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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산다는 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또한, 잘 산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노익상의 에세이를 읽으면 저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바로 그러한 스스로에게 향한 물음들이었다. 에세이 집 [겨울로부터 봄] 은 또다른 저자의 작품인 [가난한 이의 살림집]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앞선 작품이 가난한 이들의 집을 소개한 것이라면, [겨울로부터 봄]은 가난한 그들이 몸담고 고달픈 삶을 쉬는 그 곳의 속내를 들려주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잔잔하게 내 가슴을 파고드는 아픔이 있는 이야기다.
다른 이들이 힘들어 버린 땅을 개척하며 평생을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나, 외딴 산골집에서 어린 형제를 두고 개가한 어미를 대신해 이제는 자신들이 오히려 돌봐야 할 늙은 할미와 함께 살고 있는 산골 형제의 이야기. 혹은 세상을 등진 듯한 홀로 산 속의 먹을 거리를 구하며 살고 있는 남자의 삶,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은 깊은 산중에 촛불을 밝히며 서로를 의지하며 힘겹게 살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삶이, 살아간다는 게 과연 무엇인지 자꾸만 떠올려 보게 만든다. 힘겨움, 그 물음에 대해 내가 토해낼 수 있는 대답은 "힘겹다" 는 한마디 그 이상의 답을 찾기 힘들었다. 그만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노익상은 가난한 그들의 삶을 오랜 시간을 몸소 체험하는 부딪힘으로 잔잔한 따스함으로 들려주고 있어 다가옴이 더 깊고 절절하다. 등장 인물들의 대부분이 서로가 서로를 안타까워 하는 맘으로 바라보면서 어쩌지 못하는 시간 속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을 읽어가면서 들게 되는 생각은 그래도 그들의 삶 속엔 내가 생각지도 못하는 희망의 씨앗이 꿈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힘겹게 오늘을 살아가지만 내가 생각하거나 기대하지 못한 일들이 곧 다가오 것만 같은 느낌. 그것이 어쩌면 내가 그들을 위한 바람일 수도 있지만,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곁에서 보기에 힘겹고 고달파 보이지만, 그 속에 내가 들어가 보지 못하는 한 온전히 그들의 맘을 이해한다고 할 수 없듯이, 그 속엔 내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희망찬 부분들이 꿈틀대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아비의 바다를 이제는 이해하는 군인의 이야기가 한껏 내 맘에 와 닿는 이유가 아니 었을까. 또한,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하는 폐교 위기의 분교는 절망보다는 또다른 씨앗을 뿌리는 기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됨을 모두는 느끼고 있을 것이다.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내가 희망이라는 씨앗을 느낀 것은 '차례' 부분을 채운 단어들에게서 더 짙게 배어왔다.
어둠이 내려 앉은 산능선에서 바라 본 하늘은 곧 새 날이 밝아옴을 예견하는 어둠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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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에 앞서. 요즘 뭔가 허전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 관련 책 출간 소식도 없다. 그러고 보니 작년 기준으로 사진 책 출간된 량이 몇 권 되지 않았지만, 올해는 점점 더 출간이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불길한 예상을 하게 된다. 물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출간해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하물며 사진 찍는 사람들도 사진 책은 거의 안 본다. 안 보는 책 내서 뭐하나 싶을 정도라고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진계가 제대로 진정한 예술 분야의 한 축으로 끼여 들려면, 사진에 관한 다양한 저술이 이루어져야 하고 더불어 사진의 감상평이나 또는 사진론, 사진 해설집과 같은 전반적인 사진의 학술적인 심층 분석하는 책들이 많아야 하는 등의 고도화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사진 찍는 사람들은 찍기만 찍고 다른 사진의 글은 읽으려 들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분야가 전반적으로 예술적인 부분으로 이입시킬 만큼 수준이 그다지 높지도 않고 또한, 예술이라는 전체적 범주에 대한 이해력이나 공부가 상당히 안되어 있는 상태에서 카메라만 달랑 둘러메어 잡고 사진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늘 자신의 이야기가 없는 공허한 이미지만 남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사진 찍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물어볼 여력도 남아 있지도 않고, 이런 판단도 생기지도 않는가 보다. 그저 즐기면 그만이겠지만 이 즐김이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학문적 배경이 없이는 그다지 오래갈 것도 못된다. 공허감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오는 까닭이었으리라.
물론 이 시대가 비단 사진 뿐만 아니라,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문학에서 나아가 예술까지 대학에서조차 퇴출 1순위로 지목되고 오로지 돈벌이 가 되는 분야에만 골몰하고 있는 현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가 사람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 왔던 게 결국은 인문학과 예술이 점점 고도화될 때서야 만에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은 근본적인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었다. 결국 철학 없는 시간에 떠도는 허무한 낭인처럼 넝마자로 허허로이 맴도는 이 시대의 허무를 돈만 가지고는 절대 충족시켜 내지를 못한다는 결정적인 문제점이다. 그러니 태어나 산목숨 억지로 끊어 내는 휴머니즘 파탄 시대는 아니었던가 말이다.
영화 중에 매드맥스 시리즈가 있다. 이 영화의 스토리의 골간이 되는 상황은 지구가 석유가 떨어지고 난 이후의 세상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런 시대에 약육강식의 약탈적 생존만 있는 설정이다. 이는 영화에서 주는 경고성 영상은 아닐까 싶었다. 물론 누군가는 전부 약탈의 주체가 되고 싶어 하지만 결국은 더 강력한 약탈자에게 약탈 당할 수밖에 없음을 반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는 철학도 없고 예술도 없고 오로지 생존이라는 명제에 따른 행위만이 존재한다면, 과연 인간이 왜 생존해야 하는 것인지는 이유가 만들어 낼 수도 없다.
2. 사진 취재. 이 책은 비록 사진 에세이지만 사진보다는 이야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이 먹먹한 사연들이 굴비처럼 엮여져 있다. 가난과 결핍과 통절함이 버무려져 있는 개별적인 하나하나의 사연들을 읽고 있다 보면 사진은 전부 다 슬프게 보인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슬픈 사연을 찾아서 취재를 하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구성했던 것인지, 엄마가 없는 아이들 이야기나 시골 산골 오지 마을을 늙은 노부부 이야기나 다 엇비슷한 삶의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있지가 않는다. 결국은 사진이란 것은 등장하는 인물의 삶에 대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인생이 결국 어떤 매개체로 된 울림이 되는 살아 있는 드라마이냐라는 부분이다. 다시 말하자면, 삶이 곧 예술처럼 분장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나며 이런 등장하고 발굴된 이야기가 때로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때로는 쥐어짜게 만들며 때론 유쾌하고 통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삶의 이야기를 내면적인 영글어가게 만드는 것은 각색된 주체가 되는 작가의 잔여 부분일 따름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며 살아온 삶들의 곳곳에서 묻어나는 울림은 안타까움, 애처로움, 서글픔이라는 정서의 반향을 우리 삶에 다신 반영시키기에 충분하다. 사진을 오랫동안 보다 보면, 도회지의 근사하고 호화롭고 번쩍이며 화려한 사진도 많이 보게 되지만 반대로, 오히려 낡아가고 누추하고 시간에 문질러져가는 퇴락하는 골목길, 시골길, 뼈대만 남은 빈집, 허물어져가는 길과 사람들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경향은 바로 이런 정서적인 반향의 결과였을 테다.
이 책에는 번듯한 모습의 정상화된 삶을 사는 듯한 사람들은 만날 수 없다. 하나같이 결핍으로 점철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엄마가 아이를 낳고 살길을 찾아 재가를 하고 남겨진 아이는 할머니 손에 자라는 이야기와, 홀아비로 늙어가는 아저씨 이야기와, 자식도 건사하지 못하고 외진 산골에 사는 노부부의 이야기 등등이 연달아 나열되어 있다. 작가는 10년간 삶을 추적하고 찾아다니면서 생리적인 오지에서 사진을 찍어 댄다. 어쩌면 작가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먼저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삶을 찾아서 발굴해 낸다고나 할까. 사진을 그저 겉 달린 사족 같다. 그런데 사진은 사람 마음의 깊은 밑바닥에 깔려 있는 앙금을 휘휘 저어 뭔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돋구는 힘이 있다. 별다를 것도 없는 사진에서 앙금이 일어나는 뿌옇고 탁한 결핍이란 기운은 그래서 더 울리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예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 무 예정성으로 살아간다는 게 상당히 불안하다. 안정되지 못한 삶들을 예고하는 듯이 불안함으로 조마조마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희망적이라는 일말의 기대감도 없는 듯해도, 지금은 마냥 겨울 한가운데에서 춥고 배고프고 떨리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언젠가 봄이 올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은 무모하기도 하다. 가다 보면 좀 쉴 곳이 나오겠지. 일단 가는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다는, 당장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그대로 주저앉고 말 텐데 그래도 우리 꾸역꾸역 시간의 인생 길 위를 아슬 아슬한 외줄에 걸음을 떼고 있다. 누구는 균형을 잡기 위해 부채질을 하고 누구는 좀 더 균형이 맞도록 장대를 들고 삶의 무게 중심을 아슬아슬하게 잡아나가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삶은 이를 통칭하는 표현이 산다는 것의 압축된 의미로 남길뿐이다. 그래 산다는 것. 그런데 이와 같은 저변에 깔린 작가적인 시선은 그래서 자연스럽게도 휴머니티, 즉 인도주의로 옮겨 간다. 이런 경향은 다큐멘터리를 지향점으로 하는 많은 작가들의 공통된 시선이었다. 우리나라 휴머니즘 작가의 반열에 올려진다. 휴머니즘의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기록성은 결국은 주제가 인간에게 귀속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노익상 작가의 취재하는 사진의 내용이 인간적인 따뜻함과 인간적인 안쓰러움을 버무려 놓았다고 봐야 한다. 사진의 화두를 인간을 중심에 두고 인간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명제에 매달린다. 그래서 안쓰러움을 외면하지 않고 작가는 그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자본에 떠밀린 사람들은 겉으로 보면 멀쩡해도 심각한 내상을 입고 내상이 긴 시간 동안 새로운 상처를 덧내며 다시 아물기를 하며 삶의 옹이를 만들어 낸다.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 상처가 아물어서 딱딱한 옹이를 가진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의 취재기에 부닥치게 되는 경계심을 허물기 위한 작가의 애달픈 노력은 감히 풍경 사진에 비할 바 없이 각고해야 한다. 자연이 다가오는 인연처럼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해서 작가 스스로가 그들보다 더 따뜻함을 가지고 먼저 다가가야 열린다는 점이다. 생뚱맞게 카메라 매고 와서 한두 마디 건네는 것으로써 사진이야 피상적으로 얼마든지 찍을 수 있다 손치더라도 그들의 내면을 읽는 기록은 닫힌 마음을 허물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었던가. 애절함은 그래서 더 깊을 수밖에 없다.
3. 짧은 리뷰를 마치며. 이 책을 딸아이가 공부하고 있는 교실에서 읽었다. 야간 자율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심야시간까지 연장되는 관계로 감독을 하는 선생님의 피로를 대신하여 학부모가 돌아가면서 하루 저녁 시간을 내고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는 건지 지켜보는 시간에 읽은 책이다. 학생들이 잔기침도 조심하며 공부에 매진하는 동안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의 잔잔한 동요를 애써 감추었다. 학생들이 저마다의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 지금의 지난한 과정이 곧 겨울인 것처럼 살벌한 얼음판 위를 걷고 있을지는 모르나, 이 겨울이라는 혹독한 과정이 있어야만 이 비로소 자신의 봄을 구가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를 바람을 가졌다. 공부도 살벌하더라도 일생에서 그렇게 밤늦게까지 책을 펼 수 있는 시간은 인생살이에서 그리 긴 시간은 아닐 것이고 보면 봄은 겨울을 지난 나무에서 싹을 티우는 힘을 가졌지 않았을까 했다.
사진은 생의 전면을 보는 공부가 아니다. 삶의 드러나지 않는 이면을 사진으로 보고 그 안에서 머무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들어내는 작업이다. 공부는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한순간이 시간에 담긴 단면을 읽고 이면을 사유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사진이 단순히 사물의 묘사에서 그치지 않고 사진이 발전하는 힘은 아닐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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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의 후속작인 겨울로부터 봄이 출간됐다. 가난한 살림에 봄이 왔다는 건가^^;; 아무튼 기대됐다. 역시 가난한 옛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책 저자는 어디든 발로 뛰어 사람들을 만나고 느끼고 이야기를 담아냈다. 난 이렇게 활기있고 적극적인 사람들이 끌린다. 근데 왜 가난한 사람들일까. 본인의 옛 추억을 떠올라서일까? 책 저자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며 칼럼니스트이다. 제 땅이나 집을 떠나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이 책은 가난한 이의 살림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내밀하고도 가슴 시린 이야기를 담아냈다. ![]() 할미는 홀로 산 세월에서 자신을 위해 상을 차리는 일이 '좀 뭐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가난을 면하기 어려웠던 남편은 노동자 대열에 섞여 중동으로 갔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 월급이 전신환으로 부쳐 오고 두 달 급여를 기다릴 즈음 한 통의 편지가 할미 손에 들려졌다. 글을 몰랐던 할미를 대신해 이웃 중학생이 읽어 내려간 편지는 뜻밖에도 남편이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본문 중에서-
너무 가슴 절절하다.. ![]()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 보낸 편지
이런 슬픈 사연만 있는가 하면 .... ![]() ![]() 귀여운 멍멍이들도 있다! ㅎㅎ
슬프지만 따뜻한 이야기다. <겨울로부터 봄> 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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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부터 봄..... <가난한 이의 살림집> 이후 두 번째로 펴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노익상의 사진 에세이집입니다.
가난한 살림집에 살던 이들의 가슴 시린 이야기.... 띠지 카피에서 보듯이 이 책은 <가난한 이의 살림집>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익상... 그 분의 사진을 보면 늘 가슴한켠이 시려오며 아늑한 유년시절이 한 부분이 떠오릅니다.
비행기, 포플러, 쇠울음..... 단순명료한 차례이지만 사진과 글을 읽고 다시 보면 새롭게 보입니다.
본문 중에 몇 컷 올려 봅니다.
포플러
형제 집에서 십 리쯤 떨어진 곳에 학교가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걸어다니는 길가로는 소나무와 물오리 같은 여러 나무가 자라고 있었지만, 이 나무는 무리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산모롱이를 돌아 언덕배기로 오를 무렵 저 홀로 자리 잡은 것인데, 주변으론 이제 막 꽃을 피운 억새가 지천이었다. 바람이 칠 때마다 포플러는 제 잎을 까뒤집으며 황혼으로 물들어가는 시간을 알렸다. 소리 없는 찰나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것은 형제가 떠날 시간을 알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 30쪽 -
구름 사이로 이따금 해가 드러났다. 그럴 때마다 바다 수면 위로는 무대 조명처럼 점점이 빛이 내려 앉아 별천지를 연출했다. 물론, 둥그런 태양빛 조명을 받는 곳으로는 막바지 수확을 앞둔 김이 자랄 터였다. 초가을 달라붙어 모진 삭풍을 견디며 봄에 다다라 이승의 끈을 놓는 김을 두고, 계원들은 '저거이 사람 생목숨 같구먼' 했다. - 234쪽 -
밭을 갈아놓고 김 씨는 서울 양반이 부탁한 놉을 사러 읍내로 나갔다. 국수와 빵을 참으로 내고 일당 이만 팔천 원을 쳐줘야 될 거라며 헛기침을 날리는 모습을 볼 땐 월급을 받는 기간제 고용 농부생활에 어느덧 적응한 게 틀림없어 보였다. 제 값을 후리며 놉을 살 수 있을지 궁금했지만 읍내로 나서는 길은 가벼워 보였다. 산을 걸어 내려가 간이역에서 기차를 기다려 타고, 다시 돌아오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 46쪽 -
할미는 맹물에 밥을 말아 먹을 때가 많았다. 입맛 없던 탓이 컸던 셈인데 할미는 그러면서도 밥 한그릇을 비우기는 했다. 처음엔 도회에서 준비해간 통조림이나 레토르트 음식을 권해보기도 했지만 할미는 방긋 웃기만 할 뿐 간장 내린 된장이나 누르대 무친 국물을 숟가락에 찍어 먹을 뿐이었다. - 64쪽 -
사랑
병사와 처녀는 꽤 오랜 시간 수평선을 내려다 보며 서로의 처지를 이야기했다. 혼기에 이른 처녀는 병사의 가족에 대해 궁금해했고 병사는 이따금 웃으며 제 형제와 아비에 대해 들려주었다. 간혹 당혹스러운 점도 있었지만 처녀는 병사를 제법 사랑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내 사진기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진지했다. - 270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