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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멋진, 아니 이제 더 깊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월드 워 Z>(World War Z/2013)라는 영화가 있다. 공포영화의 단골객인 좀비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당시 꽤 흥행한 것으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스라엘 외곽에서 높디높은 장벽을, 그야말로 개미떼처럼 달려들어 시내로 넘어가는 좀비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영화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제목에서 보여주듯, 좀비와 지구인(!)과의 목숨을 건 사투가 주된 줄거리이다. 나는 좀비 소설, 좀비 영화를 이렇게 해석한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자본주의가 낳은 배제와 차별, 억압과 불평등이, 다름 아닌 좀비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영화의 결말을 보면 어쩐지 나의 가설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닌가 어느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이웃들을,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닌 ‘타인’, 배제해야 할 그 ‘무엇’으로 규정해 버린다. 어쩜 이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 노동자, 탈북인 등 모두를 대한민국 내부의 ‘좀비’로 규정하여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끔이면서도 또 자주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꼭 그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을 극심한 정신적·물리적 폭력으로 대하는 정부와 이를 추종하는 세력들을 볼 때, 나는 과연 그들이 유가족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지금 메르스와 관련된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잘못과 책임은 정작 누구에게 있는지 헤아릴 생각도 않고, 길거리에는 ‘좀비’를 피하고자 하는 군중들뿐이다. 마스크가 상식을 가릴 수는 없을 텐데, ‘나라도 살고 보자’는 또 다른 폭력이 제2의 피해자들을 낳고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영화에서 좀비 바이러스의 근원지로 다름 아닌 한국이 지목된다. 때문에 주인공은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으로 향한다. 다름 아닌 평택의 미군 기지다. 참 의미심장하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북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혀 있는 이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북의 상황은 어떤지 묻는다. 그 대답이 기가 막히다. 북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왜냐고? 모든 인민들의 이를 뽑아 버렸거든.” 여기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어쩜 나만 느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북에 대한 미국의, 서구의 뿌리 깊은 적대감과 조롱이다. 이미 북은 미국의 ‘사랑스러운’ 주적이 된 지 오래다. 백악관을 북의 특수부대가 점령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부터, 최근 김정은 위원장을 풍자한 영화 등에서 볼 수 있듯, 마치 북이 미국과 세계의 안보에 가장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국가라도 되는 것 마냥 떠든다. 구 소련, 이라크, 쿠바, 시리아, 아프간 등등 과거 미국의 주적들이 사라지거나 그 힘을 잃은 후, 다행스럽게도 미국이 발견한 주적은 ‘북’이었다. 이를 북 지도부가 자랑스럽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서글프고 웃지 못 할 블랙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좀비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전 인민의 이를 뽑아버릴 수 있는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미국은 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북의 전체주의? 독재? 폐쇄성? 무지? 억압? 차별?(어쩐지 미국에게도 해당되는 것들이 많아 보인다) 어찌 되었든 긍정적인 면은 전혀 없을 것이다. 정작 탄저균과 같은 메르스보다 몇 배는 치명적인 균을 인위적으로 한반도에 들여온 이들이, 북을 이따위로 묘사한 것에 다만 분노를 느낄 뿐이다.
하지만 북의 보건의료 시스템, 의료체계가 현재 상당히 허약하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남북의료협력이 잠시 이뤄졌던 시기에는 그나마 미약하게나마 개선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버겁다. 결핵으로 인해 해마다 약 2,500명의 주민들이 사망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전문가는 실상 그보다 10배는 될 것이라는 우울한 분석을 내놓는다. 때문에 북은 외부로부터의 전염병 유입을 막기 위해 더 고심할 수밖에 없다. 에볼라 창궐 당시 북의 조치에서도 알 수 있듯, 일단 철저한 차단이 급선무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정부는 그 첫 단계를 태만하여 지금 이 꼴이 난 것 아닌가. 때문에 앞으로 당분간 북은 남쪽으로부터의 그 어떤 유입, 방문을 차단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보기에 이미 우리는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우울하다. 6·15의 뜨거운 상봉이 불투명해진 지금, 때 아닌 외부 질병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또 다시 흔들리고 있다. 광복 70주년이라는 명분도 이미 빛이 바랬다. 아마도 북은 남측의 대통령이 6·15공동선언 15주년 기간에 미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우리의 ‘진정성’을 파악했을지 모른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히 북도 이해하기 어렵다. 남북관계 개선에 의지를 거듭 표명한 대통령이 정작 6.15선언 15돌에는 미국으로 가버리는 상황. 어느 천치가, 어느 반편이가 진정성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남북관계에 대한 안타까움이 깊어만 가고 있는 와중에, 김규동 시인이 떠올랐다. 책은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6개월 전 펴낸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회상 문집이다. 함경북도 종성 출신인 시인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니다 1948년 홀로 월남했다. 그리고 1950년대 초 박인환, 김경린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하여, 당시 전통 보수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 인물이다. 시인 김정환은 김규동 시인의 시를 “숱한 ‘민중시’들과 정반대로 시 순정 자체를 심화, 통일의 열망조차 순정의 극치로 전화했다”고 평가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죽어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어쩜 희떱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나름의 시를 쓰며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어리석은 모든 몸짓도, 때론 활활 타오르는 뜨거움까지도 모두 한 구절 한 구절 시가 되어 흘러가는 것. 그마저 서럽게 턱턱 막히더라도, 그럼에도 터져 나오는 것. 나는 그것이 시라고 믿어왔다. 그렇다면 우린 지금 참으로 서러운 시를 써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김규동 시인은 평생 ‘살기 위해’ 시를 써내려갔다. 스스로 “혼돈과 무질서, 허위와 광기의 시대를 용케도 시라는 무기가 있어 그나마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시는 존재 이유였고 삶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시인일 수 있어 행복했”다는 김규동 시인. 그는 시대의 아픔과 불의에 눈 감지 않았던, 약자와 가려진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던 ‘시대를 배반하지 않은 선비’였다. 아울러 그는 전쟁으로 헤어진 어머님을 눈 감는 날까지 그리워했던, 실향민이었다. 고향집 앞 느릅나무를 생전에 꼭 한 번 다시 보기를 바랐던, 아름드리 그 나무에 기대어 그리운 고향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 했던, 천하의 ‘불효자’였다. “울고 다시 헤어지는 만남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분단의 슬픔과 비극을 두 번 겪어보는 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저는 금강산에 갈 생각을 못합니다.” 이 구절에서 어쩔 수 없는 울컥함에 잠시 머뭇거렸다. 과연 시인의 이 처절한 하소연 앞에 남북의 권력자 중 그 누가 감히 당당할 수 있을까. 지금도 서러운 눈을 감고 있는 이산가족들 앞에, 도대체 그 어떤 고귀한 명분으로 변명 따위를 늘어놓을 수 있을까. 시인은 전쟁의 참상과 도시문명의 삐뚤어짐을 비판한 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잠시 동안일 뿐이라 믿었던 이별이 영영 이별이 되어버린 분단의 아픔 앞에서 한없이 목 놓아 울었던, 그 피울음을 원고지에 꾹꾹 담아냈던 ‘분단 시대의 시인’이기도 하였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시대, 사람의 감정과 추억, 사랑과 우정마저 금액으로 계산하고, 예측하고, 평가하는 시대. 감정을 팔고 사는 추레한 시대. 이 땅을 살아가는 ‘분단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해야 할 통일과 남북화해의 노력마저, 계산기를 두드리고, 굳이 ‘대박’을 이야기해야 그나마 귀 기울이는 이 시대는 분명, 김규동 시인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 이 땅의 모든 이산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있다. 아주 부지런히, 오랫동안 말이다. 아울러 그럼에도,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속울음을 눌러가며 걸어온 이들에게, 차가운 소주 한 잔에 비친, 그대의 뜨거운 눈 속에 비친 서러운 이 땅을 위해 오늘도 평화와 통일의 시를 써내려가는 모든 이들에게, 몸둘 바 없는 고마움을 가져야 마땅하다. 메르스도, 에볼라도 그 어떤 것도 지금 한반도의 분명한 잘못됨을 합리화할 순 없다. 이 땅에 살았던 김규동 시인은, 딱 그이만으로 족하다. 이제 시인들은 사랑을 노래하고 평화를 말해야 한다. 서러움 대신, 눈물 대신, 어울림과 함께 걸어감을 노래해야 한다. 그들에게 시를 돌려주어야 한다. 광복 70주년을 그야말로 빈껍데기로 만들고 있는 이 시대에, 내가 바라는 한 가지이다. 삼팔선 넘어올 때 딱 3년만 남쪽에서 공부하고 돌아오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벌써 수십 년이 지나갔지 뭐예요. “어머니, 3년만 있다 올게요.” “그래, 몸조심하고.” 어머니와 나눈 마지막 대화입니다. 불효자식도 이런 불효자식이 없을 거예요. 왜 말들 하잖아요. 기쁜 일이 있으면 마누라를 찾고 슬픈 일이 있으면 어머니를 생각한다고요. 제가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그립습니다. - 48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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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깃해지는 얘기들이 있다. 여우 이야기, 귀신 이야기, 밝혀지지 않은 미궁의 전말있는 이야기... 이런 얘기들은 책을 읽는 것 보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어야 더 감칠맛이 난다. '정말? 그래서 어떻게 됐어?' '왜 그랬대?' '설마...그랬을라구?' 이런 추임새가 이야기 대목 대목마다 들어가면 이야기는 풍성해지고 상상력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얘기는 나보다 어린 사람보다 많은 경험과 오랜 시간을 걸어 온 윗 사람에게 듣는게 훨씬 재밌다. 그 분들이 지나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자라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주어야 잘 전달된다는 걸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 분들 역시 궁금하게 여겼던 일인지라...듣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는 까닭일 것이다.
'나는 시인이다' 아흔을 바라보고 있는 김규동 시인의 발자취를 담은 자서전 형식의 시에 대한 얘기다. 시인의 시를 향했던 열망의 시간들에 대한 보고서 처럼 읽히기도 하고, 시로 인해 변화된 삶과 시로 맺은 인연들, 시를 쓸 수밖에 없는 격정의 시간들에 대한 회고록 처럼 읽히기도 한다. 시에 대해 워낙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시를 많이 읽지 않아서 이 책을 보기 이전엔 부끄럽게도... 김규동 시인을 알지 못했다. '김규동'이라 읽으면서도 '김동규' 시인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라...책을 받고 표지에 실린 사진을 보며 이렇게 나이가 드셨었나? 내가 기억하는 그 시인이 아닌것 같아...했었다. ㅠㅠ (내가 기억하는 그 시인이 아닌 게 맞았으니 다행이랄까...^^;)
구어체로 풀어가는 시인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금방 솔깃했졌다. 어릴적 할아버지들이 손주를 앉혀 놓고 밤이나 고구마를 까 주면서.. "할애비가 어렸을 땐 말이다...."하며 조근조근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풍경이 그려졌다. 그 목소리가 정말로 들리는 듯했다. 쓴 글을 읽는 게 아니라,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서, 눈에 걸리지 않는 글은 귀로 바로 전달 되는구나를 느꼈다.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부터 시인을 꿈꾸며 만난 기라성 같은 역대 시인들의 개인적인 친분, 대한민국에서 시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낀 애증어린 감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 들려주 듯 적었다. 적은 글들이 말이 되어들리니... 정말 그랬나요? 설마요? 이런 질문들을 혼자하게 되더라.^^ 개구장이 어린시절의 낙재생에서 경성고보를 거쳐 김일성 대학에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는 분명,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들릴 수 있는 얘기임에도 경직된 훈화처럼 들리지 않아 따뜻한 격려의 메세지로 읽힘도 참 좋았다. 김기림, 천상병, 박인환, 김수영...이름만 들어도 앗!! 싶어지는 한국문단의 별로 반짝이는 대시인들과의 개인적 친분에서 생긴 에피소드들도 너무 재미있어 그 분들의 삶이 짐작되어 그 분들의 쓴 시가 더 끄덕여지며 다가왔다. 책 중간중간 김규동 시인의 시도 첨부했는데, 시 속에 나타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두고 온 부모형제에 대한 사무침이 절절해 느닷없이 통일에 대한 염원이 절실해졌다면 믿을런지?
내가 여태껏 김규동시인을 몰랐던 건 그의 시가 알려지지 않았기때문이 아니라 내가 시를 너무 읽지 않았다는 게 이 책을 통해 다시 반성하게 되었다. 시인의 고향 집 우물가 느릅나무의 안부를 묻는 대목에선 그만 짠...해져서 이 노시인이 정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통일이 될 때까지 살아서... 아름드리 그 나무에 기댈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어린시절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솔깃한 옛날 얘기 듣는 마음으로 읽다 보니 이야기는 어느새 끝이다. '정말 재밌었는데...또 해주세요!!' 조르고 싶은 심정이다. 시를 쓰는 사람이 읽으면 더 좋겠지만,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이 읽어도 참 좋다. 시에 대한 시인이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이쯤되어야 시를 쓴다고 얘기를 할 수있겠구나..하는 예들을 듣고 배울 수 있어서다. (이만한 열정없이는 시 쓸 생각 말아야한다는 질책도 들려 약간 움찔해 지기도 한다.ㅠㅠ)
아무튼, 또 한 분의 시인을(이제서야 ) 알고 봄은 깊어간다. 오래오래 건필하시기를..꼭 고향의 느릅나무에게 안부를 전하시기를..책 표지의 사진을 보며 글 아닌 얘기로 들었던 것처럼, 나도 큰 소리로 전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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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동 시인. 아무래도 시보다는 소설을 많이 읽는 내게 시인은 익숙치 않다 보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소개에 이
책 표지를 보면 시인이 붓글씨를 쓰고있는것이 보일 것이다. 이 사진에도 나와있듯이 시인은 서예를 즐기는데 이 표지의 '나는 시인이다'라는 글씨도 시인의 작품이라고 한다. 시인은 중간에 자신의 글씨가 시인의 아버지를 따라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글씨는 무엇보다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해준다고 한다. 이 말처럼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물론 글씨가 시인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정말 시인 그대로를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 처럼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한번 표지의 글씨를 본 분들은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시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설명하듯이 말 하는데 글을 읽으며 문체덕분일지도 모르지만 굉장히 부드럽고 잔잔함을 느꼈다. 어릴적 내가 상상했던 시인의 모습과 달리 시인은 굉장히 장난꾸러기 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날 글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시인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인의 출생지는 함경북도, 즉 북한인데. 여기서 나는 또 내가 가지고 있던 또 다른 편견이 깨졌다. 물론 사회주의가 나쁘다는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책에서의 사회주의 이미지와 북한의 이미지가 나쁜쪽으로 굳어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회주의자들은 나쁘다는 인식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시인이 만난 유채룡 선생과의 이야기를 듣고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초기의 사회주의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온 사상이 아니었던가. 유채룡 선생은 김규동 시인에게 '문학하는 사람은 친일파, 자유주의자, 공산주의자의 저술도 광범위하게 읽어야 한다. 문학은 인간학이다.'라고 말한다. 다들 알겠지만 이 시기는 냉전이 일어나기 전이지만 여전히 사상의 대립이 심했던 시기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채룡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는것에 굉장히 새로웠고 무언가의 감동이 밀려왔다. 시인에 따르면 전쟁 때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연합군에게 밀릴때 다른 인민군은 병원의 값나가는 의료기구들을 다 챙긴데에 비해 유채룡 선생이 있었던서울대 병원만은 현미경 하나도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대로 둬라. 한 사람도 데려가지 마라. 남아서 인민을 치료하는 데 복무케 해라. 단, 다시 만나기로 하자. 이게 인사다." 정말 이런 사람이 북한의 지도자였다면 어땠을지, 한 번 조심스레 상상해 보았다. 아니, 이런 사람이 대부분의 공산주의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어땠을지. 인간대 인간으로서 사상을 떠나고 정말 멋진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책 후반에 가다보면 시인과 같은 시기를 살았던 유명한 시인에 대해서 나온다. 예를 들어 시인의 선생님 이었던 바다와 나비로 유명한 김기림 시인이나, 귀천으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 박인환 시인, 김수영 시인 등.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정말 김규동 시인이 부러웠다. 우리는 단지 그들의 유명한 시를 책으로만 몇 개 접하지만 김규동 시인은 같은 시대를 찾아가면서 우리처럼 책으로 시를 접하는것이 아닌 직접 시인을 접하고 직접 시인을 접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모르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나는 그것이 너무나 부럽다.
하지만, 나는 만족한다. 이 책으로 인해 내가 간접적으로나마 김규동 시인의 수 많은, 깊은 경험들을 느꼈다는것이 너무나 기쁘다. 너무나 즐거웠고 새로웠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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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다』를 읽고 역시 원로들은 대단하시다. 보통 사람들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그런 경외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을 다루는 시인이기 때문에 더더구나 글 하나하나에 내뿜는 독특한 향기에 듬뿍 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공부해야겠다는 단단한 의지와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단단한 각오를 여러 곳에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것을 볼 때 내 자신 비록 나이 오십대 중반을 넘어섰지만 많은 면에서 부끄러움과 함께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어 매우 행복하였다. 특히도 어렸을 때의 생활을 스스럼없이 밝혀 나가는 내용들은 많은 부분들이 내 자신이 어렸을 때의 모습을 많이 상기할 수 있어서 정말 오래 만에 옛 생각을 떠올리게 하면서 정과 사랑이 넘치는 친구들과 부족하지만 자연을 벗 삼아 놀이를 하였고, 산이나 냇가, 평야, 흙길 등 많은 자연물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오랜 추억들을 다시 떠올릴 수가 있는 시간들이 솔직히 대도시에서 직장에 바쁜 시간들을 보내는 현대인에게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독서 기회를 통해서 최고 원로 시인으로부터 듣는 잔잔한 추억 이야기는 바로 우리 조상들, 아니 우리 부모님 대, 그리고 나이들은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겪었던 바로 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꿈을 가질 수 있기에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면서, 과거의 경험 속에서 내일을 설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바로 이 책은 한국 시단 최고 원로인신 작가가 살아 온 팔십 평생 중에서 주로 유년기에서 청년기까지의 다양한 체험과 에피소드들을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문장들로 그리고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 후반과 해방 직후의 북한, 그리고 6.25 전란기와 전후 남한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정말 하나에서 열까지 직접 저자가 체험한 것이기에 실감이 났다. 역시 좋은 글은 각자의 체험이 큰 바탕이 된다는 말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내 자신도 하나의 꿈을 갖고 있다. 저자와 같이 이런 식으로 책을 만들어볼까 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기에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어렵지도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은 나 자신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하겠다. 독자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책을 그리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많은 감동과 함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느껴지는 감정이다. 역시 좋은 책은 우리 인간들을 삶의 방향을 설정케 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하였다. 인생과 문학과 시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모처럼 우리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이 되어 뜻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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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첫 기억하면 떠오르는 사물이 있다. 분홍색 약혼반지통, 노란색 오리 장난감, 파란색 기차 장난감 등이 내 이른 기억 속의 사물들이다. 원로시인 김규동이 들려주는 유년시절은 작고 볼품이 없는 당나귀와 얽힌 추억으로 시작한다. 1930년대 함경북도 종성에서 보낸 야생의 유년기는 오늘날 유치원생들의 온실 속의 삶과는 천지차이일 터이다. 완전히 색다른 동심의 세계는 기억과 상상력의 차이, 나아가 시상과 정서의 차이를 불러 오기 마련이다. 저자의 말대로 “추억의 저장고가 풍년”이다. 당나귀, 소와 말, 자전거를 타고 노는 저자의 모습에서 발랄한 장난기와 당돌한 고집이 느껴진다. 병원장의 말썽꾸러기 아들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기에 훗날 분단으로 얼룩진 오랜 타향살이와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지 않나 싶다. ‘톰 소여’처럼 밖으로만 쏘다니던 어린 말썽꾸러기는 문학청년이던 사촌 형의 지도로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게 된다. 그리고 희망사항으로 선비가 되고 싶어한다.
“선비, 선비가 되고 싶었어요. 선비가 별거겠어요? 문장과 글씨에 재능이 있고, 나라와 민족을 생각할 줄 알고,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며,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내는 게 선비죠. 전 남들이 알아주는 부자는 못 됐어도 시대를 배반하지 않는 선비노릇은 감당했다고 봐요.”(67쪽)
저자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아픔과 민족상잔의 비극, 군사 독재와 민주화 운동, 물질만능주의에 빠져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을 노래했다. 내가 알고 있던 시인의 시는 <남한과의 대화>와 <하늘과 태양만이 남아 있는 도시> 단 두 편에 불과했다. <남한과의 대화>라는 시를 보면 민족분단의 비극과 타향살이의 감회가 잘 드러나 있다. “오늘 밤 어둠 너머 고향서/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전보가 와도 우린 못가네.// 이북친구는 기차가 없어 못가네/ 함경도는 멀어서/ 누님이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이 죽었대도 가보지 못하네.” 20년간 타향에서 이산가족으로 살아가는 김 시인이 고향의 가족들에게 느끼는 그리움과 애절함이 잘 드러나 있다. 시인은 이 책에서도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남동생에 대한 강한 그리움을 묘사하고 있다. <느릅나무에게>서도 고향 집 우물가 느릅나무를 떠올리며 “우리 집 가족사와 고향 소식을 너만큼 잘 알고 있는 존재는 이제 아무 데도 없다”며 실향민의 향수를 노래한다. 참고로 이 책에 등장하는 시는 시집 [느릅나무에게](창비,2005)에 수록된 것들이다.
위대한 시인은 자신만의 뮤즈가 있는 법이다. 저자가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시인의 길에 들어서게 만든 스승 김기림일까? 후반기 동인들일까? 아니면 대한민국 대표시인 김수영일까? 저자가 함경도 경성고보를 다닐 때 영어선생이던 김기림 선생과 연을 맺게 된다. 김기림에 대한 저자의 흠모의 정은 이 책에 유감없이 드러난다. 둘 모두 함경북도 태생이고 저자의 첫시집 [나비와 광장](1955)은 김기림의 시집 [바다와 나비](1946)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도 김기림처럼 시를 위한 시를 주장한 보들레르의 순수시학 또는 유미주의 시학에 반대한다. 일찍이 저자는 “시인이 홀로 현대문명의 소음을 피하여 화조풍월의 고향산천을 찾아 영구히 하향해서는 아니된다. 한 시대의 예술정신이란 그 시대의 가장 강렬하고 대표적인 저항정신이다. ”라는 말로 자신의 저항시학을 표현한 바 있다. 자고이래 시의 존재이유는 진리와 시대정신을 노래하는 것이다. 저자는 평생 민족분단의 현실과 학생운동, 노사문제 등 사회적인 문제를 형상화하면서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토대로 하는 사실주의적 민중시를 추구해왔다 한다. 가령 시 <하늘과 태양만이 남아 있는 도시>는 김기림과 김수영의 모던하고 사회비판적인 시선을 동시에 드러낸다. “몰아치는/ 검은 바람을 안고/ 섬의/ 공장 굴뚝들은/ 폐마처럼 숨이 가쁘냐.” 그리고 “슈—사인// 애수에 젖어/ 음향에 젖어/ 저물어 가는 태양 아래/ 아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간판이 커서 기울어진 거리여/ 아아 빛깔이 짙어 서글픈 도시여.” 우울한 문명병과 도회민의 어두운 정서가 강하게 다가온다.
이 책을 통해서 현대 시문학 영웅들의 자취를 보듬어볼 수도 있다. 저자는 1951년 박인환, 김경린, 이봉래, 조향, 김차영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했는데 동인들 가운데 유독 박인환(1926-1956)을 크게 기리고 있다. <목마와 숙녀>에서 절망과 허무를 애절하게 노래한 박인환은 한때 내게는 멋쟁이 시인의 모델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의 대표작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좋다. 명작은 정녕 시대를 초월한다. 김경린과 조향은 박인환보다 더 현학적이어서 저자의 시풍과 많이 다르다. 가령 조향의 <바다의 층계>는 형이상학적이고 회화적 이미지가 강하다. 동인들 외에도 김수영, 오장환, 한하운, 천상병, 박거영, 서정주 등 선후배 시인들과 얽힌 다양한 일화들은 이봉구의 수필 [명동백작]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다만 시인이 아닌 까닭에 이봉구와 전혜린이 등장하지 않을 뿐이다. 서울 명동을 무대로 자신과 조우한 문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스케치하고 있는데 천상병과 김경린의 서로 다른 시풍, 그리고 댄디 보이 박인환과 양계장 시인 김수영의 서로 다른 성격을 부각시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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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다. 자신이 시인임을 시인할 수 있는 그의 삶은 아름다웠다. 난 그의 삶을 통해 시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시인은 과연 무엇일까. 그의 책을 읽으며 과거 서정주, 박인환, 이상, 김수영 시인들이 몹시 그리워졌다. 시의 감성이 메말라가고 점점 시집을 보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요즘의 현실에서 그의 자선 에세이는 그 고귀함을 더욱 빛내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글을 썼다기보다 글이 걸어나왔다고. 1925년 함경북도 출생인 그는 분단의 슬픔과 비극을 몸소 겪은 시인이었다. 일제시대와 6.25전쟁부터 시작해서 분단의 과정, 그리고 쿠데타로 얼룩진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는 살았다. 그의 책을 통해 어두운 시대를 겪은 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정말 가치있는 시간이 되었다. 놀랍게도 김일성대학 출생인 그는 학교에서 마르크스나 레닌주의를 공부하다 진정 문학을 공부하고 싶고 시인으로서 살고 싶어 월남을 하였다. 자신의 가족을 두고온 채. 그는 미처 몰랐다. 영영 볼 수 없는 고향이 되고 이산가족이 될 것이라고.. 서울에서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돈을 더 받고 출판사에서 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되지만 결국 그만두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시인은 가난과 궁핍을 훈장처럼 달고 다녀도 문제지만, 돈이 너무 많아도 문제라고. 그는 뼛 속 깊숙이 영혼까지도 시인인 사람이었다.
삶을 떠난 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처럼, 그의 삶은 시였다.
그의 기억은 유년시절부터 시작해서 월남해서 서울로 오기까지 서울에서 시인으로 살기까지 자신의 추억들을 마치 자식을 무릎에 앉혀놓고 이야기하듯 딱딱한 문체가 아니라 부드러운 목소리로 덤덤히 들려주고 있었다. 그의 자서전을 통해 잘 알지 못했던 시인들의 사적인 이야기, 시인 이상, 천상병, 이용악, 박인환, 김수영 그리고 영화감독 신상옥씨까지..그들의 이야기도 마치 눈에 그려지듯 추억으로 다가왔다. 너무나 쉽게 시를 썼던 아이같았던 천상병 시인, 어려운 시를 썼던 박인환 시인,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시인 김수영. 고뇌하면 번뇌하였던 그, 그에게 시는 마치 숙명이었다고 한다. 모두 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한국 시문학의 전성기를 살아온 김규동 시인, 계속 그가 들려주는 시를 듣고 싶고 보고 싶다. 오래도록 그가 우리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 될까.
잊을 수 없던 그의 시를 읊어본다.
<아, 통일>
이 손 더러우면 그 아침 못 맞으리
내 넋 흐리우면 그 하늘 쳐다 못 보리 반백년 고행길 걸은 형제의 마디 굵은 손 잡지 못하리 이 손 더러우면
내 넋 흐리우면 아, 그것은 영원한 죽음.
별처럼 아름답던 윤동주 시인처럼 깨끗한 그의 감성이 느껴져 더욱 좋았던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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