 일으킬 세력은 혁명 전에 꼭 현 정권에 알리고 나서 혁명을 일으키기를 충고한다. <민주주의 영웅되기, 참 쉽죠?> 편에서는 지방 신문사 기자인 나는 당나귀가 양을 낳았다, 하늘에서 생선이 쏟아진다, 여자들이 반은 물소, 반은 낙타를 닮은 괴상한 생명체를 낳았다더라, 하늘에서 비행접시나 날아다는 담배가 관측되었다와 같은 허무맹랑한 기사를 써왔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가 자신의 주를 방문한 고위공무원에 대하여 거짓말 한마디 보태지 않고 그대로 기사를 썼다가 민주주의의 영웅으로 체포되어 교도소로 가게 된다.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다> 편에서는 힘들게 감옥살이를 마치고 도시 변두리 마을마다 더 멀리 떨어진 빈민촌 지하 셋집에 살게 된 혁명가, 그가 오고 나서 얼마 후 무허가촌 앞이 작은 장터로 변하고 행상인들이 모여들면서 활기차고 북적거리게 된다. 월세와 외상값이 밀려 변변치 않지만 가진 물건을 팔아 이사를 할까 고민 중인 그에게 구멍가게 주인, 청과물가게, 찻집 주인이 찾아온다. 그가 이사하는 것을 말리는 그들을 보며 자신이 국민을 위해 어떻게 일했는지 비로소 국민들이 알아주나 보다 하고 감격하지만 사실은 그를 감시하러 온 경찰들이 북적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시장이 활성화된 것. 결국 그는 가난한 그들을 위해 남기로 결정한다. 그 외에도 문명의 상징이 되어 버린 압력솥에 얽힌 이야기인 <문명 만세!>, 터키 외진 시골에 미국인 손님들이 방문하면서 겪게 되는 일대 소동을 그린 <우리 집에 미국인 손님이 온다>, 암구호를 멋대로 바꿔 부르고 - “옷”을 “옷가지”로, “여자”를 “가시나”로 - 자신의 소대장임을 알면서도 암구호를 대지 못한다고 사령관의 호출에도 막무가내로 막아서는 엉뚱한, 이런 병사가 부하라면 당장 총살 시켜버리고 싶었을 그런 병사 때문에 장교 진급에 누락된 군인 이야기 <암호가 뭐기에>, 자신이 우승하지 못할 바에야 경쟁자가 아니면 누구라도 우승해도 괜찮다는 이기심 덕분에 동물의 왕에까지 올라가는 황소 이야기 <황소가 승자다> 등 기발하고 엉뚱하면서도 한번쯤은 곱씹어 보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풍자라는 것이 주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가와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 문학이라고 한다면 이 책 또한 작가의 모국인 터키 정치상황을 꼬집는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터키 현실을 꼬집는 이야기 일 텐데 전혀 낯설지가 않은 것을 보면 정치 사회의 모순이라는 게 터키나 우리나 그다지 다를 것 없는, 시쳇말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은 것인가 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풍자는 문학·회화·영화를 불문하고 퇴폐한 시기나 언론이 억압당하기 쉬운 시기에 걸작이 나오는 경향이 많으며, 이로 인하여 정치나 세상 돌아가는 방향을 불건전에서 건전한 쪽으로 돌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데(네이버 발췌), 그럴싸할 풍자 문학이 나오지 않는 지금은 그만큼 사회가 건전하며 언론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자유로운 민주화(民主化)를 이뤄냈기 때문일까 아니면 민주주의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한탄이 여기저기 나오는 것처럼 어쩌면 가장 고차원의 비난이라 할 수 있는 풍자가 아직도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좀 더 직설적이고 거친 비난이 필요한 그런 시기일까?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현 정치 상황을 소재로 했다고 화제가 되고, 정권과 코드가 다르다고 방송을 그만두게 했다는 논란이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으며, 아직도 촛불 시위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좌파 단체가 사주한 불손한 데모라는 색깔 씌우기를 하는 것을 보면 풍자는 우리에게는 사치인, 좀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외쳐야 하는 그런 사회인 것 같아 괜히 서글픔마저 느껴진다. 언젠가는 우리도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어깨에서 힘을 빼고 핏대가 서있는 목을 좀 쉬게 하여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사회를 꼬집을 수 있는, 아지즈 네신의 이 책 처럼 멋진 풍자와 해학이 담긴 소설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오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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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즈 네신(1915-1995)은 터키의 풍자 문학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작가이다.터키 사람들은 풍자 문학사를 논할 때,아지즈 네신의 문학 작품들을 기준으로 전기,후기를 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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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문학사의 거장 아지즈 네신.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그의 글은 정말 술술 읽힌다. 터키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에 무지한 것도 책을 읽어나가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하긴, 그러니까 그의 책이 34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겠지. 항간에 유행하는 일종의 정의코드 인문서적에 버금갈 만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정의를 짧디 짧은 이야기 속에 심어놓으면서도 전혀 무겁지 않게 표현하는 대중적인 필치가 무엇보다 돋보인다. 그래서 그가 살던 시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이 이야기들은 유머스러하면서도 강한 울림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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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이고 혁명도 웃고 난 뒤에. 『일단, 웃고 나서 혁명』이 언제 어디서건 유효성을 갖게 된다면 그건 풍자라는 맥락에서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현재 <민상토론>이라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꼭지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 또한 매한가지. 씁쓸함이 배가되는 건 그 꼭지가 '정치판'을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판을 마음껏 풍자할 수 없는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까닭에서다. 아지즈 네신 본인이 이러한 글로 수감되기도 한 걸 보면 풍자와 웃음의 자유가 갖는 파급과 이중성이 더더욱 부각된다). 수록된 첫 글 <우리는 외메르 영감을 뽑지 않겠다>는 동네 이장 선거를 다룬다. 오랫동안 이장이었던 외메르를 갈아 치우자는 주민들의 결심이 굳은 가운데, 저마다 각자의 이유로 외메르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모두 소송이다 뭐다 하며 어려움 하나씩을 격고 있고 외메르만이 그 해결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행여 단합이 깨질까 조심조심 외메르와 접선(!)하려는 주민들의 의지와는 달리 결국 그들은 한날한시 외메르 영감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고, 절대 외메르를 뽑지 않겠다는 말은 선거 당일 무색해지고 만다. <혁명이, 아무도 모르게>의 모습은 혁명을 꾀하는 자들이 성공한 후 그 사실을 알릴 길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이야기. 심지어 자신들이 꼭 혁명을 해야 한다는 기치 아래 다른 혁명 단체를 발견한 뒤 그들을 체포하고 나서야 기어이 자신들만의 혁명에 성공한다. 그런가하면 <모든 것은 주지사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는 전화통만 붙잡은 채 서로 일처리를 미루는 공무원들을 꼬집는다. 사실 '웃음의 자유'는 저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도 이야기된다. 거기에서 늙은 수도사 호르헤는 웃음을 싫어한다. 왜? 웃음은 두려움을 없애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없애면 신앙도 없다. 악마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하나님도 필요 없으니까 말이다.(네이버캐스트, 진회숙) 웃음이 끊기고 헤게모니를 쥔 자에 대한 풍자마저 사라진 세계가 어떨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우리 사회가 공포로 가득 차고 황폐해지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외국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런저런 가재도구를 집으로 들이는 이야기 <우리 집에 미국인 손님이 온다>에서처럼 쓸데없는 습성으로 점철된 사람들은 비단 소설 속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며, <지붕 위에 미친놈이 있다>와 같이 끊임없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작자들 또한 텍스트 안에만 갇혀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러한 담론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풍자라는 것이 웃음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풍자는 풍자 그 자체가 주어가 되어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을 공격해야만 한다. 때로는 계몽의 성격을 띠면서, 이를테면 (이런 표현은 쓰고 싶지 않으나) 하부(계층)에서 상부(계층)를 공격하는, 그래서 특히 기득권과 그 언저리에서 어슬렁거리는 대상을 깎아내리고 우습게 만들어 조소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풍자가 만들어내는 웃음은 무언가를 깨부수고 공격함으로써 사회를 밝게 만들기도 한다. A가 B를 공격하고 조롱거리로 만드는데 사회가 밝아진다? 일견 이상하게도 들리지만 적절한 시의성을 지닌 풍자가 잘못된 것(들)을 꼬집는다면 자연스레 수긍이 간다. 왜? 앞에서 언급했듯 웃음은 두려움을 없애기 때문에, 기득권(층)을 조롱해 거기에서 웃음과 해학, 나아가 경종을 울려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깨닫게 한다면 더 이상 사람들은 자신들을 짓누르는 상부의 무게에서 벗어나려고 할 게 빤하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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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터키의 정치상황이 몇 년전의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것에 놀랐다. 정치풍자 세테풍자 이야기다. 아지즈 네신은 이스탄불에서 태어났고 터키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터키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란다. 계엄령이 선포된 정치상황에서도 권력의 압제에 굴하지 않고 글로써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고한다. 세계곧곧에서 아직도 독재자들이 존재하는걸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민주주의가 세상을 지배할것같은데 그렇지 못한 나라가 더 많은건 무슨이유때문일까? 일단, 웃고나서라는 제목자체가 역설적인 것 같다. 웃지 못하는 현실을 잠시 잊고 웃어라는 뜻일까 우리는 외메르 영감을 뽑지 않겠다. 이장선거에서 마을사람들은 다음 선거때 외메르 영감을 뽑지 않겠다고 비밀리에 단합을한다. 선거가 코앞까지 왔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에 자신들의 다짐을 주고받는다. 이렇게가면 드디어 외메르 영감은 이장으로 선출되지 않을 것이다. 마을사람들에게 하나둘씩 소송사건이 벌어지고 착한 얼굴로 외메르 영감은 마을사람들을 도와준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뒤 철썩같이 약속한 마을사람들은 언제 그런 약속을 했냐는 투표결과는 반대로 나온다. 그들이 지지를 약속한 누리씨는 단한표를 받고 사람들은 누리씨가 자신에게 투표를했다고 쑥덕거린다. 이때 누리씨는 자신은 외메르 영감을 찍었노라고 주장한다 그럼 한표는 누구것일까 여러분도 짐작했을 것이다. 사람들을 올아매고 교묘하게 회유한 외메르영감의 술수가 눈에 보이지 않는가 이건 제 삼자의 눈으로 봤을때나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건 당사자가 된다면 현실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바로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선동할 당근과 채찍같이 사용하고 하는 작태이다. 아지즈 네신은 유머러스하게 정치인들의 작태를 꼬집고 있다. 혁명은 아무도 모르게또한 비슷하다 혁명에 성공했지만 아무도 모르고 더구나 장마 때문에 성공한 혁명을 알리지 못하다. 더욱 웃기는건 여러곳에서 같은날 혁명이 일어났고 그들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기관을 접수하는데 중요한곳이 없다고 말한다. 정부기관이 모두 쓸모없는건 맞다 국민을위한 정부가 아니라면 필요없는 존재가 정부가 아닐까. 암울한 현실에서 정치를 풍자함으로 유머를 통해 웃음을 전달하는 아지즈 네신의 글은 터키국민들에게 한줄기 신선한 공기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세계곳곳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없는 그런 세상이 되는날이 언제쯤일까 모두가 행복한 그런세상을 꿈꾸는건 정말 꿈속에서나 가능할까 그리도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꼭 모두가 행복해 질수 있을거라 믿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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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대명사, 체 게바라가 표지에 있다.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어떤 혁명에 대한 유머러스한 뒷이야기겠거니 했다. 혁명이랄 것까지는 없더라도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로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소위 말해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지나치게 진지해서 유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책을 보았으니 그들이 갖추어야 할 유머에 대해 들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도 유머 감각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기에 항상 내 자신에게 불만을 가져오던 터였다. 이 책을 보면 유머 감각을 조금이라도 키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했던 게 사실이다. 헌데 소설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히 풍자적인 소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