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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차고 갸륵한 독립명랑소녀, 차율미 파이팅!
청소년을 둘러싼 가족과 학교 사회 폭력의 심각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소설은 그 문제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으면서 외로운 분투를 하는 청소년을 보듬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무리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으면 삶은 유지된다. 그리고 노력 여하에 따라 찬란하게 꽃필 수 있다. 작품 속의 율미가 바로 그렇다. 오늘은 꽃이 아니어도 내일은 꽃으로 피어날 율미의 노래, 당차고 갸륵한 율미를 통해 꿈과 희망을 본다. 또한 멋진 문장에 감탄! 했다. 드디어 내 가슴속의 둑이 무너진다. 물소리 바람소리 소쿠라지는 폭포소리 우레와 같은 파도소리……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하나로 뭉쳐 어디론가 나를 이끌고 있다. 이미 뜨거워진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하고, 혈관을 타고 흐르던 피가 거침없이 용솟음친다. 갑자기 몸이 땅으로 꺼지는 아찔한 공포, 눈앞의 모든 것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삶이란 이렇듯 아슬아슬하고 아찔한 곡예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노랗게 부서지던 봄날의 햇살과 사월의 잔인한 바람, 꽃덤불 속의 기이한 열기, 지루한 장마와 괴물 같은 폭우…… 내 마음속의 악마와 귀신들, 그리고 내가 잉태되었던 날의 달빛 여인숙, 이미 지워져버렸거나 혹은 지워야 할 얼굴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사라진다. 비로소 나의 열일곱 살은 아스라한 봄날의 서커스처럼 멀어져간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레이저 광선을 쏜 듯 공터 한 복판에 빛이 반짝하더니 하늘 한 지점에 선명한 그림자가 나타난다.
독립명랑소녀, 파이팅! ……이제는 용기를 내는 거야 껍데기가 되어갈 순 없잖아 에에 세상의 끝에서 너에게 손짓하는 절망의 늪을 떠나서 꿈의 미래 속으로 사람들이 만들어간 거짓된 모습으로 단 한번뿐인 니 삶을 살아갈 순 없잖아 바로 너야 껍데기가 아니야 그래 이제 살아 숨 쉬는 거야 예에 예에…… 몸속에서는 여전히 노래가 출렁이는데 눈앞이 어룽어룽하다. 새끼 원숭이를 업은 솔미가 박수를 치고 있다. “언니야, 오디션 나갔으면 좋았을 건데.” “그런 데 나가면 뭐해? 노래는 이런 데서 해야 제 맛이지.” “근데 아무도 안 보잖아.” “너 있잖아. 쟤도 있고. 열혈관객 둘이면 충분하지. 많다고 다 좋은 건 아냐. 안 그래?” “그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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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카타르시스‘독립명랑소녀’라는 제목만 보고 소설의 분위기가 밝을 것 같았다. 몹시 우울한 날 책을 읽게 되었는데 밝은 소설을 읽으면서 기분전환을 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막상 읽고 보니 산동네에 사는 소녀의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소설은 어둡고 우울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슬프고 애잔하고 또 가슴 저리게 따뜻했다. 감동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은, 책을 읽는 동안 몇 번 울었다. 카타르시스라고 해야 할까. 울고 나니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아주 아주 슬픈 음악을 들었을 때처럼. 주인공 율미가 꼭 나 같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율미가 노래를 좋아하듯 나도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율미처럼 그것을 할 수 없어서 좌절하기도 했다. 한때는 율미처럼 오해를 받고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해 가슴앓이를 한 적이 있다. 죽은 것은 아니지만 친한 친구와의 이별로 인한 상처를 아직 갖고 있기도 하다. 산아라는 아이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했다. 참 멋진 아이인데 죽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하지만 율미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기에 위안을 한다. 산아가 좋아하는 시들이 나도 좋아졌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마음과 동화되는 것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그것은 아주 놀라운 기쁨이자 고독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책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옆방 할머니는 참 재미있는 캐릭터다. 원숭이를 아들로 착각하다니. 할머니 자체는 웃기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지만 원숭이와 살아가는 모습은 감동을 주었다. 율미의 꿈속에 나타난 할머니의 춤은 정말 멋있었다. 또 새끼 원숭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장면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율미와 할머니의 밀고 당기는, 지칠 줄 모르는 싸움, 그 와중에 질투까지 하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아졌다. 그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된다고 들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그분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동물에 대해서도 그렇다. 동물학대가 난무한 세상인데, 이 소설의 인물들처럼 원숭이를 동물을 사랑한다면 동물들도 행복해질 것이다. 또 하나, 마지막에 가서 율미가 오디션에 가지 않고 할머니를 실은 구급차에 오르는데 완전감동이었다. 책을 덮고 만약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선택을 한 율미에게 박수를 보낸다. 율미는 오디션에 나가지 못했지만 오디션에서 우승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노래도 인간이 하는 것이고 결국 인생이 담기지 않으면 진정한 노래가 아닐 것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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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한번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민감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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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의 생각에 웃었고, 박수도 보내며 응원도하고 안타까워하다가 율미의 힘들어지는 상황에는 마음이 아파 눈물이 흘렀다. 아마도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율미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자신의 빛을 믿을 것이고, 서로의 외로운 마음을 감싸주는 친구가 곁에 있어 율미의 독립명랑이 계속 될 것이고, 웃음이 되어주는 노래가 있어 행복 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또한, 옆집할머니나 서커스에서 탈출하여 새끼를 지키던 원숭이도 모두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이라는 것을 느끼고 함께 미소 지으며 지내라고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말하는 독립영양인간처럼 마음속에 자신의 희망을 에너지로 만들어 모두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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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소개로 '독립명랑소녀'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 차율미는 자의든 타의든 독립적으로 살고 있는 소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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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독립명랑, 명랑할 만한 근거나 요소가 없다고 해도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명랑하게 산다는 산아의 발상만은 놀라웠다.] 율미에게, 산아에게 세상은 명랑할 만한 근거나 요소가 없는 곳이었다. 아니, 명랑할 수 없는 근거로 가득찬 곳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는 돈을 벌러 엄마의 고향으로 떠났고, 율미는 동생을 보살피며 반쯤 실성한 옆 방 할머니와 티격태격한다. 산아는 물질적 풍요를 더없이 누리고 있지만 사랑이 빈곤한 가정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산아는 율미에게서 명랑할 만한 근거를 찾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율미는 옆 방 할머니에게서, 아빠에게서, 미셸에게서, 솔미에게서, 시우오빠에게서, 산아에게서, 그리고 노래에서 명랑할 만한 근거를 찾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사람 때문에 지독한 우울에 빠지고 절망하지만 결국 다시 사람에게서 삶의 희망을 찾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면서 없는 살림에도 부모님은 백과사전, 세계문학전집, 한국문학전집을 사주셨다. 그 책들은 나의 손길을 거의 받지 못한 채 그저 장식용으로만 자기 역할을 다 했다. 책 읽기를 싫어했던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쯤 당시 유행이던 ‘명랑소설’류의 소설 읽기에 푹 빠졌다. 말 그래도 명랑한 아이들의 모습으로 가득 찬 소설이었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영양가는 별로 없는 것들이었다. 이 소설은 대책 없이 명랑하지 않다. 오히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 장면처럼 비 내리는 풍경 속에 위치해 있다. 그러하기에 율미의 명랑함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비 내리는 현실 속에서 길어낸 명랑함,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길어 올린 명랑함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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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좋은 소설 읽었습니다. 재미와 깊이, 문체 모두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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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할만한 근거나 요소가 없어도 명랑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소녀 차율미의 이야기를 읽으며 삶의 그늘에 대해 돌이켜보았다. 원하지 않아도 겪게 되는 삶의 수많은 그늘들... 특히, 마지막 장면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토록 열망했던 보컬 오디션을 포기하고 그토록 아웅다웅하던 옆방 할머니의 죽음을 지키는 율미. 이런 게 바로 휴머니즘이 아닐까. 관중도 없는 빈 공터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는 율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