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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 어려운 주제이다. 더군다나 자연과학을 배운 나에게 있어 서양철학이라고 함은 교양과목으로 배운 철학개론이 전부이기에 더욱 지난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반철학사라고 하니.. 선뜻 손이 가지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인간사랑에서 펴내는 반철학사 시리즈중 두번째로 출간된 이 책은 17세기 철학사에서 잊혀진, 버림받은 철학자들의 이야기이다. 흔히 18세기를 계몽주의 시대 혹은 빛의 세기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과거를 생각할 때,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등불 삼아 귀납적으로 생각한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기에 18세기는 빛의 세기가 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17세기를 위대한 세기라고 부른다. 그 시대를 위대한 세기로 만들어준 것들, 데카르트의 철학, 파스칼의 팡세, 그리고 고전주의의 이성과 기독교사상이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에 또 하나의 사상을 보탠다. 위대한 세기를 위대한 세기로 만들어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그들은 철학의 주류로부터, 아니 교회와 사람들에게서 비난 받고, 배척 당하고, 버림 받았지만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신이 아닌 바로 우리, 인간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고전주의 이성에 비해서도 더 이성을 확장하고, 활용하며, 비판적 지성을 자유롭게 실천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실천에 장애물로 인정된 종교를 비판할 때, 그들은 철학사에서 영원히 지워질 수 밖에 없었다. 위대한 세기의 위대한 철학자들로는 데카르트, 파스칼, 라신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위대함은 그들이 고전주의 이성을 내세웠다 할지라도 절대왕정의 시대였던, 엄격한 기독교주의 시대였던 당시의 사회적 틀에 짜인 규범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아니 이성만이 판치는 세상에서 비이성적인 사고란 아예 존재할 수가 없었다. 여기에 새롭게 태동하는 문화가 있었으니 바로 바로크였다. ‘찌그러진 진주’라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이 말은 처음에는 종교개혁에 맞서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에서 나온 예술을 뜻하며, 르네상스와 고전주의에 대조되는 미학적인 규범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7세기를 거쳐 18세기 전 유럽으로 확산된 바로크는, 고전주의적 규범을 무시하고 인간의 자유로운 영감과 상상력을 발휘한 예술가들과, 그의 작품을 재평가하는 과정에서 문화의 한 사조로 자리잡는다. 자유사상가란 당시 무신론자들을 다르게 부르는 말이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은 그리스의 에피쿠로스적 쾌락주의에서 암시 받고, 이성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육체의 해방과 유물론적 사고를 지향하였다. 그들은 신보다 인간에게 관심을 갖는 몽테뉴를 신중하면서도 정확하게 읽었고, 회의주의적 방법에 의존하여 주류철학계가 가지고 있던 편견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또한 로마 가톨릭의 교조적인 교리에서 벗어나 선과 악을 초월하는 윤리를 전개하였으며, 구조론적 유물론을 옹호하였다. 그들이 바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피에르 샤롱, 프랑수아 라 모트 르 베예, 샤를 드 생 테브르몽, 피에르 가상디, 시라노 드 베르주락, 그리고 바루흐드 스피노자 이다. 헌데 내가 알고 있거나 들어본 철학자는 스피노자, 단 한명 뿐이다. 쩝~ [지혜론]의 저자 샤롱은 철학사에서 명성이 형편 없다고 한다. 그의 삶과 작품은 도덕성과 정직, 그리고 일관성을 입증해 주지만, 또 많은 가톨릭 직책을 맡았고, 설교도 했지만 그는 무신론자였고, 신앙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방탕한 사람으로 회자 되었다. 그에게 있어 지혜는 기독교 신학에서 자유롭고,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자료에 의존하지만 이론이 아닌 치료를 위한 철학의 진정한 욕망을 실천하는 것 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존재의 목적은 정정당당하게 즐기는데 있다고 보았으며, 쾌락은 자연의 양념이며, 육체적인 쾌락은 잘 이해된 이성의 영역이라고 표현한다. 절제된 쾌락, 신중하고 양심적인 쾌락을 권유한다.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은 두 개의 세계 속에서 살았다. 외부적으로는 각자의 국가의 법과 관습을 존중하고, 종교와 현재의 정치를 함께 공유하며 이를 표명하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완전히 독립되어 온갖 윤리적, 현상학적, 정치적, 종교적, 세속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였다. 신은 신이 할 일이 있고, 인간은 인간이 할 일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베예와 테브르몽 역시 빛과 어둠이 교차한다. 그들의 공적인 생활은 빛이었지만, 생각과 사상은 철학적 어둠 속이었다. 이들 모두 가톨릭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직책을 맡았지만, 다양하게 변모된 쾌락이라는 인간의 삶을 신봉함으로써, 신을 조롱하는 무신론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이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교회에서 그들의 규범에 의해 배척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가상디는 스토아철학에 의해 왜곡되고 배척 받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복권을 시도하고, 시라노는 육체는 중요하고 환희의 장소라며 자유로운 삶만을 꿈꾸라고 한다. 생명론을 빌어 쾌락주의적 윤리를 옹호하고 있다. 유대인 이면서도 유대인 공동체에서 배척 당하여 자유로운 철학자가 될 수 있었던 스피노자는 에피크로스적 삶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러한 그의 삶은 세기말 계몽주의와 연결되면서 다음에 오는 계몽의 시대를 활짝 열어 젖힌다. 위대한 세기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었던 이들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들이 유물론자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철학은 끊임없이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 속에서 이어져 내려왔지만, 사회의 주류를 이르는 기독교는 결코 유물론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받아들이지만 못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철학사 속에서 잊혀질 수밖에 없었다. 반철학사라는 이 시리즈를 통하여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을 만나보았고, 이번에는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을 만나 보았다. 비록 어렵고 난해하기는 하지만 다음에는 어떤 철학자들을 만나보게 될지 자못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