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 surprised at the litarary art of victor hugo, so impressed by the great story of les miserables. whenever i have heared some persons mention jean valjean, i guessed that it must be nothing but a good tale. fortunately i met the novel a few months ago. from then on my daily life was changed by the great. to read the novel in english needs some perseverance. however, i was deeply absorbed in the attracting characters. i sat late in midnight and got great impression many times. merciful myriel, desparate jean, pitiful fantine, dogged javert, courageous marius, and so on. victor hugo made the magic of mixing up with all facts and producing the most moving history. my encounter on the tale is the unforgettable and blessed. i think every men born to the world have to meet it and then die. les miserables was dedicated for unfortunate people. les miserables shall make readers happy for ev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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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을 읽고 2014.8.8
원서 읽기를 통해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내가 권하고 싶은 책 1순위가 바로 이 <레 미제라블>이다. 자칫 1200여 페이지라는 분량에 압도되어 읽어보기도 전에 포기한다면 정말 큰 손해를 보는 것이다. 오히려 다른 클래식 소설 몇 권을 읽는 것 보다 훨씬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동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지속될 만하다. 문장도 비교적 까다롭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은 내용이 가지고 있는 ‘감동의 힘’에 있다. 한 인간이 용서를 통해 구원을 받은 후 현실의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 승리의 이야기에 우리도 모르게 빨려들어가기 때문이다.
<레 미제라블>은 그동안 여러 차례 영화와 연극, 뮤지컬로 만들어진 걸작이지만, 원서 한 권을 읽을 때의 감동을 모두 담아내는 데는 모두 실패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 개봉해서 인기를 누린, 휴 잭맨과 앤 헤서웨이가 출연한 뮤지컬 영화도 재미있게 잘 만들어졌지만 원작의 감동을 한정된 시간과 형식으로 담아내기에는 역시 한계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아마 앞으로 만들어지는 다른 형식들도 마찬가지의 길을 걸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불어를 모른다는 사실이 정말 슬펐다. 원작은 불어판이니까.
한 때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는 말이 유행한 적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장발장에게 꼭 들어맞는 표현이다. 19세기 중엽 파리에서 그가 훔친 것은 빵 한 조각이지만, 21세기 한국의 장발장은 고철을 훔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혹, 장발장의 이야기를 19세기 프랑스의 어느 지지리도 가난한 남자의 도둑질 이야기로만 알고 있다면 그것은 코끼리의 코를 만지고서 코끼리를 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이야기는 21세기를 사는 현대에도 변함없는 인생의 화두를 던지는 영원불멸의 작품이다. 즉,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것은 타고난 본성인가 아니면 사회 환경인가, 법과 법의 심판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인간을 구원하는 힘이 사랑과 용서라면 그것이 이 세상에서 어떤 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가라는.
조카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해 빵을 훔치는 밑바닥 인생의 주인공 장발장, 사랑하는 대학생 귀족 청년에게 몸을 주었다가 버림받고 미혼모가 된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인 팡틴, 엄마와 떨어져 남의 집에 더부살이를 하며 구박덩이로 자라는 불쌍한 코제트, 그리고 그들의 가난과 처지에 아랑곳없이 오로지 법의 심판을 최고의 정의로 믿으며 추격하는 뒷골목의 사생아 출신 자베르 경감, 약하고 힘없는 자를 등쳐먹고 사는 파렴치한 테나르디에 부부, 추악한 귀족 할아버지의 안락한 환경에서 뛰쳐나와 고학하며 사회정의를 위해 민중과 함께 싸우는 청년 마리우스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장렬하고 처참한 최후가 웅장한 한 편의 서사시처럼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감동과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단 한 권의 소설을 꼽으라면 단연 이 <레 미제라블>이다.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미리엘 주교의 삶은 살아있는 성자의 삶 그 자체다. 장발장을 용서함으로써 구원한 미리엘 주교의 사랑은 장발장으로 하여금 팡틴과 코제트를 구하고 마리우스의 생명을 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한 자루의 촛불이 세상을 밝히듯 따스하게 퍼져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장발장을 쫓던 자베르 경감으로 하여금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지게 한다. 그는 왜 죽음을 택했을까? 그 부분에 대해 책 1106쪽에는 다음과 같이 해명되어 있다.
[ But his greatest anguish was the loss of certainty. He had been torn up by the roots. The code he lived by was in fragments in his hand. He was confronted by scruples that were utterly strange to him. He had no longer live by his lifelong principles; he had entered a new strange world of humanity, mercy, gratitude and justice other than that of the law. He contemplated horro the rising of a new sun- an owl required to see with eagle's eyes. He was forced to admit that kindness existed. The felon had been kind, and, a thing unheard of, so had he. Therefore he had failed himself. He felt himself to be a coward. Javert's ideal was to be more than human; to be above reproach. And he failed. ]
분명 자베르는 자신이 그동안 헛된 삶을 살았음을 깨달았다. 위고는 자베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했을까? 냉혹하고 무자비한 법과 법 집행은 인간을 처벌할 수는 있어도 바꿀 수는 없다는 진실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신의 눈으로 보았을 때 모든 인간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알량한 인간들은 불완전한 법을 만들어 놓고 가진자가 못가진자를 처벌하는 근거로 사용하며 합리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평등과 사랑, 믿음이 구현되는 세상이야말로 더 이상 현대판 장발장을 만들어내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인간의 손으로 그런 세상이 가능할까라는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으니 우리의 고민이 19세기를 살았던 빅토르 위고의 고민과 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