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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김씨, 김진송의 새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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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저자 김진송과 그의 글쓰기를 좋아했다. 처음은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였다. 이렇게 재미있고 독특한 문화연구가 있다니.. 감탄하며 밑줄그어가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후로 목수가 된 김진송의 독특한 책들을 하나둘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던 저자가 <상상목공소>를 냈다는 소식에 책을 후다닥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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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소는 나무로 된 물건을 만드는 곳이다. 나무로 된 물건하면 장롱, 책상, 책장, 의자 그리고 집이 떠오른다. 생활에 필요한,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보편적 사고든, 사전적 의미든 목수는 연장을 이용하여 집을 짓거나 가구나 기구를 만드는 사람이다. 오래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재미삼아 전생을 알아보는 테스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의 직업은 ‘중세 이탈리아의 조각가가 되지 못한 목수’였다. 당시의 나는 현실이란 차가운 바다에 두 발을 푹 담구고 가지 못한 숲길에 미련을 두고 살아가고 있었다. 테스트 결과를 보며 답답한 일상을 견디는 것이, 살아가기보단 살아남는 것이 예정된 내 운명이라고 여겼더랬다. 나의 사고 속에 조각가는 ‘이상’ 목수는 ‘현실’, 조각가는 ‘감성’ 목수는 ‘이성’, 조각가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한 예술가’ 목수는 ‘정밀한 설계도를 근거로 튼튼하게 물건을 만드는 기술자’였다.
이번에 읽은 책은 『상상목공소』이다. 내 사고에서 상상과 목공소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런데 이런 부조화가 책에 대한 매력으로 다가왔고 읽고 싶은 욕망을 일으켰다. 저자 김진송은 국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했고 목수이자 저술가(혹은 비평가)라고 한다. 목수와 저술가, 책의 제목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저자는 기존에 『목수일기』를 펴낸 바 있는데 『상상목공소』는 언뜻 김진송의 목수일기 혹은 작업일기로 읽힌다. 그런데 자세히 읽다보면 목수일기 보단 어떻게 그런 상상이 가능하지, 하는 감탄이 든다. 이 책은 어떻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어떤 대상에 대해 ‘안다’ 와 ‘모른다’를 말할 때 그 근거는 ‘경험’이다. 몸으로 체험한 직접 경험과 책을 포함한 타인의 경험으로 얻은 간접 경험은 ‘안다’ 와 ‘모른다’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어떤 대상에 ‘안다’라고 말하는 것 역시 전체가 아닌 내 경험을 토대로 한 범위 안에서의 앎, 지식을 의미한다. 실제로 대상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해도 그것을 모두 설명하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언어들의 나열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러한 언어들의 한계를 메어주는 것을 상상력이라고 칭했다. ![]()
이 책에는 저자가 만든 ‘작품들’이 실려 있다. <비밀의 집>, <거미 등에 올라타기>, <악몽의 기계장치>, <책의 바다에 빠져들다>, <머리가 무거운 새>, <세상 밖 한 걸음> 등 제목부터 독특한 그의 작품들은 목수가 만들었다고는 상상이 되질 않는 실용성 제로의 물건들이다. 물론 이러한 내 사고는 목수는 실용적인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편협한, 혹은 보편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 보이지 않는 세상까지 알고자하는 하는 인간의 욕망은 존재하지 않은 것들을 존재하게 했고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상상력은 경험으로 채우지 못한 갈망을 채우는 역할을 했다. 상상했던 것들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인간에 대한 경외와 짜릿함이 동시에 든다. 그러나 상상했던 것이 모두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인간의 상상력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 폭주족 폭주족은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달리지만 저자의 작품에선 오토바이는 그대로이고 길이 움직인다. 저자의 작품들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세상이다. 머리로 하는 상상에 손의 행위가 결합되면서 존재하는 대상이 되었다. 일정 부분 경험이 덧보태지기도 한다. 실용주의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에게 저자의 작품은 어디에 쓰는지 통 알 수 없는, 왜 만들었는지 도대체 모르겠는 무의미한 작품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작품들을 보면 알지 못한 세상, 미처 보지 못한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볼 수 있는 세상의 범위를 한정시켰다. 지금 존재하는 것들 중 많은 것이 오래전엔 부재했던 것이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기반에는 생산과 창작이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주체인 우리에게 생산과 창작은 필수 작업이다. 저자는 타자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럴 때의 상상력은 사고의 유연성과 다양한 가능성과 열린 세계를 동시에 제시한다고. 꽃과 나무, 벌레를 포함한 자연을 세밀히 관찰하다보면 보지 못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러한 세상과 소통(=상상)을 하다 보면 자연의 진실을, 세상의 진실과 조우하게 된다. 상상력이 조금 더 나는 현실을 만드는데 일조함을 분명한 사실이다. 좀 어려웠지만 재미있는 독서였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상상력은 언어가 제거해버린 대상의 다의성을 내살려 내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언어작용일지도 모른다. 언어를 포함한 모든 고정관념에 매몰되지 않을 때 상상력이 시작되는 것이다.(10쪽) 자연의 현상이나 생태적 본능 혹은 감각의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세계가 미끄러져가는 과정에서 열리는 상상의 세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의 가능성 일 것이다. 그럴 때 상상력이란 인간이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마련해준 신의 선물이 될 것이다.(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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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라는 말은 나를 주눅들게 한다. 상상력이 없다거나 상상력이 부족하다거나 상상을 할 줄 모른다는 평가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상상력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잘 못하고 잘 안 한다. 아주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꽤나 상상하는 놀이를 하면서 지냈던 것 같기도 한데-그런 기억은 확실하다-지금은 너무 어렵다. 힘들다 싶을 정도여서 하기 싫은 탓도 있겠지만.
상상하기에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나보다 더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여전히 짱짱한 상상력으로 오늘날 각 분야에서 귀감이 되고 있으니까. 내 성격 탓이거나 살아온 여건 탓이거나 취향 탓일 것이다. 상상의 힘을 믿지 않고 상상의 매력에 빠진 적이 없었던 탓.
그래도 상상이라는 말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고, 익힐 수만 있다면 익혀 보려고, 또 <목수일기>라는 작가의 책을 좋게 읽었던 기억이 확실해서 이 책에도 그만큼의 기대를 품고 펼쳤는데. 잘 읽히지 않았다. 이유가 작가에게 있는 건지, 독자인 내게 있는 건지, 내가 변한 건지 작가가 한 차원 높아진 건지, 재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정말 그런 기분으로 책장을 넘겼다.(여행 중에 읽었는데 다른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목만으로 상상력과 창의성의 중요성은 확실하게 전달되는데, 내용에 대해서는 아쉽기만 하다. 내 상상력과 창의성을 키울 방법을 더 많이 잃어버린 느낌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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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인문에세이라고 하니까 또 마음이 달라졌다. 게다가 제목은 얼마나 멋지던가. 상상목공소. 웬지 꿈을 깎고 갈아서 멋진 무언가를 만들어낼 것 같은 기분마저 들고 말았다. 소제목은 '상상력과 창의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라고 적고 있다. 상상력과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나보다 준비를 하고 읽게 된다. 예상한 대로 역시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에서 집중하게 된다. 인간의 사고 대부분이 언어중추를 통해서 일어나듯이 상상력 또한 대개는 언어작용에 의해 작동된다. 하지만 그 전에 언어는 상상력을 제한하는 사회적 도구다. 아이는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사물을 구분하고 대상을 구체화시킨다. 언어적 소통을 통해 타자와 자신을 분리해내는 인식이 발달하며 또 언어를 통해 사회적 교감을 이루는 법을 배워나간다. 그러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사회적 억압에 익숙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어는 사물을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사물과 현상의 여러 측면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사고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다만 하나의 축소된 개념에 갇혀버리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 21쪽
벌레와 인간. 그들은 한 번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둘 간의 관계는 늘 적대적이었다. 인간은 수백만 년을 벌레에게 시달려왔음에도 벌레에 대해 우월한 지위를 확신한다. 벌레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목숨을 내어주면서도 자기의 길을 포기한 적이 없다. – 146쪽
상상력에 관한 많은 오해가 있다. 그중 가장 흔한 오해는 상상력이 동심의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오해다. 그런데 한 가지 의심스러운 현상이 있다. 일반적으로 상상력은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한다. 따라서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창의력이 더 높을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어른을 뛰어넘은 수준까지 도달한 예는 거의 없다.
사실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상상력이란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경험과 상상력은 얼핏 무관해 보인다. 오히려 현실 속에서는 경험이 적은(그래서 순수한) 사람들이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새로운 대상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이미 경험했던 대상에서 유추하여 대상의 형태와 성질 등 여러 가지 정보를 파악하게 된다.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반응은 빈약한 경험에서 비롯된 연상능력의 부족에서 비롯된 결과이기 쉽다. 경험과 사고의 부족에 기인한 엉뚱한 연상이 어른들의 눈에 기발한 상상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 172쪽
상상력은 사회적이다. 창의적인 작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회적이라는 의미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적 발상이 뛰어난 한 개인에 의해 나타날 수 있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사회적 공간이 없다면 상상력과 창의성 또한 발휘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다. 창의성 혹은 상상력은 통념을 넘어서는 어떤 것에 대한 열린 사고를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적 규준을 넘는 새로운 사고는 사회적 규준으로 평가될 수 없거나 측정되지 않는다. – 178쪽
목수인 저자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온갖 다채로운 설정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나무로 작업해낸다.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사이사이의 시행착오 등도 무척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문자로 설명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는 저자의 작업들이 심드렁했다. 당신에게는 유의미한 작업이지만 그걸 책으로 한 다리 건너 문자로 읽어내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공감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완성품을 사진으로 보니 꽤 멋졌는데, 그걸 동영상으로 보니 더 근사했다. 아마 실물로 보면 나의 심드렁함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릴 테지만, 그렇지 못하는 독자는 홈페이지의 동영상으로라도 만족감을 더해보련다. 주제는 상상력과 창의성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모르던 것들에 대한 얘기가 등장할 때 글이 더 반짝반짝 빛났다. 이를테면 저자의 관찰에 의하면 봄꽃은 붉은색, 여름꽃은 흰색, 가을꽃은 보라색이 많은데 이는 주변환경과 보색을 이루기 위해서일 거라는 것이다. 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저 나무는 싱그럽고 꽃은 예쁘다고만 생각했지 꽃 색깔을 한 번도 눈여겨보지 못했다. 저자의 짐작대로 '보색'대비를 통해서 더 많이 벌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키고픈 욕망이 그렇게 발현되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이제는 계절마다 꽃을 볼 때 그 색대비를 신경쓰며 보게 될 것이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변화가 나타나게 된 것이니 반갑고 고맙다. 책 속에서 나방이 자신의 천적의 천적인 뱀을 닮은 몸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등장했다. 나방의 천적은 새이고, 새의 천적은 뱀이라고 나와서 또 화들짝 놀랐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땅을 기어다니는 뱀에게 잡아먹힌단 말인가! 뱀은 개구리나 먹는 줄 알았지 새까지 잡아먹다니, 갑작스럽게 뱀의 신출기묘한 능력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런 뱀을 닮은 모양새로 진화한 나방에게도 역시 박수를 보낸다. 자연의 이치란 어찌 이리 기이하고 자연스러울까! 꽃의 섹스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페로몬을 발산하는 꽃과, 종을 넘나드는 꽃의 섹스라니, 단어의 파격성도 그렇지만 꽃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인간으로 대입하면 이건 파격 그 이상이 아니던가! 인간은 왜 꽃을 좋아할까. 부드럽고 하늘거리는 꽃잎의 감촉, 도발적인 색채와 매혹적인 향기, 무엇보다 형태적인 면에서 성적 자극을 일으키는 꽃에게 우리는 매력을 느낀다. 꽃향기는 곤충이 서로를 유인하는 페로몬과 닮아 있고 곤충의 페로몬은 향수의 성분과 유사하다(꽃이 향수의 재료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즉 꽃의 형태와 색채와 향기는 인간의 성적인 충동과 직접 관련이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신의 섹스에 꽃을 이용하는 데 익숙하다. – 228쪽
물봉선과 나도송이풀과 같은 꽃들은 보기에도 너무 야하게 생겨서 차마 따서 분해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아니, 어떤 꽃이기에! 당연히 호기심이 치솟는다. 이렇게 생겼다.
이 꽃이 물봉선이고,
다시 처음 패턴으로 돌아가서 모순되고 충돌되지만 그것으로 다시 조화를 이루는 예시는 또 등장한다. 생태공원이나 호숫가의 구조물에도 방부목을 쓴다. 근처가 오염될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방부목을 없애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방부목을 사용한 이후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목재의 양을 엄청 줄일 수 있었다. 숲이 덜 파괴되게 하는 역할을 방부목이 톡톡히 해낸 것이다. – 242쪽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말은 언제나 그럴듯하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자연의 양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인간의 삶의 속도는 자연의 삶의 속도마저 뒤바꾼다. 이를테면 돼지의 평균수명은 칠 년이지만 실제로 세상 모든 돼지의 평균수명을 계산해보면 칠 개월에 불과할 것이다. 도축하기에 가장 적절한 나이가 돼지의 평균수명이다. 닭이나 소, 돼지만이 아니다. 인간이 선택한 대부분의 꽃은 씨를 맺기도 전에 잘려 꽃병에 꽂힌다. 수반 위에 아름답게 장식된 꽃은 일생의 반을 빈사상태로 보낸다. 어시장의 물고기들은 운명을 스스로 마치지 못한, 자연에서 폐기된 시신들이다. – 243쪽 자연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소비하는 현대의 삶을 조절하지 않고는 사람 사는 모순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자연과의 조화를 방해한 주범으로 지적되는 게 과학이나 물질의 발전이지만 따지고 보면 과학적인 방법 말고 인간이 자연과 조화할 수 있는 길은 쉽게 찾아질 것 같지도 않다. 이를테면 화석연료를 대치하는 새로운 에너지원은 과학적 발전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몽상에 불과하다. 이제 과학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아마 과학기술의 최종 발전 단계는 자연을 가장 적게 소비하는 방법을 찾는 길이어야 할 것이다. 그 길은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로 이어질 것인가? – 244쪽
책의 디자인이 무척 예쁘다. 띠지의 꽃분홍색이 책을 더 빛나게 해주는데, 띠지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바로 분리해버리니 그건 시각적으로 꽤 아쉬웠다. 사이사이 속표지의 어지러운 도면들도 분위기에 걸맞는 연출을 해주어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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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너 정말 기발한 상상을 하는구나, 너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대체로 어린이들은 기발한 생각을 잘해낸다. 그런데 왜 성장해 나가면서 점점 그 능력은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어린이는 자신이 경험한 세상의 폭이 좁기 때문에 자신의 관점 - 이는 대체로 어른들이 생각해낼 수 없는 것들이다 - 으로 자신이 보는 세상을 대체하려 때문에 그런 현상이 잘 일어난다. 하지만 어린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세상의 넓이도 넒어지고 지식의 깊이도 깊어지면서 언어로 그 대부분의 것을 대체할 수 있고 눈앞의 현상에 대해서도 논리적인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러기도 귀찮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풍부한 상상력을 뽐내며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어서도 그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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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송님의 목수일기는 읽은지가 제법 오래된 책이다. 시골에 낙향한 목수인줄로만 알고 책을 읽었고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상상목공소에 실린 프로필을 보니 그렇게 단순한 분은 아니셨던듯. 어째 목수치고는 글이 참 때깔난다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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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목공소. 어느 목수의 예술적인 도록…
스티브 잡스를 필두로 하여 창의력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수없이 많다. 이제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등의 교육산업의 종사자들 마저도, 창의력을 외치고 있다. 수사적인 문제를 떠나서 이제 창의력은 생존을 위한 방안이 되어버린 것이다. 스티브 잡스를 벤치 마킹을 하는 책들이 수없이 많이 나오고 있고, 그의 비밀을 밝힌다는 애기들은 수없이 출판되고, 끊임 없이 판매가 된다. 그리고 EQ를 개발하는 학습을 유치원부터 시작을 하고 있고, 대학은 물론 취업의 면접의 자리에서도 창의력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시점에 재미있는 책이 한 권 나왔다. 김진송의 <상상목공소>. 김진송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을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자기는 목수라는 타이틀을 들고 세상에 나와서는 <서울에 댄스홀을 허하라>를 보여주고 다시 <목수일기>로 초대박을 낸 작가이다. 그가 이번에는 창의력이라는 민감함 주제의 글을 책으로 만들어서 우리 곁으로 다시 왔다. 이책을 처음 받아본 느낌은 사진이 많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전시회의 도록을 이렇게 만든다면 도록을 사는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겠다는 것이다. 인문학 서적에 비해서 많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지만, 반대로 단점으로 보 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사진 한장은 작품 하나이다. 저자가 사진의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든 생각 그리고 상상의 방식을 덤덤하고 깔끔하게 정리해낸 것이 책의 메인 텍스트이다. 이렇게 본질적인 텍스트만으로 접근을 한다면 어느 목수의 자랑질을 위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랑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책의 부재, 상상력과 창의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것이 가능해진다. 목차는 6단계로 구성이 된다. 1장 움직이는 이야기 2장 문명의 이빨 3장 상상의 웜홀 4장 진화와 상상력 5장 눈먼 기계공 6장 경험과 지식 구성이 6단계라고 해서, 단계를 밟아서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6개의 큰 주제를 만들어 낼 뿐이다. 단계별 주제를 순차적으로 읽어내면서 저자의 창의성의 개발하는 스텝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스텝을 보면서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중 기계에 대한 이야기를 밑줄을 그어보면 기계의 진화는 유기적 섬세함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단순화시키는 데 걸맞게 이루어졌다. 우리는 이것을 효율성이라 부른다. 기계의 진화는 삶의 양식까지 변화시켰다.” 이 문장에서 저자는 기계와 인간의 작업을 비교를 통해서 인간에게는 상상력과 유연함이 존재를 함으로서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즉 인간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창의력을 개발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을 시켜준다. 책에서 보여지는 김진송의 작품 하나하나가 작가 자신의 상상과 창의력을 발전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 필요하다라고 판단이 되거나 혹은 만들어 보고 싶다는 물건을 전형적인 발전적인 단계를 통해서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단순히 수사학적인 상상과 크리에티브가 아닌, 한발 더 발전하는 형태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이 매우 인상적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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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이 어렵거나 문제가 있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