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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잇살의 이름값
이름을 부르고 나면 내게 다가와 꽃이라도 되어야 할진대 이들을 호명하고 나니 저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수록된 작품들도 한결같이 그 먹먹한 이름값을 한답니다. 이 책은 2007년에서 2010년 사이 <문학의 문학>이라는 문예지에 실린 중견작가의 단편 10편으로 엮어진 소설집입니다. 작가들의 나이를 보니 이명랑 작가를 제외하면 모두 불혹을 지나셨습니다. 고인이 된 박완서 작가, 이청준 작가와 같은 세대인 최일남 작가는 꼭 제 아버지와 출생연도가 같습니다. 저와 갑장인 김연수 작가를 기점으로 얼추 가까운 사촌 동생과 바로 위 언니에서부터 막내이모, 큰 삼촌, 고모부까지 꼭 집안 경조사라고 한자리에 모이신 어르신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속된 말로 애들은 가라, 식의 어른들 모임인 것이지요. 이 책을 덮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결론은 요즘 세간에 유행하는 어느 프로그램처럼 ‘나는 작가다’ 의 진짜(?) 라이브 소설 경연장이라도 구경하고 돌아온 느낌이었달까요. 문학의 연륜이라는 것, 세월의 내공이라는 것, 살면서 쓰면서 그들이 축적해온 것들이 담담하면서도 엄숙하게 녹아들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더군요. 고개가 절로 숙여지더라는 것이죠. 고개를 숙이니 새삼 이참에 처연하게 떨어진 꽃잎들이 서러운 계절을 확인합니다. 이번 봄엔 간다는 것, 가버렸다는 것에 슬퍼하지 말자 다짐을 했더랬죠. 삼년 째 불혹 증후군을 앓고 있는데 병도 오래되니 진화하는가 봅니다. 처음엔 나이드는 것이 꼭 계절에 지는 것만 같았는데 이젠, 슬슬 중년이라는 말도 익숙하고 내가 입어도 될 옷처럼 느껴지거든요. 이 책과 저와의 인연을 중년이라는 공감으로 정리하자면 이 책은 ‘중년이 그리워지는 소설’, ‘중년을 위로하는 소설’,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제가 소개를 할 순서는 이 책의 목차와는 다릅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박완서 작가와 이청준 작가의 작품을 앞에 두고, 그 다음부터는 나이순입니다. 이깟 순서가 뭐 대수라고 생각나는 대로 적어도 알아주는 이 하나 없겠지만, 어쩐지 이번만큼은 윗물 아랫물에도 예의를 차리고 싶었습니다. 나이가 뭐 중요 하냐, 이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나이들어서 그런 것일까요. 점점 나이드신 분들에게 깍듯이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 더 오래 더 많이 써온 것이 자랑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보기에 한참 어린 저겠지만 나이들지 않고서는 배어 나올 수 없는 향기, 아니 나이 들어서라야만 나오는 체액, 그 나잇살의 아름다운 완성을 보란듯이 증명하셨기 때문에요. 1.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2008) / 박완서(1931-2011) 저는 이 작품을 여러 번 읽고 읽을 때마다 청승을 떨었습니다. 이제 고인이 된 작가의 글이라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이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단편이라는 안타까움도 아니었습니다. 이토록 짜릿한 중산층 며느리의 속물적 심경은 이제 더 이상 만날 수가 없겠구나, 하는 애틋함이야 당연한 것이겠죠. 이야기는 영원해도 그렇게 한 세대는 가는 것일 테니까요. 허나, 이제 그 다음 세대인 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차례구나, 내 할머니고 어머니가 아닌 내 이야기일 수 있구나 하는 현실감이 너무나 분명하게 잔인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꼭 먼저 간 남편은 아직도 젊은이인데 남겨진 아내만 할망구가 되어버린 얄궂은 운명만 같아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소설 속 주인공이 되었다가 저 역시도 사라지는 세대가 될 터이니까요. 긴 서평을 지양하려 했는데 이번에도 실패했습니다. 요즘 제가 젊은 작가들의 소설집을 동시에 읽고 있는 터라 이 책은 나이는 괜히 먹는 것이 아니라는 끄덕임을 주는 시간이었어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대개 아찔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매스도 예리하고 송곳도 날카롭지요. 반면에 지긋하신 작가들의 소설은 느리고 두껍지만 둔중한 울림이 있습니다. 나이든다는 자신감을 선사하는 자랑스런 작품들이라고나 할까. 좋은 소설, 좋은 작가가 많겠지만 자신의 위치와 경력에서 작품으로서 완벽한 소설을 완성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저는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당대에 하나같이 빼어난 작품으로만 느껴집니다. 조금 호들갑을 떨어보자면 같이 살아주셔서 읽게해 주셔서 고맙다고 절이라도 할 만큼이요. 허나 현대미술관 같은 갤러리에서 이름난 화가들의 작품을 모두 관람한다고 해서 전 작품을 이해하고 돌아오진 않지요. 그냥 가슴으로 느낄 뿐, 작가가 말하려 했던 것을 다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이 작품들을 모두 잘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돌아오는 길이 분명 벅찬 감동으로 가득했다는 것은 속일 수 없는 진실이랍니다. 나이가 드니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고상하게, 더 품격있고 교양있게 나이들 수 있을지 그것도 고민이 될 때가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고민은 나이가 들어도 어째 나이들어 기대하는 자기모습이 아닌 것 같기에 계속 하게 되는 고민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나이 들었다고 다 용서되고 다 알아지는 것이 아니더라는 말씀이죠. 욕심이 사라지기는 커녕 헛된 바램은 더해지고 부질없는 기다림도 생기더란 말입니다. 이제껏 먹은 것이라고는 나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벌어 놓은 것이라고는 나이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를 때 이렇게 나이든 작가들의 나잇값 제대로 하는 소설을 읽는 것도 좋은 처방인 듯합니다. 이제 '깊은 밤, 기린의 말'쯤이야 모두 알아 듣고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강아지도 그가 좋다면 기린이라 부를 수 있고 그래서 기린이기에 못다한 말까지도 강아지 안아주듯 보듬을 수 있는 나이이길 바랍니다. 그 말귀 알아듣는 알찬 시간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나이듦의 시간이 아닐까요. 나잇값을 한다는 것, 그 나잇살만큼 불어난 시간값을 한다는 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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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집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중후한 기성작가들과 신진이 어울려 있는 듯함을 알 수 있겠다. 요즈음 뜨는 작가들에 기존의 명인들이 조금 포함되어 작품들이 진열된 된 듯하다. 허나 모두 가장 가까운 시간에 창작된 작품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동시대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다. 다른 인문서나 철학서, 경제서 사회현상들을 그려내는 글들보다도 소설과 친한 내 독서의 편린을 본다. 그것은 흥미가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시대의 나아갈 바를 정서적으로, 도덕적으로 가장 잘 던져주는 것이 문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문학 중에서도 소설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니까 더욱 가깝게 여긴다. 하여 소설 읽기를 통해서 오늘을 알고, 과거에 대한 성찰과 내일에 대한 소망을 일깨우는 작업을 나는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 소설 중에서도 동시대, 현재의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소설은 시대의 문제들이 많이 거론된다. 그것이 이와 같은 소설읽기에 몰두하는 이유가 된다. 문학지를 통해서 발표되는 소설을 많이 가까이 하는 것은 이런 내 마음이 많이 작용해서 일 것이다. 이 책은 초판이 2011년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현재와 가장 가까운 시기의 생각들이 담겨진 작품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10편이나 들어 있다. 기존의 알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도, 새롭게 부상하는 작가들의 작품도 나에겐 의미 있게 다가왔다. 김연수의 ‘깊은 밤 기린의 말’이란 작품은 특별한 소재를 특별한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쌍둥이 아이의 눈을 통해 자폐아를 가진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그 아이와 죽고 싶을 만큼 고통을 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한 가족이 지니는 아픔이 그려진다.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어린 아들, 어떻게 해줄 수도 없는 부모의 입장이 오버랩 되면서 고통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멍멍이와는 어쩐 일인지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것을 부모들은 지켜보고 있다. 그 멍멍이를 기린이라 하면서 특별한 후각으로 서로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어찌 보면 사회문제가 될 수 있는 이런 문제의 한 해결책을 제시해 보려는 의도가 있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원래 태호는 옆에 누가 있어도 도통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릴 때는 우리가 번갈아 태호를 안기도 했는데, 그건 꼭 솜뭉치가 든 곰인형을 안는 느낌이었다.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태호는 기린만은 옆에 있는지 없는지 알아봤다. 둘은 영혼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가까이 있지 않으면 둘 다 불안해했다. 아빠는 그것이 분리불안이라 했다. (p32) 박완서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나의일상을 그리고 있다. 팔순 가까이 되는 시어머니의 왕성한 활동과 시집살이를 해야 하는 나의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오늘날 쉽게 결혼하고 이혼하는 자식들 이야기가 제시되어 있다. 화자의 생각은 늙은 분들이 뭐 그리 자랑과 자존심이 가득한 삶을 사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투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자식들이 번듯하게 있어 자신을 모신다는 것을 자랑 삼아 제시하려는 의도에 의해, 시어머니의 집을 방문해야 하는 며느리의 고충을 그리고 있다. 화자도 자신의 입장이 너무 강하게 제시되어 있다. 어른을 모신다는 개념이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내용을 자신의 시간이 저당 잡히는 일 때문에 힘들어한다. 작가는 이 글을 통해 노인 문제를 거론해 보고, 가족들의 관계에 대해 제고해 보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뒷부분에 큰 아이의 당돌한 아내였던 여자를 만난다. 그녀를 통해 거침이 없는 남녀 관계의 실상을 들으면서 망연해 하는 화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외에도 이 책은 한 시골 마을의 신기루 같은 물품에 대한 소망을 그리고 있는 ‘이상한 선물’ 죽음과 화장을 둘러싼 ‘국화 밑에서’ 등 총 10편의 글들로 이루어진다. 모두 흥미 있게 새로운 것들을 느끼면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이렇게 단편을 모아놓고 있는 책은 다양성을 읽을 수 있어 좋다. 이와 같은 책과 함께하는 시간은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서 많은 인생을 접할 수 있고, 그들의 독특한 색깔 속에 들어갈 수 있어 행복하다. 특히 중후한 이미지를 던져주는 많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기쁨을 더욱 컸다. |
![]() 박완서, 이청준, 최일남, 윤후명, 이승우, 권지예, 이나미, 조경란, 김연수, 이명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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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혹은 그 어떤 제품에 대해서도 대표라는 것이 있다. 우리 시대 대표 작가 10인의 베스트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깊은 밤, 기린의 말>은 김연수 작가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힘 혹은 누구에게나 서로를 당기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여주는 것 같다. 흔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그들에게서 혹은 그러한 현상속에서도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영혼의 분리 혹은 영혼의 연결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가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그 영혼이 메마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깊은 밤, 기린의 말>을 시작으로 박완서님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부터 최일남님의 '국화 밑에서'까지 소설적 힘을 보여주는 그들만의 필체는 하나, 하나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이 시대 우리나라 중년 여성이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깊이 있는 해설서 같은 느낌을 받은 글 속에서는 시대의 변화 속에 여우 같지 못하고 곰처럼 자신의 자리에 있는 이 시대 중년 여성의 갱년기 속 하루를 보여주는 것 같다. 샌드위치와 같은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권지예님의 '퍼즐'은 인생의 완벽을 추구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족함도 모자람도 없는 퍼질이야 말로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이유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그 퍼즐 한 조각 버리거나 잊어버리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완벽한 삶이 있을까? 퍼즐의 조각 하나, 하나처럼 완벽한 조각을 이룬 퍼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생이 있을까? 요즘 그래서 인지 '바보'나 '버리기'에 대한 주제의 책들이 부쩍이나 많아진 것 같다. 나의 퍼즐은 조금 느슨하게 할 필요도 느낀다.
이명랑님의 '제삿날'의 결말에 기대를 했었는지 모른다. 이런 세상이 오면 안될 것 같다. 그래서 가슴이 너무나 아프고 무겁다. 물론 소설이다 보니 설정이기 때문이겠지만 뉴스와 같은 매스컴에서 떠들어 대는 사회의 돌아가는 꼴(?)을 보니 이것이 과연 소설만의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단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자식의 연은 천륜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스스로를 천륜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것일까? 매스컴에서 떠들어 대는 이야기 속에는 소설보다 더 한 이야기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상이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깊은 밤, 기린의 말>에서 10인의 작가는 어쩌면 과거에서 현재의 세태를 고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축척된 글의 향기는 웃고 울리는 삶의 이야기를 맛보게 해준다. 시대는 바뀌어도 인간이라는 본연의 모습은 잊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듯 하다. 그들의 향기를 천천히 맡아보아도 한번에 끌어 안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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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 기린의 말 은 너무나 예쁜 제목이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작가 김연수는 이렇듯 예쁜 제목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아빠와 엄마는 우리를 동물원에 버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라는 끌리는 첫문장을 던져주면서. 자폐아 동생이 있는 쌍둥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가족구성원들은 아프고 상처입었다기보다는 평범해보인다. 인간적인 고뇌와 누구나 생각으로는 한번쯤 해 봤을법한 일들을 풀어놓으며 우리에게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글의 끝부분에 기린이라 이름붙여진 개를 되찾으러 가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덧붙여놓고. 그와 비슷하게 경성사범 출신의 똑똑한 시어머니와 이혼하고도 당당한 신세대 며느리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여있는 여인의 넋두리는 얼마전 타계한 박완서 작가의작품이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기존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남 없이 평탄하게 읽어나가면 되는 그런 작품이었다. 다만 앞으로는 그녀만의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슬프다면 슬픈 일이랄까. <문학의 문학>대표작가 작품집이라는 타이틀 아래 10명의 작가들이 뭉쳐 낸 책 속에는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글도 실려 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소설인 [당신들의 천국]을 집필한 이청준 작가의 이상한 선물인데,선바우골에서 심지연이라는 신통방통한 벼루를 얻게되나했더니 속임수였더라 라는 식의 마치 고전소설에서의 일장춘몽같은 신기루이야기가 짧게 실려 있었다. 무언가 미스테리한 구석을 기대했었는데 기대는 빗나갔지만 대가의 작품이라 짧은 단편도 쉬이 지나칠 수 없어 꼼꼼히 읽어내려간 소설이었다. 그에 반해 권지예 작가와 이승우 작가, 조경란 작가의 작품은 눈에 확 띄는 재미를 보여주고 있었고 세 작가의 작품은 각각의 스타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그들만의 단편집을 읽는 것같은 착각마저 들었던 작품이었다. 좀 더 길었으면...이라는 생각마저도 잘라내게 만들 딱 알맞은 길이감과 쉼없이 읽어나가게 만드는 속도감이 마음에 들었던 단편들이었다. 먼저 권작가의 소설은 사라진 여자의이야기로 시작된다. 100피스~1000피스에 이르기까지 퍼즐홀릭인 여자는 금치산자다. 미쳐서가 아니라 미친 사람으로 몰려가는 여인의 인생을 바라보며 그녀가 빈집 길고양이들과 다를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처소생의 딸도, 아들만 필요해서 매번 11주된 뱃속 아이를 중절시키게 만든 시어머니의 5대독자 아들도 그녀의 진정한 가족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숨바꼭질을 통해 스스로 사라졌다. 퍼즐은 제목과 달리 맞춰가는 인생이 아닌 어딘가 흘려져버린 조각같은 인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서글픈 일이다. 아프리카계 남자가 보러간 사람은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나사렛 예수였다. 그는 선지자를 만나러 갔다가 시간을 잘못택해 베드로가 스승을 세번 모른척 하는 현장도 목격했고, 심지어는 그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만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깨닫게 되는데서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는 끝이난다. 정말 그날, 그 현장에서 누군가는 이랬을법한 드라마틱한 요소가 가득했던 소설인채로. 최근 [복어]라는 소설로 주목하고 있던 조경란 작가는 역시 스토리텔러였다. 가족 안에서 잔잔하면서도 큰 파도의 깊이를 느끼게 만드는 작가만의 매력을 잔뜩 부풀려놓아 읽는 즐거움을 저절로 느끼게 만든다. 자동차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동시에 읽은 언니는 대학행정실에서 학생들에게 등록금 독촉전화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별로 탈출구가 없어보이던 삶에 동생의 사고는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도쿄에 사는 동생의 살림을 잠시 맡기위해 떠나는 그녀의 보따리를 붙들고 늘어진 사람은 나이든 아버지였는데, 이전에 그가 어떤 가장이었는지는 모르나 함께 떠나 도쿄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 속에는 권위적이거나 카리스마있는 가장의 모습은 쏘옥 빠져있었다. 늙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과 가족으로서의 자신을 다시금 되짚어보게 만드는 힘을 전달해주는 강인한 느낌이 있는 단편이었다. 역시 조경란 작가는 계속 주목해볼 작가 중 하나로 꼽아두게 만들만큼 마음에 드는 이야기였다. 파종은. 마지막으로 제삿날은 가장 요즘 읽은 몇몇 소설에서도 언급되었던 신고려장 같은 내음이 물씬 풍겨나왔는데, 의외의 반전이 있어 재미를 톡톡히 살리고 있다. 도리라는 것이 통상적으로 어디까지를 뜻하는지 범위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을 것이다. 두 늙은 과부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두 아들과 며느리들은 어머니를 간병하는 것은 물론 오랜세월 함께 살아온 할머니이 간병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떠넘길 수만 있다면 두 노인네를 어딘가에 떠넘기고 싶은 것이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일치감치 할머니를 아내를 얻으면서 내다버렸던 할머니의 아들 또한 어떻게하면 그들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지금껏처럼 마지막까지 짐지워 내버릴 수 있는지 고민중이다. 자식들의 뇌구조 속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생각들이 이 사회가 떠안고 있는 병폐처럼 느껴져 마음한구석이 급 우울해졌고 제 부모를 떠넘기는 그들의 파렴치함에 치를 떨어야만했다. 반려동물과 단 1년을 살아도 가족이라는 마음의 울타리가 쳐지는 마당에 오랜시간 보호자였던 부모를 짐짝처럼 여기는 자식들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질탄받을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겠다. 하지만 이야기는 복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재미는 제목에서부터 찾아낼 수 있다. 제삿날. 대체 두 할머니는 누구의 제삿날을 챙기기 위해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던 것일까. 비밀처럼 독자에게만 알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안그래도 자식들을 버리려는 아들들에겐 절대 알려져서는 안될 과거사가 숨겨져 있었다. 두 어머니 다 제 자식들에겐 친어머니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래서 그들 몰래 매년 그들 생모들의 제사를 할머니들이 챙겨왔다는 것! 또한 처음 어머니들이 만난 인연이 한 곳에 몰래 묻힌 두 여인 때문이었다는 것! 끝까지 독자만 알아야할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반전의 재미는 유주얼서스펙트급이 되어 소설이 단편이라는 사실마저 잊게 만든다. 김연수, 박완서, 이청준, 이나미, 권지예,이승우, 윤후명, 조경란, 이명랑, 최일남 총 10명의 작가가 털어놓는 짧은 이야기들은 하나의 주제가 아니라 제각각인 이야기지만 그 속의 재미만큼은 공통분모처럼 여겨진다. 유머러스하거나 해학적이 아니어도 이야기는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가들의 필체에서 찾아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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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작가10인의 이야기를 읽었다. 제목부터 아름다운 이야기 깊은밤, 기린의 말 내가 처음 제목을 보고 느낀건 그저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목과는 다르게 내용은 다분이 무겁다. 세명의 아이들이 아빠가 버린 기린을 찾아헤메는 이야기다. 엄마와 아빠는 우리를 동물원에 버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로 시작된다. 진희와 나는 쌍둥이고 태호는 동생이다. 아빠가 태호가 가장 사랑하는 기린을 버렸다 우리는 태호의 기린을 찾아 밤길을 헤메다게된다. 태호가 유일하게 반응하는건 기린이다. 그런데 왜 아빠는 기린을 버린것일까 아이들은 기린을 찾지못하고 길을 잃고 헤메다 겨우 집으로 가는길을 찾았다. 이때 기린을 못찾게된걸 말하는 쌍둥이 옆에서 태호는 기린이란 단어를 듣는순간 행복해한다. 태호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쌍둥이도 행복해한다. 유리창안에서 기린이 이들의 행복을 지켜보고 있다. 태호는 자폐아다 엄마와 아빠는 태호라는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태호를 버리고 싶었던 마음을 기린을 버림으로서 표현한건 아닐까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경험을 말하자면 부모가 아이의 상태를 빨리 인정하는게 필요하다. 내아이가 그럴리 없다고 믿고싶은 마음에 방치를 하게된다. 아이가 사회에 적응할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목이다. 보통의 아이와 다르다는걸 알게되는 순간 정확한 진단을받고 대처를 할 필요가있다. 현실을 회피하면 모두가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즘 언론매체를 통해 아픈사람들을 조명하지만 일회성으로 끝이난다. 동정은 쉽지만 관심은 어렵다 주위를 돌아보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라는 울타리에 그들을 포함시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얼마전에 타계하신 박완서님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갱년기에 접어든 내가 남편에게는 위로받지 못하고 시어머니에게는 돈 때문에 빌굴한 자신 때문에 힘들고 잘난 자식 자신과는 다른 세대로 결혼생활또한 이기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인다. 돈 때문에 하루종이 시어머니 체면을 세워줘야하는 내자신이 너무도 비참하다. 갱년기에도 힘든 생활을 해야하는 며느리의 비애를 박완서님의 완숙한 글솜씨로 번잡하지 않고 정갈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청준님의 이상한 선물, 이나미님의 마디, 권지에님의 퍼즐, 이승우님의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윤후명님의 소금창고,조경란님의 파종, 이명랑님의 제삿날, 최일남님으 국화 밑에서등 다수의 좋은 작품이들어있다. 워낙 명성이 자자한 분들의 글이라 그런지 두말이 필요없다. 좋은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을 오랫동안 기억할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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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깨어났을 때, 그 시간 잠시 밖을 보면 찰흙같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깨어난 그 시각이 새벽인지 혹은 깊은밤인지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왜냐면, 엄밀히 또 새벽이 가져다 주는 느낌과는 다른 깊은 밤의 고즈넉함이 주는 그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답니다. 시계를 안 봐도 알 수 있는, 그 시간, 깊은 밤. 그리고, 다시 잠들고 싶지 않은 그 시간, 깊은밤. -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그 깊은 밤만이 말해주는, 그 언어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목이 길어서 슬프다는 사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긴 목을 가진 동물을 우리는 압니다. 네, 바로 기린이랍니다. 그럼, 얼만큼이나 더 슬픈걸까요? 그 깊은 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해본답니다. 아마도, 그 깊은 밤,이 가져도 주는 그 무엇인가 때문이겠지요.
어느날, 문득 찰흙같은 어둠 속에서 깨어났을 때, 무섭고 두렵던가요? <깊은 밤, 기린의 말> 은 10명의 기린아였고, 기린아이며, 또 지금은 거대한 기린이신 분들(이 말장난-_-;) 10명의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단편선이란 아주 짧은 호흡의 소설들이다. 단편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특히나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10편의 단편선 중 선호하는 작가부터 혹은 끌리는 제목부터 집어 들어도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첫 단편이자 이 소설의 타이틀인 김연수의 <깊은 밤, 기린의 말> 은 "아픔" 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은 생각해본다. 우리가 그들을 볼 때 아픈것이지 정작 그들이 아픈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두번째 단편인 故박완서 선생님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는 여성에 대한 문제이다. 어딘가 불편해, 했던 것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고 곧 우리들도 어쩌면 그리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그래, 세월이 나를 벌써 이렇게 만들어놨듯.- 그리고 이 구절에서 살짝 실소겸, 어딘가 씁쓸함도 나왔다. 그러나 말하고 있다 변하고 있다, 라고. - 돈 문제가 얽히지 않은 결혼은 장난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이청준님의 <이상한 선물> 은 조금 호흡이 길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이나미의 <마디> 의 경우는, 시점이 과거와 현재로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퍼즐> 은 담담히 읽히다가, 마지막에 살짝의 어느순간에 헛, 하는 느낌을 가지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우린 어쩌면 퍼즐 게임은 하는 것일지도. 단 한조각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양. 그래도, 생의 에너지는, 여전히 불완전한 욕구일 뿐이지도. 이승우의 <한 구레네의 사람의 수기>는 언젠가 읽었던 기억이 났다. 비슷한 글이였을지도 모르지만, 그 때의 느낌 그대로였다. <소금창고>는, 나에게는 추억이지만 누군가에게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그 무엇가일 뿐에 쌉쌀한 맛이 났다. 조경란의 파종은.. 아주 여성적인 문체로 시작한다. 그리고, 시금치에 대해서 그리고 또 우리의 파종의 시기에 대히서. - 참으로 묘하게 다가온 소설이였다.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한번 더 읽어지고 싶어지기도 한다. 제삿날과 국화밑에서는 어쩌면 아주 비슷한 소재일지도 모르지만 또 각각의 내용에 있어서는 많이도 달랐다. - 제삿날의 마지막은 쿵, 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 둘의 관계는 한편으로는 애증은 아니였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의 특이하고도 묘한 인연에 대해서 보다는 처음 각자의 마음속을 그려내고 있음을 시작으로 한다. 국화밑에서는 말 그대로이다. 국화, 장례식에 들고 가는 국화를 비유해서 인간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 공감가는 건 김유정, 이상, 김소월이 만약 평범한 죽음이였다면? 이라는 질문에 그냥 구렁이 담넘듯 넘어갔지만 가끔은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 그들이 평범하게 죽었더라도.. ? 라는 개구진 생각을..^^;
그렇게 하나하나의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색깔을 읽어내려 갔다. 내 경우는, 여성작가들의 이야기에 훨씬 수긍도 공감도 그리고 재미도 있었던 느낌이다. 남성작가들이, 여성의 내면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땐, 글쎄, 라는 것도 있었으며 솔직히 하나하나의 단편은 괜찮지만, 꽤 오랜 기간 읽어나간 느낌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표현은 뭐하지만^^; 백화점에서 필요한 무언가를 사고 난 후 보니, 생각지도 않게, 사은행사품이 따라올 때가 있다. 나는 필요한 것을 사서 좋고, 의외의 선물도 받으니 기분이 참 좋다 의외성이란 것도 있고. - 나는 실제 몇몇 작가들은 잘 알지 못한다. 워낙에 유명하신 분들이야 다 알지만. 그런데 그 알지 못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의외로, 참 마음에 들 때가 있다. 아, 이런 색을 지닌 작가였구나, 라는 느낌을 느끼고. 그리고 몇몇 분들은, 조금은 시간을 끌면서 읽어내려가기도 했다.
순식간에 읽혀지는 단편이 있는가하면, 조금은 텀을 길게 잡아야하는 단편들도 있었다. 아마 내가 길게 잡았던 단편선을, 또 누군가는 빨리, 또 누군가에겐 빨리 읽혔던 단편선들이 내게는 길게 잡혔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열명의 작가가 선사하는 선물, 한번쯤은 읽어봐도 괜찮을 것이다. 다만, 그 이름에 너무나 큰 기대만 하지 않는다면, 꽤나 괜찮은 소설 10편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깊은 밤, 사락 사락거리면서 책장을 넘기면 숲속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 슬픈 소리든 혹은 평안을 주는 소리든, 그 어떤 자그마한 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책, "깊은 밤, 기린의 말" 이었다. 간혹, 책장이 멈출 때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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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합니다. 제가 약간 유별나다는 사실을. 책을 읽을 때, 상당히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읽는다는 사실을. 남들이 보면 인생 참 피곤하게 산다고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어떤 이는 저에게 ‘활자 중독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타당하고, 또 어떤 점에서는 과분한 진단입니다. 일단 제가 그런 진단을 받을 만큼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다고 느끼니까요. 먼저 하는 일이 글을 쓰고 읽고 고치고 다시 고치는 직업이기에 글에 대한 묘한 강박증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식당엘 가서도 벽에 붙은, 혹은 메뉴판에 붙은 음식 이름과 설명, 음식의 유래 등등을 읽으면서 띄어쓰기와 오타를 찾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뭡니까, 이게. 또 지금은 그나마 상당히 호전됐다고는 하지만, 잡지를 읽을 때면 표지부터 시작해서, 광고 하나하나 목차 하나하나를 전부 읽고 나서야 다음 페이지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양심적으로 광고는 읽지 않습니다만, 이것도 뭡니까. 때문에 때로는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닌 텍스트를 읽어나가고 있는 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상당히 안 좋은 부작용인 셈이죠. 하지만, 분명 단언컨대 적어도 소설을 읽을 때에는 다른 모드로 들어갑니다. 그 다른 모드는 다름 아닌 ‘받아들임’입니다. 무언가 책에서 잘못되고 부족하고 어색한 부분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글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뭐, 어차피 제가 문학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 깜냥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소설을 그런 불순한 자세로 읽으면 천벌을 받는다는 어느 소설가의 준엄한 경고(!)가 기억나기 때문에, 그냥 있는 그대로 읽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깊은 밤, 기린의 말》은 한 문장, 한 편을 그야말로 아껴가며 읽은 책입니다. 수록된 작품들도 그렇거니와, 작가들의 내공과 깊이가 절로 느껴지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 곁에 없는 박완서, 이청준 작가의 작품과 김연수, 이명랑 등 비교적 젊은 작가, 그리고 최일남, 윤후명과 같은 깊은 연륜을 가진 작가의 작품까지. 글들의 성찬이었습니다. 작품들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매우 불순한 행위라 사료되는 까닭에 담지 않겠습니다. 다만 각 작품에서 받은 느낌이랄까요. 그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요? 김연수의 〈깊은 밤, 기린의 말〉은 분명 슬픈 이야기임이 분명한데도 어떤 발랄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뭐라고 할까, 단어들이 톡톡 튀더라고요.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읽은 후여서 그런지, 일단 인상은 좋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중년, 노년 문학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왠지 범접할 수 없는 삶의 연륜도 느껴지고요. 쓸쓸하면서도 무덤덤함이 저는 참 좋습니다. 최근에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집 《기나긴 하루》를 아껴두고 있습니다. 이청준 님의 〈이상한 선물〉도 매우 즐거운 소설 읽기였습니다. 아직 선생님의 작품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선생님 특유의 아련함이 참 좋습니다. 이나미 작가의 〈마디〉, 권지예 작가의 〈퍼즐〉도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감동을 느낀 작품은 최일남 작가의 〈국화 밑에서〉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예전부터 이런 문장, 문체, 쓸쓸함을 참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깊은 삶의 성찰과 농담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작가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승우의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 윤후명의 〈소금창고〉, 조경란의 〈파종〉, 이명랑의 〈제삿날〉 모두 즐거운 소설 읽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전 여전히 소설은 먼저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답고 애정하다 해도 재미가 담겨 있지 못하면 결국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 저의 어리석고 독단적인 기준으로 보면 이 책은 상당히 성공한 것이 아닐까, 이 역시 혼자 어리석게 판단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소설 읽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