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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탐탁치 않게, 불쾌감만 남은 방송이 있었다.
무슨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인걸로 기억하는데,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밀웜같은 식용애벌레나 식용굼벵이를 먹는 장면을 영상으로 보여주었고 방송 말미에 우리나라의 식용개 문화까지를 소개하면서, 서로 다른 식문화에 대한 설명없이, 다른 인종에 대한 서구인들의 문화적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방송이었다. 은연중에 미개인이라 교묘하게 어필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교화의 대상이라는... 정작 본인들은 달팽이요리가 고급요리라 자화자찬하고 강제로 물을 먹여 간을 붓게 만든 거위간 요리의 생산과정은 숨기면서........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영상을 제작해야 시청률이 올라가고 지속적인 제작이 가능하다는 미디어의 특성이라지만, 한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속내가 훤히 보이는 프랑스 "국영방송"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점에서 Claude Levi-Strauss의 야생의 사고는 인류학자의 관점에서 그가 속해있는 서구인들의 사고가 아닌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서구인이 바라본 자신들의 미개문화에 대한 비판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서구문화에 대한 사대주의가 팽배한 현실 속에, 외국인들을 초청해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우리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그들에 환호하고 그것이 곧 우리문화의 자부심이라 착각하고 있다. 시청률이 좀 나오는 것 같으니 같은 형식의 방송이 여기저기 난무한다.
정작 미개한 것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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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 제4장, 토템과 카스트 여성의 교환과 음식물의 교환은 사회집단의 상호결합을 견고하게 하거나 과시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따라서 양자가 공존하거나 따로따로 존재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이 두 종류의 교환은 같은 유형의 방법들이면서 일반적으로는 한 가지 방법의 두 면이라고 볼 수 있다. 양자는 상호보완적 관계일 수도 있고 양자택일적 관계일 수도 있다. 상호보완적 관계일 경우, 둘 다 실제적 기능을 수행할 때가 있고, 한쪽은 기능을 맡고 다른 쪽은 상징적으로 그 기능을 표현할 때가 있다. 양장택일적 관계에선, 둘 중의 하나가 전 기능을 완수하든지 상징적 표현만 하는데 후자의 경우 여성의 교환이나 음식물의 교환이 수반되지 않고서도 일어날 수 있다. 어떤 민족이 토테미즘과 아울러 외혼제를 행한다면 이는 그 민족이 토테미즘에 의해 이미 수립된 사회의 결속을 더 한층 하나의 체계로 강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외혼제는 생리적, 사회적 친족성이라는 요인을 통해 토테미즘에 연결되며, 범친족성이 결여되어있으므로 토테미즘과 대립되지도 않으나 서로 다른 것이다. 토테미즘과 다른 기초 위에 선 일반 사회에서도 외혼제는 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이 두 제도의 지리적 분포가 일치하는 곳은 지구상에 일부 지역에 불과하다(179-180쪽). 그러나 외혼제는 완전히 결여되는 경우는 없다. 왜냐하면 집단의 영속은 여성에 의해이뤄지며 혼인 교환만이 항상 실질적 내용을 갖는 유일한 교환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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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란,
자연(自然,스스로 그러한)에 대한 즉 자신을 포함한 주변 환경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펼치는 사고체계말한다. 지은이는 뤼시앙 레비브륄의 '미개심성'과 '미개사회의 사고'에서 미개인의 사유라는 인식에 대해, 야생의 사고라는 개념으로 브륄의 이론을 논박하며 인식에 대한 전환을 주장한다. 즉, 브뤌이 말하는 이른바 미개인의 사유, 미개인의 심성 등은 문명인의 지적 조작이나 논리적 사고와는 이질적인 것으로서 '전논리적인 것'으로서 규정되고 모순률이나 동일률을 범하고 모든 것을 신비적으로 연결시키는 융즉률이 지배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져왔다. 지은이는 이러한 인식은 단지 서양 근대의 과학을 중심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편견이라고 본다. 미개인의 사유(비과학적, 비논리적인이라는 인식)의 바탕, 야생의 사고는 일관된 질서와 분류를 요구하는 구체의 과학이 존재하며, 공통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주술적 사고(신화,의례, 토템, 전설) 와 근대적 과학적 사고 사이가 크게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토데미즘/문명의 사유? 지은이는 브리콜뢰리(le bricoleur, 수선공, 손재주꾼)와 토테미즘의 예를 들어 신화적 사고가 이미지(표상)와 개념 사이에서의 일반화를 지향하는 구체의 과학에 기반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해명을 통해 그는 '야생의 사유/문명의 사유, 주술/과학, 감각의 논리/오성의 논리, 구체의 과학/추상의 과학을 우열의 관계가 아닌 대등의 관계로 바꿔놓음으로써 구조주의 이후 등장하게 되는 여러 사조들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은 이런 개념과 내용들에 관한 이야기다. 상당히 난해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문장 하나만을 떼어놓고 보면, 번역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앞 뒤 맥락을 신경써서, 읽어내야 한다는 다소 피곤한 작업을 해야하는 점에서 어려운 서책이라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리 속을 헤집어, 복잡한 사고틀을 리셋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적어도 나에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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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 자연(自然)스스로자, 그럴연,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인데, 도덕경에 '自然'이 수도 없이 나온다. 그러나 도덕경의 '자연'은 nature의 번역어인 '자연'과 의미가 다르다. 도덕경의 '자연'은 '자연스럽게'나 '자연히' 등 '스스로 그러함'의 의미이다. 대상화된 자연이 아니다. 자연을 보호하자는 자연은 대상화 된 자연, 내가 아닌 무엇인 대상이 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자연 감각을 기초로 해서 전개되는 사고체계로, 신화, 의례, 토템, 등을 통해 나타난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러한 유의 사고체계는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인 '미개의 사고'로 간주되어 서구 문명의 상대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서 당시 뤼시앙 레비-브륄의 "미개사회의 사고" 등에서 보이는 인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미개인의 사고가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생각은 서구 중심주의가 만들어낸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고 말한다. 미개인의 사고와 문명인의 사고는 사물을 분류하는 방식과 관심의 영역에서 차이가 있을 뿐, 질서와 체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은이가 '야생의 사고'라는 표현으로 기존의 '미개의 사고'를 대체한 것도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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