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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단순한 양육서가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글쎄. 단순히 호랑이처럼 엄한 엄마라는 의미보다는 호랑이처럼 강한 중국, 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걸로 이해했다면 내가 과한 걸까? 중국계이든 유대계이든 미국인은 미국인일 따름이다. 더군다나 부계는 유대인이므로 만약 그녀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엄마라면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미국인이면서 유대인이면서 중국인이다, 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너희들은 중국인이라고 한다면 그건 잘못된 거 아닐까? 팍스 아메리카나만큼 무시무시한 팍스 차이나의 그림자가 느껴졌다면 과대망상일까? 에이미 추아는 항상 ‘중국:서양’으로 논의의 영역을 설정하는데 사실 이것 자체도 문제다. ‘동양: 서양’ 혹은 ‘중국:미국’으로 비교의 대상을 설정하는 건 어느 정도 타당할 수 있지만 ‘중국:서양’은 비교 범주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동등한 수준의 대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 책이 논쟁거리가 된다면 그 자체로 중국은 서양 전체와 맞먹는 어떤 거대한 파워 내지는 나라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된다. 에이미가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논쟁을 하면 할수록 중국이 더욱 부각될 따름이다. 아마 이것이 미국에서 논쟁이 되었다면 그들 속에 잠재된 중국 공포증도 한몫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중국 것이 위대하다, 중국 것이 훌륭하다, 중국이 최고다, 뭐 이런 건 좋게 말해 중화사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또 하나의 제국주의의 등장을 부추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더군다나 중국처럼 아직 민주화도 안 된 나라의 경우에는. 중국이 제2의 나치 치하의 독일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소위 예일대 로스쿨 교수씩이나 하는 지성인의 사고 수준이 이 정도라면 그 위험 수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게 내 기우이거나 나의 지나친 비약이라면 좋겠지만, ‘동북공정’ 등에서 보여줬던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중국의 행태를 고려한다면 우려할 만한 건 사실이다. 난 그래서 이 책에 대해서 어떠한 논란도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 어떠한 의도이던 간에 혹은 의도와는 상관 없이 중국이 '뜨는 해'라는 걸 인정해주는 꼴이 될테니깐. 그리고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중국 공포증만 인정하는 꼴이 되고. 그러나 어쨌든 양육서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으니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일단 제목부터 무시무시하다. 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 아이들 양육을 ‘Battle’로 표현하고 있다. ‘Battle Hymn’도 무시무시하다. 군가라니. 가정이 군대고 아이 키우는게 군인 길들이기라도 된다는 건지… 그런데 에이미가 말하는 중국식 교육법이라는 것도 ‘중국식’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것이다. 나도 현재 미국에 살고 있고 다양한 이민자들과 접촉하고 있지만, 이민자들은 대개 자기가 고국을 떠나온 시점의 고국의 가치관과 인식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70년대에 한국을 떠나온 사람들은 70년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사고체계나 정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80년대에 한국을 떠나온 사람들은 80년대식 사고체계와 정서를 유지하고 있다. 에이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면, 에이미가 말하는 중국식이라는 것은 2011년의 중국이 아닌, 에이미,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부모들이 중국을 떠나올 때의 중국식이라고 말하는 게 옳을 듯하다. 그걸 현대 중국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그녀는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고, 중국 본토에서보다 필리핀이나 미국에 있던 시간이 더 길었다. 따라서 그녀가 자라면서 받아왔던 교육법도 중국식이라기보다는 이민자 가정의 교육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어느 집단이건 뿌리를 떠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더욱 강해지고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동양계 부모들이 자식에게 엄격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헌신적으로 키운 건 중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고, 다만 그걸 자기 자식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는 게 바람직한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데 이 사람뿐 아니라 이 사람의 두 딸을 인터뷰한 내용을 텔레비전을 통해 본 적이 있다. 솔직히 그 인터뷰를 보면서도 지나치게 자신감에 차 있는 엄마에 비해 두 딸은 뭐랄까, 좀 기계적이고 체념한 듯해 보여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가 저렇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던 인터뷰로 기억한다. 암튼 저자인 에이미가 중국계 이민자라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뭐랄까? 에이미가 인식을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교육을 통해 미국에서 중상류층에 진입한 이민자들이 보이는 조급함, 으시대고 싶어하는 마음이 모두 느껴진다. 거기에 앞에서 언급했던 좋게 말하면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 나쁘게 말하면 팍스 차이나 식의 어떤 기운을 포함해서. 그리고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자기 방식을 모두에게 대입시키려는 방법도 문제다. 가정은 군대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군인이 아니다. 그리고 솔직히 에이미 추아에게서는 어떤 강박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녀 스스로도 자기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럴 시간도 없고 그것 자체가 사치라고 느껴진단다. 그건 이민 2세로 살았던 그녀에게는 당연할 수 있지만, 그걸 자녀 세대에게 그대로 강요하는 건 폭력으로 보인다. “엄마 때는 이런 것 꿈도 못 꾸었어. 넌 얼마나 복이니?” 이런 식의 잔소리는 우리 세대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던 이야기인데, 사실의 정당성이나 타당성을 떠나 이런 잔소리들이 듣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와 부담이 되는지는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결국 그런 강압이 둘째 룰루와 크고 작은 마찰을 만든다. 소피아가 룰루만큼의 갈등이 없는 건 그 아이의 성격이거나 맏이이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그 아이가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안으로만 담아 두고 있다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크게 터질 것 같아 걱정도 된다. 자녀들이 모두 딸이기 망정이지 만약 아들이었다면 갈등이나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심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무조건 에이미의 교육 방식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자체로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황금률 같은 교육방법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이들의 성격이나 취향, 관심사에 맞춰 적절한 교육방법을 택하는 게 가장 좋다고 본다. 키위 알러지가 있는 아이에게 키위에 비타민 씨가 풍부하다고 무조건 먹이면 안 되는 것처럼. 암튼 이런 저런 걸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건 부모의 욕심으로 무조건 아이를 끌고 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 아닐까? 어차피 아이는 부모와는 별개의 인격체이고, 그 나름의 인생을 살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으니깐. 마찬가지로 내가 이런 식으로 자라서 성공했으니 내 자식도 이런 방식으로 엘리트로 만들겠다는 생각이나, 나도 에이미처럼 자식들을 키워서 우리 아이도 엘리트로 만들겠다는 생각에도 반대다. 엘리트로 키우는 게 자녀 양육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덧붙임] 이 책에서 ‘제드’로 가끔 등장하는 남편이 Jed Rubenfeld이다. 그게 누구냐구? 한국에서『살인의 해석』으로 번역된 The Interpretation of Murder의 저자가 바로 에이미의 남편인 거다. 그 책을 무척 재밌게 읽고 원서로도 사서 읽었던지라 엄청 신기하면서도 반가웠다. 세상은 참 좁고, 남녀간이란 정말 알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구. 암튼 에이미가 엄청 다혈질에 불같은 성격인 것 같던데(자기 목소리 엄청 크고 소리 지르면서 싸우고 물건도 막 집어던진다고 써놨다. 더군다나 둘째딸 룰루도 엄마랑 성격이 판박이인 듯하다 --;), 불쌍한 제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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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마더....호랑이엄마다. 제목만 봐도 대충 감이 잡힌다. 그동안, '칭찬'으로 아이를 키워야한다는 수많은 교육서들을 읽어왔기에 살짝 호기심이 생기는 책이었다. 나는, '칭찬'과 격려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책을 덮은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을 말하자면, 소피아와 룰루, 이 두 아이가 각자 다른 성향을 보이면서 그녀의 교육법에 두 가지 결과물을 내놓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책이 아닌가 싶었다.
에이미 추아의 교육법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나는 추아처럼 아이의 교육에 온힘을 다 쏟아부을만큼 (물론 추아는 자신의 일도 능숙하고 유능하게 해내는 여성이다) 열성적이지 못하다. 또한 그럴 의지도 거의 없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가 비판한 서양인부모처럼 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가 어느 분야에서건 두각을 드러냈으면 좋겠고, 또 그러기위헤서는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지도 알고 있기에 적어도 내 품안에 있는 동안만큼은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싶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서 한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어느 교육법이든 거기에 딱 들어맞는 교육법은 없다는 것이다. 소피아는 추아의 교육에 잘 따라준 사례로 엄마의 정보와 열성이 아이의 재능을 일깨우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룰루는 추아의 교육과는 맞지 않는 아이였지만, 적어도 룰루가 어떤 일을 해냈을 때 맛보는 성취의 기쁨을 알게 되었으므로 다른 일(예를 들자면 테니스)을 했을 때도 어떻게 해냐 할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아이가 성취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는 것', 그것이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이다라는 결론이다.
추아의 교육법이 왜 화제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한국과 달리 미국이라는 나라의 분위기가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거기에 따른 결과에 부모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적어도 내가 아는 몇몇 지인들도 아이에게 추아 식의 교육을 한다. 아이가 배울 것을 정해주고,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도달할 수 있도록 채찍질을 하며 아이보다 더 전문가적인 식견을 갖기 위해 부모도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아이를 지도한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더 맞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내 아이에게 하고 있는 교육방법에 추아 식의 교육방법을 조금 첨가해볼 생각은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칭찬과 격려만으로는 점점 뭔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미 추아의 교육법에 대한 혹평과 호평 속에서, 다른 사람의 교육법을 담은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나는, 그들의 교육법을 그대로 따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우리 아이와 맞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교육에서 뭐가 부족한지 참조하고 싶기 때문에 읽는다. 그러니, 에이미 추아의 교육법이 좋다 나쁘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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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서 시장은 2011년을 에이미 추아의 저서 『타이거 마더』가 불러일으킨 교육 논쟁으로 시작했다. A보다 낮은 점수는 용납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교육철학으로 전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화제가 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발 빠르게 출간되어 한동안 자녀교육 분야에서 베스트셀러 이삼 위를 맴돌았다. 에이미 추아(1962년생 호랑이띠, 중국계 미국 이민 2세대)는 우리나라에도 저서 『불타는 세계』와 『제국의 미래』가 번역돼 있을 만큼 저명한 석학이다. 추아 교수는 오랜 중국 역사와 동양적 가치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자랐으며, 오바마가 첫 흑인 편집장을 지낸 사연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을 지냈고, 월스트리트의 로펌에서 일하다가 남편이 종신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같은 예일대 로스쿨에 합류했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만난 남편 제드 러벤펠드는 유대인이며 『살인의 해석』의 저자로 이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가이다. 『타이거 마더』가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이런 명문 집안의 세계적인 석학이 자율성을 강조하는 미국의 교육철학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며 저물어 가는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타이거 마더’ 교육법이 자녀를 몇 시간씩 방에 가두며 피아노를 연습시킨다는 악명 높은 강남 아줌마들의 교육법을 말하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추아 교수의 교육관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그의 고민부터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부자는 삼대를 넘기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밤잠을 설치며 걱정하는 세대가 바로 이민 3세대다.(소피아와 룰루가 해당된다.)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중상류층의 호사를 누린다. … B+만 받아도 상을 받는 부잣집 아들딸과 사귄다. … 값비싼 브랜드 옷을 입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마지막이자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미국 헌법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부모의 말을 거역하거나 진로에 관한 조언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모든 요소들은 이 세대가 쇠퇴를 향해 내리막길을 걷고 있음을 가리킨다. … 나는 아니야! 내 딸을 유약한 특권층 아이로 키우지 않으리라, 내 가족이 몰락하게 두지 않으리라. (『타이거 마더』 31-33쪽) 지금 한국의 엄마들도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에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자신은 못 배웠어도 열심히 일해서 자녀들은 모두 대학에 보냈으며, 우리는 집이 가난했든 부유했든 간에 대체로 부모의 기대에 부응했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도 학업과 재산을 어느 정도 성취한 세대다. 그러나 비교적 물질적으로 풍요한 환경에서 태어난 3세대 자녀들은 조부모나 부모님 세대처럼 어려운 시대나 가정환경에서 느끼는 절실함 같은 건 모른 채 게임과 브랜드에만 푹 빠져 있고, 심지어 과외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를 모른다. 2세대 부모는 이렇게 철없는 아이들을 위하여 일명 헬리콥터맘이 되어야 할지, 아니면 대안교육이라도 찾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게다가 이 베이비붐 세대는 자녀가 한두 명에 그치기 때문에 교육에 대해 가장 고민을 많이 하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에이미 추아는 이런 양분법의 한 극단을 대표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녀가 경험이 전하는 진짜 교훈은 첫째로 교육법이 아이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적용돼야 한다는 점이다. 『타이거 마더』는 내성적이면서 책임감 강한 맏딸 소피아를 ‘슈퍼 키드’로 키운 ‘강한’ 엄마의 성공담이기도 하지만, 자기주장이 강한 막내딸 룰루에게 같은 교육법을 적용했다가 아이의 반항심을 키우게 된 실패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천사의 얼굴을 한 야생마라네.” 막내딸 룰루가 딱 그렇다. 나는 우리 룰루를 떠올리면 사나운 야생마를 길들이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심지어 그 애는 배 속에 있을 때에도 세차게 발길질을 해 대서 내 배에 자국이 남을 정도였다. (『타이거 마더』 21쪽) 가장 중요한 건 두 딸이 모두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했다는 점이다. 소피아는 카네기홀에 데뷔한 날을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로 기억하며 엄마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엄마의 “365일 헌신과 오뚝이 정신, 술책으로 버텨야 하는 끝없는 총력전”에 지쳐 매일 집안에 고성이 터지곤 했지만, 밤이면 “룰루는 엄마 침대로 왔고 서로를 끌어안고 간질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남편은 서로를 죽일 듯이 위협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어느새 침대에 함께 누워 있는 모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내딸 룰루가 어느 날부터 밤이 되어도 더 이상 엄마와 화해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에이미 추아는 자신을 나무라는 외할머니에게 엄마는 나보다 더하지 않았느냐고 맞받아치며 멈추지 않았다. “걔는 성격이 달라. … 난 룰루가 걱정돼. 걔 눈빛이 어딘가 이상하단 말이야.”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의 헌신과 사랑을 인정한다면 아이는 거기에 보답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엄마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엄마는 거기서 멈춰야 한다. 룰루는 결국 자신이 바이올린을 사랑하지만 거기에 매진하지는 않겠다고 선언했고, 지금은 ‘스스로’ 선택한 테니스에 열중하고 있다. 두 번째 교훈은 ‘타이거 마더’ 교육법을 채택한다면 엄마도 아이와 함께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집에서 본인은 책 하나 안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타박하는 엄마들을 향한 경고다. 에이미 추아는 소피아의 피아노 선생님과 룰루의 바이올린 수업에 감화되어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직접 관련 서적을 찾아 열심히 공부하여 자녀들 곁에서 어느 부분을 어떻게 연습해야 하는지에 대해 놀라우리만치 전문가적인 조언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녀가 자신의 교육 방식에 자부심이 강한 이유는 그만큼 확실한 성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 핵심 교육철학은 뭐든지 잘해야 재미있고, 잘하려면 자신이 잘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만큼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하는데, 이것은 아이가 스스로 하지 않기 때문에 엄마가 잘할 때까지 시켜야 한다는 것. 그런데 서양 엄마들은 너무 아이의 감정을 살피느라 도중에 포기하고 자신은 마치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요가 학원에나 간다는 것이 그녀의 비난이다. “어느 쪽이 진짜 아이를 위한 길인가?” 소피아가 5학년 때 곱셈 빨리하기 시험에서 2등을 한 적이 있다. 1등은 한국 학생이었다. 그러자 타이거 마더는 초시계를 들고 매일 밤 100문제씩 풀게 하여 다시는 1등을 놓치지 않게 했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소피아는 수학을 가장 좋아하는 과목 가운데 하나로 꼽게 되었다. 타이거 마더는 또 서양 엄마들이 자기 아이의 감정이 다칠까 봐 뚱보의 ‘뚱’자로 못 꺼내며 그 결과는 비만과 열등감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에이미 추아의 방법론은 확고한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직해라. 겸손해라. 검소해라. … 언제나 가장 먼저 가거라. 그래야 겸손할 기회를 얻는 법이야.” 저자의 부모님이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들이다. “불평하거나 변명하지 마라. 학교에서 억울한 일이 생기면 그냥 두 배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두 배로 더 착하게 행동해서 너 자신을 증명해라.” 그녀가 자녀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시키기로 작정한 이유는 클래식 음악이 위계질서와 전문성에 대한 존경, 고상함 등과 상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대학을 가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 미국은 또다시 소피아가 예일대와 하버드에 동시 합격했다는 소식으로 떠들썩하다. 소피아가 어느 학교를 선택할지, 그리고 정치학을 공부할지 문학을 공부할지 궁금하다. 또 줄리아대 최고 교수가 직접 자기 제자로 삼고 싶다고 했을 만큼 바이올린에 재능을 보였던 룰루가 사춘기를 넘기면 다시 바이올린을 잡을지, 아니면 새로 시작한 테니스로 또 한 번 두각을 나타낼지도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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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을 번역본이 아닌 원서로 보았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읽은 책에는 새로 추가된 afterwords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서의 제목은 '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 afterword에 보면, 중국에서 이 책이 '미국에서 엄마는 아이를 어떻게 교육하는가에 대한 정석'인것처럼 광고가 되고, 제목도 변형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한 인터뷰를 추가했는데, 여기에서 몇가지를 이야기 하자면, 1. 이 책은 memoir에 가깝다. 누구에게 지침을 주려고 쓴 책이 아니다. 2. 어찌되었건 '읽기 즐겁게 하기위한 장치들' 때문에 다소 과장되거나, 단정적으로 표현되는 문장들, 각색된 상황들이 다소 있고, 이런 것들이 에이미 추아의 attitude로 보일 수 밖에 없게 되면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작가 자신은 이러한 상황들을 'self-parody'된 면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이 두가지가 이 책을 보고 오해를 풀 수 있었던 부분이다. 책 자체는 오히려 미국에서 더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 이유는 추아가 전반적으로 Western mother와 Chinese mother로 명명한 양육방식을 비교하는 구성을 책을 써내려갔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문체가 공격적이기 때문에 다소 과장된 문장들에서 보여지는 문화적 차이를 서양사람들은 당혹스럽게 느꼈고, 이에 대한 질문 및 반론들이 논란의 대부분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작가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하나의 '지침'으로써가 아니라 본인의 '고백'을 기술한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동양에서는 오히려 하나의 '상품'으로, 한국사람들이 원하는 '고학력'을 이룬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자신과 비슷한 레벨로 키워내는가'에 대한 지침서 인것처럼 포장되어 광고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도 그렇게 접하게 되었었고, '이해가 안가거나 싫더라도 읽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오해가 풀려서 좋았다. 거부감이 생길 수 있는 attitude는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그 사람의 방식이고,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렇게 끈질기게 한 가지 태도를 고수하면서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이 존경스럽다고 생각했다. 고집스럽게 아이와 부대끼며, 작가 자신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하는 부분이 나는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하면 아이가 저렇게 된다' 식의 광고성 책은 절대로 아닌 것이다. memoir이기에, 그리고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오히려 강하게 이야기 했기 때문에 이 책은 의미가 더 크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한계까지 밀고 나갔으며,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것을 솔직히 고백하는 과정이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부모로서 보고배울만한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혹사당한 아이들은 어떡하냐-라고 묻는다면, '혹사'라고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는 부모의 다른 하나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방식이 법적인, 윤리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라면, 그저 '다를 뿐'이라고. 조금은 다른 부모를 만나 아이들이 힘든 면이 있었던 반면, 다른 아이들이 얻기 힘든 '인고끝의 성취'를 추아의 두 딸은 이른 나이부터 맛볼 수 있었다. 그건 부모가 줄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귀한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추아는 본인이 사회의 핵심으로서 일만 해도 버거울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모두 해내는 가운데 tiger mom이라고 하는 육아방식을 고수했다. 책에는 본인의 직업에 대한 고충은 하나도 나와있지 않다. 아이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야기만이 실려 있는데, 그 부분이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누가 이 책을 아이를 키우는데 지침서로 본다고 한다면 난 그러지 말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이를 키웠던 부모도 있다는 하나의 참고로 읽는다면, 읽는 재미까지 있는 꽤 좋은 책이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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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만을 보고도 아, 동양의 교육에 관한 책이구나란 느낌이 나는건.. 원제목에서도 바로 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 라고 [Tiger]들어있기 때문이다. 의역도 아닌 바로 직역되어버린 제목.. 그동안 너무나 서양식의 육아법에 대한 책들만 보다가 동양적인 느낌이나고 왠지 친숙해져보이는 육아법이지 않을까란 호기심에 책을 들추어보았다.
일찌기 우리나라도 그렇고 중국, 일본 모두 동양적 육아법에서는 엄하게 키우고 헌신하는 부모의 모습이 거의 보편적이었고 그에 따른 성과가 꽤나 좋았지 않은가 과연 자율성을 강조하고 각자의 독립된 인생을 강조하는 서양의 방식이 좋기만 한것일가? 이책을 읽는동안 내내 참으로 불편하기도 하고 참으로 존경스럽기도 하고 또한 이런 자신의 확실한 가치관을 가진 저자가 꽤나 부러워지기까지 하였다.
중국인으로서 이민2세대, 예일대교수, 두딸의 엄마 그녀가 자라온 환경역시 만만치 않게 철두철미 해야했으며 그러다보니 철저하게 두딸을 중국식으로 키워나가면서 아이에게 혹독하게 연습을 강요하고 딸들의 반항을 통해 매일매일이 전쟁으로 점철된 삶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그런것이 바로 아이를 위한 절대적인 철칙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포기하는법을 배우게 만들수는 없다는 그녀의 철학이 왠지 하루하루 밥먹이고 놀고 배우고 있는 우리 아들에게 나도모르게 나하나 편하자고 습관적으로 타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했던 것이다.
과연 아이를 그렇게 기르는게 딱 정답이라고 볼수는 없지만 자신이 가진 가치관으로 아이와 소통하고 그 과정에 너무나 충실했던 저자를 통해 내가 우리 아이와 함께할 멋진 인생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마지막 저자가 둘째딸의 바이올린 포기를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미국인들의 사고방식 - 하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도 엉망으로 하기 일쑤다.
나도 나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내일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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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 부모는 자기아이의 개성을 존중하고 아이가 진정한 열정의 대상을 찾도록 인도하며 그 애가 선택한 길을 지원하고 긍정적 강화 효과와 풍요로운 환경을 제공한다.' (본문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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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흥미로운 육아서 한권을 읽었습니다. 사실 육아서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운 책이라고 해야될 것 같은데요.
우연히 라디오에서 이 책이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왜 그런지 알겠더라구요. ^^;;;;
자녀존중이 육아의 기본인 미국사회에서 철저히 중국식으로 자녀양육을 한 이 책의 저자 에이미 추아. 사실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같은 동양권 엄마인 저 조차 두손 두발을 다 들 정도로 극악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정말 무섭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자녀의 일분일초까지 설계하고 확인하는 그녀의 능력. 정말 능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그녀의 딸들과 한몸이 되었더라구요. 본인도 직업이 있고( 예일대 로스쿨 교수 ㅡ,,ㅡ) 그 모든일들을 다 해내면서 또 자녀들을 위해 피아노를 배우고 바이올린을 배우는 열정적인 그녀. ㅡ,,ㅡ;;; 사실 뭘 알아야 닥달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책의 절반정도를 읽을때까지도...정말 입을 벌리고 책을 읽었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에요. 정말 한마디로 그녀는 무서운 능력자였어요.
하지만 끝까지 책을 읽다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있더라구요. 이 책의 집필과정에 그녀의 딸들이 참여를 했더라구요. 그래서 어쩌면 더 리얼한 상황묘사가 가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책을 받아들이는 저자의 두 딸들의 이야기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끝이 나지 않은 이야기...
그녀의 두 딸들은 각각 다른 성향과 재능을 지니고 있어요. 두 명의 딸 모두 음악에 재능을 보였으나 둘째딸은 엄마와의 전쟁 끝에 지금은 테니스를 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녀가 써내려간 그녀의 양육일지는 어찌보면 그녀에게는 자랑스럽기도 또 부끄럽기도 한 기억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녀의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읽다보니.. 무서운 그녀의 모습에 제 모습이 비쳐 보이는 것 같더라구요.
아직은 저 정도는 아니야....^^;;;하고 위안을 삼을지 모르겠으나. 아이가 성장을 하면서 어떤 분야에 재능을 보인다면. 저 역시 그녀같이 변하지 않으리란 장담을 못하겠거든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알파맘, 베타맘이라는 말이 주목받은 적이 있지요. 자녀들을 위한 똑똑한 스케줄러인 알파맘이던, 또 자유속에서 자녀의 재능을 발견해 주는 베타맘이던 모두 자녀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는 같을 것 같은데요.
과연 나는 어떤 엄마가 될지... 또 아이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될지.... 그래도 아직 어린 아들에게는 타이거 마더보다는 사랑스런 엄마가 되고싶습니다. ^^;; ( 저도 좀 화가나면 모진말을 일부로 하는 편인데....에이미 추아의 모습을 보고 반성 많이 했습니다. 울 쭌군이 그녀의 둘째딸인 룰루와 닮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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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아이들 교육이지만 교육에 관한 책을 읽는 그 순간 혹은 그후 며칠이라도 아이들 교육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을 반성하고 다잡게 되므로 이런 책을 보면 읽게 된다. 지금까지 읽었던 교육서들과 사뭇 분위기가 달라서 읽으면서 놀란 이 책은 중국인 이민 2세인 저자가 자신의 두 딸을 철저하게 중국식 교육으로 키웠던 이야기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되도록이면 전통적인 가부장적이고 엄격한 교육방식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자신들에게 가해졌던 부모세대의 강압적이고 수직적인 태도를 자식들에게는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이글의 저자는 중국의 전통적인 자녀양육 방식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자신의 두 딸들을 중국식 교육방식으로 키운다. 원제목이 '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인데 자신의 두 딸들에게 엄마가 정해준 목표를 달성할 때 까지 학습과 연습을 강요하고 채찍질하고 그런 과정에서 싸우고 하는 모습이 대부분 그려진다. 호랑이 띠인 이 여성은 자신의 호랑이띠적인 기질이 이러한 추진력의 기원이라고 믿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스스로를 즐겁게 '타이거 마더'라고 부른다. 저자는 사고가 아직 미숙한 어린이 또는 청소년 시기의 자식들에게 기꺼이 선택의 권리를 주는 서구식 교육방식을 단박에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아이와 다투기 싫어서 아이에게 그 선택의 책임을 돌리고 마음 편하게 나태한 엄마가 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아이의 성향을 부모가 파악하고 부모가 꼭 맞는 미래를 설계하고 그 설계에 따라 아이를 격려하고 나아가서 채찍질하고, 심하게는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도 서슴지 않는 것 모두가 아이를 위한 중국식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아직도 이런 극성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는 일부 한국 부모들에게는 위로가 되고 우쭐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이다.
중국인에게 부모란 타협할 여지가 없는 대상이다. 부모는 그저 부모이며, 자식은 부모에게 모든 것을(별로 가진 것이 없다고 해도)빚지고 있기 때문에 부모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그것이 자신의 삶을 파괴한다고 해도) 해야 한다.(p.120) 내가 만난 동양계 가정의 아이들 중에는 , 부모가 강압적이고 엄격하며 잔인하도록 요구 사항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부모에게 기꺼이 헌신하며 전혀 비통해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크게 고마워하는 아이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p.123)
이야기의 대부분은 저자가 두 딸에게 얼마나 혹독하게 악기 연습을 강요하거나, 혹은 연습을 함께 하거나 하는 내용이다. 하루에 5시간 연습, 토요일은 비행기를 타고 혹은 차로 몇시간 거리를 가서 레슨을 받고 오는 등 전쟁이 따로 없다. 입에 발린 칭찬은 절대 없으며 오직 더 나은 수준을 향한 목표제시와 잘못된 부분에 대한 지적만 이어진다. 실패는 인정되지 않고 오직 더 큰 목표를 향한 전진만이 인정된다. 당근은 없고 채찍만 있는 셈이다.
아이를 중국식으로 기르는 일은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한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서 미움을 살 때도 있으며, 쉬운 것이 하나도 없고 갑자기 쉬워지지도 않는 어려운 과정이다 중국식 양육은 365일 헌신과 오뚜기 정신, 술책으로 버텨야 하며 창의성도 발휘해야 한다.(p.192)
이런 가운데도 저자는 교수로 활동하고 책도 쓴다. 맏딸 소피아는 엄마의 인도대로 잘 따라와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한다. 둘째 딸 룰루 역시 훌륭한 바이올린 영재로 촉망받으며 줄리아드 입학을 눈 앞에 둔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서 룰루가 바이올린을 그만 두고 싶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방식대로 연습하고, 엄마가 수소문해서 찾아낸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레슨 받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타이거 마더로서 저자는 절망을 경험하지만 아이가 여전히 아이가 바이올린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것을 보고 혹독했던 연습의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교육방식에 대해 위안이 되거나 반성이 되거나 하는 학부모들이 있을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아이들을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배달하며,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인지 아이의 행복을 위한 것인지 헷갈리는 '강남엄마'들에게 이 책이 더욱 자극제가 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이 책의 저자 에이미는 자식들이 연습하는 모든 음악을 그들 만큼 알고 분석할 정도였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채찍을 든 호랑이인 동시에 가장 속을 잘 아는 같은 편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자식들의 교육을 핑계로 그녀 자신의 직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대단하다는 말이 나올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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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타이거 마더의 홍보용 글을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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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녀 교육법 외에 일본, 덴마크 등의 교육법을 책을 통해 자주 접하긴 했지만 중국식 교육법은 처음이다. 인구가 많기 때문에 그 중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고 그러기 위해선 좀더 강한 무엇인가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는데 타이거 마더를 통해 중국식 자녀교육법을 접하니 엄격함과 단호함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예일대 교수인 에이미 추아가 자신의 두 딸을 교육하는 방식은 놀랍다. 강하게 몰아치는 모습은 혹시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로운 마음으로 지켜 보았다. 완벽하고 최고가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교육법을 아이들은 과연 잘 따라 줄 것인가....
이 책은 자녀 교육서라기 보다는 중국식 자녀교육법이 담겨 있는 에세이로 느껴진다. 모든 교육법이 완전하지 않듯이 중국식 자녀교육법 또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충돌을 일으킨다. 때로 실패하고, 좌절하는 엘리트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 상황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또한 자녀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의 성과를 높히기 위해 수없이 많은 연습 시간을 보내면서 끈기와 집념을 배우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치열한 시간들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 유연함과 강함을 어떻게 조화시키는 것이냐가 숙제이다.
서양인 부모가 아이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긍정적인 효과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중국인 부모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기술과 습관으로 아이를 단련시킨다. 그 접근법부터 다른 것이다. 그래서 서양식은 유연하고, 중국식은 단호하다고 할 수 있다. 저마다 장단점이 있지만 중국식 교육법은 가장 큰 취약점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공을 이루기 위해 자극은 시키지만 그것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에는 문제가 된다. 그렇게 때문에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기 위한 인내심과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나라 부모이건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방법이 다를 뿐이다. 내 아이에게 맞는 우리만의 시간을 만들어 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