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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선산의 안강노씨 집안에서 태어난 노상추라는 사람이 열일곱살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여든네살 생을 마감하기 이틀전 까지 일기쓰기를 계속 하였다고 한다. 저자는 노상추의 68년에 이르는 일기를 통하여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조선후기, 그 당시 일상사를 알리고자 이 책을 썻단다. 부모와 형제, 자식과 손자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가족의 삶의 궤적을 담고 있는 노상추의 일기를 통하여, 제도사와 거시사에 머물러있는 우리들의 역사학적 감수성을 일깨워 보기를 기대하면서 이 글을 썻다고 머릿글 에서 밝히고 있다. 노상추의 일기는 우리가 흔히 쓰고있는 철저한 사생활의 기록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계기록 이라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아버지로부터 일기를 물려받은 열일곱살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신 스물일곱까지의 기록은 노상추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 아버지가 주인공일수 밖에 없다. 일기를 쓰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건 27세 이후의 일이다. 그 당시, 조선후기의 삶은, 양반들의 일상사는 어떠했을까? 우리는 그의 일기에 나타난 가족의 대소사, 본인의 과거시험 응시 및 관직생활을 통하여 조선후기로 돌아가 볼 수 있다. 먼저 조선후기, 가족관계와 결혼제도는 어떠했을까? 그 당시 남자들은 결혼을 몇번씩 하였다고 한다. 노상추와 그의 아버지 모두 3번의 혼인을 하였다. 그 이유는 사별이었고, 그 당시 대부분의 사별의 원인은 어머니 혹은 아내가 산전, 혹은 산후에 죽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도 대부분이 얼마 살지를 못했다고 한다. 또 남자들은 대부분 첩을 두고 있다. 그의 일기에 나타난 것을 보면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노상추 본인은 물론 그의 아들과 조카도 첩을 두고 있다. 그러나 첩과 첩의 소생은 족보는 물론 호적에도 올릴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는 양반가의 적자라 해도 혼인전에 죽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노상추의 중형이 혼인날을 받아놓고 죽었지만, 혼인전이라 아무 곳에도 그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노상추가 그의 일기에서 밝히지 않았다면 그의 존재는 어느 누구도 알수가 없다. 국가의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듯, 가족의 족보 또한 남자위주, 성인이 될때까지 살아남은 성원만 기록하는 또 다른 승자의 기록인 셈이다. 노상추의 일기는 조선후기의 결혼제도에 대해서도 쓰여있다. 그도 삼혼을 하였고, 그의 아들이나 동생, 조카들의 결혼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친지나 부모가 가문이 좋은집을 골라 청혼을 한다. 그리고 상대방 집에서 허혼을 하게 되면 혼례일을 정한다. 혼례일에 맞춰 신랑과 요객이 신부집으로 오게 되고, 요객은 당일 혹은 하룻밤 유숙후 돌아가지만, 신랑은 사나흘 처가에 머문후 돌아간다. 그후 신부는 대략 1년후 신랑집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정식 혼인생활이 시작된다. 양반가의 혼인전략은 반맥을 따지고, 가계를 따지고 최후의 수단으로 재산의 정도를 따졌으며, 적서의 구분은 정확하여, 서자들은 예외 없이 서자들끼리 혼인상대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남성들은 대를 잇기 위해 재혼, 삼혼을 하였다. 대를 이어야 하는 과제를 달성하거나, 나이가 들어 더 이상의 아들 생산이 어려워져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될 때에는 첩과 함께 살았다. 첩은 가족의 일원으로 대우 받았으나, 첩을 들일 때 의혼과정과 혼례는 대부분 생략 되었으며, 첩이 죽었을 때도 장례절차는 소홀하지 않았으나, 사후 예제는 생략되었다고 한다. 첩은 정식혼례로 만나는 배우자 관계가 아니며, 첩은 골라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존재, 거느리거나, 데리고 기르는 존재로서, 신분제 사회의 모순에 찬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면 양반 여성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노상추의 일기에 여자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거나, 죽었을 때를 제외하곤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아들은 물론 손자며, 이웃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는 나오지만 여자들의 이야기는 거의 없다. 또한 여자들은 남편과 사별했을 때 당연히 수절을 해야만 한다. 남편에게 자신이 초취인지, 재취인지, 나이가 20대인지, 40대인지 하는 요인들은 아무 필요도 없는 것 이다. 노상추의 일기에 나오는 조선후기 양반가 여성의 수절(열녀)에 대한 이야기는 성리학이 그 당시 인간사회를 얼마나 황폐하게 하였는지 알려준다. 노상추의 셋째 손자 명숙이 시름시름 앓다가 2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손부 정씨가 실의에 빠져있다 남편의 장례를 마친 후 목을 메어 자살한다. 그는 일기에 적기를 손부의 죽음은 슬픈일이나, (조선후기 양반가문의 일원으로) 길이 칭송받을 열행을 실천하여 가문의 명예를 높였으니, 손부의 마음이 현명하고 가상하다고 하였다. 수절은 조선후기 양반신분의 여성에게 주어진 윤리 그 자체였던 것이다. 양반가 그들에게 있어 과거와 관직은 어떠했을까? 노상추는 문과를 준비하다가 무과로 진로를 바꾼다. 그는 과거를 준비하면서 세차례에 걸쳐 다른 사람들이 시험보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 한양에 간다. 갈때마다 한달 이상씩 걸렸으며, 여비문제로 항상 고민하고 있다. 그는 무과에 응시하여 세번만에 급제한다. 무과급제후 고향에서 잔치를 벌여 친지들에게 고하고, 그후 조상묘를 참배한다. 근처에 있는 조상묘는 몇대조가 되었던 친가, 외가 구분없이 다 찾아보고, 그것이 끝나면 지역의 유명인사를 모신 사원, 사우등을 찾아 예를 갖춘다. 이는 조상들과 자신을 잇는 혈통적 인연외에 사회적 연망을 연결하려는 노력이라 할수 있다. 과거에 합격하고도 그가 관직에 나가기까지는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는 매년 한양에 올라가 관직에 추천될지 어떨지를 알아보고, 떠돌아다니는 소문을 듣고 일희일비 하기도 한다. 관직에 나아가도 내직과 외직을 번갈아 가며 맡으며, 공간적 이동도 잦았다. 그가 관직에 있었던 27년간 열다섯번 관직에 임명되었으며, 한자리에 2년을 지킨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외직으로 나갈때면 자신의 세력이 없기 때문에 변방으로 쫒겨 간다는 생각도 하고, 노론위주의 정계에서 영남사람인 자신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노상추의 일기는 그 당시 그들의 경제활동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노상추의 재산은 그가 부모에게서 상속받은 전답과 노비이다. 그가 10여년 과거에 메달린 기간 동안, 그는 상속받은 전답을 팔아서 생활을 한 것 같다. 관직에 나가기 전 자주 빚 독촉에 시달리던 상황이나, 그때의 심경이 그의 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조선후기 양반집안도 경제적 궁핍에서 헤어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즉, 공명을 위해서 경제적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또 상속받은 노비는 묘소를 관리하고, 양반가가 가지고 있는 전답에서 농사를 짓고, 험한 땅등을 개간하여 농지를 일구거나, 주인이 행차할 때 동행하고, 한양과 집사이의 연락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주인과 종이라는 신분은 엄연히 존재한다. 노비가 죽으면 안타까워하고 장례도 치뤄주나, 도망간 노비는 친척과 지인이 모두 동원되어 찾아낸다. 그들은 결코 양반의 광범위한 네트웍, 때로는 관부까지 동원되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노비는 세월을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자, 동반자적 존재 이면서,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관리받고, 감시받는 존재이기도 했다. 또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 자식이 각기 다른 주인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만큼 그들의 가족은 쉽게 해체되곤 했다. 노비에게 있어 가계를 잇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부자지간의 정도, 가족간의 유대도 그들에겐 사치였을 뿐이다. 첩과함께 신분제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것 같다. 노상추의 일기에는 이밖에도 개인의 일에 관여하는 관부와, 통간사건등 양반가의 경직된 사고와 하층민의 자유로운 성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양반사회 일원임을 나타내는 송회, 동회, 향회, 종회등 얽히고 설킨 그네들의 지역활동에 대해서, 끊임없이 견제받고 멸시받는 서출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후기, 아니 조선시대의 일상사는 우리가 역사에서, 또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그저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시대의 제도를 통하여, 그리고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저자가 말 한대로 제도사, 거시사를 통한 조각난 일상사였다. 물론 역사서나 그밖의 전문서적을 통하여 그 시대의 사회상을 좀더 정확하게 알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문학자들이나 가능하리란 생각이다. 향리의 한 선비를 통하여, 비록 가계기록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일기속에 나타난 그와 그의 가족과, 그의 고향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사를 알수 있다는 것이 모처럼 책 읽는 재미를 안겨준다. 비록 그 시대의 민중의 삶이 아닌 양반가의 삶 이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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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큰 줄기를 따른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 국가의, 민족의 발자취를 일컬어 역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주목하지 않는 것도 역사일 수 있다. 개개인이 남긴 기록 역시 역사의 한 부분이다. 지극히 사적인 기록도 당대의 생활상을 엿보는 데에 있어서는 훌륭한 사료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이 책을 가능케 한 무관 노상추의 일기가 그러하다. 컴퓨터의 보급으로 많은 사람들이 펜을 손에 쥐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다이어리라는 다소 변형된 형태로, 여전히 기록은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단지 복잡한 일상을 정리하기 위해, 소소한 약속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했을 수도 있지만, 혹시 누가 알겠는가. 이 작고 작은 기록들이 머지않은 훗날 과거를 엿보는 창이 되어줄 수도 있음을... 노상추의 기록을 통해 나는 다소 고단했을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양반으로 당대의 지배층에 속했다. 위계질서가 뚜렷한 신분제 사회에서 그의 이러한 태생은 다른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삶을 보장했다고 할 수 있다. 허나 시대의 평화로움과는 별개로 그는 집안에서 가장 아닌 가장으로서의 노릇을 수행해야만 했다. 높은 사망률이 그의 손윗 형제들을 빼앗아갔기 때문이었다. 사실 일기를 쓰는 행위도 장남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하나의 역할이었다. 초창기 그의 일기는 제 아버지의 삶을 따르고 있었다. 주체가 아버지에서 자신으로 옮겨지기까진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스스로를 일기의 중심에 놓은 후에도 그 성격은 여전히 가족사의 기록과도 같았다. 끝이 없는 과업이랄까. 속은 어떠할지 모르나 적어도 겉으로는 무게감을 유지해야만 하는 양반이라는 감투(?)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 바로 그의 일기였다. 그래서일까? 친지들의 잦은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냥 슬퍼하지만은 못했다. 아내의 이른 죽음으로 세 번이나 결혼을 했고, 태어났던 아이들 역시 자신보다 먼저 이승을 떠났는데도 충분히 슬퍼할 수 없는 게 그의 삶이었다. 그에겐 딸린 식구들이 워낙 많았고, 나이 마흔에 겨우 관직에 진출했을 정도로 현실이 녹녹하지 않았던 탓이다.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삶 앞에서 그는 민감해졌던 듯하다. 영남 출신이 얼마나 임명되었는지를 매 순간마다 재어 보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불행했노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될 듯싶다. 일기에 기록되지 못한 많은 이들의 삶을 상상해 보면 그는 오히려 행운아에 가까웠다. 참으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이렇다할 의료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로선 아이를 낳다 사망하는 여성도 참 많았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다 보니 가능했던 이중적 잣대 역시 여성들을 불행으로 몰아넣었다. 노상추가 세 번을 결혼한 반면, 그의 여동생은 남편의 이른 사망 이후 평생을 수절하며 살았다. 그것은 양반집 아낙에게 주어진 일종의 의무와도 같은 것이었다. 좀더 낮은 신분에 속한 사람들은,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 조명하기도 힘들다만, 더욱 힘겨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실제로, 비슷한 잘못을 저질러도 양반 자제에겐 그리 큰 죄로 여겨지지 않는 것들이 그들에겐 죽음을 선사(?)키도 했다. 그 억울함은 긴긴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야 비로소 조금씩 회자되고 있다. 무덤속에 들어갈 때까지 침묵 외엔 허락된 길이 없었던, 그 삶은 얼마나 암울했을지,... 한 개인의 일대기를 따르며 난 노상추라는 개인을 엿보는 건지 아니면 조선 사회를 엿보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성격 자체가 사적이지 않은, 사회/집단 속에 스스로를 감춘 노상추의 삶을 통해 난 조선을 읽을 수 있었다. 동시에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과 번번이 미끄러지는 현실 사이의 적지 않은 갭이 빚어낸 슬픔의 깊이는 얼마나 깊을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시대는 변했지만 변하는 듯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 어쩌면 우리 모두는 노상추의 삶과 닮은 꼴의 삶을 현재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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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책이라고 읽고 있는것이 대부분 왕실과 지배계층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소수의 그들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역사를 만들어 갔다면, 그러한 리그와는 전혀 상관없이 지낸 일반 백성들이 자신들의 자리에서 또한 역사를 만들어갔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일반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선후기의 양반인 노상추라는 인물의 일기를 통해 그리고 있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인 노상추 역시 3품의 벼슬까지 지낸 전형적인 양반 지배층 계급이기 때문에 일반 백성과는 거리가 있는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가 정권의 주류가 아닌 것 역시 사실이다. 임금을 지근 거리에서 모시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소망했지만 끝내 중앙에 진출하지 못하고 지방관으로 머물다가 은퇴한 한을 가진 보통 양반이다. 그러한 보통 양반의 일기로 일반 백성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접하는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진짜 평민이나 노비들은 일기를 남길 정도의 지식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새삼스레 안 사실이지만 양반이 과거에 급제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설사 과거에 급제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관직에 진출하는 것은 더 힘들었다는 것이다. 노상추 역시 35살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40살에 본격적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으니 현재의 시각으로써는 썩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의 동생 영중은 43살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51세에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57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겨우 6년만 관직생활을 한 셈이다. 조선사회가 왜 비효율적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의 일기 내용만으로 미루어본다면 노상추는 인격적으로 무난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역시 양반 기득권 계층이기 때문에 여자에 대한 무시,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받아들이는 노비제도, 적서차별 등에 대해서는 보통 양반 남성의 시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성은 아내와 사별할 경우 재혼을 할 수 있지만, 여성은 남편과 사별할 경우 평생을 수절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게다가 남성은 첩을 둘 수 있었고, 변방에서 관직생활을 할 때에는 기생과 사실혼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노상추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현재라면 매우 문란한 사생활이겠지만 조선 후기의 양반에게는 흠 잡히는 행위는 아니었으리라...
인기사극인 '추노'를 통해 새삼스럽게 알게된 도망 노비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드라마에서는 추노꾼들이 도망 노비를 찿으러 다니지만, 이 책에서는 노상추 본인이 그들을 직접 찿으로 다닌 것으로 되어 있다. 노비들의 한정된 인맥 및 빈약한 재력으로 인해 도망자체가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 뛰어야 벼룩이었던 것이다.)
양반 자체가 첩을 두는 것이 부끄러운게 아니었기 때문에 노상추 일가에도 서계가 적지않게 있었다. 노상추의 그들에 대한 시각은 존중과 무시가 같이 공존하고 있다. 인격자로써의 노상추와 양반으로써의 노상추가 공존한 것이다.
주류인 양반이지만, 양반 내에서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보통 양반 노상추의 일기를 통해 조선 후기 사회상을 접했다는 것 만으로, 이 책을 선택한 본전은 뽑은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