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우리는 수많은 욕망의 꿈을 꾸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보면 사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욕망이라는 존재와 불가분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살아간다는 것도 그 자체로 넓게 보면 인간이 지닌 하나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인 것이고, 그래서 누구나 조금 더 오래 살기위해 몸부림을 치며 애를 쓴다. 일례로 의학이란 분야도 그러한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노력에 의한 일환 일 것이며, 다른 분야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결국 욕망이란 것을 따로 떼어두고 인간의 존재에 어떤 의미를 둔다는 것은 불가해보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오늘도 우리는 욕망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실체를 인식하게 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할 때에는 그만큼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인식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며 오늘도 내일도 욕망을 채우기 위한 방황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혹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하는 철학적 고민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러한 욕망의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자신의 모든 경험과 사상을 담아 평생을 바쳐 만든 파우스트라는 작품에 대해, 독자들마다 생각하는 의견들이 있을 것이겠지만, 괴테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존재의미와 관련하여 인간이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실현해 갈 것인가를 두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
|
누구나 한 번쯤은 도전했다가 중간에 포기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고전 <파우스트>
|
|
파우스트
[파우스트]는 괴테가 23세의 청년시절에 쓰기 시작하여 1931년 그가 죽기 1년 전인 83세에 완성한 작품이다. 한 사람이, 그것도 작가가 평생을 걸쳐서 한 작품을 써내는 집념은 60여년만에, 자신이 죽기 직전에 완성했다는 파우스트에 대한 그의 작가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그가 인생의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였던 비극 [파우스트]는 원래 중세 파우스트 박사의 구전문학이라고 한다. 괴테 이전에도 여러 작가에 의해 쓰여졌으며 전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인간을 유혹해 악의 세계로 빠뜨리기 위해 신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파우스트 박사와 악마 메티스토펠레스와의 대결이 벌어진다. 자신이 향락에 빠져 삶에 대한 정진의 마음을 버리게 된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겨도 좋다는 내용의 대결이다. 끊임없이 파우스트를 타락시켜 그의 영혼을 빼앗아 가려는 악마와 파우스트는 여러 체험의 세계를 경험한다.
1부에서 악마의 도움으로 젊음을 가진 파우스트는 순수함을 상징하는 처녀 그레크헨과 사랑에 빠지지만, 악마의 유혹으로 그녀에게 벌어지는 비극을 알지 못한다. 후에 그녀를 구원하려 하지만 거정당하고 그녀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천상으로부터 영적인 구원을 받게 된다. 2부는 시공을 넘나들면서 왕궁을 찾아 황제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고, 왕의 명령으로 헬레나를 찾아 나섰다가 그녀에게 흠뻑 빠지게 된다. 그리고 헬레나와의 결혼과 아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결국 헬레나를 통해 더 성숙해진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의 인도를 받아 하늘로 승천한다.
파우스트를 가운데 두고 펼쳐지는 신과 악마의 내기에서 초반에는 악마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어 가는 듯 하지만, 결국 모든 욕망을 이겨내고 여러 선행을 통해 고귀한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인간이란 늘 불안정한 존재로 끊임없이 성숙을 위해 이런 저런 실수를 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결국 향락이 아닌 인간 본연의 마음을 찾게 된다는 것으로 그와 악마와의 대립을 통해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자유도 생명도 그것을 싸워서 얻는 자만이 갖는 것이다.'
'인간은 한평생 장님이예요.'
![]() |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로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괴테의 이 두 작품은 여기저기 인용이 많이 되기때문에 많이 들어보았지만 정작 책을 안 읽어 봐서 그 내용은 잘 모르고 있었다. 학창 시절에 파우스트 읽기를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1권 2권으로 나눠져 있어서 1권만 읽고 2권은 미처 못 읽었던 기억이 난다. 조금 어려워서 계속읽기가 좀 벅찼었다. 그래도 파우스트라는 이름이 들려올 때마다 꼭 마저 읽어야지 했던게 이제서야 한권짜리 파우스트로 읽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 책이 쉽게 번역되어 있어서 인지는 몰라도 예전보다는 훨씬 재밌게 술술 읽혀졌다. 희곡이라 배경과 등장인물이 소개되고 각 인물들의 대화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각 장면을 상상하면서 읽으면 정말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 한 기분이 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
괴테는 뼈대 있는 가문의 자식도 아니었고, 수많은 사랑에도 실패했으며, 자식들도 뛰어나지 못했으며 정치가로서도 특별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문학적으로는 그의 이름만으로도 수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했지만 문학을 뺀 괴테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다. 사랑에 있어서 결코 평범했다고 볼 수 없다. 20명이 넘는 여성들과의 사랑, 그 사랑의 흔적들이 남긴 그의 문학을 빼놓을 수는 없겠다. 문득 생각해본다. 괴테를 색깔과 향기로 표현한다면? 파우스트의 첫 부분에 나오는 신과 메피스토펠레스의 대화를 읽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성경의 <욥기>서이다. <욥기>서의 첫 부분을 보면 사탄과 하나님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욥은 당대의 부자였으며 하나님께로부터 선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던 인물이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한마디로 욥에 대해 자랑한다.(사탄의 입장에서는 그런 욥이 준 것 없이 밉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길“욥을 주의해서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욥에 대한 신임이 대단하다. 이에 사탄은 욥을 시험해보겠다고 말하고 하나님에게 허락을 받아낸다. 욥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 사탄의 시험을 받게 되고 결국 그는 모든 소유와 자녀들을 잃게 되고 몸에 병까지 들어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와중에 욥의 세 친구들이 욥을 방문한다. 욥은 자신의 고통으로 인해 탄식을 하게 되고 욥의 탄식을 듣고 있던 친구들은 욥을 향해 고통의 원인은 하나님의 징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욥을 향해 하나님 자신의 주권과 섭리의 위대성을 말씀하시면서 인간의 한계성을 지적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욥과 그의 교만을 꾸짖으신다. 결국 욥은 하나님이 사람의 이해 수준을 넘어 깊고 오묘한 분이심을 깨닫고 하나님께 엎드린다. 이후 욥은 고통을 받기 이전부도 갑절의 축복을 받는다. 파우스트의 시작도 그러하다. 하나님이 욥은 어떠한 시험도 이겨낼 것을 자신하고 있었기에 그런 욥을 사탄에게 맡긴다. 마찬가지로 이 글의 신도 그러하다. 파우스트가 여색에 빠지고 타락하긴 했지만 언젠가는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파멸에서 파우스트를 구원해준 신이다. 이 책은 읽는 내내 인간이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 그리고 구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파우스트의 영혼은 메피스토펠레스에서 벗어나 높이 승천하게 된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완전한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끊임없이 인간은 노력한다. 꼭 인간세상의 부모와 자식을 보는 것 같다. 인간의 지식이라는 측면에 열의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막상 성취하자 정작 시들해져버린 사람, 파우스트. 인간이 모순 덩어리임을 잘 알고 있는 메피스토펠레스. “ 인간은 어리석은 소우주인 주제에 자칫하면 전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라고 말한다. 이것이 메피스토펠레스가 제대로 본 인간의 모습일 것이다. 나에게 그 시절을 되돌려주오. 나 자신 아직도 어른이 되어가던 그 시절을 억압받던 노래가 샘물처럼 솟아오르던 그 시절 나 가진 것 없어도 마음은 풍족했으니 진리를 좇으며 몽상을 즐겼기 때문이라오. 제약받지 않던 그 충동, 고통으로 가득 찬 심오한 행복과, 증오의 힘과 사람의 힘, 내게 청춘을 되돌려주오. 무대에서의 전회 중에서 |
|
|
|
인간이 가지는 긍정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