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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재기가 담긴 문장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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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에 대해 소개된 바는 다음과 같다.영국의 논리학자, 철학자, 수학자, 사회사상가로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한 인물. 버트런드 러셀은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사람으로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할 정도로 왕성한 지식욕을 가진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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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에 대해 소개된 바는 다음과 같다.
영국의 논리학자, 철학자, 수학자, 사회사상가로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한 인물. 버트런드 러셀은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사람으로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할 정도로 왕성한 지식욕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1872년 영국 몬머스셔의 명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의 강사가 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중 반전운동(反戰運動)에 참여한 것이 화근이 되어 사직했고, 1918년에는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후 유럽 및 러시아와 미국 등을 방문하여 대학의 강의를 맡기도 했으나 주로 저술활동에만 전념했다.

철학자로서의 그의 업적은 특히 이론철학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그는 무어, 비트겐슈타인 등과 더불어 케임브리지 학파의 일원으로 19세기 말부터 영국에서 유력한 학설이었던
관념론에 대한 실재론을 주장했었다. 하지만 그는 곧 헤겔학파, A.마이농 등 당대의 철학 흐름 변화를 따라 자신의 사상을 조금씩 발전시켰으며 신실재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는 인식론과 존재론을 사상의 소재로 활용했으며 영국 고유의 경험론을 그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의 사상은 빈학파나 논리적 실증주의를 중시하는 철학자 및 논리학자에게 자극을 주게 된다. 논리학자로서의 러셀은 프레게의 업적을 계승했으며, 페아노와 쿠츨러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며 데데킨트와 칸토어 등의 현대수학의 성과를 근거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했다.

이 세계는 예전에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무언가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끝난 것 같은 인종 갈등도 여전하고, 각국의 군비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자본의 싸움은 격렬해졌다. 이 치열한 격전장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철학이 아닐까?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 어떻게 살아가라 것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러셀의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에 딱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무언가 보여줄 듯 말 듯 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글들이 실리다보니, 함축된 이야기들이 많고 그걸 스스로 해석해나가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지의 상태라면 조금은 힘겨울지도 모르는...하지만 각 챕터별로 해설자가 러셀의 인생과 생각을 정리해주고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매우 어려운 이야기를, 그나마 쉽게 정리해주는 책이다. 읽고 무엇을 느낄지는 역시 독자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 아닐까? 적어도 나에게는, 다시 생각하고, 반성하고, 삶의 목적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YES마니아 : 골드 f****1 2011.05.04.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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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과 사상, 하지만 아쉬웠던 편집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과 사상, 하지만 아쉬웠던 편집" 내용보기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 수리철학자, 탁월한 사회비평가, 그리고 반전반핵운동가였던 버트런드 러셀은 많은 글을 남겼다. <수학의 원리>, <게으름에 대한 찬양>,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행복의 정복>,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서양철학사> 등 그의 글들은 정말로 많은 분야에 걸쳐 있다. 평화와 시민권과 인권을 부르짖은 그는 1950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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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 수리철학자, 탁월한 사회비평가, 그리고 반전반핵운동가였던 버트런드 러셀은 많은 글을 남겼다. <수학의 원리>, <게으름에 대한 찬양>,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행복의 정복>,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서양철학사> 등 그의 글들은 정말로 많은 분야에 걸쳐 있다. 평화와 시민권과 인권을 부르짖은 그는 1950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거의 100세에 가깝게 장수했다. 하지만 이렇듯 유명한 그의 책들을 나는 여기저기서 약간씩 접했을 뿐, 아직 한 권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적이 없다. 그러던 중 그의 글들을 발췌하여 묶은,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원제 Bertrand Russell's Best)>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정치, 심리, 종교, 교육, 성과 결혼, 윤리의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챕터의 시작과 끝에는 친절한 해설이 곁들여져 있고, 이는 번역본에만 있는 듯 하다. 그의 저서나 연설 등에서 핵심적이고 그의 사상이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을 발췌한 그다지 길지 않은 길이의 글들이 모여 각 챕터를 구성하고 있다. 러셀은 정치적으로도 꽤 다양한 활동을 펼쳤는데, 국가간 분쟁을 야기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평화적인 수단을 찾아갈 것을 촉구하는 평화주의적 입장을 보였고 인류를 몰살시킬 수도 있는 핵무기의 사용에도 강력히 반대했다. 평화주의자에 가까운 나로써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여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하고, 정치와 정치이론을 비판하는 그의 글은 꽤 신랄하고 풍자적이다. 또한 그는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역시 상당히 날카롭고 비판적인 글들을 남겼다. 그는 거침없이 의견을 표명하고 여러 차례 보수주의자들과 계몽주의자들에게 공격당했음에도 '신성시되는'사안에 거리낌 없이 의문을 제기했다. 이처럼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시류에 영합하고 권력에 굴종하는 학자들은 결코 지식인답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전혀 동조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서구 열강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했다는 점이다. 그는 <변화하는 세계의 새로운 희망>에서, 유럽인 통치자들이 아프리카인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 해온 일들이 인구 증가 때문에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고, 아프리카인들이 행적적인 훈련을 받고 책임감 있는 습관을 기르기 전에 갑자기 자유를 획득하게 되면 백인들이 아프리카에 이식한 문명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제3세계의 인구증가 속도가 빨랐던 것은 사실이나, 과연 서구 열강 국가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도우려고' 그들의 땅을 식민지로 삼고 경제적 수탈을 일삼은 것인가? 그들은 자유를 누릴 능력이 없으니, 계속 식민지 지배를 당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러한 수탈로 인해 유럽 국가들은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제3세계 국가들은 아직도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일종의 차별적 태도에는 그다지 동조하고 싶지 않다.

 

또한 그는 불가지론(agnosticism)의 입장에서, 종교적인 신화를 해부하는 일에도 주저 없이 뛰어들어 불합리한 사례들을 찾아낸다. 얼마 전까지 나는 그가 무신론자인줄 알았는데, 그의 신에 대한 입장은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으로 이는 무신론과는 다르다. 그는 종교가 인도주의와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은 수많은 사례들을 예로 들고 있다. 19세기에 마취제가 발명되었을 때, 성직자들은 출산하는 여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취제를 쓰는 것을 반대했다. 창세기에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라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인체 해부에 반대함으로써 의학 발전을 방해했고, 육체를 매력적으로 가꾸는 것은 죄로 이어지기 쉽다는 관점에서 목욕하는 것조차도 비난했다. 이처럼 과거 도그마로서의 기독교가 어떠한 이성적, 합리적 근거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박해했다고 러셀은 말한다. 나 역시 가톨릭 신자이지만, 중세 시대에 행해진 이단자 화형과 마녀사냥, 과학자들에 대한 탄압 같은 것은 결코 좋게 생각할 수 없다. 하느님은 옳지만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참 흥미로운 것은 러셀의 저서 중 <결혼과 도덕>으로 인해 그는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부도덕하고 선정적이며 음란하다는 이유였는데, 그가 노벨상을 받자 많은 미국인들은 격분했다고 한다. 하지만 발췌된 그의 글들을 읽어 봐도 특별히 음란하거나 외설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가 심하게 비난을 당한 이유는 아마 그의 성과 결혼에 대한 생각이 그 당시 지배적이었던 청교도주의적 도덕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흔히 행해지고 있는 이혼, 산아제한 등을 그 당시에는 금지했고, 여성 노동자들에게 피임방법을 알려주는 소책자조차 음란서적으로 간주할 정도였다. 그러므로 외설스러운 내용을 기대하고 러셀의 책을 펼친다면 아마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기대했던 바에는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러셀의 사상과 글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글을 토막내어 일종의 명언집과 같은 형태로 바꾸어버린 편집이 그렇다. 이것만을 읽고 러셀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어떤 주장들을 했으며 이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확실하게 캐치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든다. 러셀의 저서에서 인용된 각각의 글들이 전부 따로 노는 느낌이랄까. 각 챕터의 시작과 끝에 덧붙여진 해설이 없었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 머릿속에 거의 남는 것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결코 하나로 뭉쳐지지 않는 일종의 파편화된 느낌이 들어서, 이 책보다는 차라리 그의 저서들 중 관심있는 것을 하나 골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쪽이 훨씬 나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 참 끌린다.



j******m 2011.05.22.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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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실천적 삶을 위한 그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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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어진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때로 세상사에 지쳐 힘겨워 하거나 혹은 인생의 좌표를 찾지 못해 방황의 나날을 보내면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게 될 경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현인들의 따끔한 충고 한마디나 그래도 인생은 살아갈 만한 것이라는 조심스런 충고의 이야기들을 통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얻어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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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어진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때로 세상사에 지쳐 힘겨워 하거나 혹은 인생의 좌표를 찾지 못해 방황의 나날을 보내면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게 될 경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현인들의 따끔한 충고 한마디나 그래도 인생은 살아갈 만한 것이라는 조심스런 충고의 이야기들을 통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얻어왔고, 한편 자신의 삶을 겸허히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해왔음에 이를 부인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이 시점에도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분야에서 공인의 성격을 지닌, 이른바 현인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곡학아세 하면서 자신의 안위나 살피는 어찌 보면 비굴한 인생을 살아가지 않나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극히 일부이지만 한때는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으며 자신의 소신을 펼쳐나가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그 의지를 꺾어버리고 변절의 삶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본다. 이 책은 그러한 맥락에서 냉철한 합리주의자이면서도 탁월한 사회비평가로 우리의 사회가 더 이상 퇴보하지 않는 진보적인 자세를 취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대중과 함께하면서,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에 앞서 공익적인 사회를 만들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그래서 인류 전체의 행복을 위해 진실을 추구하고자 했던,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러셀의 주옥같은 많은 글 중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그가 일생동안 추구하고자 노력한 실천적인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게 함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지금보다 조금은 더 바람직하고 행복한 삶인지, 간접적이나마 그에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 아닐까 싶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우리가 그릇된 인식을 통하여 잘못 알고 있었던 여러 가지 사실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러셀이 그동안 출간했던 수많은 저서와 연설 그리고 기고문 중에서 정치와 종교, 윤리 등의 분야를 세분화하여 이를 따로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어, 독자들이 그의 가치관 및 세계관을 한층 가까이에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선호하면서도 공산주의에 관해서는 그들이 주장하는 이론이 결국에는 현실에 맞지 않는 공허한 것임을 비판하고 독재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으며,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서 국가는 자본가를 대변하기만 할뿐이어서 의회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한편 그가 말하는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아이들을 교육함에 있어 어떤 틀에 가두어 획일적이고 규정화 된 내용을 주입하여 가르치는 것은 무의미 하며, 아이들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여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데 그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규율을 최소화 하고 특히 체벌의 경우 잔인성과 야만성을 낳는다며 이는 반드시 금지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을 끌게 했던 것은 종교분야의 이야기였는데, 그는 신의 존재에 대해 이를 위한 명백한 증거나 합리적인 근거가 필요함에도 그런 것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보아 그는 스스로를 불가지론자라고 말하면서,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여러 가지 해악들과 종교인들의 가식적인 행위에 대해 상당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일례로 일부종교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 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왜 이렇게 결함이 많은 것인지, 그리고 무자비한 인종차별이나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는 전쟁과 같은 극악무도한 살인행위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오히려 되묻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를 위해 인간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며 사유를 통한 폭넓고도 보편적인 사랑과 정의를 위해 내면적으로 자아성찰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이 책에 담긴 비록 단편적이긴 하지만 여러 분야에서의 그의 현학적이고도 위트 넘치는 글들은 우리의 행복한 삶의 가치를 드높여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진다.


요사이 우리의 사회에 자주 회자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소통의 문제일 것이다. 이 문제는 사회의 어느 부분에서든 간에 선두에서서 이끌어 나가는 일부의 사람들이 어떤 사회적 합의나 대화 없이 독단적이며 제멋대로 식의 행태를 보인다는 이야기인데, 그러한 행동을 자신들 마음대로 아무거리낌 없이 행사한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에 대해 지적하며 분노하고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우리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극히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도, 일개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언제까지나 누가 나서기를 바라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 완벽하게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제도가 되었든 법이 되었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방법을 찾아 우리 사회가 이전보다는 조금은 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형태로 진행될 수 있도록 우리는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우리 사회에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라 해도 이것이 분명 틀렸고 잘못되어 있다면 이를 고쳐야 하고, 비합리적이고 옳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면 이에 제동을 걸고 그 대안을 논의하고 생각해 보며 실천의 방법을 찾도록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오늘날 우리의 사회가 점점 혼탁해지고 어지러워져 가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그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회일수록 대개 개인의 행복한 삶도 그만큼 비례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오늘 그의 책을 통해 당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긴 여정에 잠깐 동안만 이라도 시간을 내어, 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천적인 삶의 의지를 위해 자신을 일깨우는 계기로 삼았으면 싶다.



p*******3 2011.04.29.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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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EL'S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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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를 기억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무시하라."버트런트 러셀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제작년 한비야의 '그런 사랑이었네' 로부터였다. 평소 흠모하는 한비야가 추천하는 도서목록에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 있었다. 한비야의 책을 읽자마자 공공도서관에서 '행복의 정복'을 대출해 한번 읽어보았지만 번역문에 예전 문체라 내용이 딱딱하고 눈에 들어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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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주의를 기억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무시하라."

버트런트 러셀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제작년 한비야의 '그런 사랑이었네' 로부터였다. 평소 흠모하는 한비야가 추천하는 도서목록에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 있었다. 한비야의 책을 읽자마자 공공도서관에서 '행복의 정복'을 대출해 한번 읽어보았지만 번역문에 예전 문체라 내용이 딱딱하고 눈에 들어오지가 않아 안타깝게도  몇 페이지 읽고 포기하고 말았다.

이번에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를 읽다가 '행복의 정복' 언급이 나와 두 책이 모두 러셀의 책인 것을 알았다. 이전에 포기했었던 경력이 있었던지라 저자 약력부터 읽어보았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트 러셀을 수식하는 표현은 너무 많아서 정리하기 힘들 정도이다. 1872년 태어나 1970년에 세상을 떠난 장수한 철학자로도 유명하고, 긴 생애를 통한 네 번의 결혼과 수 많은 연애사도 빼놓을 수 없다. 195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또한 영국 경험주의 철학의 전통을 계승한 러셀은 합리적 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논리학, 수학 기초론, 인식론, 존재론 등 다양한 철학 분야에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또한 그는 전통적인 철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글을 남겼다. 인식론, 형이상학, 존재론, 윤리학, 종교철학, 정치철학, 사회철학, 교육철학 등 그가 다루지 않는 주제는 거의 없었다. 

러셀은 그의 긴 생애를 통해 100권이 넘는 방대한 책들과 많은 논문, 에세이, 기고문을 썼으며 그 글들은 철학적인 것들이 아닌 것도 있다. 중요한 것은 러셀이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문제들에 대해 글을 썼고, 그 중 상당수는 대중적인 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버트런트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 (원제: BERTRAND RUSSEL'S BEST)는 철학적이지는 않지만 러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심리학, 종교, 성과 결혼, 교육, 정치, 윤리의 여섯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40여권에 달하는 책과 여러 편의 에세이 등에서 발췌한 문장들고 이뤄져 있다.  

러셀은 정치학에서 진보에 필요한 개인적 창의성과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 결속력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를 고민했다. 러셀은 권력이 과거보다 훨씬 지혜로운 방식으로 배분되는 정치구조를 지향했으나 서구 문명의 역사는 그다지 고무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어왔다고 진단했으며, 국제 역학과 관련된 문제들이 인류사에 미칠 심각성을 우려하여 반핵 운동가,사회비평가로서 활동했다.

심리학은 철학으로부터 가장 뒤늦게 독립한 학문이다. 러셀은 '어떻게 해야 인간은 평화롭게 살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심리학과 관련된 지식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다고 이야하며 훌륭한 삶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요약한다.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다."

러셀은 기본적으로 종교가 인간에게 미치는 이익보다 폐해가 더 크다고 주장한다. 그는 종교의 폐해를 완전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박해를 부추기는 의심과 공포와 증오 따위의 위험 요인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한다.

교육에 관해 크게 기여한 바는 없지만 교육에 대한 그의 입장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는 교육이 기존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과학적 탐구 방법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열정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교육과 관련하여 박해,검열 따위의 통제를 자행하는 사람들과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1929년 출간된 러셀의 <결혼과 도덕>은 청교도주의 이후의 도덕론을 고수하던 사람들의 신념을 뒤흔들었다. 당시만 해도 성 문제를 다룰 만큼 대담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성과 결혼에 관한 그의 생각은 당시 미국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파격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특별히 외설적인 방식으로 글에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그 내용은 일반 대중을 위해 쓰여진 것이었으나 성직자나 다른 매체를 통해 왜곡된 채로 알려지게 되었고, 논란의 중심에 오르게 되었다.

러셀이 제안하는 윤리는 미신과 조직화된 광기가 완전히 제거되고 늘 짝지어 다니는 공포와 증오가 개입하지 않으며 요즘 사람들이 경쟁자의 불행을 바랄 때만큼이나 열렬하게 서로 애정을 베푸는 윤리이다. 러셀은 과학의 발달이 야기한 윤리적 문제를 고찰하는 일에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바쳤다.

책에 소개된 글을 보면 러셀의 글은 사회비판적이며 위트가 있다. 그의 행적에서 보면 다른 지식인들과는 다르게 그는 일생동안 반핵운동을 실천하는 등의 행동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걸쳐 살았으나 그의 사상은 21세기에도 영향을 미칠만큼 진보적이다. 책에 소개된 그의 문장들은 풍자적으로 쓴 글을  각각의 책에서 발췌한 것이라 그 글만 읽고 이해하기에는 조금 내용이 부족한 듯하다. 좀 더 깊은 내용을 보려면 온전한 책 한권을 읽어야 감동이 배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편집자가 말하는 것 처럼 버트런트 러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맛배기 정도라고나 할까... 나처럼 그에 관해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입문서같다. 

b********7 2011.04.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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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폭넓은 안목과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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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사상가,철학가,수학가, 사회운동가 등등러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러셀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러셀의 수식어는 셀 수 없지많지만 항상 '20세기 최고'라는 말이 들어간다.그가 '20세기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20세기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을바꾸려고 노력했고 바꿨다는 점이다. 사상가,철학가로서는 자신이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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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사상가,철학가,수학가, 사회운동가 등등
러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러셀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러셀의 수식어는 셀 수 없지많지만 항상 '20세기 최고'라는 말이 들어간다.
그가 '20세기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20세기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을
바꾸려고 노력했고 바꿨다는 점이다.
사상가,철학가로서는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과 뒷받침하는 논리를 다듬어
자기가 생각하기에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잘못된 것에 대해서 타협하려 하지 않는 자세를 취했다.
또한 사회운동가로서는 자신의 철학을 머리속에만 담고 있는것이아니라
타인에게 가르치고 더 나아가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을 틀렸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20세기에 정립한 그의 인간과 사회 전반에 관한 철학이 21세기인 오늘날에도
계속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더욱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정치,심리,교육,종교,성,그리고 윤리에 대한 러셀의 철학을 그의 여러 저서에서 발췌해 실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러셀을 처음으로 알았지만, 그의 철학에 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되었다. 러셀을 원래 알고 있던 사람에게도 좋지만, 잘 모르던 사람들에게 러셀의 철학에 관심을 갖게해주는 입문서와 같은 역할을 해줄거라고 믿는다.

k*****i 2011.04.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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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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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지금까지 ‘버트런드 러셀’이란 인물을 알지 못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제라도 그의 삶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는 표현부터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성을 뛰어넘어, 자신이 바라본 세상 속에서 자신이 향하는 세상을 위에서 그가 행동으로 옮기며 현실 문제에 보인 적극적인 모습들, 특히 90 이 다 된 몸을 이끌고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내용보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지금까지 ‘버트런드 러셀’이란 인물을 알지 못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제라도 그의 삶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는 표현부터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성을 뛰어넘어, 자신이 바라본 세상 속에서 자신이 향하는 세상을 위에서 그가 행동으로 옮기며 현실 문제에 보인 적극적인 모습들, 특히 90 이 다 된 몸을 이끌고 시위를 하고, 투옥되기 까지 하는 버트런드 러셀의 모습은 그 어떤 사상이나 시대와는 상관없이 대단히 존경받을 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런 그의 삶과 그 기록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는 표현 외에 또 다른 무슨 표현이 필요할까?!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정치’, ‘심리’, ‘종교’, ‘교육’, ‘성과 결혼’, ‘윤리’를 주제로 하는 총 6개의 PART로 구성되어있다. 러셀의 모든 것을 모으면서 굳이 이렇게 분야별로 구분 짓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도,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심리나 종교를 이야기하고,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종교, 성관 결론, 윤리 등을 이야기 한다. 결국에는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굳이 이렇게 저렇게 나눌 필요도 없는 것 같고, 실제로도 모든 이야기들이 서로 연관을 가지고 있기도 하기에 말이다. 뭐, 어째되었든 중요한 것은 뭔가를 구분 짓냐 그렇지 않냐가 아니라 그만큼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아우르는 그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이고, 그만의 세밀한 관찰력과 상상력, 그리고 예리한 풍자로 날카롭게, 하지만 진지하지만은 않게 그려내는 그의 글과 생각이 정말 멋지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의 풍자를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어찌나 시원하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지, 특히나 요즘 누군가들에게 내가 대신 전하고픈 충동까지 든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자신의 지인들에 대해서만 이런 사항들을 바랄 뿐,
자신의 적이 고통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과학은 이런 사람들의 태도에 일침을 가할 수 있다.
…
우리 자신의 행복을 바란다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달갑게 바라보아야 한다. -P231
 


  “지금 이 세계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온정과 너그러움이고,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은 대다수의 인류를 부도덕하다고 규탄하는 가혹하고 독단적인 도덕이다.” 라는 러셀의 생각이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그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내 인생을 지배하는 열정은 무엇인가, 아니, 나에게 그런 열정이 있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의 말 하나하나가 나를 이리저리 흔들어 놓는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생각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생각과 이야기들 모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그와 전혀 다른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사실이 그를 더 존경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단순한 생각과 이론, 그리고 현실의 문제들을 조금씩 겪어나가면서 생각들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계속해서 삶의 마지막까지 열정적인 모습들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특히나 그렇게만 느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꺼린다. 자신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자신만의 자존심, 혹은 독선과 아집으로 또 다른 잘못을 만들어간다. 그에 비해 자신의 실수를-혹은 무지를…- 깨닫고 스스로에게 어떤 변화를 준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대단한일이라고 할 것이다. 러셀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자신만의 기본적인 자신의 세계관으로 중심을 잡으면서도 상황이 맞게 생각들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것. 여전히 미완성이지만, 완성을 위한 길을 그의 삶에서 보는 것만 같아 더 의미 있게만 느껴진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제야 버트런드 러셀을 만났다. 그것도 그의 정수를 모았다는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를 통해서 말이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으로 그의 모든 것을 보았다, 혹은 그의 사상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고 말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누군가의 다양한 저서들 중에서 중요부분을 이런 식으로 발췌한 책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그것으로 인해 어느 한 부분이 전체인 듯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에서 하는 어이없는 짓거리 중 하나가 앞 뒤 말 다 잘라먹고 논쟁의 소지만 있는 부분만을 이야기함으로써 진실을 왜곡하는 것인데, 내가 마치 그런 부류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더더욱 그런 생각을 경계하게 된다. 하지만 부분부분 발췌한 다양한 생각들을 그저 맛보기로 생각하며-다르게 말해서 그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훑어보는 정도로…- 앞으로 그의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이제 남은 것은 제대로 된 러셀을 만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인용되었던 다양한 저서들, 특히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서양철학사》, 《환영받지 못하는 에세이》,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같은 책들은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만나는 러셀은 또 어떤 느낌과 어떤 생각들을 던져줄지, 또 다른 기대감에 벌써부터 흥분된다.

j*****3 2011.07.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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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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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지금까지 ‘버트런드 러셀’이란 인물을 알지 못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제라도 그의 삶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는 표현부터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성을 뛰어넘어, 자신이 바라본 세상 속에서 자신이 향하는 세상을 위에서 그가 행동으로 옮기며 현실 문제에 보인 적극적인 모습들, 특히 90 이 다 된 몸을 이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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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지금까지 ‘버트런드 러셀’이란 인물을 알지 못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제라도 그의 삶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는 표현부터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성을 뛰어넘어, 자신이 바라본 세상 속에서 자신이 향하는 세상을 위에서 그가 행동으로 옮기며 현실 문제에 보인 적극적인 모습들, 특히 90 이 다 된 몸을 이끌고 시위를 하고, 투옥되기 까지 하는 버트런드 러셀의 모습은 그 어떤 사상이나 시대와는 상관없이 대단히 존경받을 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런 그의 삶과 그 기록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는 표현 외에 또 다른 무슨 표현이 필요할까?!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정치’, ‘심리’, ‘종교’, ‘교육’, ‘성과 결혼’, ‘윤리’를 주제로 하는 총 6개의 PART로 구성되어있다. 러셀의 모든 것을 모으면서 굳이 이렇게 분야별로 구분 짓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도,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심리나 종교를 이야기하고,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종교, 성관 결론, 윤리 등을 이야기 한다. 결국에는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굳이 이렇게 저렇게 나눌 필요도 없는 것 같고, 실제로도 모든 이야기들이 서로 연관을 가지고 있기도 하기에 말이다. 뭐, 어째되었든 중요한 것은 뭔가를 구분 짓냐 그렇지 않냐가 아니라 그만큼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아우르는 그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이고, 그만의 세밀한 관찰력과 상상력, 그리고 예리한 풍자로 날카롭게, 하지만 진지하지만은 않게 그려내는 그의 글과 생각이 정말 멋지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의 풍자를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어찌나 시원하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지, 특히나 요즘 누군가들에게 내가 대신 전하고픈 충동까지 든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자신의 지인들에 대해서만 이런 사항들을 바랄 뿐,

자신의 적이 고통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과학은 이런 사람들의 태도에 일침을 가할 수 있다.

…

우리 자신의 행복을 바란다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달갑게 바라보아야 한다. -P231

 

  “지금 이 세계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온정과 너그러움이고,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은 대다수의 인류를 부도덕하다고 규탄하는 가혹하고 독단적인 도덕이다.” 라는 러셀의 생각이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그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내 인생을 지배하는 열정은 무엇인가, 아니, 나에게 그런 열정이 있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의 말 하나하나가 나를 이리저리 흔들어 놓는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생각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생각과 이야기들 모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그와 전혀 다른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사실이 그를 더 존경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단순한 생각과 이론, 그리고 현실의 문제들을 조금씩 겪어나가면서 생각들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계속해서 삶의 마지막까지 열정적인 모습들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특히나 그렇게만 느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꺼린다. 자신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자신만의 자존심, 혹은 독선과 아집으로 또 다른 잘못을 만들어간다. 그에 비해 자신의 실수를-혹은 무지를…- 깨닫고 스스로에게 어떤 변화를 준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대단한일이라고 할 것이다. 러셀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자신만의 기본적인 자신의 세계관으로 중심을 잡으면서도 상황이 맞게 생각들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것. 여전히 미완성이지만, 완성을 위한 길을 그의 삶에서 보는 것만 같아 더 의미 있게만 느껴진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제야 버트런드 러셀을 만났다. 그것도 그의 정수를 모았다는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를 통해서 말이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으로 그의 모든 것을 보았다, 혹은 그의 사상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고 말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누군가의 다양한 저서들 중에서 중요부분을 이런 식으로 발췌한 책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그것으로 인해 어느 한 부분이 전체인 듯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에서 하는 어이없는 짓거리 중 하나가 앞 뒤 말 다 잘라먹고 논쟁의 소지만 있는 부분만을 이야기함으로써 진실을 왜곡하는 것인데, 내가 마치 그런 부류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더더욱 그런 생각을 경계하게 된다. 하지만 부분부분 발췌한 다양한 생각들을 그저 맛보기로 생각하며-다르게 말해서 그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훑어보는 정도로…- 앞으로 그의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이제 남은 것은 제대로 된 러셀을 만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인용되었던 다양한 저서들, 특히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서양철학사》, 《환영받지 못하는 에세이》,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같은 책들은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만나는 러셀은 또 어떤 느낌과 어떤 생각들을 던져줄지, 또 다른 기대감에 벌써부터 흥분된다.

b****j 2011.04.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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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 박물관
"책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 박물관" 내용보기
책<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 박물관Written by. DdAm*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 내가 처음 접했던 그의 책이다. 이후, 그의 사상은 물론 문체에까지도 매료된 나는 저작들을 하나둘씩 접해나가고 있다.책<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러셀의 책들 중 주제에 맞게 편집자가 인용문을 옮겨놓았다. 철학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열정을 발휘했던 러셀이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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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 박물관



Written by. DdAm*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 내가 처음 접했던 그의 책이다. 이후, 그의 사상은 물론 문체에까지도 매료된 나는 저작들을 하나둘씩 접해나가고 있다.


책<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러셀의 책들 중 주제에 맞게 편집자가 인용문을 옮겨놓았다. 철학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열정을 발휘했던 러셀이었기에, 이 책에서도 정치, 심리, 종교, 교육, 성과 결혼, 윤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별 목차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러셀은 많은 이들의 반대편에 서 있던 인물로 유명하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책 제목들 중 하나를 <환영받지 못하는 에세이>로 짓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가장 민감할 수 있는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그는 자신의 명확한 주관을 선포한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제목에서부터 종교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전투력을 내비친다.


앞서 언급했듯, 이 책은 러셀의 다양한 책들에서 발췌된 글들로 엮여있기에 그의 총체적인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단점도 있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책 전체를 옮겨놓은 것이 아니기에, 하나의 주제에 대한 완전한 세계관을 확인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단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러셀의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쉽게 설명하자면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한 사람의 겉모습과 같은 책이다.


러셀의 글들만 봐도 그의 재치와 위트를 엿볼 수 있다. 그의 글들은 신랄하지만 폭력적이지는 않다. 신랄하고 맹렬하게 사회를 풍자한 데 반해, 생애 가장 중요시 여겼던 부분이 '사랑'이라는 걸 안다면 꽤 매력적인 인물로 느껴질 것이다.


책에 들어가기 전에 만나볼 수 있는 글이다. 여기에서 러셀의 정의로움을 엿볼 수 있다.

'나는 개인적인 꿈과 사회적인 꿈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개인적으로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 온화한 것에 도움이 되며, 통찰의 순간들을 통해 갈수록 세속화되어가는 시대에 지혜를 제공하는 것을 꿈꾼다. 사회적으로는 개개인이 마음껏 성장하는 사회, 증오와 탐욕과 질시가 자랄 토양이 없어 죽어버린 사회가 창조되는 모습을 꿈꾼다. 나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고, 제아무리 참혹한 세상도 나를 흔들어대지 못한다.'

러셀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인물임에 틀림없다.


나아가, 러셀은 재치를 찬양했던 인물이다.

"나는 근엄하게 굴어야만 진지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그는, '이 세계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온정과 너그러움이고,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은 대다수의 인류를 부도덕하다고 규탄하는 가혹하고 독단적인 도덕이다. 근엄함에 맞설 최고의 무기는 재치이다'라고 서문에서 밝혔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서 나는 완전히 공감했다. 현학적이거나 지나치게 진지한 것들이 승리할 경우도 있겠지만, 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환대받지 못한다. 나 또한 재치와 유머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회가 나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 소통이라면, 재치는 소통의 수단으로써 절대 배제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한 권의 잠언집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아무래도 책이 한 인물의 사상을 엮은 방식이라, 내용들을 짚어내기보다는 러셀이라는 인물 탐구에 초점을 둔 서평이 되어버렸다. 책은 광범위한 주제들을 다뤄내지만, 그 속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들은 인간의 욕구들이다. 허영심, 성취감, 경쟁심 등이 러셀의 신랄한 풍자를 이끌어낸 소재들이라면, 사랑과 인도주의는 그의 찬사를 받는 소재들이다. "인도주의를 기억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무시하라."는 말에서 러셀의 신념이 확고히 드러난다.


'철학'을 따분하고 어렵게만 여겨왔던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러셀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철학에 대한 선입관도 바꾸는 데도 기여한다. 단, 기독교 신앙이 짙은 독자들에겐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지 않았던 이성적인 러셀이기에, 신(神)에 대해서도 다소 가혹한 언어들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d******a 2016.03.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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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 행동하는 양심을 보여준 버트런드 러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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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버트런드 러셀은 영국의 논리학자, 철학자, 수학자, 사회사상가로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그는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사람으로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할 정도로 왕성한 지식욕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 행동하는 양심을 보여준 버트런드 러셀의 기록" 내용보기

지은이 버트런드 러셀은 영국의 논리학자, 철학자, 수학자, 사회사상가로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그는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사람으로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할 정도로 왕성한 지식욕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는 1872년 영국 몬머스셔의 명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의 강사가 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중 반전운동에 참여한 것이 화근이 되어 사직했고, 1918년에는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 후 유럽 및 러시아와 미국 등을 방문하여 대학의 강의를 맡기도 했으나 주로 저술활동에만 전념했다. 버트런드 러셀만큼 나이가 많은 사람이 행동에 나선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우리의 실천적 삶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이나 예부터 내려오는 권위에 의해 사람의 삶이 움직여서는 안 되며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생각이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전 생애를 통해 일관되게 행동과 실천으로 나타났던 것이다(12쪽).

 

이 내용은 박병철 교수의 해설 서문이다. 이 책은 정치, 심리, 종교, 교육, 성과 결혼, 윤리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장의 앞쪽에는 편집자의 글로 시작하고, 마지막에는 해설자의 닫는 글로 끝내고 있다.

흔히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양아 살해는 기독교 출현 이전에는 거의 보편적으로 행해졌으며, 플라톤은 인구 과잉을 예방할 목적으로 이를 권유했다. 일부 미개한 부족들은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한다. 고도록 문명화된 사회에서도 ‘인간의 본성’은 경제적 고려에 의해서 무시될 수 있다(33쪽 환영받지 못하는 에세이 중에서).

 

언젠가는 천연자원이 고갈되어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능력이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느닷없이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미득한 개발 행위의 결과를 예상하고 자제를 한다면 우리는 이런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 우리는 늦기 전에 이런 방법을 터득할 것이다(34쪽 변화하는 세계의 새로운 희망에서).

 

모든 인간이 신의 자녀라면 모든 인간은 가족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이런 교의를 채택한 사람들은 실제로는 이런 교의를 채택하지 않은 사람들을 신의자녀가 아니라 악마의 자녀로 여긴다. 같은 부족이 아닌 사람들을 미워하는 해묵은 심리적 기제가 되살아나서 그 교의를 강화하고 그 교의를 애초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39쪽 권위와 개인에서).

 

이 글들은 정치의 장에서 거론된 내용 중에서 뽑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신념은 죄다 해로운 것이라는 지적하고 싶다. ‘신념’은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증거가 있는 것을 ‘신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2 더하기 2는 4” 혹은 “지구는 둥글다”를 두고 신념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증거를 감정으로 대체하고 싶을 때 신념이라는 말을 쓰는 것 뿐이다(94쪽 윤리학과 정치학에서 보는 인간 사회에서).

 

다윈이 생물학에서 이룬 업적은 갈릴레이와 뉴턴이 천문학에서 이룬 위업에 버금간다. 동식물의 환경 적응은 18세기와 19세기 초 독실한 박물학자들이 즐겨 다루던 주제였다. 그들은 동식물의 환경 적응을 창조주의 섭리라고 보았다(100쪽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서).

 

이 글들은 종교의 장에서 거론된 내용 중에서 뽑은 것이다.

 

자신의 소신이 이성에 근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상대를 박해하는 대신 토론을 통해 소신을 입증하려 하고, 토론 결과가 자신의 소신과 상충할 경우에는 그 소신을 버린다. 그러나 신앙심에 근거한 소신을 지닌 사람은 토론을 통해 소신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에는 힘에 의지해서 박해를 하거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들의 정신적 성장을 저지하고 왜곡시킨다. 이는 젊은이들의 정신이 미숙하여 방어할 능력이 없는 것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비열한 행동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문명국가들의 학교들이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136-137쪽 윤리학과 정치학에서 보는 인간 사회에서).

 

음악 교육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자연스러운 즐거움을 향유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도덕론자들과 현학자들은 즐거움을 제공하는 작품을 틀어쥐고서 해로운 쾌락이라고 판단되는 요소들을 죄다 뽑아낸다. 결국 그 작품은 진가라고 할 만한 요소가 모두 배제된 채 따분하고 김빠진 작품이 되고 만다(143쪽 변화하는 세계의 새로운 희망에서).

 

이 글들은 교육의 장에서 거론된 내용 중에서 뽑은 것이다. 소신과 이성, 토론에 대한 글에서는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한 정당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또 요즘 나를 신문 칼럼니스트라고 공격하는 사람과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 자신만이 옳고 남들은 틀렸다고 하면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 말이다.

 

해설자의 닫는 글에서는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어린 아이들은 멋대로 행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기에 엄격한 규율과 체벌 등으로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교육이 해야 할 일이지만, 러셀은 어린 아이들이의 욕구와 충동을 임의로 가로막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나쁜 성격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도 러셀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일부의 비판이 있더라도 인격을 존중하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삶이란 자신과는 아무 관련도 없어도 이러쿵저러쿵 야단스럽게 떠들어댈 만한 일이 아니라, 외진 변두리에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233쪽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서).

 

애초에 법은 오늘날 현대인이 정의라고 여기는 것을 실현하는 데 목표를 둔 것이 아니라 지배 집단이 지닌 권력을 성문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중략) 메이지 시대 이전 일본에서는 어떤 사람이 윗사람 앞에서 미소를 머금지 않으면 윗사람이 그 사람을 즉석에서 처형하는 것이 합법적인 행위였다. 유럽인 여행자들이 일본 민족은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는 민족이라고 생각하게 된 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234쪽 변화하는 세계의 새로운 희망에서).

 

아 이거 큰 발견이다. 나는 지금까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의 일환으로 미소를 머금는 것이 아닐까, 민족성이 그런 것이 아닐까 했는데 이 이야기를 읽으니 무사의 나라와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을까. 101쪽의 ‘불가지론이란 무엇인가?’에서 발췌한 글이 중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편집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물론 실수는 가능하겠지만 4줄이나 되는 글이 중복되었다는 것은 심하다고 생각된다.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이라고 한 이 책은 약간 어렵기는 하지만 많은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저자처럼 행동하는 양심은 드문 것 같다. 제대로 된 지식인의 표상으로 생각된다. 존경스럽다.

7*****0 2012.05.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