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모두 새로운 것, 충만한 것, 빛나는 것에 관심이 있다.당연하지 않은가.어느 누가 쇠퇴하고 몰락하며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에 관심을 두겠는가.그러나 많은 경우 사람도, 사회도, 세계도 오히려 후자의 상황에 있을 때 그 본질을 확연하게 드러낸다.이 책을 통해 만나본 중세가 그러했다.그 시대의 정신은 “어린 아이의 정신”(p11)과 같이 솔직하고 격렬하나 단순하고 거칠며 피상적이고 오류에 빠지기 십상이다.쇠퇴해가는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그 본모습을 가리기 위해 이상과 환상이라는 옷을 두르고자 필사적이다.기사도, 영웅주의, 난립하는 이미지들, 극단적 형식주의 등. 그러나 그 몸짓 아래 세계와 사람은 그 벌거벗은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낸다.그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그것은 앙상하게 죽어가고 있다.그리고 그 모습을 가리려는 사람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답답하고 많은 경우 현실에 전혀 실제적인 힘을 행사하지 못하며 가식적이며-적어도 이 시대 기준으로는-역겹기까지 하다.그러나 그 몸짓들의 움직임은 헛될지라도 움직이려는 열망은 솔직하며 진실하다.그것은 그 시대에 살았다면 분명 그들과 다르지 않았을 똑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삶의 아름다움에로 향한 갈망은 그토록 컸다.”(p157)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땐 책 내용에 관한 이해는 차지하고서라도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문체 ,논조 자체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다.호이징가의 책이 문학적이라는 소리는 익히 들어왔지만 정치,경제 중심의 역사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나에게 이 책은 호소력을 갖기 힘들었다.기사도 같은 낡은 관념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객관적,비판적 시각은 상실한 것 같았다.당연히 성의 없이 페이지 넘기기에 바빴다.대사학자의 따뜻하지만 날카로운 눈빛에 마주하게 되면서 내가 엄청난 오류와 착각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두번째 독서 때였다.(정말로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호이징가는 말한다. “한 시대의 문명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그 속에서 살았던 그 착각까지도 진실의 가치를 지님을 알아야 한다. ……삶이 이 에나멜칠의 광택으로 덧입혀져 있는채로 보는 것은 역사에 있어서 필수적인 일인 것이다.”(p69)이 글을 읽었을 때 이 책의 가치를 아무렇게나 폄하한 ‘용감하지만 무식한’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는 다른 시대에 살면서 무례하게도 그 시대를 섣불리 판단하려 들거나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무례한 일이 될 수 있음을 이 책에서 배웠다.그는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 ‘에나멜칠로 덧입혀진’ 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그러나 그는 그 속에 함몰되지 않으며 관조적인 자세로 그 안에 존재하는 ‘진실’을 들여다본다.그의 시종 따뜻한 시각에 ‘질려’ –내가 처음에 그랬듯이- 그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발견해내지 못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그는 기사도적 이상이 실제의 사회 발전을 식별할 수 없는데서 나오는 환상의 허구이며(p81) 미의 위치에까지 올려진 교만(p82)이라 꼬집는다.곳곳에서 그는 중세의 한계를 명확히 꼬집는다.-비록 여전히 그 어조는 차갑지 않지만. 표현방식은 다르더라도 그 근본양상에 있어 중세와 현재 우리 시대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씁쓸하게 떠오르는 곳도 적잖았다. “조락기의 중세 정신의 근본적인 특징의 하나는 시각의 우세함, 사고의 감퇴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는 시각의 우세함이다.”(p346) “세계가 지금보다 5세기 가량 더 젊었을 때”(p11)….비참하고 쇠퇴해가는 시대, 중세로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그 안에는 저물어 가는 시대 ‘중세의 가을’이 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거칠지만 진실한 열망이 있다.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여주는 따뜻하지만 날카로운 역사학자의 눈이 있다. 이제 여행이 끝났다.물론 또 하나의 중요한 독서거리를 던진채. “문제는 더 이상 쇠퇴해가는 중세의 문제가 아니라 르네상스의 문제이다.”(p401) |
| 멀게 만 느껴졌던 중세에 대해 '감'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었습니다. 여기에 나온 것만 보면 중세는 정말 비합리적이고 우울하고 종교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살고 싶지 않은 시대 같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르네상스가 중세와 단절되어서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중세의 유산이 그대로 이어져서 르네상스에서 꽃핀 것으로 이해해요. 중세가 없으면 르네상스도 없었다는 것이지요 문학에서는 연애 시에서조차 빈정거림이 유행하고, 마녀 재판이 있으며, 기독교에 대한 맹목적인 열성으로 (성경 적인 해석과는 관계가 없는) 신비주의...낭만적인 사랑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기사도와 궁정식 사랑...그러나 저자의 글은 왜인지 중세 사람들을 비판하기보다는 따뜻하게 감싸는 듯한 태도가 느껴집니다. 책이 두껍기는 하지만, 한 번 쯤 읽어볼 만한 책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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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삶> 12-15세기 중세의 삶은 의복 만으로도 구분되는 뚜렷한 신분제도 아래 빛과 암흑, 부와 빈곤, 잔혹함과 동정의 대조가 오늘날보다 훨씬 컸다. 가난한 자, 병자들은 깊은 연민과 우애의 대상이면서도 잔인한 학대와 조롱의 대상이기도 했다. 현재가 어둡고 혼란스러울수록 아름다운 삶에 대한 열망은 더욱 더 커진다. 그러나 정치적 사회적 제도를 개선하려는 개념은 아직 없었으므로 삶의 목표는 저세상(천국)이었다. 그리하여 교회 종소리는 이 같은 삶의 소요를 진정시킬 수 있게 된다. 세계는 신에 의해 세워졌으므로 선한데 인간들의 죄로 비참해진 것이므로 드러 내놓고 삶을 찬양하는 일은 옳지 않았다. 그러므로 억제된 내적 감동을 공개적이고 장중한 행위 속에 구체화하려는 노력이 상징적 형태들과 극단적인 대조로 드러나 모든 것에 의식을 만들어냈다. <형식주의> 현세의 쾌락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싶으나 거룩함은 유지해야 하므로, 잔인한 현실들을 숨기고 삶을 미화하려는 작업은 양식을 강조한 형식주의로 나타났다. 겸양과 이타주의를 표방한 예절과 절차는 엄숙함을 갖는 궁정의 성대한 의례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적용되었는데, 때로는 이것이 지나쳐 과한 양보, 과한 권유, 과한 의리, 과한 명예로 나타나기도 했다. (손님에게 같은 음식을 두어번씩 덜어주며 많이 먹으라 권하는 것이나, 좀 더 오래 머무르라고 간청하는 것이나, 앞질러가기를 사양하는것, 봉헌식에서 누구도 제단 위에 첫번째로 헌금 놓는 사람이 되려 하지 않는 것) 이러한 과장된 형식주의는 한편으로는 난폭하고 거친 시대에서 오만과 분노를 억제하는데 기여를 한 셈이기도 하다. <기사도>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용기, 명예, 사랑에 덧붙여져 기사도적 이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영웅주의로 부풀어 오른 마음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군대 생활과 궁정 생활은 그런 감정들에 실질적인 기회들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호사스런 마상시합으로 그 욕망을 실현했다. 다만, 진정한 용맹보다는 에로틱함, 곧 여성을 위한 싸움이다 보니 피 튀기는 난폭성이 있었다 명예와 용기와 충성의 이상이 또 다른 형태로도 표출된 것은 바로 기사단이다. 여기에는 고결함을 위해 금욕적인 요소가 대단히 중요하였는데, 특히 십자군 시대에서는 속세를 벗어나고자 하는 수도원적 열망과 합쳐지면서 군대와 종교적인 것이 결합한 기사단이 유행처럼 만들어졌다. 기사도적 서약은 오랜 옛날의 신성한 제의에 뿌리를 두어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용기니 사랑이니 하는 치정적인 성격을 가져 놀이의 요소가 점점 강해졌다. 예를 들면 제후들 사이의 결투는 정의라는 원천적 감정과 기사도적인 환상을 동시에 만족 시킬 수 있었지만, 늘 예고만 해놓고 실행에 옮기는 일은 극히 드물었던 것과 같이. 곧 금욕주의와 에로티즘의 결합된 형태가 되어, 15세기에 오면 정치적 군사적인 중요성을 거의 상실하고 일종의 고상한 유희로 전락하고 만다
기사도적 이상과 귀족 계급에 귀속되는 미덕과 임무의 실천 속에, 각자가 농민의 희생으로 살고 있었고 농민들은 참을성 있게 견디어냈다 <상징> 형식주의는 신앙에도 적용되어 신성한 것이라면 뭐든지 재현하고 싶어하며, 종교적인 것들에 일정한 형상을 부여함으로써 조각처럼 강하게 부각 시켜 정신에 새겨지게 하려 했다. 때로는 이것이 지나쳐 종교적 사고를 과도하게 밖으로 드러내고 물질 속에 고정 시키려는 위험을 가져오기도 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아무 사물이나 행동을 신앙과 관련 지어 묵주 속에 기도의 힘이 상징화 되는가 하면, 성자들의 유골을 보관한 기이한 진열실들이 활기와 색채를 더해갔고, 아무 데나 악마가 관여 되었다. (십자가의 길에 대한 앙모 등은 모두 중세 말기의 것이다.) 하느님을 일상적인 삶 속에서 다룬 그 친숙성은 한편으로는 깊고도 순진한 신앙심의 표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성모독으로 나타났다 영주들은 위엄을 뽐내기 위해, 젊은이들은 연애를 위해, 창녀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교회를 갔다. 동정녀 마리아에 관한 조각상들 가운데는 뱃속에 든 삼위일체를 내비치도록 배를 갈라 보인 조각들이 흔히 있었다. 관념에 존재를 부여하여 의인화한 신인동성동형론(신과 인간을 동일시)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종교적 개념들과 형식들이 넘쳐 나자, 반대로 종교적 긴장감은 오히려 감소하여 일부에서는 자유사상가임을 자처하며 신앙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한편으로는 이런 부작용을 우려하여 형식의 도움 없이 신성에 도달하려는 노력도 일어났다. 피와 대속, 성체, 아버지, 아들, 성령과 같은 구체적인 의인화와 상징들을 없앤 것이다. 그러자 침묵, 공허, 암흑이 남아 최종에는 순전한 부정만이 남았다. 신성은 무無가 되었다. <예술> 형식주의는 예술에도 적용되어 종교적 열망과 환상을 세세한 구체적인 형상으로 만들어내었는데, 그것은 예술 자체이기 보다는 예술에 의한 삶의 미화이므로 신앙심의 고양을 북돋거나 사교계의 쾌락에 동반해야 했다. 곧 작품의 의미와 용도는 미학적인 가치보다 중요시되어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야 미적 개념으로 변화되었다. 대표적으로 미켈란젤로) 주제가 매우 제한되며 주문 받은 용도(위대함을 찬미하고 기증자나 후원자의 개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로 제작되는 예속된 예술이다. 그런 만큼 회화에서는 품격 즉 주제의 성스러움, 그리고 완벽한 솜씨 즉 세부적인 것들의 경이적인 완벽성과 자연의 충실한 재현으로 나타나, 완전성과 완벽성, 정확한 비례와 조화, 명도 미학적인 감정은 촛불, 태양빛, 반사광 같은 다양한 방법의 빛과 색채로 표현되었다. (다만 주제의 엄격성으로 인해 중요 인물은 특이하게, 부수적인 것들은 자연 그대로 묘사했다) 문학에 있어서도 세부적이고 정확한 묘사가 이루어졌는데, 단순하게 나열하는 방식에 희극적인 요소가 섞이면서 부터 더 이상 지루하지 않게 되고, 반어법으로 세련되어진다. 세속적 욕망을 고상하게 포장하기 위한 노력은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르네상스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르네상스는 새로운 정신이기 전에 중세적 사고안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외적형식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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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책은 이 책의 1988년 7월판이다. 그 해 11월 6일 샀다는 메모가 남아 있다. 책 속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 것을 보면 읽으려고 했던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서양의 중세에 대한 내 관심은 여전히 살아 있어서, 종이도 누렇게 변해 있고, 글자 크기도 요즘 책보다 작은 편이어서 좀 불편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다시 봤다. 그리고 더 보고 싶다고 생각한 내 마음에 고마움을 느꼈다. 첫 페이지의 “세계가 지금보다 5세기 가량 더 젊었을 때,...”라는 표현이 나온다. 얼마나 멋진 말이라는 생각이 들던지. 잘 읽었다. 일본 소설 “료마가 간다”를 읽을 때도 느꼈던 것인데,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만 해도(일본을 통해 유추해 보아도) 우리가 지금보다 경제적, 과학적으로 꽤 못 살았던 것 같다. 하물며 500년 전이라면 훨씬 더 못 살았을 것인데, 나는 그런 것을 쉽게 잊어버린 상태에서 그 시절을 상상하곤 한다. 시간적 배경은 고려하지 못하고 공간만 옮겨 놓은 상태에서, 그저 낯선 이국 땅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던가 하는 정도로만. 이 책은 나의 그런 무지한 상태를 확 일깨워준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외우기 위해 읽었던 내용 그 밖의 모든 것들을 알려주면서. 내가 저 당시의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살았던 것인가 하며 의아하게 여겼던 많은 것들,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담겨 있는 책이다.(오래 전 내가 읽은 것처럼 보인 흔적은 그저 흔적일 뿐인 모양이다, 그때 이런 내용을 알았더라면 그 후로 오랫동안 모른 채 지내오지는 않았을 테니, 내 독서력하고는, 낄낄)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시작으로 서양인의 종교적 태도에 대해 좀더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도 있게 될 것 같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모조리 내 머리 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내가 필요로 할 때 한 장씩 꺼내어 확인하고 인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읽고 정리했다. 제발 몇 구절이라도 오래 남아 머물기를. 11 재난과 빈곤 같은 것도 그것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오늘날보다 훨씬 적었다. 그것은 훨씬 더 무섭고 잔혹했던 것이다. 질병과 건강은 훨씬 더 뚜렷한 대조를 보였고, 겨우내 추위와 어두움도 훨씬 더 쓰라리게 느끼는 고통이었다. 17 15세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이 같은 번제[燔祭]가 허영과 쾌락에의 거부를 축성(祝聖)하는 하나의 의식처럼 성행했다. 이는 결국 모든 것에 의식을 만들어내던 당시의 시대 정신과 일치되는 것으로서, 깊은 내적 감동을 공개적이고 장중한 행위 속에 구체화하려는 노력에 다름아니었다. 18 이 시대는 18세기 감상주의자들이 그러했듯이 눈물을 아름답고 감화적인 것이라 여기던 시대였던 것이다. 22 15세기의 왕과 제후들은 국무 처리에 있어서 환상을 보는 고행 수도승이나 열광적 설교가들에게서 자문을 구하곤 한다...... 일종의 종교적 압력이 고위층 정계에 세력을 떨쳤던 것이다. 27 백성들이 영주에 대해 갖는 애착심은 아직도 어린 아이 같은 충동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충성심과 연대 의식에의 자발적인 욕구로서 과거 봉건적 개념의 확대였다. 정치적 감정이라기보다는 당파심이었던 것이다. ... 중세 시대의 사적 원한은 다른 사람의 소유를 탐내는 일과 서열 다툼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가문의 긍지, 복수에의 열망, 모든 시련을 견디는 지지자들의 충성심 등이 싸움의 직접적 요인이었다. 30 형 집행의 잔혹성에 있어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범죄 자체의 사악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민중들이 거기서 맛보는 동물적이고도 짐승 같은 쾌락이며 축제와도 흡사한 기쁨이었다. 35 이 시대가 가장 의식한 죄는 탐욕이었다. 교만은 소유와 부가 아직 거의 유동적이지 않은 봉건 계급 시대의 죄이다. 39 참으로 악한 세계이다. 증오와 폭력이 횡행하고 불의가 만연하며 악마는 그 어두운 날개 밑에 땅을 암흑으로 뒤덮고 있다. 그리고는 전반적인 쇠퇴가 찾아온다. 그러나 인간성엔 변함이 없다. 교회는 싸우고 설교가와 시인들은 슬퍼하고 권고한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다. 40 시대 전체가 보다 아름다운 삶을 열망한다. ...... 사실 매시대마다 행복한 기억보다는 불행과 고통의 흔적을 더 많이 남긴다. 주로 불행한 일들이 역사로 남는 것이다. 45 삶을 우울하고 어둡게 보려는 갈망은 사실은 진정한 종교적 영감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47 세계를 의식 있게 개선하려는 열망과 함께, 삶에 대한 두려움이 용기와 희망으로 바뀌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실제로 처음으로 이 개념을 가져온 것은 18세기였다. 르네상스는 또 다른 만족감 속에 그 나름의 삶에 대한 정력적인 수용을 길어냈었다. 18세기는 인간과 사회의 완성 가능성을 중심적 도그마로 끌어올린 세기이다. 다음 세기에 오면 이러한 순진한 믿음은 잃게 되지만 그래도 그 믿음이 낳을 용기와 낙관주의는 그대로 보존될 것이다. 51 “독특하게 보이고 주목받고자 하는 마음의 드높은 위용”이라고 샤틀랭이 표현한 그것이야말로 부르크하르트식으로 말하면 르네상스기 인간의 가장 주된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53 지금은 소시민적 특성을 띠게 된 예절에 대한 경쟁도 옛날 15세기 궁정에서는 극도로 발달해 있었다. 자기에게 돌아온 자리를 웃사람에게 드리지 않는 것은 수치였다. 55 당연한 일로, 삶을 이처럼 풍부하게 미화하려는 작업은 특히 그것에 몰두할 만한 시간적·공간적 여유를 가진 제후들의 궁정에서 꽃피었다. 하지만 이 같은 형식 숭배는 중산층까지 확산되며, 사회 상층부에서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예법이 되어버린 후까지도 중산층에서는 계속 유지되었다. 57 형식을 존중하는 마음은 너무도 커서 만약 범절을 어기고 조금만 결례를 범해도 치명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여진다. 60 열렬하고 격하며, 냉혹하면서도 동정적이며, 세계에 대해 절망하면서도 또 세계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에 탐닉하는, 이 시대의 정신은 엄격한 형식주의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같은 감동들은 관례적 형태라는 엄격한 틀 속에 당겨져야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사회 생활 역시 그 같은 방식으로 배열되었다. 삶의 사건들은 아름다운 광경이 되었고, 고통과 기쁨 역시 비장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입혀지고 단장되었다. 감동을 표현하는 수단에는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감정은 단지 그 미적 표현에 의해서만 그 시대가 열망하던 그 높은 단계의 표현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65 일상 생활 속에서도 똑같은 탐미주의가 만연하였다. 옷감·색깔·모피 등에 엄격한 계급이 있어 계층을 구분지었고 동시에 그것은 위엄의 감정을 지켜주며 찬연히 빛나게 하였다. 66-67 이처럼 양식화된 아름다운 형식들은 외적인 조화 밑에 사실은 잔인한 현실들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삶의 위대한 기법의 일부를 이루었던 이 같은 형식들은 예술 속에서는 별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겸양과 이타주의라는 매혹적인 허구를 가진 예절의 형식들과, 위엄과 종교적 전통에 따른 엄숙함을 갖는 궁정의 성대한 의례들과 예의 범절들, 그리고 결혼식이며 분만실의 유쾌한 치장들 등 이 모든 아름다움은 예술과 문학 속에서는 별로 직접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며 거의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것들을 결합하는 표현 수단은 예술이 아니라 양식인 것이다. 그러나 15세기에 있어서는, 양식 혹은 말하자면 복장의 영역은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예술의 영역에 가깝다. 기사들이 입는 갑옷에 보석과 세공한 금속들을 주렁주렁 매다는 방식은 의상에 수공 예술의 직접적인 요소를 가져왔다. 그러나 여전히 의복 양식과 예술은 공통적으로 스타일과 리듬이라는 필수적 특성들을 갖는다. 중세 말기는 복장 속에 하나의 양식 곧, 지금은 대관식의 성대한 절차에서나 그에 대한 희박한 개념을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양식을 계속적으로 표현하였다. 일상 생활에서 모피옷·색깔·머리쓰개·현수포 들이 갖는 구분은 계급의 엄격한 배치와 오만한 위엄, 기쁨이나 고통의 상태 및 우정과 사랑의 부드러운 관계들을 강조했던 것이다. 공동 생활의 모든 관계들은 가능한 한 표현력이 풍부한 방식으로 다듬어진 나름의 미학을 갖고 있었다. 아름다움과 도덕성이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그들의 표현은 순수 예술에 가까웠다. 공손함과 예절바름도 생활 자체, 복장 및 외관 속에서만 그 표현의 미를 찾았다. 그러나 애도만은 묘비 속에 강력하고 지속적인 예술 형식을 남기는데 그것의 종교와의 결합은 교화적 가치를 드높인다. 그러나 역시 탐미주의의 가장 풍성한 개화는 용기와 명예와 사랑이라는 삶의 세 가지 요소 속에 잔존되어 있었다. 91 위험 한가운데서 자신을 망각하는 것이며 동료의 용기에 감동을 느끼는 것, 또 충성심과 희생 정신의 극한 희열 등등, 이 같은 원시적인 금욕주의는, 기사도적 이상이 남성적 완벽성의 고귀한 표현 즉 그리스인들의 ‘칼로카가티아’에서 표현된 것 같은 아름다운 삶에로의 열망에까지 고양되는 기반이 된다. 이 이상이야말로 수세기 동안 하나의 에네르기의 원천으로 남을 것이며...... 또 모든 에고이즘과 난폭함의 세계를 뒤에 숨긴 마스크로 남을 것이다. 103 14세기, 15세기에 오면 기사단들은 매우 거대한 수효로 창설되지만, 정치적·군사적인 중요성을 거의 상실하고 단지 일종의 고상한 유희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하여 그들이 공언하는 열망들도 그것이 대단히 윤리적이고 높은 정치적 이상주의를 표명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꿈과 환상, 헛된 기도에 불과하게 된다. 114 모든 것에 싫증이 난 귀족 계급은 이처럼 자기 스스로의 이상을 비웃는다. 상상력과 예술과 부의 온갖 자원으로 자신의 영웅주의에의 꿈을 치장하고서도 결국 삶이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다고 여긴 귀족 계급은 스스로 그것을 비웃는다. 130 사회적 이상이 초월적인 미덕을 요구할수록, 사회적 형식주의와 현실 사이에는 그만큼 더 불일치가 커진다. 결국 기사도적 이상은 반은 종교적인 취지와 아울러 가장 직접적인 것에는 눈을 감고 가장 큰 환상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한 독특한 시대에 의해서만 경험될 수 있었다. 새로 태어나는 새 시대는 이처럼 지나치게 높은 열망들을 죄다 내버리기를 요구했다. 기사는 여전히 일련의 명예 개념과 계급적 편견들을 갖고 있긴 하지만 스스로를 더 이상 신앙의 옹호자나 약자의 보호자로 내세우지는 않는 17세기 프랑스의 쟝티욤이 된다. 그리고 프랑스 귀족의 전형도 기사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긴 하나 보다 절제되고 세련된 ‘젠틀맨’의 전형으로 대치된다. 결국 이상은 이처럼 연쇄적인 변모 속에 덜 과정된 형태의 삶의 개념에 부합되어간다. 154 사랑의 이상, 충실함과 희생이라는 아름다운 허구는 결혼 특히 귀족 계급 사람들의 결혼을 지배했던 매우 물질적인 사고들 속에서는 발붙일 곳이 없었다. 이 이상은 매혹적이고도 숭고한 유희의 형태하에서밖에는 경험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기마 시합은 로마네스크한 이 사랑의 유희에 영웅적인 형식을 부여하였고, 목가적 개념은 그것에 전원시풍의 형식을 제공해 주었다. 161 안락함과 휴식과 독립, 이러한 것들은 궁정 생활보다는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노동하며 살아가는 삶을 더 좋아하게 만드는 자산들이다. 그러나 그것에만 그친다면 이 이상은 부정적인 것으로 머무른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노동과 소박함이 주는 기쁨보다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전원시는 가장 온전한 의미에 있어서는 문학 장르 이상의 무엇이다:그것은 삶을 개혁하려는 욕구이다. 그것은 단순히 목동들과 그들의 순진한 희락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꿈에서나마 그것을 모방코자 하는 욕구이다. 182 중세 말기의 종교적 사고는 죽음의 장소에서 두 가지 양 극단밖에는 알지 못했다. 현세적인 것들의 덧없음에 대한 한탄과 영혼의 구원에 대한 기쁨, 두 가지만을. 그 외의 모든 중간적 감정들은 표현되지 않은 채 있었다. 감동은 혐오스럽고 위협적인 죽음의 사실적 표현 속에서 딱딱하게 경직되어 버렸다. 194 교회에 가는 일은 사회 생활에 중요한 한 요소를 이룬다. 195 순례 역시 모든 유의 오락거리와 연애 행각의 기회가 되었다. 216 그 시대의 종교 생활은 극단적인 대조를 나타낸다. 사제 계급과 수도사들에 대한 경멸과 증오는 그들의 신성한 직무에 대한 깊은 존경심의 반대 급부일 뿐이다. 218 중세의 정신 속에서는 모든 순수하고 고양된 감정들이 종교 속에 흡수되는 반면 자연스럽고 관능적인 그래서 의식적으로 억압된 제 성향들은 세상에의 죄악된 사랑이라는 차원으로 떨어진다. 233 15세기에는 종교적 감수성이 크게 두 가지로 표현된다. 한편으로는 감수성이 격렬한 감동으로 표현되어 때때로 순회 설교가의 목소리로써 민중을 사로잡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전혀 새로운 형태의 삶의 형식으로 물길이 트여져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열광’의 형태로 규범화된다. 이는 스스로를 혁신자들로 의식하여 자기들을 ‘근대적 독신자들’이라고 부르는 자들의 경건주의이다. 250-251 스콜라적인 의미에서는 모든 실재론은 신인동성동형론에 이르게 된다. 관념에다 하나의 실재 존재를 부여한 뒤에는 정신은 그것이 살아 있는 관념이기를 원하게 되며, 또 의인화에 의해서마 그 일은 가능하게 된다. 알레고리가 태어나는 것은 바로 이렇게해서이다. 알레고리는 상징주의와 같은 것이 아니다. 상징주의가 두 관념 사이에 신비적 관계를 인증한다면 알레고리는 이 관계의 개념에 눈에 보이는 형태를 부여한다. 상징주의는 정신의 매우 깊은 한 기능이다. 알레고리는 피상적이다. 알레고리는 상징적 사고가 표현되도록 돕지만 한 형상을 살아 있는 관념으로 대체하면서 상징주의를 위협한다. 상징의 힘은 알레고리 속에서 고갈되어 버린다. 252 상징주의는 중세 시대에 그 자체로는 비천할 수밖에 없는 현실 세계를 보다 높이 평가하고 현세의 일들을 고결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 상징주의는 개인의 미덕과 고통을 개별적 범주에서 떼어내어 보편적 범주로 높이면서 중세에 그토록 강조되던 종교적 개인주의 즉 개인 구원 추구에 하나의 구원적 평형을 이루었다. 302 중세의 예술은 삶에 합체된다. 삶은 교회의 성사들과 연중 축제들, 종규에 따른 기도 시간들의 결합력과 리듬을 받아들인다. 작업들과 즐거움들은 나름의 고정된 형식을 가지며 종교와 기사도 궁정식 사랑은 그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예술은 이러한 형식들을 아름다움으로 감싸는 임무를 맡는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예술 자체이기보다는 예술에 의한 삶의 미화이다. 사람들은, 후의 시대들이 하듯, 그렇게 고독하고 위안을 주는 예술 작품들의 감상에 의해 다소 건조한 삶의 틀에 박힌 인습을 모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들은 예술을 삶의 광택을 높이는 삶의 한 요소로서 누린다. 예술은 신앙심의 고양을 북돋거나 사교계의 쾌락에 동반해야 한다. 사람들은 아직 예술을 순전한 미 자체로만 생각지는 않는다. 309 현대인은 아무 때나 자기가 원할 때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자기 선택에 따라 오락거리를 추구한다. 그러나 정신의 즐거움들이 그다지 많지 못하고 또 아무에게나 열려 있지도 않은 시대에 사람들은 축제라는 집단적 축연들을 필요로 한다. 일상적 삶의 비참상이 무겁게 내리누를수록 축제는 더욱 필수적인 것이 되며 그 방법들 역시 즐거움의 도취와 현실의 망각을 주도록 더욱 강렬해야 할 것이다. 15세기는 의기소침하고 염세적인 시대이다. 인간성은 천상의 기쁨의 약속만으로도, 신의 배려에 대한 확약만으로도 만족할 수가 없다. 그에겐 때때로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성대하고도 집단적인 확인이 필요하다. 일차적인 쾌락들, 유희·사랑·음주·춤·노래만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그것들은 아름다움에 의해 고상하게 치장되어야 하며 집단적인 쾌락 행위에 의해 양식화되어야 한다. 민중들의 축제는 노래와 춤 속에 자기 나름의 아름다움의 요소들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엔 그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교회 축제들에서 형식과 색채의 아름다움을 빌어왔다. 수사학자들 덕택에 독립적인 부르조아 축제들이 생겨나게 된 것은 15세기경이다. 그 때까지는 단지 제후 계층만이 그들의 부와 궁정적 이상에 힘입어 세속적 축제 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328 중세의 사고는 아름다움의 개념을 완성과 비례와 장대함의 개념들로 환원시켰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한다 : “이 세 가지 조건은 아름다움에 필수적이다. 우선 완전성과 완벽성이 꼭 필요한데 왜냐하면 불완전한 것들은 추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정확한 비례와 조화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명도가 필요한데 왜냐하면 빛나는 색채를 가진 것들은 아름답다고 말해지기 때문이다. 401 15세기에 프랑스에서는 도처에서 새로운 형태의 사상이 생겨난다. 그러나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것의 형태와 사상이 서로 부합되지 않음을 본다. 정신은 아직 중세의 지배적인 사상을 향해 있고 중세적인 흔적을 갖고 있다. 반면 그 낡은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고대적인 형태가 사용된다. ...... 사람들은 죽은 것, 몰락해가는 높고 강한 문화에 등을 돌리면서, 자신들과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태어나고 있는 것들에 눈을 돌린다. 문제는 더 이상 쇠퇴해가는 중세의 문제가 아니라 르네상스의 문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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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을 읽은 뒤로 항상 읽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동안 구입했던 책들도 다 읽지 못했는데 책만 사두는 것도 못할 짓이기도 해서 나중에 사리라 다짐을 하고 있었는데... 운이 좋겠도 헌책방에 갔을때 떡!하니 있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콩딱 콩딱 거리는 심장소리가 귀속에 울리며 계산을 하게 되었고 읽던 책을 끝내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물론.... 생각보다 그리 쉬운 작품은 아니다. 역시나 내가 얼마나 중세시대에 대한 기초지식이 모자라는지 깨닫게 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읽으면서 회화, 종교, 산문, 시, 중세시대의 일상생활에 대한 저자의 박학다식함과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추정을 하는 모습은 본받을 점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겠지만... -_-;;; 앞으로 지속적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작품들을 읽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읽을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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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두툼하고 활자는 작으며 문장은 길다. 제 1장의 제목은 ‘삶의 쓰라림’이고 이렇게 시작된다.
쇠퇴기의 중세만큼 그렇게 죽음에 대한 생각에 큰 강조와 감동을 부여한 시대는 달리 없었다. 그 시대에는 끊임없이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mori는 호소가 메아리친다. -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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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는 극단적인 양상들이 어울려 이루어지는 문화였다. 우리가 기존에 가졌던 중세에 대한 이미지를 어느 정도 벗어나게끔 해주는 저술. 서술 방식도 아주 특이해서 이게 과연 역사책인가 싶기도 하다. 하긴 너무 교과서적인 역사 서술에만 익숙한 우리에겐 낯설겠지만, 서양의 경우 역사를 서술하는 관점과 서술방식에 있어서 다양성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면서 읽으면 될 것 같다. 마치 소설의 시작을 읽는 듯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이 책의 서술 방식은, 낯설지만 그래서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면 오히려 르네쌍스의 시기가 그리 단절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호이징가는 역사의 한 접힌 부분과도 같은 14.5세기를 이렇게 제시한다. 사실은 비속하기 그지 없고 거칠기 그지 없는 일상 생활과 감정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꿈꾸는 이상주의와 영웅주의와 사랑의 꿈을 온 존재로 끌어 안는다. 극단과 극단을 오락가락하는 그 시대 평범한 민중들의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라. 종교만이 있었던 시대도, 그렇다고 세속만이 있었던 시대도 아니었다. 우리의 머리 속에 든 교과서적 중세의 이미지는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어느정도 정돈될 것이리라. [인상깊은구절] "한 시대의 문명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그 속에서 살았던 그 착각까지도 진실의 가치를 지님을 알아야 한다." "역사는 결국 실제의 사회 발전을 식별할 수가 없었으므로 기사도적 이상이라는 허구를 사용하였으며, 그것의 힘을 빌어......... 질서의 환상을 만들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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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Huizinga가 이제까지의 중세라는 시대를 연구한 학자 중에서 최고라는 것을 분명하게 다시금 확인해주는 책이 이 "중세의 가을"이다. 이 책에서는 중세를 가을(fall)이 아닌 가을(harvest)라고 표현한다. 지금까지의 역사공부 방법과는 달리, 역사의 큰 맥락이 아닌 누군지도 모르는 한사람 한사람의 일상생활의 한 단편을 통해 그 시대를 이해하는 "미시사"적 역사 연구방법을 제시한다. 미시사가 1970년대부터 화두화 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역시 호이징가야!!"라는 감탄이...
따라서 이 책은 중세 시대의 종교속의 억압보다는 파리의 한 인쇄소에서 벌어졌던 고양이 죽이기 소동, 몽펠리에 주민의 도시 설명서, 경찰 수사관의 조서, '백과사전'의 서문, 한 시민의 서적 주문서 등을 통해 일상생활을 기술하고 그 시대를 이해한 "고양이 대학살"과 같이 일상생활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책은 "세계가 지금보다 5세기 가량 더 젊었을 때"라며 글을 사작한다.
유럽의 중세를 교과서와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싶다면 이 "중세의 가을"을 강력히 추천한다. [인상깊은구절] 참으로 악한 세계이다. 증오와 폭력이 횡행하고 불의가 만연하며 악마는 그 어두운 날개 밑에 땅을 암흑으로 뒤덮고 있다. 그리고는 전반적인 쇠퇴가 찾아온다. 그러나 인간성에는 변함이 없다. 교회는 싸우고 설교가와 시인들은 슬퍼하고 권고한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