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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에서 남긴 이청준의 인상은 강렬했다. 제목부터, 소위 '당신'들은 '우리' 혹은 '나'를 위해 천국을 건설하고자 하지만 결국은 '당신'들의 천국일뿐이라는, 지극히 냉소적인 제목부터 좋았다. 역마의 기운을 타고나서였을까. 순응보다는 이런 비틀림, 덤빔 따위가 좋으니 이것은 제목 하나만으로도 사회, 아니 이 국가 전체를 통쾌하게 한방 먹여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련의 글들을 통해 나는 그의 애독자가 되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굿마당을 더러 보았을 것이다. 시골에서 함부로 자란 아이치고 비위가 약했던 나는 축제마당이 아닌 제의의 장소에는 잘 가지 못했고, 거기에서 나온 음식은 아예 입에 넣지도 못했다. 특히 장례를 치르는 집에는 문상 온 손님보다는 거지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잔치 준비를 했었지만 아무리 먹을 것이 궁해도 나는 그 집의 떡 한 조각 입에 넣지 못했다. 그랬는데 동네의 어느 먼 친척 집에서 굿이 열린다고 하더니 어머니는 저녁 무렵 나에게 흰 떡 한 조각을 주었다. 그 떡 조각을 쥐고 주변의 시선 때문에 먹지도 버리지도 못한채 그 집 주변을 서성였는데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무당이라는 것을 보았다. 물론 가끔씩 동네 어른들이 액땜을 한다고 음식을 동구밖에 내어 놓거나, 대문 밖으로 식칼을 던지는 것은 보았지만 그런 것이야 그저 재미거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색색의 옷을 입은 낯선 사람들이 넓은 마당으로 모여 들고, 마당이 환하게 불을 밝힌채 꽹꽈리와 징을 울려대었을때 이미 내 손에 쥐어졌던 떡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굿마당이었다. 만신이 새끼 무녀 대여섯명과 박수 서넛을 데리고 차린 마당이었다. 친척 아주머니가 자궁암에 걸렸는데 치료하다가 안되니 대단한 부자라는 그 집 외동아들이 차린 마당이니 그럴법도 했다. 만신무당의 춤과 노래를 따라 대나무가 흔들리고 갑자기 여자 무당의 입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그 집 할아버지였다. 누구야, 누구야, 잘 있느냐, 잘 지내느냐, 내 손주 누구도 잘 있느냐 따위의 긴 안부인사가 끝나고 당사자였던 친척 아주머니를 향해서는 노기어린 고함이 터져 나왔었다. 네가 나한테 얼마나 악독하게 했느냐, 내가 네게 병을 주었으니 죽을 것이라는 것이 그때 내가 들은 말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구석구석 모여서서 그 집 할아버지하고 목소리가 똑같다고, 어쩜 저리 똑같냐고, 세상에 살아생전에 며느리가 그렇게 못됐게 하더니만 벌받았구만 하고 수군거렸는데 그때의 그 두려움은 두고두고 살면서 내 잘못의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이 되었다.
굿이란 그러했다. 저승의 죽은 자와 이승의 산자를 만나게 해주고, 화해도 해 주지만 저주도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을 보는 동안 그 때의 굿마당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죽은자와 산자가 평안하다면 굿이 왜 필요하리. 평안하지 못한 어느 한쪽을 달래어 각자 존재의 자리에 서게 하는 것이 바로 굿이었다. '있음'이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포괄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신화를 삼킨 섬> 제주도는 우리 역사의 어두움, 차라리 신화로 남기고 싶은 역사를 삼키고 앓아가는 섬이다. 정권이 바뀌어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냈던 제주의 4.3사건을 굿이라는 제의를 통해 풀어내며 현재의 역사와 대화를 시작한다. 우리의 암울한 역사탓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희생자이면서 가해자의 위치에 있다. 당시 4.3사건을 피해 한라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유골을 수습하여 위령제를 올려주고자 하는데 그때의 사건은 처음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사실 이 사건의 가해자와 희생자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세월이 바뀌어 피해자가 큰소리를 치고 가해자는 숨어 살지만 누가 있어 그들의 정당함을 말해줄 수 있겠는가. 결국은 정치권력에 맞서거나 피해를 입은 개인만이 남을 뿐이다. 이 소설은 결국 보이지 않는 있음, 즉 망자를 통해 현실과 대결하도록 한다. 때로는 망자의 입을 통해, 때로는 유족들과 국가권력을 통해 사건을 드러내 보이면서 우리 역사의 한때를 살아간 이름없는 소시민이었을 유골들을 통해 암울했던 한 시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신화로 남은 섬 제주도는 그렇게 위령제라는 집단무의식의 표출을 통해 스스로를 위무해 간다. 햇살아래 드러난 유골들은 이미 신화가 되었고, 제주도는 그 신화를 삼킴으로써 고요하게 들썩이며 정치권력에 저항해 가는 것이다.
권력이란 참으로 무서운 존재이다. 그 무서움에 맞설 수 있는 방식이 바로 굿이라는 제의이다. 과거보다 미래를 말하자고 하지만 사실 과거없는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란 오래된 과거의 미래일뿐이다. 단절시키고 싶은 역사를 말해야 할때 우리는 그 과거를 말하기보다 미래를 말함으로써 진실을 은폐한다. 은폐된 역사는 결국 신화로 남겠지만 신화란 언제나 서민들의 입을 통해 떠돌아 다닌다. 그 서민들의 입을 막을 것은 어디에도 없다.
가끔 우리의 과거와 지금 여기와 미래를 생각한다. 그것들은 일렬로, 혹은 원으로 엮어서 함께 돌아간다. 제주도는 신화가 된 역사를 삼킨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유골이 된 사람들이 입을 통해 역사를 증언하듯이 과거는 언젠가 미래의 입을 통해 증언된다. 완벽한 은폐란 없다. 죽음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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