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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베송의 포기의 순간. 책을 많이 읽어도 난 저자와 책을 잘 연결시키지 못하곤 하였다. 하지만 이 책, '포기의 순간' 은 필립 베송의 '포기의 순간' 이다.
어느 한적한 프랑스의 작은 해변 마을, 한 남자가 조용히 돌아온다. 감옥에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외면하고, 무시하고, 심지어 협박까지.. 남자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 남자를 만나 그간의 사정들을 쏟아내는데..
오래 전, 한 아이가 죽었다. 사람들은 남자가 아이를 죽였다고 했다. 아이는 남자의 자식이었다.
너무도 담담하다. 억울하다고, 울분을 토해낼 것도 같은데, 그냥 물 흐르듯 잔잔히 얘기한다. 책을 읽으며 이런 결말은 상상도 못했다. 이 책은 스릴러나, 판타지처럼 그렇게 재미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래지 않은 나의 독서 생활에서 이 한 권의 책으로 인한 충격은 그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포기의 순간, 다 끝났다고들 한다. 필립 베송의 '포기의 순간'을 읽기 전에는 그런 말 잠시 아껴 두기 바란다.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포기의 순간, 새로운 꿈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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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베송은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예감을 초석으로 인생을 구축할 권리가 있다’라고 선언한다. 주인공 토머스 셰퍼드는 과실치사로 아들을 잃고 감옥에 들어가기 전 소유했던 모든 것을 잃은 불행한 인물이다. 타인의 눈에 그는 살인마이자 실패한 인생의 전과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운명론적이고 낙관적인 선언은 찬란한 빛을 발하며 독자들을 수긍하게 만든다. 아이러니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 설득력은 견고해진다. 그 이유는 토머스가 무너진 과거로 이루어진 무덤을 밟고 올라서서 새로운 세상, 그가 말하는 두 번째 기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과거와 현실에 얽매여 새로운 미래의 징후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을까. 혹시 나에게 꼭 필요한 ‘포기의 순간’을 알면서도 놓친 채 스스로의 삶을 침잠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이야기 속에서 발견되는 교훈은 사실 너무도 밝고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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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황량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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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가 수직으로 깍아지른 절벽에서 바다에 자기를 양보하는 곳 . 영국 페머스의 풍경을 묘사한 부분부터가 그리 활기찬 모습이 아닌 전형적인 영국의 음습한 안개낀 도시를 연상시킨다. 이 곳에서 태어난 토머스셰퍼드. 일명 톰이라고 불린 그는 한 마을안에서 오로지 평생을 배와 생활하며 그 안에서 살고있는 사람들과의 결혼을 통해서 외부로 나간다는 자체는 곧 이방인이란 인식이 깔린 곳에서 자라고 결혼을 했다. 주위에서 당연히 결혼할 것이라고 믿었고 실제로도 당연히 메리와 살던 시절,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고 파도가 심하게 불던 어느 날, 마을사람들의 충고도 무시한 채 아들과 배를 타고 나간다. 배에서 한 순간 몰아친 파도와 바람의 기후영향으로 아들은 익사를 하게되고 실종신고를 거쳐서 자신만 살아남은 채 아들은 시신이 발견이된다. 조사결과 살해의도는 없었으나 보호소홀로 미성년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인 과실치사로 종결을 받고 감옥에서 복역한 뒤에 마을로 돌아온다. 소리없는 자신에 대한 눈초리, 경멸감에 찬 모습을 보이는 마을사람들 곁으로 온 것은 오로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찾아 올 것이란 믿음 하나 때문이었다. 그를 유일하게 사람대접을 하는 사람은 파키스탄인 라지브형제, 그 중에서 형인 라지브는 그의 아들 사망사건에 얽힌 진실을 귀담아 들어주는 침묵으로 일관된 모습과 차를 마주하고 그의 지난 일들을 듣는다. 그를 통해서 톰은 자신을 향한 마을사람들의 관용, 자비와는 거리가 먼 행동에 비해서 그가 보여준 침묵속에 위안을 얻고 인간이란 종자에 대해서 완전히 절망할 필요가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또 다른 사람은 매일 아침 신문을 사는 가게점원인 베티란 여인이다. 그녀 역시 그와 만나면서 그가 감옥에서 겪은 생활과 그 안에서 같이 지낸 루크란 사내 이야기를 듣게된다. 그녀 또한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단 소리에 훌쩍 떠나버린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배신으로 한 동안 남자를 믿지못하고 생활 하던 중 여리디연한 체격에 다리를 저는 톰의 행동과 말을 보게됨으로서 자신이 만나왔던 그 동안의 남성들과는 다른 그와 함께 살고 싶단 의향을 비친다. 하지만 톰은 여전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며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고 형기를 마친 루크가 방문함으로서 비로소 서로간의 약속을 지켰단 사실을 확인한다. 두께는 얇지만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이 소설의 내용은 아주 깊은 내용을 준다. 자신의 둘째 아이를 낳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뜻대로 되지않자 몰래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서 불임을 통고받은 상황에서 톰은 충분히 그녀를 몰아세우고 아이의 친 아버지를 밝힐 수도 있었겠지만 이를 포기하고 한 가족으로 살아가던 중 뜻하지않게 원치않은 상황에서 아이가 스스로 넘어져 물에 빠지는 사고로 인해 감옥으로 가게되는 상반된 삶을 살고 나온다. 출소한 뒤 마을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그가 마을로 되돌아온 것은 그들과 맞서기 위해서, 정면으로 대적하기 위해서였고, 이런 순간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보인다. 라지브 앞에서 모든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라지브 또한 자신이 원하던 장소에서 살 수없는 어떠한 계기가 있었음을 자신이 이야기하는 동안에 스스로 깨달아가면서 그가 일말의 철학적인 대사를 통해서 알려줌으로써 톰은 그간의 인간에 대한 혐오내지 불신의 벽을 헤쳐나가게 되고 그를 통해서 그 또한 자신과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느끼게된다. 베티의 제안으로 인해서 다시금 인간다운 삶을 살 수도 있다는, 남이 보기에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 수도 있고, 그럼으로서 마을사람들의 불신을 넘어설 수 있다는 하나의 가장된 삶을 순간적으로 선택해야하느냐, 아님 서로 약속된 것은 없었으나 반드시 자신을 찾아 올 것이란 믿음을 갖고 마을로 온 이유인 루크를 기다려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아가야하느냐를 두고 순간적인 포기의 순간을 맞이한 톰의 결정을 표현한 순간은 짧지만 아주 강렬한 인상를 심어준 문체가 기억에 남게하는 매력이 있다. 감옥 안에서 자신을 두둔해주고 그에게 자신의 과실치사로 인정받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그와 가까워진 톰에게 루크는 하나의 구원이요, 보호자로서 그가 처가 있다는 사실 앞에서도 둘 간의 어떠한 감정의 표류를 확신하고 그를 기다리는 목적이 그에게 있어선 또 하나의 베티를 포기하는 순간 또 다른 새로운 삶의 여정을 시작했다는 의미로 보여지게 한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의 결정 할 사항을 두고 어떤 것은 포기를 해야하고 어떤 것은 새로이 시작해야 하듯이 이 책은 톰이란 인물이 전혀 새로운 사건으로 인해서 비로서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세상사람들의 이목에 집중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그들과 대적함으로서 자신이 포기하고 싶지않았던 진정한 삶의 행로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작가는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이 장애물로 이루어짐을 , 그래서 때로는 이 장애물로 인해 더욱 자신의 가치있는 삶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되지도 않았을까 하는 것을 물어보게 한다. 이 소설가의 책은 처음 접한 것이라 그가 기존에 지은 책의 흐름과 어떻게 다른지는 읽어봐야겠지만 영화판권이 팔리고 그가 내놓은 작품마다 호응이 좋다는 점에선 이의가 없을 것 같다. 한 페이지 안에 두 세개의 단락으로 이어진 글의 흐름속에 자신이 내놓고자 하는 바를 짧은 글 속에 모두 포함되게 글을 쓴 솜씨가 특히 기억에 남고 동성간의 사랑이 내포되어 있는 듯한 루크와 톰과의 관계는 작가의 관심도가 동성애에 대해 많은 것인지는 잘 몰라도 헌신적으로 면회와 뒷바라지한 부인을 버리면서까지 톰을 찾아온 루크의 행동엔 글쎄, 읽고 나서의 느낌은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차렸다면 그게 가능할 지는 몰라도 별로란 생각이 들게한다. 하지만 제목이 주는 포기의 순간이란 말을 두고서 행동으로 옮긴 두 사람의 다음 계획인 여객선 타고 원하는 장소에 가서 살게 될 것이란 희망의 글귀는 더 이상 톰의 인생을 두고 포기한 인생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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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한 남자의 고백. 그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지 않은 것일까? 아들의 과실치사라는 죄값을 치르고 돌아온 남자. 그는 꼭 돌아와야만 했을까? 그곳에서 그는 대체 뭘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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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날은 점점 더워지는데, 해는 점점 길어지는데, 일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나는 점점 지쳐만 간다. 하루 24시간이 마치 마라톤 풀코스 같다. 이런 기분을 어떻게 해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포기의 순간>을 다시 꺼내들었다. 지금의 내 기분을 아주 잘, 더이상 구구절절하게 내레이션으로 읊지 않아도 될 만큼의 소설이다.
무미건조한 삶이 팍팍하게 이어졌다. 마치 아무도 없는 사막 위에서 방향 잃은 바람처럼 이리저리 휘익 돌아다닐 뿐이다. 외로움도 이젠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간에게 참을 수 없는 고독함도 이젠 하루 24시간 안에 스며들었다. 사막이지만 덥지도 않고 사막이지만 춥지도 않고 사막이지만 갈증도 없다. 전날 먹은 타이레놀 두 알과 소주 몇 잔이 신기루를 만들었다. 잠시 그뿐이다. 언제나 사막은 보기 좋게 펼쳐져 있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도 비극도 다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아주 고맙게도 말이다. 이는 연구결과에도 나온 사실인데 어떤 불행한 상황에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주는 자기합리화를 펼친다는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인간은 정말 위대하다.
당신의 불행과 한번 비교를 해봤으면 좋겠다. 발 하나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내가 있다. 그의 아내는 다른 남자의 아들을 낳았다. 그 사내는 그 사실을 몰랐다가 우연히 병원에서 불임이란 얘기를 듣고 8년을 지낸 아들이 다른 놈의 아이란 걸 알았다. 그 충격과 배신감은 어땠을까? 파도가 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들과 배를 타고 나갔다가 아들이 죽임을 당한다. 그 아이를 죽인 범인은 사내가 아니라 바다였다. 그렇게 5년형을 받고 감방으로 들어간다. 변명같은 건 하지 않고 감방으로 묵묵히 들어간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한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사내가 사는 곳에 날씨는 언제나 우중충하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우울한 구름들이 뒤덮였으며 바닷가는 언제나 횅댕그렁하다. 이곳에서는 어부나 잘못 길을 든 관광객들 뿐이다. 바다엔 버려진 유조선들의 찌꺼기들과 쓰레기들, 그리고 허무함.
가끔 사는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할 때가 있다. 스스로 선택받아 태어난 자들. 그들을 흔히 인간이라 부른다. 그 인간들이 하나하나 커나가며 각각 몰라볼 정도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 과정을 삶이라 한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목적지에 깃발을 들고 있는 가가 중요한 세상이다. 깃발을 볼 뿐이다. 그 인간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오직 깃발 뿐이다. 내가 지금 든 깃발은 어떤 색인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모른 채 들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한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는 상상을. 무일푼으로 외국으로 나가 몇 년 동안 돌아다니거나 내 신분을 지우고 지방에 내려가 완전 다른 사람으로 살거나 산속으로 들어가 몇 년 동안 칩거하거나...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때론 강하게 원할 때도 있다. 보여지는 미래보다는 무섭지만 가보고 싶은 길이 있는 것이다. 그 길이 비록 힘들거나 고통스럽다 해도 가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걸 어떻게 표현할 수 없다. 그냥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자신의 어떤 것을 포기하고 또 다른 무언가를 얻는다, 그런 기분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비록 소설이지만 그에게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진짜 인간이라면 어렵지, 아니다 도저히 할 수 없는 선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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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가 있다. 사실 죽은 아이는 그의 아이도 아니었다. 죽은 아이의 무게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떠난 아내는 그림자처럼 그의 뇌리를 어둡게 한다. 이 모든것들이 축축하고 서늘한 팰머스의 공기와도 같이 토마스도 독자도 짓누르고 있다. 팰머스에서 지나온 그의 세월들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는 나이가 없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나이를 잃었다. 행복했던 시절만 셈한다면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복역한 뒤의 밑바닥, 아무도 그를 돌아봐주지 않는 팰머스에서 동료와 함께 떠나게 된다. 그 떠나는 마음이 어찌 홀가분할까. 모두가 사위를 덮은 싸늘한 안개처럼 그를 대할 때, 그 사이에서 단 하나의 기댈 곳을 찾은 셈이니, 거의 포기하는 마음으로 허약해진 육신 하나 누이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보고나니 필립 베송의 다른 소설들도 너무나 궁금했다. 아름답고도 처절한 묘사와 자기고백은, 모든 이에게 위로가 될 것 같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다른 이들을 피하고 할 것 없이, 그저 마음을 놓아버리라고, 괜찮다고 위로하는 것만 같다. 소설이 무겁고, 뜨끈하게 마음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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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당한 사람들....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삶.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다루는 그들은 다소 매력적이기도 했다. 어쩌면 극적 요소를 배가시키기 위해 그런 장치를 마련했는지도..... 생각해보면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소위 왕따라는 사람들, 그리고 더럽다는듯 시선과 공간을 멀리했던 소외계층들. 전에 다니던 직장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흔적없이 지내길 바라는 사람. 겉에서 바라보는 그의 삶은 쓸쓸하고 외로워보였다. 그렇지만 다가가지 않았다. 조용한데다 낯가리는 성격을 가진 나로선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가 밉다거나 다른 이유로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그를 내 시점으로만 판단했던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도 그러하겠지. 주류로부터 배척되어버린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서로 통했나보다. 주류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생각을 그들은 어떤 표현 없이도 알아낼 수 있으니까. 서로를 안아줄 수 있으니까. 나는 스스로 비주류라고 생각했다. 주류가 아니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을테니.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아무것도 부족한게 없는 주류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소설은 주체가 되지 못했던 그가 사건을 통해 새로이 거듭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과정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에게 투영되어진 자신을 보며 고백적 성찰을 통한 자기치유를 보여준다. 주류에게 인정받기를 그만두면 그것에 의지함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인 인간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걸 말하고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얼마전 TV에서 모강사가 한말이 생각난다. 숨기지 말고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떳떳해지라고. 그래 맞다. 인정하면 당당해지는거다. 치장하고 의지함으로 주류에 편입되는것보다는 부족하거나 다름으로 비주류가 되는게 삶을 빛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얼핏 음울한 얘기같지만 독후감은 그렇지 않는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인정하게 하고 나를 바로 세우게 만드는 소설이다. 좋다.
프랑스 소설을 읽다보면 잠깐잠깐 드는 생각중 이런게 있다. '모두가 철학을 담고 있는거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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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눈앞의 사물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짙은 안개를 경험한 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경험한 터라 안개를 떠올릴 때면 그때의 공포가 엄습한다. 안개는 시야만 가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혼탁하게 만들어 불안감을 조성하고 무슨 일이 꼭 일어날 것 같은 복선을 까는 존재다. 이 소설의 초반에 등장하는 안개는 나의 예감을 적중했고 표지만큼이나 쓸쓸하고 고독한 소설이라는 사실을 다시 곱씹게 되었다. 그러나 고독함 이면에는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운 문체가 등장한다. 사람마저 말라버릴 것 같은 쓸쓸함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하면서도 토머스 셰퍼드란 인물의 고독 속으로 침잠하는 기분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보니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쁘다가도 눈을 감을 때까지 걱정을 놓지 못하는 응어리를 내 놓은 기분이 든다. 만약 그렇게 소중하고 귀한 아이를 나의 실수로 잃어버린다면 나는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정신을 놔버리거나 내 안으로 갇혀버리고 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톰(토머스 셰퍼드)은 자신의 실수로 아이를 잃었다. 거친 바다로 나갔다 아이를 잃었고 과실치사로 5년을 복역했다. 출소 후 당연하단 듯이 자신이 떠나본 적도 없고 아이를 잃었던 고향으로 돌아온다. 누구하나 달갑게 받아주지 않은 고향은 이내 들썩이고 그로인해 용서를 비롯한 삶의 희망, 죄책감 등 묵직한 주제들이 톰을 관통한다.
여하튼 우리는 그 무엇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를 더욱 강하고 옭아매는 것은 뿌리 깊이 박힌 우리 본연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우리의 과거이다. 31쪽
이 문장만 보더라도 톰 앞에 놓인 과거의 실수가 그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할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온 고향. 과연 그는 그곳에서 용서 받을 수 있으며(누구에게 용서를 받아야 하는 걸까? 동네 사람들? 죽어버린 아이? 아니면 자신?) 새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결코 녹록하지 않은 시선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고 그 모든 고통을 또다시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의 잣대에서 심판을 받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는 볼 수 없었다. 자신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고향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고 맞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돌아왔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을 아이. 어쨌거나 이미 벌어져 버린 일을 되돌릴 수 없기에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채워가야 했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에게도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쯤이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톰은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함께 복역했던 동료였고 톰은 그와 함께 새롭게 출발하려 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차관우란 변호사가 그런 말을 한다. 살인자인 민준국과 피해자인 박수하가 다른 점은 자신을 믿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민준국은 그렇게 짐승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말이 가슴에 들어온 이유는 나의 이야기만 하려고 하지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 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고향으로 돌아온 톰에게 다행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말로 풀어도 상처가 치유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도 과거의 모든 것을 잃어야했던 톰. 고통스럽지만 그는 그 과정을 잘 견뎠고 피하지 않고 맞섰다. 그렇기에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고 과감히 행동에 옮겼다. 남들이 말하는 평범한 길을 갈 수도 있었을 그였지만 자신의 마음이 가는 데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모습에 한없는 응원을 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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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읽는 걸 좋아한다. 기분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그리고 시간이 나면 그냥 글자 읽는 걸 좋아한다. 어쩔 수 없을 때, 사방이 벽같을 때, 가슴이 답답할 때 도망가듯이 책 읽을 수 있는 걸 특히 좋아한다. 남의 이야기들을 곁눈질 하면서 내 시간들을 버틴다. 그러다보면 좀 더 나은 길도 보이고, 요령도 생기고, 여튼 가끔 난 책을 약처럼 쓴다.
민간요법같은 책이었다. 아주 도망가고 싶을 때 읽었던 듯. 나혼자 주인공 남자처럼, 그 동네처럼 우울해지다가... 이게 뭐야? 그럼서 그냥 나아졌다.
살다보면 얽히고 설켜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바라지 않았지만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도 같고, 그냥 도망가는 것처럼 포기하게 될 때들이 있다. 별 일 없이 평탄하고 지루하게 살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영 바램일 뿐이고...
이 소설의 주인공이나 그보단 좀 못하지만, 베티나 가게 주인이나 처럼 이야기 거리가 될 정도로 극적인 경우도 있고, 루크처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고...남들은 이해하지도 못할 만큼 별 일 아닌 경우도 있지만 무릎이 꺽이는 일들이 있다.
그냥 지나가고, 다른 길이 생기더라. 그냥 견디다 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