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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요네하라 마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을 읽은 것도 이 책이 처음이다. 사실 제목만 보고서 구매한 책이기도 하다. 차이와 사이라고 하기에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에 대한 시각 차랄까, 그러한 차이에 대해서 풀어놓은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첫 장을 읽으면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렇지만 유쾌했다. 총 4개의 장으로 되어있는 이책은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인 그녀가 강연을 했던것들을 모아놓은 것 이라고 한다. 첫장 사랑의 법칙을 제외한 3개의 장은 동시통역가가 되기위해 그녀가 공부했던 방법이나, 통역과 번역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의사소통을 할 때의 이해는 그 나라의 문화나 관습과도 연관됨을 말하고 있다. 설사 같은언어를 쓰는 이웃들이라 할지라도 말로 의사를 전달할때 사람들의 해석은 제 각각이 되어버린다. 이해와 오해는 종이 한장의 차이로 서로의 마음을 갈라 놓을수도 있다. 같은언어를 사용하는데도 이럴진데, 다른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통역에 있어서는, 더군다나 실시간으로 전달되어야 하는 동시통역에 있어서는 그 차이가 심할 수밖에 없을것 같다. 우스운 장면에서 같이 웃고, 슬픈 대목에서 같이 눈물을 흘릴 때, 한 사람이 느끼는 마음의 진동이 다른 사람의 진동과 공명할수 있다. 통역을 하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해당언어로 된 수많은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3개의 장과는 별개로 1장 사랑의 법칙에서는 남녀의 성과 사랑에 대해서 쓰여있다. 어렸을 때부터 세계적인 문학 작품을 읽고 나면 일단 주인공이 남자고, 대개 남자의 눈으로 본 세상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화가 났었다는 저자는 여자는 남자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며 남자는 샘플이라는 가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문학작품 속에서나, 서구사상에서는 남자가 본류인 것처럼 나오지만, 모든 생물계에서 보면 암컷이 본류라고 이야기 한다. 남자는 인류의 존속 자체를 위해서는 필요하지 않지만, 인류가 진화하고 변화하기 위해서만 필요하다고 한다. 다음세대를 만들 때 수컷은 질을 담당하면서도 양을 추구하고, 암컷은 양을 담당하지만 질을 추구하는 식으로 분업을 해 왔다는 것이다. 즉, 암컷은 유전형질의 유지와 보수를 담당하며 종의 과거를 대표하고, 수컷은 환경변화에 따라 유전형질에 쇄신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며 미래를 대표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변화의 특징은 수컷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며, 악조건 속에서 먼저 죽는 것은 수컷이라고 한다. 이러한 가설의 진위여부는 중요하지가 않다.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남자가 본류이고, 여자는 지류일 뿐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이다. 길지 않은 글이지만, 다소 엉뚱하기까지 하지만 그녀의 독서력을 알게 해준다. 우연히 선택한 책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언어가 이해와 오해를 가져오는 차이를 만들 수 있으며, 그 차이를 알 때 사이를 좁혀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라고 하는 저자의 말이 가슴속에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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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의 에세이. 이 책은 통역, 번역 이야기 위주다. 전체 구성은 아래와 같이 4부분.
사랑의 법칙 이해와 오해 사이 통역과 번역의 차이 국제화와 글로벌리제이션의 차이
앞부분만 남녀에 대한 이야기이고 뒤는 전부 통역 번역 이야기다. 통역 번역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언어에 대한 성찰 부분 이야기도 유익하다. 역시나, 마리 여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 주신다. 성모 마리아가 처녀인 채 예수를 잉태해 출산했다고 믿는 건 오역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맨 처음 헤브라이어로 쓰인 성서에는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여자'라는 의미였는데, 이것을 라틴어로 옮길 때 '처녀'라고 번역해버려서 생긴 일이라고. 또 일본의 국제화는 영어에 치중, 미국화를 지향하는데 이건 진정한 글로벌리제이션이 아니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그런데 마리 여사는 이렇게 영어에 치중하고 미국에 빠지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고 썼다. 아, 마리 여사도 우리 나라 현실까지는 모르셨구나.
그래도 내겐 통역 번역 이야기보다 첫 부분인 '사랑의 법칙'부분이 더 흥미로웠다. 문학소녀 시절의 마리는 세계 문학이란 작품을 읽을수록 화가 치밀고 불쾌해졌다고 한다. 세상에, 나도 그랬는데!
소설의 전성기는 19세기라서 내가 읽은 작품들은 19세기에 쓰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모리 오가이, 나쓰메 소세키, 나가이 가후, 이반 투르게네프, 미하일 레르몬토프, 오노레 드 발자크, 빅토르 위고 같은 작가의 소설을 읽고 왜 화가 났느냐 하면, 일단 주인공은 남자고, 대개 남자의 눈으로 본 세상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추남이거나 속수무책에 구제불능인 남자 등 여러 타입의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반면 그들의 연애 상대, 즉 낭만적 감정의 대상이 되는 여자는 하나같이 젊고 아름답다. 젊은 추녀나 젊지 않은 여자는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아주 한정적이다. (중략) 그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는 남자를 어떻게 선택할까? 여자는 남자가 일하는 모습이나 성실한 성격, 혹은 섹스를 잘한다 못한다 하는 식으로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여지를 남겨준다. 남자는 구제받을 여지가 있는 것이다. 소설의 경우 19세기 작품은 대개 그렇고, 20세기 후반이나 되어야 겨우 아름답지 않은 여자나 젊지 않은 여자도 연애를 하는, 이런저런 가능성이 나오기는 한다. 그래도 소설의 본류는 여전히 19세기라서 그 시기에 만들어진 틀을 완전히 깨기는 어렵다. - 본문 16 ~ 17쪽에서 인용
야, 이렇게 문학과 시대 배경, 역사적 맥락을 함께 이야기하는 거,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방식인데! 마리 여사는 당당하게 문제제기한다. 사랑을 다루는 명작 고전은 남자가 주인공일 경우 겐지 이야기나 돈 후안처럼 여자들을 모아 전부와 섹스하는 전개인데,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 공주가 남자를 모아서 기예를 겨루게 하여 제일 뛰어난 남자와 결혼하는 전개라고. 그뿐이냐,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은 대개 한 남자만을 사랑해야 명작이 된다고, 심지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씩씩한 스칼렛 역시 나중에는 레트 버틀러 한 남자만 추구하지 않냐고. 오, 섹스니 어쩌니하고 이렇게 대 놓고 신나게 말씀해 주시다니, 읽으면서 진정 통쾌했다.
전체적으로, 한 현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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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 <속담 인류학>(http://blog.yes24.com/document/12320164) 이후로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꾸준히 읽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마음산책에서 출간된 <요네하라 마리 특별 문고 세트>(교양 노트, 마녀의 한 다스, 미식견문록, 속담 인류학,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절판되거나 품절되어 구입하기가 어렵다. 이 책도 절판된 책이다. 하지만 집앞에 있는 중고서점에 갔다가 득템했다. 2011년에 출간된 책인데 아쉽게도 상태는 그리 좋진 않다.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없으니 책이 있다는 것에라도 만족해야지. 일러두기에 책에 대한 설명이 있다. 강의 내용을 엮은 책이라는. 이 책은 요네하라 마리가 1998년(제2장), 2002년(제3장), 2004년(제4장), 2005년(제1장)에 강의한 내용을 묶은 것이다. 어려서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처음 배운 후 러시아 동시통역사의 길을 걸었던 요네하라 마리, 그녀의 경험과 동시통역에 대한 생각, 언어와 철학, 그리고 소통과 문화에 대한 것까지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요네하라 마리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읽고 해석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정답이 아닐 뿐더러 어쩌면 답에 근접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된다. 그리고 오히려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 않을까? 그리고 생각해보면 삶에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 다만 대중이 좋아하는, 원하는 삶만 있을 뿐. 제4장 「국제화와 글로벌리제이션 사이」 에서 언급되는 일본 지식인들 그리고 대중. 그들은 COVID-19 시대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듯 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MB 시절, 그 시절 그렇게 외쳐되던 영어 공용화와 정확히 일치한다. 마치 MB가 꿈꾸던 세상이 일본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 그 이후로 친일이나 토착왜구라 불리는 어용 지식인, 위정자들이 늘어난 듯. 그리고 이런 말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도 이상하고. 요네하라 마리는 이 책 뿐만 아니라 다른 책에서도 꾸준히 미국제일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일본 위정자들이 미국의 한마디에 껌벅죽는 것을 무척 못마땅해한다. 지식인이라면 당연한 반응인데, 당연히 자국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당시 일본 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 나라에도 그런 거짓 지식인, 위정자들이 있다는 것이 아직도 그녀의 책이 우리에게 도움과 위로가 되는 이유일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재미있다는 것이고. 차이(남녀, 통역과 번역)와 사이(이해와 오해, 국제화와 글로벌리제이션)에 대한 요네하라 마리의 통찰을 보여주는 책이다. 김어준 총수의 말처럼 그것을 '지적 앙탈'이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일시적인 경제력이나 군사력을 떠나서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보고 직접 교류하는 것, 그것이 진짜 국제화이고 그것으로 더욱 풍요로워지리라 생각한다. (p.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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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느끼는 마음의 진동은 다른 사람의 진동과 공명하면 더 깊고 커진다.” 이 책에는 공감을 바라는 진정한 ‘소통 메신저’의 염원이 깃들여 있다. 마음의 공명이 만들어지는 한 가지 조건은 바로 나와 내가 아닌 것들의 차이를 아는 일이다.
《차이와 사이》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요네하라 마리가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책으로 ‘남과 여’, ‘번역과 통역’, ‘국가 간 언어와 문화’라는 소재로 크게 나뉜다. 남녀 차이를 보는 그녀만의 유쾌한 방법론을 이해하고, 러시아어 동시통역가·에세이스트·소설가로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소통했던 그녀의 다양한 식견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언어’를 둘러싼 통찰을 살펴보는 편이 좋다.
요네하라 마리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따라 프라하로 이주한 뒤 소비에트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석 달쯤 지나도 “안데르센 동화의 ‘인어공주’처럼 무엇하나 제 입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한다. ‘차이 경험하기’는 결코 녹록한 과정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나’라는 기준이 있어서 가능한 개념이다. ‘나’라는 기준을 모국어에 둔다면 외국어가 나와의 차이에 해당한다. 어떤 문학작품을 읽었다면 다른 사람의 이해방식이 나의 이해방식과 차이가 된다. 나와 다르다. 차이를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경험은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야를 체득하는 첫 단추이다.
이 책은 공감을 위한 차이를 이해하고 개인과 인류의 삶의 질을 위해 다양성을 추구하자는 취지가 전체적으로 깔려있다. 첫 번째 이야기로 생물학의 관점에서 남자(수컷)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남자는 존속 자체를 위해서는 필요하지 않지만 인류가 진화하고 변화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그러면서 구소련 생물학자가 주장하는 잡지에 실린 글의 제목을 인용해 “남자는 샘플이다”라고 말한다. 남성들은 이 말로 자존심 상해할 필요가 없다. 단순히 “암컷이 많으면 양적으로 증가하고, 수컷이 많으면 질적 변화의 폭이 커진다”는 비유를 눈에 띄게 표현했을 뿐이다.
남녀의 차이는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를 위한 재미있는 예시이다. 바로 다양성의 추구. 힘이 센 나라, 힘이 센 언어(영어)만을 일방적으로 추종하지 말고 자신의 나라와 소수어에 눈을 돌려서 각각의 문화를 깊이 이해는 재미를 찾는 데 노력을 기울이라고 한다. 다만 그 방식은 외국에서 자신의 나라를 보듯 객관적이고, 수박 겉핥기식이 아닌 깊이 있는 능력 배양으로 예리함을 지니되, 같은 단어라도 모든 사람이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차이에 대한 넓은 아량을 갖추라고 말한다. 이 사고방식은 성별, 인종, 국가, 언어 등 특정 범주에 그치지 않고 내가 접하는 모든 것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에 대한 통찰이라는 점을 이 책을 다 읽을 즈음이면 느낄 수 있다.
그녀의 글은 가볍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겠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아주 재미있는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격려가 자칫하면 보통 사람과 다른 삶을 산 그녀의 환경을 부러워하는데 그치지 않을까 괜한 우려심이 들기도 한다.
우분투(Ubuntu)라는 말이 있다. ‘나의 삶은 너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공생을 강조한 아프리카 식 사고를 말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는 말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첫 번째로는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알고 인정하는 것, 두 번째로는 나와 다른 시각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
서두에서 언급한 말로 돌아가면 ‘나의 기준과 다른 어떤 것’을 진지하게 보는 노력은 그 자체로 다양성을 추구하는 의미이고 그 경험으로 체득한 시야는 입체적인 사고를 하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이 연결고리는 나를 되돌아보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공생을 위해서 먼저 공감을 말한 요네하라 마리의 우분투를 느끼며 스스로 새로운 시야를 찾는 재미를 깨닫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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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파워블로거의 블로그에서 이 책의 소개를 인상깊게 보았다. 무엇보다도 제목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요네하라 마리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는데 사실 저자는 작가활동을 하며 일본에서 러시아아 동시통역사로 활동했었던 사람이라고 한다. 20대 초반에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등등 일본소설과 일본에 관한 글들을 즐겨 읽었었는데 어느샌가 일본어 번역 특유의 글들이 편하게 다가오지 않아 읽지 않아 참으로 오래간만에 읽는 일본 작가의 글이다.
사랑의 법칙
저자가 '사랑의 법칙'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후반이었다. 학설적으로 옳은지는 전혀 근거 없으나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암컷이 본류이며 남자가 샘플이다라는 설이다. 실제 남성의 키차이도 그렇고 오타쿠나 범죄자도 남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고 유사시에 급증하는 남아 출생률등의 남자의 샘플설과 수컷이 진화를 예측한다는 주장은 몹시 흥미롭다.
이해와 오해 사이 러시아어와 일본어를 오가며 동시통역를 하며 소통에 관해 이야기한다. 말로 의사를 전달할 때 이해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통역이 필요하다. 통역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교신 수단으로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통역은 언어가 장사 도구인 셈이다. 통역사에게는 일반 커뮤니케이션과 좀 더 다른 것을 요구한다. 말이 갖는 진짜 의미를 해석해주어야 한다. 통역사는 순식간에 단어를 선택하는 능력과 노력이 필요하며 순간적 기억력이 요구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갈구하는 동물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불완전한 행위라서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기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은 항상 커뮤니케이션을 갈구하는 동물이라는 확신을 한다. 모두가 동시에 웃고 함께 감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통역이라는 직업이 참으로 멋지게 보인다.
통역과 번역의 차이 통역을 하기 위해 저자는 그나라 언어로 쓰인 소설책을 즐기며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공격적이며 입체적인 독서를 권장한다. 독서야말로 가장 좋은 학습법이다. 사람의 입에서 말이 나오는 과정은 모호함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개념이 표현된 것을 문자나 소리로 인식했을 때 그 내용을 듣거나 읽어 해독한다. 그래서 통역을 할 때는 이 모호함을 다시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즉 말이 생겨난 과정을 다시 한 번 거쳐야만 한다. 왜냐하면 말이란 그 부품인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동시통역은 개념을 파악해 옮겨야 성립한다.
국제화와 글로벨리제이션의 사이 국제화로 번역되는 globalization은 영국과 미국이 자신들의 기준, 표준으로 세계를 뒤덮으려는 것이 globalization이다. 하지만 일본인이 국제화라고 할때의 의미는 국제적인 기준에 자신들이 맞춘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일본은 세계 최강의 국가만을 기준으로 삼고 자국의 문화를 기꺼이 내다버리며 최강국의 언어와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국제화를 착각하면 지국의 문화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한다. 미국과 영어가 절대시 되는 국제화에서 진정한 국제화는 일시적인 경제력이나 군사력을 떠나서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보고 직접 교류하는 것이며 그것으로 더욱 풍요로워진다.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처음으로 읽었는데 저자의 예리함과 그칠줄 모르는 호기심이 무척 인상깊었다. 통역사인 직업적인 면이외에도 다양한 면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관점이 흥미로왔다. 소통과 언어에 관해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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