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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관계하니 그리스와 미국의 결혼 풍속을 재미있게 비교하면서 볼 수 있었던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이 문득 생각난다. 그리스인은 그리스인하고만 결혼할 수 있다는 가족의 불문율을 깨고 주인공 툴라는 그만 미국인 남자인 이안과 사랑에 빠진다. 이안이 그리스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를 비롯한 툴라의 가족들은 그들의 결혼을 결사 반대하게 된다. 하지만 딸이 진정한 사랑을 찾은 것을 알게 된 엄마는 툴라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응원한다. “남자들은 머리란다. 자신들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우쭐대지. 하지만 여자는 머리 아래 달려있는 목이란다. 결국 머리는 목을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지.” 결국 현명한 엄마와 딸의 목놀림덕분에 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남자들이 여자를 통치(?)하려는 건 동서고금 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고 여성을 인간 대 인간으로 평등하게 대우해주는 남성분들도 간혹 있다는 것은 안다. 조금 드물어서 그렇지.. 혹시나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억울하신 남성분에겐 정말 죄송하다. 그냥 대체적으로 평균적인 인간들이 그렇다는 얘기이고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니까 자신이 예외에 해당되는 아주 훌륭한 남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시길 바란다. 이 책의 첫째 대목에서 다룬 바와 같이 전통적 남녀 관계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주인과 종, 봉황과 참새, 용과 뱀, 호랑이와 고양이 등등으로 대비되고는 한다. 나는 여기서 재미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남자들 일컫는 동물들은 상당히 추상적이거나 귀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봉황과 용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동물이고 호랑이는 고양이에 비하면 한참 드문 동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남성은 현실에는 없거나 드물다는 뜻인지 아니면, 이렇게 귀한 존재이니 함부로 쳐다보지도 말라는 뜻인지.. 신화나 설화 등을 통해 등장하는 남녀의 불공평한 관계, 심지어 억울한 대우를 받아 한을 가지고 원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귀신이야기 등을 통해 과거의 우리의 여인네들이 얼마나 굴곡진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따스하게 보듬어준다. 지금은 여성상위시대라고도 하는 말도 등장하고 주위를 잠깐 보더라도 당당하게 사회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여성들이 많아져 과거 우리 조상들보다는 여성의 지위가 많이 상승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가정 속을 면밀히 들여다 보면 아내로써, 엄마로써, 며느리로써 많이 참고 사는 여성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둘째 대목에서는 전통 혼례절차 등을 자세하게 알림으로써 우리가 가정의례준칙이라는 명목하에 얼마나 소중한 우리의 전통을 잃었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잘 나타나 있다. 읽다 보니 과거에는 결혼을 인륜지대사라하여 얼마나 신성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요즘처럼 몇 십 분이면 족한 결혼식과는 비할 것이 못 된다. 이렇게 결혼 절차가 가벼워지니 이혼 또한 쉽게 하는 것은 아닌지. 예전처럼 결혼 절차가 복잡하면 결혼 두 번 하려면 힘이 훨씬 더 들 테니 그냥 참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나머지 부분에서는 설화나 신화, 고려가요나 시조 등에 등장하는 남녀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주로 서동, 온달, 탈해 등의 바보나 멍청이 신랑들이 현명한 공주를 얻어 확실한 신분 상승을 이루는 성공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지금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며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성들이 주로 다루어지는 통속 드라마와는 정반대인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롭다. 내 생각엔 의외로 과거에 남성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이야기가 많은 것으로 보아 역설적으로 기를 못 피고 살았던 남성들이 많았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서동이나 온달, 탈해와 같은 보잘 것 없는 바보인간들도 공주와 결혼했으니 평범한 너희 남자들은 자신감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파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 하긴 조선시대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여성을 많이 억압했지만 그보다 훨씬 전 시대인 통일 신라시대에는 여왕에게 통치권을 줄 정도였으니 우리가 남존 여비니, 가부장이니 하는 그릇된 남녀관도 모두 다 조선시대에 와서야 형성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저자는 남녀를 지칭하는 단어나 신화나 설화, 고려가요, 시조 등의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남녀 관계를 분석하여 과거의 옳지 못한 것은 고치고, 이를 거울삼아 오늘날 이상적인 남녀 관계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다만, 작은 사실에 대해 세심하다 못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글의 내용과, 강조를 위해서인지 앞에서 다루었던 이야기가 거듭되는 글의 구조 속에서, 고리타분하고 지루할 뿐 아니라 노학자의 노파심이 느껴지는 건 순전히 나의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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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에로스'라는 말은 서구적인 멋이 묻어나서 우리의 정서에서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거리감의 선입견을 김열규 님이 진솔하게 풀어주는 책을 써주셨어요. 우리네 한국인의 정서와 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충분히 아우르는 한국인 특유의 에로스에 대해서 짚어주고 계셔서 반복적이고 일상의 현실로 힘겹게 여겨지는 그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지치고 힘든 느낌을 요즘 들어서 감출 수가 없었는데 이러한 마음의 고민을 이야기로 풀어내주셔서 속내를 잘 보이지 못하던 이런 문제와 고민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날려버리는 기분으로 이 책을 유쾌하게 읽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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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시대적인 남녀의 사랑에 관한 조금은 색다른 시각으로 풀이한 책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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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에로스>를 읽고 나서 느낀 점 몇 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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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주에 아는 형님의 결혼식이 있다. 보통의 예식장에서 치뤄질 이번 결혼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결혼식이 될 것 같다. 내가 가본 결혼식은 얼마 없지만 이들 대부분은 '결혼식을 위한 결혼식'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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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보면 19금 야한 소설이 생각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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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읽은 김열규 교수의 <독서>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국문학자로서 이렇게 다양한 우리말로 독서하는 방식을 서술하셨나 감탄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책을 선택한 것도 김열규 교수의 전작에서 주는 감동과 더불어 한국인의 남녀간 사랑을 옛 고전을 통해 서술할 것이라 기대를 했다. 저자의 서문에서도 밝히 듯이 “이 땅의 남년 관계의 근본을 보이고자 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더더욱 기대를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안 사실도 많았기에 중간 중간에 큰 줄기에 어긋나는 것들은 다시 볼 요량으로 책 중반부까지는 잘 따라가다가 약간 지루해 지기 시작했다. 워낙 본인이 시, 문학에 문외한이 탓에 그러하려니 하고 좀 더 따라가보기로 했다. 우선 다 읽은 후에 저자가 주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살펴 보기로 하고 일독 했다. 우선 이 책이 주는 내용과 본인이 읽기 전 기대했던 내용과는 좀 달랐다. 저자의 서문에서도 말한 얽히고 얽힌 남녀 관계를 상고시대부터 고전을 예로 들어 근,현대에 이르기 까지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를 기대했다. 드문드문 나오기는 하지만, 시대별로 남녀간의 지위, 역할이나 사랑에 대한 시각차에 대한 기술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앞뒤로 정리를 하든 다른 책을 참조해서 더 보강을 하든 이것은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의 전체를 크게 나누어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데, 첫 번째는 남녀를 지칭하는 명칭이나 관념을 통해서 대비를 두어 이 땅에서 어떻게 남,녀를 봐 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에 ‘여성이란 것 : 그 근본적인 물음’이라는 장은 왜 포함되어 있는 지를 모르겠다. 앞 뒤 장과의 문맥도 맞지 않고, 몇가지 설화를 여성에 대한 性을 대표하는 것인 양 표현하는 것이 맞는 지 모르겠다. 차라리 세계 인류학 관점에서 그 시기에서는 서컴시전이라는 성기 제거 관습이 여성에게는 일반적으로 자행 되었다는 근거를 제시하던가 아니면 우리 땅에서 그 같은 풍습이 자행되었다든가를 제시하기 보단 단지 에피소드 엮음이라 노교수가 직접 이 책에 관여하셨는 지 의문이 든다. 두 번째로는 남,녀가 만나서 결국은 혼인의 과정을 통해서 합일이 되어가는 과정을 얘기한다. 여기서 남녀가 어떻게 만나는 지는 생략되어 있고, 단지 혼인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설화에서도 얘기하듯이 남자가 모진 역경을 이겨내고, 신부측의 멸시를 감내해야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책의 프롤로그에서도 저자가 밝혔듯이 이 책은 시대적으로 변하는 남녀 관계도, 남녀 사이에 얽히고설켜 있는 그물집 같은 얘기도 여기에는 없다. 서동, 온달이 왜 그렇게 고생하면서 왕이 되고, 왕의 사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본인도 10년 전 결혼을 하기 위해 작던 크던 마음 고생, 몸 고생 했던 기억이 이 책을 통해서 다시 났던 것이 전부 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인생에서 이러한 고생이 혼인 하나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읽는 내내 제대로 이 책을 읽어 내지 못하는 본인의 아둔함을 탓하며 읽었으나, 읽고나서는 저자를 편집자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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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과 같고, 그물과도 같은 것이 남녀 관계라는 저자의 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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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한국학 석학인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해마다 한 권 이상의 책을 집필하는 활발한 저작활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에로스는 사랑의 전령사이자 사랑 그 자체의 신이다. 즉 , 그 단어는 '육체적 사랑'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모두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첫번 째 파트는 한국의 남자와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조선 시대에는 남성이 남녀관계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는데 결혼만큼은 여성이 '우월권'을 갖고 진행함으로써 이러한 남녀관계를 보완했다고 설명한다. 남녀 관계를 하늘과 땅, 하늘과 바다, 해와 달의 우주적 대비로 보면 상/하와 우세/열세로 보기가 쉽지만 이는 우주의 섭리고 대자연의 질서이다. 우주적인 조화고 화음으로 해석한다. 땅이 하늘을 떠받들고 우러르면 하늘은 풍요의 비로 응답한다. 땅이 없으면 하늘은 제구실을 잃고 만다.(p.46) 남녀는 경쟁이나 투쟁관계가 아닌 언제나 영원한 공존으로 보고 있다. 두번 째 파트는 인륜대사인 결혼에 대한 분석이다.옛날 신랑들은 애걸복걸하거나 거꾸로 매달려 발바닥을 맞아야만 겨우 처가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혼례를 마치면 곧 남존여비가 될 상황에서 혼례 동안만이라도 미리 여성에게 보상을 주자는 차원이라는 분석이 상당히 일리있게 다가온다. 또한 역사를 살펴보면 옛날에는 남녀가 사실혼과 합법혼으로 두 번 결혼했다고 한다. 고대 부여에서는 '하늘의 왕'인 해모수가 '강물의 신' 하백의 딸인 유화를 약탈하다시피 데려왔다. 화가 난 하백이 딸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는데 유화가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해모수가 하백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유화를 데리고 처가를 찾아가는데 하백이 해모수에게 겨루기를 하자고 한다. 해모수가 겨루기에서 이기자 하백은 해모수를 사위로 받아들인다. 해모수는 두 번 장가를 간 셈이다. 중혼제(重婚制)의 유형으로. 남녀가 실질적으로 맺어지는 '사실혼'과 처가에서 이를 인정해주는 '합법혼'을 말하는데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혼례에 있어서는 여성이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 해모수가 그랬듯이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장가를 들었던 것이다. 세번 째파트는 남녀사이의 함(合)에 대한 설명이다. 합을 이르는 말중에 합궁이란 단어는 성교와 같은 뜻으로 합금(合禽)이나 합방(合房)으로 표현했다. 금(禽)은 이부자리란는 의미이며 합방은 말 그대로 방을 함께 쓴다는 것이다. 마지막 파트는 여러 측면에서 사랑을 분석한 내용이다. 남녀 관계도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하며 변화해왔다. 그런 변화속에서 사랑도 짝짓기라는 행동유형도 변천해온것은 사실이다. 저자는 영원히 공존해야 할 남녀 관계가 옛날처럼 공고하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이 책 '한국인의 에로스'는 신화시대부터 조선 시대 말까지 동서양의 고전과 예술을 넘나들며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사랑의 보편성을 탐색하고 있어 그간 문학작품 등을 통해 만나보았던 우리 조상들의 성과 사랑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책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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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남녀들은 어떻게 사랑을 했고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을까. 여성과 남성의 모습은 어떠했으며, 그 속내는 어떨까. 이 책은 오랜 옛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녀의 관계에 대해 인문학적 지식을 동원해 솔직하게 까발린다. 문장은 유모가 있으며 어투가 솔직해 무척 재미있다. 왜, 지금까지 김열규라는 저자를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읽다보면 저절로 웃음을 짓게 된다. 저자의 재발견. 앞으로 김열규라는 저자의 팬이 될 것 같은 예감.
이해를 돕기 위해 간간이 설명된 그림들은 또 어찌나 재미있는지. 예를 들어 김홍도의 풍속화중 <우물가>를 서술한 부분을 보자.
사내의 몰골이 이게 뭔가? 아낙들 앞에서 가슴팍을 풀어헤치고는 물을 들이켜는 꼬락서리라니! 갈데 없는 불한당이다. 그에게 두레 박을 건넨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아낙들 셋 다 사내의 꼴을 못 본 척 한다. 고개를 외로 꼬는가 하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별꼴 다 보겠네! 그렇게 말하는 시늉을 하고 있다. 한데 사내는 여성들을 무시하고 있다. 깔보고도 모자라서 넘보고 있다. 업신여기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조선조의 전형적인 남녀 관계를 그려냈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한데 화면에 익살이 담긴 걸 보면 화가 역시 사내 편을 드는 것 같이 여겨진다. 그 래서 해학이 넘치는 데도 불구하고 조선조의 유학이 빚어낸 남녀 관계가 잘 반영되어 있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나예석이라면 아마 사내의 가슴팍에 물벼락을 안기게 했을것이라는 말과 함께. 시대에 따른 인간관계, 남녀 관계를 부르는 호칭부터 결혼에 관계되는 언어를 보면 어찌나 많은지 놀라게 된다. 아마도 그만큼 여자와 남자, 결혼이 아주 중요함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혼례의 중요성이 '가정 의례 준칙' 에 의해 간소화된 배경과 오늘날 이벤트, 퍼포먼스로 전락한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본래 혼인이라 함은 ' 가문의 일이고 나아가서는 말을이라는 공동체의 일이었으므로 혼사라는 잔치판이었다. 혈연에 더해서 인연, 곧 혼인에 의한 인연이 만드는 인간관계. 겹겹으로 새로운 인간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은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잔치판은 클 수 밖에 없었는데 오늘날은 단지 일거리일 뿐. 어떤 부분은 고개가 끄덕여지고 어떤 부분은 과연 옛것이 좋은가 하는 의문점이 들지만, 원래 의미를 알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더했다.
또 바보가 공주를 아내로 얻는 이야기의 이면을 들여보는 점도 재미있었다. 공주는 좋은 말을 조련하는 조련사에 신랑으로 하여 마술을 부리는 마법사. 기사 조련사로서의 성공담. 그 이 면을 살펴보면 고구려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고구려는 만주 퉁수스족에 속하면서도 한민족의 원류를 이룬 경쾌한 민족이다. 대평원과 대초원을 질주하는 준마의 무리. 호쾌한 기마족. 기마족의 여성들이기에 말 기르고 간수하는 명수로서 사회적 구실을 다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것이 바로 바보온달 이야기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구려 여성들은 강한 이럼으로서 바보온달의 동화를 현실적으로 재해석 한다. 주몽의 어머니도 여기에 속한다.
또한 이 책은 <정석가> 와 <청산별곡> 을 통해 소리에 걸린 사랑을 명쾌하게 풀어내겨, 사랑의 희비극과 장엄미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짧은 설화를 통해 스님과의 사랑이라던가, 혹은 시가 속에 숨은 사랑을 맛깔나게 이야기 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소나기> 에 담겨 있는 그 희비극을 읽다보면 사랑에 대한 저자의 남다른 해석, 숨어 있는 이면을 볼 수 있는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온갓 옛사랑들을 읽다보면 사랑의 정치성과 풍속, 그 속에 담긴 남녀관계에 대해 알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남녀 관계인듯 싶다.
암튼, 저자의 재발견이다.
특히 재미있던 사실은 오래전 대전의 교외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유물이었다. 묵은 시대의 농기구, 사비나 괭이라 해도 좋을 따비라는 농기구인데 이랑을 새기면서 밭을 갈고 있는 사내가 차고 있던 기구다. 이때 사내는 알몸이로 밭갈이를 했다. 그런데 이 새내가 자신의 남근을 드러내며 밭을 간다. 요즘 시대 성문란 죄로 고발되었을 지도 모를 텐데. .. 작가는 사내가 밭에 곡식의 씨앗을 뿌리는 것은 정자를 대지에 뿌리는 것과 같다고 상상한다. 따비가 밭갈이에서 하는 구실과 사내의 역활은 맞닿아 있다는 것. 밭농사나 애기 농사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말한다.
암튼, 재미난 이야기를 인문학적으로 맛깔나게 풀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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