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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랭크 카프라 감독이 1944년에 만든 <아세닉 엔 올드 레이스 Arsenic and Old Lace>는 뉴욕을 바탕으로 삼아 집안에 내려오는 핏줄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흑백 영화다. 캐리 그랜트가 보여주는 능청스러운 몸짓 하나만으로 즐겁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2. 뉴욕에서 드래머 비평가로 이름난 모트머 브루스터(캐리 그랜트). 혼자 살 생각에 <총각들의 지침서> 따위의 책까지 쓴 이다. 그렇지만 그도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만난 덕분에 혼인을 하게 된다. 그이 마음을 사로잡아 홀몸을 벗어나게 해주는 이는 목사의 딸인 일레인 하퍼(프리실라 레인)다.
일레인의 집 건너편에 사는 고모들께 인사를 드리고 일레인과 나이애가라 폭포로 구경갈 생각이다. 모트머는 일레인이 부는 휘파람 소리에 맞춰 집에서 빨리 나와 택시를 타고갈 꿈을 꾼다.
그런데 고모 집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트머와 일레인을 나이애가라 폭포로 쉽게 보내주지 않는다. 멀쩡하게 보이고, 남들한테 있는 것을 나눠주어 좋은 사람으로 알려진 고모들인 아비(조세핀 헐)와 마사(진 에다이어)가 엄청난 일을 벌여놓았기 때문.
방을 얻으려 온 늙은이들한테 비소와 청산가리를 넣은 포도술을 마시게 해서 저승으로 보내고, 테디 루즈벨트 브루스터(존 알렉산더)가 지하실에 구덩이를 파고 주검들을 옮겨 묻었다는 것. 착하고 사람 좋은 고모들이 왜 외롭고 늙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을까? 할로윈 날인 데다 혼인을 한 날이라 기쁜 날이어야 하지만, 모트머는 그저 놀랍고 어쩔 줄 몰라 헤맨다.
모트머 생각에는, 스스로를 루즈벨트 대통령으로 여기면서 나발을 시끄럽게 불어 마을 사람들이 싫어하는 맛이 살짝 간 테디를 정신병원으로 보내야 고모들이 더는 사람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테디를 정신병원으로 보내려 일을 꾸미는데, 스무 해나 넘게 집을 떠나 있었던 모트머의 말썽꾸러기 형 조나단(조니)(레이몬드 머시)이 집에 돌아오면서 일은 더욱 얽히고설킨다.
"빨리 집에 가는 게 좋겠어! 이 집에서 나가!" 오늘 혼인했으면서도 집안에 일이 생겨 같이 가지 못하자, 모트머는 벌어진 일을 일레인한테 알리지 못하고 그저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는다. 일레인은 기가 막힌다. "가긴 어딜 가요? 우린 혼인했어요. 같이 있어야지..."
3. 노래쟁이 서태지(정현철)와 배우인 이지아(김지아)가 미국에서 1997년에 아무도 모르게 혼인을 했단다. 그래서 요즈음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은 떠들썩하다. 그 때 사내는 스물여섯 살, 계집은 스무 살. 둘만 혼인식을 치른 뒤 같이 살다가 2006년에 헤어지고... 이제껏 아무한테도 밝히지 않고 홀몸이라 했다가 이지아가 위자료와 재산분할 소송을 하면서 드러났다. 둘이 사랑해서 같이 살았고 그러다 헤어진 일이라 그리 따질 일이 아니지만, 이름난 이들이라서 사람들이 그냥 넘어가 주지 않는다. "왜 이제껏 거짓말을 했느냐?"고 따진다.
모트머와 일레인도 비슷하게 피붙이들을 놀라게 했는데, 영화 속에서는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혼인하기로 했으면 피붙이들과 벗들이 보는 앞에서 축하를 받으며 해야 할 텐데, 그게 아니다. 그냥 두 사람이 혼인을 증명해주는 곳에서 하고 만다. 모트머를 키워준 고모들이나 일레인의 아버지도 없는 곳에서 할 수가 있을까? 집안에서 하지 말라고 말리는 것도 아닌데... 고모들이 죽은 이의 장례식엔 꼭 함께 하는 것을 보면, 더더구나 앞뒤가 조금 맞지 않는 대목이다.
혼자 살기를 바라던 모트머가 일레인과 같이 살기로 한 것도 조금은 엉성하다. 까닭을 밝히지 않고 그냥 일레인과 엮이고, 결혼증명소를 뛰쳐나오면서는 일레인한테 다른 말을 한다. "내가 어떻게 혼인해...나는 총각의 상징이라고...사랑이란 말을 싫어해서 혼인을 반대하는 글을 얼마나 많이 썼는데...결혼은 미신이야...유행이 지났다고...그런데 내가 브룩클린의 목사 딸과 혼인하다니..."
집안의 내림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석이다. 고모들이 사람들을 죽였고, 형 조나단이 돌아다니면서 또 사람들을 죽였고, 테디는 맛이 가서 엉뚱하고... 이런 게 다 핏줄 탓일까? 그냥 집안 내림으로 받아들이면 될까? 또 다른 사람들 곁에 있지 못하도록 고모들이나 조나단, 테디를 정신병원으로 보내버리면 되는 일일까?
고모들이 늙은이들을 죽인 까닭도 따져보면 마음에 들기 어렵다. 집에 처음 온 늙은이가 저절로 슬며시 저승으로 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면서, 그 다음에는 이들이 늙은이를 몸소 저승으로 보낼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게 말이 될까? 웃기려고 만든 영화지만....
조나단과 같이 고모집에 온 아인슈타인 박사(피터 로어)가 끝무렵에 하는 짓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나단이 모트머를 죽이려고 시키는 데도 모트머를 돕겠다고 나서는 대목은 악어의 눈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끝까지 모트머에 맞서는 게 한결같아서 좋지 않았을까?
4. 조금은 엉성하게 보이는 구석도 더러 있으며, 고모 집에서 벌어지는 일이 많아 연극 같은 느낌도 들지만, 영화 속에서 앞뒤를 이어가는 짜맞춤은 아주 좋고, 캐리 그랜트의 연기가 맛깔스러워 별 다섯을 주었다. 모트머와 일레인의 사랑을 한 줄기로, 고모 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른 줄기로 삼아 짜임새 있는 영화를 만든 감독의 솜씨는 요즈음 영화에 견주어도 뒤질 게 없어 보였다. 생각 못한 끝무렵의 뒤집힘은 꼭 있어야 할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나쁘진 않았다.
사람을 많이 죽인 할머니와 무서운 얼굴을 한 사내, 경찰, 정신병원이 나오는 영화면 조금은 으시시할 듯했지만, 조니가 나오는 대목을 빼면 마음 놓고 웃으며 보았다.
모트머로 나온 캐리 그랜트가 가장 돋보였다. 187센티미터나 되는 큰 덩치와 달리 아기자기한 몸짓을 보여준다. 주검이 들어있는 창가 의자를 들쳐볼 때 그냥 지나치는 듯하다가 깜짝 놀라 다시 뚜껑을 열어볼 때나, 고모들이 사람을 죽인 이야기를 할 때 "이 사람 말고 또 있다고요???" 하며 눈이 동그래질 때나, 꿈인지 아닌지 몰라 괜시리 전화를 걸어 물어보는 모습은 능청스럽기 짝이 없지만 맛깔스럽다. 그래서 나도 보면서 실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잉글리드 버그먼과 같이 나온 <오명 Notorious>이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 캐서린 햅번과 함께 나와 표범 한 마리 때문에 헤매는 영화 <베이비 길들이기 Bringing Up Baby> 오드리 햅번과 같이 나와 웃기는 작품 <샤레이드 Charade> 따위에 나와 빼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다.
뛰어난 감독이라면 그를 쓰지 않은 이가 없었고, 그 무렵의 아름답고 이름난 여배우들도 같이 나오길 바랐으며, 내노라 하는 영화에서 돋보이는 연기를 보였지만, 아카데미상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참 상복이 없는 이다. 아카데미도 미안했던지 1970년에 공로상을 주긴 했지만...
조카가 혼인을 한 것을 기리는 뜻에서 고모 둘이 조카의 얼굴에 쌀을 뿌리는 대목이나, 행운을 가져다 준다며 고모들이 쓰던 브로우치를 일레인이 달고 혼인 때 나온 것은 못 보던 모습이다. 우리는 혼인할 때 남이 쓰던 물건은 더럽다며 아예 쓰지 않고 새것만 사는데, 그네들은 오히려 오래된 것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니...같은 하늘 아래에 살지만 생각은 많이 다르다. 그래서 할머니나 엄마가 입었던 드레스를 물려 받아 입는지도 모르겠다.
5. 영화 이름은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비소와 오래된 끈>이라... 아마 비소를 넣은 포도술로 사람을 죽이는 따위의 머리가 살짝 맛이 간, 이 집안에서 내려오는 핏줄(끈/줄)을 나타내는 말일 듯하지만, 딱 들어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나온 지 예순일곱 해나 지난 영화다. 그렇지만 디브이디 화면은 깨끗하고 소리도 괜찮다. 덤은 예고편마저도 없으므로, 그냥 잘 만든 옛날 영화를 텔리비전으로 보는 셈으로 쳐야 한다. 만든 감독이나 나온 배우들이 다 저승으로 떠나고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보기 어려운 영화라 14,000원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냥 사게 된 디브이디다.
예스24의 상품 소개에는 나중에 나타난 조나단을 모트머의 아우로 나타내고 있으나, 영화를 보면 형으로 나온다. 이런 자잘한 잘못이 예스24에 많이 보인다.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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