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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는 사라진 지 오래다. 국가는 자신의 담을 허물며 노동이, 자본이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질린 사람들은 혹 이보다 더 나은 조건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감을 품은 채 유랑한다. 과거보다 더 낫다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모든 것이 다른 만큼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는 결과적으로 태초부터 모든 게 갖추어져 있던 이들에게만 주어질 것 같다. 그래도 드물게나마 개천에서도 용은 생성된다. 그들이 이제껏 느꼈던 압박감과 휴식이라고는 모르며 살아낸 고단한 나날들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도 이미 이루어진 결과만을 보고 그들을 부러워하기 바쁘다. ‘하루에 국경을 두 번 넘는 사람들’은 그런 이들의 삶을 좇다가 탄생했다. 그들은 스스로 경계를 허물고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갔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에게 보다 잘 어울리는 일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내가 경험하고 있는 세상은 같은 듯 하면서도 분명 다를 것이다. 책의 첫 이야기를 장식하고 있는 이의 이야기는 상당히 당차게 다가왔다. 그녀는 아직 어렸지만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이가 부닥쳐도 극복이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의식해서인지 그녀는 의도적으로 더 많이 웃었다. 스스로 학벌이 좋지 못하다 말했고, 다른 이들처럼 경험이 많지도 않다 여겼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그녀는 거침없이 전진했다. 스위스까지 이르게 된 데엔 그녀 자신의 꿈도 물론 영향을 미쳤지만 어머니의 힘이 컸다. 스위스에 가보고 싶어 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그녀는 스위스에서 새로운 인생을 출발했다. 사람을 너무 쉬이 믿고 결과적으론 모든 게 다 자신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라는 식의 낙관적인 생각에 기대어 오늘도 그녀는 호텔리어의 꿈에 한 발 바짝 다가가고 있었다. 컬러리스트라는 직업은 상당히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영화가 탄생할 때마다 그녀의 손길이 해당 영화에 머물렀다는 생각을 하니 낯설게 느껴졌던 그녀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됐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그녀는 대학 강사로 강단에 서는 등의 경험을 했다. 아직은 걸음이 더딘 분야를 주도해가는 입장에서 그녀는 자신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처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누군가가 시작하면 이를 따르는 이들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녀가 중시한다는 ‘감성’의 키워드에 중요도를 부여하는 이들이 보다 많아지길 바란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나 프랑스인으로 성장한 폴린의 경우는 상당히 낯설었다. 그녀는 한국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을 거부했다. 스스로를 프랑스인이라고 이야기했지만 프랑스사회에서 그녀는 또 다른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어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로 인해 한국에도 속할 수 없는 그녀의 이야기는 굳이 ‘입양’이라는 방법에 의존치 않더라도 앞으로 더 자주 우리 주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체성에 대한 그녀의 고민은 국경이 점점 희미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원부모로부터 결코 분리되지 않으며 대한민국을 벗어나는 일조차 드문 우리는 가장 중요한 종류의 고민을 영원히 뒤로 미루어둔 채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결국 ‘엄마인 상태’로 스스로를 정의한 그녀. 내면에 깃든 치열함이 존경스러웠다. 문동호 씨처럼 오로지 한 우물을 파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젊음을 무기삼아 애초에 자신이 택한 전공과는 전혀 다른 방면으로 나아간 이들도 제법 됐다. 삶은 과정이다. 어느 시점에서 결정을 내렸다 하더라도 그 결정은 언제든 번복될 수 있는 것이다. 결정에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은 상황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제 자신의 의지였다. 무엇이 자신의 삶을 가장 (정신적으로) 윤택하게 만들어주는지를 우리의 젊은이들은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 결과가 경제적인 궁핍일 수도 있으며 국경을 수시로 넘나들며 겪는 불안일 수도 있음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부닥치며 스스로의 모난 부분을 깎아나간 그들은 하나의 원석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인간에게 한계가 있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다만 우리 모두는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 머물기를 갈망할 따름이다. 본능과도 같은 정주에의 욕망을 떨치고 나선 모든 이들에게 행운이 함께하길 기도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