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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잇살의 이름값   박완서(1931-2011), 이청준(1939-2008), 최일남(1932), 윤후명(1946), 이승우(1959), 권지예(1960), 이나미(1961), 조경란(1969), 김연수(1970), 이명랑(1973). 이상, 감히 이 책을 이루는 주인공들을 열거해 봅니다.   이름을 부르고 나면 내게 다가와 꽃이라도 되어야 할진대 이들을 호명하고 나니 저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수록된 작품들도 한결같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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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잇살의 이름값


 



박완서(1931-2011), 이청준(1939-2008), 최일남(1932), 윤후명(1946), 이승우(1959), 권지예(1960), 이나미(1961), 조경란(1969), 김연수(1970), 이명랑(1973). 이상, 감히 이 책을 이루는 주인공들을 열거해 봅니다.  

이름을 부르고 나면 내게 다가와 꽃이라도 되어야 할진대 이들을 호명하고 나니 저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수록된 작품들도 한결같이 그 먹먹한 이름값을 한답니다. 이 책은 2007년에서 2010년 사이 <문학의 문학>이라는 문예지에 실린 중견작가의 단편 10편으로 엮어진 소설집입니다. 작가들의 나이를 보니 이명랑 작가를 제외하면 모두 불혹을 지나셨습니다. 고인이 된 박완서 작가, 이청준 작가와 같은 세대인 최일남 작가는 꼭 제 아버지와 출생연도가 같습니다. 저와 갑장인 김연수 작가를 기점으로 얼추 가까운 사촌 동생과 바로 위 언니에서부터 막내이모, 큰 삼촌, 고모부까지 꼭 집안 경조사라고 한자리에 모이신 어르신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속된 말로 애들은 가라, 식의 어른들 모임인 것이지요. 이 책을 덮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결론은 요즘 세간에 유행하는 어느 프로그램처럼 ‘나는 작가다’ 의 진짜(?) 라이브 소설 경연장이라도 구경하고 돌아온 느낌이었달까요. 문학의 연륜이라는 것, 세월의 내공이라는 것, 살면서 쓰면서 그들이 축적해온 것들이 담담하면서도 엄숙하게 녹아들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더군요. 고개가 절로 숙여지더라는 것이죠. 고개를 숙이니 새삼 이참에 처연하게 떨어진 꽃잎들이 서러운 계절을 확인합니다. 이번 봄엔 간다는 것, 가버렸다는 것에 슬퍼하지 말자 다짐을 했더랬죠. 삼년 째 불혹 증후군을 앓고 있는데 병도 오래되니 진화하는가 봅니다. 처음엔 나이드는 것이 꼭 계절에 지는 것만 같았는데 이젠, 슬슬 중년이라는 말도 익숙하고 내가 입어도 될 옷처럼 느껴지거든요. 이 책과 저와의 인연을 중년이라는 공감으로 정리하자면 이 책은 ‘중년이 그리워지는 소설’, ‘중년을 위로하는 소설’,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제가 소개를 할 순서는 이 책의 목차와는 다릅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박완서 작가와 이청준 작가의 작품을 앞에 두고, 그 다음부터는 나이순입니다. 이깟 순서가 뭐 대수라고 생각나는 대로 적어도 알아주는 이 하나 없겠지만, 어쩐지 이번만큼은 윗물 아랫물에도 예의를 차리고 싶었습니다. 나이가 뭐 중요 하냐, 이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나이들어서 그런 것일까요. 점점 나이드신 분들에게 깍듯이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 더 오래 더 많이 써온 것이 자랑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보기에 한참 어린 저겠지만 나이들지 않고서는 배어 나올 수 없는 향기, 아니 나이 들어서라야만 나오는 체액, 그 나잇살의 아름다운 완성을 보란듯이 증명하셨기 때문에요.


1.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2008) / 박완서(1931-2011)

저는 이 작품을 여러 번 읽고 읽을 때마다 청승을 떨었습니다. 이제 고인이 된 작가의 글이라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이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단편이라는 안타까움도 아니었습니다. 이토록 짜릿한 중산층 며느리의 속물적 심경은 이제 더 이상 만날 수가 없겠구나, 하는 애틋함이야 당연한 것이겠죠. 이야기는 영원해도 그렇게 한 세대는 가는 것일 테니까요. 허나, 이제 그 다음 세대인 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차례구나, 내 할머니고 어머니가 아닌 내 이야기일 수 있구나 하는 현실감이 너무나 분명하게 잔인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꼭 먼저 간 남편은 아직도 젊은이인데 남겨진 아내만 할망구가 되어버린 얄궂은 운명만 같아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소설 속 주인공이 되었다가 저 역시도 사라지는 세대가 될 터이니까요.

박완서 작가는 생전에 ‘나는 사람과 세상에 복수하려고 글을 쓰게 되었다’ 고 한 바 있습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 야속하기만 한 세상에게 보아라, 당신네들이 실은 이렇게 생겨먹지 않았소, 내가 모르는 줄 알았지? 하고 말하고 싶었다고 말입니다. 상처를 글로 갚는 것이 작가들의 재주이자 팔자인 것일까요. 이 작품의 주인공은 며느리도 있(었)고 시어머니도 있는 낀 세대 며느리입니다. 물론 아들도 남편도 있지요. 남편과 아들을 차례로 잃은 작가가 눙쳐낸 며느리 보고서는 뭐라 언급하기조차 미안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사실적이고 속속들이 저릿저릿합니다. 일제시대 경성사범 학교를 나오신 교사출신 시어머니를 둔 며느리는 말합니다. 나는 결코 저런 잘난 시어머니는 되지 말아야 겠다고요. 그런데 여우같은 여자에게 홀려 장가간 아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남의 자식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우린 지금 남남이라니까요, 완전.’ 아무리 지들 좋아 한 결혼이라지만 부모에게 상의 한마디 없이 이혼한 자초지종이라도 들어보고 싶었던 주인공의 계획은 한 때 며느리였던 아들 전처와의 깔끔한 대화로 마무리됩니다. 작가는 묻습니다. 이들이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이 어떤 며느리의 잘못 때문이냐고요. 혹시 아들의 어머니가 갱년기인 탓은 아닐까 하고요. 입술은 마르고 얼굴은 벌개지고 속에선 천불이 난다는데 나이들면 다 그런 것이냐고요. 시어머니에게 위로부터의 모멸감을 느낀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아래로부터의 패배감을 느끼며 집에 돌아옵니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코 골며, 아, 아 간간이 신음하며’ 잠이 듭니다. 아니 꿈을 꿉니다. 집에서 못된 바람은 죄다 여자에게 불어 오나니 속에서 천불이 날 수 밖에요. 하지만 남편이라는 현실앞에선 완벽히 꺼지지가 않네요. 사람에겐 그래서 꿈이 필요한 걸까요. 가슴이 홧홧해지는 것이 꼭 갱년기 예행연습 만 같아, 이 작품을 예방약처럼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속은 좀 상해도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새 속이 시원해지니까요. 아마 박완서 작가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2. 이상한 선물(2007) / 이청준(1939-2008)

이 작품도 이청준 작가의 유작입니다. 두 분 다 소설의 고향같은 분들이라 한자리에서 괜스레 마음이 황망해지는 시간이었어요. 저에게 이청준 작가의 단편은 '소설의 교과서'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한번 읽고는 제 뜻을 파악하지 못한 듯 싶어 두 번, 세 번 읽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곤 한답니다. 이청준 단편들은 언제나 충분히 평범하고 느리게 시작하는 편인데 이 작품도 그저 나이 지긋한 한 사내가 고향길을 찾아가는 장면이 처음입니다. 그다지 별스럽지 않아 보이죠. 극적인 반전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심각한 사건이 날 것 같지도 않아요. 그래서 초반엔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되니 쉬워 보이는 구석이 있어요. 그런데 자꾸 따라 가다보면 정신을 차리지 않고서는 덮고 나서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말은 많지가 않습니다. 꼭 어려운 문제 가르쳐 주는 선생님의 당부 말씀 같은 소설입니다. 설명을 하도 완벽하게 잘 하셔서 그럭저럭 수업 들을 땐 내가 내용을 이해했다고 생각이 들지만 집에 가서 혼자 풀어보려면 손댈 수가 없는 문제처럼 말입니다. 소설이 완벽하다고 선생님이 완벽하다고 내가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이야기의 웅숭깊음, 소설의 절대성, 문학의 경지 같은 의미를 절로 떠올리게 합니다.

이청준 단편의 가장 큰 장점이자 미덕은 그 완성도를 향한 모든 문장의 적확한 밀도 가 아닐까요. 전혀 작위성을 감지 할 수 없는 편안함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할 말을 하고 싶은 만큼만, 해야 할 만큼만 하고 붓을 놓습니다. 가령,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그는 그 돌판 조각이 진짜 벼루로 변하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무연한 눈길을 떼지 못한 채 혼자 중얼대고 있었다.’인데 이 문장만 떼어놓고 보면 꼭 이것이 끝인 것은 아닌 듯 합니다. 끝이라고 하기엔 아쉽고 남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해할 수 없는(?) 여운속에서 몇 번이고 이 문장을 읽습니다. 그러다보면 아...중요한 것은 ‘그 돌판 조각이 진짜 벼루로 변하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하는 우리네 심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돌판 조각도 벼루라고 우기고 그것을 알면서도 돌판으로 먹을 갈았다 하는 것이, 그런 사람이 있었다지, 그 사람을 알고 있네 하는 것이 바로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었으니까요. 작가는 혼신을 다해 앞서 이야기가 생산되고 그것을 유통하는 마을사람들의 심리를 잘 설득해주었던 것인 걸요.

그래서 작가가 전해주는 ‘선바우골 인물전’의 인물들은 사실 '날궂이 하는 미친년'이나 유난히 큰 양물을 지녔다는 '장순이'나 비극적 천재 '씨름꾼'이나 동네 '그림자 도둑', '도깨비 할배'의 이야기가 아니고 ‘저 몹쓸 도둑이나 노름꾼, 패륜아 무리까지도 나름대로 사람살이의 반면 거울을 삼을 수 있었’다는 동네사람들의 이야기 인 것입니다. 그 동네사람들 중에서도 '걸어 다니는 법'전으로 불렸다는 '황기태 씨'가 동네 최고의 출세인물일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죠. 황기태 씨는 지방 중하위 공무원으로 크게 출세했다고 볼 수 없는 인물이지만 고향에선 공부로 출세한 그를 ‘선바우골 인물전’의 어엿한 주인공으로 여겼다네요. 작가는 기인이나, 재주꾼, 초인격 인물의 이야기가 신화를 만들고 신화를 통해 마을이 하나로 묶이는 과정, 알면서도 속아주며 풍진세상을 헤쳐 나가는 보통 사람들의 고집스런 세월을 담담히 보고합니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속담의 주인공, 전남 장흥이 고향인 작가가 고향을 위해 평생토록 해야 했을 일은 시골에 길을 닦아주고 다리를 놓아주는 일이 아니라 황기태 씨처럼 고향 인물전의 주인공이 되어주는 일은 아니었을까요. 아니 보다 많은 황기태 씨의 이야기를 만들고 전해주는 일은 아니었을까요. 이청준은 바로 진짜 벼루로 변신할 지 모르는 숫돌판을 그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비록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상한 선물’이라고 회자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3. 국화 밑에서(2010) / 최일남(1932)

주제넘지만 저는 여지껏 이런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주 유식하고 고상하게 혹은 어렵고도 근사하게 이 작품을 말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제 언어로 그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할 밖에요. 이 작품은 이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입니다. 두 분의 고인을 제외하면 작가들 중에 가장 고령이시고요. (참고로 제 아버지가 1932 년생이신지라 아버지의 이야기만 같습니다) 가장 연장자가 말하는 소설은 가장 자연스런 ‘죽음’을 주고받는 대화 였습니다. 그냥 소설이라기 보다는 평소 생각으로 보였습니다. 평생토록 생각해온 것들을 다만 글로 적었다는 느낌이었어요. 주인공은 하루에 두 번의 장례식장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곳의 상주와 주거니 받거니 장례문화와 풍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제가 놀랍게 느낀 것은 소설언어가 격조높고 고풍스럽다는 것입니다. 같은 한국어인데 어딘가 국어수준이 높은 선진국 나라의 언어같았다고 할까요. (배운)어르신으로서 젠 체 하는 한자나 고리타분한 옛 글투가 아니라 수준높은 한글과 국어, 그리고 인문학적 용어들이 멋스럽게 용해되어 있었습니다. 단순히 의성어, 의태어의 맛깔스런 표현이 아니라 예를 들면 ‘미소를 띤 모습이 긴 세월을 와락 당겨 냅뜨는 폭인가, 그때 그 사람의 얼굴이 빈소에서 보다 훨씬 뚜렷했다.’ 혹은 ‘근력이 좋아 뵌다는 수인사에 내장은 엉망이라는 겸양이 상투적일지언정 말의 디딤돌로는 불가피하다.’같은 문장에선 이미 우리말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문체로 문학이라는 언어를 이룩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보시게. 사는 일이 들쭉날쭉인 터에 사람들의 삶에 언제는 서론결론이 따로 있었다고 믿나. 심심파적인 양 중간에 어쩌다 반전이 있기는 있거늘 그것도 믿을 게 못되네. 잘못 뒤집었다간 본전마저 날리기 쉬우니깐.”

그래서 위와 같은 구절은 마치 작가라는 대 인생선배가 한참 아래인 인생후배에게 전해주는 생활속 조언만 같습니다. 이 작품에는 장례를 말하는 영화와 소설, 시를 비롯해 작가의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이 들어서, 아는 만큼, 보고 듣고 느낀 만큼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저는 이제부터 누군가가 어떻게 죽고 싶느냐고 물어본다면 ‘화장실에 가서 안 오는 것처럼 슬그머니’ 가고 싶다고 그렇게 시적으로 말하려 합니다. 그렇게 마음이 비로소 환해지는 죽음도 문학에는 있다더라 말하고 싶습니다. 문학에는 죽음의 종류도 다양해 입맛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냐, 가령 어느 노작가의 잘빠진 소설에서처럼 말입니다.


4. 소금창고(2007) / 윤후명(1946)

작년에 윤후명 작가의 글을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2010 / 현대문학>에 수록된 ‘모래의 시’라는 단편으로 뵌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의 글은 전체적으로 몽환적이고 시적입니다. 그래서 끝내 철학적으로 마무리 되는 작품이기에 읽고 나면 더없이 쓸쓸해지는 바람같이 몹쓸 종류의 소설이죠. ‘모래의 시’는 어머니 임종 후 고향인 강원도 바닷가를 찾아가며 지나온 삶의 편린들을 시적인 감성으로 회상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건 '손 한 번 잡아보자'는 어머니의 유언이 마치 파도에 휩쓸린 모래알처럼 아스라이 흩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삶이란 그리움의 야적장 같은 것이다.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버려져 있는 저 폐품들을 보라.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폐품은 유품이 되어 달겨든다. 버려야지, 하면서 내놓았다가 다시 하는 수 없이 간직하곤 하는, 이젠 못 쓰는 낡은 물건들 속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리움들.... 많은 그리움을 뒤에 두고 우리는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 것일까.” - 모래의 시 中

우리는 늘 그렇듯이 추억을 찾으러 떠났다가 그리움만 잔뜩 발견하고 돌아오곤 합니다. 결국 그리움도 무언가를 찾기 위한 강렬한 의지로부터 생겨난 욕심일뿐 아닐까요. 누군가가 보고 싶기 때문에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리워하려고 보고 싶어 하는 것이라는 것이죠. 보고 싶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구요. 이번 소설에서도 작가는 그 시절을 찾아 떠납니다.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것이 마치 그리움을 해소해 주는 일인 것 처럼요.

더욱 낭만적으로 이제는 사라진 협궤열차를 타고 그 옛날 염전 바닷가에 위치한 소금창고를 찾아 떠납니다. ‘협궤열차’는 주인공에게 ‘지난 한 시절이 실려 있는 열차’이고 ‘내가 헤매 다니던 그곳’이며 ‘오랫동안 내 젊음을 보낸 공간’이기도 합니다. 열차를 타고 달리는 짧은 여행은 과거 ‘조개의 섬’이나 ‘갯벌의 황소’를 만나러 가는 길이며 친구들과의 추억이 깃든 그리움의 시원, 바로 ‘소금창고’와 재회하러 가는 길인 것입니다. 소금창고는 ‘순간이 마지막 휘발되기 전에 갈피 지어 차곡차곡 쟁여 둠으로써 추억을 발효시키’는 공간이었다죠. 그곳에서 추억을 나눈 친구들은 모두 저 세상 사람이 되었고 남루한 사진 한 장만 남았지만 그땐 그렇게 소금창고에서 시만 쓰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라면에 바닷가 젓갈들만으로도 살아갈 계획을 세워놓고 그것을 ‘희망’이라고 불렀으니까요. 사람에게 어떤 희망은 죽는 날이라는 절망속에서도 죽도록 잊혀지지 않는 질긴 환영일까요. 그렇다면 주인공이 자꾸 우연히 마주치던 여자 여행객은 소금창고에 저장된 추억의 환영이었을지 모릅니다. 우연도 세 번이 넘으면 필연이라 했던가요. 아...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네요. 그것은 희망으로 동화(同化)되는 한 편의 동화(童話)였습니다. 열차가 달려가는 그곳은 우리가 살면서 가장 희망스런 날들의 시공간, 그 희망의 기록장 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추억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소금창고에 꽁꽁 쟁여둔 소금, 세월이 지나도 절대 썩지 않는 소중한 그것. 나만의 그것 말입니다.


5. 한 구레네사람의 수기(2008) / 이승우(1959)

이 작품은 이 책에서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소설입니다. 저는 사실 소설에 종교적인 기운이 강하게 묻어나 있는 글을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예수와 십자가의 의미를 등에 업고 인간 구원의 과정을 그려내는 작가의 행보가 썩 맘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성경에 나오는 구레네 사람 시몬의 이야기를 소설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제가 호감가지는 장르의 글은 아니었던 것이죠. 구레네 사람 시몬은 병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려고 골고다 언덕길로 끌고 갈 때, 그 처형장면을 구경하려고 언덕 가까이 왔다가 잡히는 바람에 예수가 무거워 힘들어하는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는 인물입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기독교 역사상)영광스런 큰일을 한 사람이죠. 작가는 이 성경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시몬의 시점으로 서술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를 다시 쓰는(re-writing) 방식의 소설 인지라 저는 최근에 익숙한 서사를 재해석하기로 유명한 소설가 최제훈 작가를 떠올렸습니다. 최제훈 작가의 전략이 텍스트의 변주로 이른바 읽는 사람 마음대로 독자 ‘좋을 대로 해석하기’였다면 이승우 작가의 전략은 ‘다른 눈으로 해석하기’로 생각됩니다. 역사는 인물과 사건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서술하는 시점의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이 작품에서 시몬은 흑인인데다가 장사꾼으로 등장합니다.(구레네는 지금의 아프리카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지방에 해당) 아들과 함께 돈되는 곳을 찾아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보따리 장사꾼인 것이죠. 작가가 이미 가지고 있던 제 편견을 누그러뜨리며 전혀 다른 이야기로 들려주었다 생각한 것은 바로 시몬이 사람의 아들이라 불린다는 나사렛 사나이를 두고 인간적인 의심을 품는 부분이었습니다. 소문을 듣고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 를 섬세한 소설로 완성시킨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되는 과정과 그 순간에 일어나는 한 인간의 깨달음을 종교적이지 않게 주형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시공간에 자석같이 편입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한 인간이 그것이 구원인지 변심인지 무엇인지 인식하기 전에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설명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체험이 아니면 감동받기 힘든 것이죠.

“그리고 나는 예감했다. 이제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 사람으로 인해 나의 인생인 달라질 거라는 예감은 바위처럼 견고했다. ... 그가 세상을 구원할 능력을 가졌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건, 그의 눈과 손에 붙잡혀 다른 존재로 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새롭게 변화되지 않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그 사람이 예수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한번쯤은 겪게 되는 순간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특별해 보일 것 같은 순간의 솔직한 보편성에 감동받았습니다. 결국 구원받는 순간은 늘 바라던 구애가 이루어지는 순간이 아닐까요. 나를 구원해주는 대상이 예수가 아니면 어떤가요. 중요한 건 지금부터 달라질 내 인생 인 것이지요. 그건 흑인이건 장사꾼이건 구원을 원하는, 혹은 원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공평한 시작 아닐까요. 돌이켜 보건대, 제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기대하건대, 앞으로도 이 순간이 다시 오길 바라게 되네요. 그러니까, 끝내 ‘희망’을 설득하며 묘한 끌림을 주는 매력적인 소설이었습니다.


6. 퍼즐(2007) / 권지예(1960)

이 책에서 가장 소름끼치고 을씨년스러워 한나절 도저히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통속적일 수 있는 한 여인의 기구한 사연이 미세한 고품격의 감성들로만 조각조각 맞추어지는 느낌. 같은 불륜이라도 감독에 따라 예술영화가 되듯이 말입니다. 마지막 순간 책을 덮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완벽히 맞추어진 퍼즐의 잔상에 애도의 시간이라도 가져야 할 것 같았습니다.

"단 한 조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완전하게 맞추기 위해 퍼즐 게임은 존재하는 것이다."

여인은 5대 독자의 집안에 재취로 시집을 옵니다. 순전 씨받이 역할로 말입니다. 그런데 인생은 웃기기도 하야 전처가 낳은 딸의 방에선 임신 테스트 키트가 발견되지요. 처음부터 대놓고 아들낳기를 강요받아온 이 여인은 여러 차례 태아감별 검사로 강제적 인공유산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폐허가 된 육신은 어느덧 폐경이라는 절망을 받아들여야 했고 가족의 외면속에서 정신마저 피폐되어 갑니다. ‘한 세상 지나며 씨를 내지 못하고 꽃이 진 자신의 몸을’ 매순간 자각하는 여인은 전처 딸의 창가에 둥지를 튼 새와 고양이 울음소리와 사라진 아기들의 뼈, 핏덩이로 흩어진 살점들을 제 정신으로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가족이 된지 18년이 되었지만 늘 ‘물 위의 기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작품에서 여인의 취미로 묘사된 퍼즐을 맞추는 작업은 거꾸로 완성된 작품에서 하나씩 퍼즐이 사라져 가는 게임으로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소멸의 완성이 퍼즐게임의 승리일 수 있다는 것. 여인은 끝내 사라짐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킨 것이니까요. 미술품에 애정을 쏟는 남편은 겉모습만 중시하는 가식적인 중산층의 표상이겠죠. 내면의 아름다움과 상관없이 형식적인 틀에 맞춰 아들이라는 퍼즐 하나가 간절했던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새로운 생명을 거부하는 전처 딸이 둥지에 든 새를 혐오하는 것은 자발적인 낙태와 함께 인명을 경시하는 다음 세대의 환유이겠지요. 파출부 자식이면서 지적 장애를 가진 다 큰 아들이라도 하나 있었다면 좋겠다는 여인의 마지막은 권지예 작가의 계략이자 치밀한 각본의 결과입니다. 포르말린에 채워져 물러 터지고 말 과육과도 같은 살점의 영구보관. 그녀가 스스로 뚜껑을 닫으며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되어버린 장소는 어디였을까요. 뚜껑을 덮으면 엄마 뱃속처럼 따뜻해서 괜찮을 거라는 그래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거라는 그곳은, 혹 누군가가 뚜껑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을까요?


7. 마디(2007) / 이나미(1961)

이 작품의 주인공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삭발’을 감행합니다. ‘요즘 부쩍 스무 살 이후로 이십년 세월이 드문드문 도막난 채 떠오른다’는 주인공이니 얼추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모양입니다. 그녀는 음대 작곡과 출신의 강사인데 어린 시절 장독대에서 떨어져 귀를 크게 다친 경험일랑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 사실이 환기되느냐 하면 삭발하고 보니 그토록 엄청난 상처를 남긴 흉터가 세상에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즉, 머리만 깍지 않았어도 잊고 살아도 좋을 상처였지요. 왜 머리를 깍아야 했을까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어찌어찌하다 마흔에 드디어 삭발하게 된 이유를 말하는 소설인 것입니다. 삭발하였으므로 오래된 상처, 잊었던 나를 발견한 이야기일테니까요.

삭발을 하게 된 경위는 여느 소설과 다르진 않았습니다. 그녀는 실연을 당했고 친구는 배신했으며 교수임용에도 실패했으니까요. 그런데 작가는 그간의 사연에 구구절절 치중하기 보다는 삭발식으로 향하는 심정과 삭발식의 순간에 보다 집중합니다. 사진관과 목욕탕, 미용실로 옮기는 발걸음이 얼마나 장중하던지 흡사 입대를 앞둔 누군가가 생각나기도 했으니까요. 직업적으로 청각이 누구보다 중요한 그녀에게 감응 신경성 난청이라는 뜻밖의 진단은 아무리 잘 견뎌온 인생이라지만 새로운 상처가 되고도 남았겠지요. 작가의 오랜 내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멀지 않았습니다. 삭발이라는 초강수도 울고 갈 꽃구경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마디’가 제목으로서 울림을 주는 절절한 깨달음. 생물의 마디는 절연되었기에 마지막이 아니라 지금부터 성장할 수 있기때문에 소중한 마디였던 것이죠. 잘라내었기 때문에 새롭게 자라나길 기다리는 마디였던 것입니다.

“최근 내 인생도 전지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했다. 자의든 타의든 쳐낼 것은 쳐내고 그 상처의 마디에서 뻗어 나온 가지가 굵고 튼실해진다는 진실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몽당나무들.”

가지를 치는 것(전지작업,剪枝作業)이 과실의 생산을 늘리기 위한 작업
이었다는 것을 알 게된 불혹이야 말로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고 흔들림이 없는 나이’라는 작가의 마지막이 저는 어쩐지 이 책에서 주제상으로는 가장 젊다고 느껴진 소설이기도 합니다. 아직, 마흔밖에 되지 않은 것이니까요. 작가의 문장들도 아픔을 무릅쓰고 곁가지를 잘 다듬어 내었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입니다. 생각보다 마흔 즈음에 찾아오는 불혹병이 깊고 쓰라리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젊고 건강하게 한 이십년 살다보니 그 시절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룬 것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다면 없는 대로 자아성찰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게 되어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죠. 제 경우도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처럼 ‘난 이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내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제와 없어진 무엇을 발견하는 일은 실로 ‘나이 마흔에 벌어 놓은 건 나이뿐이’라는 이 소설의 허탈함과 꼭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상처의 가지치기, 전지작업이 필요했던 제게도 선물같은 작품이었습니다. 가지치기를 끝내고 다음의 열매를 기다리는 이 심정을 당신도 알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8. 파종(2009) / 조경란(1969)

잘은 모르지만, 작가들은 이런 소설을 훌륭한 소설이라고 말할 듯 합니다. 꼭 화장을 하고 나왔는지 분명히 알고는 있지만 전혀 화장을 안한 듯 느껴지는 고난이도의 화장술처럼 말입니다. 기초부터 꼼꼼히 바를 걸 다 바르고 색조도 종목별로 다 했지만 누구보다 자연스러워 마치 원래 타고난 얼굴인듯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화장술. 알고 보면 그게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인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죠. 하루아침에 표현할 수 있는 테크닉이 아님을, 오랜 세월 터득하고 반복되어온 끝에 이루어진 진화의 산물임을 화장하는 사람은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소설가를 글쓰는 기술자로 보았을 때 절대 흉내낼 수 없는 수준높은 기술력으로 탄생된 제품일 것입니다.

우선 이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가족’입니다. ‘어제는 달에 갔습니다.’ 라는 생뚱맞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시적 도입이 저는 좋았습니다. 뭐 대충 가족이 시적이기 얼마나 어렵습니까. 소설에서 만난 가족들은 (우리 가족과 똑같이)대개 ‘구질구질’하거나 ‘지긋지긋’하기 마련이니까요. 작가는 달나라에 착륙한 우주인처럼 달밤의 장면을 아름답게 중계합니다. 그 에메랄드빛 바다에 표독스런 송곳니를 가진 바다코끼리를 보았다는데 그 녀석이 꼭 자기 식구들 같다고 노래하네요. 서로의 몸통에 작살처럼 쑤셔 넣는 송곳니야말로 우리네 가족들의 오래된 무기라고요. 무릎을 탁치며 이것은 시라는 실로 소설을 뜨개질하는 작가의 기술력이다, 이렇게 감탄을 했습니다.

그렇게 바다코끼리의 송곳니를 가지고 돌아와 우리 가슴속에 서서히 후벼 파는 기술을 작가는 미련없이 보여주더군요. 읽는 동안만큼은 이 책에서 이 작품이 제일 아팠거든요. 사실, 가족이라는 존재는, 고의로 상처를 주기보다는 툭툭 늘 습관적으로 스크래치를 내고 가지 않습니까. 어떨 땐 상처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때가 더 많은 게죠.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집에서 오래 살다보면 서로의 송곳니도 흉기가 아니라 공구로 생각되니까요. 드라이버 좀 돌렸다고 아프다 소리치면 그건 우리끼리 엄살인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글로 소설화되고 나면 참 전혀 새로운 아픔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그 아픔을 별스럽지 않게 감당하는 가족은 아버지와 딸입니다. 아픔을 과장하지 않고 단순하게 절제하면서도 그 순간을 정밀하게 포착해낸 작가의 솜씨가 일품입니다.

“아버지는 나 몰래, 나는 동생 몰래 모두가 잠든 한밤중의 식탁에서 눈치껏 술을 마십니다. ...이곳에서 나라는 존재는 저녁 밥상을 치우는 것으로 깨끗이 끝납니다. 조금만 배려받지 못하면 풀이 죽고 무시당한 느낌이 들곤 해요. 나이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를 보면 그건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는 나는 아무 데서나 엎드려 잠들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동생은 엎으려 있는 내 귀를 왼손으로 잡아 끌어올리면 언니야, 또 달에 갔다 왔냐? 혀를 차기 마련이지요. ”

일본에 시집간 동생이 팔에 기브스를 하는 바람에 살림을 도와주러 간 아버지와 큰 딸은 어쩌다보니 둘도없는 내면의 술친구가 되버립니다. 이들이 가족간의 상처를 견디는 방법은 공교롭게도 알코올이었거든요. 힘이 되주려 간 것이지만 눈치 덩어리가 된 아버지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큰 언니는 도쿄라는 낯선 도시 어느 시장 골목을 헤매돌다  허름한 술집에서 반갑게도 재회합니다. 술을 끊지 못해 서로 울고 싶은 마음으로 웃어보는 두 사람, 서로에게 ‘딱 한잔’만 권하며 술잔을 건네던 그 장면은 조경란 작가가 말하는 웅숭깊은 가족의 백미였습니다. 아버지는 딸네 집 베란다가 허전해 꽃이라도 심어보려고 꽃씨를 사오는 분이었어요. 타국에서 사온 꽃씨가 시금치 씨앗인지도 몰랐고 파종시기도 모르셨지만 시금치가 명아주과라는 풀인 것은 아는 사람이었어요. 여기저기 빈터에서 흔히 자라지만 툭 던져놓으면 잘도 뿌리를 내려 쑥쑥 자라는 풀 말입니다. 어쩌면 가족이란 장미꽃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시금치처럼 질긴 것이 아닐까 싶어요. 마침 시금치는 찬 바람과 눈을 맞고 자란 1월 것이 가장 맛이 좋다고 하잖아요. 각자 가진 송곳니로 서로를 할퀴어도 그토록 시린 세월을 지나온 가족이야말로 서로에게 가장 뜨거운 존재들이겠죠. 조경란의 <파종>은 가족이라는 흔하고도 질긴 씨앗을 송곳니처럼 특별하게 심어주는 소설이었습니다.


9. 깊은 밤, 기린의 말(2010) / 김연수(1970)

이 작품은 이 책의 표제작이면서 첫 수록 작입니다. 책을 덮고 조용히 왜 이 작품이 표제작이 되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솔직히 제목만으로 보면 소설집의 이름이 될 만한 작품으로는 이 작품이 가장 문학적으로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열 편을 묶어주는 아예 다른 언어로 제목을 지을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깊은 밤, 기린의 말’은 의미심장한 네이밍이라는 것이죠. 특히 동물원이 운영중인 대낮도 아니고 ‘깊은 밤’에 들려오는 ‘기린의 말’은 어떤 의미일까. 기린이 말은 할 수 있으며 또 한다 해도 누군가 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기린이 말을 한다 가정했을 때 그럼 어떤 내용을 말 하였을 것인가. 그런데 왜 하필 기린이란 말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기린’이 의미하는 바를 성찰하는 이야기이며 그것은 이미 사람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과적 전제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기린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우리는 기린이 하는 말을 꼭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기린이 말을 하지 않았거나 들리지 않았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어도 말입니다.

이처럼 기린에게 눈과 귀를 기울여보면 작가가 왜 자폐아 가정을 관망하여 관통하는 동물로 기린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봄날 쌍둥이 자매와 자폐동생 태호 삼남매는 동물원을 가게 됩니다. (동물원에서는 꼭 벚꽃이 흩날리거든요) ‘엄마와 아빠는 우리를 동물원에 버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는 꽤 자극적인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의 도입은 알 수 없는 슬픔을 예고하는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동물원에서의 ‘기린은 멀리서 우리 쪽을 바라봤다. 우리는 기린에게 손을 흔들었다. 기린은 무엇도 흔들지 않았다. 기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즉 이들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 때 기린은 마치 자폐아 동생처럼 소통이 불가능한 대상인 것입니다. 쌍둥이 자매는 ‘기린과 태호가 말하는 방식’이 같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 작품에서 태호의 엄마는 ‘시인이 되지 못하고 내성적인 쌍둥이와 자폐아의 엄마가 된’ 꿈을 잃어버린 중년으로 등장합니다. 엄마는 태호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닐지어니’라 시를 적습니다. 엄마는 시를 적고 태호가 관심을 보인 강아지에게 ‘기린’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기린’이라 말하면 태호가 유일하게 반응을 보이며 좋아라 했기 때문입니다. 그날부터 태호와 기린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겠죠. 신기한 것은 태호가 기린과 소통이 되(었다 생각하)자 엄마는 문학 신인상 공모에 당선이 되며 시인의 꿈을 이루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애끓는 절망을 적은 것이 애틋한 희망이 되어버린 겁니다. 헌데, 얄궂게도 기린은 앞 못보는 장애 강아지였습니다. 같은 상처를 지닌 존재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그건 꼭 기린과 태호만은 아닐 겁니다. 태호와 가족은 이제 기린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우는 이유를 알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그것은 기린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기린의 말은 시각장애처럼 아픔을 가진 사람이 들려주는 울음과 같은 목소리가 아닐까요. 모두 잠든 밤,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이 소설이라는 시공간에서 각자 생의 상처와 고통을 토해내는 작가들의 깊고도 조용한 말... 그것은 강아지를 기린이라 생각하며 행복을 느끼는 태호에게 희망이 되고도 남는 말일테죠. 누구에게나 들리는 말은 아니고 태호처럼, 태호가족처럼 기린과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독 더 생생히 들리는 한밤중의 교신일테죠. 작가들의 발신음이 별처럼 수놓아지는 아름다운 밤일테이죠.

당신은 기린의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기린의 울음소리에 같이 울어 본적이 있나요?


10. 제삿날(2009) / 이명랑(1973)

이 작품을 가장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명랑하다기 보다는 맹랑하달까. 한편의 잘 짜여진 단막극처럼 꽁트로 여겨지는 구성과 솔직하고 시원한 대사들이 매력이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소설은 화자가 여러 명입니다. 같은 상황이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드높이며 각자의 입장에 처한 주장을 비교해 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왔습니다. 모두들 자기 생각만 하는 어른들이 얄미우면서도 한편으로 나라고 별 수 있었을까 싶어 슬퍼지기도 하더군요.  밖으로 꺼내놓고 말을 안해서 그렇지 속으로 삼키는 말을 말풍선에 달아봅시다 ! 모두 똑같을 테죠. 이 책에서는 가장 나이가 어린 작가지만 그녀가 들고 나온 문제는 우리사회 만연되어 가고 있는 ‘노인 부양 문제’ 였습니다. 노인을 둘러싼 자기들 문제겠지만요.

소설에선 두 어머니를 둔 아들과 며느리가 등장합니다. 두 어머니는 현재 과부인 실정이고 이들은 우연히 만나 같이 살게 된 경우입니다. 그 우연이라는 것이 나중에 알고 보니 엄청난 비밀이었다는 것인데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밝혀지는 출생과 양육의 모든 과거는 거짓말이라고 해도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주인과 더부살이 관계인 이들 두 어머니가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자식들이 병원에 모이게 되었고 여기서 병원비와 간병인에 대한 의견충돌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죠. 작가는 이 상황에서 주인 어머니의 큰아들과 큰 며느리, 더부살이 아주머니의 아들과 며느리를 각각 공평한 화자로 내세우며 정당한 발언권을 부여합니다. 이들 네 명이 속내를 드러내며 어떻게든 자기 부모를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작태는 속된말로 재수가 없는 꼴이지요. 그 와중에 주인 어머니의 큰 며느리는 충격받아 쓰러진 척, 쇼를 연출하기까지 하네요. 더부살이 아주머니를 내쫓았다는 막장 며느리는 ‘그나저나 이 노인네는 왜 죽지도 않나?’ 하며 자칫 잘못하다가 병수발 들지 모르는 자신의 오늘에 적나라한 저주를 퍼붓습니다. 그런데 이들 네 명의 배은망덕한 자식들을 뒤로 더 충격적인 반전의 커밍아웃을 병상에서 중얼거리는 분이 있었으니.... 우리 어머니들은 왜 그렇게 모두들 기구하기 짝이 없을까요. 두 과부가 거짓말처럼 공유한 귀신의 사연이 그것입니다. 어찌 보면 자식들을 속여 온 두 어머니의 세월 속에서 인생의 죄와 벌을 논하는 짜릿한 반격은 속이 다 시원할 정도였지만, 책을 덮고 나면  이야기가 공식적으로 참 완벽해 보였다고 할까요. 조금더 씁쓸해도 좋았을 듯했는데 너무 완벽해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그 점, 그것만이 옥의 티였습니다. 그것도 실은 위의 어르신들의 작품을 읽었기에 자동적으로 비교되는 결과였구요. 제가 인위적으로 나이순으로 작품을 배치했는데 그건 아마도 세월따라 쌓여지는 나잇살만큼의 연륜, 마음의 무게가 아닐지요. 


나이듦의 시간값 

긴 서평을 지양하려 했는데 이번에도 실패했습니다. 요즘 제가 젊은 작가들의 소설집을 동시에 읽고 있는 터라 이 책은 나이는 괜히 먹는 것이 아니라는 끄덕임을 주는 시간이었어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대개 아찔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매스도 예리하고 송곳도 날카롭지요. 반면에 지긋하신 작가들의 소설은 느리고 두껍지만 둔중한 울림이 있습니다. 나이든다는 자신감을 선사하는 자랑스런 작품들이라고나 할까. 좋은 소설, 좋은 작가가 많겠지만 자신의 위치와 경력에서 작품으로서 완벽한 소설을 완성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저는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당대에 하나같이 빼어난 작품으로만 느껴집니다. 조금 호들갑을 떨어보자면 같이 살아주셔서 읽게해 주셔서 고맙다고 절이라도 할 만큼이요. 허나 현대미술관 같은 갤러리에서 이름난 화가들의 작품을 모두 관람한다고 해서 전 작품을 이해하고 돌아오진 않지요. 그냥 가슴으로 느낄 뿐, 작가가 말하려 했던 것을 다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이 작품들을 모두 잘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돌아오는 길이 분명 벅찬 감동으로 가득했다는 것은 속일 수 없는 진실이랍니다.  

나이가 드니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고상하게, 더 품격있고 교양있게 나이들 수 있을지 그것도 고민이 될 때가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고민은 나이가 들어도 어째 나이들어 기대하는 자기모습이 아닌 것 같기에 계속 하게 되는 고민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나이 들었다고 다 용서되고 다 알아지는 것이 아니더라는 말씀이죠. 욕심이 사라지기는 커녕 헛된 바램은 더해지고 부질없는 기다림도 생기더란 말입니다. 이제껏 먹은 것이라고는 나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벌어 놓은 것이라고는 나이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를 때 이렇게 나이든 작가들의 나잇값 제대로 하는 소설을 읽는 것도 좋은 처방인 듯합니다.  

이제 '깊은 밤, 기린의 말'쯤이야 모두 알아 듣고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강아지도 그가 좋다면 기린이라 부를 수 있고 그래서 기린이기에 못다한 말까지도 강아지 안아주듯 보듬을 수 있는 나이이길 바랍니다.

그 말귀 알아듣는 알찬 시간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나이듦의 시간이 아닐까요. 나잇값을 한다는 것, 그 나잇살만큼 불어난 시간값을 한다는 말 아닐까요.
 

 

 

j***o 2011.05.23. 신고 공감 1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다양성의 노래를 들으며, 그 즐거움에 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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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집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중후한 기성작가들과 신진이 어울려 있는 듯함을 알 수 있겠다. 요즈음 뜨는 작가들에 기존의 명인들이 조금 포함되어 작품들이 진열된 된 듯하다. 허나 모두 가장 가까운 시간에 창작된 작품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동시대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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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집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중후한 기성작가들과 신진이 어울려 있는 듯함을 알 수 있겠다. 요즈음 뜨는 작가들에 기존의 명인들이 조금 포함되어 작품들이 진열된 된 듯하다. 허나 모두 가장 가까운 시간에 창작된 작품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동시대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다. 다른 인문서나 철학서, 경제서 사회현상들을 그려내는 글들보다도 소설과 친한 내 독서의 편린을 본다. 그것은 흥미가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시대의 나아갈 바를 정서적으로, 도덕적으로 가장 잘 던져주는 것이 문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문학 중에서도 소설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니까 더욱 가깝게 여긴다. 하여 소설 읽기를 통해서 오늘을 알고, 과거에 대한 성찰과 내일에 대한 소망을 일깨우는 작업을 나는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 소설 중에서도 동시대, 현재의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소설은 시대의 문제들이 많이 거론된다. 그것이 이와 같은 소설읽기에 몰두하는 이유가 된다. 문학지를 통해서 발표되는 소설을 많이 가까이 하는 것은 이런 내 마음이 많이 작용해서 일 것이다.  이 책은 초판이 2011년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현재와 가장 가까운 시기의 생각들이 담겨진 작품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10편이나 들어 있다. 기존의 알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도, 새롭게 부상하는 작가들의 작품도 나에겐 의미 있게 다가왔다.


김연수의 ‘깊은 밤 기린의 말’이란 작품은 특별한 소재를 특별한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쌍둥이 아이의 눈을 통해 자폐아를 가진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그 아이와 죽고 싶을 만큼 고통을 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한 가족이 지니는 아픔이 그려진다.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어린 아들, 어떻게 해줄 수도 없는 부모의 입장이 오버랩 되면서 고통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멍멍이와는 어쩐 일인지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것을 부모들은 지켜보고 있다. 그 멍멍이를 기린이라 하면서 특별한 후각으로 서로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어찌 보면 사회문제가 될 수 있는 이런 문제의 한 해결책을 제시해 보려는 의도가 있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원래 태호는 옆에 누가 있어도 도통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릴 때는 우리가 번갈아 태호를 안기도 했는데, 그건 꼭 솜뭉치가 든 곰인형을 안는 느낌이었다.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태호는 기린만은 옆에 있는지 없는지 알아봤다. 둘은 영혼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가까이 있지 않으면 둘 다 불안해했다. 아빠는 그것이 분리불안이라 했다. (p32)


박완서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나의일상을 그리고 있다. 팔순 가까이 되는 시어머니의 왕성한 활동과 시집살이를 해야 하는 나의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오늘날 쉽게 결혼하고 이혼하는 자식들 이야기가 제시되어 있다. 화자의 생각은 늙은 분들이 뭐 그리 자랑과 자존심이 가득한 삶을 사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투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자식들이 번듯하게 있어 자신을 모신다는 것을 자랑 삼아 제시하려는 의도에 의해, 시어머니의 집을 방문해야 하는 며느리의 고충을 그리고 있다. 화자도 자신의 입장이 너무 강하게 제시되어 있다. 어른을 모신다는 개념이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내용을 자신의 시간이 저당 잡히는 일 때문에 힘들어한다. 작가는 이 글을 통해 노인 문제를 거론해 보고, 가족들의 관계에 대해 제고해 보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뒷부분에 큰 아이의 당돌한 아내였던 여자를 만난다. 그녀를 통해 거침이 없는 남녀 관계의 실상을 들으면서 망연해 하는 화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외에도 이 책은 한 시골 마을의 신기루 같은 물품에 대한 소망을 그리고 있는 ‘이상한 선물’ 죽음과 화장을 둘러싼 ‘국화 밑에서’ 등 총 10편의 글들로 이루어진다. 모두 흥미 있게 새로운 것들을 느끼면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이렇게 단편을 모아놓고 있는 책은 다양성을 읽을 수 있어 좋다. 이와 같은 책과 함께하는 시간은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서 많은 인생을 접할 수 있고, 그들의 독특한 색깔 속에 들어갈 수 있어 행복하다. 특히 중후한 이미지를 던져주는 많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기쁨을 더욱 컸다. 



j****3 2011.11.01. 신고 공감 5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깊은 밤, 기린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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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이청준, 최일남, 윤후명, 이승우, 권지예, 이나미, 조경란, 김연수, 이명랑.책을 자주 읽는 사람이 아니라도 이름을 들어봤을 만한 유명한 작가들이다.이 분들의 단편을 한꺼번에 모아놓은 책이다.  꼭 소장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작가들만으로도 소장하고 싶은 맘이 들기에 충분한데 책이 예쁘기까지 하다.  이 대단한 작가들이 어떤 이야기를 펼져 놓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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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이청준, 최일남, 윤후명, 이승우, 권지예, 이나미, 조경란, 김연수, 이명랑.
책을 자주 읽는 사람이 아니라도 이름을 들어봤을 만한 유명한 작가들이다.
이 분들의 단편을 한꺼번에 모아놓은 책이다.  꼭 소장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작가들만으로도 소장하고 싶은 맘이 들기에 충분한데 책이 예쁘기까지 하다.  이 대단한 작가들이 어떤 이야기를 펼져 놓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책을 요리조리 보고 또 봤다. 표지의 종이 재질과 반짝이는 제목, 띠지의 색, 구멍을 뚫어 속의 주황색이 보이게한 부분까지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없다.

자폐아와 가족들 그리고 강아지의 이야기인 김연수 작가의 깊은 밤, 기린의 말, 시어머니에게는 기를 못펴고 그렇다고 며느리에게도 할말 못하는 갱년기 아줌마의 이야기인 박와서 작가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의 전설을 가지고 있는 이상한 마을 이야기인 이청준 작가의 이상한 선물,  작곡을 전공한 주인공이 한쪽 귀가 들리지 않게된다는 이야기인 이나미 작가의 마디, 어떤 이유로 마음이 아픈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권지예 작가의 퍼즐, 선지자라 불리는 남자가 십자가에 못박히러 가는 길에 우연히 십자가를 대신 지게되는 남자의 이야기인 이승우 작가의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 한때 소금창고에 살고 싶었던 남자의 이야기인  윤후명 작가의 소금창고, 알콜 의존증이 있는 아버지와  첫째딸이 둘째딸의 일본집에 가게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조경란 작가의 파종, 다른 사람이 봤을때는 몰라도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음을 이야기 하는 이명랑 작가의 제삿날, 장례식장에 간 한 남자의 이야기인 최일남 작가의 국화 밑에서. 이렇게 10편이다.

단편은 호흡이 짧기 때문에 시간이 날때마다 조금씩 읽어도 흐름이 끊기지 않기 때문에 부담이 없어서 좋다.  거기다 짧지만 깊은 여운을 주거나 깜짝 놀랄 반전까지 숨기고 있다면 더 좋다.  이 책에는 그런 이야기가 몇개 있다.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이는 이이야기가 그렇다 할 것 이고 어떤이는 저 이야기가 그렇다 할것이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나중에 어떤 이야기가 괜찮았는지 이야기 나눠봐도 좋을것 같다.

이 책은 이야기 마다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모두 다른 작가가 썼으므로 그건 당연한 거겠다.  그리고 시선을 잡아끌만 한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소설이 될만한 이야기가 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이 10분 중에 좋아하는 작가가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을 읽기 위해서 이 책을 집었다가 덤으로 읽은 다른 작가의 단편이 마음에 들어서 다른 작가도 좋아하게 된다면 독서의 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s****0 2011.04.23.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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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기린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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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풍부하게 접하고 섭렵하여 내 안의 울림을 가득 채워 나간다면 잃었던 누선과 메마른 감정이 한껏 봄비를 맞고 다시 활짝 피어 오르지 않을까 한다.특히 한국 문학작품을 대하면(작가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르지만) 내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이라는 토양을 강 건너 불구경하기도 하고 내가 마치 겪었던 일인양 빙그레 미소 짓기도 하고 먼 옛날 할아버지,할머니와 살았던 시절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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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풍부하게 접하고 섭렵하여 내 안의 울림을 가득 채워 나간다면 잃었던 누선과 메마른 감정이 한껏 봄비를 맞고 다시 활짝 피어 오르지 않을까 한다.특히 한국 문학작품을 대하면(작가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르지만) 내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이라는 토양을 강 건너 불구경하기도 하고 내가 마치 겪었던 일인양 빙그레 미소 짓기도 하고 먼 옛날 할아버지,할머니와 살았던 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다시금 조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이것은 문학이 삶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며 순수한 인간의 마음을 자극하기에 감흥도 일어나리라 생각한다.또한 예스러운 단어 및 문구를 대할때면 죽어가고 살아나며 또 죽어가고 살아나가는 말들 속에 사회성이 깊게 내포되어 있음도 간파하게 된다.



 이 도서는 제목이 참으로 깊은 여운을 준다.또한 작가 10인의 단편 하나 하나가 10인 10색이라는 것도 두드러지게 되고 모두가 우리네의 삶과 일상,생각과 감정,기쁨과 슬픔,만남과 헤어짐,선연한 기억과 희미한 기억들을 함께 느끼게 하는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작가 중에는 이미 고인이 된 두 분도 보인다.이청준,박완서 작가이다.

 깊은 밤,기린의 말에서 학습 지체아를 두고 있는 태호 엄마의 애틋한 육아 이야기,갱년기의 기나긴 하루에서의 잘난 시어머니와 중년의 며느리 사이에서 오고 가는 따분한 일상의 단상,이상한 선물의 선바우골의 전설과 보림사 보살님 벽화의 설화에 얽힌 이야기,마디에선 불혹에 나이에 든 주인공의 노안과 이명등으로 삶의 전환점을 풀어내고,퍼즐에선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낙태를 하고 자신 또한 우물 속에 빠져 죽는 이야기,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에선 기독교 순례 여행담이 잔잔하게 그려져 있으며 소금창고에선 협궤열차 수인선에 대한 추억과 시화호에 얽힌 추억이 그려져 있으며 파종은 부녀가 진화론과 관련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거 같고,제삿날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의 몰인간성을 지적해 주고 있다.마지막 국화 밑에서는 한국 장례문화와 관련하여 작가의 박식한 입담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가끔 자신을 되돌아 보고 삶을 관조하며 잃었던 인간 상실을 되찾아 가는데에 있어서 여기에 나오는 10인의 작품들은 인간의 마음을 제자리로 되돌려 주고 겸허하게 살아가는 법도 가르쳐 주지 않을까 한다.가끔 소설집을 읽곤 하는데 이 작품은 읽었던 작품중에서는 삶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안겨 주었기에 오래 기억에 남을거 같다.

 






j******6 2011.04.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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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기린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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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혹은 그 어떤 제품에 대해서도 대표라는 것이 있다. 우리 시대 대표 작가 10인의 베스트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깊은 밤, 기린의 말>은 김연수 작가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힘 혹은 누구에게나 서로를 당기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여주는 것 같다. 흔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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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혹은 그 어떤 제품에 대해서도 대표라는 것이 있다. 우리 시대 대표 작가 10인의 베스트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깊은 밤, 기린의 말>은 김연수 작가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힘 혹은 누구에게나 서로를 당기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여주는 것 같다. 흔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그들에게서 혹은 그러한 현상속에서도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영혼의 분리 혹은 영혼의 연결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가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그 영혼이 메마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기린이 입을 움직였다. 낑낑거리는 그 소리가 우리 귀에 들렸다. 유리창이 두꺼워 그럴 리가 없었지만, 우리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p 42. 깊은 밤, 기린의 말

 

 

 

 

<깊은 밤, 기린의 말>을 시작으로 박완서님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부터 최일남님의 '국화 밑에서'까지 소설적 힘을 보여주는 그들만의 필체는 하나, 하나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이 시대 우리나라 중년 여성이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깊이 있는 해설서 같은 느낌을 받은 글 속에서는 시대의 변화 속에 여우 같지 못하고 곰처럼 자신의 자리에 있는 이 시대 중년 여성의 갱년기 속 하루를 보여주는 것 같다. 샌드위치와 같은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남자들의 뇌는 결국은 엄마 닮은 여자가 마음 편하게 돼 있다더니 맞는 말이구만. 곰처럼 무뚝뚝하고 둔한 어미에게 질려서 아들이 여우같은 여자에게 끌렸을 거라고 말할 때는 언제구. 이 집에서 못된 바람은 다 나에게로 불어온다. 대답 대신 큰소리로 하품을 했다. 걷 잡을 수 없이 잠이 밀려왔다. 자야겠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코 골며, 아, 아 간간이 신음하며, 남편이 관찰한 나의 자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도 나의 꿈속은 들여다보지 못한다. - p. 79.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권지예님의 '퍼즐'은 인생의 완벽을 추구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족함도 모자람도 없는 퍼질이야 말로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이유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그 퍼즐 한 조각 버리거나 잊어버리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완벽한 삶이 있을까? 퍼즐의 조각 하나, 하나처럼 완벽한 조각을 이룬 퍼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생이 있을까? 요즘 그래서 인지 '바보'나 '버리기'에 대한 주제의 책들이 부쩍이나 많아진 것 같다. 나의 퍼즐은 조금 느슨하게 할 필요도 느낀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뒤꼍으로 달려갔다. 돌로 쌓은 옛 우물이 보였다. 옛 우물의 통나무 뚜껑은 아귀가 꼭 맞게 닫혀 있었다. 완벽했다. 마치 아내가 한때 그토록이나 몰두했던 마지막 퍼즐 한 조각처럼. - p. 203. 퍼즐

 

 

 

 

이명랑님의 '제삿날'의 결말에 기대를 했었는지 모른다. 이런 세상이 오면 안될 것 같다. 그래서 가슴이 너무나 아프고 무겁다. 물론 소설이다 보니 설정이기 때문이겠지만 뉴스와 같은 매스컴에서 떠들어 대는 사회의 돌아가는 꼴(?)을 보니 이것이 과연 소설만의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단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자식의 연은 천륜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스스로를 천륜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것일까? 매스컴에서 떠들어 대는 이야기 속에는 소설보다 더 한 이야기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상이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태 지 새끼들을 키워 줬는디 우리헌테 이렇게 해? 나하고 자네 죽어 봐? 지들 제삿날이라고 누가 밥 한 그릇 갖다 주나!

 자네, 내 말이 틀렸나?

 나 죽을 때는 태호헌테 그 귀신 제삿날이 언제인지, 워디 묻혔는지, 다 알려주고 갈라 했는디 안 혀! 못혀!

 나 먼저 죽더라도 그 귀신들 얘기는 입도 벙긋하지 말란 말여!

 자네 내 말 알아들은겨? - p. 339 ~ 340. 제삿날

 

 



<깊은 밤, 기린의 말>에서 10인의 작가는 어쩌면 과거에서 현재의 세태를 고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축척된 글의 향기는 웃고 울리는 삶의 이야기를 맛보게 해준다. 시대는 바뀌어도 인간이라는 본연의 모습은 잊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듯 하다. 그들의 향기를 천천히 맡아보아도 한번에 끌어 안아도 좋을 것 같다.



 

h******w 2011.04.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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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의 스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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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의 스타들이 모였다. 아주 잘 차려진 고급스런 뷔페와 같은 느낌이다. 한 권의 책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읽는 내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사랑해 마지않는 故박완서 선생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휴~’하고 한 숨을 내쉬게 만들었다. 나이 들어가는 그리고 나이 든 여자들의 속성을 어쩜 그리도 잘 표현해냈는지, 천박한 모습을 경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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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계의 스타들이 모였다.

아주 잘 차려진 고급스런 뷔페와 같은 느낌이다. 한 권의 책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읽는 내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사랑해 마지않는 故박완서 선생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휴~’하고 한 숨을 내쉬게 만들었다. 나이 들어가는 그리고 나이 든 여자들의 속성을 어쩜 그리도 잘 표현해냈는지, 천박한 모습을 경박스럽지 않게 그려내 역시 대작가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천재 작가의 ‘인생 연륜’이 덧대어진 작품인 것 같다.


마침 ‘필사’할 책들을 고르고 있었는데 「깊은 밤, 기린의 말」로 결정했다. 단어 하나도 허투로 볼 수 없는,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단편들이라서 읽기도 좋고 쓰기에도 좋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솥을 들고 안절부절 하는 새댁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도 들었다, 놨다, 펼쳤다, 접었다, 를 반복했다. 너무 좋아서, 너무 귀해서.

 

  표제작 〈깊은 밤, 기린의 말〉은 김연수의 단편으로 쌍둥이 딸과 자폐증 아들을 둔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글은 쌍둥이 누나와 자폐아 태호가 눈 먼 강아지 ‘기린’을 되찾기 위해 밤거리를 걷는 것으로 시작된다. 막내아들이 자폐아 판정을 받은 후 부모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푼 풍선 같은 생활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집안은 안정을 되찾아간다. 그러던 중 태호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강아지가 ‘실명’한 상태란 것을 알자 부모는 애견센터에 돌려주고 아이들은 태호를 위해 강아지 ‘기린’을 찾으러 밤 길을 나선다.


엄마야!”

우리는 정신없이 달렸다. 그렇게 달리는 와중에도 우리는 손을 놓지 않았다. 손을 놓으면 영영 헤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서워서 소리도 못 지르고 우리는 어둠 속을 달렸다. p.40


부모는 실명한 강아지를 버렸지만 아이들은 손을 놓지 않았다. 동생이 자폐아라 할지라도 쌍둥이 누나들은 동생의 손을 놓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 특유의 대책 없는 긍정성과 천진난만함으로 피보다 더 진하고 끈끈하게 서로를 매었다.


  故박완서 선생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갱년기를 맞이한 늙은 며느리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여보 나 왜 이렇게 울화가 치밀고 얼굴이 화끈거리지, 했더니 그가 한다는 소리가 갱년긴가 보군, 했다. 그래 갱년기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화상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지가 여자에 대해 뭘 안다고. p.46


시작부터 파격적이다. 남편에게 ‘화상’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 뻔뻔스러움이 우스워서 괜히 신이 나기까지 했다. 그 신바람은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가 끝날 때 까지 계속되었는데, 역시 박완서 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교사 출신인 팔순 노인의 사교 모임과 아들과 갓 이혼한 싱싱한 며느리와의 대화 장면에서 ‘악’하는 탄성은 절정을 이루는데 30대, 50대, 80대의 각각의 시선을 완벽하게 재연해낸다.

2007년 친절한 복희씨 이후에 써진 글이라니 팔순 가까운 나이에 집필하였을 텐데 어쩌면 이렇게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묘사하는지 절로 입이 벌어졌다. 절로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생동감 있는 글이다. 


  이청준이 투병 중 마지막으로 쓴 단편〈이상한 선물〉은 40년 지기 이근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쓴 작품이라고 한다. ‘마음에 안 들지만 보내 줄게. 어쩌면 내 마지막 작품일지도 몰러.’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했기 때문일까? 소설의 배경은 선생의 고향인 ‘장흥’이다.
주인공 황기태는 초등학교 졸업 후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으나, 몇 년 농사일 끝에 독학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공무원이 된다. 성실함과 탁월한 업무 능력 덕에 도청3급 사무관직에까지 올랐던 자수성가한 인물이지만, 그 즈음부터 고향마을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칭송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그는 과거 서당 집 아들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 의문의 물건을 건네받게 된다.


‘어찌 보면 이 동네 사람들 모두가 각기 한 가지씩 제 역할을 맡아 살아온 격이랄까. 왜 그랬는지 이제 임자도 알겄지만 그게 세상살이고 이 동네 사람살이 꼴이었다면, 거꾸로 저 몹쓸 도두이나 노름꾼, 패륜아 무리까지도 나름대로 사람살이의 반면 거울을 삼을 수 이었으니께. 그래 나도 지금껏 상투쟁이 소릴 들어가며 짐짓 이 꼴로 고집스런 세월을 살아온 것 아니겄는가’ p. 119


황기태에게 의문의 물건을 전해준 서당 집 아들도, 황기태가 기억하는 고향 사람들의 일화도 모두 후손을 위해 짜낸 선조들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창준 선생은 고향에서 황기태의 역할을  맡았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삶의 끝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역할을 드러냄으로써 그동안의 고단을 씻으려 한건 아니었을까?


  그 외 이나미의 〈마디〉, 권지예의 〈퍼즐〉, 이승우의 〈한 구레넨 사람의 수기〉, 윤후명의 〈소금창고〉, 조경란의 〈파종〉, 이명랑의 〈제삿날〉, 최일남의 〈국화 밑에서〉등 굳이 추천의 말을 건네지 않아도 될 만큼 유명한 중견 작가들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계간 《문학의 문학》에서 발표 되었던 작품들을 엄선해 묶은, 검증된 작품집 인만큼 소장가치도 높을뿐더러 한 편, 한 편이 문자 그대로 ‘주옥’ 같아서 앉은 자리에서 연거푸 읽게 된다. 「깊은 밤, 기린의 말」..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h******6 2011.05.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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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 기린의 말 은 너무나 예쁜 제목이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작가 김연수는 이렇듯 예쁜 제목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아빠와 엄마는 우리를 동물원에 버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라는 끌리는 첫문장을 던져주면서. 자폐아 동생이 있는 쌍둥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가족구성원들은 아프고 상처입었다기보다는 평범해보인다. 인간적인 고뇌와 누구나 생각으로는 한번쯤 해 봤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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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 기린의 말 은 너무나 예쁜 제목이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작가 김연수는 이렇듯 예쁜 제목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아빠와 엄마는 우리를 동물원에 버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라는 끌리는 첫문장을 던져주면서. 자폐아 동생이 있는 쌍둥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가족구성원들은 아프고 상처입었다기보다는 평범해보인다. 인간적인 고뇌와 누구나 생각으로는 한번쯤 해 봤을법한 일들을 풀어놓으며 우리에게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글의 끝부분에 기린이라 이름붙여진 개를 되찾으러 가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덧붙여놓고.

 그와 비슷하게 경성사범 출신의 똑똑한 시어머니와 이혼하고도 당당한 신세대 며느리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여있는 여인의 넋두리는 얼마전 타계한 박완서 작가의작품이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기존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남 없이 평탄하게 읽어나가면 되는 그런 작품이었다. 다만 앞으로는 그녀만의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슬프다면 슬픈 일이랄까. 

<문학의 문학>대표작가 작품집이라는 타이틀 아래 10명의 작가들이 뭉쳐 낸 책 속에는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글도 실려 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소설인 [당신들의 천국]을 집필한 이청준 작가의 이상한 선물인데,선바우골에서 심지연이라는 신통방통한 벼루를 얻게되나했더니 속임수였더라 라는 식의 마치 고전소설에서의 일장춘몽같은 신기루이야기가 짧게 실려 있었다. 무언가 미스테리한 구석을 기대했었는데 기대는 빗나갔지만 대가의 작품이라 짧은 단편도 쉬이 지나칠 수 없어 꼼꼼히 읽어내려간 소설이었다. 

그에 반해 권지예 작가와 이승우 작가, 조경란 작가의 작품은 눈에 확 띄는 재미를 보여주고 있었고 세 작가의 작품은 각각의 스타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그들만의 단편집을 읽는 것같은 착각마저 들었던 작품이었다. 좀 더 길었으면...이라는 생각마저도 잘라내게 만들 딱 알맞은 길이감과 쉼없이 읽어나가게 만드는 속도감이 마음에 들었던 단편들이었다. 

먼저 권작가의 소설은 사라진 여자의이야기로 시작된다. 100피스~1000피스에 이르기까지 퍼즐홀릭인 여자는 금치산자다. 미쳐서가 아니라 미친 사람으로 몰려가는 여인의 인생을 바라보며 그녀가 빈집 길고양이들과 다를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처소생의 딸도, 아들만 필요해서 매번 11주된 뱃속 아이를 중절시키게 만든 시어머니의 5대독자 아들도 그녀의 진정한 가족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숨바꼭질을 통해 스스로 사라졌다. 퍼즐은 제목과 달리 맞춰가는 인생이 아닌 어딘가 흘려져버린 조각같은 인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서글픈 일이다. 

아프리카계 남자가 보러간 사람은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나사렛 예수였다. 그는 선지자를 만나러 갔다가 시간을 잘못택해 베드로가 스승을 세번 모른척 하는 현장도 목격했고, 심지어는 그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만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깨닫게 되는데서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는 끝이난다. 정말 그날, 그 현장에서 누군가는 이랬을법한 드라마틱한 요소가 가득했던 소설인채로.

최근 [복어]라는 소설로 주목하고 있던 조경란 작가는 역시 스토리텔러였다. 가족 안에서 잔잔하면서도 큰 파도의 깊이를 느끼게 만드는 작가만의 매력을 잔뜩 부풀려놓아 읽는 즐거움을 저절로 느끼게 만든다.  자동차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동시에 읽은 언니는 대학행정실에서 학생들에게 등록금 독촉전화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별로 탈출구가 없어보이던 삶에 동생의 사고는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도쿄에 사는 동생의 살림을 잠시 맡기위해 떠나는 그녀의 보따리를 붙들고 늘어진 사람은 나이든 아버지였는데, 이전에 그가 어떤 가장이었는지는 모르나 함께 떠나 도쿄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 속에는 권위적이거나 카리스마있는 가장의 모습은 쏘옥 빠져있었다. 늙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과 가족으로서의 자신을 다시금 되짚어보게 만드는 힘을 전달해주는 강인한 느낌이 있는 단편이었다. 역시 조경란 작가는 계속 주목해볼 작가 중 하나로 꼽아두게 만들만큼 마음에 드는 이야기였다. 파종은.

마지막으로 제삿날은 가장 요즘 읽은 몇몇 소설에서도 언급되었던 신고려장 같은 내음이 물씬 풍겨나왔는데, 의외의 반전이 있어 재미를 톡톡히 살리고 있다. 도리라는 것이 통상적으로 어디까지를 뜻하는지 범위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을 것이다. 두 늙은 과부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두 아들과 며느리들은 어머니를 간병하는 것은 물론 오랜세월 함께 살아온 할머니이 간병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떠넘길 수만 있다면 두 노인네를 어딘가에 떠넘기고 싶은 것이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일치감치 할머니를 아내를 얻으면서 내다버렸던 할머니의 아들 또한 어떻게하면 그들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지금껏처럼 마지막까지 짐지워 내버릴 수 있는지 고민중이다. 자식들의 뇌구조 속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생각들이 이 사회가 떠안고 있는 병폐처럼 느껴져 마음한구석이 급 우울해졌고 제 부모를 떠넘기는 그들의 파렴치함에 치를 떨어야만했다. 반려동물과 단 1년을 살아도 가족이라는 마음의 울타리가 쳐지는 마당에 오랜시간 보호자였던 부모를 짐짝처럼 여기는 자식들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질탄받을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겠다. 

하지만 이야기는 복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재미는 제목에서부터 찾아낼 수 있다. 제삿날. 대체 두 할머니는 누구의 제삿날을 챙기기 위해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던 것일까. 비밀처럼 독자에게만 알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안그래도 자식들을 버리려는 아들들에겐 절대 알려져서는 안될 과거사가 숨겨져 있었다. 두 어머니 다 제 자식들에겐 친어머니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래서 그들 몰래 매년 그들 생모들의 제사를 할머니들이 챙겨왔다는 것! 또한 처음 어머니들이 만난 인연이 한 곳에 몰래 묻힌 두 여인 때문이었다는 것! 끝까지 독자만 알아야할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반전의 재미는 유주얼서스펙트급이 되어 소설이 단편이라는 사실마저 잊게 만든다. 

김연수, 박완서, 이청준, 이나미, 권지예,이승우, 윤후명, 조경란, 이명랑, 최일남 총 10명의 작가가 털어놓는 짧은 이야기들은 하나의 주제가 아니라 제각각인 이야기지만 그 속의 재미만큼은 공통분모처럼 여겨진다. 유머러스하거나 해학적이 아니어도 이야기는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가들의 필체에서 찾아내본다.



 

i*****i 2011.05.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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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기린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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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작가10인의 이야기를 읽었다. 제목부터 아름다운 이야기 깊은밤, 기린의 말 내가 처음 제목을 보고 느낀건 그저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목과는 다르게 내용은 다분이 무겁다. 세명의 아이들이 아빠가 버린 기린을 찾아헤메는 이야기다. 엄마와 아빠는 우리를 동물원에 버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로 시작된다. 진희와 나는 쌍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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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작가10인의 이야기를 읽었다. 제목부터 아름다운 이야기 깊은밤, 기린의 말 내가 처음 제목을 보고 느낀건 그저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목과는 다르게 내용은 다분이 무겁다. 세명의 아이들이 아빠가 버린 기린을 찾아헤메는 이야기다.


엄마와 아빠는 우리를 동물원에 버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로 시작된다. 진희와 나는 쌍둥이고 태호는 동생이다. 아빠가 태호가 가장 사랑하는 기린을 버렸다 우리는 태호의 기린을 찾아 밤길을 헤메다게된다. 태호가 유일하게 반응하는건 기린이다. 그런데 왜 아빠는 기린을 버린것일까 아이들은 기린을 찾지못하고 길을 잃고 헤메다 겨우 집으로 가는길을 찾았다. 이때 기린을 못찾게된걸 말하는 쌍둥이 옆에서 태호는 기린이란 단어를 듣는순간 행복해한다. 태호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쌍둥이도 행복해한다. 유리창안에서 기린이 이들의 행복을 지켜보고 있다. 태호는 자폐아다 엄마와 아빠는 태호라는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태호를 버리고 싶었던 마음을 기린을 버림으로서 표현한건 아닐까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경험을 말하자면 부모가 아이의 상태를 빨리 인정하는게 필요하다. 내아이가 그럴리 없다고 믿고싶은 마음에 방치를 하게된다. 아이가 사회에 적응할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목이다. 보통의 아이와 다르다는걸 알게되는 순간 정확한 진단을받고 대처를 할 필요가있다. 현실을 회피하면 모두가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즘 언론매체를 통해 아픈사람들을 조명하지만 일회성으로 끝이난다. 동정은 쉽지만 관심은 어렵다 주위를 돌아보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라는 울타리에 그들을 포함시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얼마전에 타계하신 박완서님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갱년기에 접어든 내가 남편에게는 위로받지 못하고 시어머니에게는 돈 때문에 빌굴한 자신 때문에 힘들고 잘난 자식 자신과는 다른 세대로 결혼생활또한 이기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인다. 돈 때문에 하루종이 시어머니 체면을 세워줘야하는 내자신이 너무도 비참하다. 갱년기에도 힘든 생활을 해야하는 며느리의 비애를 박완서님의 완숙한 글솜씨로 번잡하지 않고 정갈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청준님의 이상한 선물, 이나미님의 마디, 권지에님의 퍼즐, 이승우님의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윤후명님의 소금창고,조경란님의 파종, 이명랑님의 제삿날, 최일남님으 국화 밑에서등 다수의 좋은 작품이들어있다. 워낙 명성이 자자한 분들의 글이라 그런지 두말이 필요없다. 좋은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을 오랫동안 기억할수 있을 것 같다.

r*******5 2011.04.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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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기린의 말- 김연수, 박완서, 이청준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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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깨어났을 때, 그 시간 잠시 밖을 보면 찰흙같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깨어난 그 시각이 새벽인지 혹은 깊은밤인지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왜냐면, 엄밀히 또 새벽이 가져다 주는 느낌과는 다른 깊은 밤의 고즈넉함이 주는 그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답니다.   시계를 안 봐도 알 수 있는, 그 시간, 깊은 밤. 그리고, 다시 잠들고 싶지
"깊은 밤 기린의 말- 김연수, 박완서, 이청준외" 내용보기

 

 

어느날,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깨어났을 때, 그 시간 잠시 밖을 보면 찰흙같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깨어난 그 시각이 새벽인지 혹은 깊은밤인지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왜냐면,

엄밀히 또 새벽이 가져다 주는 느낌과는 다른 깊은 밤의 고즈넉함이 주는 그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답니다.

 

시계를 안 봐도 알 수 있는, 그 시간, 깊은 밤. 그리고, 다시 잠들고 싶지 않은 그 시간, 깊은밤.

-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그 깊은 밤만이 말해주는, 그 언어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목이 길어서 슬프다는 사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긴 목을 가진 동물을 우리는 압니다.

네, 바로 기린이랍니다. 그럼, 얼만큼이나 더 슬픈걸까요?

그 깊은 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해본답니다. 아마도,

그 깊은 밤,이 가져도 주는 그 무엇인가 때문이겠지요.
 

 


 어느날, 문득 찰흙같은 어둠 속에서 깨어났을 때, 무섭고 두렵던가요?

왜일까요.. 혹시, 그때 그 어둠 속에서 나만 혼자 남겨지게 됐다고 생각되신건지요.

그럴땐, 아주 잠시만 심호흡을 하면, 내 안의 기린인 내 안의 그 슬픔이 잠잠해진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찰흙같은 어둠 속에서 찾아낼 수 있을실 겁니다. 바로, 기린이 해주는 말을요..

 

 

 

 

 

 

 

 

 

 

 

 

 

 

 

 

 

 

 

 

<깊은 밤, 기린의 말> 은 10명의 기린아였고, 기린아이며, 또 지금은 거대한 기린이신 분들(이 말장난-_-;) 10명의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단편선이란 아주 짧은 호흡의 소설들이다. 단편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특히나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10편의 단편선 중 선호하는 작가부터 혹은 끌리는 제목부터 집어 들어도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첫 단편이자 이 소설의 타이틀인 김연수의 <깊은 밤, 기린의 말> 은 "아픔" 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은 생각해본다. 우리가 그들을 볼 때 아픈것이지 정작 그들이 아픈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두번째 단편인 故박완서 선생님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는 여성에 대한 문제이다. 어딘가 불편해, 했던 것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고 곧 우리들도 어쩌면 그리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그래, 세월이 나를 벌써 이렇게

만들어놨듯.- 그리고 이 구절에서 살짝 실소겸, 어딘가 씁쓸함도 나왔다. 그러나 말하고 있다 변하고 있다, 라고.

- 돈 문제가 얽히지 않은 결혼은 장난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이청준님의 <이상한 선물> 은 조금 호흡이 길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이나미의 <마디> 의 경우는, 시점이 과거와

현재로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퍼즐> 은 담담히 읽히다가, 마지막에 살짝의 어느순간에 헛, 하는 느낌을 가지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우린 어쩌면 퍼즐 게임은 하는 것일지도. 단 한조각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양.

그래도, 생의 에너지는, 여전히 불완전한 욕구일 뿐이지도.

 

 

 

이승우의 <한 구레네의 사람의 수기>는 언젠가 읽었던 기억이 났다. 비슷한 글이였을지도 모르지만, 그 때의 느낌

그대로였다. <소금창고>는, 나에게는 추억이지만 누군가에게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그 무엇가일 뿐에 쌉쌀한 맛이 났다.

 

조경란의 파종은.. 아주 여성적인 문체로 시작한다. 그리고, 시금치에 대해서 그리고 또 우리의 파종의 시기에 대히서.

- 참으로 묘하게 다가온 소설이였다.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한번 더 읽어지고 싶어지기도 한다.

 

제삿날과 국화밑에서는 어쩌면 아주 비슷한 소재일지도 모르지만 또 각각의 내용에 있어서는 많이도 달랐다.

- 제삿날의 마지막은 쿵, 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 둘의 관계는 한편으로는 애증은 아니였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의 특이하고도 묘한 인연에 대해서 보다는 처음 각자의 마음속을 그려내고 있음을 시작으로 한다.

 

국화밑에서는 말 그대로이다. 국화, 장례식에 들고 가는 국화를 비유해서 인간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 공감가는 건 김유정, 이상, 김소월이 만약 평범한 죽음이였다면? 이라는 질문에 그냥 구렁이 담넘듯 넘어갔지만 가끔은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 그들이 평범하게 죽었더라도.. ? 라는 개구진 생각을..^^;





 

 



 

 

그렇게 하나하나의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색깔을 읽어내려 갔다. 내 경우는, 여성작가들의 이야기에 훨씬 수긍도 공감도

그리고 재미도 있었던 느낌이다. 남성작가들이, 여성의 내면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땐, 글쎄, 라는 것도 있었으며 솔직히

하나하나의 단편은 괜찮지만, 꽤 오랜 기간 읽어나간 느낌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표현은 뭐하지만^^; 백화점에서 필요한 무언가를 사고 난 후 보니, 생각지도 않게, 사은행사품이

따라올 때가 있다. 나는 필요한 것을 사서 좋고, 의외의 선물도 받으니 기분이 참 좋다 의외성이란 것도 있고.

- 나는 실제 몇몇 작가들은 잘 알지 못한다. 워낙에 유명하신 분들이야 다 알지만. 그런데 그 알지 못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의외로, 참 마음에 들 때가 있다. 아, 이런 색을 지닌 작가였구나, 라는 느낌을 느끼고. 그리고 몇몇 분들은, 조금은 시간을

끌면서 읽어내려가기도 했다.

 



 

 

순식간에 읽혀지는 단편이 있는가하면, 조금은 텀을 길게 잡아야하는 단편들도 있었다. 아마 내가 길게 잡았던 단편선을,

또 누군가는 빨리, 또 누군가에겐 빨리 읽혔던 단편선들이 내게는 길게 잡혔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열명의 작가가

선사하는 선물, 한번쯤은 읽어봐도 괜찮을 것이다. 다만, 그 이름에 너무나 큰 기대만 하지 않는다면, 꽤나 괜찮은 소설

10편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깊은 밤, 사락 사락거리면서 책장을 넘기면 숲속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 슬픈 소리든 혹은 평안을 주는 소리든, 그 어떤

자그마한 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책, "깊은 밤, 기린의 말" 이었다. 간혹, 책장이 멈출 때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v********0 2011.04.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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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진정한 재미와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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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합니다. 제가 약간 유별나다는 사실을. 책을 읽을 때, 상당히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읽는다는 사실을. 남들이 보면 인생 참 피곤하게 산다고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어떤 이는 저에게 ‘활자 중독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타당하고, 또 어떤 점에서는 과분한 진단입니다. 일단 제가 그런 진단을 받을 만큼 책을 많이 읽지는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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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합니다. 제가 약간 유별나다는 사실을. 책을 읽을 때, 상당히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읽는다는 사실을. 남들이 보면 인생 참 피곤하게 산다고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어떤 이는 저에게 ‘활자 중독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타당하고, 또 어떤 점에서는 과분한 진단입니다. 일단 제가 그런 진단을 받을 만큼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다고 느끼니까요.

 

먼저 하는 일이 글을 쓰고 읽고 고치고 다시 고치는 직업이기에 글에 대한 묘한 강박증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식당엘 가서도 벽에 붙은, 혹은 메뉴판에 붙은 음식 이름과 설명, 음식의 유래 등등을 읽으면서 띄어쓰기와 오타를 찾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뭡니까, 이게.

 

또 지금은 그나마 상당히 호전됐다고는 하지만, 잡지를 읽을 때면 표지부터 시작해서, 광고 하나하나 목차 하나하나를 전부 읽고 나서야 다음 페이지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양심적으로 광고는 읽지 않습니다만, 이것도 뭡니까.

 

때문에 때로는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닌 텍스트를 읽어나가고 있는 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상당히 안 좋은 부작용인 셈이죠. 하지만, 분명 단언컨대 적어도 소설을 읽을 때에는 다른 모드로 들어갑니다.

 

그 다른 모드는 다름 아닌 ‘받아들임’입니다. 무언가 책에서 잘못되고 부족하고 어색한 부분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글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뭐, 어차피 제가 문학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 깜냥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소설을 그런 불순한 자세로 읽으면 천벌을 받는다는 어느 소설가의 준엄한 경고(!)가 기억나기 때문에, 그냥 있는 그대로 읽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깊은 밤, 기린의 말》은 한 문장, 한 편을 그야말로 아껴가며 읽은 책입니다. 수록된 작품들도 그렇거니와, 작가들의 내공과 깊이가 절로 느껴지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 곁에 없는 박완서, 이청준 작가의 작품과 김연수, 이명랑 등 비교적 젊은 작가, 그리고 최일남, 윤후명과 같은 깊은 연륜을 가진 작가의 작품까지. 글들의 성찬이었습니다.

 

작품들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매우 불순한 행위라 사료되는 까닭에 담지 않겠습니다. 다만 각 작품에서 받은 느낌이랄까요. 그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요?

 

김연수의 〈깊은 밤, 기린의 말〉은 분명 슬픈 이야기임이 분명한데도 어떤 발랄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뭐라고 할까, 단어들이 톡톡 튀더라고요.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읽은 후여서 그런지, 일단 인상은 좋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중년, 노년 문학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왠지 범접할 수 없는 삶의 연륜도 느껴지고요. 쓸쓸하면서도 무덤덤함이 저는 참 좋습니다. 최근에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집 《기나긴 하루》를 아껴두고 있습니다.

 

이청준 님의 〈이상한 선물〉도 매우 즐거운 소설 읽기였습니다. 아직 선생님의 작품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선생님 특유의 아련함이 참 좋습니다. 이나미 작가의 〈마디〉, 권지예 작가의 〈퍼즐〉도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감동을 느낀 작품은 최일남 작가의 〈국화 밑에서〉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예전부터 이런 문장, 문체, 쓸쓸함을 참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깊은 삶의 성찰과 농담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작가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승우의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 윤후명의 〈소금창고〉, 조경란의 〈파종〉, 이명랑의 〈제삿날〉 모두 즐거운 소설 읽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전 여전히 소설은 먼저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답고 애정하다 해도 재미가 담겨 있지 못하면 결국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 저의 어리석고 독단적인 기준으로 보면 이 책은 상당히 성공한 것이 아닐까, 이 역시 혼자 어리석게 판단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소설 읽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w*******7 2012.02.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