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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는 건 정말 어려워."
""어른이 되는 건 정말 어려워."" 내용보기
2011년 나오키 상 수상으로 알만한 독자들은 벌써 알고 기대하는 작품. 2011년 작품이 벌써(!) 나오다니. 나오키상의 위력이 대단하긴 한가보다. 그만큼 일본 소설이 한국에서 먹힌다는 소린데...나오키 상하면 미야베 미유키덕분인지 미스터리적인 다분한 상이라 느꼈었는데 <달과 게>에서 확실히 경계가 모호졌다는 느낌은 받았다.(아쉽) 아무튼,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을 처음 접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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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나오키 상 수상으로 알만한 독자들은 벌써 알고 기대하는 작품. 2011년 작품이 벌써(!) 나오다니. 나오키상의 위력이 대단하긴 한가보다. 그만큼 일본 소설이 한국에서 먹힌다는 소린데...나오키 상하면 미야베 미유키덕분인지 미스터리적인 다분한 상이라 느꼈었는데 <달과 게>에서 확실히 경계가 모호졌다는 느낌은 받았다.(아쉽) 아무튼,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상당히 서정적이었다. 고요한 호수에 잔잔한 은빛 잔물결이 요동치는 소설이랄까?

 

12살 신이치는 아버지가 게에게 파먹히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지금, 엄마의 뒷모습에서 커다란 소라게 껍질을 본다. 엄마는 오늘도 늦게 들어올까? 엄마에겐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다고 말하지만 앙다문 입에선 불안이 느껴진다. 그런 신이치에게 하루야라는 단짝이 있지만, 실은... 둘 다 반에서 왕따다. 그리고 둘은 남몰래 산에서 소라를 불태우며 서로의 소원을 빈다. "소라검님, 소라검님, 부디....." 간절하게 비는 소년들의 소원은 위태롭기만 하다.
  

작가는 12살이라는 애매한 나이의 소년, 소녀들을 통해 섬세한 성장소설을 써내려가고 있다. 다소 식상한 스토리에도 물구하고 이렇게 참신할 수 있었던건 아마도 작가의 역량이지 싶다. 불타는 소라게에게 소원을 빈다든지(그로테스크하지만 신비롭지 않나?) 산에서 울리는 비명과도 같은 신음이라든지(미친듯 불어대는 바람은...그들의 마음일까?) 소년들 앞에서 추는 나루미의 춤이랄지("여자는 여자아이일 때부터 여자지만 말이다, 너는 지금밖에 남자아이가 아니란다. 여러 가지를 해보렴."이라는 쇼조의 말을 이해간다.") 이 모든 불안하고 위태로운 것들이 바로 12살의 소년, 소녀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비록 그들의 상황은 불타는 소라게일지라도.
 

"내 계속 생각했는데, 소라게는 우찐지 신기한 것 같지 않나? 껍데기는 언제쯤부터 필요한 거겠노? 얼라 때는 전부 껍데기 같은 건 안 갖고 있다 아이가. 그래서 전부 이래 쌩씽 헤엄쳐 다니는 거겠제? 껍데기를 짊어지믄 어느 정도 안전할지도 모르지만, 대신에 전혀 헤엄 못 친다 아이가, 어느 쪽이 좋겠노?"


"어른이 되는 건 정말 어려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도.

덧 1. <달과 게>를 읽으면서 일본 드라마로 만들면 무척이나 잘 맞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달의 연인> 극본도 맡았다고...헌데..시청률은-_-;; 아무튼, 나오키상때문에 혹해서 읽었지만 다소 맥빠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등에 짊어진 등껍질의 무게를 생각하게 하는 성장소설이었다.

덧 2. 포테이토칩 사러 야밤에 뛰쳐나갈 뻔하고, 수박에 소금 쳐서 먹는 장면에서 오렌지에 실험적으로 소금 쳐서 먹을 뻔한! 유난히 허기지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음식이 많이 나왔나? 그렇지도 않은 거 같은데말이다. 아무튼, 마지막은 이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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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 2011.04.08. 신고 공감 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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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성장통, 그들을 비추는 달
"『달과 게』성장통, 그들을 비추는 달" 내용보기
왜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할까. 그때의 시간들이 너무도 막막하고 두렵기 때문일까. 무엇 하나 제대로 정해있지 않고 두렵기만 한때 우리는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어 있고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기 때문일것이다. 열두어 살의 나 또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너무도 시간들이 더디어 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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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할까.

그때의 시간들이 너무도 막막하고 두렵기 때문일까. 무엇 하나 제대로 정해있지 않고 두렵기만 한때 우리는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어 있고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기 때문일것이다. 열두어 살의 나 또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너무도 시간들이 더디어 가는 것이 몹시도 안타까웠던 시간들.

 

그 시절들의 마음을 닮은 책 『달과 게』를 읽었다. 

 

바닷가 모퉁이 바위틈에서 소라게를 가지고 노는 소년소녀들.

도교에서 직장을 다니던 아버지는 직장을 잃고 시골에 계신 쇼조 할아버지네 집으로 이사와 살게된지 얼마 되지 않아 아빠가 암으로 죽는다. 자꾸 꿈속에서 게가 아버지를 먹어치우는 꿈을 꾸는 신이치. 엄마가 남자를 만나는 걸 보고 또한 괴로워한다. 쇼조 할아버지가 모는 배에 탔던 엄마가 사고로 죽게 되어 엄마없이 아빠랑 단둘이 살고 있는 나루미 또한 엄마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이유를 찾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때문에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는 하루야. 어느 누구와도 친하지 지내지 않고 바닷가에서 소라게를 불로 지져 소원 비는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다. 소원을 비는 일은 소원을 비는 일에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 그것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모습도 보인다. 자신을 괴롭히는 누군가에게 좋지 않는 일이 생겼으면 하고, 엄마랑 만나는 남자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기도 한다.  

 

껍데기 속에서 갇혀있는 소라게와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이 아이들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아직 혼자서 서 있기엔 힘든 아이들이지만 이 책에서는 어떻게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전혀 어린아이라고 볼수 없는 살인까지도  생각하는 아이들. 하긴 엄마를 빼앗길수도 있다고 생각한 아이에게 그런 생각도 가능하리라.  너무 힘들면 차라리 그 사람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니까.  

 

 책이 나왔을때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나에게 처음인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 『달과 게』라는 제목을 보았을때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표지도 그렇고 제목 또한 궁금해서였다.  또한 소년들의 성장을 담은 소설이기 때문. 미스테리 소설에 수상하는 나오키상에 비해 추리적인 면은 약하고 순수문학게 가까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추리적인 요소가 조금쯤은 있어서 다가올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해 금새 책장이 넘어가기도 했던 작품이었다.

 

미스테리 부분에서 수상도 많이 한 작가던데 나는 이 작가를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그의 본격 미스테리 소설을 읽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이 소설 하나만으로도 굉장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소라게를 보면 이들 신이치와 하루야, 나루미가 생각날 것 같다.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소라게를 가지고 불을 지져 게가 소라 밖으로 기어 나오게 만들어 소원을 빌었던 이들처럼 나도 소라게를 보면 한번쯤 소원을 빌고 싶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옛날의 나라면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떤 소원을 빌 것인가.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1.12.26. 신고 공감 6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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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게를 향한 기도, 달과 게
"소라게를 향한 기도, 달과 게" 내용보기
소년과 소녀에겐 각각 아빠와 엄마가 있었다. 소녀의 엄마는 학술 연구와 관련하여 조사차 배를 탔다가 배가 전복되는 바람에 10년전 목숨을 잃고, 소년의 아빠는 암에 걸려 세상을 달리하고 만다. 소년, 신이치는 할아버지인 쇼조와 함께 살게 되어 바닷가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되고 그곳에서 소녀, 나루미를 만난다. 하지만 둘의 만남은 악연이라면 악연인데 비록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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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소녀에겐 각각 아빠와 엄마가 있었다. 소녀의 엄마는 학술 연구와 관련하여 조사차 배를 탔다가 배가 전복되는 바람에 10년전 목숨을 잃고, 소년의 아빠는 암에 걸려 세상을 달리하고 만다. 소년, 신이치는 할아버지인 쇼조와 함께 살게 되어 바닷가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되고 그곳에서 소녀, 나루미를 만난다. 하지만 둘의 만남은 악연이라면 악연인데 비록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니나 나루미의 어머니가 탔던 배가 신이치의 할아버지인 쇼조의 배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건 비단 그 둘만이 아닌 반아이 전부로서 신이치는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오히려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나루미만이 친절하게 대해줬고 신이치는 같은 전학생 처지라고 할 수 있는 하루야와 자연스레 친해지게 된다.

 

둘은 방과후 바닷가에 1.5리터 페트병으로 만든 통발로 소라게나 새우, 멸치등을 건져 올리는데 껍데기 안에 숨은 소라게에 라이터로 불을 질러 나오게 하는 놀이를 즐긴다. 그러다 해안 근처의 산에 바위 웅덩이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에다 소라게등을 키우면서 놀이를 계속해나간다.

 

그리고 껍데기에서 끄집어낸 소라게를 불에 태우며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이 기적과도 같이 하나하나 이루어진다. 마치 소라게 신령 즉 소라검님이 존재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소년의 엄마, 스미에는 근처 수협의 사무원으로 일하는데 가정적이며 요리도 잘한다. 하지만 가끔 멍하니 있거나 때때로 회식이 있다면서 늦은 귀가를 한다. 신이치는 그런 엄마가 이상하다. 해안 근처 도로변의 차안에서 남자와 같이 있는 엄마를 본 것만 같기 때문이다.

 

왠지 울컥 치미는 기분에 집밖으로 뛰쳐나온 신이치는 우연히 나루미와 만나게 된다. 소녀는 수리를 맡긴 자전거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신이치는 나루미에게 조금 가까워진 느낌을 받는다.

 

신이치는 책상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이상한 쪽지를 받게 되고 그럴 때마다 반친구들 모두가 의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평소 반에서는 친한 척 말을 걸지 않던 하루야에게 할아버지와 가기로 한 축제에 같이 가자고 한다. 하루야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둘은 축제를 가게 되는데 거기서 나루미와 이름이 알려져 있는 유명 유리 회사에 다니는 나루미 아빠를 보게 된다. 나루미와 그 아빠를 아는 척하는 할아버지가 못마땅한 신이치는 얼른 그 자리를 피하는데... 축제때 하루야가 신이치의 집에서 저녁을 먹은 걸 알게 된 나루미가 자신도 먹어보고 싶다며 꼭 초대해 달라고 한다.

 

이상스럽고 묘한 느낌을 받는 신이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루미를 초대하게 되고, 신이치의 할아버지 쇼조가 옛이야기를 꺼내다가 '자기가 행했던 일들이 자기를 향해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하게 되고 그 말에 나루미는 꼭꼭 눌러왔던 감정들이 터져나온다. 어머니도, 자신의 어머니도 과거에 자신이 행했던 일로 죽게 된거냐고... 

 

나루미는 자기 안의 두 감정이 싸웠다고 한다.
미운 감정과 그러면 안된다는 감정 그리고 그러면 안되는, 미워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신이치의 아빠가 병으로 죽게 되자 그 이유를 마침내 찾았다고 했다. 신이치와 자신의 입장이 그제서야 동등하게 되었으므로... 하지만 엄마의 죽음과 관련된 신이치의 할아버지를 보자 감정이 제어가 안되었다고도 한다. 

 

감정과 감정의 부딪힘... 어른스러운 마음가짐과 행동은 과연 무엇인지 묻게 한다. 

 

그리고 신이치의 친구, 하루야... 술만 먹으면 손이 먼저 올라가는 아빠와 무관심한 엄마 속에서 살아가는 그는 겉으론 드러나지 않지만 오히려 모든 게 시원스럽고 대답도 척척 잘하는데다 순박해보이기까지 하지만 어딘가 마음이 몹시 삐뚤어져 있다. 블랙홀처럼 속을 알 수가 없다.

 

우연한 계기로 엄마와 관련된 일들을 알게된 신이치는 소라검님에게 엄마의 '그'를 없애달라고 한다. 신이치와 하루야, 둘이 소라검님에게 비는 소원들은 환상이 아닌 현실이다. 엄마는 또 늦을 거라고 하고 지금까지 이루어진 소원의 진실을 깨달은 신이치는 엄마와 그가 있을 곳으로 뛰어나간다.

 

아이와 어른의 마음... 그 중간은 모호하다. 어른처럼 행동하려 해도 아이의 마음은 결코 어른이 될 수 없다.

 

미치오 슈스케,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 이후 두번째로 접하는 작품이다. 옴니버스식의 이야기인 '가사사기...'에서 왠지 모르게 조금 실망을 했던 터라 그의 다른 작품은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꺼내든 작품인데 그 결과는 '꽤 괜찮다'는 것이다. 평범하다못해 그럴 듯한 전개와 반전에 반전... 그런 것은 이미 짐작이 되는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인물들의 감정선을 잘 살려 제법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뒷맛도 결코 찝찝하지 않고 아주 개운하다. 물론 모든 것이 너무나도 한꺼번에 봉합되어져버린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어쨌든 한가지는 분명하다. 이 작품을 통해 미치오 슈스케, 그는 우리에게 결코 자기자신을 놓거나, 마음의 중심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아주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각양각색의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독자 역시 하나의 글만으로 그를 평가하려 들면 안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의 다른 작품은 어떻게 다가올지 사뭇 기대된다.

 

 

 

k****e 2012.03.18. 신고 공감 5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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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미치오 슈스케
"달과 게, 미치오 슈스케" 내용보기
게를 아시지요? 게는, 갑각류입니다. 갑각류들은, 엄청 딱딱한 껍질로서 둘러싸여있답니다. 아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겁니다. 그러나 또 알고 있습니다. 그 딱딱하기만 한 껍질을 벗기도 나면, 그 안에는 껍질 따윈 잊을만큼 여리고 여린 살이 있다는 것을요. 소라게는 그러면 어떨까요..? 소라모양의 단단한 집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을 숨기면서   그렇게 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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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를 아시지요? 게는, 갑각류입니다. 갑각류들은, 엄청 딱딱한 껍질로서 둘러싸여있답니다. 아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겁니다. 그러나 또 알고 있습니다. 그 딱딱하기만 한 껍질을 벗기도 나면, 그 안에는 껍질 따윈 잊을만큼

여리고 여린 살이 있다는 것을요. 소라게는 그러면 어떨까요..? 소라모양의 단단한 집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을 숨기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그 단단하게 자신을 감싸고 있는 그 껍데기가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이라고 믿었을까요.?

 

신이치, 하루야, 그리고 나루미는 각자에게 주어진 아픔을 아무것도 아닌양 마치 게껍데기로 둘러싸고 안으로만 안으로만 

자신을 숨기려고 합니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그들이 말입니다. 왜냐면, 그들에게 다가온 아픔은 실제로 감당하기가 

벅찼기 때문이지요. 아버지의 죽음이, 어머니의 죽음이, 그리고 차라리 죽을만큼 미워지는 부모님이 있는 그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그 슬픔따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가 봅니다. 아니,익숙해질 것이라고요. 아버지의 죽어가던 그 모습이

어머니를 잃은 그 슬픔이 아물지가 않지요. 누군가와의 이별 그것도 가족,그것도 바로 내 엄마, 내 아빠와의 이별인 것을요

그런가하면,차라리 없었더라면 좋았을뻔 하겠다 싶은 하루야도 있답니다. 왜냐면, 사랑만 받아도 모자랄 시기에 맞으니까요

 

그렇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지, 아픔을 주고, 아이들은 그래서 더더욱 껍질 속으로 숨어가 버립니다.

그 곳은 언제까지나 안전할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겠지요. 아니, 언제까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 당장이 아픈

아이들은 그 안으로 자꾸 자꾸 움츠려듭니다. 내 안으로, 내 세계로만요. 마치, 소라게가 그렇듯이요.

 


그러나, 아이들은 알아갑니다. 소라게를 통해서 그들만의 놀이터를 통해서 혹은 서로에게 생채기를 주면서, 그리고 서로의

위안이 되면서 또 한발자국 커갑니다.서로의 껍질 안에서 나와서,그들은 또 서로에게 조금 단단한 내 안의 상처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또 나 아닌 친구들의 상처도 보면서 서로 보듬어가면서 그렇게 커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조금은 더 소라껍질안에서 아주 조금 나와 세상을 봅니다. 나만의 세상이 아닌, 남들의 세상을 보는 눈을요

그리고,오늘도 어김없이 또 소라껍질 속으로 여린 그 속내를 보이지 않으려고 다시 들어갔다가도 또 내 껍질만이 아닌  

어느새 "친구" 란 이름으로 껍데기가 되어가고 있고, 그것이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달이 되어가는 이야기, "달과 게" 입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수상경력을 보면, 그는 "제2의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수식어보다는 되려 추리나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보인다. 그런 미치오 슈스케가 추리물이나 미스터리가 아닌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바로 이 작품, "달과 게"로서 말이다. 이 작품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무대도 집과 학교 그리고 그들의 놀이터가 전부 다이다. 어쩌면 잠이 솔솔 올 지도 모를 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초반의 지루함은 내게는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초중반을 넘어가자 지루함은 사라졌다-

 

아이들은 서로 아프다. 신이치는 아버지를 암으로 잃어선 게가 싫다. 왜냐면 스펠링이 똑같으니까. 암과 게. 꼭 파고드는 아픔도 똑같을 것 같다. 하루야도 아프다. 학대받고 있으니까. 부잣집 딸인 나루미도 아프다. 왜냐면 엄마를 잃었으니까 그것도, 하필 신이치의 할아버지 때문에, 라고 내내 그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쿨한척 해도, 그들은 결국 어린 아이들인 것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하는데, 그렇치가 못하다. 그걸 숨기는 것이 나루미의 말을 빌자면 "어른" 이라고 생각했다고.

 



 

신이치와 하루야, 둘만의 의식에서 그들은 항상 소원을 말했다. 그때마다 신이치의 소원은 이뤄졌다. 왜일까? 사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신이치도 하루야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모른척 했다. 알면서도 왜냐면, 또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싫으니까,이다

- 그리고 마지막일지도 모를,그 의식에서 신이치는 소원을 말한다. 엄마의 남자,가 사라지게 해달라고. 엄마마저 빼앗기기는 싫으니까. 결국 잃게 될 지도 모르니까, 인 것이다. 오소속 소름끼치는 이 아이의 소원, 이었다.

 
마주 세운 거울에서는 악마가 나온다, 고 했던가..? 신이치는 그 소원을 빌고, 자신을 본다. 괴기한 모습,그건 악마일지도.알고 있었다. 누군가의 잘못 때문이 아니다. 어딘가 화풀이할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내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엄마의 애인은 바로 하야루로, 엄마는 나루미이다. 신이치에겐 그때, 그 소원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루미가, 내 친구만 됐으면, 하는 바램으로 어쩌면 하야루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시킴으로 멀어지게 하려는 그 불순한 의도인 것이다. 마치, 내 엄마는 아빠와 나만의 것이지, 결코 다른 남자와 어울리는 것이 싫다는 그런 의미처럼 말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독점욕부터 시작해서 그 나이답지만 또 그 나이답지 않은 그런 것들을 보여준다.하야루도,나루미도 그리고 신이치도. 딱딱한 금속과 같은 그 열쇠, 그것은 신이치 자신의 마음이기도 했다. 외면당하는 마음, 그걸 열쇠라는 장치로도 잘 나타내고 있었고 그래서 더더욱 외면하고 있었던 신이치였다.

 

그것은 미늘이 달린 낚시바늘을 힘껏 뽑아냈기 때문에 생긴 상처 때문인지도 모른다.뽑기가 무서워서,싫어서 방치해 둔 탓에 더 깊고 깊은 곳으로 박혀들어갔고,결국에는 목숨을 걸지 않는 한 제거할 수 없게 된 그 바늘이 만든 아픔인지도 모른다

                                                                                        -358p

 

아마도 어쩌면, 신이치도 하야루도, 그리고 나루미도 또 그렇게 뽑기가 두렵고 무서워 방치해둔 그 상처들, 이 있었다.
다만, 그때 그들은 만났고, 서로에게 달이 되어주었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스치듯, 혹은 잡듯 그렇게 또 이 성장기도 지나갈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달처럼 어두웠지만, 달이 있어서 그래도 빛을 봤고, 그때의 손의 따뜻한 체온을 기억한다면, 그들은 또 그 아프고 무섭지만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그 낚시바늘을 힘껏 잡아 당길 것이다.

 

이 복잡미묘한 아이들의 심리를 400여페이지에 이르면서, 줄곧 이끌어온 느낌, 그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나도 내내,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신이치로, 호야루로 그리고 나루미가 돼서 말이다. 달, 그리고 게. 그들이 다시 게처럼 딱딱하게 감싼 소라껍데기 속, 그 여림의 속내를 내비출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이 서로에게 달이 돼 줬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번역후기에도 있듯이, 후루야의 사투리도 그랬지만 번역 자체가 그다지 좋다, 라는 느낌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리고 어딘가 참 일본스럽구나, 라는 걸 많이 느꼈다. 소라게를 지지고 노는 것..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그 소라게가 자신들이고 그들은 그렇게 소라게에게 상처를 스스로 입히고 있었던 것을 말이다.

v********0 2011.04.12.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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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그 결합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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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과 더불어 모든 것은 성장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헤르만 헤세의 명징한 사유처럼 고통은 성장의 다른 이름이다. 웃자라 버린 마음은 현실에 동요하고 저항할수록 감각은 더욱 시려지고 커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장은 분절되고 쪼개어진 낯선 감각의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막연함에서 오는 감각의 통점痛點은, 곧 성장통의 내부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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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생과 더불어 모든 것은 성장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헤르만 헤세의 명징한 사유처럼 고통은 성장의 다른 이름이다. 웃자라 버린 마음은 현실에 동요하고 저항할수록 감각은 더욱 시려지고 커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장은 분절되고 쪼개어진 낯선 감각의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막연함에서 오는 감각의 통점痛點은, 곧 성장통의 내부적 저항이 아닐까? 치열하게 발효된 감정의 분화를 따라 때론 아프기도, 때론 무섭기도, 때론 즐겁기도 하는 희열 속을 유영하는 히치 하이커가 될 테니.

 

        <달과 게>는 추리소설을 표방한 완벽한 성장소설이다. 마치오 슈스케가 쓴 이 책은 내적성장의 변이를 겪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탐색하고 추적하는 과정의 전개를 세밀한 농담으로 그려낸 흡입력이 탁월한 이야기다. 미묘하게 펼쳐지는 감정의 연결고리를 따라 노련하게 조여 오는 완급의 조련은 이 책의 백미다. 세 아이를 둘러싼 반전과 반전의 대구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선과 악의 대립과 갈등의 정황을 절묘하게 포개고 융합한다.

 

        소설의 운명이 통속적인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작업이라면 저자가 소환해 낸 역량의 터전인 이야기는 그 껍질이 견고하고 단단하기 이를 때 없다. 그것은 이 작품의 전체를 지배하는 풍격과 내면의 심리변화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추출된 공감의 물질은 감정이입을 도모하고 동일시된 내적자아를 끄집어내는 고리가 된다. 저자가 퍼즐처럼 구성한 비현실적인 바람내지는 기원의 사유를 통해 착시효과를 일으키듯 공명의 물결은 바람처럼 커지고 흡수된다. 이러한 전이에 대한 공감은 누구나 그 곳을 통과했거나 힘겨운 고독의 시간을 끌어안는 과정을 겪었음과 부합한다.


[사진출처 : 일본문학번역가 민경욱님의 네이버블로그]

 

        이처럼 소설이 주는 가치를 보다 완벽하게 구현해 내기 위해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적합하거나 안전하다. 그 속에 구전된 허구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스며들어 갈등의 전조를 일으키는 키메이커 역할을 한다면 든든한 지지대를 형성할 것이다. 나아가 인물간의 내적인 변화의 과정을 심리적인 관점에 결부하여 관찰한다면 작가의 기록은 창작의 행위를 넘어 새로운 세상의 건설,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상향의 창조의 신기원에 미치게 된다. 그것은 곧 익숙하기에 거부감의 낯섦이 없다. 때문에 <달과 게>는 밀착된 탐사를 통한 탄탄한 짜임새를 구성하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춘기에 접어든 신이치, 하루야, 나루미의 미묘하게 얽히고설킨 내면의 심리변화와 의식세계를 보여주는 과정은 진지하고도 매혹적이다.

 

        이야기는 기성세대, 어른들에 의해 인위로 만들어 낸 이해할 수 없는 굴곡진 삶의 현실이 어떠한 안전판도 없이 고스란히 내적 충격을 견뎌내야 하는 아이들의 공통분모가 그들을 끌어당기는 견인차가 되며 개별화된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신이치는 아버지를 암으로 잃은 슬픔을, 하루야는 사업실패로 인해 돌변한 아버지에 의한 폭력의 아픔을, 나루미는 사고로 인해 엄마를 잃은 상실의 고통을 통해 그들만의 세상을 연대하고 공유한다. 연대된 아픔은 확대 재생산되고 세상을 향한 도전이 되지만 이렇게 기반 되어 형성된 아픔의 연대는 논리가 취약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는 비현실의 강화된 모습, 즉 초자연적인 힘에 기대 자신을 합리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아이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으며 극복하거나 제압할 수 없는 나약한 본성의 출현이며 현실에 부딪힌 성장의 장벽이다.

 

       

        실제 신이치의 엄마와 나루미의 아빠의 사이가 미묘한 관계를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소외된 신이치와 나루미의 표출방법은 사뭇 다르다. 공유할 수 없는 대상을 빼앗긴다는 감정의 자극은 저자의 표현처럼 낚시 바늘에 손끝을 찔려 뽑아내는 날카로운 단말마의 고통이다. 그래서 신이치는 하루야의 소외된 현실에 공감하고 나루미를 포섭함으로써 동조된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그들에게 발생된 사건의 개별화는 이 책을 움직이는 구동점이자 동력으로 작동한다. 취약한 자아를 자극하는 내밀한 감정의 변화를 통해 성숙하고 한 걸음 성장의 발판으로 나아가는 아이의 내면세계를 투영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의 흐름에 대한 속도감은 상황을 지배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심리적 프리즘에 조리개를 맞추어 숨 가쁘게 구동한다. 이러한 서정적 감정선의 자극과 표현은 마치오 슈스케가 얼마나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구성하고 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마치오 슈스케의 프리즘을 통해 아이들은 누구나의 삶 속, 보편성의 틈입으로 침투하게 되며 그로 인해 야기된 긴장의 순간을 적시에 붙드는 마력을 발산한다. 이것은 마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가 펼쳐 내는 공성진과는 또 다른 세밀한 지배적 관찰이 빚은 황홀한 오케스트라와 같은 변주다. 저자는 신이치의 눈을 통해 질투, 연민, 공포, 당혹, 애증, 복수, 번민의 감정들이 제 각각 뻗어나가 모여들어 화음을 이루어 내는 심포니의 향연을 만끽하는 것과 같다. 

 

        향연의 순간은 ‘달’과 ‘게’라는 이원적인 상징물을 통해 은유된 핍진성을 되살리며 감각점을 고무시킨다. 상징성은 필시 관습적 소재에 기반을 둔 관념적 대상을 통해 현실과 자연스럽게 매개하는 구실을 한다. 아이들이 게를 채취하고 그 게를 그들만의 공간으로 이동시켜 사육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게 껍질을 방화하여 소실시킴으로써 억눌린 소망을 기원하는 원초적 토테미즘의 의지를 엿보게 되며, 내재된 복선의 암시는 갈등을 견인하는 구심점이 된다. 신이치와 하루야의 관계, 하루야와 나루미의 관계, 신이치와 나루미의 관계. 그 삼각의 관계를 통해 아이들은 내적 자아를 표출하는 치밀한 얼개의 형태를 공고화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의 파노라마는 전편에 걸쳐 은유적 설정을 통한 비유를 통해 펼쳐진다. 신이치의 마음을 추적하며 따라가는 일련의 현상을 물결처럼 펼쳐지는 상황의 긴박감은 박진감 넘친다. 주변인물인 할아버지 요조의 갈등상황이 대물림 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 충격을 더욱 증폭시켜 발화하는 기폭제가 된 어머니와의 나루미 아버지와의 은밀한 관계는 박탈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작가의 인물에 대한 장악은 거침없다. 위력적인 지배의 흔적이 곧 필력의 힘이리라. 또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모티브를 추동하는 근원적인 요소라는 사실이다. 감정의 순간에 대한 기록은 휘발성이 강해 저장시켜 재생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치 작가의 역량을 구분 짓는 바로미터에 다름 아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작가 미치오 슈스케의 <달과 게>는 단락적인 사건을 통해 아이의 내면이 변화하고 낯선 감각의 세계로 흘러가는 모습을 한 톨의 거부감 없이 보여준다. 인간의 잔혹성이라는 성마른 물질이 부화하는 과정을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구현했다. 또한 달과 게가 암시하는 알고리즘의 상승된 관계를 통해 인간의 모든 행위가 인과율의 법칙에 지배를 받아 순회하듯 일정한 틀 속에서 윤회함을 상기시킨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이유라는 것이 있다. 세상일 전부에 분명히 이유가 있어. 결국은 자기한테 되돌아오는 법이야. “(p.189) 

 

        작가의 이 작품이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심리적 완성도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기능적, 형태적 결손가정에 대한 문제를 사건의 본질 속 깊숙이 침투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가족의 기능적 해체에 따른 구성원의 갈등은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일차적인 모습이다. 지지기반이 연약한 청소년의 자존감은 애정결핍과 집착의 형태를 일으킨다. 실제 신이치가 어머니의 사생활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또한 타자에 의해 형성된 상황을 수용하지 못하는 경계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행위이다. 

 

       따라서 민감한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허구의 세계와 적절하게 버무려 공감의 큰 틀을 만들어 내는 작가의 노련함이 예사롭지 않다. 경험이 밑거름이 되었든 치밀한 계산에 의해 완성되었든지 간에 진실함은 작품을 더욱 빛내는 요체다. 이렇듯 이 책은 불편하고 어둡게 그려질 낯선 시간의 기록을 진실함을 터전삼아 각자의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끈다. 결국 그것은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는 믿음의 기록이자 내적 자아를 탐구하는 자신을 향한 외침이다.




a******e 2011.04.12. 신고 공감 2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어그러진 유년시절 속, 해방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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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일본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다보니,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고 있는 작가가 여러 명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나 오쿠다 히데오, 온다 리쿠 등등, 생각해 보면 이 작가들을 만난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그에 비해 미치오 슈스케와의 첫대면은 고작 1년하고도 조금 더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도 '완소작가 베스트 5' 안에 들어간다는 건 스스로도 놀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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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일본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다보니,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고 있는 작가가 여러 명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나 오쿠다 히데오, 온다 리쿠 등등, 생각해 보면 이 작가들을 만난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그에 비해 미치오 슈스케와의 첫대면은 고작 1년하고도 조금 더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도 '완소작가 베스트 5' 안에 들어간다는 건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좋아하는 작가가 이번에 144회 나오키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책, <달과 게>!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 중에는 초등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들이 여럿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과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 그리고 <술래의 발소리 - 악의의 얼굴>까지 벌써 세 작품이나 되니 '남자 아이'란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을 나타내는 키워드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지금까지 읽는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들은 대개 만족스러웠지만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어린이의 시점으로 쓰여진 작품을 좋아라 했던 것 같다. 작가만의 묘한(?) 분위기가 그런 작품들에게서 특히 두드러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런 점이 <달과 게>가 맘에 들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책은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엮어져 있다. 보통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세상의 때에 찌들지 않은 순수의 상징으로 그려지지만, 주인공인 신이치의 세계는 그곳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어머니에게 애인이 생기고 자신은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으며 그 원인은 친할아버지에게 있다... 이 한 문장만 보아도 신이치의 일상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냉정히 살펴보면, 어머니가 딱히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도, 할아버지가 고의로 원인을 제공한 것도 아닐 뿐더러 제 3자의 눈으로 보더라도 무척 친근하고 다정한 분이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는 차마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없는 문제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신이치의 단 하나뿐인 친구인 하루야는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다. 그리고 동급생인 나루미는 신이치의 할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고, 지금은 신이치의 엄마와 자신의 아빠와의 관계로 고민을 한다. 신이치와 하루야, 나루미, 세 아이들은 산 속 자신들만의 아지트에서 소라게를 신격화함으로써 현실에서 탈출구를 찾고자 한다. 그리고 소원이 하나 둘 이루어지는 기이한 현상들... 이들의 우정은 언뜻 더욱 돈독해지는 듯하지만 곧 우정이 질투와 증오로 바뀌고, 그들의 세계가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소설에, 오래도록 기억될 만큼 강렬하고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다. 오히려 다른 작품에 비하면 잔잔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의 복잡한 내면을 뒤쫒다보면 따분하다고 느낄 새도 없이 페이지는 막바지에 다다라 있다. 모순적이기는 해도, 가장 순수하기에 가장 잔인할 수 있고, 또는 그 반대로도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유년시절' 아닐까? 이 책에서 어떤 이는 공감을, 또 다른 이는 동정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지막에선 누구든 잔잔한 감동과 희망을 느낄 수 있으리라. 조금이라도 관심이 간다면 망설이지 말고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o*********3 2011.04.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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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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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자기가 아는 것이 세상 전부인 줄로만 아는 나이 12살. 알만큼 아는 나이기도 하지만, 아는만큼 움직이기는 어려운 나이 12살. 한참 예전에 엄청 좋아했던 TV드라마 <케빈은 12살>이 생각이 난다. 딱 사춘기에 접어든 케빈은 좋아하는 여자아이 때문에 마음아파하기도 하고, 부모님, 형제, 친구들과의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드라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초등학교 5학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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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자기가 아는 것이 세상 전부인 줄로만 아는 나이 12살. 알만큼 아는 나이기도 하지만, 아는만큼 움직이기는 어려운 나이 12살. 한참 예전에 엄청 좋아했던 TV드라마 <케빈은 12살>이 생각이 난다. 딱 사춘기에 접어든 케빈은 좋아하는 여자아이 때문에 마음아파하기도 하고, 부모님, 형제, 친구들과의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드라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초등학교 5학년의 신이치, 나루미, 하루야도 그렇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벌어진 일들을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이 이야기는 동심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조금씩 위험한 경계를 걷도록 한다.

 

아빠가 죽고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 쇼조와 살게 된 신이치, 신이치의 할아버지인 쇼조가 몰았던 배의 사고로 엄마를 잃은 나루미,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하루야는 정상적인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조금은 멀어져 있다. 신이치와 하루야는 전학을 왔고, 전학 온 첫 날 누구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종류의 가방을 매고 등교했다. 그들의 위화감에 포스트 잇을 붙여 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교우관계에서 겉도는 신이치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는 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이치의 할아버지 배에 타고 있다가 목숨을 잃은 엄마를 둔 나루미이다. 그리고 드라마에나 나올 것처럼 혼자가 되어버린 신이치의 엄마와 나루미의 아빠는 서로의 마음을 보듬으며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해변가에서 소라게를 잡고, 소라게를 불로 지져 소원을 빌면서 소통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감정을 마음속으로부터 끄집어 낸다. 미워하는 친구가 다쳤으면 좋겠다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작은 소원에서부터 기어이는 엄마의 애인이 죽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잔혹한 바람까지 이른다. 그럼에도 자기가 마음 속으로 빌었던 그 소원이 실제로 이루어질까 겁내하는 아직 여린 아이일 뿐이다. 무작정 어른인 채, 무작정 남을 위하는 채 하기에는 아직 어리기만 한 아이들은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하지만 너무 가깝기 때문에 사랑과 질투가 공존한다.

 

12살의 나이, 사춘기의 아이가 받아들이기엔 현실이 너무 무겁기만 하다. 부모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상처를 남긴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고, 엄마와 아빠라는 사람은 어쩌면 엄마와 아빠이기 이전에 그저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일 수도 있다. 가슴에 자신만의 방을 가지고 있는 12살 꼬마라고만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을 이제 막 남편을 잃은 마음을 메꿔줄 남자를 만난 엄마라는 여자는 다 이해하지는 못할 수도 있다. 다만 그들은 각기 깊고도 깊은 상처를 가졌으면서도 그 상처를 낫게 할 연고 같은 걸 서로에게 사용할 생각은 못한 것 같다. 소년은 소년이라서, 엄마는 엄마라서...

 

"나 말이야. 아빠가 만나는 상대가 도네 군에 엄마였다는 거, 사실은 계속 알고 있었어. 전에 도네 군한테 어느 토요일에 관해 물었던 거 기억하지? 도네 군네 집에서는 뭐 했느냐면서. 그때 도네 군은 엄마도 집에 있었다고 했지만,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런 건 얼굴 보면 다 안단 말이야. 하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지....그러는 편이 어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중략) 이제 도네 군을 못 본다니 섭섭했지만, 도네 군네 엄마도 볼 일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나, 마음이 놓였어. 아빠가 다시 내게로 되돌아와 주겠구나, 하는 생각에...어른이 되는 건 정말 어려워."

-p 397

 

어른도, 진짜 어른이 되기는 정말 어렵다.

o******m 2011.04.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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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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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의 시작     오늘은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는 근대문학 이후 예를 들어 포스트모던 문학이 있다는 말도 아니고, 또 문학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말도 아닙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문학이 근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았고, 그 때문에 특별한 중요성, 특별한 가치가 있었지만, 그런 것이 이젠 사라졌다는 것입니다....내 자신이 일본에서 문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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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의 시작

 

 

오늘은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는 근대문학 이후 예를 들어 포스트모던 문학이 있다는 말도 아니고, 또 문학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말도 아닙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문학이 근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았고, 그 때문에 특별한 중요성, 특별한 가치가 있었지만, 그런 것이 이젠 사라졌다는 것입니다....내 자신이 일본에서 문학비평을 해온 경험으로 말하지만, 근대문학은 1980년대에 끝났다는 실감이 있습니다. 소위 버블, 소비사회, 포스트모던이라고 불리던 시기이비다. 그즈음 많은 젊은이들이 소설보다도 『현대사상』을 읽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전처럼 문학이 첨단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샤르트르가 말하는 ‘문학’은 비평적 에크리튀르로 이동했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오래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고 말할 때에는 그것을 비판하는 형태로 나타난 에크리튀르나 디컨스트럭티브한 비평 또는 철학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분명해진 것이 1990년대입니다. 일본에서는 정확히 나카가미 겐지가 죽은 다음입니다.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1부 근대문학의 종언<<3.근대문학의 종언>>>,2005>

 

 

매일신문디지털: 초등학교 5학년생을 주인공으로 한 의도는?

 

미치오 슈스케: 소년의 마음의 요동을 쓰고 싶다. 3학년이라면 어른에게 기대고 말 것이고, 그보다 위라면 불행함과 싸우는 법을 알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은)무방비상태라, 어린 소년이 어떻게 헤쳐 나갈지 흥미로웠다.

 

 

<144회 나오키상 수상자 인터뷰 중, 2011>

 

 

00. 어린이의 눈

 

 

세계에 대해 어린아이가 처음 경험하는 것은 “어른들이 좀 더 강하다”는 깨달음이 아니라 “오히려 어른들이 마술을 부릴 수 없다”는 깨달음이라고 말한 사람은 발터 벤야민이다. 그리고 그 격언을 충실히 현실세계에서 재현하는 사람은 미치오 슈스케이다. 어린아이로서의 주술과 행복 혹은 마법과 불행의 이항적인 대립항의 도식은 <달과 게>에서 계속해서 언급하는 테마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예를 들면, “세계에는 시작이 있다”라는 테제와 “세계에는 시작이 없다”라고 하는 안티테제가 모두 성립한다고 한다고 한다. 그것은 안티노미(이율배반)를 통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는 그것보다 훨씬 전에 시차를 통해서 사물을 생각한다고 하는 방법을 제기했다. 시차(視差, parallax)란 예를 들어 말하자면, 오른쪽 눈으로 본 경우와 왼쪽 눈으로 본 경우의 사이에 생기는 상의 갭이다. 칸트의 변증법이 나타내는 것은 테제도 안티테제도 아닌 그 갭을 보는 방법이다. 사실 그것을 최초로 지적한 것은 가라타니 고진이 <트랜스크리틱>에서였다라고 지젝은 말한다.

 

사실 시차적 관점의 엄밀한 사전적 의미는 “관찰자가 어떤 천체를 두 지점에서 보았을 때 대상의 위치가 달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지구와 가까이 있는 별을 지구와 멀리 있는 천체를 배경으로 놓고 볼 때, 관측하는 위치에 따라 가까이 있는 별이 전혀 다른 천체를 배경으로 해서 보이는 현상(지구의 공전 때문에 일어난다)을 일컫는 용어이다. 지젝이 이 용어를 천문학적 용례를 그대로 따라 사용하지는 않는다. 천문학적 시차는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고정된 대상이 달라 보이는 것을 지칭하지만 지젝의 의도는 이와 정확히 반대이다. 지젝이 가장 피하고자 하는 것, 더 정확히 말해 가장 논박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입장에 따른 관점이 차이이기 때문이다. 지젝은 이 개념을 두 가지 점에서 바꾸어 사용한다. 우선 그는 관점의 변화가 단순한 위치의 변화가 아니라, 대상 자체의 변화를 야기하는 훨씬 더 근본적인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또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관점은 우리 지식의 한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대상 자체의 비일관성’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신이치의 시차적 관점은 이러한 현상과 동일하다.

 

거무스름한 뒷유리창 너머로 운전석과 조수석이 보인다. 운전석에는 머리카락이 짧은 남자, 조수석에는.....저건 엄마일까....그대로 출발한 차는 점점 멀어져 갔다.”(p23~24) 신이치의 시선은 우연하게도 엄마의 몰래 데이트를 지켜보면서 시작한다. 그런 다음 어린아이의 생각으로 실천으로서의 슬픈 소망의 실천적 발현의지가 생성한다. 말글대로 “엄마의 남자가 사라지게 해주세요.”라는 글귀. 그리고 불현듯 떠오르는 심상의 정신분석학적 개념의 환원의 스크린이 갑작스럽게 머릿속에서 돌기 시작한다.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그리스신화의 차용. 그리고 ’달‘과 ’아르테미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과 사냥·야생동물·처녀성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디아나(라틴어: Diana)와 동일시된다.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아폴론과는 남매지간이다. 올림포스의 12신의 두 번째 세대에 속한다. 곰과 사슴, 활과 화살, 초승달, 토끼가 대표적 상징물이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일종의 일화 ’몸종들과 함께 숲 속에서 사냥을 하며 돌아다니는 야생적인 처녀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달이 비칠 때 그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 때는 산짐승과 초목이 춤을 춘다고 한다. 아폴론과 마찬가지로 활을 무기로 들고 다니며 그녀의 화살은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므로 희생물에게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성격이 거칠고 복수심이 강해서 그녀의 진노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 허다하다. 고대인들은 아르테미스를 유방이 가득한 여신으로 묘사할 정도로 풍요의 신으로 숭배했는데,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도 아르테미스 신앙과 기독교가 대립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게의 좌표. 게자리(Cancer Constellation, 기호: ♋)는 황도대(黃道帶)의 12개 별자리 중 하나이다. 게자리 주위에는 서쪽으로 쌍둥이자리, 동쪽으로 사자자리, 북쪽으로 살쾡이자리, 그리고 남쪽으로 작은개자리와 바다뱀자리가 위치하고 있다. 4등급 이하의 별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밝은 쌍둥이자리와 사자자리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귀수(鬼宿)'라 하며, '귀신'을 의미한다. 일종의 전설 ’게자리는 영웅 헤라클레스의 발에 밟혀 죽은 불쌍한 게의 별자리이다. 신들의 왕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제우스의 외도로 태어난 헤라클레스를 미워하여, 그에게 12가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다. 그 중 두 번째가 레르네의 괴물 히드라를 퇴치하는 것이었다. 히드라는 머리가 9개 달린 물뱀으로 머리를 잘라도 곧바로 머리가 새로 생겨나는 좀처럼 죽이기 어려운 괴물이었다. 헤라클레스는 히드라와 30일 동안 싸운 후 불을 이용하여 8개의 머리를 없애는 데 성공했다. 이때 헤라가 히드라를 돕기 위해 게 한마리를 보냈다. 게는 헤라클레스의 발가락을 물었지만, 결국 헤라클레스의 발에 밟혀 한쪽 발이 부러진 채 죽고 말았다. 헤라는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다 죽은 불쌍한 게에 보답하기 위해 하늘의 별자리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게자리는 어두운 별로만 되어 있어서 밝은 별들 틈에 끼여 잘 보이지 않은 채 지금까지도 쓸쓸하게 남아 있다. 게자리가 '달의 집'인 것은, 달이 세상의 중심인 이곳에 위치했다는 고대의 믿음에서 기원한다라고 한다. 달과 게의 개념적 추론과정 혹은 유추놀이. 인덱스와 오브제, 신이치의 게로서의 달과 달로서의 게.

 

신화속의 피조물들처럼 어린아이들은 행복해지려면 한편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든, 정직한 수단을 써서 목표에 도달하려고 분투하기보다는 정확한 장소를 아는 것과 말할 수 있는 올바른 말들을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마술이란 바로 행복할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 따라서 고대인들이 잘 알고 있었듯이 인간에게 어울리는 행복은 늘 휘브리스, 즉 언제나 오만함과 과도함의 결과라는 것을 뜻한다. 이 어린아이 같은 지혜, 즉 행복은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 지혜는 늘 공공연하게 도적의 반론에 부딪쳐왔다. 존엄하게 사는 것과 행복하게 사는 것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말을 빌려보면 “당신이 행복을 얻으려 분투하게 만드는 것은 당신 안의 경향성이다. 그리고 당신의 행복할-만한-자격-있음이라는 조건을 넘어서 가지 못하도록 이 경향성을 한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당신의 이성이다” 그렇지만 우리(또는 우리안의 어린아이)는 우리가 누릴만한 가치가 있는 행복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당신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어떤 여자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얼마나 재앙일까!

 

그리고 일을 잘 했다는 보상이나 대가로 행복을 받는다면 얼마나 권태로운 일일까! 마술과 행복을 한데 묶는 것이 순전히 부도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것은 실제로 보다 고차적인 윤리에 의해 증명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대의 격언에서도 볼 수 있다. 자신이 행복함을 알고 있는 자는 이미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격언 말이다. 이것은 행복이 그 주체와 역설적으로 관계하고 있음을 뜻한다. 행복한 자는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 수 없다. 요컨대 행복의 주체는 주체가 아니며, 의식의 형태를 잦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좋은 의식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여기에서 마술은 자신이 예외임을 내세운다. 즉 오직 마술만이 우리가 행복하다고 말하게 하고, 우리가 행복함을 알 수 있게 해준다.

 

 

01.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ねねねねねねねねねねねねね

ねねねねねねねねねねねねね

 

하루야는 노트에 똑같은 히라가나를 적고 있었다. 슥, 스스슥. 슥, 스스슥, 샤프 끝이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이는 것을 곁에서서 지켜보던 신이치는, 잠시 후에 당연하게 여겨지는 질문을 했다....그리고 비어 있는 곳에는 ‘ね’, ‘ね’, ‘ね’, ‘ね’, ‘ね’, 라고 써있었다.(p39~40)

 

 

불임의 언어기호학. 죽음의 단어변형. 이 대목에서 번역자는 하루야가가 ‘네(ね)’라는 글씨를 쓰거나 다른 글자를 “네”로 바꾸는 장면을 언급하면서 ‘ね’는 일본어에서 ぬ(누)로 끝나는 동사를 명령형으로 만들 때 쓰이기도 합니다라고 언급하면서 그 단어 시누(死ぬ, 죽다)를 예로 든다. 불현듯 이러한 알레고리속성의 문장과 단어를 보자마자 은유와 환유가 갑자기 떠올랐다. 은유, 환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출현들을 별 제한 없이 가려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즉시 1차 과정에 참여하는 정도가 (혹은 다른 쪽부터 사유하려고 한다면 2차 과정에 참여하는 정도) 경우에 따라 현전히 변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매우평범해 보이는 사례로부터 출발할 것인데, 프랑스 단어 ‘보르도(Bordeaux)'를 선택해보면. 보르도는 우선 도시 명칭이다(지명). 그리고 이 단어는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를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고전적 발전 단계, 간략한 환유, 즉 생산장소를 생산물 대신 부르는 방식, 인접성으로 의미의 미끄러짐이 일어나는 형태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결합과정의 1차 권력과 무의식적 반향은, 현재에 이르러서는 단어가 발화되고, 수신되는 많은 경우에 매우 감소된 상태이다. 많은 경우, 전부는 아니다. 이런 종류의 환유에 대해서는 프로이트는 아마도, 서로 연결되기 전에, 연결되기 위해, ’정신에너지‘(의미)가 더 자유로운 순환방식을 따라 이동했다고 말할 것이다. 이 유명한 와인은, 다른 상징적 여정의 임시 종점에 해당하는, 다른 이름을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때’지롱드 파‘가 정치 용어로 사용된 것처럼) 도시 이름은 다른 생성물이나 다른 속성에 전이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전이의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지켜본 자는 프로이트였다.

 

프로이트는 본인의 연구 내내 결합된 에너지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로, 그가 ’사고 과정‘이라고 (꿈이 아닌, 정상적인 사고) 지칭한 것을 들었다. 그에 따르면 이 과정은 두 가지 선행조건을 요구하는데, 우선 변함없는 정도로 지속되는 리비도집중(investissement)이라는 현상에 상은한다. 둘째, 한 표상에서 다른 표상으로 전환되는 지점에서, 통제되는 미약한 에너지를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극도의 환영을 차단하는 결합이 될 것이며, 이는 더 이상 ’사고 동일성이 아니라 ‘지각 동일성’을 모색하게 된다) 따라서 프로이트에게 전위는, 그가 특별한 다양한 1차 변주들을 연구했을지라도, 일반적 범위에서 정신적 유동성을 의미하며, 에너지와 관련된 가정, 정신분석학 경제 모델에 해당한다. '거쳐가기(transit)'는 환유적 질서를 따르고, 소위 사후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언어 속에 내려놓은 것, 그리하여 주체들(이 단어는 개인들뿐만 아니라, 약호 역시 하나의 주체이기에 그 영역까지 포함한다)은 그들 스스로, 1차 과정에 가까운 얽힘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지 않게 된다. 매우 흡사한 매커니즘의 환유. 약호의 역설. 분석에서 약호는 그 특성들을, 그리고 존재까지도, 상징작용의 총체적 집합에 빚진다(약호는 사회적이 만들기이다) 약호는 그 작용의 불활성적 결과물을 한데 모으고 조직하는 범주에서만 약호일 뿐이다. 그 약호의 활용의 예.

 

 

02. 누군가의 손은 붉게 물들고

 

 

신이치는 눈을 감고 다가오는 헤드라이트 정면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뛰쳐나갔다. 비면 같은 브레이크 소리가 공기를 잡아 찢었고, 눈꺼풀 맞은편이 새하얗게 빛났다. 신이치의 온몸에 그때까지 느낀 적도, 상상한 적조차 없을 정도의 충격이 스쳐지나가자 두 발 밑에서 땅이 사라졌다...그것이 신이치가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광경이었다. 시야는 완전히 어둠이 삼켜 버렸고, 목소리와 주변 소리도 전부 사라졌다.(p383~385)

 

 

신이치는 작은 경련 커다란 몸짓의 제스처로 ‘자살’의 이미지에 좀 더 다가간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관문. 금기된 역사의 반복적인 상황, 새로운 미지의 상황에 대해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참조하여 사고한다. 나는 그것이 꼭 새로운 사건을 낡은 언어로 은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그것을 통해 새로운 외견에 의해 숨겨진 반복적인 구조를 파악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양에는 역(易)이라는 사고가 있고 그것은 바로60년으로 순환하게 되어있다. 1990년 이후에는 말하자면 다시 한 번 반복의 패턴의 역사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대 일본의 문학은 전전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탈아라는 캐치플레이. 주기적인 반복은 형식에 관한 것이며 그 내용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형식적인 유사성, 자본주의가 가진 반복적 구조와 세계적인 국가의 관계구조. 반복성에 대한 예지. 미치오 슈스케는 1975년생이다. 그는 지금 이 반복적인 패턴의 활성화에서 보기 드문 감성으로 탈역사, 탈구조의 해체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다.

 

 

n*****m 2011.04.12.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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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아픔은 분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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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어린 아이들의 성장소설. 조금은 짜증나는 듯하면서도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소설. 아이들은 답답하거나 자신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을 때 종종 파괴적인 모습을 보인다. 올챙이를 터준다거나 죄없는 길고양이를 괴롭힌다거나 옆집 멍멍이에게 돌을 던지거나 지나가는 기차에 돌을 던져보거나...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는 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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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어린 아이들의 성장소설. 조금은 짜증나는 듯하면서도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소설.

아이들은 답답하거나 자신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을 때 종종 파괴적인 모습을 보인다. 올챙이를 터준다거나 죄없는 길고양이를 괴롭힌다거나 옆집 멍멍이에게 돌을 던지거나 지나가는 기차에 돌을 던져보거나...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는 한 아이, 어머니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한아이가 사람들 몰래 자신들만의 아지트에서 소라게를 꺼내 불에 태우며 그것을 하나의 의식으로 삼고 소원을 빌며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가려 한다.

 

어느순간부터 소라게를 꺼내 태우면 자신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자 급기야 말을 꺼내서는 안되는 소원까지 빌고 만다. 어린시절의 철없는 마음일수 있으나 그 아이들에게는 절실하고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하는 그런 소원이겠지만.

 

전체적으로 잔잔하면서도 아이들의 세밀한 감정들을 표현해주고 있다.

 

몸 전체가 심장이 되어 두근두근 고동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고동에 맞추어 눈앞에 펼쳐지는 한낮 풍경이 깜박거린다. 아무것도 잘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자신만이 뒤처진다. 밝은 풍경이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데도, 신이치는 그것이 자신과 전혀 관계없다는 생각이 들어 견딜수가 없었다. 이렇게 싫은데도 이렇게 숨이 막히는데도, 낯빛 하나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

 

친구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마음, 엄마의 원수라는 생각으로 분노를 가진 아이의 마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아이들의 그런 마음들을 표현해 냄에 있어 이것저것 그럴싸한 사물을 집어넣고 너무 빙빙 돌려만든다는 느낌이 적지 않다. 읽는동안 뭐 그렇군 어릴때는 저럴수 있지 하면서도 너무 무엇인가 그럴싸한 표현에 빚대어 문장을 만들어내는 느낌이 들어 질질 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c*******9 2011.05.07.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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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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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암으로 여윈 뒤 할아버지와 엄마와 살고 있는 신이치는 학교에서 왕따까지 당하자 마음을 둘 곳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그런 슬픔 마음을 털어놓을 곳마저 여의치 않다. 아버지 대신 돈 벌이를 하느라 바쁜 엄마, 오래전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뒤 말이 없어진 할아버지가 아무리 신이치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의 심정을 알아차리기엔 무리니 말이다. 다행히도 반에서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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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암으로 여윈 뒤 할아버지와 엄마와 살고 있는 신이치는 학교에서 왕따까지 당하자 마음을 둘 곳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그런 슬픔 마음을 털어놓을 곳마저 여의치 않다. 아버지 대신 돈 벌이를 하느라 바쁜 엄마, 오래전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뒤 말이 없어진 할아버지가 아무리 신이치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의 심정을 알아차리기엔 무리니 말이다. 다행히도 반에서 그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는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그가 하루야다. 그 역시 신이치와 마찬가지로 전학 온 학생으로 사투리 억양을 고치지 못한 그를 반 아이들은 멀리한다. 한 반의 두 이방인으로 통하는 것이 있었던 둘은 학교를 마치면 바닷가로 나가 자신들이 고안한 블랙홀이란 덫을 살펴본다. 간단하게 페트병으로 만든 함정에 빠진 게나 가재, 작은 물고기나 멸치등을 건져오는 것이다. 처음엔 무엇을 잡았을까 호기심에 시작된 둘의 물고기 잡이는 곧 잡은 소라게를 가지고 불로 지져 소원을 비는 의식으로 발전된다. 둘만의 의식을 치르면서 점차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가까이 지내다보면 알고 싶지 않은 사실도 알게 되는 법, 신이치는 말이 없는 하루야가 부모에게 학대받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굶기는 것도 모자라 종종 때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이치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어하나, 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속이 상한다. 그저 소라게를 지지면서 소원을 빌어볼 밖에...

 

그런 둘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은 학교의 퀸 카인 나루미다. 부잣집 딸인 그녀는 신이치의 할아버지와 관계가 있다. 할아버지 쇼조가 모는 배를 탔다가 나루미의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 때문에 자신을 멀리할거라 짐작한 신이치는 오히려 그녀가 친절하게 다가오자 어리둥절해 한다. 우연이 둘이 산책 하게 된 날 이후로 신이치의 책상안에 쪽지가 날라든다. 둘의 관계를 비방하는 유치한 내용이었지만, 그것이 계속되어 가면서 신이치는 점차 기분이 나빠진다. 축제에 다녀온 뒤 춤을 추는 나루미와 마주친 신이치는 하루야와의 비밀 아지트에 그녀를 초대한다. 처음 자신을 배신했다는 듯이 바라보던 하루야는 점차 나루미에게 익숙해진다. 함께 모여 소라게를 지지는 의식을 하게 된 셋은 이제 무엇을 소원으로 빌까 궁리하기에 이른다.

 

한편 엄마의 밀회 장면을 목격하게 된 신이치는 그 상대가 나루미의 아빠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엄마가 벌써 아버지를 잊었다는 것도 충격이구만, 하필이면 그 상대가 자신의 친구의 아버지...신이치는 사람 좋아보이는 나루미의 아빠가 밉기만 하다. 어느날 감정이 고조된 신이치는 소라게를 향해 나루미의 아빠를 없애 달라고 부탁하는데...

 

아버지를 잃은 후 가뜩이나 마음이 스산한 소년이 엄마의 연애를 목격하면서 생기는 불안한 심리를 그려낸 소설이다. 초등학교 특유의 감정들을 섬세한 필체로 그려낸 것이 특징으로, 데뷔 이래 인간의 사악함을 특이한 시선으로 다루던 작가의 전작들에 비교하면, 그나마 가장 대중적으로 순화된 작품이 아닐까 한다. 그 때문인지 일본 최고의 문학상이라는 나오키 상을 거머쥐었다고 하던데, 어린 아이다운 감수성이 부족해서 그런가 상을 받을만큼 대단한 소설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어찌보면 지극히 일본적인 감성이라 한국인인 내가 이해를 못하는지도...일본에서는 2011년 최대 화제작이라고 하니 말이다. 뭐, 그건 다른 나라 이야기니, 나완 상관이 없고... 비위 약한 사람은 안 보는게 좋을 듯한 그로테스크, 엽기, 변태심리를 독특한 시선으로 그려내던 작가가 다소 그 정도를 약화 시켰다는 점은 환영할만하다. 덕분에 완성도 적인 면에서는 다른 작품에 비해 탄탄해 보였다. 줄거리가 자연스럽게 흘러가 억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뜻. 하지만 그럼에도, 꼭 이 책을 보십사 , 안 보면 손해다 할만큼 재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마도 미치오 슈스케 자신이 아직까진 매니아층에게 먹히는 글을 쓰고 있는게 아닐까 한다. 그래도 작가가 대중적인 벽을 허물은 듯 보이니 ,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a*******0 2011.04.27.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