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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몇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이 책을 두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이 책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이렇다. 총 10부로 구성된 650쪽 정도의 책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백의 그림자'란 소설에 대한 평론가 신모씨의 작품해설 방식을 차용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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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가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유일 최선의 경제체제인가 따져보면 그것에 대해 쉽게 “yes”라고 답변할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어떻게 운영되느냐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안정을 위협하는 제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계속 존속하고 있는 것은 故 로버트 L. 하일브로너가 “역사에서 자본주의가 차지하는 독특함은 그것이 끊임없이 스스로 변화를 발생시킨다는 점”1)이라고 말했듯이,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지속적으로 변화/적응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진화가 아니었으면 1929년 대공황 때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하워드 블룸은 “책의 구성과 내용 일부는 한국적 상황에 맞춰 재구성되거나 일부 축약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감안하면 다소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해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1929년의 대공황에 대해 그는 경제학자들이 경제대공황에 대해 말할 때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긴축통화 정책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들은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초래한 것은 바로 미국의 통화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1920년대 말 이루어졌던 대출금리 인상, 그리고 그 이후에 발생한 사건들은 훨씬 더 큰 규모의 변화, 다시 말해 진화생물학자들이 ‘하나의 표현형(phoenotype)에서 다른 표현형으로의 변화’라고 부르는 생물학적 대변화 과정에 나타나는 일부 증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달리 설명하자면, 세계경제대공황은 불안의 플라이휠(flywheel)이 앞으로 한 바퀴 전진하는 현상, 그리고 용도변경 진자가 뒤에서 앞으로 한 번 이동을 하는 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 수 있다.2)라고 하여 일부 희생자를 내세워 경제대공황의 책임을 물었던, 기존의 경제대공황에 대한 해석에 반기(反旗)를 들고 있다. 나아가 감정, 인식, 열정, 영혼, 이 모든 것들이 영혼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보이는 자본주의 경제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에너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3)이라고 하여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원동력을 아예 자유무역, 국제적 노동 분업, 개방된 자본 시장과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감정, 인식, 열정, 영혼과 같은 정신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1929년의 대공황이나 2007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와 같은 경제 붕괴는 일부 악당들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신용 제도나 모기지 같은 것이 잘못되어서 유발(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타고난 생물학적 유전자에 경제 붕괴를 유발하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 붕괴를 몰고 오는 것은 군중의 인식 변화를 촉발시키는 장치인 ”군중 인식 엔진(mass perceptual engine)” 때문이다. 경제 붕괴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끝없이 찾아 헤매는 우리 유전자 속 탐색엔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떠한 문제를 직면하고 그 문제의 돌파구가 필요할 때에, 그 문제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초월엔진(transcendence engine)”이라는 것이 작동되는데, 바로 그 초월엔진에 의하여 경제는 붐이 일어나기도 하고 붕괴4)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영속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즉, 탐욕스러운 야수 같은 기업가들이 상상력과 창의력에 기반을 둔 혁신을 이루면서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의 엔진을 꺼뜨리지 않고 이끌어 왔고, 또 앞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고도 사회에는 전혀 기여하지 않고, 보통사람들을 종종 파멸로 몰아놓는 ‘강도 귀족(Robber Baron)’에 대한 공격에는 제재를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보다 잘난 사람들의 불행에 더 큰 행복감을 느끼는 우리 보통사람들의 심리적 하수구를 열어놓는 배려도 빠뜨리지 않았다. 즉, 저자가 허용하는 선은 거기까지만이다. 오히려 저자기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부자가 밉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질이 향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혁신가들을 추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더 저렴하면서도 더 좋은 품질의 상품을 제공해주기 위하여 산업계 통합을 추진하는 기업가들을 추방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 나보다 더 부자가 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질 상품을 추방할 때에, 그 부자들이 만드는 품질이 좋은 상품까지 함께 추방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5)라고 하는 것만 보아도, 결국 도마뱀 꼬리 자르듯 기업가를 “강도귀족”과 “혁신가”로 구분하고, 그 중 “강도귀족”을 자본주의의 존속을 위한 희생양으로 우리 같은 보통사람에게 내어주어 충분히 복수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일종의 영구기관(永久機關)처럼 작동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으로 볼 때 경제 위기는 인간의 유전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니 효율만 높다면 록펠러나 J.P.모건처럼 흡혈귀 취급 받는 기업가도 그 수단이 얼마나 잔혹한가에 관계없이 혁신가라는 미명(美名) 아래 보호해야 한다는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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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블룸의 '집단정신의 진화'를 읽은 지 오래되어 내용은 거의 잊었지만 저자의 이름은 기억하는 걸 보면 꽤 흥미로웠나 보다. 이 책은 60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두께를 자랑한다. 그마저 일부 편집되었고 주석과 참고문헌은 생략했다고 하니 읽기에 쉽지 않아 보이지만 저자의 열정이 거침없이 느껴져서인지 단숨에 흥미롭게 읽었다. 내친김에 블룸의 첫 작품인 '루시퍼원리'도 도서관에서 찾아 읽었다. 블룸의 책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우선 과학적 원리-진화와 초개체, 복잡성, 네트워크 원리 등 -를 차용해 자신의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를 층층이 구조물로 쌓아가면서 다양한 사례들로 살을 덧붙이고 있다. 여기에 담긴 지식의 폭과 양, 깊이는 입체적이라 할 만큼 다면적이면서도 굉장히 해박하다. 국내에 소개된 세 번째인 이 책은 과학 저술의 영역에서 한 발 벗어나 자본주의라는 경제학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물론 그의 글쓰기 스타일까지 달라지진 않아서 일관된 구성과 문장은 여전히 열정적인 블룸 스타일이다. 뛰어난 과학 저술을 남겼던 작가들이 경제나 사회현상에 관심을 갖고 책을 내는 경우가 드물진 않다. 최근 매트 리들리의 '이성적 낙관주의자', 제프리 밀러의 '스펜트' 같은 책은 진화론- 주로 진화심리학 -을 바탕으로 세계상을 새롭게 정립하거나 마케팅의 영역까지 설명하려 시도하고 있다. 흥미롭긴 하지만 그들의 뛰어난 과학저술에 열광했던 독자에겐 다소 실망스런 전향일 수도 있다. 그에 비해 블룸의 변신은 그리 놀랍지 않다. 그의 논리는 처음부터 세속적이었으니. '루시퍼원리'의 머리말은 윌슨이라는 과학자가 썼는데 저자의 책에 대해 '읽고 믿어라'가 아니라 '읽고 생각하라'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매우 적절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블룸이 자신의 이론을 '과학원리'로 혹은 세상을 움직이는 ‘보편원리’로 주장하고 또한 독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더라도 그 경계를 구분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분명 그의 전작들은 놀라울 정도로 해박한 과학적 사실들을 인용해 구성한 것이긴 하지만 과학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세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기 위해 보편적인 원리로 내세운 다소 추상화된 주장이기 때문이다. 블룸이 이런 원리를 자본주의라는 이념 혹은 경제 체제로 확장한다는 것은 오히려 기대되는 일이다. 블룸이 세상을 보는 관점은 <루시퍼원리>에서 인간사를 설명하는 다섯 가지 개념으로 소개한 자기조직체계, 초유기체, 밈, 신경그물, 사회서열이다. 이 개념들은 여전히 유효하며 그의 관점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블룸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습관화된 관점에 문제가 있으며 이를 새롭게 구성해 바라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하고 싶어 한다. 오늘날 미국에서조차 종말론이 대두되는 자본주의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정의하려 한다. 야수성 그 자체에 가깝지만 또한 동전의 양면처럼 천재적이고 창조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자본주의에 진화와 집단, 생명집단의 붐과 붕괴, 생명 사이클의 주기적 특성을 적용해 인류 역사의 붐과 붕괴라는 독특한 현상을 설명하려 시도한다. “자연적 진동 장치가 작동된다는 것은 탐색과 소화흡수 사이클을 탄다는 의미이고, 위험한 모험을 통한 새로운 조직 창조 사이클을 탄다는 의미이다. 또한 용도변경 진자와 불안의 사이클을 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이 모든 사이클들이 진화 탐색엔진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진화 탐색엔진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세속적 창조 장치가 돌아가도록 만드는 엔진 역할을 한다.” 다양한 인물, 사건, 사물, 제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중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당시 유럽인들의 상상력과 욕망을 자극해 포르투갈의 헨리 왕자로 하여금 아프리카를 항해하도록 하였고 결국 바스코 다 가마에 의해 동방으로 가는 길이 발견되고 또한 콜롬부스에게 미친 영향은 그를 아메리카로 향하게 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등장한 거대한 대포를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쓴 책이 만들어낸 환상의 인프라에 대한, “쥘 베른이 살았던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진 러시아와 독일에서는 두 아이가 쥘 베른의 소설<지구에서 달까지>에 빠져든다....... 쥘 베른의 독일 팬과 러시아 팬-헤르만 오베르트와 콘스탄틴-은 지구를 탈출하여 갈릴레오와 뉴턴이 돌고 있다고 주장하는 공간, 즉 우주라는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타고 탈출해야 한다고 그들이 추천한 것은 바로 로켓이었다.” 이 꿈은 다음 세대에도 이어져 베르너 폰 브라운은 쥘베른, 오베르트와 치올코프스키가 쓴 공상소설을 읽으며 자랐다. “폰 브라운이 발명한 로켓은 V-2로켓이었는데, 그 로켓은 2,200파운드짜리 탄두를 영국으로 날려 보낼 수 있을 만큼 컸다.” 2차 대전 후 미국으로 간 폰 브라운은 예술가 체슬리 본스텔을 만나 우주여행에 대한 꿈을 대중에게 퍼트렸으며 곧 월드 디즈니와 만난다. “그리하여 폰 브라운이 진행하게 된 ‘우주로 간 인간’ 파트는 미래에 탄생하게 될 테마파크, 디즈니랜드가 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TV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고, “어린이들이 더 고차원적인 꿈을 꾸도록 부추겼다” 젊은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인간을 달나라에 보내는 목표를 미국이 달성해야 할 목표로 정했다. 그는 달나라에 인간을 보내는 것이 쉽기 때문에 그 목표를 정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힘든 것이기 때문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 결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쥘 베른의 터무니없어 보이던 상상은 겨우 100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 인간이 그 업적을 달성하도록 만든 것은 탐색과 통합 사이클이었다. 진화 탐색엔진, 세속적 창조 장치의 전략에 의하여 그러한 발전이 이룩된 것이다. 그러한 발전 뒤에는 붐과 붕괴 전략이 숨어 있었다. 야수성을 지니고 있지만 천재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인간 ...... 한 사람 한 사람이 쌓아 올린 환상의 인프라가 없었다면 인간이 과연 달나라에 갈 수 있었을까?” 최초의 우주비행사와 우주비행은 소련의 몫이었으니 이 이야기가 자본주가 성취한 결과라고 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환상적이고 멋진 이야기다. 최소한 우리 사회만 놓고 보았을 때 자본주의는 적절하게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아 그다지 예찬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블룸의 자본주의 예찬은 부자와 엘리트, 특권층의 탐욕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블룸은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도움이 되려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다수의 기업인과 CEO들이 탐욕 때문이 아니라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 가치를 위해 일하고 싶어 한다고 주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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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본질은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자본을 투여하여 이익을 남기지 않으면 파산하는 결과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체제라고 하겠다. 그래서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자본을 투여하면 이익이 발생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자본의 이익이라는 것이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본 잠식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간과하곤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누군가의 이익은 다른 이의 손실을 의미하는 이른바 ‘제로 섬’ 게임임을 전재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는 자본주의가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소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최선’이라고 강조한다.
‘번영과 탐욕의 두 얼굴, 자본주의는 어떻게 진화하는가’라는 부제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 자본주의는 ‘번영과 탐욕’이라는 양면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본주의의 ‘탐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애써 그 영향을 최소화하며, 오히려 ‘번영’이라는 결과가 그 과정에서의 모든 결함을 상쇄할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진화론은 물론 박테리아와 개미 혹은 벌들의 행동을 연구하는 생태학까지도 인용하여 자신의 논의에 끌어들이고 있다. 저자의 논리에 의해 당연한 것처럼 설명되는 방식이 나로서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인류 발생 이전의 지질학과 관련된 지식과 고대로부터 자본주의 이전까지 발생했던 다양한 사례들은 저자의 논리 안에서 철저히 자본주의의 속성과 연결시키는 것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상품이 개발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과정에서 희생당하거나 손해를 본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지극히 결과론적인 서술만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본질적으로 자본주의는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이익이 집중되면서,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리하여 저자의 관점은 과거 소수의 20%가 지닌 경제력이 다수의 80%의 경제력과 비슷하다는 ‘20/80 법칙’이 자본가들의 탐욕에 의해 ‘10/90’의 단계를 넘어서, 이제는 ‘1/99’로까지 해석되고 있는 불평등한 현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번역본의 제목으로만 보자면, ‘번영과 탐욕’으로 비유되는 ‘천재 자본주의’와 ‘야수 자본주의’의 두 측면을 적절하게 비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제는 자본주의라는 ‘야수의 천재성(The Genius of The Beast)’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즉 자본주의는 야수(The Beast)이지만, 그 천재성(The Genius) 때문에 지속될 수 있다는 의도로 집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은 철저히 소수의 자본가들의 역할을 긍정하며, 그들로 인해서 손해를 보고 파산한 이들도 적지 않지만 ‘천재성(The Genius)’만큼은 인정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의 관점에서는 번역본의 부제처럼 ‘번영과 탐욕’이라는 자본주의의 상반된 두 얼굴에 대해서 공정하게 다룰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마도 저자 역시 사업가로서 소수의 자본가에 속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긍정하면서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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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발전하면서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자본주의체제가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얼마 전에 읽었던 <독식비판; http://blog.yes24.com/document/3849763>의 핵심내용도 자본주의 체계는 근본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어 분배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담고 있어 새로울 것도 없는 공산주의적 시각이라고 보였습니다. 번역을 하신 분들이 특이하게도 저자의 글을 읽기 전에 옮긴이의 글을 먼저 읽도록 배려한 것은 아마도 642쪽에 달하는 본문의 두께를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읽기 전에 마음에 갈무리할 점을 미리 정리해두었다고나 할까요? 그 가운데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저자의 핵심을 잘 정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인용하려 합니다. “그런데 역사가 증명하듯이 자본주의는 그리 호락호락한 체제가 아니다. 그동안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전체주의 등 수많은 체제들이 자본주의를 뿌리째 흔들려고 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상상력과 창의력에 기반을 둔 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자본주의는 온갖 위기를 용케 뚫고 지나왔다. 탐욕스럽지만 창조적인 기업가 같은 야수(beast)들이 자본주의의 엔진을 꺼뜨리지 않고 이끌고 온 것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일찍이 자본주의 정신은 바로 야수정신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5쪽)” 저자 하워드 블룸은 자본주의가 위기 때마다 무너지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진화해 온 것은 기존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욕구, 고통, 열망 등과 같은 감성적 요인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학계에서 “21세기의 아인슈타인, 다윈, 뉴턴, 프로이드”라고 불리는 저자의 독특한 경력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저자의 특이한 경력은 그의 천재성과 함께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통찰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프롤로그 부분에 축약되어 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은 때로는 훌륭하게 움직이지만 때로는 서툴고 어설프며 삐거덕거리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나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가 왜 그토록 결함투성이가 되었는지 그 원인을 파헤쳐보고자 한다.(16쪽)” 자본주의의 야수적인 면모는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신진대사를 하는 괴물, 즉 서구문명을 뜻하는데 자본주의와 서구시스템 안에는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능력이 감춰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저자의 놀라운 능력은 모두 10장으로 나누어진 주제를 설명하고 있는 독특한 예시들입니다. 예를 들면, 1부에서는 경제의 부침을 롤러코스터와 비유하고 있는데 이를 부침의 흐름을 붐과 붕괴로 나누고 있습니다. 이어서 2부에서는 이를 생태계와 우주로까지 확대비교하고 있습니다. 즉, 붐과 붕괴는 생물체의 유전자에 숨겨져 있는 비밀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붐을 타면서도 붕괴를 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점도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인류가 발전을 이끌어온 동력이 유전자에 숨겨져 있다는 점은 제2부에 있는 “신세대는 유전적으로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편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붐을 넘어 붕괴를 맞는 순간 집단자살을 시도하는 생물체와는 달리 인류는 미지의 세계로 나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영화 <스타트렉>은 이런 인류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어 인기를 끌었다고 봅니다.
인간은 두뇌의 극히 일부분만을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구에서 발전해온 자본주의는 한국, 대만, 태국, 중국 등 전세계로 확산되어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본주의가 널리 확산된 것은 바뀐 생활방식이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자본주의가 때로 잔인한 짓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감성과 결합하여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처럼 창의성과 도덕성 측면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기업들을 깨워서 자본주의를 제대로 발전시키고 나아가 우리 삶을 더욱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점은 이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이 세계경제를 논하는 텍스트에서 자연스럽게 인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1973년 박정희대통령이 주도하여 일으켰던 철강산업이 실패할 것이라는 선진국의 우려를 보기 좋게 지워버린 것을 “결단력, 인내력, 비전을 향한 절대적 헌신, 그리고 습관의 비계였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책을 마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한계는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유전적 소인을 발전적으로 활용하여 확대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을 적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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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한 번 가진 생각은 습관의 비계에 갖혀 좀 처럼 버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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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용상 두 개의 제목을 가질 수 있다. '야수의 천재성'과 '자본주의의 천재성vs야수성'이 그것이다. 여기서 '야수'는 자본주의,특히 서구 자본주의를 일컫는다. 따라서 이 책은 서구 자본주의의 야수적 본성과 세계 역사를 이끌어온 천재적 본성을 함께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서구 자본주의의 야수성은 무엇이며 천재성은 또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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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탄생하고 농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 불편함을 덮게 되었다. 수렵을 통한 불안정한 수확에서 농업을 통해서 보다 안정적인 수확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생산력이 증가하게 되었고 생계에 초점을 두었던 사람들은 차츰 경제라는 것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잉여생산력을 보다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간단한 물물교환에서부터 시작하여 거래가 활성화되고 화폐의 등장으로 상공업이 발달하게 되면서 점차 경제의 규모는 커지게 되었고 이윽고 하나의 체제로써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것이 경제의 시작이다. 경제체제는 역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중상주의, 중농주의 등의 고전적 체계를 거치면서 보다 기능성이 있는 경제체제로 진화되었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등의 정치적 체제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그리고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하게 된다. 서양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체제는 급속도로 확산이 되어 동양의 사회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다. 서양의 변화가 동양의 변화에 영향을 주게 되었고 이것은 지금의 경제 흐름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발전하였던 자본주의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라는 큰 도전을 받게 되었다.
'천재 자본주의 vs 야수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탄생, 발달과정을 다룬 책이다. 자본주의를 경제적 측면 뿐 아니라 생물, 인류, 역사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특징을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살펴보면 제목에서부터 자본주의의 특징을 느낄 수 있다. 천재 자본주의의 의미는 지금의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자본주의체제에 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전체주의 등의 다른 체제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경제 효율성을 자본주의가 해냈기에 지금의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야수 자본주의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저자는 서구문명을 야수라고 표현한다. 맞는 말이다. 현재의 경제성장의 중심은 미국, 유럽등의 서양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개발도상국, 제 3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게 한다. 그것을 고른 경제성장이라는 말로 포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의 행위는 한 마리의 야수와 같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다른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하게 덤벼드는 야수이다. 그 예가 지금의 세계금융위기이다. 미국, 유럽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모하게 시작했던 서브프라임모기지론의 부실화로 인해 금융위기를 겪게 되었고 그 여파는 그 나라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피해가 확산 되었기 때문이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다양한 분야에서 자본주의의 특성을 찾아낸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경제의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는 사이클은 인간의 DNA속에 내재되어 있는 박테리아가 지니고 있는 붐과 붕괴의 사이클이 작용하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경제대위기는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던 내부스위치의 작동으로 인해 스스로 자신을 공포로 밀어넣어 붕괴가 발생하는 현상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런 사이클은 인간에서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본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자본주의라는 것 자체가 인간이 만들고 발전시킨 체제이기에 인간의 노력으로 자본주의를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밖에 그리스 철학자들의 지식산업에서 부터 현재 미국 자동차 산업 붕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건들을 자본주의와 연결시켜 자본주의가 그 사건들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발전되어 가는지 재미있게 구성하여 독자들에게는 고리타분할 수 있는 자본주의 체제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다양한 관점에서 책을 구성해서인지 읽고 있노라면 역사책을 보는 듯한 느낌과 마케팅 책을 보는 듯 등의 여러가지의 느낌을 받는다. 독자들이 책 한권을 통해서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맘에 드는 구성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 저자는 천재 자본주의 VS 야수 자본주의라고 하였지만 책의 내용은 일방적으로 자본주의의 천재적인 면만 전개된다. 자본주의를 비교 하고자 만든 책일거라 생각했는데 책을 계속 읽으면 마치 자본주의 예찬론자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양한 인간의 행위, 그것에 대한 동기, 욕망 등이 자본주의와 연결되어 구성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치 인간이 자본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현재 시대를 흔히 '물질만능주의' 시대라고 한다. 자본주의가 가지는 자본의 중요성이 잘못된 점으로 부각되어 저런 폐해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가 이룩한 것들이 너무나 많고 현 시점에서 이 체재를 대신할 만한 체제도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자본주의를 살피고 올바른 변화로 나갈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지본주의가 우리의 노력의 여햐에 따라 천재가 될 수도 있고 야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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