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처럼 아름답고 내가 이끄는 데로 움직이는 여인, 올랭피아 내 오감을 자극하고 정념을 들끓게 하는 여인, 줄리에따 내 귓가에 언제나 머무르는 감미로운 목소리의 여인, 안또니아
1989년 가수 변진섭의 2집 앨범속에 수록된 노래 "희망사항"의 내용을 들어보면 한 청춘남의 여성로망 스토리가 주욱 나열된다. 뚱뚱해도 다리가 예뻐서 짧은 치마가 어울리는 여자, 김치볶음밥을 잘 만드는 여자, 웃을 때 목젖이 보이는 여자, 내가 돈이 없을 때에도 맘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자,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등등 해당사항 전혀 없는 한 여자이지만 들으면 참 재미있지 않은가. 마지막 촌철살인격 한 여자의 충고에 박수를 치고 마는 엔딩까지 정말 죽여주는 가사였다. 여보세요 나 좀 잠깐 보세요. 그런 여자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난 그런 남자가 좋더라.....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 Les Contes d'Hoffmann>의 내용도 대중가요의 내용처럼 비틀어서 이해해 보면 접근이 쉽겠다는 생각에 서문을 이렇듯 정리해보았다. 오페라는 어렵다는 생각 버려야 한다? 이런 명제는 보편적이지 않아서 성립할 수도 성립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오페라는 그리 쉬운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개인은 저마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형성된 기호나 취향은 언제나 독특하고 생경하다. 그래서 자신의 분야에 관심을 갖고 길게 듣고 길게 보고 길게 생각해야 접근이 되고 나름의 생각과 별거아닌 재미나마 느낀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일반적이지 않아서 생소하기 그지없는 오페라 한편한편을 정리할 때마다 서술적이고 이론적인 나열은 피하고 싶다. 어디선가 본 내용을 자신의 생각과 무관하게 옮겨 적는 일도 하고 싶지 않다. 살아있지 않은 내용이기에 쓰기 싫다. 기본이 되는 객관적인 이론을 익혀서 내 감성에 부합하는 글로 전환하는 일이야말로 살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펜바흐의 이 오페라처럼 복잡한 관계와 인물이 등장하는 오페라는 이론적인 내용만 듣고 들으면 뭐가 뭔지 모르게 되고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결국은 가위로 삭둑 자르듯 귀를 닫아버리는 일이 되고 만다. 그래서 편안한 주변의 에피소드인 발라드의 가수 변진섭의 "희망사항"을 불러들였다.
남자의 로망을 한 몸에 갖고 있는 여자, 극에서는 호프만의 회상속 세 명의 여인들을 예로 들지만 현실에서의 한 여인이 바로 그 세 명을 대변하고 있으며 결국 내 사랑은 바로 그녀뿐이라는 순애보적인 결말에 이른다. 대부분의 사랑속에는 질투와 경쟁이 존재한다. 회상속의 세 여인에게는 그녀들의 결점을 돌보거나 보살피는 호프만의 연적이 등장한다. 세 남자들, 인형 올랭피아를 제작한 남자 ; 코펠리우스, 창녀인 줄리에따의 포주인 마술사 ; 다베르투트, 몸이 불편한 가수 안또니아의 의사 ; 미라클이 바로 그들이다. 호프만이 사랑하는 현실 속의 여인인 스텔라는 오페라 가수이다. 그의 현실의 연적은 돈많은 정치가 린도르프의원이다. 이 네 명의 여인들은 무대에서 한 가수가 연주하기도 하고 네 명의 남자들 역시 한 가수가 연주하기도 한다. 복잡한 인물 설정때문에 혼동되기도 하지만 내용의 이해는 이 정도하면 오페라 보는데 큰 지장은 없어 보인다. 오펜바흐(1819 ~1880)는 <지옥의 오르페우스>등 오페레타 작곡으로 당시 파리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성공을 거두었지만 다년간의 쌓인 과로로 인해 건강이 쇠악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픈 마음에 착수한 작품이 바로 <호프만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의 완성 직전 죽음을 맞이했고 그래서 최후의 완성은 에르네스트 기로(1837~1892)에 의해 이루어졌다. 독일의 낭만파 작가인 에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만(1776~1822)의 몇가지 소설의 자유로운 소재를 모아 옴니버스 형태로 작품을 구성한 오펜바흐는 오페라화를 위해 그의 병든 육체에 매질하듯 몰두했다고 한다. 원작에서 느껴지는 괴기스러움을 간직하면서도 오펜바흐 특유의 경쾌함과 다분히 환상적인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 잘 아려진 아리아로는 인형 올랭피아의 콜로라투 아리아, 소프라노 조 수미가 부채를 들고 인형 연기를 하면서 부르는 아리아로도 유명하다. 또한 독립적인 곡으로도 연주가 가능한 바르카롤르 (뱃노래)은 아마도 들으면 아하~~할 수 있는 곡이다.
나탈리 드세이의 올랭피아
안나 네트렙코와 엘리나 가랑카가 부르는 Belle nuit, O nuit d'amour, 바르카롤르
총 5막 구성으로 1막과 5막은 현실의 호프만, 2~4막까지는 호프만이 회상하는 장면으로 이 오페라의 주요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세기 뉘른베르크의 루테르 술집에서 시인 호프만은 자신의 이루지 못한 세 편의 사랑이야기를 하겠다고 하자 듣고 있던 주점의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반가워한다. 첫사랑은 바로 올랭피아, 인형이 망가지는 바람에 결국 사랑도 깨지고, 또다시 베네치아 풍경의 환락가에서 뱃노래를 부르는 창녀 줄리에따의 관능미에 취한 호프만은 정념에 휩싸이며 그녀에게 접근하려 한다. 나를 갖고 싶다면 거울에 비친 당신의 그림자를 내게 주세요라고 말하는 줄리에따, 요부에 홀린 호프만은 그림자도 넋도 생명도 다 주겠노라고 맹세한다. 그러나 이도 역시 그녀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연적에게 속임을 당하고 절망한다. 두번째 사랑도 실패! 세번째 남은 여인은 가수 안또니아, 하지만 가슴병-아마도 심장병이 아닐까-노래를 부르면 병세가 악화되는 이유로 의사인 미라클은 자제를 시키지만 호프만이라는 남자와의 만남을 알고 그들의 사랑을 질투한다. 심지어 그녀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재촉하고 결국은 죽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사랑이 참 무섭다.
테너 프란치스코 아라이짜, 베이스 사무엘 레미, 소프라노 제시 노먼, 세릴 스투더의 명연주로 듣는 호프만 이야기, 슬픈 내 사랑 이야기는 들으신 바와 같습니다. 환상속에 그대는 깨졌지만 현실의 사랑 스텔라만이 오직 이 세 명의 여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사랑임을 외친다. 지금은 오직 술이 필요한 때, 마시자! 진실이 보이지 않던 호프만을 향해 은근히 꽃한송이 던져주고 극장을 나가는 스텔라를 뒤로 하고 기나긴 무대의 전막이 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